소설리스트

데스페라도-63화 (63/157)

[데스퍼라도] 63. 수호전사

데스퍼라도(Desperado)

수호전사

한편 마계(魔界)영역으로부터 온 루미라스 제국의 8개 군단은 이미 인간계 펄스 제국의 3개 도시를 점령하였고 이어서 저 드넓은 그로냐 평야를 가로지르며 맹렬히 다가오고 있었다. 과거 수백년 동안 고작해야 빈번한 습격으로 인한 약탈정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이처럼 체계적인 군대를 조직하고 그것도 1군단에서 8군단까지 수십만 명의 대규모 군대가 인간계에 침략한 것은 그야말로 경악할 대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전 인간계가 공포에 떨었음은 물론이고 수십개의 동맹 제국에서 부리나케  군단 규모의 군대를 펄스 제국에 파병을 하느라 바빴다.

사계(四界)에는 케록시아 대륙을 포함한 다른 수백의 대륙에는 총 5개 영역으로 분류된 존재들이 저마다 각각의 세력을 유지하며 여러 곳에 살고 있었다.

인간계(人間界) : 937개의 제국들이 수백개로 나뉘어진 각 대륙에 분포함 (아미라스루텐 제                  국과 펄스 제국은 케록시아 대륙에 속한다.)

마계(魔界) : 수백의 마계 종족이 존재함. (루미라스 제국은 여러 대륙에 분포한 마계 영역              들 중 바로 케록시아 대륙에 속한다)

어둠의 세계 : 악의정령(악마), 어둠의 전사 등 수많은 어둠의 존재들이 이에 속한다.(가스톤                은 여기 존재이다.)

천상계(天上界) : 천신, 천인, 요정, 드래곤 등 그 외 알려지지 않은 초월존재들이 이에 속한                  다.

영계(靈界) : 하위차원에서 죽음을 맞고 영혼의 자격으로 올라온 자들의 장소.

이들 각 영역간에는 지난 수십만년 동안 세력 다툼을 위한 크고 작은 전쟁을 셀 수도 없이치러왔다. 그 오랜 세월 세력싸움에서 실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5개의 영역들은 오늘날에도 밀고 밀리는 싸움을 전 대륙에 걸쳐 하고있었다. 그중 케록시아 대륙에 속한 인간계의 수십개 제국이 마계(魔界)에 속한 루미라스 제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 오랜 세월 전쟁으로 인해 점철된 바로 이곳 사계(四界)에서는 흔하디 흔한 세력전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그 역사상 소규모 군집을 이루어 습격하는 마계인(魔界人)의 습성으로 미루어 볼 때 케록시아 대륙 소속 마계 영역에서 무려 8군단을 조직해서 체계적으로 쳐들어오는 루미라스 제국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대규모 공격을 취하고 있었다. 과연 그 동안 마계(魔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혹이라도 전설로만 치부되던 고대마왕이 나타나서 이들을 한데로 규합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이들 마계인(魔界人)들이 어둠의 세계 존재들과 동맹이라도 맺었던가? 하여튼 케록시아 대륙 소속 인간계에서는 이도 저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펄스 제국이 함락 될 판이었고 다른 인간계 제국의 파병군단은 속속들이 펄스 제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리크가 소속된 아미라스루텐의 3군단 역시 펄스 제국 남서쪽 그로냐 대평원에 도착했다. 그로냐 대 평원 역시 엄청나게 넓었지만 각 제국으로부터 파병 온 각 군단들로 새까맣게 차 있었다. 무려 총 30군단 규모의 연합 병력이 펄스 제국의 관문인 그로냐 평야에서 방어진을 형성하고 거침없이 밀려오는 마계 루미라스 제국의 8군단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실로 수백년 만에 대규모 전면전이 이곳 그로냐 대 평원에서 벌어질 전망이었다.

별로 보잘 것 없는 차림새였다. 청동 투구와 검은 가죽 바스트의 차림새 달랑 검한 자루를 어깨에 멘 어느 병사가 저 그로냐 들판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여러 전쟁을 경험한 듯한 무심한 인상과 두 볼이 들어간 수척한 모습의 병사는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제3군단 소속 중앙 17막사 수장인 리크였다. 그는 드디어 대규모 전면공격을 하기 위해 저 끝없이 넓어 보이는 들판에 검은안개를 일으키며 오는 마계 루미라스 제국의 8개 군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 이번엔 느낌이 달라. 실로 강력한 기류를 몰고 오는군.'

