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
계절의 변화는 손님들의 옷차림으로 알 수 있었다. 셔츠가 얇아지고, 소매가 짧아졌으며, 발등을 덮는 구두는 샌들이 되었다.
한겨울에 이곳에 들어와 추운 줄 모르고 지냈다. 봄은 고작 하루 느꼈고, 이제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부터 덥다고 투덜거리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계범호도 호텔로 들어오자마자 몸을 씻었다. 가운을 걸치고 나와서는 맥주를 마시며 태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자의 젖은 머리와 달리 태주의 머리는 보송보송했다. 눈썹 밑으로 긴 데다가 숱도 많아서 요즘 남자는 버릇처럼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곤 했다.
“밖에 더워요?”
침대에 앉은 태주가 남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남자는 태주의 창백한 피부를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남자는 좀 이상했다.
섹스 후 담배를 피우는 것이야 같았다. 그런데 생각에 잠긴 듯 허공에 둔 시선은 분명 낯설었다.
한 손은 담배를 들고, 다른 손은 태주의 머리카락을 헤집던 그가 곧 담배를 껐다.
몸을 일으킨 남자가 씻으러 가리라 예상한 태주는 베개를 고쳐 벴다. 그런데 커다란 손이 태주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이다. 주욱, 한쪽 발목이 잡힌 채 침대 끝까지 내려온 태주가 멍하게 고개를 들었다.
“씻어.”
계범호는 태주의 발목을 잠깐 만지작거리다 놓아주었다.
“네….”
조금 더 누워 있고 싶었는데. 태주는 제 딴엔 그런 내색은 하지 않으며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남자가 뒤따라 들어오는 게 아닌가.
“…….”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자 그가 태주의 이마를 두드렸다.
“뭐 하러 따로 씻어, 시간 아깝게.”
둘 다 씻는 시간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작 몇 분 가지고 시간 운운할 수가 있나.
“예에.”
흘리듯 대답을 내뱉자, 계범호가 가만히 쳐다보았다. 조용한 시선이 무서워 태주는 슬쩍 샤워 부스의 문을 열었다.
“들어가세요….”
계범호는 비켜선 태주의 허리를 와락 끌어당겨 옆구리에 끼다시피 하고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같이 샤워를 하며 서로의 몸을 닦아 준다거나 머리를 감겨 준다거나 하는 그런 징그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태주가 눈치를 살피며 자기 엉덩이 사이로 손을 가져다 댈 때 남자의 눈빛이 달라졌을 뿐이다.
“…빼내야 해서요.”
태주는 주저하며 말했다. 남자가 내벽 깊은 곳에 싼 정액은 제때 빼내어 줘야지 아니면 후에 곤란해지는 일이 생긴다. 몇 번의 반복으로 태주에겐 습관이 된 행위였다. 태주는 빤히 보는 남자의 시선을 외면하며 엉덩이 사이를 더듬었다.
조금 전 좆을 받아 부드럽게 풀린 구멍 사이로 손끝을 밀어 넣으려던 때였다. 덥석, 손목이 붙잡혔다.
“혼자서도 잘 쑤시네, 태주가.”
태주의 손을 밀어낸 남자가 구멍에 굵직한 손가락 두 개를 조심성 없이 쑤셔 넣었다.
“아…!”
태주는 발끝을 세웠다. 앞선 섹스로 부드럽게 풀려 있긴 했지만, 안쪽을 거침없이 휘젓는 손길엔 배려가 없었다.
뜨끈한 내벽을 휘젓던 남자는 곧 자기가 싼 정액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뒤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계범호는 무섭게 세운 좆으로 정태주의 아래를 들쑤셨다.
미끄러운 타일 위에서 남자를 받는 것이 버거워 태주는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럴 때마다 계범호는 엉덩이를 매섭게 때렸고, 기진맥진해서 부스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살갗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시간 아깝다고 했으면서.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태주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대충 머리를 털고 있는데, 옷을 갖춰 입은 남자가 신발을 신었다. 이럴 때 굼뜨게 굴면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기 때문에 태주도 수건을 떨어뜨리고 얼른 뒤따랐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까지 내려갔다.
