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미의 활약기 #2
“절미들 맛있어?”
“완전 맛있어요! 근데 왜 키키 형은 안 먹어요? 내 거 줘요?”
“우리 집 근처에도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 광견 형들 저리 가요, 안 줄 거니까.”
“그 나이에 뭔들 안 맛있겠냐. 어휴 많이들 먹어라 새끼들아. 형들이 사주는 거니까.”
“아, 우리가 낼 거거든요.”
“쩔미들, 형들이랑 저기 뒷골목 갔다 올까?”
“에이, 씨. 됐거든요. 우리도 이제 고3이라고요! 내년이면 성인이거든!”
해가 지나 이젠 19살이 되었는데도, 서련의 눈에 베르르와 순한양은 한참이나 어린 동생으로 비쳤다. 하진이 워낙 덩치도 커서 동생 같지 않았던 탓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요즘 애들이라고 칭하기엔 서련도 아직 젊었지만, 확실히 그 간극의 차이는 세대 차이를 만들었다. 간혹 못 알아듣는 유행어를 쓰는 절미들은 그걸 모르는 듯했지만.
“광견 형들 오늘 저희랑 놀아줘야 돼요?”
“저희 진짜 형들이랑 놀려고 새벽부터 준비해서 왔다고요.”
“쩔미들 이제 형들 안 무서운가 봐? 그러면 안 되는데?”
“벼, 별로… 나는 원래 안 무서웠음요.”
“형들 와꾸 무섭다고 현모 다음날 리사 누나한테 털어놓은 건 누구였더라.”
“아, 쫌! 밥 먹는데 말 좀 걸지 마요! 쩔미들 체하는 거 보고 싶나, 진짜!”
“그래, 그래. 많이들 처먹어라.”
현재 모두는 오피스텔 근처의 카페식당에 와 있었다. 새벽부터 왔다는 말을 증명하듯 베르르와 순한양은 눈앞에 있는 음식을 전투적으로 퍼먹고 있었다. 이미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서련은 커피 하나를 든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미들 밥 먹고 뭐 하고 싶은데?”
“어… 피시방?”
“아니면 노래방? 아님 바, 방 탈출 카페…? 아니면… 오락실?”
어이없는 시선들이 절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놀자고 해놓고 막상 정해놓고 오진 않은 듯 했다. 뺨을 긁적거리던 절미들은 곧 씩 웃으며 지지부진한 계획을 이실직고했다.
“그냥 형들하고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 온 건데.”
“쩔미들 버리기 없기.”
그중 가장 어이없는 건 억울하게 끌려 나온 하진이었다. 이어 악문 잇새 사이로 하진의 낮은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좋은 말로 할 때 집에 가라.”
“하진아.”
엄한 목소리에 하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주말 오전부터 불려 나온 게 퍽 기분이야 상하겠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인천에서 온 애들이다. 그냥 돌려보내기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저 눈빛들. 서련을 향한 눈빛이 비 맞은 강아지 꼴이었다.
“절미들아, 형들은 방 탈출 옛적에 뗐다. 그리고 오락실 갈 바엔 피시방이 낫지 않겠냐?”
“새벽부터 그렇게 들들 볶더니 아, 나… 새끼들.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원호와 로운의 말에 절미들은 슬쩍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는 곧 배를 내밀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아, 이 절미들이 광견 형들 생각해서 왔더니 뭐래! 형들이 언제 고3이랑 놀아 보겠냐고요!”
“진짜, 고3이 얼마나 바쁜데!”
“그렇게 바쁜데 니들은 지금 여기 와서 이러고 있냐?”
“어휴, 각 나온다. 새끼들, 아주 빠져가지고.”
“아, 됐고 광견님들 그럼 피시방 가시죠? 건블 형이랑 리사 누나랑 생닭 형도 들어와 있던데.”
“피시방 갔다가 포장마차 같은 데서 떡볶이 먹고 시내 구경하다 찢어지면 되겠다!”
“허이구, 떡볶이란다.”
“애들 참 순진하네.”
로운과 원호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르르와 순한양은 서로 킥킥거리며 하루 일정표를 쫙 짜고 있었다.
서련은 절미들 앞에 있는 빈 접시를 보다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서련에게 쏠렸다. 집중된 시선 속에 서련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벽부터 왔는데 절미들이 그러고 싶으면 그래야지. 같이 피시방 갈까?”
“크으, 역시 우리 키키형.”
“다들 메기 형 좀 본받아요.”
“누가 멘긴데, 씨발.”
“알겠으니까 나가자. 하진아, 너도 그만하고 나와.”
결국 모두는 서련의 말에 떠밀려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계산은 당연히 형들의 몫이 되었다. 베르르와 순한양이 자기들이 내겠다고 씨름을 벌였지만, 하진의 손에 뒷덜미가 붙잡힌 채 쫓겨나고 나서는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찬바람이 훅 끼쳐오는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절미들은 내내 조잘거렸다. 게임 안에서도 그렇게 쉴 새 없이 떠들더니 역시나 활력 자체가 달랐다. 틱틱거리면서도 받아주는 로운과 원호도 그리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늘 다니던 피시방에 도착한 건 순식간이었다. 널찍한 피시방을 본 절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워했다. 자기들 말로는 사는 곳이 변두리라 피시방도 후져서 이렇게 넓고 좋은 곳은 자주 못 가봤다는데, 그래서인지 더 신난 모습들이었다.