마계 루미라스 제국의 군대는 서서히 다가왔다. 마치 거대한 헤일이 몰려오는 것처럼 그들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땅을 꺼트렸다. 결코 우락부락한 일반 마계족과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붉은 빛을 내는 눈동자에 핏기조차 없는 창백한 얼굴. 분명 예사롭지 않은 존재들이다. 리크는 루미라스 제국의 군대가 검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자신의 하몬 검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아. 두려움이 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다. 이들은 마치 전쟁을 하러온 자들 같지 않고 살육을 즐기러 온 피의 전사들 같군.'

드디어 케록시아 소속 인간계 제국 연합군 30군단과 마계 루미라스 제국의 8개 군단이 그로냐 대 평원에서 마주쳤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대규모 전면전이었던 것이다. 수백개의 각 대륙에 걸친 각 영역에서는 이런 역사적인 대전쟁을 기록하기 위해 이곳에 온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양옆 숲 속에서 정탐을 하며 과연 승리의 주역이 누가 될지 혹은 그 누가 영웅으로 탄생하고 혹은 장렬한 전사를 마칠지 기록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사계(四界)는 영웅들의 세상이라 할 수 있었다. 엄청난 군대와 대살육의 전쟁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헤성과 같이 등장하게 마련이었다. 적이든 아군이든 강력한 전투기술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전사들이 있게 마련이고 바로 전쟁 다음에는 수많은 영웅들의 전투 담이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수백개의 대륙에서 정탐 온 기록자들의 임무는 상황보고 였지만 결국 자신들의 최대의 적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영웅들을 찾아내고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리크가 속한 3 군단장인 약관 20세의 케시어스 역시 이미 그녀는 전 대륙에 걸친 영웅들 중 하나에 속했다. 수많은 전쟁에서 보여준 그녀의 용맹함은 이미 각 대륙과 제국에서 온 기록관에 의해 이미 영웅 기록표에 작성되었다. 그 외 이곳 그로냐 대평원에는 수백명의 영웅들이 각기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며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쓰려하였다. 실로 묘한 세계였다. 전쟁 중에 각 제국 소속의 기록관이 기록표를 가지고 영웅체크를 하고있으니 말이다.

연합군 제 1선 방어부대가 발끝에서 머리까지 보호할 직사각형 방패를 형성하고 언덕 아래로 진군했다. 제1선 부대만 하더라도 족히 10 만 명 정도는 되었으니 그로냐 대평원의 지축이 울릴 정도로 이들은 일제히 발을 맞추고 앞으로 전진하였다. 칼 끝 하나 들어갈 틈 없는 방패막을 형성한 제1선 방어부대는 어느 지점에 멈추고는 일제히 3M에 이르는 긴 창끝을 마계 루미라스 제국 병사들의 방향으로 향했다.

"둥! 둥! 둥! 둥!"

"탁! 탁! 탁! 탁!"

연합군 후방에서 수백개의 북소리가 울렸다. 북소리에 맞추어 전군이 방패를 검으로 치고 있었다. 마치 쳐들어오기만 하면 박살을 낼 것처럼 전의를 살리는 일종의 전략이었다. 이에 반해 마계 루라스 제국군단은 어느 일정한 거리에 멈추어 섰고 그저 인간계의 연합군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침묵하였고 그저 붉은 빛을 작렬하는 안광으로 무섭게 쏘아 볼뿐이었다.

백지장 같은 얼굴에 두꺼운 금속형의 검은 전투복차림인 마계 병사들이 드디어 연합군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점차적으로 그들의 걸음이 빨라지면서 이내 뛰어가면 무서운 속도로

전진했다. 100M, 50M 20M로 거리가 좁혀지자 루미라스 마계군단 병사들은 저마다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누런 이를 드러내더니 마구 울부짖기 시작했다. 순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계 루미라스 병사들의 각 수천 수만개의 검 끝에서 붉은 기류가 형성대면서 엄청난 숫자의 빛줄기가 폭렬(爆裂)하기 시작했다,

"팍!"

