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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르덴아 니들 미쳤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2/28)

게시글: 르덴아 니들 미쳤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성자: 넌굴채찍

서버: 제르비아 / 신마제국

내용: 어디서 ㅅㅂ 지금 대결권을 아이템이랍시고 팔고 ㅈㄹ이야. 뭐 거부권한이 없어? 에라이 이 생키들이 눈에 돈이 멀어서 뵈는 게 없나, 갈매기도 아니고 돈갖고 존나 끼룩끼룩거리네 ㅅㅂ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며칠동안 잠이 안온다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르덴아 내가 머리만 대면 잠이 오던 사람이다 이거야ㅋㅋㅋㅋㅋㅋ 근데 내가 지금 며칠째 니들 때문에 잠을 못자고 있다고ㅋㅋㅋㅋㅋㅋㅅㅂ 이게 말이 되냐?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게임이냐고 이 피라냐같은 생키들아 아오

서민들 등골빨 생각만 하지 말고 각잡고 제대로 보상해라 새뀌들아. 이걸로 나 탈모 오는 순간 니들은 피똥쌀 줄 알아라. 장난같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고 보면 안다. 이 개발노무족같은거머리생키들아.

[댓글수 21095]

베스트 댓글

-배짱이/신성제국: 그래 알겠어. 알겠는데 돈에 눈이 멀어서 아니냐...? 왜 다들 납득하고 그르냐...

-도르비아/신마제국: 르덴앜ㅋㅋㅋㅋㅋㅋㅋ 니들 이제 돈까지 궁하냐?ㅋㅋㅋㅋㅋㅋㅋ 내가 해다 바치는 돈은 대체 누가 꿀꺽하는 거냐?ㅋㅋㅋㅋㅋ 어이터지네 진짴ㅋㅋㅋㅋㅋㅋ

-일러러러/신마제국: 개ㅈ같은 넘들이 이젠 거부권까지 팔아대네?ㅋㅋㅋㅋㅋㅋ ㅅㅂ 이게 게임이냐?! 게임이냐고ㅡㅡ 아주 개ㅈ을 까라 샛꺄들아. 아오 간만에 제대로 열받게 만드네 생키들이

일반댓글

-시빌린/신성제국: 르덴이 요새 왜 이렇게 착한가 했다. 그름 그렇지 하...

└ 이 와중에 ㅅㅂ 좋다고 사재끼는 ㅅㅂ럼들은 대체 뭐하는 넘들이냐?

└ 내가 얘네 캐쉬사업 할 때부터 알아봤다... 시팍, 왜 아주 영혼까지 팔지 그르냐

└ 대결권 당한놈들 형한테 귓줘라. 형 지금 100매 매수해놨다. 피토하게 복수해주마.

└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르덴 빅피처 쩌네

-케루신/신성제국: 이젠 아주 동족끼리도 치고받고 싸우라고 부채질을 하는구나ㅋㅋㅋㅋㅋㅋ 오냐ㅋㅋㅋㅋㅋ 니들 원하는 대로 원없이 싸워주마ㅋㅋㅋㅋㅋ 일단 GM부터 간다.

└ ㅅㅂ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나다니던 GM들이 보이질 않는닼ㅋㅋㅋㅋㅋㅋㅋ

└ 죄다 지금 지엠들 찾겠다고 마을을 엎고 다니는 중이시닼ㅋㅋㅋㅋㅋ 르덴 단합력 보솤ㅋㅋㅋㅋㅋㅋ

-휘풍단/신마제국: 누가 묵요샊끼 먼저 주겨봐라. 이 생키 지금 대결권으로 동족들 밟고 다니는데 보고만 있을 거냐? 아오, 템부심 부리던 넘들 다 어디갔냐고

└ 앙키도 당했다더라...

└ 왓? 키키아? 키키아가 당했다고? 이건 또 뭔솔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오늘 내가 본 건 뭐, 복수의 혈전이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왜 또;; 뭔일 있었냐?;;;

-살구나리/신마제국: 걱정마라 샛끼덜앜ㅋㅋㅋㅋㅋ 오늘 페테논 광장에서 앙키가 묵요 인성교육 시키고 있더라ㅋㅋㅋㅋㅋ 캬, 피빕이 아주ㅋㅋㅋㅋㅋ

└ 묵요랑 앙키 피빕 뜨는 거 본 사람?ㅋㅋㅋㅋㅋ 크으 저건 사람의 컨이 아니다ㅋㅋㅋㅋ

└ 형 오늘부터 키키아 스승으로 모신다. 저건 신도 울고갈 컨이여

└ 묵요 이 짜식ㅋㅋㅋㅋㅋ 별거 없고만ㅋㅋㅋㅋㅋㅋㅋ

└ 하지 말라곸ㅋㅋㅋㅋㅋ 이거 베라섭이 들으면 아주 오열을 터뜨린다곸ㅋㅋㅋㅋㅋㅋㅋ

└ 베라섭들앜ㅋㅋㅋㅋㅋ 다들 왜 아닥하고 계시나?ㅋㅋㅋㅋㅋ 지들이 아주 다 키운 것처럼 배 내밀고 다니더니 발리니까 다들 아주 기어다니시넼ㅋㅋㅋㅋㅋㅋ

