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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뛰어서 들어온 약속 장소인 역 앞에는 이미 약속 상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나토를 보더니 한 손을 들어 올린 상대는 헐떡이는 모습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약간 늦는 건 봐줄 수 있으니까.”
“그럴 순 없죠. 코우모토 씨도 바쁜 시간 쪼개주셨는데.”
“그건 마찬가지잖아. …그럼 갈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에 미나토는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 보 앞서 걷는 등을 쫓아가며, 최근 코우모토가 발견했다고 하는 비스트로에 들어갔다.
안내받은 창가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펼쳐보고 코스 요리가 아닌 단품 요리에서 좋아하는 것을 고르기로 했다.
자리로 온 웨이터에게 주문을 마친 코우모토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거의 한 달 만이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훨씬 신선한 기분이 들어 미나토는 건너편에 앉은 연상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꽤 오랜 세월을 거쳐 코우모토는 차분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을 주었다. 과거에도 가지고 있던 온화한 분위기에다 나이에 맞는 사려를 갖추었기 때문인지 이렇게 같은 테이블에 있으면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소카와? 왜 그래?”
“아뇨. 신기해서요. 솔직히 코우모토 씨랑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졸업 축하라는 명목하에 코우모토와 요시하루가 한턱냈던 밤, 그들 네 명은 만날 기회는 줄어들겠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서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과 코우모토에 한해서는 1년 정도 이어지면 무난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미나토의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코우모토는 익숙한 몸짓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확실히 그러네. 내가 이쪽에 오기 전에는 문자친구였고.”
“코우모토 씨 문자, 은근히 기다려졌어요. 일상의 비타민이라고 할까.”
만날 기회가 없고 전화를 할 정도의 용건도 없는 대신, 코우모토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문자를 보내주었다.
일이나 사생활을 섞인 내용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거나 문득 마음을 다잡게 하는 내용이 많아서 미나토도 잊지 않고 꼭 답장을 보냈다.
졸업식 날 밤 이후, 만난 것은 2년 전이었다. 이쪽으로 발령 났다는 코우모토가 괜찮으면 밥이라도 먹자고 권하는 것을 승낙하고 나서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렇게 식사를 하고 있다.
“내게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지. 호소카와가 보낸 문자로 깨달은 것도 많았어. 8년 동안 잘도 이어졌네. …그동안 나가시마랑 요시하루가 헤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고.”
“지금도 잘 어울렸던 한 쌍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나가시마가 요시하루를 놓친 건 아깝다고 봐요.”
성격이 정반대이기에 더욱 잘 어울렸던 사람은 6년 정도 전에 갑자기 헤어졌다. 그 자리에 있었던 코우모토의 말로는 마침 매듭짓기 좋은 시기라는 듯 무심한 이별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여전히 친구로서 만남이 이어지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연인에 대해서는 생겼다가 헤어졌다 하는 상태라고 했다.
“요시하루도 거의 비슷한 상태야. 언젠가는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좋겠네요.”
나가시마도 요시하루도 미나토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인연이다. 가능하다면 그 두 사람은 계속 연인 사이로 있기를 바랐다.
“그러고 보니 호소카와, 요즘 무슨 일 없었어?”
요리 대부분이 테이블에 도착했을 무렵 코우모토가 물어 와 미나토는 뜨끔했다.
“딱히 없는데, 왜 그러세요?”
“오랜만에 나가시마가 전화했어. 요즘 호소카와 상태가 이상하다고.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냐고.”
“상태가 이상하다, 고요?”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이 많다거나, 문자 답도 늦다고 말이야. 사적인 시간이 분명하고, 지금까지 그런 적 없었으니까 신경 쓰인다, 만약 무슨 일 있으면 협력하라, 고 지령이 내려왔지.”
농담처럼 말하지만 코우모토의 눈은 진지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정말로 협력해줄 것이다.
“…약간 다루기 어려운 학생이 있어요. 그 일로 여러 가지를 조사해보거나 방법을 찾아보고, 동료와 상담하기도 해서요. 도서관 같은 데서 진동을 해놓으면 모를 때가 많아요.”
“그렇군. 학생이라면 고등학생?”
“이제 갓 1학년이 된 아이예요. 수학은 천적이고 그 끝에 있는 전 악마라네요.”
“악마란 말인가. 말도 잘하네.”
