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1장.게시글: 묵요 섭이전 했냐? 요새 왜 보이질 않냐?;; (1/28)

1장.

게시글: 묵요 섭이전 했냐? 요새 왜 보이질 않냐?;;

작성자: 문원크

서버: 베라이오 / 신마제국

내용: 나만 못 보는 거?;; 허참, 요새 묵요 놈이 보이지가 않소이다. 누구 본 사람? 섭이전은 제발 아니라고 해줘라... 묵요야 너 섭이전하면 우리섭 폭망한다... 진짜 폭망한다. 우리 살리는 셈 치고 좀 있어주면 안 되겠냐?

묵요 본 사람 있음 제보 좀 부탁한다. 없으면... 형 오늘부로 때려치고 다른섭 간다.

[댓글수 14981]

베스트 댓글

-왜왱발/신마제국: 왁씨... 나만 못 본게 아니었구나

-꿈자라/신성제국: 잘가라 베라섭아. 형 멀리 안나간다

-브릿고/신성제국: 어휴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 쉑끼들아. 죽이면 죽인다고 개쥐럴, 없으면 없다고 ㅈㄹ발광. 아주 난리 나셨어ㅋㅋㅋㅋㅋㅋㅋㅋ 나라도 그지 같아서 딴 섭 가겠다

일반 댓글

-돌순이/신마제국: 진짜 갔다고? ㄹㅇ? 와... 개발놈이네... 어느 섭인지는 좀 말해주고 가야 형도 따라가지

└ 태세전환 보소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접을 기세네ㅅㅂㅋㅋㅋㅋㅋ

└ 하... 요즘 새1끼들 줏대가 무슨 은하급이네.

└ 묵요 진짜 갔냐...? 진짜 간거야? 진짜...?

└ [묵요 방명록 출처-클릭] 이미 가셨다... 잘들 있어라. 형 신규 판다.

└ 어휴 뻘짓들 쩌시네

-맥퀸즈/신성제국: 아주 다들 피를 토하시네그려

└ 베라섭 징징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 생키들 징징글 겁나 쩌네. 누가 들으면 지들이 키운줄

└ 얘네 섭계 부심 있던거 모르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섭 1위 유저 배출 섭이라고 배를 그렇게 내밀고 다니더니 이제 등 굽히고 다니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세는 라히섭이다 덤비지 마라ㅋㅋㅋㅋㅋ

└ 라히섭아... 니들은 지금 웃을 때가 아니다. 묵요 니네 섭 갔다더라.

└ 왓?ㅋㅋㅋㅋㅋㅋㅋ 이 무슨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ㅋㅋㅋㅋㅋㅋ 누가 좀 말려줘라... 제발... 우리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 영자야ㅎㅎㅎㅎㅎㅎㅎㅎ 좋은 말로 할때 서버 빨리 닫아라ㅎㅎㅎㅎㅎㅎㅎㅎ 묵요샛끼 라히섭 넘어오는 순간 내가 니들 회사 앞에서 고기굽는다

-초코코/신성제국: 이미 끝났어... 간만에 평화롭게 채집좀 하려니까 순삭하고 유유히 지나가시더라... 하... 쉐끼가 진짜 토순이 잡으러 왔나

└ 아니 그래서 묵요 저 시낀 대체 왜 이전한 건데

└ 아는 넘들 제보좀 해봐라

└ 토순이라는 네임드 있다... 어떤 개 호로샛끼가 전섭 1위가 와도 못 죽인다는 드립을 허벌라게 쳐서 묵요생키가 빡이 치셨댄다

└ 네임드란닼ㅋㅋㅋㅋㅋㅋㅋㅋ 네임듴ㅋㅋㅋㅋㅋ 아 ㅅㅂ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던 네임드가 ㅅㅂ 엎어져 울 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

└ 윗님 대체 왜 웃는 거임?

└ 형도 몰라... 묻지마

└ 그 뭐냐. 토순이 라는 애가 실은 사역수임. 네임드 ㄴㄴ 강화를 많이 해놔서 넴드급. 죽이기 개빡셔서 유저들이 넴드라고 부르는 거

└ 그니까 지금 묵요 저 샛끼가 누가 친 드립에 빡쳐서 그거 죽이러 섭이전 했다는 거 아니야. 에라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순이 귓뱅맹이 가즈아!

└ 캬ㅋㅋㅋㅋㅋ 대세 하즈아 라히섭 만세!

└ 라히섭에 도른 새1끼들이 참 많네

└ 라히섭아ㅋㅋㅋㅋㅋㅋ 니들은 ㅅㅂ 좀 처맞자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지금 불난 집에 폭탄을 투척하고 자빠졌어 쉐끼들이 디지고 싶나

└ 아오 라히섭 벌써 막혔네ㅅㅂ

└ 이 와중에 발빠른 놈들 보소... 와 순발력 개오지네 진짜ㅋㅋㅋㅋㅋ

└ 묵요 길드 놈들도 다 못간 와중에 무슨ㅋㅋㅋㅋㅋ 니들이라고 별 수 있냐?ㅋㅋㅋㅋㅋ 아 베라섭 그렇게 어깨 세우고 다니더니 십년 묵은 체중이 내려가네ㅋㅋㅋㅋ

└ 다 필요없고... 라히섭 좀 어떻게 해줘라... 죄다 도르신 넘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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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련아, 이번 현모 때도 시간 안 되냐?>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련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바로 앞의 모니터 화면에는 저를 등진 화려한 캐릭이 도도한 자태로 서 있었다. 머리 위에는 서버 내 나름 유명한 네임드 급 이름이 떠 있었다.

[키키아]

서련은 잠시 자신의 허벅다리를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겼다.

통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은 서련이 속한 ‘건블길드’의 길마 강이찬이었다. 강이찬은 서련이 예전부터 알고 지내오던 지인이었다. 서련에게 ‘에르덴’을 추천해준 것도 바로 그였다.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그때는 핸드폰 앱으로 게임을 즐겼었다. 킬링타임으로 즐기던 게임인데도 푹 빠져서 현질까지 서슴지 않았고, 나중에는 가입까지 해서 친목도모에 열을 올렸다.