└ 이게 바로 라히섭 수준이다. 다 아닥하고 있어라

└ 니들 앙키 사역마 풀강까지 시킨 건 아냐?ㅋㅋㅋㅋㅋㅋ ㅅㅂ 이제 눈뜨고 피해다니자

└ ㅅㅂ 이제 오토도 안통한다...

└ 아씤ㅋㅋㅋㅋㅋㅋ 내 사역마가 강화실패하면 나 노려본다곸ㅋㅋㅋㅋㅋㅋ 르덴앜ㅋㅋㅋ 디테일이 너무 훌륭한거 아니냨ㅋㅋㅋㅋㅋ 조만간 때릴 기세얔ㅋㅋㅋㅋㅋ

└ 어휴 넌 왜 이렇게 좋아하냐 ㄷ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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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 거 아닌데.”

서련의 눈동자가 슬쩍 모니터를 빗겨갔다. 접속하자마자 여기저기서 귓속말이 날아들기에 뭔가 했더니, 찬양글부터 시작해 감사와 대결, 조롱 글까지, 어수선한 글들이 가득 떠올랐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게임을 내리고 에르덴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아니나 다를까 메인에 하진이 제 캐릭으로 묵요와 쟁을 떴던 상황이 담긴 게시물이 여럿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그중 가장 선두에 있는 글을 클릭하자, 역시나…. 2:1로 떴던 그 날의 정황이 낱낱이 공개되어 있었다. 그걸 보던 서련은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서련이 자는 동안 무슨 짓을 해놨는지, 인벤토리를 켜자 이틀 전까지만 해도 없던 캐쉬 아이템들이 줄을 지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대결 신청권과 거부권부터 시작해 요 근래 나온 캐쉬 아이템들까지, 없는 게 없었다.

“OTP 비번을 매번 바꾸는데 얘는 어떻게 알고 접속하는 거야.”

하진이 틈만 나면 접속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괘씸함에 비밀번호를 바꿔도 어떻게 알아내는지, 며칠 뒤면 또 창고에 어마어마한 돈과 아이템이 쌓여 있었다.

접속 용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물주’ 흉내였다. 강화석은 물론 온갖 비품과 제작물품까지 쟁여 놓는데, 안 쓸 수도 없어 한숨 반 고마움 반을 담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화수분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는 스킬패턴과 자리까지 옮겨놓고 스킬 메크로를 걸어놓는데, 이제는 거의 그러려니 하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물론 처음엔 뭣 모르고 편한 대로 다시 바꿔 놓았었다. 물론 다음날 다시 셋팅 된 걸 보고는 포기했지만. 물론 나쁜 건 아니었다. 속는 셈 치자라는 마음으로 하진이 셋팅해 놓은 스킬배치대로 사용했는데, 그게 의외로 연계동작 텀이 없고 쿨타임이 짧아 컨에 대한 심각한 고찰에 잠겨들 정도였으니까.

“귀찮게….”

여기저기 걸려오는 대결 신청권을 거부권으로 받아치는 것도 슬슬 짜증 나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서련은 캐릭을 움직여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뒤에서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는 게 보였지만, 공간이동을 타고 한산한 맵으로 이동하자 그럭저럭 따돌릴 수는 있었다.

문제는 화면에 가득 뜨는 제보글이었다. 그것도 억울함에 아주 피를 토하고 있는.

[묵요님의 외침: 키키아 제보글 받습니다. 현상금 2억. 키키아 제보글 받습니다. 현상금 2억. 키키아 제보글 받습니다.]

서련은 애써 모른 척 일일 퀘스트 목록을 열어 쭉 살폈다. 마침 어제 하진이 사역마도 풀강 시켜 놓았으니, 그 성능이라도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1강 차이지만, 풀강이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마침 딱 좋은 일일퀘가 와 있었다. 서련은 그 퀘스트를 냉큼 수락하고, 지도를 열어 포탈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했다. 곧 닫힐 것 같은 포탈이 마침 근처에 하나 떠 있었다. 서련은 지체 없이 바로 그곳으로 캐릭을 움직였다.

사실 포탈의 위치를 확인하고 움직인 것까지는 좋았다. 평소라면 안전한 길로 돌아갔을 텐데, 하필 포탈의 유지시간이 얼마 안 남아 서두른다는 게 이런 악운으로 번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

그냥 안전한 길로 돌아갈걸.