“이쪽.”
“네…?”
매화로 향하려던 태주를 제지하며 계범호가 출입문 쪽을 가리켰다. 태주는 눈을 크게 떴다.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문은 태주가 한 번도 통과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도 쓰레기장이 있는 뒷문으로 들어왔었다.
“어, 안 되는데….”
정태주는 어쩐지 겁에 질렸다. 계범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태주를 쳐다보다가 손목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더운지 궁금하다며.”
“…….”
멍하게 올려다보는 태주의 볼을 가볍게 건드린 계범호가 가까이 다가온 깡패에게 말했다.
“얘 데리고 나갔다 올 테니까 말 전해 놔.”
“예, 알겠습니다. 애들 몇 명 붙일까요?”
그 말에는 태주에게 시선을 줬다. 불안정해 보이는 얼굴을 보며 그가 무심히 물었다.
“여러 명이서 시끄럽게 다녀올까. 조용히, 둘만 다녀올까.”
“…둘이요! 둘만 가고 싶어요.”
정태주가 뒤늦게 대답하고는 계범호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러곤 깡패들이 못 가게 할까 봐 염려하는 듯 그의 뒤쪽으로 몸을 반쯤 숨겼다. 그가 팔을 빼내자, 간신히 붙잡고 있던 동아줄을 놓친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의 팔이 어깨를 감쌌을 때는 안도하며 옆구리에 바짝 붙었다.
“…….”
남자는 정태주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그의 가슴팍에 반쯤 얼굴을 가린 채 올려다보는 태주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낮은 한숨을 흘렸다.
“가자.”
“네.”
유순한 얼굴을 빤히 보던 남자가 뺨을 거칠게 문지르고는 걸음을 옮겼다.
출입문으로 나가며 태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남자의 허리를 붙잡은 손에서는 땀도 났다. 남자의 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오길 기다리며 태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밤인데도 날은 전혀 춥지 않았다. 적당히 선선한 초여름 밤이 낯설어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고개를 돌려 건물도 올려다봤다.
문득 발목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까마득하게 높은 저곳에서 자신이 대체 어떻게 벽을 타고 내려온 것인지 모르겠다.
계범호의 차가 도착하고 태주는 그와 함께 뒷좌석에 올랐다. 운전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둘이 아니고 셋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느슨하게 몸을 기댄 계범호가 “시내로 가.” 하고 말했으니까.
어두컴컴한 창밖을 멍하게 쳐다보는데, 창문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계범호가 열린 창에 팔꿈치를 댄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저도 창문 열어도 돼요?”
태주는 주저하며 물었다. 그 말에 남자가 담뱃불을 붙이며 무심한 시선을 줬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게?”
“아뇨!”
“벽도 타는데 그걸 못 할까.”
나직이 말하는 남자의 입꼬리가 가볍게 휘어졌다.
태주는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창문을 열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바람이 치자 머리가 금방 흐트러졌다. 피부에 닿는 바람은 차갑지 않았고, 자신의 샴푸 냄새와 뒤섞인 풀냄새가 코 속으로 스몄다.
태주는 상체를 완전히 돌려 창문에 매달리듯 앉았다.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매화는 도심과 아주 멀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을 멍하게 쳐다보며 잠깐 상념에 젖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번화가에 와 있었다.
아는 곳은 아니었지만, 새벽 2시에도 불이 켜진 가게들과 길거리를 무리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
태주는 창문을 올렸다. 남자가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전부터 그는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주.”
낮은 부름에 태주는 고개를 돌렸다. 바깥의 불빛이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남자의 얼굴이 어쩐지 낯설어 보였다. 매화가 아닌 곳에 있는 남자를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 걸지도 몰랐다.
혹은, 이곳에 있는 제 자신이 낯선 것이거나.
불러놓고 계범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주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태주는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빠르게 깜박였다. 그러고 나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고 말했다.
“햄버거 사 주세요.”
바라보는 시선에 태주는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멀리서도 패스트푸드점 간판이 무척 잘 보였다. 계범호는 정태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동우야. 들었지.”
“예. 차 세우겠습니다.”
