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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선생님, 오늘도 데리러 오나요?”
평소보다 일찍 일을 끝내고 집에 갈 준비를 할 때, 옆자리의 강사가 그렇게 말을 걸었다.
“옛날에 가르치던 학생이라고 하셨지요? 상당히 잘 따랐나 보네요. 그 친구, 꽤 적당한 나이죠?”
“그렇네요. 이제 이십 대 중반일 겁니다.”
“서 있기만 해도 눈에 띄고, 인기가 굉장한가 보더라고요. 학생도 학부모에게도.”
“아―…뭔가 성가시게 하는 건가요.”
쓴웃음 지으며 건네는 말에 숨은 뜻을 느끼고 되묻자 옆자리의 강사는 “아뇨, 아뇨.”하고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생 영어 수업을 담당하는 그는 미나토보다 한 살 어렸다.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애교스러운 생김새로 말 걸기 쉬운 분위기와 어울려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기가 있었다.
따르는 학생이 많은 탓인지 소문에도 빠르다.
“성가신 게 아니죠. 눈 보신한다고 사무실 직원들은 좋아하고, 학생이나 학부모는 아이돌이라도 본 기분 아닐까요?”
“죄송해요. 안 와도 된다고 거절하기는 했는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소카와 선생님 다리가 나을 때까지라고 벌써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태평하게 웃는 그에게 사과하면서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집으로 가려고 짐을 손에 들고 목발을 잡았다.
아직도 아픈 발목에 체중이 실리지 않도록 주의해서 미나토는 학원 출입구를 향했다. 정면 출입구에 수업을 마친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 때는 일반 출입구를 쓰도록 한다.
익숙지 않은 목발을 조심하면서 멀리 돌아서 밖으로 나가자 쪽빛으로 물든 하늘에 달이 아름답게 빛났다.
늘 만나는 곳으로 가는 길의 비스듬히 앞쪽에 있는 커피숍 문이 열리고 오기와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나토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숍에 있는 것은 아마도 눈에 띄지 않으려는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어차피 한쪽 벽면이 유리로 된 가게 안에선 그가 어디에 앉아도 사람들 눈에 보여서 오히려 구경꾼을 부르는 꼴이기도 하다.
들고 있던 가방을 빼앗고는 “가죠.”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걸어서 몇 분 걸리는 무인 주차장, 세워둔 차에 올라타고 나면 쓸데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나토는 늘 하는 희망을 입 밖으로 내었다.
“발목 상태도 좋아졌고 이제 아파트에 돌아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안 돼요. 또 넘어져서 아플 거라고요. 습관성이 되는 건 그나마 낫지, 뼈라도 부러지면 어쩌려고요.”
“과보호야. 어린애도 아니고 그 정도 내가 알아서 조심해.”
“어른이라도 넘어질 때는 넘어져요. 미나토 선생님은 보기보다 덤벙거리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받아친다. 한숨을 내쉬고 입을 다문 미나토에게 핸들을 쥔 오기와라가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말했다.
“집에 간다고 하시면 말리지 않겠지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로 데려갈 겁니다. 거기다 절대로 도망칠 수 없도록 조치할 거고요.”
이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점이 무섭다. 그 결과 미나토는 일부로 들리도록 한숨을 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낯선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오기와라는 미나토를 그의 아파트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러나 미나토는 차 안에서 기다렸을 뿐이다. 그날 업무에 필요한 것을 전하자 오기와라가 그것을 챙기러 가서 그대로 직장으로 데려다주었다.
당연히 밤에는 자신의 집으로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을 끝내고 학원을 나왔을 때 다시 오기와라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전철을 타겠다고 고집부리니 역까지만 데려다주게 해달라고 졸라서, 꼭 역에서 내려달라고 약속을 받고 올라탔으나 끝내 그대로 자기 아파트까지 데려갔다.
