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5/28)

3장.

분명 잠자리에 들 땐 혼자였는데, 갑갑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등 뒤로 익숙한 온기가 느껴졌다. 시선을 힐끗 내리자, 아니나 다를까 제 허리를 끌어안은 큰 손이 보였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손이었다.

그새 또 들어왔네.

고른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고개를 슬쩍 돌리자, 희미한 술 냄새가 났다. 술은 또 언제 마셨는지, 서련 몰래 뭐 하는 데에는 아주 도가 텄다. 술을 먹으면 제 방인 줄 알고 들어오는 하진의 버릇 때문에 서련은 잘 때도 항상 긴 옷과 긴 바지를 챙겨 입고 자야 했다.

주의는 물론 설득도 해봤지만, 단 한 번도 통한 적이 없었다. 문을 잠그고 잔적도 있었지만, 하진이 문 앞에 기대앉아 자고 있는 걸 목격한 뒤로는 다시 방문을 열어두었다. 뭐랄까….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는 너 좋을 대로 해라, 하는 심정으로 놔두는 중이었다.

‘갑갑해.’

허리를 슬쩍 비틀자, 어깨 뒤로 얕은 잠꼬대가 들려왔다. 그마저도 익히 들어온 잠꼬대였다.

“…서련아….”

하진이 술을 마실 땐, 둘 중 하나였다.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거나. 오늘은 아마 좋지 않은 날인 듯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 배경은 서련이 가장 크게 차지했을 테니까.

‘내가 그놈들 걱정돼서 그러는 줄 알아?’

집에 오자마자 하진이 한 말이었다. 하진은 그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명확한 말은 아니었지만, 서련은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게 이렇게나 하진을 마음 쓰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다.

서련의 손이 제 허리를 꽉 안은 하진의 손 위로 옮겨졌다. 어떻게든 풀려고 해봤지만, 깍지를 끼고 있어서인지 잘 풀리지 않았다. 아니, 애초 자는데도 무슨 힘을 이렇게 주고 자는지, 실은 깨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무슨 힘이 이렇게 쎄….”

결국 서련은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돌렸다. 갑갑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은 했다.

마주 본 자세로 자리를 잡자, 등 뒤로 꽉 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지금 보니 하진의 미간이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곧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고른 숨소리가 이어졌다. 너른 품에 머리를 기대자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하진아.”

뭐가 이렇게 불안해서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하진과 처음으로 함께 어울렸던 날이라 그런지 뒤숭숭한 마음과 이유 모를 벅찬 마음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나른한 눈을 깜빡이며 서련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속삭였다.

“내 걱정 안 해도 돼….”

가만히 눈을 감자, 잠은 금세 쏟아졌다. 곧 두 사람의 고요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서련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짧고 긴 밤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다. 따갑게 눈가를 찌르는 햇볕에 서련은 이불을 뒤집어쓰다 말고 옆자리를 더듬거렸다. 역시나, 여느 때처럼 옆자리는 감쪽같이 비어있었다. 뭘 그리 소리 없이 나갔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잠귀가 제법 밝다고 생각했는데, 하진이 하는 행동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또 뭘 하고 놀아주려고….”

그래 봤자, 피시방이려나. 어제 같은 상황이면 귀찮은데.

서련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처음 하진이 끌어안고 잤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양반이었다. 그땐 어찌나 꽉 죄고 자는지, 숨도 못 쉴 만큼 갑갑해서 잠도 못 잤었다.

생각하니 또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방을 나서자, 어제와 같은 전개가 펼쳐진 게 보였다. 어제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웃통을 다 까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뒷모습이랄까. 아, 그리고 밥으로 바뀐 아침 겸 점심 메뉴까지.

젖은 머리에서 떨어진 물기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하진은 열심히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머리부터 제대로 좀 말려, 하진아.”

“너부터 먹여 살리고.”

“형이라고 부르랬지.”

“어, 형.”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폼이 아예 말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덕분에 수건을 찾아다니는 건 서련의 몫이 되었다. 새 수건을 찾아 하진에게 다가가자, 마침 계란 프라이를 다 만든 하진이 그것을 그릇에 담고 있는 게 보였다. 서련은 급한 대로 그의 상체에 떨어진 물기를 닦고, 그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내가 해.”

그러나 냉큼 수건을 빼앗겼다. 부엌에서 나와 머리를 탈탈 털어 물기를 뺀 하진은 목에 수건을 대충 걸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왔다.

옷도 좀 입고 오면 좀 좋아. 사계절 내내 웃통을 벗고 다니는 저 버릇 좀 어떻게 고쳐주고 싶은데, 백날 말해도 들려오는 소리라곤 ‘까먹어서’라는 대답뿐이었다.

“성하진, 너 웃통 안 입지.”

“이것만 하고.”

“…알겠어. 그럼 나도 벗고.”

그 말에 밥을 푸던 하진의 고개가 서련 쪽으로 홱 돌아갔다. 오만상을 찌푸리던 하진은 뭐라 말하려다 단념하고 재빨리 제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성큼성큼 향하는 뒷모습을 쫓던 서련은 하진의 자리를 대신 채웠다.

하진이 옷을 입고 나왔을 땐, 식탁에 이미 밥이 다 차려진 후였다.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드는지 하진의 표정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착실히 제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오늘도 피시방 가?”

“싫으면 다른 데 가고.”

가는 건 좋았지만, 또 달랑 남겨지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이 치솟았다. 그런 서련의 생각을 읽은 건지, 하진이 픽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오늘은 자리 안 비워.”

그 말이 사실이면 좋겠지만. 서련은 불신을 숨기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아침 겸 점심 식사는 대화 없이 끝이 났다. 사실 할 말이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했다.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관계. 그게 지금의 서련과 하진의 관계였다.

이 관계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의 만남이 지속되면서였다. 그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건 다름 아닌 이로운이었다.

“어, 서련 형! 어떻게 여기서 다 뵙네요.”

“계절 학기 듣는다는 새끼가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씨발. 안가?”

“하하, 이 개새끼는 오늘도 지랄발광이네. 어디서 씨발 개가 짖고 있지?”

“서련형, 바나나 우유 좋아하신다면서요. 푸딩도 그래서 좋아하시는 거구나. 제가 어제 사 드렸어야 했는데, 미처 몰랐어요. 이거 드시고 필요하면 더 말씀하세요. 저 똘끼 새끼들은 무시하시고요.”

서련의 얼굴에 피곤함이 떠올랐다. 눈앞에는 서로 이를 드러내고 있는 짐승 둘이 있었다. 하진과 로운이었다. 그 옆에는 그보다는 좀 더 나은 부류에 속한 원호가 서련에게 바나나 우유를 내밀며 웃고 있었다.

어수선함에 주변 시선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서련은 순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냥 다 버리고 나가버려? 그러나 자리까지 선별해 앉히는 하진의 태도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 앉아야 했다.

