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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너 어떻게 오기와라랑 친해졌어?”
4주간의 계약이 나흘 남은 날 수업 후, 휴게실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
기록지에 써넣던 손을 멈추고 미나토는 테이블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유일한 여자 강사에게 시선을 향했다.
밝은색의 머리칼과 자연스러운 화장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유모토와 미나토와는 다른 대학을 다녔다.
편안한 미소와 붙임성으로 학생들과 빨리 친해지고, 지금은 ‘마리 선생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글쎄. 계기는 아마 사진 같은데.”
“전에 오기와라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남녀 불문하고 무시당했잖아. 근데 호소카와만 다르네. 매일 아침 둘이서 오고, 집에 갈 때도 종종 같이 가는 것 같고. 딱히 볼일 없어도 먼저 말 걸고, 호소카와랑 같이 있을 때 굉장히 아이 같은 얼굴로 웃는걸.”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나열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유를 물어봐도 알 수 없었다.
애매하게 웃는 미나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육상부 코치님 앞에서도 그렇게 웃은 적은 없다더라? 유모토도 담당 첫날부터 육상부에서 직접 지도하는데 본 적 없다던 걸.”
그 유모토는 지금 육상부를 지도하고 있어서 여기에는 없었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미나토는 무난하게 받아쳤다.
“그런가? 잘 웃고 예의 바른 학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의야 바르지. 인사뿐 아니라 말을 걸면 제대로 대답하고. 하지만 자신이 먼저 나서서, 나나 유모토에게 말을 건 적도 없고, 친해지려고 하면 휙 달아나는걸. …호소카와, 실은 오기와라랑 원래 알던 사이였어?”
마스카라를 꼼꼼히 바른 눈으로 쳐다보기에 미나토는 쓴웃음을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오기와라가 먼저 미나토에게 다가온 이유를 알고 싶은 모양이다.
“그건 아냐. 애초에 나는 여기 출신도 아니고 대학교나 아르바이트하는 곳 아니면 아는 사람도 없어.”
“그럼 왜?”
“글쎄. 나도 몰라.”
솔직하게 대답해도 그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나토는 기록부로 눈을 돌렸다.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강사 세 사람은 한 곳에 모여 연구 수업 준비에 쫓기고 있었다.
다행히 미나토가 제출한 지도안은 이미 지도교수로부터 문제없다는 대답을 받은 상태였지만.
묵묵히 펜을 움직이는 미나토의 모습을 보며 추궁하기를 포기했는지 실내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몇 분 뒤, 미나토가 기록부를 덮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벌써 가?”하며 그녀가 물어왔다.
“내일, 연구 수업이잖아. 준비 끝났어?”
“나머지는 집에 가서 고칠래. …먼저 갈게.”
“응―조심해서 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도 내일 있을 연구 수업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지도안을 다시 제출하는 것에 꽤 애를 먹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면 점심시간부터 계속 컴퓨터를 노려보며 끙끙거렸다.
6월도 중순을 지나니 하루가 꽤 길어졌지만, 오후 8시가 넘으면 바깥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승강구를 나와 걷기 시작하자 조명이 비추는 운동장에서 야구부원이 뒷정리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울린 전자음에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발을 멈추고 슥 읽고 짧은 답장을 보내는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집에 가세요? 지금 가면 8시 넘어서 오는 전철 타죠?
“아, 응. 그런데.”
“저도 그거 탈 건데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바로 올게요.”
미나토가 아닌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던 그 미소로 대답하더니 체육복 차림의 오기와라는 눈 깜짝할 새 발걸음을 돌려 체육관으로 뛰어갔다.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 끝으로 부활동이 끝났는지 육상부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삼삼오오 돌아가고 있었다.
2주 정도 전에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이후, 오기와라는 매일 같이 미나토에게 말을 걸어왔다.
올 때는 전철 안에서 미나토를 찾으러 오고, 귀가할 때는 여러 번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수업 중에는 물론, 교내에서 오다가다 마주쳤을 때조차 그 품위 있는 얼굴로 넋을 잃을 듯한 미소를 보여줬다.
이번 달 초순에 열린 학교 대항전 현 대회에서 대회 신기록을 세운 오기와라는, 머지않아 열리는 지구 예선대회 출장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 직후에 열린 교내 일제 실력 시험에서는 차석과 큰 점수 차를 내며 일등을 차지했다고 하고.
도대체 그런 사람이 미나토 같이 수수한 사람에게 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대답은 자연히 보이기 마련이다.
오늘 즈음이 기회인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손에 들린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액정 화면에 표시된 이름이 방금 문자를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미나토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체육관에서 보이는 위치에 서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나토? 문자 봤는데 뭐야, 그거.’
“말 그대로야. 아직 수습 중이고 다음 달 말에는 교원 채용 시험이 있으니까 당분간은 안 돼.”
‘그거 아직 한 달이나 남았잖아. 가끔은 숨이라도 돌리라고. 반나절이 어려우면 밤에는 시간 낼 수 있잖아?’