"콰쾅!"

"악!"

연합군단의 제 1선의 철벽에 가까운 방패들이 그들이 발사한 붉은 빛과 충돌하면서 허공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저 들판 끝없이 이어진 10여명의 제1선 방어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루미라스 마계병사들의 마법력으로 방패막을 잃어버린 연합군의 제 1선 부대들은 자신들의 긴 창을 꽉 움켜잡고 사나운 기세로 들이닥치는 마계인을 맞아 초반부터 백병전을 치루었다.

"와와.."

"창! 챙!"

"컥!"

"팍!"

제 1선의 철벽장비인 커다란 방패가 저들의 마법력으로 제거된 상황에서 근접백병전을 치루니 이미 초반 기선은 루미라스 마계 군단이 잡고 있었다. 여지없이 무너지는 연합군 제1선은 짧은 시간 안에 무너졌고 저마가 후방으로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연합군 후방에서 쏘아대는 화살과 창들 거대한 쇠공들이 피융피융 마계 병사들을 향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마게인들 역시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화살과 창들에 의해 여기 저기 몸에 구멍이 뚫리니 이상한 괴음을 내며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졌다.

인간계 연합군 후방 지역 책임 장교들이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제 1선이 후퇴하도록 퇴로를 열어주어라!! 그리고 제2선 검술부대 전투 준비!!"

드디어 리크가 속한 제2선 검술부대가 나 설 차례였다.

"와와!!"

제2선부대는 검을 뽑자마자 방패를 앞세우고 저 밀려오는 마계군단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마계 8군단의 전투 실력은 제2선 검술부대를 훨씬 앞섰다. 근력, 체력, 마법력 모두가 상대가 되지 않는 연합군 제 2선 병사들이 픽픽 살육 당하는 것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인가.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제17막사 소속인 리크의 엘리트 부대원들은 결코 그렇게 쉽게 뚫리지 않았다. 리크를 선두로 17막사 병사들은 사투를 다해 마계인들과 싸웠다.

"악!"

"팍!"

"푹!"

"컥!"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과연 마계인들에게는 힘이 딸렸는지 17 막사 대원들 하나둘씩 처절한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리크 수장은 자신의 부하들이 쓰러지자 그야말로 광분하기 시작했다.

"하르세!! 머린!! 카트!!"

리크가 외치는 이름들은 이미 땅바닥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제17막사 소속대원들이었다. 그 동안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했던 부하들이 죽어나가자 리크는 순간 분노와 광기가 폭팔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새끼들이!!! 혈파천!! 제 3 식 혈폭멸참!! "

하몬의 검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쨍!!"

작열하는 태양 빛을 반사하는 리크의 검에서 갑자기 엄청난 붉은 빛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슈! 슈! 슈! 슈!"

"콰 광 쾅"

"악!"

"컥!"

"크억!!"

드넓은 그로냐 대 평야 어느 한 지점에서 눈부신 섬광이 일어났으니 무엇인가 대폭팔을 하는 느낌이었다. 하몬의 검에선 수만 갈래의 빛줄기가 폭렬 하면서 저 아래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루미라스 마계인의 몸을 관통시키고 있었다. 실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연합군 후방지역의 각 고위 장성들과 전사들의 시선이 거대한 섬광을 일으킨 지점을 바라보았다.

"뭐..뭐야..마법광선이라면 벌써 수호전사들이 나섰단 말인가?"

"아직 실전 전사도 나서지 않았는데 저긴 아직 제2선 지역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누..누가 거대한 섬광을 일으켰나?

"저기 피를 뒤집어쓴 체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은 병사 말이야.."

"도..도망가는 마계인들을 마구 살육하는 병사 말인가?"

"저 병사 주위 좀 보라고 수백명의 마계병사들이 사지가 절단된 체 쓰러져 있다고."

