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2)

7

절로 눈이 떠 진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

맨 처음 인식한 것은 주위의 어둠과 정적이었다. 이어서 양쪽 어깨와 손목의 삐걱거리는 듯한 아픔을 깨달았다.

몸을 달싹인 다음에야 자신이 엎드린 채로 부자연스럽게 양쪽 손을 올리고, 옆으로 돌린 얼굴이 부드러운 천에 눌려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날숨이 묘하게 거칠다. 아픔은 어깨와 손목뿐 아니라 온몸 여기저기에 퍼져 있었고, 당장에라도 가라앉을 듯 몸이 무거웠다.

기어가면서 피부에 닿는 것은 시트였고, 등에 덮인 천은 여름 이불처럼 부드럽고 가벼웠다.

양쪽 다 직접 피부에 닿는 것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지금 있는 장소가 침대 위라고 것도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코끝에 닿은 시트에서 어렴풋한 향기가 났다.

자신이 아니라 잘 아는 다른 누군가의―.

대체, 누구의?

애매한 기억을 채 거슬러 오르지 못한 상태로 미나토는 어떻게든 상반신을 일으켰다. 이윽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비치는 것은 벽에 붙은 책상과 그 옆에 있는 높은 책장.

책상 위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책장에는 육상 관련 잡지나 자동차 책이 꽂혀 있었다.

“오기와라의…?”

흘러나온 목소리와 포개어지듯 그 순간, 복도 쪽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났다.

본능적으로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피어오르는 공포심은 눈 깜짝할 새에 미나토를 집어삼켜, 이유도 모른 채 도망치자고 마음먹게 했다.

여기저기서 호소하는 아픔을 견디고 침대 끝으로 간 것은 좋았지만 분명히 일어섰을 다리와 허리가 무너져 미나토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버렸다.

문 건너편의 발소리가 빨라졌다. 노크 직후에 문이 열려 방안이 확 밝아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셔 팔로 가리자, 곧바로 귀에 익은 쉰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호소카와 선생님?”

문 앞에 있던 사람은 오기와라의 형인 마사유키였다. 방금 집에 돌아왔는지 정장 차림에 넥타이만 약간 느긋하게 풀었다.

―아니다, 라고 생각한 순간 마음이 놓여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안에 명백하게 낙담하는 마음이 섞여 있어서 자신조차 자기감정을 판별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

깜짝 놀란 듯한 중얼거림과 파고드는 것 같은 시선에 이끌려 미나토는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목 안쪽에서 굳어진 목소리를 냈다.

미나토의 양쪽 손목은 하나로 모인 채, 벨트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여름 이불을 감은 몸 이곳저곳에는 붉은 흔적과 깨물린 흔적이 있었고, 혈흔뿐 아니라 가슴이 철렁할 만한 분비물까지 묻어 있었다.

그 직후 오기와라에게 안겼다는 사실이 그는 떠올랐다. 무자비하게 인정사정없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길고 집요하게.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마사유키가 먼저 움직였다.

초조한 듯이 달려오더니 “괜찮으세요?”하고 손을 뻗어왔다.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피해버렸다. 침대까지 엉덩이로 도망치던 미나토를 보고, 퍼뜩 후회하는 빛이 얼굴에 떠오른 마사유키는 손을 멈추고 한동안 망설이더니 정장 상의를 벗어 상반신을 가리듯이 앞에서 어깨로 덮어주었다.

“죄송하지만 손목 좀. 먼저 그거부터 풀죠.”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나토는 쭈뼛쭈뼛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겹겹이도 둘린 벨트는 손이 저릴 만큼 단단했고, 스스로 풀 수 없었다.

신중할 정도로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유키는 그것을 풀었다.

몇 분이 걸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 몇 번이고 숨을 삼킨 그는 그때마다 하려던 말을 씹어 삼키는 양 벌린 입을 다물었다.

“…코우시는, 어디에?”