지금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지만, 설마 가는 도중 복병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서련의 뒤에는 이때만을 기다린 양, 무서운 기세로 서련을 쫓아오고 있는 한 유저가 있었다. 그것도 탱커의 필사 스킬이라 불리는 ‘초인’ 스킬까지 쓰며 말이다.

다름 아닌, 그렇게 피를 토하며 서련을 찾고 있던 묵요였다. 손에 들린 도끼가 서슬 퍼렇게 빛나는데, 아주 이를 가는 듯했다.

하필 서련이 지금 달리는 필드가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전 종족 PVP가 가능한 구역이라 도망가기도 힘들었다. 차라리 대결권 신청이면 하진이 사다 놓은 거부권으로 거부라도 하는데, 여기는 그냥 빼도 박도 못하고 쟁을 뜰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이동 속도가 대폭 빨라지는 ‘초인’ 스킬까지 쓰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무슨 수를 써도 잡힐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신마제국의 ‘묵요’가 사용한 포획에 구속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의 역시나. 묵요가 던진 포획에 서련은 그대로 다리가 잡혀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져 해롱해롱거리는 캐릭의 옆으로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발랄하게 뛰어오고 있는 묵요가 있었다. 순간 서련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래, 의지 하나는 인정해줄 만했다. 서련이 이 정도로 귀찮고 고깝게 느껴질 정도면.

[묵요: 어이쿠 키키님 어째 여기서 다 보네요? 이것도 운명인가]

[키키아: 제보도 운명이면 너무 광범위한데]

[묵요: 하하 우리 상대적으로 가죠]

서련의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죽이면 바로 죽일 수 있을 텐데, 안 건드는 걸 보아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용건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묵요: 키키님 저랑 정정당당히 피빕 한 번 떠요]

[키키아: 싫은데요]

[묵요: 그러지 말고 한번만요. 보니까 사역마도 한계돌파 했던데]

[키키아: 그쪽이 못 이길 텐데]

[묵요: 하하 키키님. 저 돼끼도 이기고 온 사람이에요]

돼끼는 신성제국 쪽에 있는 유저가 가진, 한계돌파까지 강화된 사역마의 별명 같은 거였다. 유저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애칭이랄까. 사실 원 명칭은 따로 있었다.

[묵요: 아,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나? 원 명칭 토순이요]

역시. 확실히 놀랍기는 했다. 아직까지 서버 내에 한계돌파한 사역마와 1:1로 싸워 이긴 유저의 활약은 없었으니까. 아니, 사실 있는데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서련만 해도 싸우다 아쉽게 진 게 몇 번이나 되기 때문에. 공략만 알면 이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키키아: 아예]

[묵요: 와... 키키님 진짜 냉정하시네]

서련의 입매가 다시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이미 포탈이 닫혔는지, 지도 내에 뜨던 표시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다음 포탈을 기다리려면 적어도 4시간은 있어야 했다. 묵요랑 뜬다고 해서 이길 자신도 없고. 이래나 저래나 서련만 손해 보는 장사였다.

그래서 그냥 죽이라고 쓰려는데, 채팅을 다 완성하기도 전에 무언가가 묵요의 신형을 강타하고 지나쳤다. 가만 보니 한 발이 아닌 다발성 공격이었다.

소리를 들어보니 총탄소리였다. 화면을 돌려 찾자, 공격이 쏟아지는 곳에 양손에 마력총을 든 거너가 묵요를 공격하고 있는 게 보였다.

거너의 머리 위에 뜬 버프의 갯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걸 본 서련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캐릭의 닉네임을 보니 처음 보는 유저였다.

<킬레아>

일방적인 공격을 받던 묵요는 금세 쉴드와 방패를 장착하고 전투모드에 돌입했다. 거너가 장거리 딜러인 덕에 근거리 격수인 탱커는 사실 거너와 그리 상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거너가 구르고 뛰고 혼자 다 해먹는 덕분에 서련은 본의 아니게 둘 사이에서 빠질 수 있었다.

-신마제국의 ‘킬레아’가 장탄을 사용해 공격 속도가 기존 공속 대비 15% 증가 되었습니다. 지속 시간 12초.

-신마제국의 ‘킬레아’가 저격탄을 사용해 신성제국의 ‘묵요’에게 2309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신마제국의 ‘묵요’가 방어방탄을 사용해 기존 방어력 대비 2000만큼의 저항, 방어, 면역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신마제국의 ‘묵요’가 사용한 포획이 무효화 되었습니다.

눈을 슬쩍 굴리던 서련은 그 길로 둘을 등지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둘만의 세계에 빠진 건지, 서련을 잡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잽싸게 빠져나오자, 잠시 후 중립지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대로 운이 좋았다고 할까.

“킬레아랬지.”