그때, 현모를 주최한 것도 이찬 형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련은 강이찬의 오랜 친우인 ‘그’를 만났다. 첫 만남인데도 그는 서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었다. 그에게 들었던 설렜던 말. 아니, 고백 같던 말에 흔들릴 만큼.

‘너처럼 예쁘게 생긴 애는 처음이다.’

그 말이 뭐라고 그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시야가 붉어진다는 게 그런 건가 싶었다. 그 말에 기대 살아온 게 3년. 추억이라 할 수 없는 사랑을 했다.

그리고 서련은 아직도 그 3년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서련의 곁에 오래 머물러 있던 강이찬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상념에서 벗어나자 곧장 대답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련은 픽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잖은 톤이었다.

“…저 안 가는 거 알잖아요.”

핸드폰 너머로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안다. 그 한숨의 의미를. 그런데도 서련은 모르는 척했다. 소외되는 건 익숙했다.

<에휴, 그래. 참석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 너 보고 싶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고마워요, 형.”

<고마우면 날짜나 잡아. 현모 얘긴 더 말 안 할 테니까 따로 보자.>

“형이 잊은 것 같아서 말하는데요. 저 돈 없고 시간 없는 학생인데요.”

<시간이 없어서 게시글이 다 너로 도배됐냐? 여서련 이게 아주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형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 앉지? 잔말 말고 날짜나 잡아. 형 이번에 승진해서 월급 넉넉하다.>

“알았어요. 다음주 내로 연락드릴게요.”

허벅다리를 꽉 쥔 채 서련은 애써 웃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벅지 안쪽이 타는 듯했다. 빨리 끊으려고 서두르는 기색을 눈치 챘는지, 전화가 끊어지기 전 사과의 말이 들려왔다.

<…미안하다, 서련아. 쉬어라.>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통화 목록 창이 뜬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서련은 쓰게 웃었다. 이찬은 늘 통화 끝에 미안함을 덧붙였다. 이유를 모르진 않았다. 이찬은 서련이 겪은 모든 일을 제 탓이라 여겼으니까. 현모에 참석하지 않는 부분에서조차 이찬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글쎄 괜찮다니까 그러네.”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고 서련은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근처 바닥을 클릭하자 도도하게 서 있던 캐릭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점프를 하며 몇 번 손을 풀던 서련은 준비운동을 마치자마자 채널창에 파티모집 글을 올렸다. 파티명은 간략했다.

[닭둘기 포탈 파티]

“어디… 다시 한 번 들쑤시러 가볼까.”

저 모집글이면 백이면 백 다 알아듣는다. 요새 서련이 공적작을 한다고 포탈을 타고 상대종족을 죽이러 다니는 건 뭐, 거의 공공연하게 알려진 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게임 내에 거의 살다시피 하다 보니, 악명이 높아졌고 저격에 제보까지 겹치니 언제부턴가 유명세가 생겨났다. 게임 좀 한다, 하는 유저들 사이에선 특히나 서련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역시나 파티모집을 시작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지원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지원자 순대로 파티 신청을 수락하며 서련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댕댕님은 오늘도 있으시려나.”

가보면 알겠지. 요새 또 하나 재미 붙인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상대종족 ‘댕댕이’라고 소문난 소환사 유저가 데리고 다니는 네임드급 사역마와 PVP를 뜨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네임드급 사역마를 ‘토순이’ 혹은 ‘돼끼’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토순이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냐면, 유저들 사이에서 죽일 수 있다, 없다를 두고 내기 판을 벌일 정도라고 할까.

같잖은 짓이라며 코웃음 치던 유저들도 점점 몰리기 시작해, 요즘은 주둔지 옆에 유저들이 직접 만든 내기창구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유명세는 전체 서버 1위라는 타이틀을 쥔 ‘묵요’라는 유저가 라히브라 서버로 서버이전을 해오면서 정점을 찍게 되었다.

한마디로 현재 서련이 있는 라히브라 서버는 사건사고의 온상으로 초토화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서버 내 내로라하는 유명인사가 죄다 이 서버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뭐…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그 생각은 정확히 두 시간 후 이 가는 소리와 함께 뒤집혔지만, 일단 현재 서련이 느끼는 바로는 그러했다.

[키키아: 다 정비 했음 갈까요]

모든 정비를 끝낸 유저들이 근처에서 점프를 하며 출발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서련은 도핑을 한 번 돌리고 재빨리 선두로 달려 나갔다.

작게 줄인 서련의 캐릭 뒤로 5명의 유저들이 쪼르르 따라붙기 시작했다. 모두 상대종족 영역으로 가기 위한 ‘포탈’을 타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서련이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에르덴’이라는 MMORPG 게임이었다. 필드 내 PVP 시스템이 도입된 접근성 좋은 타겟팅 게임으로,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국내 게임계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주 핫한 게임이었다.

에르덴에는 크게 3개의 종족이 있었는데, 유저들이 택할 수 있는 종족은 신성족과 신마족이었다. 남은 한 종족은 신을 배신하고 타락한 ‘레비아탄’으로 유저들의 공공의 적으로서 레이드나 던전용으로 많이 등장했다.

신성한 신을 모시는 ‘신성족’과 타락한 신을 모시는 ‘신마족’은 함께 할 수 없는 앙숙인 관계였다. 주둔지와 활동지가 다른 두 종족은 지옥의 바다를 두고 각기 다른 대륙에 존재했는데, 두 종족은 몇 시간마다 랜덤으로 생기는 ‘포탈’을 타고 서로 간의 영역이나 주둔지에 침범할 수 있었다. 이때 두 종족은 PVP를 뜰 수 있었고, 필드 내 그 어느 곳이든 상대 종족을 제재 없이 척살할 수 있었다.

유저들은 통상적으로 필드에서 뜨는 PVP를 '쟁' 혹은 '떼쟁'이라고 불렀다.

그 중 서련의 캐릭터 종족은 ‘신마족’이었다. 직업은 솔플과 PVP로 명망이 높은 ‘소환사’였다. 어느 직업이야 안 그렇겠냐만, 소환사는 특히나 유저의 컨트롤에 따라 PVP의 결과가 극명히 갈리는 직업이었다.

