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페라도-6화 (6/157)

[데스퍼라도] 6. 아폴립스의 목검

데스퍼라도 (Desperado)

아폴립스의 목검

리크 역시 자신의 거처를 아폴립스 나무 위로 정했다. 제법

틀이 짜여진 헤수스의 움막보다는 엉성했지만 그런 데로

모양새는 갖춘 듯 하였다. 일단 아폴립스의 길다라고 커다란

잎새들이 치렁치렁 리크의 보금자리를 감싸니 결코 그 누구

에게 쉽게 발견 될 수 없는 이점도 있었다.

결국 마을 아이들이 리크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둑어둑 해저

서야 마을로 힘없이 돌아갔고 한동안 리크는 자신만의 시간

과 공간을 이곳에서 가질 수 있었으리라. 지금 리크는 자신의

목검을 높이 치켜들어 아래위로 천천히 살펴보고 있었다.

헤수스가 심심풀이로 만들었던 아폴립스의 목검은 한 달이

지난 지금 리크의 손목과 가는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고 나무

로서 특유하리 만큼 연한 푸른빛을 띠었던 아폴립스의 목검은

더 이상 그 자체의 순수한 빛을 띠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몸

부림 쳤던 리크의 방어 혹은 공격무기로서 지난 한 달 동안

그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고 또한 아이들의 피로 얼룩이 군데

군데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리크는 결코 생각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사냥

감의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하루 하루를 극도의 긴장감으로

보내야만 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헤수스의

말대로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 그들의 잔인한 폭력근성을 부추

겼다는 것만은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고 처음에는 오직 마을

아이들로부터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점차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결국 60 여명 중에서 50여명 정도가

자신을 잡으려는 사냥놀이를 포기하고 10명 정도만 남게

되자 리크는 뭐라 표현 할 수 희열과 함께 강자생존논리의

법칙을 몸소 깨달았으리라.

지금에 이르러 리크에게는 가슴속 깊이 오기와도 같은 근성

마저 일기 시작했으니 바로 지금까지 사냥놀이를 끝까지 포기

안한 나머지 10명의 아이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 할 수도

있었다. 결국 가드린 마을의 카란 대장과 발튼 마을의 빌로마

대장은 리크의 투쟁 근성을 넘어선 그 이상의 폭력 근성을

깨운 꼴이 되었으니 오히려 그들은 리크를 자신들을 사냥할

사냥꾼으로 만든 셈이 된 것이다.

그 다음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는 아폴립스 숲 위 하늘

중천에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잎새 사이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마치 한낮의 무대를 연출하듯 조명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분명 이 숲에는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리크가 그들 앞에 모습

을 보인 것이었다. 그것도 길목을 막고 바로 카란 대장과

빌모아 대장과 나머지 아이들 정면에 나타난 것이었다.

"렉...."

"난 렉이 아니다. 카란...."

자신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리크가 말문을 열자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한집에 같이 살았던 카란 조차 리크가 말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리크....리크 라벤더가 내 본명이다."

"리..리크라고...."

"그리고 카란 난 네 집에 살면서 도둑질한 적이 없다. 지난

번 헛간에서 발견된 단검은 네 여동생 헤네스가 갖다 준

것이다."

"헤..헤네스가....."

또박또박 말을 잇는 리크는 그 눈빛마저 아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분명 예전의 렉이 아니였다. 허나 카란 역시 보통

아이는 아니었는지라 재빨리 말을 내 뱉었다.

"렉이든 리크든지 그 동안 쥐새끼처럼 숨어 기습만 하더니

오늘 직접 모습을 보였군. 후후 아무튼 이제는 자신의 본분

이 사냥감이 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냐. 렉."

"난 리크다....리크 라벤더...."

"리크..좋아 리크..어차피 잡힐 놈이 이름이 뭔 상관 있겠냐.."