서련은 안전한 곳에 캐릭을 잠시 욱여넣고, 게임창을 아래로 내려 에르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킬레아의 방명록을 찾아 들어가 그가 가진 스킬 트리와 무기, 갑옷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닫고 게임창을 올려야 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그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기네.’

제가 뭘 본 건지 아직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아이템이 개 사기적이란 소리다. 서련의 입술 사이로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주변에 왜 이렇게 날고 기는 놈들이 많은지, 이제까지 못 본 게 신기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짜증까지 정도였다. 더 마주칠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무운을 빈 서련은 그 길로 터덜터덜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단발성이라고 생각했던 만남은 그날 이후 다발성으로 번졌다. 이제껏 마주치지 않았던 게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의외인 점이 있다면, 킬레아는 묵요가 꼭 서련을 대면했을 때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꼭 묵요의 뒤통수를 치며 한껏 도발시켰다. 마치 자기가 시간을 버는 동안 서련에게 빠져나갈 시간을 주듯.

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자유 게시판에는 묵요와 킬레아에 대한 얘기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게 되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킬레아의 존재는 말 그대로 대란을 일으켰다.

한쪽에서는 킬레아가 서버 이전을 하면서 닉네임을 변경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내놓았다. 그 추측의 대상이 되는 유저는 상당히 많았고, 전부 내로라하는 유저들이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서련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조용한 듯 조용하지 않은 사건 속에 며칠이 흘렀다.

서련은 오랜만에 길드원 전체가 들어와 있는 주말에 이른 점심을 먹고 접속했다. 그러나 접속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던전을 돌자고 귓속말을 보내는 탓에 길드에 제대로 된 인사말을 올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꼬투리가 되어 돌아왔다.

[길드/건블리아: 키키 왔냐?]

[길드/베르르: 형형! 왔어요?!]

[길드/휴리사: 어 키키 왔네ㅎ]

[길드/야생닭: 엇 키키 하이]

[길드/순한양: 혀엉! 하이요]

[길드/키키아: 네, 죄송해요. 어수선해서 인사를 못했어요. 늦었지만 안녕하세요.]

서련은 고맙게도 먼저 인사말을 건네준 길드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 그러나 뒤따라 올라온 건, 저격이 담긴 말이었다. 평소에도 서련을 유독 고깝게 여기던 길드원들이었다.

[길드/짖지마라: 이젠 머리가 커서 인사도 안하는거 봐라]

[길드/개솔: 그럴거면 길드에 피해는 입히지 말든가. 귓말 오지게 들어오네ㅅㅂ]

[길드/개솔: 내가 만나본적도 없는 묵요새1끼 안부를 귓말로 들어야 되겠냐?ㅋㅋㅋㅋㅋ 그 ㅆ끼 종적을 내가 어떻게 알앜ㅋㅋㅋㅋ 안 그러냐 키키야?]

[길드/종마: 키키야, 들어오면 길드에 인사부터 하는 게 예의아니냐? 다 아는 놈이 왜 그러는겨 자꾸]

이 경우, 평소라면 서련이 분쟁을 피해 조용히 대답하거나 사과 후 물러나면서 상황이 무마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이제 18살로 올라가는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사춘기 고등학생인 베르르와 순한양이 서련을 옹호한다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베르르와 순한양은 서련을 고깝게 여기는 길드원들과 평소에도 자주 싸울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그게 이번에 폭발한 거고.

[길드/베르르: 왘ㅋㅋㅋㅋㅋ 누가보면 본인들은 잘 지키는 줄ㅋㅋㅋㅋㅋㅋ 내로남불 오지고욬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웬 시비질?ㅋㅋㅋ 열등감 폭발하나ㅋㅋㅋㅋ]

[길드/개솔: 야 이 ** 너네 지금 뭐라고 했냐]

[길드/짖지마라: ㅅㅂ 고딩새끼가 건방지게 어른 얘기하는데 끼여들고 ㅈㄹ이야]

[길드/베르르: 와후ㅋㅋㅋㅋ 꼰대질 쩔고요]

[길드/순한양: 고딩인걸 어쩔?ㅋㅋㅋㅋ 뭐 보태주고 그런말을 하든갘ㅋㅋㅋㅋ]

[길드/건블리아: 그만들 안하냐? 그만 좀 싸워라.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여 또]

[길드/짖지마라: 친목질도 정도가 있지 ㅅㅂ이렇게 싸고도니까 애새1끼들이 나대면서 물흐리는거 아니냐고요]

[길드/베르르: 친목질을 대체 누가 하는지 모르겠는디요?ㅎㅎㅎㅎㅎㅎ 와 나이를 떵구녕으로 처먹었나ㅋㅋㅋㅋ 그놈의 나이드립 진짜 못 봐주겠네ㅋㅋㅋㅋㅋ]