푼 벨트를 바닥에 둔 마사유키가 신음하듯이 목소리를 죽이고 물었다. 저릿저릿 거리는 양손을 겹쳐 감각을 확인하면서 미나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없네, 하고 남 일처럼 생각하다 가슴의 통증과 함께 몸 안쪽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어째서 오기와라는 이곳에 없는가, 그런 짓을 저지르고 미나토를 내버려 두고 어디를 간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반면, 없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얼굴을 마주한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오기와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몇 시간 전의 그것은 미나토가 알던 오기와라 코우시와는 다르다. 동일 인물이란 걸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어디에선가 그렇게 외쳐댔다. 실상 미나토가 오기와라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뿐이었다고, 알고 있으면서.

“혼자서 옷 입을 수 있으세요? 도와 드려야 할까요?”

“괜찮, 습니다. 제가 할게요.”

어떻게든 대답한 미나토를 위해 마사유키는 침대 옆에 펼쳐진 미나토의 옷을 주워 건네주었다.

“전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안에서 문을 두드려주세요.”

몸을 닦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까지는 꺼내지 못한 미나토는 마사유키가 자리를 피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간단히 몸을 닦아냈다.

예상외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발 때문에 옷을 입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렸다.

셔츠 단추를 잠그며 마사유키에게 이 모습을 보였단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이미 변명 따위는 무의미하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일목요연하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9월 중순이라고는 해도 기온은 아직 여름에 가깝다. 추울 리가 없는데 등골이 서늘했다.

지시한 대로 문을 두드리려는데 몸을 한 번 움직이는 데도 통증과 피로가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문 옆의 벽에 기대 노크를 하자 마사유키는 바로 얼굴을 보였다. 괴로운 얼굴로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떨쳐내듯이 말했다.

“병원에 가죠. 바로 차를 가져올게요.”

“병원…?”

“진단서를 받아서, 그 뒤에 경찰서에. ―코우시가 저지른 짓은 범죄입니다. 선생님께는 소송할 권리가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호흡이 멈췄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짓을 하면 오기와라의 장래가!”

“자업자득입니다. 선생님이 참아가며 포기할 이유는 안 됩니다.”

“이유가 안 된다뇨, 그는 아직 학생이라고요!”

“그래도 범죄는 범죕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감사히 생각하지만 이렇게 봐 주면 안 됩니다.”

딱 잘라 말하는 마사유키의 얼굴은 백지장 같았다. 억지로 만들어낸 무표정에 섞여든 괴로운 기색이 그의 진심을 전했다.

“비용은 신경 쓰지 마세요. 필요하면 선생님 측 경비는 제가 대겠습니다.”

“―…소송당할 사람은 저예요. 제가 오기와라를 유혹했습니다.”

갑자기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저 혼자 깊이 생각했다.

(또 제 무릎을 못 쓰게 만드실 작정입니까?)

몇 시간 전. 처음으로 오기와라가 화난 것을 봤다. 그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오른쪽 무릎에 대한 원망의 말을 기억한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분노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기와라의 본심이라면―그 마음 때문에 저지른 행위라고 한다면?

미나토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의 인생을, 이 이상 무너트리지 않는다. 절대로, 비뚤어지게 하면 안 된다.

“그 전철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전 오기와라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고를 구실로 그에게 들러붙었습니다. 인연이 생긴 것을 기뻐하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도발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선생님 팔이 묶인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오기와라를 협박해서 하게 했습니다. 그런 걸 좋아하거든요.”

“선생님. 그건.”

“전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오기와라는 거기에 휘말려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격해지는 말 때문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당황한 듯 뻗은 마사유키의 손을 뿌리치고 그는 벽에 기대어 두 발에 힘을 줬다.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그런 미나토를 내려다보며 그는 말했다.

