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2)

3

수업 마지막 날은 풍덩 빠질 것처럼 하늘이 파랬다.

강의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끝낸 다음, 4주 동안 지정석이었던 가장자리에 대기하듯 선 채로 미나토는 그곳을 둘러봤다.

아침부터 몇 번이고 그렇게 하고 있으면, 그때마다 으레 복도 쪽 중간쯤에 있는 자리에서 그의 시선이 멈추었다.

요 사흘간 쭉 비어 있던 그 자리의 주인―오기와라는, 이번 주말을 지나 다음 주부터 나온다고 들었다.

미나토와 오기와라가 휘말렸던 사고는 건널목 안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바람에 전철이 달려오던 중 일부가 탈선한 것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차에서도, 전철 승객 중에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경상을 입은 사람이 다수 나왔다.

이 학교 학생도 두 자릿수가 넘는 사람이 휘말려 한때 소동이 났었다. 그리고 현재 입원한 사람은 교내에서는 단 한 명뿐인데 그 한 명이 바로 오기와라였다.

오기와라는 그 직후 구토했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구토가 멎지 않는 것은 후두부와 등을 강타당했기 때문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검사 결과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런고로, 다친 오른쪽 무릎의 경과 확인까지 포함해 주말까지 입원하기로 된 상황이었다.

미나토는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으로 그쳐, 그 다음 날 연구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상처가 가볍고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연구라는 사정도 고려해, 날짜를 연기하자는 제안은 자신 쪽에서 먼저 거절했다.

무사히 연구 수업을 마친 뒤에, 이곳에 올 때마다 그는 항상 오기와라에게 상처를 입힌 자신의 부주의함을 절실히 깨닫고 느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지도교수에게 이끌려 교수실로 장소를 옮기자 미나토는 수습 기간의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도교수는 가느다란 눈을 주름에 파묻듯 미소 지었다.

“앞으로도 제대로 하라고. 마지막에 가서는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모쪼록 힘내. 내키면 또 놀러 오고.”

생각지도 못한 말로 격려를 받아 여태껏 답답했던 마음이 아주 약간 가벼워졌다.

3호관 3층 휴게실에서는 먼저 인사를 마친 강사 두 명이 정리를 시작했다.

마지막 청소를 끝내고 모두 모여 학교를 나섰을 때는 아직 주위는 충분히 밝고, 운동장에서 기운찬 소리가 들렸다.

승강구를 나왔을 무렵 여자 강사와는 따로 행동했다. 지금부터 여학생들과 송별회를 겸해 디저트 가게에 가는 모양이었다.

“호소카와는 벌써 가? 사진부에 얼굴 안 내밀어?”

“어제 부활동 하면서 인사는 마쳤으니까. 유모토는 이제 육상부에 가?”

“그 전에 간식 좀 사고. 그 녀석들, 역 앞의 슈크림이라고 지정까지 했다니까.”

투덜거리는 유모토와 나란히 미나토는 학교를 뒤로 했다.

사흘 전에는 날마다 오기와라와 걸었던 길이다. 그 때문인지 옆에 유모토가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생각되었다.

“호소카와는 이 뒤에 오기와라 병문안?”

“응. 결석 중에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매일 간단 말이야? 오기와라 본인이 원한 거지?”

물어보는 목소리의 울림이 신경 쓰여서 미나토는 곁에서 걷는 친구의 얼굴을 봤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기색의 유모토는 어색한 얼굴을 피하며 말했다.

“오기와라, 여름 방학에 오른쪽 무릎 수술한다더라.”

“…부상 직후에는 염증을 일으키니까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둬야 하나 봐. 수술 전까지 포함해서 3주 동안 입원해야 하고, 그럼 방학하자마자 해야 된대.”

수술 후 운동으로 복귀하기까지는 약 십 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오기와라는 내년 여름까지 부활동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3학년 여름 이후에 부활동은 어렵겠지.”

“못 들었어? 오기와라 육상부 그만둬. 이제 경기 복귀는 안 되니까.”