참 묘한 광경이었다. 드넓은 그로냐 평야에서 연합군 제2선 대부분 지역이 보기 좋게 마계인들에게 뚫렸건만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중앙사령부지점의 제 17막사 지점은 오히려 역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바로 리크의 활약에 힘입어 제2선 병사들이 공세를 취할 수 있었고 실전 전사들까지 드디어 나선 것이다. 도망가는 마계인들을 추격하는 병사들 실전 전사들 이어서 수호전사들까지 총공세를 펼쳤으니 적어도 제17막사가 있었던 이 지역만큼은 단번에 형세가 역전 될 수 있었다. 과연 이런 전쟁도 있단 말인가. 바로 아미라스루텐 제국 제3군단은 이 여세를 몰아서 맹렬한 속도로 루미라스 마계군단 쪽으로 돌격했지만 그와 반대로 양옆에 있는 다른 연합 제국들은 거꾸로 밀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리크는 자신의 17막사 병사들을 보호하면서 계속 전진했다. 보이는 대로 죽이고 베고 그야말로 혈투를 벌였다. 이들 17막사 소속의 병사들은 전투집념은 실전전사와 수호전사를 능가하고도 남았다. 그야말로 리크 수장을 선두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싸웠다.

한편 후방에선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제3군단장인 케시어스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현 상황을 길다란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호화찬란한 전투복의 근위병들과 직속 수호전사들이 수십명 있었다. 망원경에서 눈을 뗀 케시어스 군단장은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면서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뭐라 말문을 열었다.

"그대들도 분명 목격했겠죠.."

"저..저기 제2선 지역에서 섬광을 일으킨 병사 말씀이죠.."

"그곳이 어느 소속이죠?"

"제 17 막사입니다."

"17막사라.."

케시어스 군단장은 엷은 입술을 다소곳이 다물고는 다소 의미 심장한 표정으로 한참을 일관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점차적으로 흐르자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케시어스 제3군단은 이미 적진 깊숙한 곳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다른 연합군들도 각자 자신들의 휘하에 잇는 실전 전사들과 수호전사들의 합류로 역공세를 펼쳐 점차적으로 루미라스 마계 군단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어느덧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어 장엄한 붉은 노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하늘도 피 빛을 띠고 그 아래 넓은 대지 위에도 피 강물이 흐르니 어디가 하늘인지 땅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온통 붉은 세상이었다. 더 이상의 아우성도 없었고 검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낮의 대 살육의 장은 이제 그 막을 내리려 하였다. 커다란 새들만이 꺼억 꺼억 대며 이곳으로 모여들 뿐 수많은 시신들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의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연합군의 30군단과 마계 루미라스 8 개 군단의 역사적인 첫 전면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마계 루미라스 제국의 8군단 중 3할이 전사했고 나머지 병력은 그들의 후방지역으로 후퇴를 하였다. 연합군의 30개 군단이 이들 마계군단을 그로냐 대평야에서 일단 저지를 시켰으니 함락 위기에 처한 펄스 제국 역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리.

***

사계(四界) 케록시아 대륙 원력 448001년 1 루퍼 오전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새해가 밝아왔다. 450 루퍼가 일년단위로서 이제 해가 바뀌고 제 1루퍼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 나라에는 뚜렷한 사계절이 없고 일년 내내 따스한 태양이 내리쬐고 온화한 기후가 지속된다. 지난해 펄스 제국에 파병군단을 보내어 그로냐 대평원에서 신화를 만들어낸  케시어스 제 3군단은 주변 제국들 간에 그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 마계 루미라스 제국과의 대 전쟁에서 뛰어난 용맹으로 바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제공의 틀을 마련했기에 케시어스 3군단의 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사실 마계 루미라스 제국의 8군단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밀리다가 케시어스 제3군단 소속의 제17 막사 병사들의 불굴의 투지로 역공세의 빌미를 마련했고 이어 전 30군단의 연합군 역시 17막사 병사들에게 고무되어 저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한마음으로 총공세를 펼쳐 결국에는 역사적인 그로냐 대평원의 승리를 움켜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승리의 주역은 제17막사 병사들이었고 일등주역은 다름 아닌 바로 17막사를 이끌고 있던 리크 수장이었다.

새해가 밝아오는 오늘 아미라스루텐 제국에는 새해를 기념하는 축체가 벌어졌다. 그리고 분명 올해의 축제에는 빅 이벤트가 있었으니 역사상 그 전례가 없던 훈장 수여와 진급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상은 케시어스 3군단 중앙사령부 제 17막사 소속의 리크 수장과 그 외 38명의 병사들이었다.