“코우시가, 그 녀석이 드물게 호소카와 선생님을 잘 따른다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 알고 있습니다. 좋게 말해서 자유롭다고 하지만, 제멋대로라 가족조차 다루는 데 고생하는데 선생님께서는 꿋꿋이 상대해주셨지요. 그것이 구실이라 말씀하셔도.”

“본인이 하는 말이니 틀림없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바로 경찰서에 데려가 주세요. 외설 행위를 강요했으니 깔끔하게 자수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교수직을 목표로 하시는 분이 그런 짓을 하면.”

“그거야말로 자업자득이지요. 책임은 지겠습니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마사유키의 목소리에는 난처한 울림이 배어있었다.

모든 것을 냉정하게 이해한 미나토는 오기와라를 닮은 마사유키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결국, 경찰서에는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마사유키 때문에, 그가 잘 안다는 작은 동네 의원에게 갔다.

진찰해준 할아버지 정도 연배인 노 의사는 미나토에게 사정을 묻지도 않고 세심하게 돌봐준 데다가 샤워룸까지 빌려주었다.

마사유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어땠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딱 한 번 “소송할 생각이면 진단서를 끊어드리겠습니다만.”이라고 말한 의사는, 미나토가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이상은 아무 말도 없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거기다 뻔뻔한 건 알지만 몇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아파트까지 데려다준다기에 올라탄 마사유키의 자동차 조수석에서 미나토는 운전석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침 신호 대기로 차를 세웠던 그는 뭐라고도 할 수 없는 복잡한 얼굴로 미나토를 돌아보았다.

“과외는 오늘로 그만두게 해 주세요. 제멋대로 굴어서 죄송하지만 외출을 돕는 것도. …가족분도, 오기와라 본인도 불쾌하실 것 같아서요.”

마지막 한마디를 억누르듯이 입 밖에 내며 미나토는 마사유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보인 이상 그 집에 드나들 수 없다. 마사유키는 물론, 오기와라의 부모님께도 얼굴을 보일 수 없다.

오기와라와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상태로 미나토를 방치한 그가 만나줄 가능성은 낮았다.

“절 포함한 가족이 선생님을 불쾌하게 여길 이유는 없습니다. 그보다 외출을 돕는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미나토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마사유키의 목소리를 신음하듯이 낮아졌다. 시선을 들어 쳐다본 얼굴도, 억지로 참아내는 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2학기부터 오기와라가 부탁했어요. 아침에는 같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은 자동차로 학교에서 집 가까운 역까지 데려다 주는 걸로요. 수술하고 한 달 전후는 무릎이 안정되지 않아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진찰할 때 들었다면서….”

미나토가 말을 이을 때마다 마사유키의 미간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살짝 위화감을 느끼고 쳐다보니 시야 구석의 신호가 어느새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다. 부드럽게 자동차를 출발시킨 마사유키는 옆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후 한 달 전후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고는 들었지만, 외출을 돕는다는 얘기는 처음이네요. 부모님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이상 그건 주치의의 지시가 아니라 코우시가 독단적으로 한 걸 겁니다.”

“네…?”

“정말로 도와야 했다면 저희 가족이 솔선해서 할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생님께 부탁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모두 맡기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애초에 대학원 졸업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과외를 맡아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돕니다.”

“―.”

이렇게 듣고서 처음으로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수술 전, 미나토가 외출을 부탁받은 것은 주로 과외를 하는 날이었고, 그 외에는 오기와라의 부모님 중 한 분의 사정에 맞췄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기와라의 입에서 단 한 번도 부모님이나 형이 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다.

다시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마사유키는 괴로운 얼굴로 핸들을 조작했고, 미나토는 오기와라가 한 말의 의미를 몰라 혼란스러웠다.

“저쪽 교차점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까?”

“네. 오른쪽으로 돌아서 조금만 가면 아파트가.”

어미에 포개듯이 자동차가 우회전했다. 그 끝의 갓길에 근처에 비상등을 켠 택시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차량의 건너편, 아파트 계단 입구로 들어가는 등을 보고 숨이 막혔다.