상태이상 스킬이 많은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사역마를 사용해 딜과 방어를 수동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빛을 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서련은 생각보다 소환사가 적성에 맞는 편이었고, 컨트롤을 꽤 잘 하기도 했다. 심지어 유저들 사이에서 컨이 좋기로 위명이 자자하기까지 하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악마 키키아’라는 말을 줄여 ‘앙키’라는 말이 유저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생겨났을 정도였다.

서련은 딱히 그런 말들에 귀 기울이거나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키키아: 포탈 타면 찢어지죠]

서련은 직업만큼 혼자 다니는 일에 익숙했다. 물론 길드원들과는 제법 어울리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공적을 얻기 위해 포탈을 탈 때엔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며 쏘다녔다.

[카렌: 예압]

[찰떡사랑: 다른 분덜은 걍 같이 다니시져?]

[몽못몹: ㅇㅇ]

다들 한가닥 하는 자들인지, 머리 위에 전부 훈장을 달고 있었다. 공적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증거였다. 웬만한 파티는 그냥 쓸고 다닐 수 있겠다 싶어서, 서련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카렌: ㄱㄱ]

[몽못몹: 앞에 닭둘기들 대기타고 있다네여]

[찰떡사랑: 몇말?]

[케케케: 한팟요]

[찰떡사랑: 그정돈 뭨ㅋㅋㅋㅋㅋ 키키님도 계신데ㅋㅋㅋㅋ]

[키키아: 갈게요]

포탈 앞에서 잠시 대기타고 제보를 기다리던 모두는 인원 제보를 받자마자 풀도핑에 들어갔다. 포탈이 곧 닫힐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 포탈 앞을 지키는 인원은 한 파티가 전부였다. 그 정도면 선제공격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할 만했다.

도핑을 끝내고 포탈을 클릭하자, 로딩화면을 시작으로 신마제국 땅에서 신성제국 땅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시야에 형상이 잡히자마자 서련은 무기를 빼드는 적대종족의 직업을 빠르게 스캔했다. 무기를 빼든 인원은 전부 6명. 직업은 모두 딜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할 만하겠네.

[걍카노: ㅅㅂ 키키아넼ㅋㅋㅋㅋㅋㅋㅋ]

[리드알: 아오 요 생키는 왜 자꾸 처오고 ㅈㄹ]

[비비락칼국수: 키키야 너 저번에 도발질 쩔더라?ㅎㅎㅎㅎ 내가 ㅅㅂ 어이가 없어서ㅎㅎㅎㅎㅎ 개처맞고 싶나]

[무바다: 어디 오늘 형들한테 두들겨 맞아보자ㅋㅋㅋㅋㅋ]

[신마제국/키키아: 아예]

서련은 친절한 대답을 해주곤, 파티원들이 전부 넘어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아직 무적시간이 풀리지 않아, 캐릭이 깜빡이고 있던 터라 눈앞의 신성족도 입맛만 다시며 서성일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파티원들이 넘어온 것과 동시에 두 종족의 피터지는 혈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선공은 서련의 광역기로 첫 시작을 알렸다.

[신마제국/몽못몹: 줘패준다는 생키들은 대체 누구?ㅋㅋㅋㅋ]

[신마제국/찰떡사랑: 어휴 컨들이나 키우고 와라. ㅈ같은 넘들아]

[신마제국/카렌: 아주 그냥 녹네 녹아]

[걍카노: 누구보고 ㅈ같대 **넘들이]

[신마제국/케케케: 열폭 쩌시고]

[무바다: 와 새1끼들 닶없네ㅅㅂ]

-신성제국의 ‘무바다’가 사망하였습니다.

-신성제국의 ‘걍카노’가 사망하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시스템창에 신성제국의 사망소식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리고 서련은 마지막 2명이 남자마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신마제국/키키아: 전 빠질게요. 수고하세요]

[신마제국/몽못몹: ㅅㄱㅇ]

[신마제국/카렌: 넵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케케케: ㅅㄱ]

-파티를 탈퇴하였습니다.

서련은 재빨리 파티를 탈퇴하고 평소 잘 다니는 한산한 길목으로 잽싸게 빠졌다. 그리고 사역마를 소환한 후, 근처를 서성이며 채집중인 신성족들을 하나하나 잡아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오토가 많네….”

아니면 오토 행세를 하는 유저라든가. 일단 다 죽여 볼까.

결국 서련은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반격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는 유저의 수가 열 손가락을 넘어 수십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오토 행세를 하다 죽은 유저들이 서련의 위치를 제보하기 시작했다.

지도 위로 바글바글 몰려드는 붉은 점을 힐끗 보던 서련은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높은 지형 위로 훌쩍훌쩍 뛰어 올라갔다.

아래에는 이미 바글바글 몰려든 유저들이 삿대질과 칼질을 하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밸벗들아: 너 ㅅㅂ 안내려오냐?!]

[만렙검사: 키키야ㅋㅋㅋㅋㅋ 형이 오늘 각잡고 채집좀 할라니까 장날이라고 와서 뒤통수를 후려쳐?ㅋㅋㅋㅋㅋ 이리좀 와봐라 생꺄ㅋㅋㅋㅋ 너도 오늘 각잡고 맞아보자 이**]

[닭비행: 아오 저 샛낀 왜 맨날 우리땅 와서 ㅈㄹ염뼝이여]

[왤왤: 키키야 형이 1억 줄테니까 좀 내려와봐라ㅋㅋㅋㅋㅋㅋ 형 재산 많다 샛꺄]

[신마제국/키키아: 그 돈도 없어 보이는데]

[왤왤: ㅡㅡ 너 왜 나 무시하냐 이 시밸아]

[밸벗들아: ㅅㅂ 이건 또 뭔ㅋㅋㅋㅋㅋ]

[신마제국/키키아: 10억 줘봐요. 내려갈테니까]

[닭비행: ㅈ까 이 샛꺄! 정면피빕은 후달려서 못 뜨냐?ㅋㅋㅋㅋㅋㅋ 아옼ㅋㅋㅋㅋ 컨은 ㅈ도 없어서 뒤치기나 하는 주제에 ㅅㅂ 내려오라니까 도발질만 족같이 해대네 ㅅㅂ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키키아: 아예]