추진력도 좋지, 서련이 앉은 자리는 벽을 둔 맨 끝의 가장자리였다. 그 옆으로는 하진 순으로 로운과 원호가 나란히 앉았다. 물론 불만이 폭주했지만, 성하진이 누구인가. 싹 무시하고 제 뜻대로 밀고 나가는 데에는 도가 트다 못해 최고 경지에 도달한 이다.

결국 로운과 원호가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로운은 이곳 피시방 사장님과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지, 사장이 직접 찾아와 인사까지 할 정도였다.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까도 까도 알 수가 없고, 파도 파도 그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로운이 왔냐? 어째 오늘은 셋 다 모였네.”

“어,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가게에 나와 계셨네요?”

“말도 마라. 이번에 구한 알바생 있지? 아주 밥 먹듯이 잠수를 타는데, 내가 스트레스로 탈모까지 왔다니까. 그냥 됐다 그러고 내가 나오려고. 그게 편하지, 어휴.”

“잘됐네요. 저 이제 여기서 살 건데.”

“그래, 많이들 와라. 영상 찍고 싶음 얘기하고. 허, 근데 저 끝에 있는 반반한….”

“네, 네! 하하! 서련 형이라고, 하진이 친한 형이에요.”

“그래? 이야, 형이 아주 예….”

“사장님, 사장님!! 저기 손님이 부르신다! 어서 가보셔야겠는데요?!”

갑자기 난리부르스를 떠는 로운과 원호의 태도에 사장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그러나 이내 저를 노려보고 있는 하진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보고는 하하 웃으며 자리를 비웠다. 사장이 사라지자 원호와 로운은 크게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옆에서 굉장한 기세로 일어서는 하진을 보고는 다시 아연해졌다.

“야, 야! 어디가! 그러지 말고 좀 참아봐라.”

“야, 성하진! 서련 형이 본다, 본다고!”

하진의 팔을 잡고 늘어지는 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해 보였다. 하진은 그 손길을 뿌리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안 놔? 새끼들이 징그럽게 팔을 잡고 지랄이야.”

“어디 가는지부터 말해. 아니, 왜 가는데!”

“아, 씨발 음료수 사러 간다고!”

그 말에 서련의 시선이 곧장 하진의 자리로 옮겨졌다. 원호가 미리부터 와서 사다 놓은 탄산음료가 정 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서련 역시 원호가 준 우유를 손에 쥐고 있고.

“하진아, 여기 음료수 있는데.”

“어제 모자라서 내 거 마셨잖아. 탄산 마시지 말고 남기더라도 우유 마셔.”

한마디로 말해, 서련 걸 사러 간다는 말이었다. 내가 어제 그렇게 많이 마셨나…. 한 모금 마시고 도로 하진의 자리에 갖다놨는데, 어떻게 또 그걸 귀신같이 알아냈는지 보면 볼수록 참 대단했다.

“…알겠어. 빨리 와.”

이쯤 되자 서련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거 마시지 말라는데, 뭐.

하진이 음료를 사 올 동안, 서련은 먼저 에르덴에 접속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어제 로그아웃 했던 ‘천칭의 계곡’이라는 네임드 출현 장소 필드가 떠 있었다. 드넓은 계곡의 중앙에 있는 건 폭포수를 맞으며 천칭을 들고 있는 거대한 동상 하나였다.

탁-

눈으로 그 장면을 훑고 있던 그때, 눈앞에 원호가 준 것과 동일한 우유가 놓였다. 이것 먼저 마시라는 듯 빨대까지 꽂혀 있었다. 서련은 그걸 한 모금 마시고 마우스 근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길드창에 인사의 글을 올렸다.

[길드/키키아: 안녕하세요]

[길드/베르르: 형이다! 형 하이욬ㅋㅋ]

[길드/순한양: 캬ㅋㅋㅋㅋㅋ 역시 키키형 출근도장이란ㅋㅋㅋㅋㅋㅋ]

평일 낮이라 그런지 길마인 건블리아와 부길마인 휴리사, 그리고 야생닭은 들어와 있지 않았다. 길드 목록창을 켜자 접속 인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현재 접속 길드원은 베르르와 순한양, 그리고 며칠 전 불미스럽게 부딪쳤던 개솔과 종마, 짖지마라였다.

그러고 보면 개솔과 종마, 짖지마라는 밤낮 할 것 없이 늘 들어와 있었다. 베르르와 순한양은 최근 방학을 해서 그렇다 쳐도, 저 삼인방은 20대 후반이라는 것만 빼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물론 딱히 알고 싶진 않았지만.

[길드/개솔: 키키 또 자게 등판했더라?ㅎ]

[길드/종마: 형들하고도 좀 놀아주지 그러냐]

[길드/베르르: 님들 같음 놀아주고 싶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짖지마라: 넌 좀 낄데 빠질데 구분 좀 하지? 이러니 ㅅㅂ 급식충 소리나 듣지ㅉㅉ]

[길드/순한양: 나이를 어디로 먹은 누구보다야ㅋㅋㅋㅋㅋ 왜 또 풀ㅂㄱ 하셔야지?]

[길드/개솔: 아 꺼지라고 ㅅㅂ넘들아]

[길드/키키아: 죄송해요. 제가 잘 말할게요. 근데 제가 바빠서 같이 놀아주는 건 좀 힘들 듯한데요]

[길드/종마: 왜? 보니까 발컨들하고는 잘들 놀아주더만?ㅋㅋㅋㅋ]

서련의 손끝이 움찔 굳어졌다. 저 말은 즉, 길드에 있는 모두를 싸잡아 발컨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길드/베르르: 지금 뭐라고 씨부렁거리거임?ㅡㅡ]

[길드/순한양: 와나 개빡치넼ㅋㅋㅋㅋㅋㅋ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들을 줄 아나]

[길드/짖지마라: 풀**는 여기서 하시네ㅎ]

확실히 열받는 말이었다. 서련에게 이 길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이 있는 길드였다. 그만큼 이곳을 잘 꾸려준 건블리아나, 휴리사, 야생닭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건블리아에게.

[길드/키키아: 베르랑 양이는 잠깐 조용히 있어]

지금 여기서 저 말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서련은 이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길드/키키아: 저희 길드 순위가 좀 낮은 건 맞아요. 음 맞는데]

[길드/키키아: 이런 순위 낮은 발컨 길드에 가장 큰 공 세우신 그쪽들은 뭐 다를 줄 아나봐요. 다른 길드로 옮기시든가]

[길드/짖지마라: 와ㅋㅋㅋㅋㅋ 키키 무섭네?ㅋㅋㅋㅋㅋ]

[길드/개솔: 겜좀 한다고 나대냐 키키야?ㅋㅋㅋㅋㅋㅋ 너 같은 놈 여기저기 졷발나게 널린건 아는가 몰라?ㅋㅋㅋㅋㅋㅋ]

[길드/종마: 지가 아주 대단한줄 아는가벼?ㅋㅋㅋㅋㅋㅋ 발컨집단이 거기서 거기지ㅅㅂ]

[길드/키키아: 저 잘한다고 한 적 없는데 아예 고맙네요]