동우라고 불린 남자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태주는 그가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왜.”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계범호는 그걸 용케 봤나 보다. 정태주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치즈버거…. 세트로요….”
운전기사의 눈치를 조금 더 살피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이스크림도….”
조그만 말을 끝으로 정태주는 입을 다물었다. 피식. 옆에서 계범호가 웃는 소리가 났다.
“형님도 드시겠습니까?”
“아니.”
다행히도 운전기사의 목소리는 딱히 고저가 없었다. 태주의 주문에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거기다 센스도 있었다. 박조혁과 달리 그는 치즈버거 세트도 라지로 가져오고 단품도 하나, 사이드 메뉴 몇 개와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 왔다.
태주는 빵빵한 종이 백을 품에 안고 등을 기대어 앉았다. 차가 다시 출발했으니 이제 매화로 돌아갈 것 같았다. 태주는 부스럭거리며 종이 백을 고쳐 안았다. 맛있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자 허기가 졌다.
몸속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 말이다.
“먹어.”
“여기서 먹어도 돼요?”
정태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확히 얼마인지는 몰라도 아주 비싼 차였다. 차 안에서 뭘 먹는 건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범호는 비스듬히 시선을 주며 말했다.
“침 질질 흘리면서 왜 안 먹어.”
“…안 흘렸는데요.”
태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답하고는 종이 백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 전에 턱은 살짝 만져보긴 했다.
낮은 웃음을 흘린 계범호가 뒤통수를 꾹 눌렀다. 좀 멋쩍어진 태주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치즈와 소스가 범벅된 버거를 한 입 크게 물었다.
“음.”
절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매화로 음식을 가져오면 조금 식기 마련인데, 이건 뜨거울 정도였다. 따끈한 치즈버거는 고소했고, 감자튀김은 바삭바삭했다. 쉴 새 없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태주는 조금 전 느꼈던 허전함이 분명 허기였다고 확신했다.
한참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가 태주는 문득 창밖을 보았다. 한강이었다. 매화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나.
정태주는 고개를 돌렸고,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계범호와 눈이 마주쳤다. 차 문에 등을 기댄 모습으로 보아 한참 동안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
계범호가 손을 뻗어 태주의 입가를 문질렀다. 무언가 묻어 있었던 듯했다. 태주가 제 손으로 턱을 더듬거리자 그가 픽, 웃으며 머리를 헝클였다.
“잘 먹네.”
태주는 생각했다. 남자의 말투가 원래 이렇게 부드러웠던가. 눈빛도 손길도, 이렇게나 다정했었나.
새벽의 드라이브는 태주가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까지 전부 먹었을 때 끝이 났다. 매화로 돌아가는 길에 계범호는 태주를 끌어당겨 제 허벅지 위에 앉히고는 입을 맞췄다. 아이스크림이 끈적하게 묻은 입술이 달다고 인상을 쓰면서도 싹싹 핥아냈다.
매화에 도착한 뒤 계범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태주만 내리게 했다.
“…오늘 감사합니다.”
등을 돌리려던 태주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평소보다 어색한 말투와 표정에 계범호는 밀도 높은 시선을 줬다. 그러다 응, 하고 목을 울려 대답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돌아선 태주는 깜짝 놀랐다. 매화의 깡패들이 코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던 것이다. 놀라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자, 그들 중 하나가 뒷덜미를 거칠게 붙잡았다. 그때였다.
“애 놔줘라.”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주의 뒷덜미를 쥐었던 깡패가 뒤쪽으로 시선을 주며 손을 놓았다.
태주는 어깨를 조금 움츠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열린 창문 안쪽에서 계범호가 이쪽을 표정 없이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가볍게 턱짓하며 말했다.
“들어가.”
“안녕히 가세요.”
태주는 뒤를 조금 흘금거리며 건물로 들어갔다. 깡패들은 간격을 둔 채 따라왔고, 태주는 로비를 지나 곧장 매화로 향했다.
다른 직원들은 태주가 바깥에 나갔다 온 것을 아는 것인지, 흘긋 시선을 줬다. 근무 시간에 나갔다 온 게 좀 멋쩍어 태주는 괜히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제 손으로 흩뜨린 머리칼에서는 샴푸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으니 풀냄새가 코끝에 스치는 듯했다. 그리고 조금 전 창문을 열고 달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을 떨쳐내려 태주는 바쁘게 움직였다.