이후 아무리 거절해도 굽힐 줄 모르는 오기와라의 근성에 져버린 미나토는 그 아파트에서 지내고 출퇴근 시에는 오기와라가 태워다 주는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나쁘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넘어가는 데는 미나토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의 리빙 다이닝에서 사 온 도시락과 오기와라가 끓인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번갈아가며 샤워를 한 다음 미나토는 소파에 앉아 집으로 가져온 일을 펼쳐놓았다.
걸려온 전화를 받는 오기와라는 약간 곤란한 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신경 쓰여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을 찌푸리고 전화를 끊은 참이었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잠깐 뭐 사러 갔다 올게요.”
“지금? 가게 문 열었나?”
“열었나 봐요. 굳이 지정까지 해서 갔다 오라고 하네요. 가능한 빨리 오겠지만 졸리면 먼저 주무세요.”
시간은 슬슬 밤 열한 시를 넘을 무렵이었다.
성큼성큼 방을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디에 무엇을 사러 가는 것일까, 생각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오기와라가 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저런 궁금증은 삼키고 이곳에 있는 것이다.
혼자가 되면 갑자기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꼈다.
꽃 사진을 사용한 한 장짜리 달력은 기성품이 아니라 손수 만든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것인지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색채와 섬세함 때문에 여성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짐작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나흘간, 주인 같은 여자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현관 앞에도 입구 우편함에도 명패는 없고, 주인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나토는 아직 이곳이 누구의 집인지 모른다.
이곳을 자기 집이라고 칭한 오기와라는 부엌을 쓸 때는 도구를 뒤지는 기색도 없이 익숙한 장소처럼 행동했다.
그것은 리빙 다이닝이나 안쪽의 침실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이 방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다름 아닌 동거한다는 오기와라의 연인이었다.
“…―.”
옛날에 알던 과외 선생이 눈앞에서 다치는 바람에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래서 집을 빌려달라고 청하면 그녀는 그렇게 하기로 했을 것이다.
“뭐, 보통은 남자를 상대로 경계하지는 않지. …그렇게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연인의 집에 미나토를 데려오는 오기와라의 신경을 의심하며, 그것을 알고서도 여기에 있는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있는 것은 미나토에 대한 오기와라의 태도가 그날을 경계로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험악했던 말투나 빈정거림이 사라졌고, 미나토를 향한 시선에서 가시가 사라졌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쾌활하고 개구쟁이 같은 얼굴을 자주 보여주게 되었다.
급격한 그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솔직히 기뻤다.
어차피 길게 이어지지 않을 관계이기에 지금 이 평온한 시간을 잃는 것이 아까웠다―.
고개를 세게 젓고 자료를 읽기 시작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낮은 테이블에 놓아둔 휴대전화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보고 미나토는 당황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나토?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요시하루였다. 미나토가 이쪽으로 오고 나서는 문자를 주고받거나 전화를 주로 하게 되어서 학교에 다닐 때보다 개인적인 친분은 두터워졌다.
지금은 나가시마와는 다른 의미로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뭐, 잘 지낸다고 해야 하나. 요시하루는 어때?”
‘나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데, 그 덕분에 마구 부려 먹히고 있어. 사실 지금도 출장 중.’
“그래? 지금, 어딘데?”
요시하루가 대답한 지명은 사는 곳보다 미나토가 있는 곳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가깝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거리였다.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미나토 얼굴 보러 갔을 텐데.’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어차피 나도 내일은 온종일 일해야 하고. ―요시하루 출장 언제까지야?”
‘내일 오전 중으로 끝. 하지만 밤에는 저쪽에 볼일이 있어서 금방 가야 해.’
수화기 건너편에서 숨 돌리는 기색이 어쩐지 피곤하게 들렸다.
“힘들겠다. 무리하지 말고 가능하면 느긋이 쉬는 게 좋겠어.”
‘그럴게. …그런데 미나토는 어때? 요즘 무슨 일 있었지?’
“아니, 딱히? 아무 일도 없는데.”