[길드/종마: ㅅㅂ**가 아가리 안 **냐 존만한게 ㅅㅂ 어디서 깔짝대고 ㅈㄹ들이야]

[길드/건블리아: 다들 그만해라 그만! 베르랑 양도 그만 못하냐?! 니네가 그러면 키키가 뭐가 돼]

[길드/순한양: 그럼 걍 저 썁소리를 듣고 있으라고여?ㅡㅡ]

[길드/개솔: 길마형은 진짜 그만 좀 싸고돕시다. 현모도 꼬박꼬박 빠지는 놈 뭐가 예쁘다고 자꾸 싸고 도는지 모르겠네]

[길드/베르르: 지들은]

[길드/개솔: 지? 지들? 와ㅋㅋㅋㅋㅋ 저 **들이 이제 막나가낰ㅋㅋㅋㅋㅋ ㅅㅂ어이 털리네?ㅋㅋㅋㅋㅋ]

[길드/순한양: 아예ㅋㅋㅋㅋㅋㅋㅋ]

[길드/휴리사: 니들 진짜 그만 안하냐. 나한테 죽어 볼래?!]

길드 내 유일한 여성 유저인 휴리사가 말리자 그제야 길드 내 소란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다들 휴리사가 화나면 무섭다는 걸 진즉 알고 있던 탓이었다.

모든 상황을 조용히 보고 있던 서련은 뒤늦게야 해탈한 표정으로 자박자박 키보드를 두드렸다.

[길드/키키아: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인사 꼭 하겠습니다. 그리고 길드에 피해 끼쳐서 죄송해요. 묵요 일은 빨리 해결할게요]

[길드/베르르: 피해는 무슨. 괜한 오바질입니다요. 괜찮슴돠! 그러지 말고 형! 오늘 같이 수디아 갈래여?]

[길드/순한양: 아님 닭둘기 팟ㄱㄱ 해요 형]

[길드/키키아: 미안. 오늘은 잠깐 뭐 확인하러 들어온거라 바로 나갈거야.]

[길드/베르르: 에이ㅠㅠ]

[길드/순한양: 하여간 나이 뻘짓으로 먹은 **들은 다 죽어야돼ㅎㅎㅎㅎㅎㅎㅎㅎ]

[길드/종마: ㅅㅂ샛끼들아 니네 우리 겨냥한거냐?]

[길드/순한양: 왜 혼자 풀ㅂㄱ를 하시는지?ㅋㅋㅋㅋㅋㅋ 찔리시나 봐여?]

내 생에 연하들만 이렇게 얽히는 거 보면 뭐가 있긴 있나 보다. 하진이부터 시작해, 그놈의 친구들부터 길드 내 막둥이라고 불리는 고등학생들까지.

긴 한숨을 내쉬며 서련은 나가보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에르덴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즐기려고 들어갔는데, 오히려 게임할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이따 새벽에나 잠깐 들어가 일일 퀘스트를 하든가 해야지, 지금은 시비를 거는 상대가 너무 많았다.

띠링-

상념에 잠겨있던 사이, 핸드폰 위로 메시지가 한 통 떠올랐다. 집어 들고 확인하자 방학하기 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 대출 기한 만료 메시지가 떠 있었다. 책상 끄트머리에 쌓인 책들을 힐끗 쳐다보던 서련은 한참 뒤에야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켰다.

씻고 나가볼 생각이었다.

“바람이나 쐬다 오자….”

사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딱히 나가 바람 쐴 일도 없었다. 요즘 말로 아싸라고 할까. 서련의 학교에서의 입지는 딱 그 정도였다.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는 복학생.

대학교에 입학하고 1학기를 마치자마자 휴학계를 내고 군대를 다녀온 까닭에 이제 막 복학하고 1학년 2학기를 지낸 참이었다. 사실 서련에게 군대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곳에서 마음의 상처만 더 쌓고 나왔다. 어디를 가든 똑같았다.

‘…지금이 나은지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마음이 단단해졌다. 문득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진짜 같은 가짜였다. 고통을 외면하고 움직이자, 통증은 금세 사라졌다.

***

서련이 씻고 집을 나섰을 때는 오후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12월 중순, 이제 막 겨울로 들어선 날씨가 써늘한 바람과 함께 불어 닥쳤다. 어깨를 한 번 부르르 떤 서련은 외투를 목 끝까지 여미고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가로 향했다. 오늘도 하진이 새끼는 밖으로 나돌고 있었다.

“이럴 거면 왜 간섭하는 건데.”

작은 투덜거림을 끝으로 서련은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큰길가로 나갔다. 한쪽 어깨에는 반년 동안 잘 매고 다녔던 가방이 걸려 있었다. 책을 몇 권 넣어서 그런지 제법 무거웠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동안, 핸드폰에서는 수많은 연락이 왔다. 길마인 건블리아 형부터 베르르와 순한양까지. 위로를 가장한 칭얼거림이었다. 길드 내에서 그런대로 연락하는 사람은 이 셋이 고작이었다.