“뭐?”

생각하기도 전에 발이 멈췄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쳐다보자 유모토는 곤란한 듯이 말을 골랐다.

“하지만 오기와라는 수술 뒤에 십 개월만 있으면 운동에 복귀할 수 있다고….”

“체육 수업이나, 취미 수준이라면 말이지.”

“――.”

말을 잊은 미나토에게 유모토는 망설이며 말했다.

“오기와라가 다친 덴 무릎 인대야. 그곳이 손상됐어. 인대는 한 번 끊어지면 재생되지 않으니까, 수술로 재건하는 거야. 완전히 나아도 운동에는 제한이 있고, 재발할 우려도 있지. 그 운동 복귀라는 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범주에서고, 오기와라처럼 전국 대회 수준의 운동선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어.”

“…그 말, 언제 들었어?”

“그저께. 코치님이 문병 갔을 때 본인이 말했다더라. 정식 통보는 다음 주에 할 건가 봐.”

“….”

유모토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미나토는 고개를 숙였다.

친구가 입은 치노팬츠의 오른쪽 무릎 근처를 쳐다봤다.

사고 직후, 전철 바닥에서 오른쪽 무릎을 누르던 오기와라의 새파란 얼굴을 떠올렸다.

다음 날 병문안을 갔을 때는 아직 창백한 얼굴로 미나토의 연구 수업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저께는 드디어 두통이 가라앉았다고 웃었고, 어제는 내일이면 마지막이네요, 하고 미나토의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라며 억울해했다.

만약을 대비해 퇴원 뒤에도 경과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곤 했지만, 검사에서 뇌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나머지는 무릎뿐이니 휴가받은 셈 치고 얌전히 지내겠습니다, 라며 가벼이 웃어 주는 게 전부였다.

오기와라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미나토에게 감춘 부분이 있었을 뿐이다.

“쓸데없는 소릴지 모르겠지만 너, 앞으로는 웬만하면 그 학교 근처에 안 가는 좋아.”

“…?”

“육상부 일부에선 오기와라가 무릎 다친 건, 사고 났을 때 네가 부딪쳤기 때문이라고 소문내는 녀석들이 있어. 같은 차량에 있으면서 본 모양이야.”

미나토가 말을 잃자 유모토는 마음 쓰는 양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항력인데 말이지. 그 상황에서 그런 여유가 있을 리 없고, 애초에 네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오기와라는 육상부에서도 특별 취급받고, 학교 안에 팬도 많아.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대학생이면 행동력도 있잖아. 머리에 피가 몰리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언제 유모토와 헤어졌는지 사실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미나토는 노선버스의 자리에 앉아, 창문 밖으로 시선을 향한 채였다.

귀에 들어오는 방송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줄지어 선 사람들의 끝에 서서 어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고 그곳이 오기와라가 입원한 병원 앞이란 걸 깨달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몸만은 기계적으로 움직여 병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기억하고 있는 길을 따라가다가 엘리베이터 문에서 나오면, 그곳은 이미 오기와라가 있는 병동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났는지 하얀 손수레가 소리를 내며 다른 엘리베이터로 실려 갔다. 그 모습을 본체만체하며 느릿느릿 발을 도로 앞으로 옮겼다.

오기와라의 병실은 4인실인데, 푯말에는 두 사람의 이름만 들어 있었다. 항상 열어두는 문 대신인지 출입구에는 긴 커튼이 드리워져 실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답게 뛰었는데. 그 옅은 초록색의 커튼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미나토는 생각했다. 유연하고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며, 마치 그곳에 떠 있는 구름 같았다.

그런데 이제 두 번 다시 그 광경을 볼 수 없다는 말인가.

불가항력이었다고 유모토는 말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 그 사고의 순간은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미나토가 부딪치지 않았다면 오기와라가 오른쪽 무릎을 다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높이뛰기에도 열심이었다. 지구대회나 전국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내어 스카우트되는 것도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기와라의 미래, 그리고 현재까지의 모든 것을 미나토가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선생님? 오셨어요?”

