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음 날 점심때 미나토는 오기와라와 함께 외출했다.
오기와라는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고집부렸지만 미나토가 쓸데없다며 거절했다.
그 결과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역까지 걸어가, 전철로 세역을 가면 나오는 번화가로 이동했다.
봄날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전철 창문으로 보인 역사와 마을 이곳저곳에 죽 늘어진 옅은 핑크빛 덩어리에, 벚꽃이 만개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조금 기분을 내서 점심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벚꽃이 명물로 손꼽히는 공원으로 가서 근처 반찬 가게에서 사 온 도시락을 펼쳤다.
아직 피부에 닿는 감촉은 차가웠지만, 만개한 꽃과 뜨거운 차가 있어서 신경 쓰이지 않았고 생각지도 않게 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불평 한마디라도 하려나 싶었지만 오기와라는 뜻밖에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미나토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미나토 선생님, 아직도 사진, 하고 계셨네요.”
“생각났을 때, 정도지만.”
오기와라는, 하고 묻다가 미나토는 말을 삼켰다.
미나토의 방에 당연한 듯이 가지고 온 그 카메라를 오기와라는 갖고 있지 않았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 미나토가 화제로 꺼내서 좋을 내용이 아니다.
“방에 사진을 걸지 않는 점도 변함없네요. 지금까지 찍은 사진, 다음에 보여주실래요?”
“나중에.”
가볍게 받아넘긴 탓인지 오기와라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쓰레기를 정리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진심으로 미나토를 따라다닐 작정이었는지 오기와라는 어디에 가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항상 시선으로 미나토를 쫓았다. 그것이 선명하게 느껴져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목적한 장소 중 하나인 미술관의 특별전을 관람하고 서점과 문구점에서 물건을 사고 났더니 시간은 이미 오후 여섯 시에 가까웠다.
가로등과 네온, 자동차 라이트가 복잡한 음영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역으로 가는 최단거리인 보도교에 올랐다.
평일, 그것도 귀가 시간이 겹친 탓에 똑바로 걷지 못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육 차선 도로를 횡단하는 보도교를 걸으며 미나토는 옆에서 걷는 오기와라를 올려다봤다.
“저녁 어떡할래? 먹고 갈래?”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끝까지 데리고 다닌 것은 틀림없었다.
오기와라 본인이 꺼낸 말이기는 해도 짐은 전부 그가 들어주었고, 최소한 저녁이나 아니면 차 정도는 사줘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었는데 기쁘다는 얼굴로 웃었다.
재회하고 나서 처음으로 본 만면의 미소에 미나토는 인파에 휩쓸려 긴 계단을 내려가며 머릿속이 흐려질 것만 같았다.
“그러네요, 모처럼 생긴 기회고.”
“…역 지하 식당가에 가볼까? 오기와라는 먹고 싶은 거 있어?”
“미나토 선생님은 뭐가 좋아요?”
“아니, 난 오기와라가 뭐 먹고 싶은지 물은 건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오기와라는 붙임성 있는 미소를 유지했다.
십 년 만에 본 천진한 표정에 미나토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재빨리 눈치챘다.
위험해, 라는 말이 소리가 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계단 위에서 떨어진 그림자가 오기와라에게 부딪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미나토는 옆의 장신을 밀쳐냈다.
그 직후, 그 그림자가 미나토의 옆구리를 찔렀다.
완전히 균형을 잃은 몸이 천천히 기울어졌다.
다음 순간에는 시야가 크게 돌며 튕겼고, 그때마다 전신에 충격이 퍼졌다.
꽤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한순간에 끝나버린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미나토는 계단 아래서 웅크리고 있었다.
미나토 선생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지독한 두통 때문인지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안색이 변한 오기와라가 인파를 뚫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사했구나, 생각했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다.
눈앞의 사실에 안심했다. 그러나 그다음 곧바로 혹 다른 누가 휘말리지 않았는지 불안이 그를 엄습했다.
얕은 호흡을 이으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머리 뒤에 무겁고 날카로운 아픔이 닥쳤다.
“…미나토 선생니임.”
오기와라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시야가 확 깜깜해지고 미나토는 의식을 놓았다.
출장을 갔다 돌아오던 회사원이 보도교에서 역 서쪽 출구로 가는 계단 꼭대기에서 서류가방을 떨어트린 것이 사고의 진상이었다.
계단 위를 튕기며 떨어진 서류가방의 궤도에 서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알아차리고 피했다.
다만 오기와라를 밀쳐낸 미나토가 그 여파로 궤도 위에 서버렸고, 제대로 부딪친 끝에 절반 정도 남은 나머지 계단을 굴러떨어졌다.
다른 사람이 휘말리지는 않았으나 그만큼 계단과 아스팔트의 충격을 거의 다 받은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피하면서 넘어져 타박상이나 긁힌 상처를 입은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미나토가 가장 중상이었다고 했다.
그러한 설명은 미나토는 옮겨진 병원의 응급처치실 구석에서 들었다. 경찰관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질문에 답하다 시간이 저녁 아홉 시를 넘을 때쯤에야 풀려났다.
