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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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병원으로 가서 목발을 반납했다.

“건강하세요.”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돌려보내는 것이 신선했다.

“사람이 꽤 많네. …어디로 가실래요?”

“오는 도중에 역 앞에, 파란색 뾰족한 지붕 있는 커피숍 있었지? 거긴 어때?”

“좋아요. 거기로 갈까요?”

냉큼 고개를 끄덕인 오기와라를 따라 미나토는 병원의 정면 현관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을 향하면서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런데 일은 괜찮아? 벌써 10시 넘었어.”

“연락해 뒀으니까 아무 문제 없어요. 미나토 선생님이야말로,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아. 계산하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며 차에 올라 간선도로로 합류했다.

평일 오전답게 그럭저럭 많은 자동차 행렬을 따라 차를 모는 오기와라는 오늘따라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것을 곁눈질로 보며 미나토는 자동차 앞유리 너머로 시선을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의 청명함에, 등이 떠밀리는 기분이 들어 각오가 바로 섰다.

오늘 중으로 모든 마무리를 짓자고 미나토는 속으로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개인 물건을 정리하고 짐을 싸는 미나토를 오기와라는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지금까지 극성스럽게 굴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고, 편의점에 들러줘, 라는 부탁 한마디에 짐을 옮기는 것마저 도와주었다.

그런 오기와라가 말을 꺼내기 전에, 그렇게 자신이 먼저 청산할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명히 또 옛날 일을 반복해버릴 것 같았다.

(괜찮으면 병원 갔다 오늘 길에 가볍게 아침이라도 먹을까? 감사하는 의미로 내가 쏠게.)

그래서 짐을 맡기고 돌아온 차 안에서 미나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쪽에서 권유하는 것이 의외였는지 순간적으로 눈이 휘둥그레진 오기와라는 잠시 후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티 없는 미소에 가슴 깊은 곳이 아파왔다.

그것을 억지로 짓누르며 오늘에야말로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자신에게 재차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둘이서 들어간 커피숍은 작고 아담했지만 모닝 메뉴는 풍부해서 여러 개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먹을 동안은 의식적으로 평소대로 행동하도록 주의했다.

오기와라의 표정도 안정되어 있었고, 가끔 미나토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도 목소리에도 험악한 기운은 없었다. 계속 이대로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면서 식사를 마칠 때까지의 시간이 무척 길기도 하고 동시에 짧게도 느껴졌다.

식후의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짧은 침묵이 흘렀다.

타이밍을 재던 미나토가 “저기.”하고 말을 꺼냈을 때 거의 동시에 오기와라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얼굴을 마주하듯이 두 사람 다 침묵하는 가운데, 컵을 입에 가져가는 오기와라가 시선으로 뒷말을 재촉했다.

“오기와라에게 제대로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어. 이번에 다친 거 때문에 여러모로 성가시게 해서 미안해. 덕분에 살았어. 정말, 고마워.”

처음에는 눈을 가늘게 뜨던 오기와라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그 표정조차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계속 보고 싶었다.

“―우리 만나는 거 오늘로 끝내고 싶어.”

“…네?”

오기와라의 움직임이 굳은 것처럼 정지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더욱 사무적으로 말을 이었다.

“다친 게 나은 이상, 더는 출퇴근 도와줄 필요는 없어. 난 내가 살던 아파트에 돌아갈 건데, 오기와라는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오지 않았으면 해.”

“―뭐예요, 그거.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정했어. 전화나 문자는 수신 거부할 거고, 아파트 열쇠도 바꿨어. 난 두 번 다시 너와 만날 생각이 없어.”

강한 어투로 잘라 말하는 미나토를 보고 오기와라가 슬쩍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그가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 보이는 무표정이었다.

“멋대로 정하지 말아 주실래요? 저, 아직 질렸다고 한 적 없는데요. 아니면 미나토 선생님한테 제 오른쪽 무릎과 장래는 그렇게 싸구려란 말이에요?”

오기와라가 퍼붓는 말에 대해 느낀 것은 메마른 낙담이었다.

역시 자신은 갖고 놀기 쉬운 시간 때우기용 장난감이었을 뿐이라고, 이미 알던 답을 해답지와 맞춰보는 기분이다.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픈데도 그 결말을 이해했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었는데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눈앞에 대본이 있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싸구려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래서 위자료를 준비했어.”

“네?”

무표정했던 오기와라가 또렷한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미나토를 쳐다봤다.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위자료 시세를 알아봤어. 한 번에 주기는 힘드니까 분할해서 줘도 봐줬으면 하는데, 준비할 수 있는 만큼은 여기에 가져왔어.”

준비해온 봉투를 오기와라의 바로 앞으로 내밀었다. 어안이 벙벙한 그에게 덧붙여 말했다.