소리를 내어 웃는 코우모토였지만, 그것으로 완전히 이해해 주진 않은 모양이다. 즐겁게 식사를 마친 다음 역 앞에서 헤어질 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혼자 고민하지 마. 무슨 일 있으면 의논해 주기다?”
“네.”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개찰구 앞에서 코우모토를 지켜보았다.
발령지가 가깝다고 해도 같은 시내권이 아니라서, 지금부터 그는 쾌속 전철을 갈아타고 약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집으로 간다.
코우모토와 만났던 장소는 중간지점쯤이었고, 전철을 갈아타고 온 미나토가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어김없이 날짜가 바뀌기 직전이곤 했다.
코우모토와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기에, 미나토에게는 큰 즐거움이라서 힘들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갈아탄 전철 안에서 문에 기대어 선 채로 미나토는 코우모토의 말을 떠올렸다.
나가시마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문자 답도 늦는 원인은 오기와라였다. 열흘 전에 미나토를 협박해 아파트까지 찾아온 그는 이후 종종 미나토를 만나러 오게 되었다.
쫓아내려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전화를 이유로 자리를 피하면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문자를 확인할 때도 마찬가지로 답장을 보내려고 하면 일부러 화면을 들여다봐서 그가 집에 간 다음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전화는 나중에 다시 걸고 문자 답도 늦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가시마에게 고지식하게 상황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아마 머리에 불이 붙은 기세로 달려올 것이 분명하다.
“…뭐, 지금만 지나면 되겠지.”
밤에 물들어 거울처럼 된 창에 비치는 미나토는, 언제나처럼 수수하고 평범한 머리였다.
오기와라는 질릴 만큼 말했다.
기간은 한정되었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일 때문에 여기서 지내는 것이니 동거 중인 연인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대신 특이한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간단히 말해 자신은 상대에게 그런 것에 불과하다.
내릴 역 이름을 방송으로 들으며 미나토는 익숙한 홈으로 내려갔다. 개찰구를 향하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전부, 이리노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도 오기와라는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그 일이 언제 끝나는지도, 진짜 사는 곳은 어딘지도.
“그게 의사 표시, 라는 말이겠지.”
밤길을 걸으며 뱉어낸 혼잣말을 그대로 삼켜버리면, 그 마음 일부가 독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제 사정에 맞춰 멋대로 다루는 것에 관해서는 이제 포기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런 행위로 오른쪽 무릎에 대해 속죄가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상관없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는 오기와라니까, 하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 대신 미나토가 오기와라를 좋아한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기로 다짐했다. 그런 형태로 끝나버린 마음을 시간이 지나도 소중히 간직한 자신에게 넌덜머리가 나지만, 오기와라에게 들키는 것은 견딜 수 없다.
그것이 미나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어라?”
아파트 앞에서 미나토는 창문을 올려다봤다.
미나토의 방은 4층 모퉁이여서 창문으로 금방 구분할 수 있는데 지금, 그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오기와라…?”
비상키를 가진 사람은 오기와라뿐이다.
일주일 전, 본인이 직접 “주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당연히 떨떠름해 하는 미나토에게 그는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싫으면 됐어요. 학원이나 집 앞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니까.)
말을 꺼낸 이상 틀림없이 그렇게 할 테니 체념한 미나토는 하는 수 없이 여분의 열쇠를 그에게 건넸다.
―오늘은 안 온다고 했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상반된 감정이 자신을 덮쳤다.
솔직한 기쁨과 지독한 적막감이었다. 와줘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한편 결국 온 것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면 아쉬운데, 실제로 만날 때마다 멀게 느껴졌다.
그 손에 닿을 때마다 가슴 속에 있는 마음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절실히 깨닫는다. 그런 주제에 자신이 먼저 떠나지도 못한 채 터무니없는 기대에 매달리려 했다.
“나가시마가 알면 엄청나게 욕하겠지.”
뇌리에 떠오른 것은 언제나 인정사정없는 친구의 말이었다.
몇 년 전, 나가시마가 미나토에게 반복했던 충고.
―오기와라는 포기하는 게 좋아.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의 말 그대로인 것 같아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인터폰을 누르지 않고 들어간 자신의 집은 꽤 조용했다.
현관 바닥에 놓인, 미나토에게는 큰 가죽 스니커는 오기와라의 것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구석 쪽을 쳐다보다 미나토는 뜻밖의 장면에 눈을 가늘게 떴다.