진단명은 발목 염좌와 여기저기의 타박상과 찰과성에 뇌진탕으로, 엑스레이 결과도 딱히 문제는 없었다. 단지 염좌는 꽤 심해서 열흘 정도 붕대로 고정하고 목발을 짚어야 한다고 했다.
머리를 맞아 한동안 의식을 잃은 것을 고려해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주의도 받았다.
“…갈까?”
결심을 굳히고 침대에서 다리를 내렸다. 눈치 빠른 간호사가 신발 신기 편하도록 의자를 가져다주고, 대여한 목발을 건넸다.
정중히 인사한 미나토는 치료실을 나왔다. 이미 정면 현관은 잠겨 있기에 간호사가 가르쳐준 야간 출입구로 향했다.
비교적 큰 병원이어서 그런지 불을 끈 종합 접수처 앞의 대기실 소파에는 제법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쪽잠을 자려고 누운 사람도 있어서 환자를 따라온 사람은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연결된 소파 너머로 보이는 창밖은 온통 캄캄해졌지만 택시 승차장에 손님을 기다리는 차의 불빛이 보여 안심했다.
구급차를 함께 타고 온 오기와라는 검사하는 동안 먼저 보냈다. 치료야 어찌 되었든 MRI검사 등으로 늦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했다고 여겼다.
오기와라에게도 소중한 휴일이었을 텐데 반나절을 미나토만 따라다니다 마지막에는 저녁까지 거르고 이런 상황을 겪게 했다.
“―미나토 선생님.”
한숨을 쉰 그 때마침, 준비한 것처럼 이름을 불려 가슴이 철렁했다. 대기실에 놓인 소파 하나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장신을 보고 잔뜩 긴장한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오기와라? 왜 여기 있어?”
“데리러 왔어요. 그 다리로 혼자서 가기 힘들 테고.”
“아냐, 괜찮은데. 어차피 택시 잡을 테니까.”
미나토의 대답에 오기와라는 복잡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다시 마음을 고친 듯 밝게 말했다.
“데려다드릴게요. 저 차 갖고 왔거든요.”
“뭐, 왜?”
무심코 물음으로 답한 미나토에게 오기와라가 눈썹을 치켜들어 보였다.
“미나토 선생님이 다친 거 절 감싸다 그랬잖아요. 그럼 제가 차를 태워드리는 게 당연하죠.”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는데. 오기와라라면 그 정도 혼자 알아서 피했을 테고.”
“선생님.”하고 울리는 오기와라의 음성이 신경 쓰여 미나토는 빠르게 말했다.
“다쳤다고 해봤자 염좌에 타박상이고, 뇌진탕 일으키는 바람에 주위에 폐만 끼쳤잖아. 익숙하지 않은 일은 하는 게 아닌가 봐.”
“그건.”
“일부러 와줘서 고마워. 하지만 난 택시 타고 갈게. 오기와라도 내일 일 있지? 그럼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올려다봤지만 오기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 몹시 하고 싶은 듯, 토라진 얼굴로 미나토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절에 자주 보던 것과 같은 표정에 깜짝 놀랐다.
“미나토 선생님은 제가 데려다드리는 게 싫으세요? 제 차에 타기 싫어요?”
“그게 아니라.”
“그럼 타고 가주지 않을래요? 지금부터 저희 집에 가는 것도, 선생님 집에 들렀다가 가는 것도 시간상으로 그리 큰 차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오늘은 민폐만 끼치고.”
“민폐가 아니라 도와주신 거죠. 넘어진 게 저였으면 또 오른쪽 무릎을 다쳤을지도 모르고. 부탁이니까 제가 데려다드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한밤중의 병원이라고는 해도 그럭저럭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깊숙이 고개를 숙여오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렇게 되면 오기와라는 거의 물러서지 않는다. 입씨름해봤자 결과는 마찬가지일 테다. 그렇다면 빨리 접는 편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고 끝날 것이다.
“…그럼 가까운 역까지 부탁해도 될까?”
미나토의 말에 오기와라가 고개를 들었다. 안심한 표정과 맞닥뜨린 바람에 조금 놀랐다.
집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택시를 탔다면 미터기에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냥 미터기의 숫자에 벌벌 떠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르지만.
RV 차량의 조수석에 기대기만 해도 몸 여기저기서 아픔을 호소했다. 내일은 두 번째 택시 출근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곁눈질로 본 운전석의 오기와라는 병원을 나오고 나서 쭉 말이 없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기와라가 데려다주는 것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얼굴을 마주한 날 밤은 침대를 함께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점에 관해 오기와라는 조금도 양보한 적이 없고, 몸이 좋지 않다고 하면 출퇴근 도우미는 물론, 행위의 전후 준비도 전부 해주겠다고 하며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오늘만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미나토의 방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 데다 바닥은 마룻바닥이었다. 러그가 깔렸다고는 해도 거기서 모포 한 장 덮고 자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늘만은 절실히 혼자서 천천히 쉬고 싶었다.
싱글 침대에서 함께 자면 밀착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아플 것이다.
과연 오기와라는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까.
흘끔흘끔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있으니 처음 보는 모퉁이를 돈 자동차가 넓은 장소로 들어가 멈췄다. 아스팔트에 그려진 라인으로 보니 주차장인 모양이다.