“나머지는 나중에 입금할 테니까 계좌번호는 학원에 우편으로 보내줬으면 좋겠어. 위자료의 적정액을 알면 바로 반송지에 봉서로 연락할게. 금액을 이해할 수 없을 땐 다시 협의해서.”

“잠깐만요! 그렇게 갑자기.”

“제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 그때의 그 부상이 원인이라면 더욱, 결론을 내려서 지금 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대처가 늦은 몫으로 웃돈을 줘야 하면 거기에도 응할 거고.”

“멋대로 정하지 마세요. 누가 그런 거 달라고 했어요?!”

의자를 발로 차듯이 오기와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순 손님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알았지만,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입을 다문 채 똑바로 오기와라의 시선을 받아쳤다.

격앙되었을 그는 쩔쩔매는 것처럼 말을 삼켰다. 입술을 꼭 다물고,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이 이상 대화할 마음은 없었다. 오기와라가 진정한 것을 알고서 미나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할 말은 그뿐이야. 미안하지만 지금 안 가면 학원에 늦어. 여기서 헤어지자.”

“선생님.”

불러 세우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두 사람 몫을 지불하고 나서 가게를 나왔다. 바로 앞에 보이는 역으로 향하는 도중 뒤에서 팔꿈치를 잡혔다.

“기다리세요! 얘기를.”

“지금 이 상태는 내게도, 네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

“뭐예요, 그게. 무슨.”

카페 주차장 구석에서 싸우면 가게에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오기와라의 팔을 가볍게 뿌리쳤다. 팔꿈치를 잡았던 손이 싱겁게 떨어져 나가는 것에 놀라 고개를 드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겁먹은 표정의 오기와라와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다 마침내 깨달았다. 오기와라가 미나토의 기에 눌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옛날을 포함해 미나토가 오기와라에게 강하게 나간 적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미나토를 내려다보는 오기와라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말을 고르듯이 입을 다물고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입술을 깨물었다.

“오기와라 잘못이 아니야. 사고 뒤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던 내가 잘못했어. 오랜 시간 후에 만나서도 애매한 채로 시키는 대로 질질 끌려다녔지. ―지금, 그걸 무척 후회해.”

오기와라의 단정한 얼굴에 상처 입은 것처럼 그림자가 드리웠다. 처음으로 본 그 표정은 그를 나이보다 어려 보이게 해서, 역시 그가 좋구나, 하고 괴로운 기분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되돌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전부 없던 일로 하자. 그러는 게 가장 좋아.”

“…―.”

눈앞에서 오기와라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목 안쪽으로 낮게 신음하나 했더니 들고 있던 봉투를 도로 내밀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제가 받을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까 한 말은 취소할게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어요. 제 무릎이 못 쓰게 된 건 선생님 책임이 아니에요.”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곤 할 수 없어도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어. 내 나름의 마무리 방식이니까 돌려받아도 곤란해.”

자신에게 억지로 내미는 봉투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오기와라는 몇 번인가 승강이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받아둘게요. 하지만 이 이상은 필요 없고 절대로 받지 않을 겁니다. 제멋대로 굴어서 죄송했습니다.”

큰 키를 접듯이 오기와라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보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당시 헤어지기 전, 갑자기 변하기 전까지의 오기와라는 이런 식이었다.

건방지고,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하고 제멋대로 굴면서, 그런 주제에 막상 해야 할 때는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었다.

미나토를 놀리기는 해도 불합리하게 협박하는 짓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정하고 올곧은 청년.

“나야말로, 성가시게 해서 미안. …그럼.”

다른 말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오기와라에게 등을 동리고, 돌아보지도 않고 역으로 향했다.

올라탄 전철은 평일 오전인 탓인지 비어 있었다. 문 가까이 있는 손잡이를 잡고 미나토는 화창한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것으로 끝났다.

꽤 오랫동안 고민했고, 망설이면서 우쭐거렸던 것은 고작 며칠 전이었는데, 끝이 오는 것은 눈 깜짝할 새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 시절부터 쭉 좋아했다.

보답 받을 길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억지로 삼켜버린 마음은 끝까지 깊이 남아.)

요시하루의 말대로다.

포기할 수 없는 마음 따위 다음 생까지 고이 간직할 것도 아니다. 어차피 끝날 것이라면 전부 드러내어 맞부딪치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그 뒤에도 쭉 품고 살아가게 되어버린다.

“…결국 말 못했네.”

스스로 막을 내린다면서 고백해 버릴 생각이었다.

기회가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다. 미나토는 어떻게 해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백하고 결정적인 말을 듣는 것보다 애매한 상태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요시하루, 질색하겠지.”

불쑥 나온 목소리는 흔들림을 따라 전철 소리에 묻혔다.

텅 빈 마음으로 미나토는 창밖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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