카란이 목검을 들어 올리자 빌모아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

도 동시에 목검을 들어 올려 공격자세를 취했다. 곧이어

카란이 리크를 향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카란이 우에서 좌로 리크의 목덜미를 향해 힘껏 내치치자.

리크는 순간 몸을 숙임과 동시에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아폴립스 목검으로 찌르기 연속 3회 동작을 카란의 복부에

작렬시켰다. 그 충격으로 카란이 뒤로 자빠지자 이번엔

빌모아가 점프를 하며 리크의 정수리를 향해 강하게 검을

내리쳤다. 리크는 왼쪽으로 살짝 피하면서 빌모아의 등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아이들 역시 한꺼

번에 덤벼들기 시작했다.

8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니 리크는 이번만큼 그들과 정면 승부

를 피하고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옆에 약

1 M 정도 튀어나온 바위를 딛고 튀어 오르면서 목검을 앞에

달려오는 3명에게 휘둘렀다. 리크의 예상치 못한 빠른 동작에

3명의 아이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각자 팔과, 가슴, 등을

가격 당했고 그중 두 명이 자신들의 치칼라 목검을 떨어트렸다.

"파! 바 ! 팍 !"

"헉!."

"아야!"

"욱!"

이번에 리크는 오른쪽의 나무를 딛고 점프를 하면서 남아있던

아이들을 향해 정면 공격하였다. 아이들도 동시에 검을 리크

에게 휘둘렀고 리크는 그들의 검에 두 어 번 정도 가격을

당했다. 하지만 눈빛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좌로, 우로 베고

찌르기의 연속 동작이 들어가자 여기저기에서 고통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리크는 어차피 그들에게 한 두번은 가격 당할 것을 계산에

집어넣고 정면공격의 도박을 감행한 것이었다. 아마 치칼라

목검으로 한 두 대 정도 가격 당하는 고통은 그간 카란 대장

에게 무차별하게 폭행 당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

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처음 리크에게 찌르기 3연속 공격에 뒤로 나가자빠진 카란이

기운을 차리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리크 이 새끼가......쥐새끼처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붙자!!"

목검을 양손으로 잡은 카란이 무서운 기세로 리크에게 달려

오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던 리크는 갑자기 입술을 깨물고는

뭐라 외쳤다.

"이번엔 안 피한다."

리크 역시 목검을 양손으로 잡은 체 카란에게 정면으로 달려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겨누어지는 목검을 피할 생각

없이 자신들의 목검을 힘껏 내리쳤다.

"퍽!"

"파! 바! 팍!"

"헉!"

"욱!"

카란의 목검이 리크의 어깨죽지에서 가슴으로 그어졌고 한편

리크의 목검은 카란의 복부를 찌름과 동시에 밑 복부에서 가슴

을 베어 위로 힘차게 솟아올랐고 한 번더 목덜미를 가격했다.

카란이 일검을 내리치는 순간 리크는 찌르기와 밑에서 위로

베기 그리고 좌에서 우로 베기의 3연속 동작을 취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카란은 앞으로 고쿠라 졌고 리크 역시

풀석 주저앉았다.

리크와 카란은 마치 자존심을 거머쥐고 정면대결한 양 서로간

의 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온힘을 쏟아 부은 필 살의 동작

을 취한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 역시 저마다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자신

들의 목검을 떨어트리고 카란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발튼

마을의 빌모아 대장만큼은 리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고

그를 부축해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리크가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리크는 자신을 부축하는 빌모아의 팔을 뿌리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검을 챙기더니 저편에

아이들에 둘러 싸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카란

에게 비틀 비틀 거리며 다가갔다. 리크가 다가오자 아이들

은 슬금슬금 옆으로 피했고 리크는 자신의 아폴립스 목검

을 카란의 목에 겨누었다.

"카란....사냥감의 신세가 된 기분이 어떠냐....."

그때 카란의 눈 커플이 꿈틀꿈틀 대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렉..."