거대한 홀에는 황제를 비롯한 수많은 대신들과 귀족들이 저마다 현란한 장식을 한 복장으로

곧 이어질 훈장 수여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리크를 선두로 해서 나머지 17막사 병사들이 일렬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와! 와!"

사람들의 갈채와 함성소리는 커져갔고 잠시 후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리크를 맞아주니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갔다. 황제는 일일이 그들에게 훈장과 칙서를 나누어주었다. 공식적인 행사는 끝났고 이어서 각 삶들은 여흥을 즐기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넓은 홀에서 춤을 추는 황족들과 귀족들, 술잔을 들고 담소를 나누는 여러 대신들, 일일이 돌아다니며 악수를 청하는 황제와 총리대신 등 여느 만찬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었다.

훈장을 수여 받은 제17막사 소속의 리크와 그 외 38명은 이미 만찬회장을 빠져 나와 궁 앞 분수대로 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상기된 표정으로 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휴. 겨우 빠져 나왔네."

"하긴 우리 같은 일개 병사들이 놀 물은 아니지."

"왜 이 참에 아리따운 귀족 아가씨 좀 꼬셔보시지."

"이 사람이 큰일날 소리를.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하지 말게나."

"농담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는 훈장까지 받은 제 17막사의 역전 용사들인데."

"그나저나 황제가 몸소 우리들 모두에게 칙서까지 하달하다니. 후.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군."

"그나저나 뭐라 적혀있는 거야? 한번 볼까."

병사들은 저마다 칙서를 펼쳐보기 시작했고 잠시 후 여기저기서 탄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뭐..뭐야."

"이거 분명 꿈은 아니겠지."

"실..실전 전사라니..."

리크 역시 병사들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는지 황제의 칙서를 여러 번 거듭 읽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볼을 꼬집어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고 심지어 너무 기뻐 분수대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병사가 수장, 장교의 두 계단을 뛰어 넘어 실전 전사로 특진을 하였으니 이보다 기쁜 일들이 어디 있겠는가? 리크는 자신의 칙서를 가슴 안쪽으로 밀어 넣고는 분수대 옆쪽 의자로 가서 앉더니 밤하늘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이때 병사들이 리크에게 뭐라 외쳤다.

"리크 수장님 밖에 나갑시다. 하하하."

"특진 기념 술 파티 열어야죠."

"이게 다 리크 수장님 덕인데요. 오늘은 저희가 성심 것 모시겠습니다.

"후. 먼저 가게나. 난 여기서 잠시 쉬고 싶은데. 내 곧 뒤따라 갈 테니 어서 가라고."

"후후. 딴 데로 새기 없습니다. 저희 자주 가는 선술집 아시죠. 그럼 이따 뵙죠.

잠시후 혼자가 된 리크는 궁 안의 분수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이제 겨우 졸병을 벗어난 것 같군. 실전 전사라..'

리크는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간들 외로움만 더 할 때고 젠장 오늘따라 세아린의 잔소리가 그립군.

그나저나 잘 있는지.'

그때 리크가 앉아있던 벤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찬회장 보단 이곳이 조용해서 좋지요."

깜짝 놀란 리크는 뒤를 돌아보았다.

"잠깐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아..네.."

풀벌레가 찌륵찌륵 울었고 분수대에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허공을 이리저리 가르고 있었다. 밤 바람이 리크의 금발을 가끔 날렸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인의 짙 푸른 드레스 자락을 산들산들 거렸다. 참 묘한 분위기였다. 다소 거북한 침묵이 한동안 흐르니 리크는 두 손을 비비작 거리며 어색해 하였다.

"좋지요?"

"............"

긴 머리를 말라 올려 황금빛 끈으로 묶은 모습의 여인은 가히 한 밤에 나타난 여신의 모습이었다. 살며시 다문 입술, 오똑한 코와 맑은 두 눈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니 전체적으로는 그윽한 매력마저 쏟아내는 이 여인의 정체가 누구인가? 귀족인가 혹은 황족인가?

리크는 결국 어색한 분위기에 먼저 손을 들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저 이만 실례를..."

"잠깐만요. 사실 저는 당신을 보러 왔는데요."

"저..저를 요.."

"예. 리크 가벤더님."