[닭비행: 내려와서 일피로 뜨자고 샛꺄. 백미터 밖에서 도발질로 뒤치기나 하고 튀지 말고 **아]

[신마제국/키키아: 음]

[신마제국/키키아: 싫은데요]

[왤왤: 앙키야 형이 제발 부탁한다. 아 ㅅㅂ 형 눈물날라 그래. 제발 좀 너 한 번만 때려보자]

[신마제국/키키아: 그냥 우세요]

서련의 말에 밑은 다시 난리가 났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걸로 봐선, 스킬 캐스팅 대상 지목을 하는 것 같긴 한데, 거리가 닿지 않거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스킬이나 캐스팅이 실현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서련은 약 올리듯 그 상황을 내려다보다가, 유저들이 바글바글해질 때 즈음 건너편 절벽으로 날개를 펴고 활강했다. 따라오겠다고 끝까지 따라붙는 이들도 있었지만, 비행시간을 늘리는 옵션에도 상당한 마석을 투자한 서련을 쫓을 수는 없었다.

“댕댕님이… 가만 보자.”

제보창을 죽 훑어보자, ‘키키아’좀 잡아달라는 제보 다음으로 ‘묵요’ 새끼 좀 죽여 달라는 애원의 글이 가득 올라오고 있었다. 그 글을 쭉 훑던 서련은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서쪽 칼리카 부락 근처에서 거대한 토끼를 등에 업고 채집 겸 퀘스트를 하며 노닐고 있다는 누군가의 제보.

바로 ‘맴돌돌’이라는 유저의 제보현황이었다. 맴돌돌은 서련이 예전에 한 번 퀘스트 의뢰 일로 만났던 유저로, 그 이후 마음에 들어 연을 이어오고 있는 신성제국 쪽 소환사였다. 유독 혼자 다니는 서련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자, 요새 한창 재미 붙여 PVP를 뜨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물론 직접 맞붙는 건 사역마들이었지만.

그 유저가 왜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다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정적인 일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는데, 맴돌돌이라는 유저는 뭐랄까.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사람 좋은 느낌. 그의 주변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덩달아 좋은 사람이 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보고 있으면 하룻강아지 같은 느낌도 들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도 했다. 여러모로, 서련에게는 흥미롭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서련은 이내 효력이 다한 주문서들을 재도핑한 후 빠르게 서쪽에 위치한 칼리카 부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아.”

서련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탄식이 흘러 나왔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평소 잘 다니는 길목을 열심히 달리고 있던 차, 은신으로 숨어있던 어쌔신 파티에게 걸려 그대로 포위당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덫까지 쳐져 있는 걸 보아, 서련이 이곳을 지나갈 걸 미리 예측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뭐, 이 길목은 비단 서련뿐만 아니라 많은 고수(?)들이 애용하는 길목이기는 했지만.

그냥 운이 더럽게 없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베히모: 닥1치고 ㄱ?]

[칡칡칡: 앙키야 우리 요새 자주 본다? 요새 우리땅 와서 오만갑질 쩐다는데 왜 그르냐 형들 마음 아프게]

[코알라코: 걍 덤벼 ㅅㅂ 저놈 시간끌면 답없어]

[시나비: ㄱㄱ]

순식간에 여섯이나 되는 어쌔신들이 몸을 날려 왔다. 서련은 캐릭을 뒤로 훌쩍 물리고 사역마를 몸빵으로 돌렸다. 앞으로 튀어나가는 사역마에게 강화 버프를 걸고, 일시적으로 사역마가 강제로 어그로를 가져가는 ‘괴수도발’ 스킬을 활성화 시켰다.

[베히모: 아오 저 ** 트리 또 바꿨네]

[칡칡칡: ㅅㅂ 트리 몇개 판겨 대체]

[신마제국/키키아: 열개 될 걸요]

[시나비: 장난하나]

금방 죽을 줄 알았던 사역마는 의외로 아주 잘 견뎠다. 물론 방어력이 가장 높은 사역마를 소환한데다 최종 강화단계인 한계돌파 바로 전 단계까지 강화를 해 두었으니 어찌저찌 버티긴 할 테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버티고 있었다.

서련은 사역마가 죽을 타이밍에 맞춰 소환 캐스팅을 시전하고 이번엔 공격력이 센 사역마를 대체 소환했다. 그리고 스킬과 주문서로 캐릭의 순간 명중률을 최대로 올리고 그대로 사역마와 함께 돌진했다.

여기서 할 건 하나였다. 상태이상 스킬인 ‘망령의 저주’로 모두에게 변신 디버프를 씌우는 것.

그러나 서련의 행동을 미리 예측했는지, 어쌔신 전원이 마법 저항 쪽으로 도핑을 올인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련의 디버프 스킬은 보기 좋게 튕겼고, 반대로 역습을 당해 사역마를 다시 잃어야 했다.

[베히모: 안통한다 샛꺄ㅋㅋㅋㅋㅋ]

[칡칡칡: 어휴 앙키야, 우리가 등쉰이냐 당한거 또 당하게]

[시나비: 당황한거 보소ㅋㅋㅋㅋㅋㅋ 꼴좋닼ㅋㅋㅋㅋㅋ]

“역시 여섯 명은 좀 무린가….”

네 명만 되도 어떻게 해 보겠는데, 여섯 명은 확실히 좀 무리였다. 게다가 공속과 딜이 되는 어쌔신은 순간폭딜이 뛰어나 암습에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냥 져 줘야 되나, 라는 생각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스쳤을 때였다. 서련의 캐릭 옆으로 온통 흰 갑옷으로 도배된 신마제국 유저 하나가 유유히 나타났다. 머리 위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잘 알고 있는 닉네임이 떠 있었다.

<묵요>

[신마제국/묵요: 하하 좀 지나갈게요]

덕분에 다들 멍청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져야 했다. 서련 뿐 아니라, 칼을 쥐고 달려들던 신성족 어쌔씬들도 어정쩡한 자세로 홀연히 지나가는 묵요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유유히 지나가던 묵요의 앞은 금세 신성족들로 가로막혔다. 그것도 골이 잔뜩 난.