[길드/종마: ㅅㅂ 성격 나오시넼ㅋㅋㅋㅋㅋ 네네 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드뎌 나오셔?ㅋㅋㅋㅋㅋ]

[길드/키키아: 알면 됐으니까 갈길 가시면 될 것 같은데]

[길드/키키아: 아 그리고 잊은 것 같은데 저 초기 멤버라 강퇴 권한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말씀만 하세요]

서련의 말에 길드창이 순간 조용해졌다. 심지어 그렇게 말 안 듣던 베르르와 순한양도 지금만큼은 조용했다. 그러나 곧 온갖 잡욕이 올라오며 차례로 탈퇴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길드/개솔: ㅅㅂ 졷뺑이들 후1장이나 빠는 새1끼가 겁도없이 나대고 ㅈㄹ이네]

[길드/짖지마라: 너 지금 실수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라. ***가 어디 형들한테 이따구야]

[길드/종마: ㅈㄴ 개ㅈ같은 길드라 개ㅈ같은 샛끼들 뿐이네. **색갸 너 잘될 꼴 절대 없으니까 나대지 말고 살아라. 알겠냐? ㅅㅂ 기껏 있어줬더니 뭐?ㅋㅋㅋㅋㅋㅋ 개얼척ㅋㅋㅋㅋㅋ]

[길드/종마: 앞으로 우리 눈에 띄지 마라ㅅㅂ 그리고 키키얔ㅋㅋㅋㅋ 길드 좀 어떻게 해봨ㅋㅋㅋㅋ 죄다 발컨트롤집단이라 우리가 ㅈ빠지게 업적을 올려도 순위가 안 올라가잖아]

[길드/짖지마라: 순위 딸리고 나중에 와서 질질짜며 다시 와달라고 하지 말고 샛꺄 *이나 빨든가ㅅㅂ]

-‘개솔’님이 길드를 탈퇴하였습니다.

-‘짖지마라’님이 길드를 탈퇴하였습니다.

-‘종마’님이 길드를 탈퇴하였습니다.

[길드/베르르: 캡쳐 다 했음. 걱정마요형. 내가 조져줄 테니까]

[길드/순한양: ㅅㅂㅋㅋㅋㅋㅋㅋㅋ 와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저런 ***들이 다 있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련의 시선이 아주 잠시 내려앉았다. 길마 형한테 혼나겠지. 손끝을 한 번 오므렸다 편 서련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막둥이들을 말렸다.

[길드/키키아: 괜찮아. 그거 올리지 마, 베르야. 건블형이랑 리사 누나한테는 형이 잘 말할 테니까]

[길드/키키아: 그리고 분란 일으켜서 미안해]

“저걸 가만 둔다고요, 지금?”

“형이 왜 미안해요? 미친 새끼들이 처돌아서 뺑이친 건데. 아, 씹… 죽고 싶나. 어디서 좆드립을 치고 지랄이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서련의 어깨가 움칫 굳어졌다. 원호와 로운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려는데, 도중 뻗어 나온 손길이 서련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당겼다.

“읏….”

무방비한 상태로 끌려가다 보니, 하진의 가슴팍에 어깨가 탁 닿았다. 서련은 시선만 슬쩍 끌어올려 하진을 올려다보았다. 단단히 다물린 턱. 그리고 침이 꼴깍 넘어갈 만큼 살기등등한 시선이 서련의 모니터 화면에 닿아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보자 세상 모든 걱정이 몰려들었다.

“잘됐네. 우리도 딱 세 명인데.”

뭘 말하기도 전에 빠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진이 입을 열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니 뒤에 서 있는 원호와 로운이 말을 보탰다.

“아, 그러네.”

“난 캐릭 두 갠데 그것까지 콜? 서련 형, 괜찮죠?”

씩 웃는 모습이 보지 않아도 전해졌다. 서련은 잠시 뜸을 들이다 뺨을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온갖 눈치 없는 척을 다 하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초대해.”

“…하진아. 내가 권한은 있는데 이런 건 이찬이 형한테 허락받아야 돼. 그러니까 이것 좀 놔 봐, 아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련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탁 풀렸다. 그 김에 서련은 하진을 밀어내고 몸을 바로 세웠다. 게임 화면 안에는 뿔이 난 두 망아지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게 분노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과정이야 어쨌든 세 명이나 빠져나갔으니, 길드 공적도도 많이 줄 테고 업적 달성도 어려워져 지금보다 순위가 더 내려가게 될 것이다. 다들 순위에 그렇게 연연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목표의식쯤은 그래도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퀘스트를 하며 공적을 얻으러 다니는 것도 다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말은 해볼게.”

“언제.”

“…이찬이 형 들어오면.”

“그럼 뭐, 그때까지 기다리죠. 저희 시간 많아요, 형.”

“에이, 설마 우리 삼대 에이스를 내치려고. 우리가 다 해줄 테니까 딱 받아만 주시면 됩니다요.”

…더 안 받아줄 거 같은데. 서련은 속말을 애써 삼키며 우유를 마셨다. 옆에서 자꾸 살벌한 시선이 느껴지는 게, 절로 목이 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갈증은 길드창에 올라오는 글을 본 후 더 심해졌다.

[길드/베르르: 형 따라다니는 묵요랑 킬레아 샛끼들 우리 길드로 데려오는 건 어때요 형]

[길드/순한양: 아오 내가 그 샛끼들 조질 수 있으면 그 둘은 절하면서 받아준다!]

[길드/키키아: 일단 베르랑 양이는 놀고 있을래. 길마형 들어오면 형이 잘 말해볼 테니까]

[길드/베르르: 형 괜찮죠? 형 집 어디에요? 저희가 갈까요?ㅠㅠ]

[길드/순한양: 저희 당장 갈 수 있음요! 해줄건 없지만 위로 정도면 뭐... 뭐 술도 좀...]

“이 새끼들 당장 탈퇴시켜.”

가만히 보고 있던 하진의 입에서 난데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서련은 그 말을 깨끗이 무시했다. 서련 대신 하진을 말린 건 원호와 로운이었다.

“이 새끼님아, 치매 오셨어요? 넌 우리랑 할 거 있잖아.”

“야, 야! 또 똘끼 도지냐? 이 새끼는 왜 철이 안 들어. 됐으니까 멀리 가기 전에 잡자.”

“내가 니들 같은 줄 아나 본데.”

하진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제 모니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에 따라 서련은 물론 원호와 로운의 시선도 그쪽으로 옮겨졌다. 그의 게임 속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 캐릭터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곱게 서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원호와 로운은 아주 질색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신마족이던 캐릭이 지금은 신성족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캐릭이 아닌 계정을 바꿔야 하는 일이라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인데,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바로 옆에 있던 서련 조차도.

“…내가 봤을 때, 이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니라 최소 복수의 화신이야.”

“아니…. 대체 언제 접속한 거냐고….”

그즈음 되자 서련은 그냥 하진을 모른척했다. 신성족 계정으로 접속한 속내야 뻔했다. 방금 탈퇴한 서련의 길드원들을 잡아 족치려는 속셈일 게 분명했다.