어째서, 하고. 믿을 수 없어서 눈을 의심했다.

“…코우시.”

옆에서 들린 목소리가 방금 본 광경이 현실이었다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미나토가 무심코 자리에서 몸을 내밀었을 때 자동차는 줄이기 시작한 속도를 다시 올려 아파트 사이를 지나쳤다.

“저, 저기! 저기가 제 집이에요. 지금 오기와라가 들어간―.”

“이동하죠.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째서요! 세워주세요, 전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제 흥미가 없어졌다고, 얼굴을 마주할 기분도 대화할 마음도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나러 와 준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 한 마디라도 좋으니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물어서 어쩔 생각이십니까?”

돌아온 마사유키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칼로 그를 찌를 것 같은 섬뜩함이 묻어나와 소름이 돋았다.

어설프게 내어준 시선 끝, 운전석에 앉은 마사유키로부터 전해지는 공기로 한껏 들떴을 마음이 눈 깜짝할 새 가라앉는다.

그의 앞에서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깨닫고 미나토는 힘없이 시트에 기댄 채 앞유리 너머의 어둠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침묵 속에서 한참을 달려 자동차가 향한 곳은 미나토에게는 낯선 선로 근처의 마을이었다.

이름만 아는 역 앞을 지나친 자동차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차에서 내린 마사유키가 조수석 문을 열어 손을 내밀었다. 인기척이 없는 괴괴한 입구 프런트에서 떨어진 소파에 미나토를 앉힌 마사유키는 그곳에서 기다리라 짤막하게 말하곤 프런트로 걸음을 옮겼다.

날짜를 넘긴 이 시간에는 설령 빈방이 있어도 체크인은 거절당하지 않을까를 넌지시 생각하면서 쳐다보니, 금세 마사유키는 프런트에서 멀어졌다. 중간에 있던 자판기에서 두 사람 몫의 음료수를 사더니 미나토 곁으로 돌아왔다.

마사유키가 내민 음료수 페트병은 손바닥이 화끈할 정도였다.

하지만 미나토는 아직도 여름이 다 가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지금 그것을 꼭 쥐고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방을 잡았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세요. 돈은 다 지불했습니다.”

말을 하면서 동시에 눈앞의 테이블 위에 카드키를 놓았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몸이 떨렸다.

마사유키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숨이 멎을 만큼 날카롭게 느껴졌다.

“동생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리 당황했다고 해도 사죄가 늦어진 것 역시, 같이 사과드립니다.”

테이블에 부딪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미나토가 아무 말도 않는 동안 소리를 낮추어 계속 말했다.

“호소카와 선생님이 잘 대해주신다고 너무 많이 기댔네요. 코우시는 물론이고 저도 포함해서 저희 가족 모두가요. 애초에 선생님께는 그 사고의 책임이 있을 리가 없는데. 처음부터 저희가 거절해야 했어요.”

“아닙니다, 과외도 돕는 것도 제가 원해서 했을 뿐입니다.”

“무척 제멋대로라는 건 알지만, 지금 사시는 곳에서 빠른 시일 내 이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해약하고 신규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무릎 위에 양손을 얹고 깍지를 낀 상태로 마사유키는 용서를 비는 것처럼 미나토를 쳐다봤다.

“방을 구하는 것부터 모든 준비는 전면적으로 돕겠습니다. 피해 보상금이라고 하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보증금을 포함한 이사비용이나 휴대전화 신규계약에 드는 비용 역시, 전액 저희가 부담하도록 하지요.”

이 말은 곧 미나토와 오기와라의 접점을 뿌리부터 뽑아버리겠다는 의미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야말로 말을 잃었다.

“아마 과외를 그만둔다고 해도 코우시는 선생님께 접촉하려고 하겠지요. 설혹 거절하시거나 무시하셔도 아까처럼 선생님 집까지 들이닥칠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오기와라와 미나토를 만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알게 된 사실에 미나토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그런 미나토를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며 마사유키는 말을 이었다.