[베히모: 하하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ㅅㅂ]

[칡칡칡: 와 저 생키는 뭔데 저리 덤덤한겨 대체]

[시나비: 와나ㅋㅋㅋㅋㅋ 미쳤나 샛끼가ㅋㅋㅋㅋㅋ 와앀ㅋㅋㅋ 개처맞고 싶어가지고 환장했네]

[케로윈: 웬 미췬생키인가 했더니 ㅅㅂ 그 대단하신 전섭 1위시넼ㅋㅋㅋㅋㅋㅋ 개당당한 폼 보솤ㅋㅋㅋㅋㅋ]

[신마제국/묵요: 하하 친구끼리 왜 이래요]

[베히모: 친구? 친구?! 이 **가 도랐나]

[시나비: 이거 걍 미칭샛끼 같은데]

[칡칡칡: ㅋㅋㅋㅋㅋㅋㅋㅋ님 도르신?ㅋㅋㅋㅋㅋ]

“뭐, 이 정도면 할 만하겠네.”

평소에도 세 명 정도는 거뜬히 상대했으니, 옆에 있는 유저만 잘 도와준다면 여섯 명 쯤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서버 1위라고 소문난 유저인데 실력이 후달릴 일도 없을 테고.

물론 그건 그 전섭 1위라는 놈이 도와줬을 때의 얘기다. 아니, 얌전히만 있었어도 어떻게 비벼볼 만했을 텐데, 문제는 그놈의 1위라는 새끼가 옹졸하게 서련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것도 광속구로.

[신마제국/묵요: 다들 안 믿으시네. 흠, 아니면 제가 도와줘요?]

[베히모: 뭐래 이 호구생끼가]

[칡칡칡: 뭘 도왘ㅋㅋㅋㅋㅋㅋ얘 미챴냐곸ㅋㅋㅋㅋㅋ]

[시나비: ㅅㅂ 동족애도 없는 넘이네 이겈ㅋㅋㅋㅋ]

[케로윈: 아니 그래, 어케 도와줄건지 들어나보잨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묵요: 음 이렇게?]

-신마제국의 ‘묵요’가 신마제국의 ‘키키아’에게 ‘단발성-대결권’을 신청하였습니다. ‘단발성-거부권’이 없는 상대방은 대결권에 대한 거부권한이 없습니다.

-대결이 곧 시작됩니다.

-대결 시작 5초전.

-대결 시작 4초전.

뭐, 뭐?!

서련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눈까지 크게 뜨며 이것저것 확인해봤지만, ‘대결권’에 대해선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었다. 애초 저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터라 충격은 상상도 못 할 데미지가 되어 돌아왔다. 휘둥그레 뜬 두 눈에 들어온 건, 빨간 이름을 달고 선 채 저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묵요 놈이었다.

[묵요: 자 됐죠? 다들 의심도 많으셔 가지고 하핫]

상상도 못 한 건 저쪽도 마찬가지인지, 신성족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말은 없었다. 실제였다면 입을 떡 벌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잘 놀라지 않는 서련마저 입을 슬쩍 벌리고 있는 처지였으니까.

[시나비: 하... ㅅㅂ 캐시템이네]

[베히모: 르덴넘들이 이젠 돌았구나]

[칡칡칡: 와... 와... 팀킬 보소...]

-대결 개시

적진의 탄식 어린 말과 함께 서련의 모니터 화면 중앙에 대결 시작 문구가 떠올랐다. 멍한 정신을 겨우 밀어 넣고 서련은 재빨리 뒤로 빠져 사역마를 소환했다. 그러나 소환 직후 거리를 좁히고 다가온 묵요의 포획에 바로 구속상태가 되었다.

-신마제국의 ‘묵요’가 사용한 포획에 구속상태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묵요는 소환사가 상대하기 힘든 직업인 탱커였다. 뭐, 탱커는 힐러 빼고는 어느 직업이나 상대하기 힘든 직업이었지만.

서련은 재빨리 디버프 제거 물약을 먹어 구속을 풀어냈다. 푼 직후엔 다리를 묶는 주박을 묵요에게 걸고 사역마를 공격수로 전향해 묵요에게 돌진시켰다.

“그래, 뭐 얼마나 대단한지나 좀… 보자.”

시간을 끌면 유리한 건, 소환사였다. 소환사의 누적 데미지가 뒤로 가서는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탱커를 상대로 이기려면 무조건, 시간 끌기가 답이었다. 문제는 묵요 또한 그걸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마제국/묵요: 와 잘하시네]

묵요는 칭찬인지 도발인지 모를 말을 내뱉곤 상태이상 면역 스킬을 이용해 서련이 건 디버프를 잽싸게 풀었다. 그리고 ‘초인’ 스킬을 이용해 이동 속도를 대폭 올려 서련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넉백딜과 스턴딜을 번갈아 돌리며 포획을 날렸다.

[신마제국/키키아: 그쪽도 좀 하네요]

묵요의 태도가 달라진 건 서련이 도발성 짙은 말을 던졌을 때였다. 시종일관 사람 좋은 모습으로 웃던 묵요의 전신에 도핑의 흔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피통 위로 열 개가 넘어가는 버프와 주문서의 효과가 떠오르고, 트리계열이 공격성을 띠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 무시했던 것도 있었다. 나름 컨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한데, 전 서버 1위 타이틀이 헛 명성은 아니라는 걸 서련은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도 그럴게, 묵요의 스킬 이해도와 활용방식이 이렇게 뛰어날 줄은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스킬의 활용순서와 이에 대한 전환성은 확실히 서련보다 높았다. 아니, 상당히 높았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서련이 압도적인 차이로 질 정도랄까. 심지어 사역마를 공격 태세로 지정했는데도 묵요를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

“아… 진짜 잘하네.”

분하긴 했지만, 또다시 덤빌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한 번 느껴본 것으로 만족한달까, 확실히 다시 대결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신마제국/묵요: 뭐, 그쪽도 좀 하네요]

서련이 던진 말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왔다. 고의적인 도발에 서련의 눈매가 설핏 찡그려졌을 때였다.

띵동-

“!”