질색하며 바라보던 원호와 로운은 하진이 그 세 놈을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에야 자리로 돌아가 다른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부계정이 있는 이유는 한 서버 내에 한 종족밖에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유저들은 보통 계정을 두 개씩은 가지고 있었다.

‘얘들은 대체 게임을 얼마나 열심히 한 거야….’

서버마다 캐릭과 직업은 물론 양쪽 종족까지 다 가지고 있단다. 그것도 셋 다. 제법 열심히 키웠다고 생각한 서련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다.

어쨌든 복수전에 혈안이 된 세 사람 덕분에 서련은 오늘도 외따로 놀 수밖에 없었다.

[길드/키키아: 베르랑 양이 하고 싶은 거 있어?]

[길드/베르르: 왜욬ㅋㅋㅋㅋ 놀아주시려궁?ㅋ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에이 우리가 놀아줘야져ㅎㅎ]

[길드/키키아: 음 그렇네]

[길드/베르르: 형! 형 우리 그럼 3인 던전가요!]

[길드/순한양: 캬ㅋㅋㅋ 간만에 영상 좀 찍곸ㅋㅋㅋㅋㅋㅋ 찍어도 돼요? ㅇㅇ?]

[길드/키키아: 그래]

[길드/베르르: 콜ㅋㅋㅋㅋㅋ 헤비온던전ㄱㄱ]

[길드/순한양: 왘ㅋㅋㅋ ㅅㅂ 거기 개빡신곳이잖엌ㅋㅋㅋㅋㅋ 도르신?ㅋㅋㅋ]

[길드/베르르: 키키형만 있음 뭔들ㅋㅋㅋㅋㅋㅋ 킬리가 죄다 서겅할겈ㅋㅋㅋㅋㅋ]

내 킬리가 세긴 하지. 서련은 든든한 킬리를 생각하다 이동하자는 말에 ‘헤비온비쉬 3인 던전’이 있는 곳으로 포탈을 타고 움직였다. 에르덴에는 1인 던전부터 총 6인 던전까지 인원수에 맞게 놀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언제나 넘쳐났다.

물론 유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서련이 늘 하고 있는 ‘쟁’이었지만. 그 말은 뭐냐 하면, 어느 필드를 가도 쟁이 넘쳐나고, 상대종족의 뒤치기가 만연하다는 뜻이었다.

[길드/베르르: 어어 주변에 닭 있네;;]

[길드/순한양: 아놔 언제 포탈 또 생겼대]

그 말을 보자마자 서련은 재빨리 킬리를 소환했다. 나풀거리는 화염 목도리를 휘날리며 나타난 거대한 용은 서련의 얼굴에 머리를 한 번 비비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련의 옆에 대기했다.

[길드/키키아: 일단 돌파하는 걸로 하자]

[길드/베르르: 나 휴지템이니까 어글 니가 드셈]

[길드/순한양: 짜져서 와랔ㅋㅋㅋㅋㅋ 키키형 그럼 제가 달리기 시작 할게여]

[길드/키키아: 아니야. 킬리 보내면 돼. 킬리 어글 먹고 달리면 바로 따라와]

킬리의 싸움패턴을 방어형으로 돌린 서련은 방어상승 버프를 걸어주고 몹들이 우글우글한 서식지로 킬리를 보냈다. 몹들의 머리 위로 대량의 느낌표가 생성됨과 동시에 모든 어글이 곧장 킬리에게 쏠렸다.

그 틈을 타 서련은 냉큼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그 뒤로 베르르와 순한양이 쪼르르 따라붙었다. 그렇게 몇 번 정도 지속하자, 그들은 헤비온비쉬 3인 던전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상태창 위로 솟구치듯 올라오고 있는 붉은 글씨의 향연이랄까.

[길드/베르르: 워워... 대체 몇 마리가 와 있는겨;;;]

베르르의 말대로 당최 몇 명이 와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글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게다가 상태창에 떠오르는 말은 신마족이 죄다 발리고 있다는 소식뿐이었다.

[길드/키키아: 살금살금 가보자]

다른 때 같으면 당당하게 튀어나가 보이는 족족 발라버렸을 텐데, 옆에 두 어린 양이 붙어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발리게 될 베르르를 생각해서라도 피하는 게 더 나았다.

그러나 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 서련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뻗어있는 무리를 보고는 더 그랬다. 베르르와 순한양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길드/키키아: 얘들아. 그냥 가도 돼]

[길드/순한양: 읭?]

[길드/베르르: 엥?]

[길드/키키아: 일단 먼저 들어갈래?]

베르르와 순한양은 의문을 표했지만, 어쨌든 서련의 말대로 착하게 던전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발려 죽은 인원이 족히 열은 넘는데도 서련이 공격당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 서련 형 여기 왔어요?”

“형, 저희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걱정마세요. 근데 이 새끼들이 이젠 일어나질 않네?”

“왜 하필 와도 저딴 새끼들이랑 던전을 와. 당장 탈퇴시켜.”

어디 숨어 있던 건지, 근처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온 세 명의 신성족 유저가 서련의 주위를 둥글게 에워쌌다. 그러고는 점프를 하며 키득거리는데, 주변에 죽어 있는 유저들이 ‘ㅡㅡ’드립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중에는 방금 전 서련의 길드를 탈퇴했던 짖지마라와 개솔, 종마도 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를 이렇게 신마족들을 쓸고 있는 놈들이 바로 서련의 옆에 계신 님들이라 할 수 있겠다.

[개솔: 키키야 도랐냐?ㅋㅋㅋㅋㅋ 지금 우리 조져달라고 니가 사주한거냐?]

[짖지마라: ㅅㅂㅋㅋㅋㅋ 우리만 ㅈㄴ조지길래 뭔가 했더니ㅋㅋㅋㅋㅋ 와나 뭐 이딴 **짓거리를 하고 ㅈㄹ인지]

[종마: 내참 더러워서 ㅅㅂ 상종하기가 싫네?ㅋㅋㅋ 개 쓰렉짓이나 하고 매장되고 싶어서 이ㅈㄹ 나대는 것도 아니곸ㅋㅋㅋㅋ 키키야 ㅈㄴ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진짜 매장되고 싶냐?]

원인은 저한테 있었지만, 서련은 일단 모른 척을 했다. 어쨌든 제가 사주한 건 아니니까.

[키키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키키아: 음]

[키키아: 평소 피해의식이 좀 있으시죠?]

[개솔: 피해의식?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미치겠넼ㅋㅋㅋㅋㅋㅋㅋ]

[종마: 그럼 지금 이건 뭔 상황인데 ***야. ㅅㅂ 지금 너만 살아있잖아 이 븅신샛끼야. 저게 진짜 처돌았나]

[키키아: 아예]

키키아의 전매특허라 불리는 대답과 함께 서련은 그대로 던전의 입구로 달려갔다. 서련이 빠지자 뒤쪽에서 팔짱 낀 채 대기타고 있던 세 명의 신성족은 기다린 양, 낄낄거리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신성제국/흑야: 졷뱅이들 어디?ㅋㅋㅋㅋㅋㅋ]

[신성제국/호백: 이야 뒤통수로 게임을 하시나? 딜이 오른쪽에서 오는데 왜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시지?ㅋ 장비는 또 졷나 후달려서 뎀지가 안 들어오던데ㅋㅋㅋㅋ 아나 들고 다니기 쪽팔리지도 않나. 아 그것도 몰라?]

