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2)

8

아침에 눈을 뜨니 굉장하다고 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전면 창 커튼은 걷는 김에 아예 창문을 열고, 미나토는 겨울 향이 맴도는 것과 동시에 봄기운을 느끼게 하는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침 불어온 바람이 커튼 자락을 크게 부풀렸다.

그대로 눈에 들어온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벚꽃은 아직 봉우리를 맺지 않았지만 졸업식에는 어울렸다.

아침은 학교에서 가까운 카페에서 나가시마와 함께 먹기로 했다. 이날을 위해서 새로 맞춘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최소한으로 남겨둔 세면도구를 잠옷과 함께 보스턴백에 넣음으로써 준비는 끝났다.

이미 새집으로 이사를 끝낸 상태라, 빙그르르 둘러본 다락 딸린 원룸은 휑하니 살풍경했다. 가구 하나 없는 상자 같은 공간에 유일하게 떡 하니 눈에 띄는 이불 한 채는 대여 용품으로 그대로 개어 두면 된다고 들었다.

마지막 반년을 보낸 이 방과도 오늘로 이별이다.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미나토는 시간을 확인하고, 짐을 손에 들고 방을 나왔다. 자물쇠를 잠그고 버스 정류장으로 서둘러 걸었기에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방 열쇠는 아침을 먹기 전에 돌려주기로 약속했었다. 세 정거장을 지난 뒤 버스에서 내리면 눈앞에 목적지인 부동산이 있다.

아직 아홉 시도 되지 않았는데 영업을 시작한 그곳으로 들어가 먼저 기다리고 있던 나이 든 주인에게 손에 익은 열쇠를 건네자, 이제 비로소 그 방은 미나토가 사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오늘 아침까지 약 반년 동안 지낸 주간 임대 아파트는 오기와라의 형인 마사유키가 찾아주었다.

그 일이 일어난 다음 날, 미나토는 그때까지 쓰던 휴대전화를 해약하고 다른 회사에서 신규로 계약을 마쳤고, 마사유키는 부동산으로 데려갔다.

그다음 주 월요일에는 아르바이트가 끝났을 무렵 연락이 와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마쳤다고 알려주었다. 학교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준비한 집은 요시하루의 집에서 제법 가까워 새 주소를 알게 된 그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아예 그만둘 각오까지 했던 아르바이트도 그곳의 직속 상사가 미나토를 아끼던 덕에 다행히도 같은 계열의 다른 학원으로 이동이라는 형태로 계속할 수 있었다.

채용 시험은 합격했지만, 채용 범위에는 들지 못했다.

임시로 채용되어 본 채용의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으나, 나름 고심 끝에 아르바이트하던 학원에 정사원으로 취직하기로 했다.

새로운 근무지는 여기서 신칸센으로도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입사식은 아직 멀었지만 그전에 열리는 신입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 오늘 중으로는 그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오, 미나토 슈트 입었네?”

부동산을 나와 몇 걸음 걸어가자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얼른 쳐다보니 나가시마가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서 있었다. 드물게 깔끔히 정돈된 머리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넥타이도 잘 어울리는데,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실어 귀찮다는 자세로 선 모습만큼은 변함없어서, 그답다는 생각에 웃고 말았다.

“너 거기서 웃는 거냐. 내가 웃기냐?”

“미안, 나가시마도 잘 어울려. 다섯 배는 남자다워.”

진심으로 칭찬했는데 나가시마는 울컥 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뒤를 쫓아 약속한 카페로 들어가니 의자에 털썩 앉은 그가 정면에서 노려봤다.

“웃으면서 말해도 못 믿겠거든.”

“아냐, 진짜라니까. 요시하루의 안목은 확실하다고 생각해.”

“그거, 내가 아니라 요시하루를 칭찬하는 거지?”

투덜투덜 불만을 말하며 나가시마는 다가온 점원에게 모닝세트를 주문했다. 뒤따라 자신이 먹을 아침 정식을 부탁한 다음 미나토는 친구를 쳐다봤다.

“어제 휴대전화 새로 사서 번호 바뀌었으니까 다시 등록해 줄래? 지금 쓰는 전화는 오늘 저녁에 해약할 거야.”

새로 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준비해둔 번호를 보내자 나가시마는 가볍게 눈을 크게 떴다.

“또 바꿨어? 노상 바꾸는구먼.”

“이제 안 바꿔. 전에는 처음부터 졸업식 날에 해약할 생각이었어. 이제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렇군.”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그 말만 뱉은 나가시마는 미나토와 가까운 사람 중에 반년 전의 일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당시 흥분을 멈출 길이 없던 친구였지만 이쪽의 부탁을 듣고선 연인인 요시하루는 물론 지금은 미나토의 친구이기도 한 코우모토에게도 비밀로 해주었다.