‘거짓말. 쓸데없이 저항하는 점도 변함없네.’
확신하듯 말하기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요시하루에게는 미나토의 거짓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말을 돌리기는 하는데 어딘지 위화감이 들거든… 그래서, 무슨 일이야?’
평온한 말투로 다그치기에 봄인데도 등줄기에 땀이 배었다.
그때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미나토 선생님? 죄송해요, 잠깐―.”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휙 돌아보니 오기와라와 눈이 마주쳐 미나토는 문자 그대로 숨이 멈췄다. 그 귀에 요시하루의 ‘누구랑 같이 있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해해서 죄송해요, 나갈게요.”
고개를 피한 오기와라가 닫힌 문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대로 족히 몇 초는 움직이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끊었는지 손에 들린 휴대전화는 대기화면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단 전화를 다시 걸어야 한다.
굳어진 사고로도 그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서 미나토는 요시하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입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사과를 하자, 그는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말투로 ‘안테나가 잘 안 서는 지역인가?’하고 웃으면서 넘어가 주었다.
오랫동안 대화할 기력이 없어 다시 전화한다고 말하고 끊었다.
거실문을 작게 열어 현관에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있는 오기와라에게 말을 걸었다.
사과를 전하는 미나토를 오기와라는 빤히 쳐다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서 기다려 보아도 오기와라는 말을 꺼낼 기색이 없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때를 보다가 침실로 가서 잘 준비를 하자, 오기와라가 미닫이 문 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까 전화하던 사람, 누구예요?”
“친구. 오기와라가 모르는 사람이야.”
냉큼 대답하고 나서 전에 코우모토와 만났을 때도 같은 대답을 한 것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오기와라와 코우모토는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름은요? 어디 살아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만난 겁니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빠른 질문에 입을 떡 벌렸다.
오기와라 본인 스스로 자신의 친구에 대해 꼬치꼬치 파고들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답해준들 의미 없지 않나? 오기와라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인데.”
미나토가 그렇게 말해도 오기와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는 답을 듣기 전까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서, 하는 수 없이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학교 때부터 친구였어. 그렇기는 해도 상대는 그때 이미 사회인이었지만.”
“지금도 친하게 지내요?”
“서로 일이 있으니까 만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 외에는 전화나 문자만 주고받아. ―잘 자, 난 그만 잘게.”
목적도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친구의 사정을 밝힐 마음은 들지 않아, 무뚝뚝하게 말을 잘랐다. 강한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 척하고 이불로 파고들었다. 자기 자리가 된 벽 쪽으로 붙어, 열려 있는 미닫이문에서 등을 돌렸다.
불을 끈 침실은 미닫이문이 닫히면 암흑에 잠긴다.
눈앞의 벽이 어두워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슬쩍 고개를 돌리니 리빙 다이닝으로 돌아갔는지 오기와라의 모습은 없었다.
옴질옴질 자세를 바꾸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미나토는 요 며칠간 느꼈던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오기와라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말투나 시선 말고도 변화는 있다. 우선 미나토를 대하는 태도다. 예전처럼 도망치지 않게 하려고 노골적으로 감시하던 기색은 없어지고, 최근에는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이 전해졌다.
출퇴근 때 데려다주는 것도 이 아파트에 억지로 데려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미나토의 발목 부상에 대한 과보호였다.
그 밖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어색한 대로 무서울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다.
곤란한 부분은 변화의 이유를 모른다는 것.
그 계단에서 일어난 사고가 계기인 것은 명백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태도가 달라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베개에 뺨을 댄 채로 작게 숨을 쉬었을 때, 미닫이문 저쪽에서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예감하고 다시 벽 쪽을 향해 눈을 감으니 조용히 문 열리는 느낌이 났다.
죽인 발소리와 천 쓸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리며 가라앉았다. 망설임 없이 이불 속으로 잘 아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미나토 선생님?”
