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21/22)

13

“잠깐만, 기다려.”

“죄송해요, 못 기다리겠어요.”

도착한 아파트 현관문을 닫자마자 뒤에서부터 끌어안는다.

머리카락을 걷어낸 입술로 귓불을 더듬고 소리를 내며 키스를 해주니, 피부의 감각보다 먼저 그 소리에 정신을 빼앗았다.

그것은 제 안에서 파문처럼 잔잔하게 울리고 퍼져서 오랜만의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해변의 차 안에서 몇 번이나 키스한 다음, 헤어지기 아쉬워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한 것은 누구였을까?

도로변에 있는 그렇고 그런 호텔로는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고, 역 근처 시티 호텔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차를 세운 것은 미나토의 아파트와 가까운 무인 주차장이었다.

4층짜리 계단을 올라 방 앞에 서서도 둘 중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자물쇠를 열어 안에 들어가자마자 껍질 한 장이 벗겨진 것처럼 분위기가 돌변했다.

반복해서 미나토의 이름을 부르며 귓가를 더듬던 키스가 마침내 턱의 안쪽 부분에서 목으로, 목덜미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부드러웠던 키스가 어느새 점점 집요하게 변해가면서 두 사람 모두에게 익숙한 키스조차 마치 처음처럼 살결이 떨렸다. 그곳을 찾듯, 오기오라는 몸 이곳저곳을 긴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도망치려는 허리를 강한 팔로 되돌려 놓았다.

“미나토, 선생님….”

그대로 귀에 쏟아지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작았다.

이미 알고 있는 그 울림이 닿자,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나른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턱을 잡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자신을 보라 했다.

그대로 제 숨마저 집어삼킨 것 같은 키스. 그것을 받아드리고 있지만 제 안 어딘가에 사라지지 않은 위화감을 느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재회하고 나서 몇 번이고 나눴던 키스나 포옹, 전해지는 체온이 평소와 같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났다. 그때도 지금도 곁에 있는 것은 오기와라인데, 빈자리가 없는 퍼즐 조각이 아주 약간 어긋났다.

“응…읏.”

머리 한구석이 흐릿하게 있는 동안 얽힌 혀끝에 세게 이를 갖다 댔다. 어느 틈엔가 떨어졌던 눈꺼풀을 도로 들어 올리자, 몹시 가까워 초점이 맞지 않은 시야 안에 이쪽을 응시하는 오기와라와 눈이 마주쳤다.

여태껏 그리도 날카로웠던 눈빛이 부드럽게 변한 것을 직접 확인하자, 서서히 전율이 번져나갔다. 각도를 바꾼 키스가 더욱 깊이 포개어지면 거기서 전해지는 체온에 무척 안도했다.

몇 년 전 그때는 무엇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오기와라의 본심 따위 생각할 틈도 없이 끝나버렸다.

재회한 다음 날, 두 번째로 그와 관계를 맺을 때 역시 오기와라가 자기 좋을 대로만 밀어붙여 거기에 휩쓸렸다.

그 뒤에도 난폭하게 대하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시선을 마주하며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고 닿아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

시선을 느꼈는지 일단 키스를 멈춘 오기와라가 작게 말했다.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이번에는 미나토 쪽에서 턱을 들었다. 그의 입술에 닿지 않는 대신 오기와라의 턱 아래에 제 입술을 내려놓았다.

놀란 듯이 움직이는 얼굴을 쳐다보며, 까슬한 피부 감촉과 익숙한 향기에 정말로 오기와라구나, 하고 실감했다.

“좋아해.”

저도 모르게 나와 버린 말은, 단 세 글자였다. 어린아이도 아는 말이지만 지금 미나토 안에 가득 찬 것은 그 감정뿐이었다.

순간 가까이 있는 오기와라가 곤란한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왜 그러나 싶어서 고개를 들고 손끝으로 조금 전까지 닿았던 그의 입술을 매만지자 갑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버린다.

처음에는 닿기만 하다가 돌연 날카로운 아픔을 느껴 손가락과 함께 손을 빼려 했지만, 별안간 몸이 반대로 돌았다.

이내 현관문이 아니라 그 옆의 벽으로 등이 밀렸고, 마주 선 오기와라가 세게 껴안아 와 미나토는 약간 숨이 막혔다.

“오기와라…? 응… 읏.”

“저도, 요.”

신음하는 듯 대답마저 집어삼키는 키스가 입술 깊은 곳까지 밀어닥쳤다. 깊은 곳을 더듬으며 호흡조차 불안한 가운데, 목덜미 근처를 세게 끌어당기는 통에 소리를 내며 넥타이가 풀렸다.