[신성제국/설눈: ㅈ같은 삼트롤 ㅈ뱅 샛끼들아 ㅈ드립만 쳐대니 컨도 ㅈ같은거 아냐. ㅈ만한 것들이 ㅈ같이 나대고 있어ㅅㅂ ㅈ같게시리]

[종마: ㅅㅂ 말끝마다 ㅈ드립을 치고 ㅈㄹ이야]

[신성제국/설눈: ㅈ까 시벌]

이쯤 되자 서련은 손으로 얼굴을 덮어가려야 했다. 성하진 쟤 진짜 누가 어떻게 안 하나…. 왠지 모를 창피함에 재빨리 던전 문을 클릭하고 들어갔지만, 웬걸 있어야 될 두 어린 양들이 어째 보이지가 않았다. 먼저 시작했나 하는 의문에 채팅을 치려는데, 저쪽에서 먼저 채팅이 올라왔다.

[길드/베르르: ㅋㅋㅋㅋㅋㅋ 이얔ㅋㅋㅋㅋㅋ 진정한 강자가 나타나셨고만ㅋㅋㅋㅋㅋㅋㅋ]

[길드/순항양: ㅋㅋㅋㅋㅋ 저런 님들이 우리 길드를 와야 되는뎈ㅋㅋㅋㅋ]

[길드/베르르: ㅇㅈ 다들 착해빠져가지고 어휴... 그쳐 키키형]

[길드/순한양: 길마형도 착해. 생닭형도 착해. 리사누나도 착해. 키키형은 게다가 호구고]

어디 갔나 했더니, 그새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심지어는 그 광경을 구경까지 하고 있었다.

“하아….”

“왜 한숨이야.”

“…그냥, 추워서.”

정확히는 소름이 돋는 거였지만, 서련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물어보는 하진에게 에둘러 대답했다. 하진은 그 말에 제 외투를 벗어 서련의 다리 위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흘러내지 않도록 팔소매를 엮어 허리에 단단히 매주었다.

“더 추우면 얘기해. 온도 올려달라고 할 테니까.”

이제 와 안 춥다고 할 수도 없어서, 서련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옆에 있는 녀석들은 종마 패거리들에게 일어나라며 온갖 발컨 드립을 쳐대고 있었다. 거의 구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그만하겠지, 하는 생각에 서련은 말리지 않고 베르르와 순한양만 따로 불렀다. 사실 말리는 것도 피곤했다. 성하진이 말을 들을 지도 의문이고.

[길드/키키아: 둘다 그만 들어와. 던전 후딱 돌고 가자]

[길드/베르르: 옙]

[길드/순한양: 아 이거 이따 형들한테 말해줘야짘ㅋㅋㅋㅋㅋㅋ]

신이 나서 들어오는 베르르와 순한양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제가 그동안 그렇게 답답하게 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착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마저도 애들 눈에도 호구처럼 보였나 보다.

[길드/키키아: 준비 됐지? 갈게]

그렇게 3인 던전의 공략이 시작되었다. 공략이라고 해봤자, 모두는 이미 몇 번이나 이곳을 왔던 경험이 있었다. 최단시간으로 돌파한 적도 있었고, 이 던전에서만 나오는 희귀 아이템을 얻은 적도 있었다.

물론 오늘은 그런 이유보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사람들이 이 헤비온비쉬 3인 던전을 많이 찾는 이유는 무기를 합성할 수 있는 합성제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한 번 돌 때 많으면 5개까지 나왔고, 운이 나쁘면 1개도 못 얻어 갈 때도 있었다. 합성제 1개의 값이 40만 골드라는 걸 감안하면 1개만 나와도 본전을 뽑고 간다고 할 수 있었다.

하루 기준 3번밖에 돌지 못했지만, 어쨌든 돈 벌기엔 아주 제격인 장소였다.

옆에서 뭘 하든 말든, 서련은 오로지 던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2판을 돌고 마지막 3판 째 막보를 앞뒀을 때였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길드창 위로 나머지 길드원들의 로그인 소식이 올라왔다.

-‘건블리아’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휴리사’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야생닭’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한꺼번에 갑자기 접속하는 게 뭔가 걸렸지만, 서련은 애써 불안감을 지워 없애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길드/키키아: 오셨어요]

[길드/건블리아: 그래 키키야]

[길드/야생닭: 잘들 놀고 있었냐ㅎ]

[길드/휴리사: 하이하이 우리 남둥이들]

[길드/베르르: 일찍도 들어오셔욬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보고 싶엇슴돠]

[길드/키키아: 건블형 잠깐 따로 얘기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길드/건블리아: 키키 말하기 전에 카톡상황 설명부터 가자. 베르랑 양이 제대로 다시 말해봐]

[길드/베르르: 아놬ㅋㅋㅋ 내가 진짜 입이 근질거려서맄ㅋㅋㅋㅋㅋ 아니 그 생키들이 형들하고 누나까지 싸잡아서 발컨이라고 했다니까여!]

[길드/순한양: 온갖 꼰대질에 비아냥질에 발컨집단이 어쩌고 저쩌고. 아! 그것 때문에 키키형 울었어요. 저희한테 위로해달라고 울고불고... 키키형 그래서 집이 어디라고요?]

[길드/키키아: 아니 저기 얘들아]

[길드/베르르: 지들 공적으로 우리가 살아왔다는 둥 지들 나가면 우리 폭망한다는 둥 아주 키키형 구박 오지게 하고 갔다니까여ㅡㅡ]

[길드/순한양: ㅈ드립은 ㅅㅂ 또 어찌나 하던짛ㅎㅎㅎㅎㅎ 눈에 띄면 주긴다고?ㅎㅎㅎㅎㅎㅎ 얼척도 이런 얼척이 없으셩?ㅎㅎㅎㅎㅎㅎ]

[길드/키키아: 건블형 그런거 아니에요]

[길드/휴리사: 키키야 넌 잠시 옆으로 짜져있자?^^]

[길드/순한양: 크으 우리 리사누님 걸크보소]

[길드/베르르: 크으]

[길드/건블리아: 던전은 또 뭔데]

[길드/베르르: 아 그거 기분 전환하러 3인 던전 갔더니 저희 뒤따라와서 또 오만 시비질에 지들이 닭한테 털려놓고 형탓만 오지게 하고 아주 지들끼리 난리났음요]

[길드/순한양: 제가 캡쳐 다 찍어늠 ㅇㅇ]

[길드/베르르: 카톡 보낸 그상황 그대로 ㅇㅇ]

[길드/순한양: 우린 여기까지]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그 이후 길드에는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다들 말은 안 해도 사람이 3명이나 빠져나갔으니 뒤숭숭한 마음이 없진 않을 것이다.