“사양할 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냐.”
‘그러면서 애인 하나 안 만들고 졸업할 생각이야? 그러잖아도 대학원에서 상대 찾는 거 어려운데.’
가벼운 말투로 하는 대사 후반부의 절반은 거짓말이다.
그것이 배려라는 것을 알고 미나토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나가시마 넌 상대 찾기 힘든 적 없었잖아. 요시하루랑 잘 지내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상대방한테 들었는데, 나랑 너랑 술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나 봐. 너 보고, 순진해 보인다던데.’
“나가시마, 좀.”
‘나이는 세 살 많고, 무역회사에 다닌대. 여자한테는 흥미 없어서 사귄 적도 없고, 남자는 있었는데 깨끗하게 차이고 이제 반년 지났대. 주위의 사람은 질려서, 닳지 않은 성실한 사람이랑 잘 돼서 오래오래 사귀고 싶대. 미나토 네가 딱 맞지?’
결정 난 일처럼 말하는 친구 나가시마 에이스케에게 미나토는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내쉬었다.
“시기가 안 좋아. 게다가 전부터 말했지만 난 별로 애인 같은 거 없어도.”
‘미―나―토―. 설마, 몇 년이나 지난 실연 때문에 아직도 질질 끄는 건 아니지?’
“…지금 학교 끝나고 가는 길이라 슬슬 일행이 올 거야. 미안한데 그 얘긴 거절해줘. 또 연락할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다시 전화가 올 것이라 확신하고 그대로 전원을 껐다.
휴대전화를 가방 주머니에 집어넣었을 때 체육관 방향에서 뛰어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오기와라였다.
“죄송해요. 기다리셨죠?”
“아니, 마침 전화가 와서. …컨디션은 어때?”
“그럭저럭 괜찮아요. 타이밍이 잘 맞게 됐으니까 이대로라면 시합 날에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오기와라는 운동복 차림으로 가방과 보스턴백을 들고 있었다.
땀을 닦기 전에 물이라도 뒤집어썼는지 밤에 보는데도 짧게 정돈된 머리카락이 덜 말랐다.
“오기와라, 수고했어.”
“오기와라 선배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서서 이야기하는 두 사람 곁을 지나가는 자전거 탄 학생들은 아마도 육상부원일 것이다. 오기와라가 짧게 인사해주자, 기쁜 듯 여학생들의 뺨이 풀어졌다.
주변에서 떠오른 의문은 아마도 학과 전체에게도 마찬가지인 듯, 미나토가 오기와라와 함께 있을 때 다들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에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열등감이 드는 것은 분명했지만, 주위에서 말하고 싶은 마음도 알 것 같아서 매번 모르는 척 넘겼다.
사실 오기와라 좋을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그와 함께하는 상황을 미나토 자신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나토는 다섯 살이나 어린 이 대학생에게 사모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말았다.
…자신이 아무래도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깨달은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중고등학교 통틀어 눈에 띄는 일이 없던 미나토는 여자와 전혀 인연이 없었고, 흥미도 없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입한 동아리의 선배에게 그는 동경에 가까운 마음을 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동아리방에 드나들다가 말을 걸어주기만 해도 심장이 몹시 두근거리게 되었을 무렵, 그 곁에 예쁜 여성이 있고 친하게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맛본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 결국은 실연이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방금 전화 상대인 나가시마였다.
그도 역시 미나토와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흥미를 갖지 않는 몸이었다. 다만 나가시마는 미나토와 달리 끊임없이 연인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선배에게 실연한 이후 전혀 연애하지 않으려는 미나토가 항상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가로등이 켜진 길, 자신의 옆에서 걷는 오기와라는 보폭이 큰 데 비해 걷는 속도가 꽤 느긋했다.
아마 혼자 걸을 때는 더욱 빠르게 걷겠지만 지금은 미나토에게 맞춘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를 오기와라와 있으면 때때로 느낀다.
그래서 미나토가 먼저 피하지는 않았다.
“이제 물어도 될까? 오기와라가 나한테 관심갖는 이유.”
어떤 놀림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흥미로 인해 나온 질문이었다.
오기와라가 진심으로 자신을 따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인 오기와라를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미나토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일 연구 수업이 끝나면 귀가 시간은 날마다 달라진다.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오기와라와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집에 가는 길뿐이라 직접 묻는다면 바로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갑작스러웠는지 오기와라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강한 시선으로 미나토를 응시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요?”
“갑자기는 아냐.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기간이 끝나면 끊어질 인연이다.
지금의 상황이 한때의 변덕이라 해도, 혹은 흡사 신기한 장난감을 찾아낸 짓궂은 심정이었다 해도, 여태 즐거웠던 시간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어른스러워 보여도 오기와라는 아직 학생이다. 남자끼리라는 조건까지 더하면 미나토 안에서 키워온 마음이 보답 받지 못하리라는 것은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러므로 더욱 분명히 해두고 싶다.