[이찬이형- 서련아, 괜찮냐?]

[베르르- 아 형ㅠㅠ 들어와서 같이 놀아요]

[순한양- 묵요 저희가 개발라줄게요 ㄱㄱ]

이찬에게는 개인적인 톡이 왔지만, 베르르와 순한양은 단체방을 파서 둘이 공세 아닌 공세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하나 대답하기도 뭐해서 서련은 일단 이찬에게 먼저 톡을 보냈다.

[저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이찬이형- 괜찮긴. 내가 그 자식들 많이 혼냈으니까 늦게라도 기분 풀리면 들어와라 서련아]

[이찬이형- 아니면 같이 술 한잔 할까?]

[저 지금 학교 가고 있어요. 정말 일 있어서 나온 거예요]

[이찬이형- 알지. 형이 왜 모르냐. 그래도 속상하면 얘기는 하고, 알겠지?]

[신경써 줘서 고마워요, 형. 근데 정말 괜찮아요]

이찬은 올해 34되는 직장인이었다. 버젓한 직장에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까지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쪽’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게 서련이 안심하고 이찬과 연락할 수 있는 이유였다.

[형, 저 이제 곧 내려요.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이찬이형- 그래, 이따 시간나면 들어와라. 꼬맹이들 아주 난리났다 어휴]

[네. 알겠어요ㅎ]

얼마나 칭얼댔으면 평소 별말 없던 이찬이 그러는지, 서련은 이찬과의 톡방을 나가서 아직도 난리중인 베르르와 순한양이 있는 톡방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올라온 톡이 무려 40개였다.

잠시 고민하던 서련은 톡방을 클릭해 들어갔다.

[베르르- ㅇㅇ!]

[순한양- 형형, 울어요?!]

이 어린 양들을 대체 어떻게 달래야 할까. 서련은 한숨을 푹 내쉬며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울기는. 이따 들어갈 테니까 둘이 좀 놀고 있을래]

[베르르- 진짜? 진짜죠?!]

[순한양- 언제 들어올 건데요? 이래놓고 또 우리 팽개치고 놀려고 그러져?]

[베르르- 우리가 묵요 개패준다니까]

[순한양- 둘이 덤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언제 들어와요? 응? 몇시?]

이러다 몇 분 몇 초까지 나올 것 같아, 서련은 남은 정거장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학교에 책 대출한 것만 반납하고 들어갈게]

[베르르- 오옠ㅋㅋㅋㅋㅋㅋ]

[순한양- 형형 꼭 들어와요. 한 시간 안에 안 들어오면 테러ㄱㄱ]

한 시간은 좀 오버였지만, 여기서 말을 늘리는 것도 피곤해 서련은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대로 톡은 잠시 중단되었다. 때마침 내릴 때가 다 된 참이라, 서련은 대충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교는 지나치게 한산했다. 늘 바글바글하던 사람이 지금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랄까. 이것도 그나마 계절 학기를 듣는다고 나오는 학생들이 있어 이 정도였다. 무거운 가방을 반대쪽으로 옮겨 걸치고, 서련은 도서관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불안한지 두 고등학생에게 불이 나게 연락이 오는 중이었다. 애써 무시하며 서련은 무사히 책을 반납하고 학교 근처의 피시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피시방은 좀 그렇긴 하지만….”

서련은 원래 사람 많은 곳은 잘 가지 않았다. 담배향이 가득한 곳은 더더욱.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마음을 꺾었다. 사실 너무 추워서 어디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단톡방 테러를 일삼는 아기 양들을 빨리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은 더 컸지만.

이래저래 오랜만에 찾는 피시방이었다. 아니, 스무 살 이후 처음 찾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했다. 지상 2층에 있는 곳으로 올라가자, 입구부터가 화려한 피시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고 나서는 꽤나 놀라야 했다. 그 몇 년 사이 피시방이 이렇게나 좋아질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환경도 깨끗하고 자리도 널찍하니, 예전의 그 비좁고 벌집 같던 퀴퀴한 곳은 생각도 안 날 정도였다.

심지어는 칸으로 나뉜 개인용 공간도 있었다. 이용료가 조금 더 비싸다는 문구가 붙어 있긴 했지만, 사람 사이에 껴서 하는 것보다 나은 듯해서 서련은 선불 기계에서 이용료를 충전하고 개인용으로 떨어진 곳 중 가장 편안해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나대지들 마세요, 새끼들아.”

서련을 등진 자리에는 미리부터 와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웃으며 살벌한 혼잣말을 내뱉는데, 절로 시선이 옮겨졌다. 화면을 힐끗 보자 놀랍게도 그 사람 역시 에르덴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필드 쟁을.

