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5)

2.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흘렀다.

태주는 팁으로 500만 원 이상을 받았다. 즉, 월급 300만 원까지 더하면 결국 800만 원이 넘는 상환금을 만들어 내게 됐다. 현실감 없는 그 금액을 장기 하나 팔지 않고 만들어 낸 것이다.

“…….”

옷장 속의 돈뭉치들을 보며 태주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어쨌든 오늘은 금액을 맞췄다는 사실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태주는 돈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태주는 이상한 혼란을 느꼈다. 5층의 숙소, 엘리베이터, 매화, 다시 엘리베이터, 숙소….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내릴 때마다 장소가 바뀌는 그 생활을 한 달 동안 반복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1층, 로비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비에는 항상 많은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안쪽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지원을 나가곤 했는데, 특히 매화의 직원들이 로비로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태주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덩치 두 명이 다가왔다.

“ATM 쓰려고요.”

건물 입구에 있는 ATM을 보며 한 말에 그들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은 ATM 앞에 선 태주의 뒤로 바짝 붙어 섰다. 그들에게는 개인정보고 뭐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ATM 기계로 뭘 한다고. 태주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품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그는 그 돈을 잠깐 바라보다가 기계에 차근차근 넣었다.

잘했다. 잘 견뎠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입금 확인 내역이 뜨기를 기다렸다. 상환금보다 몇만 원쯤은 더 모았으니, 자신을 많이 도와준 경준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조금이나마 건네주면 좋을 것 같았다.

돈보다는 물건이 훨씬 좋겠지만 이 건물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그건 불가능했다. 경준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마침내 입금 완료 화면이 떴다.

그런데 잔액이 556만 원이었다. 월급날은 나흘 전이었으니 잔액은 월급 300만 원을 더해 856만 원이어야 했다.

“…어? 월급 아직 안 들어온 것 같은데요.”

태주는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고개를 돌려 등 뒤의 험악한 남자들을 쳐다보았으나 그들은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씨발, 일 제대로 안 하나.”

태주가 까칠한 인상의 매니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묘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 10분. 오후 6시까지만 돈을 보내면 되니까 아직 시간이 있었다.

“저기 형님. 매니저님이랑 통화 한 번만 해도 될까요?”

등 뒤의 남자는 삐딱하게 태주를 응시하다가 귀찮다는 듯 휴대폰을 꺼냈다. 직접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건네주며 그는 경고했다.

“허튼짓하지 마라.”

“예.”

태주는 휴대폰을 건네받고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여보세요.

“저 태준데요. 아직 월급이 안 들어와서요.”

매니저는 말이 없었다. 태주는 인상을 쓰며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아직 통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다시 귓가에 휴대폰을 대는데 피식,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 안 했나? 너 이번 달 수령액 없다고.

“……뭐요?”

태주는 멍하게 되물었다.

-수습 기간엔 원래 월급 150이야.

“씨발 그럼, 그 150은요?”

-아, 그거. 그건 너 먹고 자는 비용으로 다 나갔지.

매니저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태주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고급 호텔에서 재워 주는 게 공짜일 줄 알았냐?

빈정거리는 말투가 들렸다. 태주는 주먹을 꽈악 움켜쥐며 짓씹듯 말했다.

“호텔은 씨발. 싸구려 모텔 주제에.”

-오늘 상환일이라고 들었는데, 수고해라.

평소 같으면 태주의 말투에 날뛰었을 매니저가 웃는 투로 전화를 끊었다. 태주는 통화 내역을 표시하는 화면을 노려보며 휴대폰을 부술 듯 움켜쥐었다.

“씨발 새끼가….”

잇새로 중얼거린 태주는 우선 잔액을 모두 송금했다. 화면을 터치하는 내내 손가락이 잘게 떨렸다.

그러고 나서는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렀다. 빠른 걸음이었던 것은 제 직장으로 들어가면서는 뜀박질이 되었다.

불 꺼진 가게에서 바쁘게 두리번거리던 태주는 홀에서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내 돈 내놔요, 씨발.”

돌진한 태주가 매니저의 멱살을 움켜쥐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뭘 해보기도 전에 목덜미가 붙잡혀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홀을 어슬렁거리던 경호원들 짓이었다.

“그러게 2차 나가라니까.”

매니저가 제 옷을 툭툭 털며 태주에게 시선을 줬다.

“씨발, 300이라며. 내가 재워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숙박비는 왜 빼는데, 이 양아치 새끼들아!”

씩씩거리며 분노를 토해내는 태주를 보며 매니저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눈빛이 돌변해 말했다.

“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리네. 돈 부족하면 일을 해서 갚을 생각을 해야지, 어디서 행패야. 하여간 못 배운 새끼들은….”