마감까지는 금방이었다. 드라이브가 꽤 길었던 탓이다. 아침 해가 떠올라 환해진 로비로 나가며 태주는 지난 새벽의 일이 꼭 꿈같다고 생각했다.
아. 햄버거 맛있었는데. 중얼거리다 자신의 입가를 닦아 주던 계범호가 떠올랐다. 진짜 안 어울리게….
“내가 그래서 그 손님한테 주말에 뭐 하냐고 했거든?”
“어어. 뭐래?”
다른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며 걸어갔으나 태주는 그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요즘엔 그게 좀 더 심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태주는 멀뚱히 눈을 굴렸다. 새벽에도 있던 덩치들이 보였다. 그들은 직원들이 돌발 행동을 할까 감시하느라 매섭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과는 다르게 몇 명은 얼굴에 멍이 들어 한 대 맞은 꼴이었다. 자기들끼리 싸웠나. 생각 없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험악한 인상의 깡패는 잠깐 태주를 노려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뭐지. 태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돌아섰다.
***
혹시 몇몇 덩치들이 맞은 것에 계범호가 관련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계범호가 또, 자신을 데리고 나갔을 때였다. 그날은 밤에 온 것도 아니었다.
새벽 5시쯤.
마감 청소하느라 어수선한 가운데 태주는 묘한 소란을 느꼈다. 룸 하나를 치우고 나와 트레이를 밀다 뒤돌아본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어….”
계범호가 복도에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아닌데. 어쩐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뭐 하세요?”
어리둥절하게 물은 말에 계범호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딱, 소리 나게 태주의 이마를 튕겼다.
“악!”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다. 태주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남자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봤고, 그는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인사는 어디다 팔아먹었어.”
“…안녕하세요.”
태주는 이마를 문지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계범호가 태주의 머리에 툭, 묵직한 손을 올려놓았다.
“그래. 안녕.”
너도나도 다 하는 안녕인데, 남자에게서 들으니 좀 이상했다. 스릴러 영화에서 살인마가 할 것 같은 무서운 인사였다.
“일은 끝났고?”
“이것만 정리하면 돼요.”
“하고 나와.”
“어디로요?”
태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은 말에 남자는 “밖으로.” 했다.
“어….”
멍하게 뜸을 들이는데 계범호는 돌아서서 다시 나갔다. 다른 직원들이 흘금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꼭두새벽에 보러 올 정도로 빠졌으면서 왜 아직 여기 둔대? 돈도 많은 사람이.”
“모르지. 뭐, 결혼한 거 아냐? 그런 새끼들 많잖아.”
다른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태주는 눈을 깜박였다. 우선 빨리 정리하고 나가 봐야겠다.
뒷정리를 마치고 몇몇 직원들과 같이 로비로 나왔다. 태주는 눈을 굴렸다.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그 말을 되뇌며 태주는 슬금슬금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깡패들은 그런 태주를 바라보기만 할 뿐 제지하지 않았다.
“어, 뭐야.”
“쟤 왜 안 잡아요?”
뒤에서 들려온 말에는 “신경 끄고 올라가기나 해, 씨발 것들아.” 하고 욕을 했다. 태주는 조금 얼떨떨하게 출입문 바깥으로 나왔다.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긴 했지만 그들은 태주를 붙잡지 않았다.
입구 바로 앞에 정차된 차는 전에도 본 적 있는 차였다. 태주는 새카만 차체를 잠깐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뒷좌석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계범호가 보였다.
“어디 가요?”
“타.”
남자는 묻는 말엔 대답을 안 해 주고, 빨리 안 타냐는 듯 참을성 없는 눈빛만 보냈다. 그간 생긴 눈치로 태주는 얼른 차에 올랐다. 그리고 창문을 흘긋거리고 있는데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와.”
태주가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도망칠까 봐 그런 건가 했는데 곧장 얼굴을 감싼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계범호는 피곤해 보이는 태주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가 이마에 시선을 줬다.