서련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초인종 소리가 거실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난 건지, 절로 한숨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제야 늦어도 아홉 시까지는 늘 들어오던 녀석이 지금까지 안 들어오고 있었다는 걸 상기했다. 걱정을 잊고자 게임에 몰두했던 것도.

서련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거실로 나가 현관을 열자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코앞에서 손을 한 번 휘저은 서련은 불편한 시선으로 앞에 서 있는 두 사내를 쳐다보았다.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를 부축한 사내가 서련을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 서련형. 어… 오랜만이죠…?”

누구더라. 서련은 눈을 살짝 굴리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서련의 기억 속에 이렇게 단정하고 멀끔한 남자는 없었다. 그걸 눈치챈 건지, 상대방이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 기억 안 나요? 저 원호요. 하진이랑 왜, 같은 반이었던 그… 형 예쁘다고 했다가 이 새끼한테 겁나 처맞았었잖아요. 그때 갈비뼈 두 대 나가고.”

“아.”

그제야 서련이 알은 체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현재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저 성하진이라는 녀석과 어울리던 발랑 까졌던 녀석. 고등학교 때와 달리 멀끔히 차려입어서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랜만이네. 하진이 데려오느라 힘들었지.”

“아뇨, 아뇨! 힘들긴요.”

“하진이 이리 줘.”

서련은 축 늘어진 덩치 큰 사내의 팔을 잡아 제 쪽으로 이끌었다. 타인의 손길에 축 처져 있던 사내의 몸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잡아먹을 것 같은 시선이 곧장 서련에게 향했다. 그러나 서련인 걸 확인하자마자 눈가는 금세 풀어졌다.

“서련아….”

서련은 한숨을 내쉬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덩치 큰 남자를 부축했다. 물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형이라고 불러.”

“형.”

그는 부스스 웃으며 순순히 형이라고 정정했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아, 오늘 고등학교 동창들 모여서요. 게임하다 걸렸는데, 저 새끼 혼자 벌주를 있는 대로 다 받….”

“야.”

대답은 원호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원호의 말은 도중 보기 좋게 끊겼다. 하진이 무서운 기세로 원호를 쏘아보며 말을 툭 자른 것이다. 그리곤 축객령을 쏟아냈다.

“너 그만 가라.”

“성하진 너 왜 그래, 기껏 데려다준 사람한테.”

“가라고.”

“하진아, 그만해.”

“하, 씨발….”

엄한 표정의 서련을 본 하진은 그대로 욕설을 내뱉곤 비척비척 걸어 욕실로 향했다. 덕분에 현관 앞에는 서련과 원호만 어색한 분위기 속에 남겨지게 되었다. 서련은 쓴웃음을 지으며 원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잠깐 들어왔다 갈래?”

“하하… 아뇨. 저 들어갔다 가면 저 새… 성하진이 저 죽일걸요?”

“…….”

“형 얼굴 봤으니 됐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좋긴 하네요. 아, 그리고 이거.”

원호는 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지를 서련에게 내밀었다. 받아서 열어보자 종류별 푸딩이 가득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이 와중에 하진이 놈이 편의점마다 들러서 다 털어온 거예요. 이거 형이 좋아하는 거잖아요.”

푸딩은 서련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아니, 밥보다도 더 좋아했다. 사다 놓으면 밥 대신 끼니로 챙겨 먹을 정도로.

“저는 그만 가볼게요, 형. 다음에 같이 한잔하시죠?”

“그래. 시간 되면 꼭 보자.”

“에이 말로만 그러지 말고요, 진짜.”

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말하는 원호의 태도에 서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원호도 씩 웃고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멀어졌다. 원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서련은 문단속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쏴아아-

씻고 있는 건지, 거실에는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가 가득 번졌다. 잔뜩 비틀거리더니 그래도 씻을 정신은 있었는지, 그 와중에 욕실까지 잘도 찾아 들어갔다.

한숨을 한 번 내쉰 서련은 하진의 방에서 잠옷으로 입는 옷을 찾아 욕실 앞에 놓아두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있네.”

그 실랑이를 벌이고 왔는데도, 게임화면 안에는 아직도 묵요놈과 어쌔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죽어 엎어진 제 캐릭 앞에서 춤까지 추며 노는 중이었다.

[신마제국/묵요: 앞으로 저 보면 걍 지나가 주시죠?ㅎ]

[베히모: 걱정마 샛꺄ㅋㅋㅋㅋㅋㅋㅋㅋ]

[칡칡칡: ㅋㅋㅋㅋㅋ절만 잘하고 지나가면 형들이 아주 레일을 깔아주맠ㅋㅋㅋㅋㅋ]

[시나비: 이열ㅋㅋㅋㅋㅋ 전섭1위 스케일이 사기급이시넼ㅋㅋㅋ 인성갑 쩔엌ㅋㅋㅋㅋ]

잘들 노네, 라는 시선으로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련은 슬슬 귀환 준비를 했다. 여기 더 있어 봐야 득 볼 것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포탈을 다시 탈까, 이대로 종료할까, 고민하는 시련의 시선에 묵요의 의미심장한 말이 포착되었다.

[신마제국/묵요: 근데요]

한껏 신나 점프며 공중제비를 하며 뛰놀던 어쌔신들이 일동 멈추고 묵요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묵요는 어딘지 쉽게 말을 붙이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신마제국/묵요: 절은 그쪽에서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요의 광역 넉백딜이 어쌔신들에게 쏟아졌다. 넘어진 게 셋, 스턴에 걸린 게 둘, 저항한 게 하나. 묵요는 그들 중 저항한 유저 하나를 포획해 끌어당기며 상큼한 톤으로 말을 이었다.

[신마제국/묵요: 애초에 공적 혼자 차지하려고 저분 죽인 거라]

그러니까 저 말을 정리하자면, 묵요가 서련을 죽인 건 어쌔신들의 공적을 혼자 차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둘이 싸우면 차지하는 공적이 반으로 주는데, 혼자 다 죽이면 일단 모든 공적 포인트는 본인 게 되기에 그걸 독차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얍삽한 놈이었네.

저러니 저 자리까지 올라갔지. 서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대로 화면에 뜬 귀환 버튼을 클릭했다. 오늘은 이쯤에서 접고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내일 아르바이트도 가야 하고.