뜨거운 손바닥으로 가슴께부터 옆구리 라인을 쓰다듬는 동안, 어느새 셔츠 앞부분은 완전히 벗겨졌다.

“응,… 후, 우.”

각도를 바꿔가며 되풀이되는 키스를 따라가지 못한 채 얕게 이어지는 호흡 사이로 소리가 섞였다. 흔들리며 몸을 달싹거릴 때마다 벽에 스쳐져 어렴풋한 기척을 만드는 뒷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며, 앞쪽에서 얽어맨 혀끝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질척한 물소리에 정신마저 타버릴 것 같다.

곧 멀어진 키스가 턱에서 목으로, 좀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감각만으로 쫓아가며 미나토는 힘이 빠진 손을 벽에 기댔다.

“응, 기다려, 오기와라.”

내뱉는 말이 날숨에 섞여 작게 조각났다.

뿔뿔이 허공에 흩어진 그것이 얕은 헐떡임으로 변해 자신의 숨소리까지 자신을 부추겼다. 훤히 드러난 피부를 더듬는 자극에 등줄기가 움찔하고 작게 요동쳤다.

이내 능숙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가슴께에서 유독 다른 색을 발하는 그곳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느덧 뾰족해진 그곳은 만져질 때마다 서서히 열을 띠어, 괴로운 듯 근질거리는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만져지는 것만으로 그리되어버린 곳이 실은 키스에 약하다는 사실을 자신도 안다. 그래서 닿아있는 손가락만으로는 아쉬워 다음을 기대하는 것을 그는 알는지.

“…미나토 선생님, 여기, 좋아하죠?”

쇄골을 따라 가슴에 닿은 날숨이 속삭이자,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피하듯 돌린 턱을 움켜잡아 물어뜯을 것처럼 키스했다.

떨어진 입술이 웃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든 눈을 뜬 미나토의 시선 끝, 오기와라가 자신의 가슴께에 살짝 솟아오른 곳으로 입술을 가져다 대는 것이 보였다.

목 안쪽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거기에 지지 않겠다는 양, 키스는 목을 더듬어 달콤하게 깨물어 와, 몸 중심에서 무언가 강렬한 느낌이 내달렸다.

지금 입을 열면 당장에라도 터무니없는 소리를 낼 것만 같아 미나토는 필사적으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가슴 한쪽에 그리 키스를 하면서 다른 한쪽은 손끝으로 짓누르며 문지르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전혀 다른 자극이 몸속에서 흐름을 만들어 제 안쪽에서부터 열이 올라갔다.

그때마다 몸도 마음도 그 열에 기대어 녹아들었다.

필사적으로 힘을 실은 무릎은 바들바들 떨렸다.

등을 기댄 벽에 손톱을 세우고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데, 그 인내마저도 열을 증폭시킬 뿐이다.

기다리라는 간곡한 애원에는 대답을 회피하고, 대신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바지 속으로 들어온 손바닥에 깜짝 놀라 전신이 튕겼다.

열을 품고 형태를 바꾼 것은 이미 한계에 도달할 지경이었다.

그랬기에 갑작스러웠던 급격한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주춤거리며 허리가 도망쳤다. 턱부터 귓불을 핥던 입술이 특유의 물컹한 소리를 넌지시 귓가에 흘려 넣었다.

“또 어디를 만져줬으면 좋겠어요?”

“응, 싫… 읏.”

목 안쪽에서 내지른 소리에 응하듯 그 부분을 잡고 있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추기듯이 표면을 문지르고 움켜쥐듯이 비벼대다가 손끝으로 따라 그렸다. 그때마다 그곳은 빠르게 열을 모으고 미나토로부터 생각을 빼앗아 갔다.

“으앗, 응, 싫.”

절박해진 호흡에 소리가 섞였다. 눈을 꼭 감은 채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일을 당하는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뜨거워졌다. 그런 주제에 몸 깊은 곳에는 더 해주기를 바라는 자신이 있어 상반된 욕망과 열기로 후끈거렸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든 얼굴을 들자마자 입술을 가볍게 쪼아대며 똑바로 서 있으라고 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의식중에 눈으로 좇으면 그 끝에서 오기와라가 무릎을 꿇었다.

오른쪽 무릎은 괜찮을까, 하고 머릿속으로 언뜻 생각하다가 그다음 광경에 숨이 멈췄다.