태주는 그의 시선이 닿은 이마를 만져 보았다. 도톰하게 부풀어 욱신거리는 게 며칠 갈 것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니 남자가 슬쩍 웃었다.
계범호는 대개 자기가 태주에게 남긴 흔적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 그를 보며 태주는 때때로 오싹함을 느꼈다. 언젠가는 그가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푼돈은 좀 벌었고?”
남자가 태주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내려다보며 물었다.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오천 원도 못 받았어요.”
그 말에 계범호는 피식 웃었다. 태주는 하나도 재미없는데 자기 혼자 재밌어하는 거였다. 태주의 표정이 이상했던지 계범호가 조금 더 짙게 웃으며 고개를 내렸다.
빨갛고 동그란 자국이 남은 이마에 입을 맞추고 광대뼈 위에도 입을 맞췄다. 태주는 그간의 입맞춤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 태주를 칭찬하듯 머리를 쓰다듬은 남자가 뒤통수를 부드럽게 받쳤다. 그는 태주가 고개를 뒤로 꺾게끔 하고 혀를 얽었다.
“으응….”
태주에게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오자 그가 태주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이미 그와 바짝 붙은 채라 더 끌어당길 수 없게 되니 결국 태주의 팔 아래에 손을 넣고 들어 올려 제 허벅지 위로 앉혔다.
아침에 하는 것치곤 깊고 진득한 키스에 아래에 반응이 온 것도 당연했다. 남자의 것은 무서울 정도로 부풀어 윤곽을 드러냈고, 태주의 아래도 반쯤 섰다.
계범호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색색 숨을 내쉬는 태주의 허리를 감싸고 말했다.
“동우야, 나가 있어라.”
“예, 형님.”
태주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언제 차가 멈췄는지도 몰랐고, 키스를 할 때는 솔직히 운전자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치심보다는 혼란스러움이 컸다.
계범호와의 스킨십은 분명 제게는 억지로 견뎌야 하는 행위였었다. 그런데 좀 전엔 그와 혀를 얽으며 완전히 몰입하지 않았는가. 역겹거나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때 툭, 엉덩이에 손길이 닿았다. 그러자 태주는 반사적으로 바지 지퍼를 내렸다. 아주 자연스럽게. 계범호가 지퍼 사이로 불쑥 손을 넣어 자신의 성기를 꺼내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계범호와의 스킨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익숙해져 자연스러워진 것이고,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일 테다.
일이니까.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발기한 아래가 묵직하게 눌러졌다. 고개를 숙이자 핏줄이 불거진 검붉은 성기가 색이 옅은 제 성기 위로 놓인 게 보였다. 계범호의 것이 자신의 것을 거의 짓누르는 모양새였다.
남자와 비교하니 자신의 것은 무슨….
“애 같네.”
“아니에요.”
발끈한 태주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새카만 눈동자와 시선이 정확히 마주치는 바람에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마주하고 있던 남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조그맣게 움직인 태주의 목젖을 빤히 보던 남자가 한 손으로 태주의 목을 감쌌다. 목이 졸리게 될까 봐 태주가 눈을 크게 떴으나, 남자는 목을 쥔 손끝으로 살결을 문지르고만 있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계범호는 제 눈치를 살피는 태주를 알아차리곤 엉덩이를 가볍게 내리치며 “움직여.” 하고 말했다. 태주는 어색하게 허리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제 것이 단단한 살덩이에 문질러지자 희미한 쾌감이 일었다. 얕은 한숨을 내쉬며, 태주는 조금 더 무게를 실었다.
“하아….”
이번엔 더 강하게 마찰이 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정태주는 입술을 핥으며 두 손으로 남자와 제 성기를 모아 감쌌다. 그대로 허리를 움직이자 쾌감이 짙어졌다.
계범호 역시 느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얀 목 가운데 불거진 목젖을 엄지로 간질이며 정태주가 느끼는 모습을 지켜봤다.
눈꺼풀은 반쯤 내려놓았으면서 입은 굳게 다물었다. 더 큰 자극을 좇느라 열중한 탓이었다. 끙끙거리며 좆을 그의 것에 비벼대는 모습을 빤히 보다가 계범호는 미간을 굳혔다. 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흐으….”