"나는 렉이 아니라 리크...리크 가벤더이다....카란.....이후로

네가 정중히 모실 리크란 말이다. 명심해라."

리크는 목검을 거두었고 가드린 마을이 있는 언덕 아래쪽

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빌모아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은

리크의 뒤 모습을 그저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리크!"

리크는 누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바로

발튼 마을의 대장 빌모아였다.

"리크....우리에게 아까 네가 보여준 검술을 가르쳐 줄 수

있겠니?"

리크는 빌모아를 잠시 쳐다보더니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발걸음을 다시 마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

아폴립스의 숲에서 벌어진 사냥놀이는 그 해 늦 바지 여름과

함께 저 아련한 기억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아폴립스의 숲에서 벌어진 사냥놀이.....

이후 60여명을 지휘하며 파르마 산 뒤에 7개 마을 아이들과

벌이던 전쟁놀이......

멧돼지를 추격한답시고 산 깊숙한 곳에서 길을 잃었던 사건....

파가논의 병사들 골려주기.......

리크의 아폴립스 목검 기술을 적은 책 만들기.....

아폴립스의 추억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저 어린 시절 뒤편으로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솜털은 점점 굵고 검게 변했으며 그들의

미성 적 목소리 마저 어느덧 묵직하게 변해 갔다. 세월만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하였다. 아득한 옛일은 그저 옛일로 덮어 둘

수 있는 신비한 마력과는 같은 시간의 흐름이여......

17살의 리크는 오늘도 장작을 패고 있었다.

"리크....그만하고 들어와서 식사해라..."

"알겠습니다. 어머니.."

"그런데 오늘 카란이 보이지 않는구나.."

"장작 감을 더 찾는다고 아까 나갔는데요.."

"후..큰일이군..요즘 들어 파가논 병사들이 이곳 시골마을까지

들어와 나무를 마구 베어 버리니....근처 산들이 벌써 황량해

지는 구나.."

"젠장! 진짜 요즘은 땔나무 구경하기 힘들단 말이야!"

그때 갑자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란! 언제 돌아왔니...그렇지 않아도 너를 찾았는데...아무튼

잘됐군. 식사준비 다 되었으니 어서 들어오거라....."

"잠깐만요! 리크와 요기 남은 장작 마저 패고 들어갈게요."

"배고프지 않니...아무튼 그것만하고 리크와 같이 들어와

밥먹어라."

"예..예 알았어요...밥만큼은 꼭 챙겨먹어야지요. 근데 리크

벌써 저 나무들을 다 팬 거야. 후 대단하군....."

"뭐 대단하긴...그런데 카란 정말 요즘 나무들을 찾아보기

힘든가?"

"쳇..요즘 병사들이 전쟁에 쓸 용도로 마구 나무를 베어가니..

젠장 나무가 전쟁에 무슨 쓸모가 있다고....그나마 아폴립스

숲은 그들이 무슨 연유인지 건들지도 않으니 그나마 다행

이지..이거 갑자기 배고픈데 요거 이따 하고 밥이나 먹자.

리크!"

"그러지 뭐.."

슬금슬금 오던 눈이 이젠 아예 주먹만한 크기로 펑펑 오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문을 박차고 누군가가 집안에서 나왔다.

"와 눈이다...."

"헤네스.."

"리크! 카란! 오빠들 하늘 좀 봐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요.."

"철딱서니 없는 것 같으니라구....눈이 오는 게 뭐가 좋아서

호들갑을 떨고 그래!"

"왜 또 시비야....무슨 애 늙은이 같은 맡 투로..꼭 자기가 아빠

나 된 것처럼..칫."

"그래 헤네스 아버지 얘기 잘했다.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 된

지 벌써 3년이 흘렀건만 돌아오실 생각을 안 하시는데.. 넌

그저 눈 타령이야!"

"............"

순간 헤네스는 갑자기 시무룩해지더니 잠시 후 카란을 한번

흘겨보았다.