오기와라가 손바닥으로 쥔 그곳에 키스했다.

미나토가 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올려다보는 형태로 입에 머금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드럽고 축축한 체온이 그것을 감싸자 오싹할 정도로 쾌락이 휘몰아쳤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미나토는 벽에 손톱을 세우고 있던 두 손으로 오기와라에게 매달렸다.

기다려, 라고 호소하는 음성이 도저히 들어주기 힘든 색을 띠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허리 깊숙한 곳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댔다. 길들이는 듯이 왕복한 다음 안쪽으로 파고든 손가락의 목적을 미나토는 잘 알기에 수치심에 휩싸였다.

손으로 움켜쥔 오기와라의 머리카락을 약하게 당길 때마다 예민한 부분을 노린 듯이 핥아왔다. 점도 짙은 쾌락의 바닥에는 끝이 없었고, 미나토는 떨어지는 그대로 끌려다니며 마침내 의식이 크게 튀었다.

일순 힘을 잃고 쓰러지는 몸을 강한 팔로 그는 얼른 받쳤다. 그리곤 어깨를 부축하며 안쪽의 침대로 데려갔다.

얌전히 누운 시트 위에서 얕게 숨을 뱉으며 미나토는 곁에서 셔츠를 벗는 등으로 손을 뻗었다.

“선생님? 왜 그러―.”

재빨리 돌아보는 오기와라로부터 닿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잡고 있던 손목을 어떻게든 당겨서 미나토는 오기와라의 손바닥에 키스했다.

내려다보는 오기와라가 괴로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 반응에 약간 흠칫거렸을 때, 갑자기 양쪽 손목을 잡혀 시트 위로 파묻혔다. 덮쳐온 체중에 짓눌린 것처럼 호흡을 빼앗기자, 답답한 그 이상으로 기뻤다.

한껏 뻗은 팔로 넓은 등에 매달렸다. 키스를 멈춘 오기와라의 손으로 관자놀이와 뺨, 귓불을 문질렀고, 눈가와 뺨, 입술 끝에 입을 맞췄다. 처음 느끼는 감각에 허우적거리며 이런 식으로 자신이 오기와라에게 안긴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

다시 입술을 막은 체온을 받아들이며 자신도 혀를 뻗었다.

처음으로 하는 행위였지만 약간의 망설임도 느끼지 못했다. 얽히고 깊숙이 파고들며 끌어당길 때마다, 확실한 무언가가 가슴 속에 내려왔다.

입술에서 목으로 내려가던 키스가 가슴께에 도달할 즘에는 다리를 벌린 손으로 허리 안쪽의 그곳을 몹시 다정하게 만져왔다.

얇은 속껍질을 사이에 두고 간질이는 듯했다.

도망치려 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아니 실은, 도망치는 것 따위 바란 적도 없다. 서서히 늘어지는 쾌락은 고통과 닮아서 가슴께 있던 키스가 허리부터 아래로, 일단 끝나는 곳까지 도달했을 때는 미나토는 소리도 없이 헐떡이기만 하게 되었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꺼풀을 들었다.

번져서 윤곽이 흐려진 시야 속, 코끝이 닿을 거리에 오기와라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의도는 전해져, 미나토는 어떻게든 턱을 들었다. 가까스로 도달한 오기와라의 아랫입술에 입술을 내려놓고, 힘이 빠진 손으로 그의 팔에 손톱을 세웠다.

스치기만 하고 멀어지는 키스를 거듭하다 미나토의 혀를 딱 한 번 깨물고 오기와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독하게 다정한 몸짓으로 무릎을 쥐고, 얼굴을 마주한 채 깊은 곳까지 포개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그 행위에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웅크려 앉은 오기와라가 한 번 더 입술에 키스했다. 미나토의 등을 꼭 끌어안고 몸을 겹치나 싶더니 낮게 속삭였다.

“아마 부드럽게 못 할 거예요. …꽉 잡아주세요.”

쉬어서 끊어질 것 같은 그 목소리가 훤히 드러난 신경을 튕겼다. 허리 깊은 곳에 있던 압박감이 느닷없이 꿰뚫어서, 목 깊은 곳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작된 파도는 부드러운 듯 때때로 거셌고, 미나토는 따라가기만으로도 벅찼다. 소리를 낼 때마다 뺨을 타고 내려온 입술이 관자놀이와 눈가에 키스했다.

그 행동은 다정한데도 밀어 올리는 움직임에는 가차 없었다.

“앗, ―응응.”