하진이 사온 푸딩을 까서 한 입 퍼먹은 서련은 마지막으로 ‘묵요’의 방명록을 찾아 들어갔다.

“템빨부터가 나랑 다르네.”

지는 게 당연한 건가. 서련은 작은 스푼을 입에 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묵요의 장비를 쭉 훑었다. 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에르덴 최고템부터 신석과 마석을 박을 수 있는 최대 칸까지 겸비해 템부터가 사기적이었다. 게다가 어지간히 현질을 한 건지, 강화는 기본으로 다 MAX를 찍고 있었다.

“…뭐야, 왜 이 새끼 걸 보고 있어.”

“!”

뒷목을 스치듯 들려온 소리에 서련의 어깨가 뻣뻣이 굳어졌다. 저도 모르게 숨을 헉 들이켠 서련은 눈을 깜빡이며 뻣뻣한 자세로 목을 돌렸다. 바로 뒤에는 머리 위에 수건을 얹은 하진이 스산한 시선으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은 깼어?”

서련은 푸딩을 슬쩍 치우며 물었다. 하진은 그제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서련을 내려다보았다. 평소보다 나른하게 풀린 눈매가 아직 취해있다는 걸 단번에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다 깼다고 부러 거짓말을 했다.

“어. 그러니까 그거 한 입 줘 봐.”

하진이 가리킨 건 서련이 슬쩍 치운 푸딩이었다. 평소에 단 것이라면 거들떠도 안 보면서, 하진은 유독 술이 올라왔을 때만 서련에게 ‘한 입’을 요구했다.

서련은 순순히 푸딩을 퍼서 하진의 입가에 옮겨다 주었다. 덥석 받아먹는 하진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삼켜 먹었다.

“이 새끼 거는 왜 보고 있었는데.”

어쩔까 하다가 서련은 솔직하게 묵요에게 당한 일을 말해주었다. 대수롭지 않게 죽었다고 말하자, 하진의 눈매가 설핏 일그러졌다.

“죽었다고? 저놈한테? 저 새끼 여기 섭 아닐 텐데?”

“네가 어떻게 알아?”

“왜 몰라. 저 새끼가 내….”

“내 뭐.”

“…어쨌든 저 새끼한테 발렸다는 거 아니야.”

새끼가 뒤지려고 동족상잔을 하고 지랄이야. 나름 작게 말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 소리는 서련의 귓가에 살벌한 모양새로 흘러들어왔다. 하기야, 서련보다 에르덴을 더 일찍 시작한 게 바로 하진이었다. 그렇다고 같이 하는 건 아니었고, 하진은 시간이 비면 간혹 하고 있는 정도였다. 사실 서련은 하진이 어느 서버이며, 무슨 직업을 키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하진과 서련은 생활 패턴이 달랐다.

“성하진, 가서 잠이나 자.”

“너는.”

“형이라고 안 부르지.”

“형은.”

하진은 바로 정정했다. 그놈의 형이라는 소리가 입에 어지간히 안 붙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술에 취했을 때, 그 형이라는 호칭은 더 얄팍해졌다.

“나도 자야지.”

하진의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안 말리고 이대로 잘 것 같아서, 서련은 급히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하진이 더 빨랐다. 수건을 내팽개치고 그대로 서련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채 일어났다.

“성하진, 너…!”

“가만있어봐, 어지러우니까….”

하진이 향한 곳은 서련의 침대였다. 서련을 안은 그대로 하진은 이불 안으로 꾸물꾸물 파고들었다. 옅은 술 냄새와 함께 시원한 향기가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빠져나온다고 발버둥 치는 서련의 귓가에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말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아버지가 좀 보재.”

서련의 몸이 움칫 굳어졌다. 굳어진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잊고 싶은 현실을 직시해주었다.

“…언제?”

“너 시간 날 때.”

너. 그리고 형. 서련과 하진은 재혼가정의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였다. 하진은 아버지쪽 친자식이었고, 서련은 어머니쪽 친자식이었다. 부모님들이 재혼을 한 건 서련이 17살 때, 하진이 16살 때였다.

하지만, 이 관계는 5년이라는 세월 끝에 막을 내렸다. 작년 말, 부모님들이 도장을 찍고 갈라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하진과 서련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버지, 아니 이제는 남이 된 하진의 아버지가 서련의 대학 졸업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물론 거기에 하진의 입김이 있었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알았어.”

“알았으면 그만 자. 졸려… 죽겠으니까.”

나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축축 처지는가 싶더니, 이내 긴 숨소리가 서련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허리에 휘감긴 팔이 단단하게도 얽혀 있었다.

아직 종료되지 않은 PC 화면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지만, 끄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서련은 긴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아야 했다. 이 와중에도 반밖에 먹지 못한 푸딩이 아쉬움을 남게 했다.

***

알바 시간이 몇 시였더라…. 서련은 꿈결에 웅얼거리며 베개 주변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가 탁 걸리자마자 잡아 쥐고 비몽사몽한 시야 안으로 끌어왔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시각은 오전 11시였다. 기억을 더듬어 알바 시각을 떠올린 서련은 조금 더 자두기로 했다. 옆에서 타닥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타다닥- 딸깍-

혼몽한 정신으로 눈을 뜨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익숙한 덩치의 뒷모습이 보였다. 눈을 한참이나 깜박이던 서련은 뒤늦게야 얼굴을 쓸어내렸다. 헤드셋까지 낀 채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성하진이었다. 어제 술에 취해 여기까지 쳐들어와 대자로 뻗어 잤던.

나름 서련을 안 깨우겠다는 일념으로 헤드셋까지 낀 것 같긴 한데, 아니. 덩치에 맞지 않게 키보드도 살짝살짝 두드리는 것 같긴 한데, 비스듬히 보이는 표정이 험악했다. 뭐하는가 싶을 정도로 험악한 표정에 서련은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그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하,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이젠 아주 이까지 갈고 있었다. 서련은 힐끗 모니터를 훔쳐봤다. 가만 보니 서련의 ‘키키아’캐릭을 이용해 2:1로 누군가와 PVP를 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2명의 상대 중 하나는 ‘묵요’였다.