눈앞이 시뻘게진 태주가 다시 매니저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번엔 목 아래가 콱 움켜잡혔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으로 다시 내팽개쳐졌다. 매니저는 그런 태주를 비웃으며 보다가 관심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갔다.

텅 빈 홀에는 태주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노만 남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일정하게 울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두고 멍하게 앉아 있던 태주 대신 전화를 받은 덩치가 태주를 불렀다.

“야. 전화 받아라.”

태주가 몸을 일으켜 다가가자 덩치는 성가시다는 듯 태주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잘 지냈냐?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심부름센터 사장, 조덕현이었다. 태주는 잠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예. 저기 사장님….”

-입금이 덜 됐길래 전화해 봤다.

“그게요. 뭐가 착오가 있어서, 이번 달은 금액을 못 맞출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 제가….”

-그건 안 되지.

조덕현이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태주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눈을 굴렸다. 사장은 이곳에 태주를 넣어놓고는 쭉 얌전했다. 어쨌거나 계약 자체도 합법적인 선인 것 같고, 사정을 잘 말하면 봐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고를 때였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듯한 조덕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천 원어치 주십시오.

그리고, 그 목소리보다 먼 곳에서 나이 든 음성이 들렸다.

‘오천 원어치는 많을 것 같은데, 삼천 원어치만 해요. 좀 더 담아줄 테니까.’ 하고.

-아이고, 할머니. 그렇게 팔아서 뭐가 남겠습니까.

태주는 수화기를 귀 옆에 바짝 붙였다. 잘못 들었겠지.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불안한 숨이 흘러나왔다.

-3일 주면 되겠나. 그 안에 보내. 첫 달이고 전에 같이 일한 정도 있으니까, 이번만 봐준다.

“……지금 어디예요?”

태주가 잘게 떨며 물은 말에 태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 여기가…. 할머니, 여기가 무슨 시장이죠? 아… 그래. 그렇다고 하시네.

“…….”

태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조금 더 가까이 들린 노인의 목소리가 너무나 익숙했다.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왜소한 뒷모습과 흰머리 같은 것이 떨리는 눈동자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왔다.

-다음에 와서 또 5천 원어치 사겠습니다, 할머니.

조덕현은 조금 뜸을 들인 다음 덧붙였다.

-뭐, 한 3일 후에 올 수도 있고요.

덜컥, 숨이 막혔다. 태주는 꽉 막힌 목구멍 사이로 겨우겨우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3일 안에, 어떻게든 보낼게요.”

-그래? 가능하겠냐?

조덕현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터질 것처럼 울컥 분노가 부풀어 올라 심장이 요동치고 온몸의 털이 비쭉 섰다. 그러나 태주는 그러겠다고, 꼭 그러겠다고. 반복하여 말했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분노가 아니란 것은 전화를 끊고, 언제 거스러미가 뜯겼는지 피가 줄줄 흐르는 손가락을 볼 때 깨달았다.

이것은, 공포였다.

***

태주는 숙소로 돌아가 멀끔히 씻고, 짧은 머리지만 머리도 최대한 단정히 정돈한 뒤 출근을 했다. 허벅지 옆에 놓아둔 손은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그런 태주를 보며 매니저가 기분 나쁘게 웃었으나 태주는 허공에만 시선을 뒀다.

태주의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뿐이었다.

사흘 안에 300을 만들어야 했다. 하루에 백만 원씩. 어떻게든 팁으로 받아내야만 한다.

2차를 나가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후회가 됐다. 왜 진작 그러지 않았을까. 왜 진작, 몸을 팔지 않았을까.

태주는 주먹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뭐든 해야 한다.

그때부터 태주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태주의 최선은 태주의 편이 아니었다.

사흘째 날이 될 때까지 태주는 팁을 50만 원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자신들을 재밌게 해 줄 직원을 원했는데, 그게 태주는 아니었다. 첫 한 달간 그만큼의 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신입이라 그랬던 거였다.

그러니까, 어설퍼도 신입이라 팁을 주던 손님들에게 태주는 이제 새롭지도, 귀엽지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태주의 초조함은 손님들에게도 투명히 보였다. 그것은 퍽 부담스럽고 불편한 기분을 불러일으켰고, 요령 없는 정태주는 손님 옆에 앉아 있다가도 대기실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씨발.”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태주는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깡패 새끼들. 씨발, 씨발. 잠깐 욕을 짓씹던 태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대기실을 나서 룸으로 향하는 자동문을 열었다.

붉은색 빛이 어둑한 복도에는 매니저가 휴대폰을 보며 서 있었다. 그는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었고 태주는 매니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매니저는 태주의 기세에 놀라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가 되레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뭐.”