깊은 곳을 꿰뚫리는 감각은 쾌락뿐 아니라 두려움도 들어 있어서 그 때문에 소리가 절박했다. 그것이 거슬렸는지 허리에 있던 손바닥으로 다리를 더듬어 열을 띤 부분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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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으로 덮쳐오는 감각에 몸을 뒤로 젖힌 채로 목을 물려 미나토는 도망칠 길 없는 곳으로 쫓겼다.

이대로 몸이 통째로 터져 사라져버릴 것 같다.

문득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오기와라와 함께라면 그마저도 좋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 감각으로 미나토는 잠에서 깨어났다. 의식이 반쯤 잠든 채 그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소형 책장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릴 수 없는 책만 엄선해서 꽂혀 있다. 방안에서 미나토가 가장 느긋하게 지내는 장소였다.

학원 가야지, 생각하다 오늘은 휴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나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뒷머리를 쓸어 넘기며 만져왔다. 그것을 따라 빙글 고개를 돌려 눈을 가늘게 떴다.

“잘 잤어요? 슬슬 배고플 시간인데 일어날 수 있겠어요?”

미나토가 누운 침대의 베갯머리에 턱을 괴고서 오기와라가 웃었다. 짓궂은 미소와 의미심장한 웃음은 자주 봤지만 오기와라의 티 없이 환한 미소는 무척 귀하다.

고개만 향한 상태로 미나토는 말도 없이 넋을 잃고 말았다.

여태껏 머리를 쓸어 넘기던 손이 머리카락을 짧게 묶어 쥐고는 휙 잡아당겼다.

그대로 얼굴 당겨지면서 바로 부드러운 키스가 호흡을 빼앗았다. 가볍게 빨다가 떨어지는 키스는 장난치는 것 같으면서 열을 품어 살짝 닿는 동안에 혀끝으로 핥거나 이를 세우며 더 깊이 들어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부족함에 조른다기보단 본능처럼 움직였던 손끝이 오기와라의 머리째로 끌어안자, 상을 주는 것처럼 뾰족하게 세운 혀끝으로 입술 틈을 가르고 들어왔다.

얽혔다가 떨어졌다, 빨아들이다가 깨무는 키스에 희롱당했다.

“읏응, 후.”

귀에 닿는 소리가 요염했다. 누구의 것인가, 하고 멍하니 생각하면서 입술 구석에서 움직이는 체온에 응하는 동안, 깊은 곳에서 물 밖으로 건져낸 것처럼 주위에 소리가 돌아왔다. 그렇게 미나토는 자신이 침대에 누운 채 오기와라의 목에 매달려 키스를 조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손이 멈췄다. 입술이 멀어지는 것에 당황하고 조금 실망한 채로 눈을 뜨면 기쁘게 웃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잠 깼어요? 부족하면 좀 더 강한 자극을.”

“…됐어! 이제 충분하니까!”

깜짝 놀라 내지른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거칠다.

벌떡 일어나 피부를 미끄러지는 모포의 감촉에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품을 물고 모포를 감자 바로 곁에서 “감추지 않아도 되는데.”라며 웃는 소리가 났다.

“저기, 나 샤워하고 옷 입을 거니까!”

“그렇게 하세요. 멋대로 집안의 물건 손대서 죄송하지만 갈아입을 옷 골라 놨어요.”

기다렸다는 듯 셔츠에 치노팬츠에 속옷을 함께 건넸다. 두 손으로 받아들고 어색한 시선을 주자 오기와라는 기쁜 듯 웃었다.

“…미안, 진짜 미안한데 먼저 샤워해야 해서. 그리고 저기 지금, 옷 안 입었으니까.”

“몸은 닦았으니까 그대로 옷 입어도 괜찮아요. 시트도 갈아서 빨았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뭣.”

반사적으로 미나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모포도 시트도 뽀송뽀송한 것이 피부에 닿는 감촉도 좋았다.

“…몸을 닦았다니, 오기와라가?”

“여기엔 저밖에 없으니까요. 뭐 달리 누가 있다고 해도 절대로 양보할 생각 없지만요.”

논점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낼 여유는 없었다.

지금 저 대답은 미나토가 늘어진 동안, 행위의 뒤처리도 전부 오기와라가 해버렸다는 말로―이전에도 있었던 일인데 어째서 오늘 아침은 도저히 못 배길 것 같은 기분일까.

이 나이 먹고서, 란 생각과는 반대로 온몸이 확 뜨거워졌다.