"쳇 뚝하면 아빠 얘기로 기를 죽여. 들어와서 밥이나 먹어."

"꽝!!!"

헤네스는 집안으로 들어 가버리자 카란이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했다.

"후...이젠 눈이 오는 것도 정말 반갑지 않군....."

"아버지 때문에 그러니..카란..."

"응...우리야 따뜻한 쉴 곳이나 있지...아버진 이제 연세도 꽤

드셨을 텐데....아마 군인 막사 같은 추운 곳에서 지내시겠지.."

"아마 머지않아 돌아오실 거야..힘내라고 카란.."

"젠장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야 말이지...그나저나 밥이나

먹자.."

"아차 카란..지금 생각난 건데..나 좀 아폴립스 숲에 갔다 올게.."

"너 또 그 사람 만나러 가는 거지.."

"응.."

"후....어쨌거나 밥은 먹고 가라고..."

"금방 다녀올게....."

"도대체 그 사람의 정체가 뭐 길래 그 숲에 아예 눌러 앉아

사냐. 그리고 리크 넌 그 사람하고 무슨 관계야!"

"그냥..."

"알았어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빨리 다녀와 어머니한테는

잘 말씀드릴 테니.."

"고마워 카란...

"후후 별말씀...아차 그리고 리크 오늘 빌모아 그리고 다른

놈들과 저녁에 모이기로 한 거 알지.."

"응. 저기 칼데아 호수에 가기로 한 거?"

"맞아..일명 '미친 마녀의 호수'라고도 하지 오늘은 기어코 그곳

의 정체를 밝혀야지..간만에 스릴 좀 느끼자고.."

"좀 위험하지 않을까. 지난번 병사들조차 혼 줄이 나서 도망쳐

나왔잖니?"

"후후 그러니까 우리가 가자는 거 아냐? 이거 그 위대한 리크

께서 꼬리를 내리실 참인가.. 아무튼 리크 너만은 꼭 참석해야

해! 알았지...그건 그렇고 빨리 아폴립스의 숲에나 다녀오라고!"

"알았어!"

리크는 헤수스와 한가지 약속했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다.

3 년 전 사냥놀이가 막을 내린 이후 리크는 헤수스의 움막을

자기 집 드나 들 듯이 하였고 헤수스 역시 리크를 항상 반겨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크는 헤수스의 움막 안에 무엇인가

번쩍거리는 물체를 보았다. 헤수스는 리크가 움막 안에 있던

물체를 보고 궁금해하자 이내 움막 안으로 들어가 그 번쩍거리

던 정체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바로 검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검이었지만 상당히 두껍고 묵직해 보였다. 손잡이 부분은 밧줄

로 칭칭 감겨져 있어 영 초라해 보였지만 검 날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과 이상한 글씨는 결코 이 검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리크가 신기한 듯 쳐다보자 헤수스는 그

에게 검을 주었고 리크는 너무 무거워 제대로 들지도 못 하고

검을 떨어트려 버렸다. 헤수스는 갑자기 미소를 짓더니 한마디

하였다.

"하몬의 검'은 보기보다 상당히 무겁단다. 후후. 한 3 년

후나 될까 네가 그때쯤 되면 제법 근력이 생길 나이가 되니

들 수 있을지 모른다만....아마 그때도 어려울걸 웬만한 장정들

두 명이 낑낑거리며 겨우 들 정도인데..하하 아무튼 약속하지

나중에 네가 좀더 커서 이 검을 들 수 있다면 하몬의 검을

사용하게 해주마..물론 능력이 된다면 말이야."

"하몬의 검이라뇨. 하몬이 누구죠?"

3 년 전 분명 리크는 헤수스가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리크는 하몬의 검을 그의 뇌리 속에서 떨쳐

버렸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분명 내가 들을 수만 있다면 그 하몬의 검을 사용할수 있다고

말씀하셨지.. 헤수스 아저씨가 설마 3 년 전의 일을 기억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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