“그건 그렇고 졸업 축하로 오늘 밤 넷이서 마시자던 데. 요시하루랑 코우모토 씨가 축하해준대.”

“오늘 밤이라니, 언제나 갑작스럽구나.”

“직전까지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서 괜히 말을 못 꺼냈다나 봐. 모처럼 시간이 생겼으니까 아침까지 풀코스로 미나토를 포획해 두라는 지령이 왔어. 당연히, 갈 거지?”

태연하게 말하는 내용이 미나토는 곤란했다.

“오늘 중으로 저쪽에 갈 생각이었는데… 방 열쇠도 돌려줬으니까 잘 데도 없고.”

“우리 집이든 요시하루 집이든 편한 데서 자면 되잖아. 아니, 아침까지라고 했으니까 끝에 가서는 다들 어디 한 곳에 우르르 들이닥치겠지. 신입 연수, 글피부터였지? 그때까지 딱히 예정 없으면 모레까지 여기서 놀다 가.”

삶은 달걀 껍데기를 호쾌하게 벗기며 말하는 나가시마에게 쓴웃음을 지은 미나토는 된장국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일찍 가서 주변 지리나 환경은 파악해두고 싶어.”

“나나 요시하루랑 같이 놀고 마시고 싶지 않다는 거냐?”

토라진 말투에 미나토는 “그럴 리 없잖아.”라며 웃었다.

이곳에서 취직한 나가시마는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10분 만에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요시하루와 코우모토는 이미 여기서 사회인으로서 기반을 다졌다. 미나토만이 올봄을 경계로 사는 곳과 생활을 크게 바꾸게 된다.

신칸센으로 몇 시간 걸리는 거리는 극단적으로 멀지는 않지만 가깝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학생이라면 몰라도 사회인끼리면 만날 기회가 그리 쉽게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가시마는 어울리지 않게 끈질기게 구는 것일 테다.

요시하루나 코우모토 역시 무리를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준 것이 분명하다.

“다 같이 자려면 요시하루네 집이 넓어서 좋겠지. 몇 시에 모이는 거야? 난 저녁까지 어머니랑 함께 있을 건데.”

고향에서 올라오신 어머니는 오늘 중으로 돌아가실 예정으로, 식이 끝나면 점심과 쇼핑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이르면 7시. 하지만 난 좀 더 일찍 시간 되니까 네 시간에 맞춰서 합류하자. 어디 있는지 문자로 보내.”

“오케이.”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나서 커피숍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

졸업식 회장이 될 강당에 들어가 나가시마와는 떨어져, 미나토는 자기가 앉을 자리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들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장을 입은 졸업생의 머리 너머로 단상으로 올라가는 교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엄숙한 공기에 정말로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오기와라는 만나러 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미나토는 자조적인 투로 작게 중얼거렸다.

“당연한, 가. 올 리가 없달까, 올 이유도 없고.”

그래도 혹시나 하고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마음 한 곳에서 기대했다. 과외 선생님과 학생으로 보낸 두 달 남짓한 인연과, 그날 밤 미나토의 아파트까지 와 준 사실을 근거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랐다.

미나토 자신은 마사유키와 한 약속이 있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오기와라는 그럴 마음만 있으면 미나토를 쫓아올 수 있을 것이다. 사는 곳을 바꾸고 휴대전화를 바꾸고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바꾸어도 학교만은 바꿀 길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낌새는 조금도 없었다.

결국 모두 자만했던 것이었다. 자신을 잘 따른다고 여겼던 것도 미나토에게는 아낌없이 향해주던 미소도 어리광도, 오기와라에게는 그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히 새겨진 그 행위 또한, 역시.

“…―.”

생각하는 순간 흘러넘치려는 감정을 미나토는 억지로 막아버렸다.

왜, 어째서. 그때의 초조함도 가슴의 아픔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오기와라를 향한 마음을, 매몰차게 단념하는 것과 동시에 억지로 참았다.

오기와라의 속마음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끝까지 버리지 못한 그 바람은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미나토는 이제 곧 이곳을 떠난다.

그렇게 하면 오기와라와 만날 일은 거의 없어진다.

각오는 되었을, 것이다. 졸업하면 이곳을 떠나 굳이 먼 곳으로 간다. 그것도 잊기 위해 스스로 결정했다.

의문과 바람과, 분노와 연정과.

그 전부를 마음속에 담으며 오기와라는 살짝 눈꺼풀을 감았다.

지금도 뇌리에 새겨진 오기와라의 모습에, 잘라내듯이 이별을 고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