모포를 걸친 채 나란히 모아 세운 무릎에 머리를 묻고 신음하고 있으니 옆에서 쭉쭉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무시해도 끈질기게 해대기에 할 수 없이 약간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던 오기와라와 눈이 마주쳤다.

“미나토 선생님, 어제하고는 다른 의미로 엄청 귀엽네요.”

“…있잖아, 오기와라. 내가 몇 살 같아?”

“내 앞이라면 귀여워도 상관없잖아요. 하지만 다른 녀석 앞에서는 그런 모습 보여주지 마세요. 아까우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어른을 놀리면 안 된다니!”

지금 어미가 끊어진 것은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갑자기 눈가에 키스를 당했기 때문이다. 눈가를 살짝 깨문 키스는 얼굴 이곳저곳을 빨다가 끝에는 머리째로 끌어안고 입술을 막아, 미나토는 도망칠 곳을 잃었다.

그 뒤에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오기와라의 시선을 받으며 침대 위에서 모포를 벗고 옷을 입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기와라는 꽤 일찍 일어났는지 근처 빵집에서 야채가 듬뿍 들어간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 둔 상태였다. 거기다 재빨리 끓인 스프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둘이서 식사하는 것은 익숙할 텐데, 어쩐지 부끄러워서 진정되지 않았다. 분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나토뿐인 듯, 식사 중에도 오기와라는 툭하면 장난을 쳤다. 그럴 때마다 빨개졌다가 파래졌다가 하는 자신이 곤란해서 한숨이 나와 버렸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나는 나이도 많으면서 위엄이란 게 없는 모양이야.”

그런 주제에 나이 차가 신경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한숨을 쉬고 있자, 오기와라는 식후의 커피를 미나토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요. 막상 닥치면 미나토 선생님은 무서워요. 아마 저 같은 건 상대도 안 돼요.”

“…어디가?”

“비밀. 연인의 특권이니까요.”

“연인.”

앵무새처럼 따라서 입에 담았다가 뒤를 잇지 못했다. 입가로 가져간 컵을 든 채로 굳어 있자 오기와라가 눈썹을 찌푸렸다.

“설마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니죠? 기억 안 나면 당장.”

“아냐, 괜찮아, 다 기억하니까! 그렇구나, 연인이구나.”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는데도 오기와라의 얼굴은 반신반의했다. 아무래도 곤란하다고 자각한 미나토는 어떻게든 다른 화제를 찾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마음에 걸렸던 것을 입 밖에 냈다.

“오기와라, 나카모리 씨 집으로 이사 가?”

“그건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말이고, 알았다고 한 적 없어요. 가구 처분하는 거 귀찮아서 그 김에 억지로 떠맡기려는 거 같은데요.”

“그럼 이사 안 해?”

“생각은 하고 있어요. 여러 사정이 있으니까.”

미묘한 의미를 품은 듯한 말투에 미나토는 얼굴을 들고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일은 어떻게 돼가? 저기, 지금 어디 사는지 물어도 돼?”

“여기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요. 빌린 거고, 일은 현장이 멀면 이번처럼 머물 곳을 확보하면 돼서 다른 데로 옮긴들 문제는 없어요. 너무 멀면 곤란하지만.”

대답하는 오기와라는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그것이 신기해서 무심코 쳐다보니 그는 쿡쿡, 하고 웃었다.

“선생님이 제 사생활을 물은 거, 재회하고서 처음이네요.”

“그랬나?”

“그날 상황이나 일정, 일상적인 건 물으셨지만 내가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묻지 않았어요. 솔직히, 흥미 없어졌나 했어요.”

“…난 오기와라가 나한테 말하기 싫거나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

솔직하게 대답한 미나토에게 오기와라가 이해한 듯이 웃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둘 다 입 다물고 있었던 거네요.”

“응. 이제부턴 많이 물어볼게. 일단, 이사는 어떡할 거야?”

“조건에 맞춰서 본격적으로 찾아볼 거예요. 유키 씨 집은 없던 걸로 하고요. 어차피 하는 거 여기서 가까운 게 좋고요.”

“그렇구나.”

웃으며 대답하는데 기분이 무척 부드러워지는 것을 자각했다.

오기와라에게 묻고 싶은 것이나 말하고 싶은 것이 산처럼 쌓였다.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어도 조금씩 확인해 가자고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컵을 내려놓자 그 컵 채로 손을 잡혔다.

고개를 들면 오기와라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그것을 기다렸는지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앞으로 미나토 선생님이 아니라, 미나토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간절한 기도와도 닮은 그 목소리가 미나토의 귀에는 달콤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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