[길드/키키아: 죄송해요. 일단 제가 원인인 것 같은데 이유야 어쨌든 폐를 끼친 점에 대해선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길드/키키아: 건블형 잠깐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길드/건블리아: 키키야 형 잠깐 뭐 좀 하고. 미안]

건블리아는 그 말만 하고 그대로 잠수를 타 버렸다. 길마가 잠수를 타자 그제야 휴리사와 야생닭이 발언권을 얻은 양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길드/휴리사: 괜찮아. 키키야 네 잘못 아니야. 그런 개 쓰레기같은 *들은 나도 사절이거든?]

[길드/야생닭: 키키가 마음 고생이 심했네. 걱정하지 말고 있어. 건블형이 다 해결해 줄거야. 형 뒷수습은 신급이잖냐]

[길드/키키아: 고맙습니다. 그래도 죄송해요]

[길드/휴리사: 또또! 됐으니까 놀고 있어!]

[길드/베르르: 그래요ㅋㅋㅋㅋ 일단 키키형 저희는 던전 깨던거 마저 깨옄ㅋㅋㅋ]

[길드/순한양: 괜찮슴! 형잘못 1도 없음요]

쏟아지는 위로가 마음을 무겁게도, 가볍게도 했다. 역시나 다들 미안할 정도로 착한 사람들이었다.

[길드/베르르: ㄱㄱ!!]

서련은 일단 베르르의 말대로 던전부터 깨기로 했다. 막보를 두고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다. 덤벼드는 막내들을 따라 서련도 잠시 생각을 뒤로 미루고 킬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련은 하진에 대한 길드 가입 건에 대해서는 잠시 잊은 채였다. 그 일을 다시 상기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막보를 클리어하기 바로 직전 길드창에 떠오른 황당한 글 덕분이었다.

-‘묵요’님이 ‘건블’ 길드의 새로운 길드원이 되었습니다. 박수와 함께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눈설’님이 ‘건블’ 길드의 새로운 길드원이 되었습니다. 박수와 함께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호백조’님이 ‘건블’ 길드의 새로운 길드원이 되었습니다. 박수와 함께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옆을 홱 돌아보자 언제 다시 신마족 계정으로 로그인을 한 건지, 건블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힐러의 모습이 보였다. 기가 막힌 추진력에 질색하는 서련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 가입한 햇병아리들은 길드원들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넸다.

[길드/묵요: 하하 저희 초면 아닌 건 아시죠?ㅎ]

[길드/호백조: 감사합니다 길마님ㅋㅋㅋㅋ 영원히 따르겠습니닼ㅋㅋㅋㅋ 저희만 믿으십숔ㅋㅋㅋ]

[길드/눈설: ㅈㄹ]

성하진은 좀, 아니 많이 논외로 쳐야 될 것 같았지만.

다른 걸 다 떠나 무슨 수로 건블리아를 설득한 건지, 없는 박력마저 느껴졌다. 태평하게 앉아 게임하는 저 모습에서 왠지 모를 노련미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물며 더 어처구니없는 건, 길드원들이 이 사실에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길드/야생닭: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다들ㅎㅎ]

[길드/휴리사: 하이요 편하게 있읍시다 편하게ㅋㅋ 스틸하고 이러면 개쳐맞고요]

[길드/베르르: 누나 형들. 저 님들 21살 이라는데요]

[길드/순한양: 흠흠 들어온 김에 다들 길드소개에 나이랑 사는 곳 남겨주시죠!]

[길드/묵요: 아, 저희 다 21살 맞고 서울에 삽니다ㅎ 지금은 대학생이죠 뭐]

[길드/호백조: 셋다 동창이라 같은 고 나왔어요ㅋㅋ 대학교는... 같은 데 갔겠어요?ㅋㅋㅋㅋㅋ 3년 같이 지낸 것도 징그러운데ㅋㅋㅋ 아 키키형하고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알고 있었고요]

[길드/눈설: 그딴걸 왜 말해 ㅅㅂ]

[길드/베르르: 저랑 양이는 18살 인천패밀리 임다. 리사누난 저기 어디더라 세종? 거기사시고 생닭형은 광주 사심]

[길드/휴리사: 저는 29살이고 야생이는... 야생이가 나보다 한살이 어리던가]

[길드/야생닭: 넵 저 28살입니다]

[길드/건블리아: 왜 나는 말을 안해주냐. 이젠 막 사람 차별까지 하고... 서러워서 죽어야겠네]

[길드/순한양: 에바에밬ㅋㅋㅋㅋㅋㅋㅋ 길마형은 서울이져? 나이는 34살 아재님ㅋㅋㅋㅋㅋㅋㅋ]

[길드/건블리아: 그래 참 고맙다...]

평안하게 자기소개까지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게 지금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서련과 달리 일단 로운과 원호는 신이 난 상태였다. 마치 이날을 위해 이제껏 길드를 안 들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진아.”

“왜, 추워?”

서련은 냉큼 저를 돌아보는 하진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말해야 얘가 잘 털어놔 줄까.

“어떻게 가입했어?”

“이로운 새끼가 저 고딩들한테 귓때려서 캐릭 까발리고 쌰바쳤더니 나중에 귓 오던데?”

“이찬 형한테?”

“강이찬 새끼한테.”

“…알겠어.”

“안 추워?”

“어, 안 추워.”

하진과 이찬은 면식이 있던 사이였다. 물론 좋은 일이 아닌 나쁜 일로. 그래서인지, 하진은 이찬마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딱히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찬을 만나고 온다고 하는 날엔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할 정도로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물론 하진이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길드/묵요: 자 그럼 또 조지러 가볼까요ㅎ]

[길드/호백조: 대결권 없으신분?ㅋ 말씀만 하세요ㅋㅋㅋ 여기 건방진 눈설 샛끼가 줄겁니다ㅋㅋ]

[길드/야생닭: 저희 오기전에 실컷 발랐다고 하지 않으셨나;;]

[길드/묵요: 말 놓으셔도 돼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편하게ㅎ]

[길드/휴리사: 요즘 애들 무섭넼ㅋㅋㅋㅋ 또 가재ㅋㅋㅋㅋ]

[길드/호백조: 이 정도는 뭐ㅋㅋㅋㅋㅋㅋ 1차 신성족으로 발라놓고 2차로 대결권으로 밟아 놔얔ㅋㅋㅋㅋㅋ]

[길드/베르르: 3차는 길드전인갘ㅋ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뭐 얼마나 대단한 길드 가실라고 그러는지 두 눈 뜨고 보자고]

[길드/눈설: 대결권 준다고 할때 빨리 오지?]

하진의 말에 길드원들이 주뼛주뼛 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캐쉬를 질러댔으면 대결권을 준다는 소리가 나오는지, 이참에 확인이라도 해보자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였다.

무려 인벤토리 1줄이 죄다 대결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밑에 한줄은 또 죄다 거부권이었다. 한 칸당 999개까지 허용되니 실상 넘쳐난다는 말로도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길드/베르르: 100장?! 아니 잠깐 이거 100장에 5마넌 아니었음?;;; 님 도르신?]