‘질 거 같은데.’

어제 묵요의 컨을 제대로 경험했던 터라 그의 대단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서련은 하진이 이길 거라는 기대는 티끌조차 하지 않았다. 못한다는 게 더 정확했다. 어디 얼마나 발리려나, 하는 생각으로 무심히 지켜보길 한참. 시간이 지날수록 서련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서련이 1:1로도 상대를 못 했던 묵요를 하진이 2:1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보드를 힐끗 보자 손가락이 안 보이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스킬 간 발생하는 텀이 조금도 비지 않았다. 스킬을 훑고 쓰는 전략방식이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

얘 뭐야….

나름 살금살금 두드리던 키보드가 뒤로 가서는 큰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움직이는 손가락이 멈춘 건, 모니터 화면 위로 ‘전투 승리’라는 문구가 떠올랐을 때였다.

“나대고 있어, 새끼가.”

“…….”

서련의 표정이 멍해졌다. 온갖 회의감이 스며드는 와중에도 얘는 뭘 먹고 이렇게 게임을 잘하는지 궁금증이 밀려왔다. 하진이 이렇게나 게임을 잘하는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도 충격요인 중 하나로 다가왔다.

얼마나 그렇게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었을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슬쩍 내리자 그대로 하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제의 나른한 눈매가 아닌 날카롭고 차가운 눈매가 서련을 응시하고 있었다.

“추우면 얘기를 하든가. 양도 아니고, 이불을 둘둘 말고 다니고 있어.”

“안 추운데.”

서련의 말에 하진이 얼굴을 팍 찡그렸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모습이 이불을 둘둘 만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서련은 이불을 도로 침대 위에 놓고 하진에게 다가갔다. 하진은 좀 전보다 더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서련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딱히 별말을 하진 않았다.

“손은 또 왜 다쳤는데.”

서련의 시선이 제 엄지손가락으로 향했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없던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안쪽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또 귀신같이 찾아낸 모양이었다. 알바 하다 가위 끝에 쓸려 베였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서련은 다른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크게 안 다쳤으면 됐잖아.”

“살이 다 베여 갈라졌는데 뭐, 크게 안 다쳐? 다시 말해봐.”

또 시작이네. 서련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뒤에서 하진의 따가운 외침이 들려왔지만, 일단 무시하고 냉장고부터 열었다. 어제 하진이 사다 놓은 것을 먹기 위함이었다. 하나 잡고 따자, 언제 다가온 건지 하진이 뒤에서 잽싸게 뺏어 들었다.

“밥부터 먹어.”

서련은 눈동자만 힐끗 올려 하진을 올려다보았다. 하진은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푸딩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서련은 다시 하진을 불렀다.

“하진아.”

“눈은 왜 그따위로 뜨고 보….”

“꿀물 타줄까.”

하진의 입이 턱 다물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홱 돌리고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 씨발, 내가 진짜….”

그 한마디에 K.O를 당한 하진은 순순히 방으로 몸을 돌렸다. 귀 끝이 달아오른 게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하진이 다시 방에 들어간 걸 보고서야 서련은 냉장고에서 꿀을 꺼냈다. 물론 푸딩도 함께.

그리고 푸딩을 한입 퍼먹고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냉장고 앞에서 하진이 서련을 이긴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뜻하게 탄 꿀물을 가지고 들어가자, 아직 서련의 캐릭터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하진의 모습이 보였다. 뭘 그렇게 고심해서 하는지, 모니터를 보는 시선은 심각했다. 그러나 곧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데, 덕분에 서련의 시선도 그쪽으로 옮겨졌다.

“…아.”

모니터 화면에는 마지막까지 하지 못했던 사역마의 최종 강화단계의 성공 멘트가 떠 있었다. 뭘 그렇게 하나 했더니, 강화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강화 성공과는 별개로 서련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저기서 실패했다면 이제까지 해 놓은 모든 강화 단계를 잃었을 것이다.

“저걸 여태 못하고 있어. 말을 하든가.”

“말하면.”

“이거 안 보여?”

“…그래, 너 신의 손이다. 됐으니까 이거나 마셔.”

서련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하진에게 꿀물을 내밀었다. 하진의 손끝이 서련의 손등을 스치듯 쓸고 지나갔다. 혹여 놓쳐 깨지기라도 할까, 하진은 늘 노심초사하며 물건을 받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점심은 어떻게, 먹을 거야?”

따로 타온 커피를 홀짝이며 서련이 애써 태연한 모습으로 물었다. 물론 대답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정오가 막 지난 시각. 휴일이든 아니든, 둘만의 시간을 온전히 지낸 적은 이제껏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가야 돼. 약속 있어.”

“그래.”

“늦어도 밤 9시 전까지는 들어올 거야. 반찬 해놨으니까 차려 먹어.”

거리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하진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잔이 비자 마자 몸을 일으켰다. 스치듯 지나가는 하진의 몸에는 서련의 향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막 방을 나서기 직전, 하진이 서련을 돌아보았다.

종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는 서련을 낮게 불렀다.

“형.”

“응.”

“내가 찾아갈까, 네가 직접 말할래.”

차가운 시선으로 내뱉어진 말. 그 말뜻을 서련은 바로 파악했다. 서련이 아무 말도 않자, 벽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답을 종용하는 말이다. 결국 서련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할게.”

“생각 잘했어. 다녀올게, 형.”

이럴 때만 형.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지기까지 서련은 엄지에 붙은 반창고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쓱 쓰다듬은 후에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바로 통화목록을 찾아 연결하자, 고작 이틀밖에 하지 못한 알바 사장님의 목소리가 얼마 가지 않아 들려왔다.

“네…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일이 생겨서 알바는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네, 네. 죄송합니다…. 네.”

나름 몰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상대방 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안다. 그런데도 이 상황이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게임이나 하자.”

우울한 얼굴로 바닥을 보고 있던 서련은 이내 뺨을 툭툭 두드리며 방금까지 하진이 앉아있던 자리에 풀썩 앉았다.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아직 화면에 떠 있는 강화 성공 메시지랄까.

“오늘 1분이라도 늦어봐라, 성하진.”

모니터를 보며 서련은 그 말만 내내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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