우뚝. 매니저의 앞에 멈춰 선 태주는 눈이 양옆으로 찢어진 매니저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불쑥 허리를 굽혔다.

“그동안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했습니다.”

태주의 뒤통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매니저가 곧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걸쳤다.

“근데?”

“앞으로 매니저님께 정말 잘할게요. 그러니까… 월급 가불로 주세요.”

“얼마?”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매니저의 대답에 태주는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300이요.”

“아아….”

매니저가 고민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주억였다. 태주는 초조함에 입술을 달싹이며 매니저의 입만 보았다. 그때 얄팍한 입술이 한쪽으로 삐뚤게 올라갔다.

“당연히 안 되지, 새끼야.”

“…….”

태주는 이를 악물었다. 눈앞이 컴컴해져 매니저를 어떻게 설득할까, 하는 생각으로 매니저님, 하고 애원하듯 말했을 때였다.

“오셨습니까,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금방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매니저가 태주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친절한 낯을 했다. 태주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미지들이 정신없이 떠올랐다. 피범벅인 얼굴, 담배, 손톱에 낀 피, 여자, 입술 근처의 흉터, 흩어지는 하얀 연기, 백만 원….

들었던 소문 몇 개도 떠올랐다. 누가 얼마만큼의 팁을 받았다거나, 손버릇이 더럽다는 것, 대신 돈은 그만큼 많이 준다는 것.

그다음으로는 소름이 끼치도록 낮은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구멍 팔게 되면 얘기해.’

태주는 저를 무심히 스쳐 가는 커다란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이내 허벅지 옆에 축 늘어져 있던 태주의 손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요 며칠 잠을 못 자 충혈된 눈도 또렷해졌다.

“손님. 오늘은 제가 모셔도 될까요?”

내뱉은 말에 구둣발이 멈춰 섰다.

남자는 뒤를 돌았고, 어두운 눈동자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물을 만큼의 각오가 있었음에도 태주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남자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태주를 노려보던 매니저가 곧장 뛰어가 남자 대신 문을 열어 주었다.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몸을 팔게 됐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부풀었으나 태주는 주먹을 한 번 움켜쥔 다음 뒤로 돌아 빠르게 주방으로 향했다. 돌아온 매니저가 시비를 걸어대도 묵묵히 트레이를 챙겼다.

VVIP 룸 앞에 서는 것까지는 금방이었다. 태주는 망설임 없이 노크했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이블을 세팅한 뒤에는 남자의 손이 닿을 곳 근처에 두 손을 모은 채 섰다. 꼿꼿이 선 태주를 훑어보던 남자가 물었다.

“팁?”

남자의 손이 재킷 안주머니로 향할 때, 태주는 입을 열었다.

“제가… 팔게 돼서요.”

길쭉한 손가락이 옷감을 건드린 채 멈췄다. 고개를 든 남자가 태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태주는 맞잡은 제 손에 꾹 힘을 주며 말했다.

“구멍이요.”

얼마나 손을 세게 잡았는지, 붙잡힌 손가락 끝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은색이 되었다.

남자는 딱딱히 굳은 태주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그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은 태주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초조함이 태주를 또 부추겼다.

“전에 말씀하셔서…….”

마른침이 넘어가 태주는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사 주실 겁니까?”

남자는 말없이 태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 서늘한 듯한 온도에 태주의 팔에 스멀스멀 소름이 올랐다. 이제 태주가 맞붙잡은 손은 정말로 이상한 색깔을 띠고 있었지만 그조차 느끼지 못한 채, 태주는 온 신경을 남자에게 쏟았다. 시선은 집요하게 남자의 입술을 좇았다.

그때 남자의 입꼬리가 가볍게 위로 올라갔다. 아래에 흉터가 있는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술 한잔 마시러 온 건데, 강매를 하네.”

“…….”

겁이 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태주는 물러서지 않고, 남자에게 맞은 사람이 얼마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남자는 올곧은 태주의 눈동자와 내리깔린 속눈썹, 굳게 다물린 입술 따위를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왼손을 잡은 오른손은 마디마디 희게 힘이 들어간 채 떨리고 있었다. 삐져나온 손끝이 새빨갛다 못해 보랏빛을 띠는 것까지 보고 난 뒤 남자가 말했다.

“그래, 사 줄게.”

태주는 허리 굽혀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텅 빈 룸에 제 목소리가 울리고 나서는 움찔, 눈 밑이 떨렸지만 곧장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남자의 옆에 앉아 술 시중을 들었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나 남자의 목울대가 술을 넘기는 소리뿐, 공기는 무겁고 조용했다.