벽 쪽 침대에 기댄 자세로 오기와라가 자고 있었다.
손질하던 도중이었는지 무릎 위에는 검게 빛나는 카메라가 기우뚱하게 놓여있었고, 미나토가 가까이서 들여다보아도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무척 희귀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예전 그때도,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때조차 미나토는 오기와라가 자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내려앉은 속눈썹이 가늘고 긴 눈매에 그늘을 만들었다.
매끈매끈하고 형태가 잘 잡힌 뺨은 그때와 비교해 약간 갸름해진 것 같았다. 콧대부터 입술까지는 이전과 다름없었지만, 예전에는 없던 색을 띠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이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잘 꾸며서가 아니라 그가 지닌 특유의 표정 때문이었다.
방약무인, 이라고 그의 형은 말했다. 그 말대로 오기와라에게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목적한 곳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대로 나아가는 강인함이 있었다.
그런 그가 가끔 보여주는 아이 같은 억지나 어리광에 미나토 자신은 푹 빠져있었다.
짧은 기간이라도, 속죄를 위한 것이었다 해도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 여름 그대로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슴으로 툭 떨어진 생각에 쓴웃음 지으며 긴 다리 위에서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조심스레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놓고는 벽장에 있던 예비 모포를 오기와라에게 덮어주었다.
깊이 잠든 모양인지 눈을 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정장에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휴대전화에 착신이 들어온 것을 알았다. 진동이어서 소리가 안 나는 데 안도하며 확인해보니 나가시마가 ‘아직 안 자?’라고 문자를 보냈다.
짧은 시간이고 작은 소리면 괜찮겠지.
그리 생각하고 표시된 수록에서 친구의 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대면서 방구석으로 시선을 줬다.
오기와라는 여전히 푹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현관 앞으로 이동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 통화음이 끊어졌다.
‘미나토? 이제 받냐!’
비난하는 목소리는 걱정의 다른 표현이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사과하니 수화기 저편에서 나가시마는 주저하며 말했다.
‘뭐, 아무 일 없으면 괜찮지만. 일하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쉬어가면서 해.’
그 한마디로 아무래도 코우모토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코우모토도 나가시마도 이렇게 미나토를 신경 써주는 것이다.
부드러워진 마음은 그대로 표정으로 옮겨와 목소리에 전염되었다. 스스로도 ‘어라?’ 싶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가 나왔다.
“걱정 끼쳐서 미안. 늘 고마워, 감사하고 있어.”
‘바보… 그런 소린 저승길 노잣돈으로 챙겨줘.’
“그거, 사용법이 틀렸어.”
‘거길 따지고 드냐. 역시 학원 선생이로구만.’
전화로 으르렁대는 나가시마와 마지막은 웃으며 통화를 마치고, 발소리를 죽여 안쪽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잠든 채인 오기와라를 확인하고 업무용 책상에 가지고 온 일거리를 펼쳐놓았다.
약 한 시간 안에 마무리하자고 목표를 정하고 일단 끝내기로 했다. 목욕 준비를 하려고 일어서려 할 때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는다.
“…일어났어? 저녁은?”
“일 끝나고 다 같이. 그러다 술자리가 돼 버렸지만요.”
“그럼 오늘은 전철이나 택시 타고 왔겠네?”
설마 차로 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되물었다.
뒤에서 꼭 안고 있는 그는 어느 틈엔가 미나토의 어깨에 턱을 얹고 있어서 얼굴을 가까이 대도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전철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여기 역이 가까워서 좋네요. ―선생님은 꽤 늦었는데 어디 갔었어요?”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저녁 먹고 왔어. 우린 알코올 빼고 먹었지만.”
원래 미나토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코우모토는 미나토와 둘이서 만날 때는 그에 맞춰 술을 주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해도 밥과 차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친구라니, 누구요?”
“오기와라가 모르는 사람.”
“…흐음.”
허리를 안은 팔의 힘이 강해졌다.
의자 등받이에 세게 기댄 상태로 고개가 돌려졌다.
물어뜯을 듯한 키스를 하는 오기와라의 표정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이 역력한 데, 치열을 파고들어 얽어매는 체온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정하고 달콤했다.