지금, 여기서 이 마음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대낮처럼 밝은 역사 안을 걷다가 개찰구를 빠져나와 계단을 올랐다. 그동안 계속 아무 말 없던 오기와라는 플랫폼으로 나갈 즈음에 입을 열었다.
“선생님과 있으면 즐겁기 때문이에요. 재밌고 따분하지 않아요.”
“…그 반대 아냐? 내 별명, 관엽식물이야.”
“옆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뜻인가요?”
“있든 없든 신경 안 쓰이고 같이 있어도 재미없다는 뜻.”
수수하고 눈에 띄지 않고, 언변이 서툴고 재치 있는 말 한마디 못한다. 간신히 분위기를 망치는 짓은 하지 않지만 그뿐이다.
오기와라와 있어도 기껏해야 말을 받아서 대답하는 정도였고, 새로운 화제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잖아요. 전 선생님과 얘기하는 게 좋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그러면 안 되나요?”
곁에 선 장신이 몸을 구부렸다.
가까운 거리에서 쳐다보기에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자 작게 웃는 기색이 나서, 그것으로 겨우 이해했다.
간단히 말해, 미나토의 익숙하지 않은 반응을 오기와라는 재미있다고 느낀 것이다.
“오기와라, 의외로 심술궂네.”
“칭찬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호소카와 선생님 수업 좋아요.”
기습적으로 이어진 말끝을 쳐내듯, 전철이 홈으로 들어왔다.
굉음 속에서 오기와라는 진지한 얼굴로 미나토를 응시했다.
별로 본 적 없는 낯선 표정에 가슴이 철렁거린다.
그대로 긴 팔이 등을 떠밀어 미나토는 전철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약간 붐비는 가운데 오기와라의 리드로 연결부와 가까운 벽 끝에 나란히 섰다.
“호소카와 선생님의 설명은 세세하지만, 쓸데없는 말이 없고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같은 과 녀석들도 말해요. 게다가 쥐약인 녀석한테 몰래 풀잇법의 단서를 알려주기도 하죠.”
“…!”
지도교수가 평가한 내용인데, 설마 학생들도 눈치채고 있을 줄은 몰랐다. 눈을 동그랗게 뜬 미나토를 보고 오기와라가 한 방 먹였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수업, 벌써 끝나는 게 아쉬워요. 가능하면 내년에 우리 학교에 오셔서 이과 계열 담당했으면 좋겠어요.”
미나토에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자연스레 풀어지는 뺨이 몹시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런데 선생님.”
오기와라가 말을 건 순간, 갑자기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에 눈앞이 이중 삼중으로 흔들렸다. 손잡이에서 손이 떨어지고 발이 떠서 기울어졌다. 느릿한 굉음이 귀를 뒤덮고 시야가 슬로모션으로 변했다.
별안간 몇 미터 앞에 있던 초등학교 저학년 같은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끌려가듯 삽시간에 균형을 잃어버린다.
반사적으로 뻗은 손끝에 잡힌 그 작은 어깨를 끌어당겼을 때, 미나토의 몸도 기울어지며 흔들렸다. 부딪친다고 각오하고 이를 꽉 문 순간 온몸에 충격이 퍼졌다.
“…뭐, 야?”
새된 비명이 귀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 웅크린 채 고개를 들어서야 겨우 흔들림이 멈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품속의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미나토의 셔츠를 쥔 채 겁을 집어먹고는 기어코 동그래진 눈동자에서 눈물을, 벌어진 입에서 울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되지 못한 안타까운 것을 아득히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는가 했더니 이내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단숨에 뛰어온 어머니는 신발 한 짝을 잃고서 이마에 피가 배어 나오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느다란 팔로 아이를 끌어안고, 그제야 소리를 내어 울어대는 어린아이를 달래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금방 내릴 거니까 앉지 않은 채 그냥 자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있게 했던 모양이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에게 향하는 인사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몹시 소란스러워진 주위가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렸다. 바닥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로 휘어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주택가는 역이 아니었다.
“…선생님.”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곧바로 돌아보고는 그대로 숨이 멈췄다.
벽에 기대어 바닥에 앉은 오기와라가 창백한 얼굴로 머리를 잡고 있었다. 고통이 역력한 얼굴로 일어서려다 실패하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기와라, 다쳤어?! 어디 부딪쳤어?!”
“…괜찮아요. 금방 구급차가 올 테니까 진정해요. 그보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난 아무 데도―.”
대답을 하다가 미나토는 즉각 숨을 삼켰다.
아이를 안은 채 부딪쳤을 때 피부로 느낀 감촉은 차갑고 딱딱한 전철 벽이 아니라 탄력 있는 무언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자신이 무사한 것은 오기와라를 쿠션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차내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소리가 났다. 휴대전화로 여기저기 알리는 듯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읏.”
신음하듯 커다란 숨을 내뱉은 오기와라가, 고통을 참듯이 오른쪽 무릎을 눌렀다.
그 몸짓과 표정에 온몸이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