몇 분 전에 편의점에 들렀는데 깜빡하고 사지 않은 물건이 있는 것일까.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니 조수석 문이 바깥에서 열렸다. 거기서 안을 들여다보는 오기와라를 보고 기시감과 동시에 나쁜 예감이 들고 말았다.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손 빌려드릴까요?”
“뭐, 나도?”
“네. 금방이니까요.”
당연하다는 듯이 내민 손을 쳐다보다가 할 수 없이 응했다.
잡아주는 대로 기대어 차에서 내리자 위화감이 들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보아도 그곳은 가게 따위가 아니었다. 아파트 같은 건물에 딸린 주차장이었다.
“오기와라, 여긴 어디야?”
“필요한 짐은 내일 아침 선생님 아파트로 가지러 가죠. 저도 카메라가 거기 있으니 일석이조겠네요.”
“아니, 잠깐 기다려.”
“목소리는 낮춰 주세요. 울리니까요.”
당연한 듯 말하는 오기와라에게 팔을 잡힌 채 그의 어깨를 빌려 걸어나갔다.
지팡이를 자동차에 내버려 둔 상태로 도망칠 수도 없어서 입구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6층에서 내리자 엘리베이터를 나와 바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발, 벗을 수 있어요? …도와드릴게요.”
오기와라는 바지런히 시중을 들며 현관을 들어가 거실 소파에 미나토를 앉혔다. 상황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있는 동안 오기와라는 나가버렸고, 미나토는 혼자 처음 방문한 방에 남겨졌다.
“…아무도 없나.”
1LDK 구조의 방인 모양이다. 현관을 들어가 바로 나오는 이곳은 리빙 다이닝으로, 나뭇결과 흰색을 기본으로 한 일인용 소파와 커피 테이블이, 텔레비전 받침대를 향하도록 놓였다.
약간 들어간 장소에 만들어진 부엌에는 냉장고와 작은 식기 선반, 그 앞에는 작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1/3정도 열린 미닫이문 안쪽은 침실인지 침대 일부가 보였다.
가구며 식기 선반의 내용물, 이곳저곳에 놓인 소품으로 보기에 여기는 여자 방이었다. 모델룸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것은 여기저기 넘치는 생활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당장에라도 돌아온 주인이 책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진정되지 않았다.
“뭐 하세요? 괜찮으니까 앉으세요.”
허리를 엉거주춤하게 들었을 때 돌아온 오기와라가 사 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익숙한 손길로 풍로를 켜나 싶더니 따뜻하게 데운 도시락과 수프를 내어주었다.
“저기, 오기와라. 나는 아파트에 돌아갈 테니까….”
“안 돼요. 지금 그 다리로 계단을 4층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목발도 손잡이도 있고.”
“목발 짚어도 휘청거렸잖아요. 서서 일하는 사람이 염좌가 습관 들면 진짜 곤란해진다고요.”
“하지만 열흘이면 낫는다고 했고.”
“그 열흘 중에 또 계단에서 넘어지고 떨어지면 어떡할 겁니까? 됐으니까 그만 포기하고 다 나을 때까지 여기 계세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는 오기와라에게 미나토는 그래도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눌러앉으면 이 방 주인이 곤란하잖아. 애초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 집에 쳐들어와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지금은 제가 여기 주인이고, 따로 드나들 사람은 없어요.”
딱 잘라 말하는 오기와라는 다시 한 번 밀어붙이고, 식사를 마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구석의 침실로 데려갔다.
“오늘은 목욕 없이 자고, 내일 아침 수건으로 닦기로 하죠. 그 상태로는 자기 불편할 테니까 이걸로 갈아입고 주무세요. 침대 시트는 새것이니 다름없으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공손하게 닫힌 문을 쳐다보며 망연자실했다.
손목시계의 시간은 이미 밤 열한 시를 넘어섰다. 휴대전화가 있으니 택시를 부를 수도 있지만 이 아파트의 주소도 이름도 모른다. 설령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여기저기가 아파오기 시작한 이 상태로 4층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겹다.
게다가 미나토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 신학기이기에 처리해야 할 잡무도 있어서 지각할 수는 없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은 산처럼 쌓였지만 오늘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섞어가며 옷을 갈아입고 쭈뼛거리며 침대에 들어갔다. 침대 형태나 실내 장식, 화장대는 명백하게 여성의 것이지만, 침대 시트는 수수한 회색이었다. 접힌 자국이나 냄새가 새것 같았다. 아마 그 사실을 몰랐다면 침대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기와라는 어디서 자는 것일까?
생각하는 사이, 금세 짐작이 갔다.
―당연히 이런 침대일 것이다. 더블 사이즈답게 충분히 여유가 있고, 무엇보다 따로 침실이 될 만한 곳은 없었다.
(지금은 제가 여기 주인이고, 따로 드나들 사람은 없어요.)
방금 오기와라가 한 말을 떠올렸다. 묘령의 여성이 집을 통째로 내어준다고 한다면 그건 어떤 상대일까?
떠오른 대답에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고개를 저으며 무거운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