"제 이름을 어떻게?"

"조금 전 만찬회장에서 주역이 되었던 분인데 모른다면 오히려 이상하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분명 볼일이 있죠. 제 얼굴을 자세히 보시겠습니까?"

리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낯모르는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분명 낮 익은 얼굴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리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부동 자세를 취했다.

"죄..죄송합니다!! 전혀 몰라 뵈 서.."

"이젠 제가 누군지 아세요?"

"케..케시어스 제 3 군단장님..아무튼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실수라니요? 두꺼운 전투복과 투구를 쓰고 다니는 저를 이런 사석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오늘은 만찬회 겸 사석자리이니 제발 저를 군단장으로 보아주지 마세요."

리크는 여전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그래도. 저 같은 일개병사가 감히 어떻게.."

"일개병사라니요? 이젠 수호전사 아닌가요?"

"수호전사라니요.."

"황제의 칙서를 아직 안 보셨나요. 제17막사 병사들은 실전전사로 특진하고 수장인 당신은 수호전사로 진급되었는데요. 호호. 모르셨군요. 아무튼 부탁이니 자연스럽게 제 옆자리에 앉아주세요. 여긴 군대가 아니니 그저 마음 편하게 말씀하세요."

케시어스 군단장의 부드러운 말씨에 리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 케시어스는 다소 장난스런 표정과 말투로 뭐라 말했다.

"리크님은 쑥스러움을 많이 타나봐요. 전장에서는 마치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보이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호호. 아무튼 대단해요 당신의 기록표를 보고는 저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제3군단장인 케시어스는 전장에서 보여준 그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천진난만한 모습에 그 말투마저 호기심 어린 소녀와도 같았으니 리크는 다소 어리둥절하였다. 케시어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문을 이어갔다.

"리크님의 기록표는 저를 능가하더군요. 후. 제가 13살이란 최연소 나이로 군 입대를 했을 때 모두 비웃었지요. 하지만 전 보란 듯이 잘 적응했죠. 기록표의 점수를 갱신하면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요. 게다가 운이 좋아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공을 여러 번 쌓게되니 오늘날 20살의 나이로 군단장에 올랐지만. 현재 리크님은 저보다도 빠르게 진급하고 있으니 이거 정말 긴장되는 대요. 단 일년만에 일개병사가 수호전사의 직급까지 오르는 것은 역사상 그 유례가 없던 일이에요."

그때 분수대 맞은편에서 화려한 의관 복장을 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급히 다가왔다.

"케시어스 군단장님. 여기 계셨군요."

"후 또 귀찮게 구는군..."

"저..저기 다음 행사는 바로 28개 군단장님들을 위한 행사인데 지금 참석을.."

그들은 케시어스 3군단장 직속 친위대였다. 만찬회장에서 갑자기 없어진 케시어스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들은 케시어스 옆자리에 앉은 리크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저..저자는 제17막사 수장..감히 저런 놈이 어떻게 군단장님과 함께.."

"폰티앙 말조심해! 그는 이제 수호전사로 진급했다고!! 그나저나 군단장들 모임이라. 정말

걱정되는군 아버지 같은 분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마셔야되다니.."

케시어스는 뭐라 투덜투덜 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옆에 서있던 친위대를 의식했는지 갑자기 경직된 군대 말투를 썼다.

"리크 가벤더 수호전사!!"

리크 역시 재빠르게 일어나 부동자세로 힘차게 대답했다.

"네, 군단장님!!"

"자넨 중앙 사령부 소속 수호전사이니 앞으론 나와 자주 만날 걸세. 그럼 이만 바빠서."

그녀는 친위대들이 눈치 못 채도록 리크를 향하여 한쪽 눈을 슬며시 윙크했고 약간의 미소를 흘려보냈다. 그리고는 휙 돌아서 절도 있게 만찬회장으로 향했다.

그때 친위대장 폰티앙이 갑자기 살벌한 표정으로 리크를 보며 뭐라 말했다.

"흠. 리크 수호전사라. 혹이라도 케시어스 군단장님께 무례하지는 안았겠지. 수장에서 갑자기 수호전사로 진급했다고 오만방자 했다가는 내가 가만두지 않겠네. 3군단에는 수호전사들만 하더라도 수백명이지. 그러므로 일개 수호전사가 오늘같이 케시어스 군단장님과 대화를 했다는 자체를 영광으로 알라고. 아무튼 내 자네를 지켜보겠네.."