느닷없이 말을 거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 미나토는 숨을 멈추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오기와라가 있다.

샤워하고 왔는지 머리칼은 젖었고, 목에는 수건을 감은 채였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내보이며 환자복을 입은 양팔에는 목발을 댄 채로 미나토를 바라보았다.

“오늘 끝이죠. 피곤하실 텐데 일부러 와 주셔서 감사해요.”

“…아냐.”

목이 쉬어서 자기 귀에도 작게 들렸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자 쾌활한 목소리가 말했다.

“안에 안 들어가세요? 이 목발,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가끔 무섭거든요.”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갈게. 다음에 집으로 인사하러 갈게.”

“실은 저, 선생님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계속 기다렸어요.”

소리와 함께 뻗어 나온 팔이 살며시 어깨를 눌렀다.

미나토는 움찔하며 당황했다.

“오기와라! 목발에서 손 떼면 위험해.”

“그렇죠. 그러니까 선생님, 먼저 들어가 주시겠어요?”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는 얼굴로 말해,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넓은 병실은 눈에 보이는 침대 두 개가 비어 있었고, 구석에 있는 창가 오른쪽이 오기와라의 자리였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사람은 외출을 간 모양이었다.

오기와라가 앉은 침대 위에 놓인 짧고 두꺼운 벨트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일까,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목발을 가지런히 세운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재활할 때 발에 감는 거예요. 수술할 때까지 근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준비해주셨어요.”

“…그래.”

대답하면서 어떻게 그런 얼굴로 웃을 수 있을까, 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자, “선생님.”하고 불렀다. 눈을 들어보니 오기와라가 캔커피를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몇 걸음 다가가 그것을 받아들자,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부탁이 뭐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괜찮은데.”

접이식 의자에 앉자 엉덩이 부분이 삐걱거렸다. 그 소리가 오늘따라 공연히 귀에 거슬린다.

“무슨 말 들으신 거죠? 제 오른쪽 무릎에 대해.”

조용한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와라는 어떤 얼굴로 그 말을 입 밖에 내었을까. 살며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에라도 고개만 들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한심한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전에도 말했지만 수술하고 열 달 뒤면 운동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육상부에는 돌아갈 수 없잖아.”

“아쉽지만요. 불가항력이고 어쩔 수 없었어요.”

아니잖아, 라고 미나토는 가슴 깊은 곳에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서로 서 있던 위치가 반대였다면, 미나토가 좀 더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애초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거절했다면, 틀림없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차가운 캔커피를 손에 쥔 채 미나토는 어색하게 자라에서 일어섰다. 가능한 한 깊숙이 오기와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사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정말로 미안해―.”

“선생님은 이미 충분할 만큼 사과했어요. 그보다 여길 좀 봐주세요.”

병실 앞에서 만났을 때부터 거의 변하지 않은, 쓴웃음이 섞인 미소기 입가에 걸렸다.

그렇게 말했음에도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계속 서 있자, 팔꿈치를 잡아서는 가볍게 밀었다. 예상 밖의 움직임에 자세가 잠시 흔들린다 싶을 때 미나토는 도로 의자에 앉혀졌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제 상처는 선생님 탓이 아니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요. 같이 탄 전철에서 사고가 났고, 제가 다쳤는데 그것이 우연히 오른쪽 무릎이었고, 재수 없게 인대를 못 쓰게 되었을 뿐이에요. 애초에 선생님도 그 사고의 피해자잖아요.”

“그렇지만 네게 부딪친 건 나야. ―넌 선수로서 기대받았고, 장래도.”

“저보다 기대받는 선수는 훨씬 많아요. 이 일이 있든 없든, 어차피 육상은 대학교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제가 따로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오라는 데가 있었어도 그냥 거절할 예정이었고요.”

“그래도….”