[길드/순한양: 오늘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슴돠 형님]

[길드/야생닭: 저기 눈설아;; 이건 좀 많은데;;]

[길드/휴리사: 많다는 놈들 나한테 다 넘겨랔ㅋㅋㅋㅋㅋㅋ 이얔ㅋㅋㅋ 통 큰게 아주 될놈이얔ㅋㅋㅋㅋ]

[길드/건블리아: 이게 100장에 5마넌이라고? 이게?! 빨리 다 반납해! 빨리!]

[길드/묵요: 괜찮아요. 저 새끼 이거 븅신같이 많이 사놔서 어차피 다 써야 되요]

[길드/야생닭: 그... 얼마나 많이 사놨길래...?]

[길드/호백조: 잠깐만요]

[길드/호백조: 만장 넘는거 같은데요?]

[길드/베르르: 형님]

[길드/순한양: 형님]

[길드/베르르: 평생 모시겠습니다]

[길드/순한양: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길드/눈설: ㅈ이나 까지?]

[길드/묵요: 하하 이 새1끼가 이래보여도 심성도 ㅈ같으니까 조심하세요ㅎ]

[길드/휴리사: 얘네 뭐얔ㅋㅋㅋㅋㅋ]

[길드/호백조: 걍 적당히 무시하시면 돼요ㅎㅎㅎㅎ 아 원래 이런 개같이 미췬샛끼구나 하시면 또 괜찮습니다. 이 넘이 좀 똘끼가 충만한 넘이라서요ㅎㅎㅎㅎ]

[길드/야생닭: 난 새가슴이라... 조금 부드럽게 부탁한다ㅠㅠ]

[길드/베르르: 에이 생닭형ㅋㅋㅋㅋ 저희가 있잖아옄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운다운닼ㅋㅋㅋㅋㅋ 닭똥같은 는믈ㅋㅋㅋㅋㅋㅋ]

[길드/건블리아: 어휴 는믈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 철딱서니 없는 것들아]

어쩐지 종마 패거리가 있을 때보다 더 활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길드원들의 장난 어린 말을 보고 있던 서련은 채팅창에 외따로 떠오른 귓속말을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가만 보니 건블 형이었다.

{귓속말/건블리아님으로부터: 서련아}

{귓속말/건블리아님께: 네}

{귓속말/건블리아님으로부터: 저 중에 성하진이 누구냐?}

{귓속말/건블리아님께: 눈설이요... 근데 걱정마세요. 제가 잘 말해서 길드원들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할게요.}

{귓속말/건블리아님으로부터: 뭐 걱정되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본 거야. 그냥. 마음쓰지 마라 이눔아ㅋ}

{귓속말/건블리아님께: 고마워요, 형.}

{귓속말/건블리아님으로부터: 뭘 고맙냐. 캡쳐 봤더니 마음 좀 안 좋았겠더라. 어휴, 진작 쫓아낼 걸 그랬어}

그 말에 서련은 피식 웃었다. 그게 저를 위한 말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감싸주는데 계속 미안해하기도 그래서 서련은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귓속말/건블리아님께: 그러게요ㅎ 그리고 하진이랑 친구들 다 잘하는 애들이니까 걱정마세요. 성격은 음... 좀 싸우는 거 같아도 잘 지내는 애들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귓속말/건블리아님으로부터: 어휴 알았다, 알았어ㅋ 놀아라}

{귓속말/건블리아님께: 네 형}

귓속말을 끝나자 길드원들끼리 이미 말을 끝냈는지, 종마 패거리를 잡으러 가자고 슬슬 시동을 걸고 있었다. 앞을 쭉 보자 가장 앞에 하진의 캐릭이 몸을 풀며 서 있는 게 보였다.

[길드/묵요: 준비 다 되셨죠?ㅎ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모두는 튕기듯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필드를 두다다다 내달리는 무리를 힐끗 보던 서련은 저 혼자 다른 곳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뭐, 같이 가자는 말은 안 했으니까.

“뭐야, 안 가?”

“갈 필요 없을 거 같아서.”

이 김에 몰래 포탈을 타고 넘어가 토순이 주인을 보고 올 생각이었다. 킬리도 이제 풀강이니 한 번 겨뤄보고 성능비교를 해볼 참이었다. 비교할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걔 보러?”

하진의 손이 서련을 향해 천천히 뻗어졌다. 서련은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진이 유일하게 경계하지 않는 대상이 바로 지금 만나러 가는 토순이 주인이었다. 뭐랬더라, 완벽한 초식 동물이랬나.

“그럼 걔랑 놀고 있어.”

하진이 손이 서련의 목덜미에 닿았다. 부드럽게 한 번 쓰다듬은 손은 목덜미가 안 보이게 옷을 잘 여며주고 나서야 떨어져 나갔다. 옆을 힐끗 보자, 어딘지 기분 좋아 보이는 하진의 옆모습이 보였다.

요 근래 인상만 잔뜩 찡그리고 다니더니, 오늘은 뭐가 그리 좋은지 욕도 별로 안 하고 지금은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사람들 바르고 다니는 게 그렇게 좋은가 싶다가도, 옆에서 같이 키득거리는 로운과 원호를 보자니 친구들 덕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뭐 친구 없는 서련은 알 길이 없었지만. 서련은 생각을 접고 제 모니터로 돌아와 지도를 켜고 포탈을 찾았다. 정확히 18분 뒤, 포탈이 열린다는 예고문이 떠 있었다. 포탈을 하도 많이 타서인지 이제는 포탈이 열릴 곳을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채널창을 보자 마침 포탈 파티를 구하는 모집 문구가 보였다. 서련은 그중 한 유저에게 귓속말을 보내고 파티에 함께 합류했다.

서련이 합류할 동안 길드원들은 종마 패거리를 잘 만난 모양이었다. 딱히 하진의 자리를 보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귓속말/종마님으로부터: 이 *샛끼야 ㅅㅂㅋㅋㅋㅋㅋㅋ 마치 기다린것처럼 묵요 데리고온거 보소ㅋㅋㅋㅋㅋ ㅅㅂ 그렇게 살고 싶냐 이 ** ㅈ같아서 ㅅㅂ 너 같은 샛끼는}

{귓속말/종마님으로부터: 걍 **갈아서 **해야 정신을 차리지ㅅㅂ 하는 짓거리가 **같아서 웃음밖에 안나온닼ㅋㅋㅋㅋㅋ 어디서 ㅈ만한게}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귓말이 그 상황을 아주 잘 나타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억울함이 아주 하늘을 찌르나 본데. 서련은 그 말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공손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차단을 때려버렸다.

{귓속말/종마님께: 아예}

-‘종마’님의 귓속말을 차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유자적 포탈을 기다리다, 포탈이 생겼을 때 신성제국 쪽으로 훌쩍 넘어갔다. 그쪽 일이야, 그쪽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렇게 익숙한 신성제국 땅을 밟으며, 서련은 제보를 통해 토순이의 주인을 찾아다녔다. 물론 그 와중에도 귓속말은 계속 이어졌다.