살짝 목젖이 눌린 정태주가 남자를 쳐다봤다. 온전히 드러난 눈동자를 보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계속해.”
지그시 목을 쥐자 정태주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남자의 손이 거기서 더욱 옥죄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아래에 다시 집중했다. 양손으로 더욱 세게 압박하며 제 손과 남자의 성기 사이로 좆을 문질렀다.
정태주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계범호는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짧은 호흡이 튀어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하얀 목을 조금 더 옭아맸다. 손바닥 밑에서 팔딱거리는 맥박이 느껴졌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이딴 거에도 씨발.”
계범호의 좆이 터질 듯이 부풀었다. 정태주가 하는 것은 영 시원치 않아 남자는 좆 두 개를 감싼 태주의 양손을 한 손으로 꽈악 눌러 쥐었다.
“아!”
정태주가 미간을 구기며 손을 들썩였다. 그러나 모아 쥔 태주의 손을 전부 뒤덮은 커다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으, 아, 아파요….”
“움직여야지, 태주야.”
계범호가 사나운 얼굴로 다정한 척 말했다. 정태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가볍게 마찰되던 좆은 이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조금 힘들어졌다.
“하아, 아, 읏….”
계범호는 가쁜 숨소리와 자신의 좆에 비벼지는 여린 살덩이를 음미하다가, 손에 쥔 하얀 목에 시선을 줬다. 손바닥 아래에서 맥박은 여전히 펄떡이며 뛰고 있었다.
남자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대로 손에 힘을 주어 목을 움켜쥐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헐떡이던 정태주가 남자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싸도, 돼요?”
“…….”
태주의 얼굴에 둔 시선의 온도가 차츰 뜨거워졌다. 이내 계범호는 거친 웃음을 뱉어내며 말했다.
“이제 허락 맡고 싸려고?”
“아니, 흐, 차에… 옷에 묻으니까. 아, 진짜 쌀 것 같아요. 휴지….”
정태주가 다급한 얼굴로 눈을 굴렸다. 목을 쥔 남자의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으나 사정을 참느라 무서운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싸고 싶어요….”
“아, 씨발.”
보채듯 징징거리는 목소리에 계범호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목을 쥔 손을 거둔 그는 힘이 빠진 정태주의 두 손을 치워내고, 옅은 색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아!”
정태주가 아랫배를 단단히 만들며 외마디 신음을 내질렀다. 남자는 선액으로 번들거리는 좆을 흔들며 거칠게 속삭였다.
“싸도 돼.”
으읏. 그 순간 납작한 아랫배를 움찔거리며 태주가 남자의 손에 토정했다. 울컥, 울컥 몇 번 흘러내린 정액이 불그스름한 귀두 끝에 고였다. 계범호는 그것을 굳은살이 박인 손끝으로 훔쳤다.
“하으…!”
요도구를 스친 것이 자극적이었는지 정태주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씹. 욕설을 짓씹으며 계범호는 사내새끼의 정액이 범벅된 손으로 자위했다. 미끌거리는 액체를 윤활유 삼아 탁, 탁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제 좆을 흔들었다.
“손.”
갈라진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태주가 멍하게 손을 내밀자 그가 그 손을 낚아채 제 고간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굵직한 귀두를 태주의 손바닥에 쑤셔 박듯이 댄 채 사정했다.
“하아….”
턱을 치켜든 남자가 허공에 긴 숨을 내쉬었다. 선명히 튀어나온 목젖이 가볍게 진동했다.
태주는 움칠 손을 움츠렸다. 미끌거리는 액체가 제 손바닥에 질척하게 엉겼다. 남자는 태주의 손금에 귀두를 닦듯이 문지르고 나서야 고개를 바로 했다.
곧장 시선이 마주쳤다. 계범호는 목덜미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며, 정태주의 정액을 받았던 손을 움직였다. 질척하게 젖은 태주의 손바닥을 펴고 그 위로 제 손을 포갰다. 더러워진 두 손바닥이 완전히 맞닿았다.
그대로 깍지를 낀 채 혀를 얽었다. 숨결마저 뒤섞였다.
2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