“작년부터 이쪽으론 할 만큼 했어요. 충분히 재밌었고 딱히 아쉬움도 없어요. 약간의 미련은 남지만, 아마 그건 어떤 이유로 그만둬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오기와라의 말은 하나같이 미나토가 듣기에 편한 내용뿐이라서 오히려 괴로웠다. 고개를 들고 전부터 머리에 담아두었던 말을 미나토는 천천히 입 밖으로 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학교생활을 돕는다든지.”

“그거 안 되지 않아요? 선생님도 대학원 나가야 할 거고.”

“필요한 학점은 거의 땄어. 수료 전에 아르바이트도 정리해서 시간 조정이 자유로운 부분만 남았으니까 아침저녁으로 그 정도 시간은 확보할 수 있을 거야. 가족한테 일이 있으면 전철로 다닌다고 했잖아? 그렇게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수술 전 아주 중요한 시기에 목발을 짚고 무릎에 장비를 단 오기와라가 그 붐비는 전철에 타다니.

생각만으로 몸서리가 쳐졌다.

“선생님 지금 대학원생이죠? 취업활동도 해야 하잖아요.”

“7월 말이랑 8월에 채용 시험을 치기로 했어. 아침저녁으로 외출 좀 돕는다고 떨어질 것 같으면 처음부터 붙을 리 없지. 그러니까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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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큼은 물러설 마음이 들지 않아 강하게 말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던 오기와라가 조금 있다가 눈을 접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우리 부모님께 일이 있고 선생님 시간이 괜찮을 때 부탁해도 될까요?”

“응. …고마워.”

“감사할 사람은 저죠. 솔직히 선생님 덕분에 살았어요.”

앉은 채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오기와라는 고개를 드나 싶더니 이상한 표정으로 미나토를 봤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는데 뻔뻔스럽지만 선생님께 부탁이 있어요. 방학 동안 제 과외를 해주시지 않을래요?”

“…뭐?”

입을 떡 벌린 미나토에게 오기와라는 진지하게 말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공부하려고 하는데, 입원한 동안은 여름 보충강의를 갈 수도 없고, 인터넷 강의는 체질에 안 맞거든요. 그래서 과외 좀 부탁할 수 없을까 하고요.”

“과외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실력 있는 선생님이 많아.”

“그렇지만 저랑 잘 맞는 선생님은 좀처럼 찾기 어려워요. 게다가 호소카와 선생님보다 더 잘 맞는 선생님이 그리 쉽게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요.”

“그럴 리가. 오기와라라면 얼마든지.”

“호소카와 선생님 바쁜 건 잘 아니까 시간대나 횟수는 제가 맞출게요. 주에 한 번이든, 열흘에 한 번이든, 숙제를 내주기만 해도 돼요. 웬만하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놀랄 만큼 열정적이기에 당혹했다. 미나토의 그 모습을 눈치챘는지 오기와라는 약간 톤을 낮추어 계속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제멋대로죠. 하지만 그만큼 아르바이트비는 더 챙겨드릴게요.”

“잠깐, 그런 조건으로 웃돈까지 받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제 입장만 밀어붙여서 억지로 부탁하는 거고, 수술 전후로는 제 사정에 따라 좌우되는 일도 있을 거예요. 그만큼의 수고료라고 생각해주세요.”

제발 부탁이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서 대답이 망설여졌다.

실은 시기 이상으로 신경 쓰이는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이번 달부터 부탁하고 싶어요. 다음 달 기말시험 대비라든지. 선생님 상황에 맞춰서 단기간도 상관없고, 입원하기 전까지는 장소도 선생님이 정하면 맞출 테니까요.”

“그 정도로 조건이 좋으면 지망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아는 사람 중에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선생님이 있으니까 내가 소개해도….”

“아까도 말했지만 전 호소카와 선생님이 좋아요.”

오기와라는 미나토의 말을 잘랐다.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미나토는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은 제 과외 하는 게 싫으세요?”

목소리가 차츰 작아졌다. 딱 보기에 풀 죽은 것 같은 오기와라에게 미나토는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은 건 절대 아냐! 나라도 괜찮으면 언제든지.”