저항하지 않고 저하는 대로 내버려 두니, 턱을 잡고 있던 손으로 목에서 귓가까지 쓰다듬으며 긴 손끝으로 귓불을 주무르듯이 괴롭혔다. 그렇지 않아도 약한 부분을 작정한 듯 자극하자 피부 깊은 곳에서부터 열이 쌓였다.
길게 이어졌던 키스가 멀어지고, 이번에는 목과 뒷덜미를 입으로 가볍게 빨았다. 이제는 그만 익숙해져도 좋을 텐데 지나치게 반응하는 살결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있자, 오기와라는 솜씨 좋게 움직이는 손으로 실내복 옷자락을 밀어붙였다.
오늘 밤도 하는 건가 싶어 무심코 한숨을 내뱉자 귀 뒤쪽을 세게 빨아들이며 속삭였다.
“미나토 선생님, 내일 휴일이죠. 저도 쉬기로 했으니까 괜찮으면 같이 나가지 않을래요?”
“…같이?”
생각지도 못한 권유를 받고 미나토는 뒤쪽으로 올려봤다.
날숨이 닿을 거리에 있던 오기와라는 서로의 뺨을 맞대듯이 얼굴을 가까이했다.
“네, 선생님이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어디든지 갈게요.”
“그럼 오기와라가 별로 재미없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오기와라는 어떤 식으로 여가를 보낼까?
만나는 것은 약속이나 한 듯 밤이었고, 이 방에서 관계를 맺은 후는 상황에 따라 집에 가거나 그대로 자고 갔다.
미나토는 그런 오기와라밖에 알지 못했다.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그리고 재미없다고 해도―.”
“뭔데?”
말을 하다 말고 삼킨 오기와라가 미나토를 빤히 쳐다보았다.
신경 쓰여 뒷말을 재촉했지만,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 호흡을 막았다.
“오기와라, …잠―응.”
키스하는 중간에 묻는 말조차 완전히 봉쇄해버려 이 이상 말할 마음이 없다고 짐작했다.
대화 중에는 얌전하던 손바닥이 실내복 속에서 움직였다.
가슴께의 뾰족한 부분을 찾아내어 손끝으로 잡았다가 찌그러트렸다. 그때마다 움찔움찔 솟는 감각을 느껴,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손톱을 세워서 주는 자극 때문에 더 예민해졌다.
입술에서 뺨으로, 턱에서 목으로 키스가 내려앉았다.
마음보다 먼저 익숙해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 전에 해야겠다 싶어서, 미나토는 오기와라의 손을 잡고 제지했다.
“잠깐, 아직 목욕, 안 했어….”
“신경 안 쓰니까 됐어요.”
“안 돼. 5분 만에 샤워하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요 열흘 동안 안 사실이지만, 오기와라에게는 피부 여기저기에 키스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오기와라의 말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기와라가 조금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특히 좋아해 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더욱 양보할 수 없었다.
“필요 없어요. 선생님은 땀도 별로 안 흘리는 거 같고.”
“그럴 리 없잖아. 됐으니까 떨어져. 금방이면 되니까, 자.”
이것만은 양보할 마음이 없으니 의도적으로 강하게 말했다.
귓가에서 들린 한숨을 무시하고 긴 팔을 밀어내자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같이해도 돼요? 그럼 보내드릴게요.”
“그런 게 하고 싶으면 연인에게 부탁해.”
“…그럼 딱 5분. 그 이상은 못 기다려요.”
분명히 지금 오기와라는 상당히 떫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어서 돌아보지 않고 느슨해진 팔에서 빠져나와 욕실로 향했다.
오기와라의 강한 요구로 그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그만두었다. 표면적으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관계 속에서 미나토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이런 식으로 오기와라와의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었다.
평온한 것은 겉보기뿐이다.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쓰는 종이로 만든 배경처럼, 살짝만 밀어도 무너지고 만다. 그 사실을 서로 알기에 일부러 과거처럼 과외 선생과 학생인 척했다.
상황과 이유가 서로 대항하다 나온 관계는 기간이 정해진 한정적인 것이었다. 오기와라에게 미나토는 어디까지나 킬링타임용이고, 진짜 제대로 사귀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항상 의식하지 않으면 상처받는 것은 미나토 자신이었다.
욕실에서 머리부터 샤워기 물을 쐬면서 미나토는 기울어질 것만 같은 마음에 재차 말뚝을 박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기와라를 향해 기울어 넘어져 버릴 자신을 매섭게 질색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