서련은 짓씹는 욕설을 애써 외면하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했다. 그리고 항시 들고 다니는 물티슈를 꺼내 마우스며 키보드를 열심히 닦았다. 닦은 후에는 핸드폰을 옆에 꺼내두고 에르덴에 접속했다. 여전히 톡을 읽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접속시간 PM. 03:38 / 남은 시간은 122시간입니다.

-신성의 축복을 그대에게! 에르덴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모든 던전의 입장 시간이 리셋 되었습니다.

-일일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길드/키키아: 안녕하세요]

서련은 누가 먼저 선수 칠세라 접속하자마자 길드에 먼저 인사말을 올렸다. 서련의 접속 소식에 두 어린양은 있는 대로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길드/베르르: 형형 묵요 잡으러 갑시다]

[길드/순한양: ㄱㄱ 우리만 믿어요]

[길드/베르르: 우리가 생각해 봤는데, 얍삽해도 주기기만 하면 되잖아요. 내가 덫 걸고 양이 버서크 걸어서 상태이상 만들고 생닭 형이 활강을 하면서 때리면 조질수 있을 것 같은데]

[길드/야생닭: 생닭이라고 하지 마라 제발... 야생닭이라고 이 고딩들아]

[길드/건블리아: 왔냐, 키키야.]

[길드/휴리사: 키키 리하이ㅋㅋ]

[길드/야생닭: 키키야 쟤들 좀 어떻게 좀 해봐라... 형은 이제 힘 딸린다 어휴]

[길드/키키아: 네ㅎ 제가 데리고 다닐게요]

가만 보니 시끌벅적한 길드창에는 아까 서련에게 시비를 걸었던 짖지마라와 개솔, 종마의 말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접속확인은 뜨는데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건블리아가 많이 혼냈다고 했던 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아하 드디어 들어오셨네요}

“!”

느닷없이 화면창에 귓속말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턱을 괸 채 나른한 시선으로 화면을 보고 있던 서련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누군가 했더니, 요새 킬레아랑 싸우느라 정신없는 묵요였다.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키키님 오늘에야말로 저랑 한판 뜨시죠}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그때는 제가 실력발휘를 못 한 거라서요}

뭐가 그리 억울한지 묵요는 구구절절 컨디션까지 들먹이며 그 날의 일을 만회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련은 딱히 다시 싸워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 질 텐데 뭐하러.

{귓속말/묵요님께: 싫은데요}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하하 그때 제가 뒤통수 때려서 그래요?}

{귓속말/묵요님께: 네 뭐}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그러지 말고 딱 한 번만 다시 해요 우리, 네?}

{귓속말/묵요님께: 차단 할게요}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잠깐! 잠깐만요! 딱 한 번만 더 해주면 앞으로 귀찮게 안 할게요!}

{귓속말/묵요님으로부터: 대결도 안 걸고 길가다가도 모른 척할게요. 아니, 뒤통수도 안 친다 내가!}

이렇게 끈질겨야 전 서버 1위를 하는 걸까.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그 날고 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또 생각도 못 했다. 특히나 성하진.

서련은 묵요의 말을 그대로 무시하고, 일일 퀘스트 목록을 살폈다. 길드창에서는 아직도 묵요 새끼를 찾는다고 두 어린 양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귓속말창으로는 포기를 모르는 묵요가 거의 애걸조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길드/베르르: 형 어디예요?]

[길드/순한양: 묵요 지금 레농광장에 있다는데]

“하진이나 부를까.”

불러서 묵요랑 다시 뜨라고 할까. 아, 그전에 부르면 오긴 오려나. 곰곰이 생각하던 서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타자를 자박자박 치는데, 순간 오싹한 시신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주변을 홱 돌아보고 말았다.

양 옆자리는 다 비어있고, 앞자리는 애초 벽에 막혀 있다. 남아 있는 건 먼저 와있던 뒤에 있던 유저라는 건데, 무슨 까닭인지 돌아보기가 꺼림칙했다.

‘보고 있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서련은 용기를 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간발이 차로 미세한 의자소음과 함께 뒤에 있던 유저가 먼저 일어나 서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목말라.”

착각인가.

뒷목을 주무르며 카운터로 향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서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가 제법 기민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예민함이 따로 없었다.

서련은 제 착각이 민망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쓰고 있던 문장을 이어 작성하기 시작했다.

[길드/키키아: 베르랑 양이는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길드/베르르: 형 우리 못 믿는 거죠?ㅠㅠ]

[길드/순한양: ㄴㄴ 형 베르ㅅㄲ는 몰라도 저는 믿어도 됨요]

[길드/키키아: 음]

[길드/키키아: 묵요가 미안하대]

거기까지 채팅을 쳤을 때였다. 이럼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한숨 돌리는데 옆에서 생각지도 못한 음성이 쏟아졌다.

