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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할 때, 요시하루에게 문자가 왔다.
―나 왔어. 학원 앞쪽, 대각선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무심코 껐다가 다시 읽었다. 어지간히 눈에 띄었는지 옆자리의 영어 강사가 “무슨 일이에요?”라고 묻기에 적당한 웃음으로 넘기고 허둥대며 서둘러 출입구로 향했다.
낯가림이 심한 주제에 요시하루는 가끔 터무니없이 대담해진다.
전조도 없는 실력행사에 나가시마도 난처해 진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고 할 정도였다. 밤이라고는 해도 거리의 가게는 아직 대부분 영업을 했고 가로등과 어울려 충분히 밝았다.
카페는 길을 따라 한쪽 벽이 전면 유리로 되어 있기에 약간 거리가 있어도 가게 안의 모습이 전부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찾다가 미나토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밝은 가게 안의 끝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요시하루와 그 옆에 코우모토까지는 그렇다 쳐도, 고작 1미터 정도 떨어진 자리에는 오기와라까지 모여 있던 것이다.
더군다나, 코우모토와 오기와라는 서로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일촉즉발이라는 분위기를 대놓고 풍기고 있었다.
차라리 두 사람 모두 예전 일을 잊어버렸다면 좋으련만.
곤혹스러워하던 찰나, 유리 너머로 요시하루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기에 미나토 역시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미나토가 온 것을 눈치챈 오기와라와 코우모토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섰다.
펼쳐진 상황에 도대체 이 자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는데, 작은 그림자가 커피숍에서 튀어나왔다. 이리노였다.
“선생님, 저 갈게요! 내일 봬요.”
“응, 조심해서 가…?”
어째서 이리노까지 여기 있는지 놀라고 있는 사이, 키 큰 그림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먼저 나온 오기와라가 뒤에 있는 요시하루와 코우모토를 무시한 채 미나토의 가방을 들었다.
“집에 가죠.”라는 한마디와 함께 다짜고짜 무인 주차장으로 향하길 재촉하기에 당황하며 말했다.
“미안해, 갑작스럽지만 오늘은 친구가 왔어. 집에 먼저 갈래?”
바로 곁에까지 온 요시하루와 코우모토를 쳐다보고 다시 미나토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다리로 어딜 가려고요.”
“목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통증도 누그러졌으니까 힘들 것도 없어. 무슨 일 있으면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하고 싶은 말이 남은 얼굴로 오기와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승낙이라고 해석하고 미나토는 요시하루와 코우모토를 쳐다봤다.
“…깜짝 놀랐어. 요시하루도 그렇지만 코우모토 씨까지 오시다니 무슨 일 있어요?”
그들에게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갑자기 뒤로 잡아당겨 졌다.
그 기세로 순간 놓쳐버린 목발이 아스팔트 위로 넘어지며 둔탁한 소리가 퍼졌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돌아보자, 오기와라는 미나토를 잡은 손을 그대로 둔 채 눈을 날카롭게 떴다.
“막지는 않겠지만 대신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아니, 잠깐 그건, 기다려!”
농담이 아니라며,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사고로 다친 이후 과보호적인 행동을 발휘하는 오기와라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는 코우모토와, 미나토를 포함한 모두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요시하루.
이런 구성원으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야. 하지만 오기와라는 모르는 사람이잖아. 모처럼 데리러 와줬는데 너무 멋대로 군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봐줘.”
“…방해는 안 할 거예요. 떨어진 자리에 있으면 문제없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싫어하세요? 목발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목발은 가져간다니까.”
이대로라면 평소와 다름없는 패턴으로 오기와라의 뜻대로 되고 만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되받아치자 문득 눈앞에 떨어진 채로 방치된 목발이 내밀어 졌다.
“미나토, 그 다리 어떻게 된 거야?”
요시하루였다. 미나토가 목발을 받아드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놓더니 이쪽의 발치를 찬찬히 쳐다봤다.
그를 따라 시선을 떨어뜨리자, 자신이 오기와라에게 안긴 상태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당황하며 얼른 떨어지려 해도 허리에 감은 팔은 떨어질 생각이 없고, 난처한 것을 눈치챘는지 날카로운 목소리가 말했다.
“직장 앞이다. 자중 좀 하시지?”
코우모토가 언짢은 얼굴로 미나토의 등 뒤로 시선을 줬다.
“당신하곤 상관없어.”
“관계가 있고 없고를 운운할 마음은 없어. 직장 관계자들 눈에 띄었을 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코우모토도 이렇게 험악한 말투를 쓰는 일이 있구나, 하고 의외라고 생각했을 때 허리에 있던 손이 내키지 않는 듯이 떨어졌다.
미나토가 다친 것을 다들 아는 상황에서 방금 같은 일은 ‘넘어질 뻔한 미나토를 오기와라가 잡아주었다.’로 끝나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지나치게 들러붙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코우모토에게는 눈짓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미나토는 그 옆의 요시하루를 쳐다봤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삔 거뿐이야. 꽤 좋아져서 직장이나 집 안에서는 목발이 필요 없지만 일단 밖에서는 갖고 다녀.”
“어젯밤엔 그런 말 안 했잖아.”
“이제 곧 목발은 반납할 거거든. 일일이 말할만한 건 아니잖아.”
“…뭐, 상관없지만. 맞다, 멋대로 굴어서 미안한데 지금부터 미나토 좀 빌려도 될까요? 볼일이 있어요.”
미나토의 대답에 한숨을 내쉰 요시하루가 일부러 오기와라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나, 정작 오기와라는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이 사람이 다친 건 저 때문입니다. 내버려 둘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 이건 내 자업자득이고.”
“저를 감싸다가 계단에서 떨어졌으면서 어디가 어떻게 자업자득입니까?”
“그렇군. 그래도 좀 봐주시겠어요? 둘이서만 은밀하게 할 말도 있거든요.”
미나토와 오기와라의 대화 중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시하루가 끼어들었다.
그것을 듣고 오기와라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약간 무례하게 요시하루를 쳐다보다 코우모토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당신한테 맡기는 건 괜찮지만. 저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죠? 그럼 감사히 넘겨받겠습니다. ―참고로 이 사람은 길 안내와 옛날얘기 하는데 잠깐 어울릴 뿐이니 먼저 보낼게요. 내일은 출근한다고 하니까요.”
요시하루의 대답을 긍정하듯이 코우모토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으로 약간 분위기를 누그러트린 오기와라는 조금 전까지 다툰 것은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냉큼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때 “집에 올 때는 꼭 연락하세요. 데리러 갈 테니까.”라는 말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