“부모님께도 사정을 모두 설명하고, 호소카와 선생님께 코우시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의시키겠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시간은 동생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전부 감시할 수는 없죠.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잠깐만요. 부모님께 말씀드릴 생각이세요?”

포화상태인 머리로 내뱉은 목소리는 꼴사나울 만큼 새된 소리였다. 오기와라와 많이 닮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사유키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코우시가 저지른 짓은 범죄입니다. 경찰서에 가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더욱 부모님께는 말씀드려야지요.”

“그러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부탁입니다. 그것만은… 오기와라는 피해자입니다.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말을 이으며 미나토는 마사유키에게 호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그 행동이 단순한 자기기만이라고 알았다.

오기와라를 위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마디도 미나토를 탓하는 일 없이 오히려 신뢰를 보여준 그의 부모님께, 그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더는 동생과 만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몹시도 조용한 소리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실이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호소카와 선생님을 마음에 들어 하세요. 과외를 그만둔다고 해도 진상을 말씀드리지 않은 채로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해 못 하실 겁니다. ―만일 이대로 호소카와 선생님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없어진다면, 제 힘으로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선생님께서 코우시와 다시 만날 생각이시라면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고회로가 포화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오기와라와 만나지 않겠습니다. 이사도 하고, 휴대전화도 바꾸고,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겠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무척 멀게 들렸다. 작게 숨을 내쉰 마사유키가 아주 약간 긴장을 푼 것을 알았다. 표정을 숨긴 채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추는 것을 보고서 눈치챘다.

“그럼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말과 함께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미나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사나 휴대전화 건은 제가 할 수 있으니 도와주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요, 돕게 해주세요. 내일 아침 체크아웃하실 때쯤 모시러 오겠습니다. 이건 방 열쇠입니다.”

테이블 위에 있던 카드키를 내밀기에 손바닥으로 받아들었다.

방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삐걱거리듯이 아픈 몸을 꾸짖으며 미나토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사유키 앞에서는 허세를 떨었는지 문이 닫히자마자 휘청거리며 등을 벽에 맡겼다.

(알겠습니다. 오기와라와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자신에게서 나온 말이 무척 무거웠다.

객실로 들어가 뒤에서 문이 닫히자마자 미나토는 스르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뇌리에 떠오른 것은 단 한 순간 봤던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등이다.

“만나러 와…줬는데.”

어째서―무엇 때문에 온 것일까?

그것마저도 미나토는 이제 알 길이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과 변덕이었을까, 너무 감정적으로 된 탓에 밖으로 나갔을 뿐이지 실은 다른 의미가 있었을까?

“아… 뭐야.”

자신의 생각에 무심코 웃음이 흘렀다.

지금 자신은 몇 시간 전에 일어난 그 일을, 그때의 오기와라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파트까지 왔다는 단 한 가지 사실에 매달려서 오기와라가 사실은 자신을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사무치도록 깨달았는데.

고백은커녕 모멸과 분노만 안겨주었다.

일방적인 행위를 강요한 끝에 기절한 자신을 버려뒀다.

좋아하니까, 가능하면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다고 원했다.

하지만 그것뿐. 자기 마음을 밀어붙이는 것도, 성적인 욕구를 내보인 적도 그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용서할 수 없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었을까.

애를 태우면서도 그 이상으로, 가슴 한편이 짓눌리듯 아렸다.

이렇게 아플 것이라면 차라리 멀어지는 것이 낫다고 여기면서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말았다.

만나서 목소리를 듣고 싶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다면 전화라도 좋다, 최소한 그의 입에서 진심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이다.

미나토 스스로 더이상 오기와라와는 만나지 않겠다고 정했다―.

어둠 속, 문에 기댄 채 미나토는 턱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흘러내리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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