“제가 언제 미안하댔어요?”

“!”

서련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크게 뜨였다. 숨이 멎을 만큼 놀랐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심장이 내려앉았다. 입을 뻐끔거리던 서련은 이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라 커진 서련의 시야에 들어온 건, 바나나 우유를 손에 쥔 채 살벌할 정도로 생긋 웃고 있는 사내였다. 다름 아닌, 목마르다며 서련을 스치고 지나갔던 사내.

그는 바나나 우유를 서련의 책상 위에 살짝 내려놓고는 서련에게 가까이 다가와 섰다. 새까만 눈이 향한 곳은 서련의 게임화면 속의 채팅창이었다. 그걸 한 번 쭉 훑은 그는 다시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정겨운 인사.

“어떻게 여기서 다 보네요, 키키아님? 아니.”

서련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해맑은 얼굴에 가득 찬 반가움이 어째 도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확신이 되어 돌아왔다.

“서련 형.”

그러나 그런 사내와 달리 서련은 도통 그가 누군가 떠올리지 못했다. 커다랗게 뜨였던 서련의 눈매가 차츰 좁아지기 시작한 것만 봐도 그랬다.

누구더라….

“저 누군지 몰라요? 진짜?”

“어… 묵요?”

서련의 말에 사내의 표정이 일순간 멍해졌다. 그러나 금세 손까지 동원하며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성하진 새끼랑 같이 다니던 잘생긴 애 있었잖아요! 아니, 왜. 형 손 예쁘다고 잡았다가 그 날로 병원 입원했었던… 하아…. 성하진 친구요.”

“아.”

“예, 이로운입니다.”

자기를 이로운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허리까지 꾸벅 숙이며 예의를 차렸다. 그리고는 씩 웃는데, 뭐랄까. 그늘이 없는 친구였다. 그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고서야 서련은 그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진이와 같이 다니던 또 다른 친구. 원호와 늘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던 발랑 까졌던 그 친구였다. 웃는 게 특히나 매력적이던. 원호만큼이나 로운 역시 지나치게 멀끔한 게 놀랄 만큼 멋있어졌다.

“기억나. 아…. 미안해.”

“아뇨, 아뇨! 형 이 학교 다니는 거 알긴 했는데, 하진이 그 새끼가 어느 학과인지 입을 안 열어서 못 찾아다녔어요. 와, 설마 형이 키키아였을 줄은….”

“너도 이 학교야? 어느 학과?”

“저 법학과요.”

로운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햇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노는 줄만 알았는데, 그래도 공부는 착실히 해서 들어온 모양이었다. 서련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법학과면 IT공학하고 가깝네.”

“역시!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진이 새끼 아주 지만 알고…. 아, 형 이거 드세요.”

로운은 하진의 욕을 하다 대뜸 제가 사온 바나나 우유를 내밀었다. 아니, 빨대까지 꽂아서 대령했다. 그걸 잡아들자 어서 마시라는 듯 손을 휙휙 드는데, 별수 없이 쭉 들이켜야 했다.

“근데 형 여기까진 왜 오셨어요? 집 이 근처 아니잖아요.”

“책 대출한 게 있어서 반납하느라고. 그러다 너무 추워서 잠깐 들렀는데….”

서련은 로운의 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건지, 로운도 제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찰나, 정적이 흐르고 서로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기했다. 로운의 시선이 다시 서련의 모니터 화면으로 옮겨졌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로운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들썩임은 곧 괴성으로 바뀌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알바생과 주변 사람들이 전부 내다볼 정도랄까.

“아오, 그런 거였어! 성하진 이 개새끼!!”

덕분에 서련은 고막 테러를 당해야 했다. 아니, 심장이 쿵쾅쿵쾅하는 걸 보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형!! 그거 성하진이었죠?! 그쵸?! 맞죠?!”

“아닐 걸….”

여기서 긍정하면 안 될 것 같아 나름 부정을 한 건데, 이로운은 이미 그 날의 키키아가 성하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시발! 어쩐지! 패턴이 그 새끼 같더라니! 그래놓고 지 아닌 척 존나 깝죽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몰라요. 그 새끼가 내….”

“내…?”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로운의 말을 기다리던 서련은 말 못 할 고통에 뒷목을 잡는 로운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그리고 궁금증을 지워 없앴다. 알아봤자 좋을 거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마음을 다스린 로운은 다시 상큼하게 웃으며 서련의 앞에 단정히 섰다. 얼마나 잘 보이고 싶은 건지, 미소가 반짝반짝할 정도였다.

“아무튼 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밥이라도 한잔 어때요.”

밥을 먹자는 건지, 술을 마시자는 건지 애매했지만, 피시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탓에 거절하기가 민망해졌다.

“음… 그래.”

서련은 결국 바나나 우유를 홀짝이며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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