{귓속말/짖지마라님으로부터: 이 개가튼 샛끼야ㅋㅋㅋㅋㅋㅋ 차단하니까 좋냐? 쫄려? 쫄려서 따까리들만 보낸거 봐라ㅎㅎㅎㅎ 머릿수로 누르는거 보솤ㅋㅋㅋㅋㅋ 내가 너는 꼭 바르고 다닐 테니까** 앞으로 목이나 잘 닦고 댕겨라}

{귓속말/짖지마라님으로부터: 그리고 ㅅㅂ 애들 컨좀 어떻게 하고 보내봨ㅋㅋㅋㅋㅋㅋ 간지러워 디지겠는데 무기나 하나씩 해주고 나대라고ㅅㅂ 이 *가튼 샛끼야. 묵요하나 믿고 나대는 모양인뎈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짖지마라님으로부터: 이 샛끼도 볼거 없더만ㅋㅋㅋㅋㅋㅋ ㅈ이나 까 새꺄}

{귓속말/짖지마라님께: 음}

{귓속말/짖지마라님께: 필살기를 허세로 키우셨나. 저 같음 쪽팔려서 겜접을거 같은데}

{귓속말/짖지마라님께: 별거 아니면 힘 좀 내보세요. 아. ㅈ이 작아 무린가}

-‘짖지마라’님의 귓속말을 차단하였습니다.

원래 꿀리는 놈들이 더 그런다고, 자신 없으니 저런 말이나 남발하는 거다. 물론 하진과 로운, 원호도 제법 저 욕을 잘 쓰고 다니긴 했지만.

음, 그래도 우리 애들은 크겠지. 서련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하진의 다리 사이로 옮겨졌다. 음… 큰 거 같아. 그 시선은 하진을 넘어 그다음에 앉은 로운에게까지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 그 너머에 있는….

“씨발, 어디 보는데.”

“…아니, 그냥.”

그러다 하진한테 딱 걸려 그대로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시선을 슬쩍 피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귓전에서 생생히 울렸다. 서련의 몸이 점점 벽 쪽으로 내몰렸다. 움츠러든 서련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하진의 시선이 문득 모니터 화면 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쭉 읽는가 싶더니 어느 한 구간에서 멈칫 멈추었다.

그걸 본 하진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별 뜻 없이…. 그냥.”

하진이 시선이 다시 자라처럼 움츠러든 서련에게 향했다. 내리뜬 시선에 곤란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진은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꾹 누르다가, 한숨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아….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게임이나 해. 저 새끼들 당장 다 차단시키고.”

안 그래도 차단하고 있던 참이었다. 서련은 고개만 슬쩍 끄덕이고 다시 필드를 내달렸다. 근방만 지나면 제보가 뜬 위치가 나왔다. 제보가 오보는 아니었는지, 산을 하나 훌쩍 넘자 혼자 뽈뽈거리며 다니고 있는 한 캐릭을 볼 수 있었다.

서련이 그렇게나 찾던 토순이 주인이었다. 그러나 다가가려던 그때 다시 화면을 어지럽히는 귓속말이 떠올랐다.

{귓속말/개솔님으로부터: ㅅㅂ앜ㅋㅋㅋㅋㅋㅋ 니가 우리 ㅈ 작은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 봤냐 ㅅㅂ? 봤냐고 븅신새꺄}

{귓속말/개솔님으로부터: 와 ㅅㅂ 너 당장 텨와라 샛꺄. 앞에서 말할 자신은 ㅈ도 없는 넘이 귓말로 이쥐럴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개솔님께: 시간 많으세요? 좋은 길드 찾으셔야죠}

{귓속말/개솔님으로부터: ** 꺼져 샛꺄}

{귓속말/개솔님께: 네 다음엔 길드로 봬요}

-‘개솔’님의 귓속말을 차단하였습니다.

진짜 길드로 오면 조금 골치겠지만, 그땐 뭐 하진이 좀 희생시켜면… 되겠지. 서련은 아까와 달리 ‘나 건들면 좆될 줄 알아.’라고 얼굴에 써 붙인 채 게임에 임하는 하진을 힐끗 보며 남모르게 속삭였다.

어찌 됐든 모든 상황을 잘 마무리한 서련은 그 길로 산을 미끄러져 내려가 토순이 주인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왜 이렇게 오는 길이 험난한지, 방해공작이 없었는데도 이렇게나 힘든 적은 또 처음이었다.

[신마제국/키키아: 맴돌님 오랜만이죠]

[맴돌돌: 키키님 안녕하세요!]

토순이의 주인. 그는 서련을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서련도 허리를 꾸벅 숙여 주었다.

[신마제국/키키아: 뭐하고 있었어요?]

[맴돌돌: 저 채집이요.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등급미달이라 채집 키우고 있었어요]

[신마제국/키키아: 토순이가 슬퍼하겠네]

[맴돌돌: 그... 토순이가 자꾸 포악해져서요]

포악하대. 서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떻게 저렇게 귀엽게 말할 수 있을까.

[신마제국/키키아: 맴돌님이 좋아서 그럴 거예요]

[맴돌돌: 사람들이 요새 토순이 궁둥이만 노려서요. 그래서 꺼내기가 좀 그래요]

[신마제국/키키아: 음 아플까봐?]

[맴돌돌: 네ㅠㅠ]

착하고, 여리고, 귀엽고. 서련이 없는 걸 다 가지고 있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감싸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끼며 좋아해 주는 것도 이해가 갔다.

[신마제국/키키아: 저도 도와줄게요ㅎ]

[맴돌돌: 진짜요?]

[신마제국/키키아: 네 원래는 제 킬리랑 대결시켜 보려고 했는데 음... 괜찮아요. 킬리도 쉬어야 하니까]

[맴돌돌: 그럼 다음에는 꼭 해요, 키키님. 그... 아무도 없을 때요]

[신마제국/키키아: 네ㅎ 아,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맴돌돌: 네. 어... 오아시스 있는 곳이요]

[신마제국/키키아: 피시아 오아시스 맞죠? 제가 앞장설게요. 가요]

[맴돌돌: 네!]

[신마제국/키키아: 아 그리고 토순이 꺼내도 돼요. 사람들 없는 곳으로 이동할거라]

그 말에 그는 크게 기뻐하며 냉큼 토순이를 소환했다. 토실토실한 거대한 분홍빛 토끼가 눈을 슴벅거리며 깡충깡충 따라오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이 김에 킬리도 바람 좀 쐬게 해줄까 싶어서, 서련도 킬리를 소환했다.

순한 토끼와 날카로운 드래곤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쫓아오는 모습을 보니 어울려 노니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서련이 그런 한가한 시간을 보낼 동안, 서련의 길드원들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종마 패거리들을 쫓고 패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맺힌 게 많았는지, 나중에는 하진보다 더 불같은 모습으로 쫓아다녔는데, 그걸 본 서련은 괜히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결국 유저들 사이에서 ‘다굴권’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듯 떠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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