사실 이렇게 좋아도 이 근방에는 피시방이 널려서 늘 자리는 남아돌았다.
“와, 여기 맛있는 것도 많이 팔아!”
“쩐다, 와…. 없는 게 없어.”
“니들은 그렇게 먹고도 또 먹을 생각이 드냐?”
“아, 왜 시비예요?! 한창 자랄 나이구만.”
“쩔미들 지금 형들한테 짖는 거야? 형들하고 어떻게, PVP 좀 뜰까?”
“콜. 내가 오늘 광견님들 밟아 주겠음.”
“배짱 봐라.”
로운과 원호가 혀를 차며 이제는 지정석이 된 자리에 앉았다. 절미들이 앉은 곳은 하진을 등진 자리였다. 그러니까, 의자 바로 뒤쪽 말이다.
모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에르덴에 접속하자, 먼저 접속해 있는 길드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해왔다.
[길드/건블리아: 뭐야]
[길드/건블리아: 왜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들어오냐]
[길드/휴리사: 하이하이ㅋㅋㅋㅋ 절미들은 오늘 웬일로 늦게 들어왔니ㅋㅋㅋ]
[길드/야생닭: 설마 같이 있는건... 아니지?]
[길드/키키아: 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ㅎ]
[길드/묵요: 저희 들어왔습니다ㅋ]
[길드/호백조: 에이ㅋㅋㅋ 저희가 안 들어오면 섭하져]
[길드/킬레아: ㅎㅇ]
[길드/베르르: ㅋㅋㅋㅋㅋㅋㅋ우리 지금 어디있게옄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길마형 배아플걸여ㅋㅋㅋㅋㅋㅋㅋ]
[길드/건블리아: 뭐야 니들]
[길드/건블리아: 또 뭔 수작을 부리려고 실실 쪼개는겨]
[길드/베르르: 상상은 알아섴ㅋㅋ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임돸ㅋㅋㅋㅋㅋ]
[길드/건블리아: 아주 놀고들있다]
[길드/묵요: 하하 걱정마세요. 저희가 제대로 발라놓겠습니다]
[길드/호백조: 쩔미들 형들이랑 저기 가서 피빕 좀 뜰까?]
“아, 왜요!”
“왜 쩔미들한테만 그러는데!”
“어쭈? 그래서 안 하겠다고?”
“…킬레견 형이 해주면 생각 좀 해볼지도….”
“얼씨구? 쩔미들 이제 형들이 닭발로 보이나 본데.”
“해.”
들은 체도 안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하진은 심드렁하긴 해도 절미들의 말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 속까지야 모르지만, 억지로 끌려 나온 것치고 꽤 너그러운 태도였다.
“무르기 없기? 2:1로요?”
“개같이 발라달라는 말을 좆같이도 지껄이네.”
“콜로세움 고고.”
전투적이기는 베르르와 순한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다 아주 의욕 넘치는 게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말리기도 뭐해서, 서련은 한 발 빠져 지켜보는 걸로 상황을 관망해야 했다.
뭐, 일단 안 되면 옆에서 도와줄 심산이긴 했다. 일단 절미들 편에서.
[길드/호백조: 길마형님ㅋㅋ 저희 콜로세움 가시죠? 절미들이랑 킬레견 샛끼 피빕 뜬다는데요]
[길마/건블리아: 실화냐?ㅋㅋㅋㅋㅋㅋ]
[길드/휴리사: 절미들 뜨고 나면 나랑도 떠주라 킬레얔ㅋㅋㅋㅋㅋ]
[길드/야생닭: 형은...저기 구경만 할게]
[길드/휴리사: 일단 가자 가ㅋㅋㅋㅋㅋ]
휴리사의 밝은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서련도 본능적으로 움직여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북적이는 콜로세움에는 이미 와 있는 절미들이 손을 풀겠다고 여기저기를 폴짝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하진은 콜로세움 한쪽 벽에 캐릭을 앉힌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선을 옮겨 옆을 보자 이를 갈고 있는 하진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콧등까지 찡그린 채였다.
“…하진아, 애들이잖아. 좀 봐줘.”
“어.”
시선도 안 마주치고 대답하는 모습이 봐줄 마음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 결국 서련은 조용히 킬리를 소환했다.
PVP는 모든 길드원들이 도착했을 때에야 개시되었다.
[길드/건블리아: 먼저 덤비지 마라. 땅, 하면 시작하는 거다?]
[길드/베르르: 옙옙]
[길드/순한양: 우리 아재형 걱정도 팔자셔옄ㅋㅋㅋ]
[길드/건블리아: 시끄럽고 준비해라]
준비라는 말에 그제야 하진이 콜로세움 안으로 캐릭을 이끌었다. 붉은 코트를 휘날리는 킬레아 앞에는 베르르와 순한양이 무기를 든 채 서 있었다. 모두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고 건블리아의 말을 기다렸다.
개시는 예고도 없이 울렸다.
[길드/건블리아: 땅!]
건블리아의 말이 올라오기 무섭게 하진이 도핑을 하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긴 장총이 킬레아의 손에서 빠른 회전을 하고 어깨에 안착했다. 총부리가 향한 곳은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순한양이었다.
그러나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모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바로, 베르르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