긴 흑발머리에 검은 눈과 검은 친위대 복장이었지만 유난히 횐 피부를 가지고 있는 폰티앙 친위대장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잠시후 친위대들이 사라지고 리크는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뭐라 중얼거렸다.

"쳇. 폰티앙 친위대장이라....날 지켜보겠다니.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이거 은근히 겁주는데..그나저나 하늘같이 여겨졌던 케시어스 제3군단장이 실제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거와는 영 딴 모습인데. 후후.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리크 역시 발걸음을 황궁 밖으로 돌렸다. 아마 선술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제17막사 병사들과 오늘밤만큼은 술과 지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사계(四界) 케록시아 대륙 원력 448001년 30루퍼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새해가 밝아온 지 벌써 30일이 지났다. 리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 3군단 중앙사령부 소속 수호전사과에 출근했다. 비록 이곳은 엄연한 군대였지만 수호전사 급 이상부터는 영내에서 생활하는 대신에 집에서 출퇴근 할 수가 있었다. 제3군단 소속의 수호전사들의 인원은 총 700여명이었고 그들은 상급계열, 중급계열, 하급계열로 나누어졌다. 물론 리크는 하급계열에 소속되었다. 하지만 하급계열의 수호전사들은 저 아래 일개 막사 수장 출신이 전쟁에서 공 한번 세웠다고 무려 3계급 특진한 것에 대해 시샘들을 하고 있었고 리크는 오늘도 그들의 텃세에 어떻게 하루를 견딜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리크가 영내로 들어서자 그 안에는 약 50여명의 하급계열의 각 수호전사들이 화려한 차림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검술과 마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각 수호전사들의 전투실력은 웬만큼 상당한 경지에 있었다. 그야말로 전시에는 일당백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할 특급전사들이었던 것이다.

리크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수련을 위해 저쪽 구석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 그저 외롭게 구석에서 조용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끔 다가와서 비아냥거리거나 뭐라 욕지거리를 해대는 수호전사들이 하루에도 너 댓 명은 되었지만 리크는 그들의 행동에 별 반응도 안하고 묵묵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수련실에 있던 모든 수호전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특히 이들 중 다소 리더격인 게아트 전사를 필두로 나머지 전사들이 리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게아트 전사는 갑자기 팔짱을 끼더니만 리크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후후. 꼴에 수련은 한답시고 매일 이곳에 들어오는군. 하긴 출근 결석하면 기록표 점수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뭐. 오긴 와야겠지."

게아트가 말하자 다른 수호전사들 역시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리크 저 자식은 어디서 명분도 없는 사이비 전투기술가지고 설쳐대니. 젠장 수호전사도 이젠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군."

"누가 아니래. 전쟁에서 어쩌다가 발악했고 그게 운 좋게도 먹혔으니 졸지에 수호전사로 특진했지만 내가 보기엔 꾸질꾸질한 병사 냄새가 아직도 난단 말이야. 아이구 냄새야..하하하"

그는 자신의 코를 움켜잡고 리크 주위를 빙빙 돌았다.

"에고 냄새난다."

"더구나 저놈이 수장으로 있던 제17막사 병사 놈들도 전부 실전전사로 특진되었다며..진짜 멍텅구리 17막사 놈들 완전히 출세했군. 하하하."

그때 리크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명색이 수호전사라는 자들이 그 정도 언어구사능력뿐이 안돼는 가? 그리고 제17막사 병사들이 멍텅구리라니..내게 뭐라 하는 것은 그저 넘길 수 있지만 17막사 병사들이 자네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참을 수 없어."

순간 게아트를 비롯한 다른 수호전사들이 무척 놀란 눈치였다.

"어쭈. 이 새끼 이제 보니 말을 하잖아. 지난 한달 동안 말을 안 하기에 뭐 말도 못하는 병신인줄 알았더만. 이거 완전히 내숭을 떨었군 떨었어. 더구나 네가 못 참겠다면 어쩔거야? 이 새끼야!! 앙!!"

그순간 리크의 안색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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