귓가에서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피부에 닿았다.
그 느낌이 가까워졌다 싶더니 위쪽에 있던 눈가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전해진 체온에 피부 깊은 곳이 술렁거릴 것만 같다.
필사적으로 참는 동안 뒤에서 긴 팔로 끌어안아 뒷머리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대로 뒤쪽의 체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더블 사이즈인 이 침대에서 함께 자자고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미나토였다.
처음 이 집에서 묵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미나토는 혼자 침대에 있었다. 오기와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리빙 다이닝을 들여다보니 그는 일인용 소파에서 웃옷을 덮고 자고 있었다.
다음 날 밤, 한밤중이 되어도 오기와라가 돌아오지 않아서 혹시나 하고 리빙 다이닝에 가봤더니, 그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아 감당하기 버거운 긴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4월 초순의 밤은 아무리 방안이라 해도 웃옷 한 장으로 문제없이 잠들 수 있을 만큼 따뜻하지 않다.
당장 깨워서 왜 이런 데서 자냐고 물었더니 환자는 혼자 자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모포를 덮으라고 했더니 이곳에는 예비용이 없다고 대답했다. 침대에서 걷은 모포를 내밀어도 환자 우선이라며 받아주질 않았다.
(이대로 괜찮아요. 익숙해요.)
당연하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럼 침대에서 같이 자면 되잖아.”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더블이니까 둘이서도 충분히 잘 수 있잖아. 어쨌든 거기서 웃옷 덮고 자는 건 안 돼)
오기와라는 몹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미나토를 빤히 쳐다보다가 불쑥 내밀듯이 물어왔다.
(선생님은 그래도 괜찮아요?)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결과가 지금 이 상태다.
다만 크게 변한 점이 하나 있었다.
눈앞의 벽을 향한 채, 미나토는 손끝으로 몰래 자신의 눈가를 문질렀다. 조금 전 아주 잠깐 닿았다 떨어졌던 오기와라의 입술 감촉을 떠올렸다.
여기서 머물게 된 날부터 오기와라는 미나토에게 그런 키스 말곤 다른 식으로는 닿지 않았다. 입술을 맞대기만 하는 가벼운 키스는 몇 번인가 했었다. 끌어안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특히 밤, 자기 전에는 반드시 이렇게 미나토를 팔로 끌어안아 이마나 눈가, 입술에 키스를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의미심장하게 목이나 턱을 쓰다듬거나, 팔에 가두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이곳저곳에 키스하는 일도 없다.
입은 옷을 흩트리거나 장난치듯이 피부의 약한 곳을 더듬는 일도 이젠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귀 가까이에서 반복되는 조용한 잠든 숨소리를 세며 미나토는 가만히 생각했다.
사정이 딱 맞으니까, 속궁합이 좋으니까, 편리하니까.
오기와라에게 미나토의 가치는 그뿐이다. 조금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놀기로 한, 질리는 것이 전제된 장난감.
하지만 질린 상대를 이런 식으로 안고 잘까.
그렇게까지 배려하며 과보호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된다고 알고 있으면서 이 팔에 안길 때마다 자신에게만 좋은 꿈을 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이렇게 닿아오는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멋대로 기대를 품고 싶어진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미나토는 여전히 통증과 위화감이 있는 발목을 의식했다.
오기와라가 미나토의 몸에 흥미를 보이지 않게 된 시점에서, 이 관계는 끝이다.
지금 이렇게 자신을 돌봐주는 미나토가 다친 이유가 자신을 감쌌기 때문일 뿐이고, 그렇다면 괜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뻗은 손바닥을, 허리를 안고 배를 감은 긴 팔에 겹쳤다.
깨우지 않도록 몰래 체온을 확인하며 미나토는 살며시 숨을 뱉었다. 알고 있는데…, 그래도.
부풀어가는 기대를 억누르며 미나토는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
기분 탓인지 허리를 안은 팔이 아주 약간 강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