“진짜요? 감사합니다!”

대번에 튀어나온 대답. 어안이 벙벙해진 미나토 앞에서, 오기와라는 한 건 해냈다는 얼굴로 웃었다.

결국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다.

조금 건방지게 느껴지는 지금의 얼굴에서 그가 최대한 자신을 배려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제든 상관없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내가 과외를 해도 될지 안 될지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줬으면 좋겠어.”

사고가 일어난 후 두 번 정도 얼굴을 마주쳤을 때, 오기와라의 부모님은 미나토를 단 한 마디도 책망하지 않고 단지 ‘불운한 사고였다.’는 말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자신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비는 필요 없어. 문병 선물이라고 쳐.”

“안 돼요. 그런 건 부모님도 이해하질 않으실 거고 저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니까요.”

“오기와라는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은 꽤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부모님이 이해하지 않는다는 건 무슨 말이야?”

“선생님께 과외를 부탁할 거란 얘긴 이미 했어요. 웃돈을 드리라고 제안한 건 형이지만 부모님도 동의했고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호소카와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그 말을 듣고 미나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죄송한 건 나인 거 같은데. 오기와라의 형님께는 한 번 뵙고 인사도 했고.”

집을 나와 혼자서 생활한다는 오기와라의 형은, 사고 다음 날 병원으로 찾아왔다. 소개를 받고 서로 명함만 주고받았을 뿐인 그가 어떤 이유로 웃돈 같은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어차피 들킬 테니까 먼저 자백하는데요, 웃돈은 보육수당이래요. 여름 내내 절 돌봐야 할 테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라고.”

오기와라의 토라진 얼굴과 보육수당이란 단어의 파괴력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처음으로 본 또래다운 오기와라의 표정이 그가 아직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걸,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앞으로 호소카와 선생님 말고 미나토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이제 수습도 끝났고 학교와도 상관없으니까.”

“…그건 상관없는데.”

“그럼 미나토 선생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미나토의 대답을 듣자마자 오기와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발로 중심을 잡고 솜씨 좋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야말로.”라고 대답하자마자 곧바로, “코우시?”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커튼을 걷으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약간 동안에 귀여운 인상을 지닌 여성―오기와라의 어머니였다.

“호소카와 선생님, 계셨군요. 항상 감사합니다. 코우시가 늘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는 충분합니다.”

“어제 말한 과외 얘기, 들어주셨어. 시험 대비도 OK래.”

당황해서 손을 젓는 미나토의 옆에서 오기와라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의 어머니는 부드러운 표정 위로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다행인데, 코우시. 설마 억지 부리면서 선생님께 부탁한 건 아니지?”

“그럴 리 없잖아. 이유도 제대로 말씀드렸어.”

“그래? 그럼 괜찮지만.”

오기와라와 다짐을 거듭 확인하며 대화를 마친 그녀는 미나토를 올려다보았다.

“제멋대로인 아이라 여러모로 성가시게 해드리겠지만,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무슨 곤란한 일이 있을 때는 주저 없이 말씀해주세요. 저희도 엄하게 주의하라고 말하겠습니다.”

“…미나토 선생님 앞에서 굳이 문제아 취급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부루퉁하게 입술을 삐죽이는 오기와라를 보고 그의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잖니. 그건 그렇고, 코우시는 미나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네. 그럼 나도 다음부터.”

“안 되지. 엄마랑 가족들은 지금처럼 그냥 호소카와 선생님이라고 해도 되잖아.”

미나토를 올려다보며 말하던 도중, 갑자기 끼어든 오기와라가 말을 자르자 그녀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코우시가 미나토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면 상관없잖아.”

“이건 과외 학생의 특권이니까 안 돼. 형이랑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해요. 그리고 다음 주부터 학교 말인데, 미나토 선생님이 데려다주신대.”

오기와라의 말에 어머니는 “어머.”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선생님께 너무 기대는 거 아니니?”라고 덧붙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미나토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실은 이미 차도 구해놨습니다. 괜찮으면 맡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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