태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남자의 옷을 벗겨야 하는지, 제 옷을 먼저 벗어야 하는지. 벗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남자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태주의 하얀 손끝을 보다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 풀썩, 하는 소음에 태주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빨아 봐.”

남자의 시선을 따라 태주의 시선도 이동했다. 자신의 머리통보다도 굵은 허벅지 사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 말이다.

“…예.”

태주는 껄끄러운 목에서 겨우 대답을 뱉어냈다.

남자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며 정태주가 소파에서 내려와 제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는 것을 응시했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는 가벼운 한숨 소리가 났다. 그것이 재촉처럼 들려 태주가 급하게 남자의 버클에 손을 댔다.

“…….”

태주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런 크기의 성기는 정말 처음 보았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어 태주의 몸이 뒤로 살짝 기울었다.

“봐줄 때 잘해.”

서늘한 목소리에 태주는 정신을 붙잡고 남자의 좆을 움켜쥐었다. 꿈틀, 기지개를 켜는 듯한 움직임에 손바닥에 느껴지자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남자가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듯 버리고 태주의 턱을 움켜쥐었다. 강한 악력에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가 들리기 무섭게 눈앞에 별이 튀었다.

퍽, 손바닥으로 뺨을 맞았다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가 났다. 귀는 먹먹했고, 시야는 어지럽게 일그러졌다.

턱을 쥔 억센 손은 휘청이는 몸을 지탱한 채 그대로 뺨을 눌렀다.

“흐으….”

신음을 내뱉으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굵직한 살덩이가 거칠게 들어왔다. 태주는 눈을 번쩍 떴다.

새카만 눈동자가 태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읍, 읍….”

역겨운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덜컥 공포가 찾아왔다. 겁에 질린 태주는 손에 닿는 대로 남자의 허벅지를 밀어냈다. 그러나 단단한 허벅지는 태주를 가둔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 크게 벌려. 여상히 명령한 남자가 태주의 뒤통수를 꽉 붙잡고, 흉측스러운 성기를 좁은 입 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우욱, 욱….”

처음 겪는 일에 대한 공포로 태주는 패닉에 빠졌다. 남자의 좆으로 입 안이 틀어막히지 않았더라면 살려 달라고 빌었을지도 몰랐다.

“목구멍 열어야지.”

새하얘진 머릿속에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태주는 그 무서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노력이나마 했다.

“끅, 끅….”

크게 벌린 입술 사이로 침이 질질 흘러나오고 목구멍 안쪽이 미친 듯이 움찔거렸다.

태주는 애원하듯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태주의 머리를 가볍게 흔들던 남자가 아래로 시선을 줬다. 마주친 정태주의 눈은 새빨갰다.

가여운 눈과 마주한 채 남자가 태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 닿는 까칠한 감촉이 마음에 들었는지 두어 번 더 쓰다듬고 나서 그는 손을 거두었다.

“콜록, 콜록…. 허억, 헉, 허윽….”

숨을 틀어막았던 것이 빠져나가자 태주는 정신없이 기침했다. 침과 알 수 없는 액체가 꿇어앉은 제 무릎 위로 줄줄 흘렀다.

“다시.”

정수리 위로 낮은 명령이 떨어졌다. 태주는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들었다. 전보다 더욱 커진 성기가 믿기지 않았다. 핏줄이 불거진 채 꺼떡이는 그것은 제 침으로 질척하게 젖어 더욱 역겨워 보였다.

태주는 남자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댄 채 번들거리는 선단을 입에 물었다. 귀두 끝만 물었음에도 크게 벌어진 턱이 덜덜 떨렸다. 비리고 짭짤한 맛에 구역질이 나 침이 왈칵 흘러나왔다.

달칵, 소리에 시선을 들어 올리자 남자가 담뱃불을 붙이는 게 보였다. 잠깐은 태주가 하는 대로 둘 생각인 것 같았다. 숨이 막히는 공포를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태주는 뻣뻣한 혀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혀가 귀두 아래쪽을 훑고 지나가자 입 안에 비린 맛이 더욱 심해졌다. 태주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성기를 조금 더 입 안에 밀어 넣었다.

“눈 뜨고.”

남자가 흰 담배 연기와 함께 명령을 뱉어냈다. 태주는 뻑뻑한 눈을 뜨고 힘겹게 남자를 올려보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을 맞추는 태주를 보며 남자가 조금 웃었다. 그는 한 손에 담배를 낀 채, 다른 손으로 태주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태주는 남자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을 파악했다. 너무 놀라 잠깐 정신이 없었으나 다시 각오를 다졌다. 자신은 남자를 만족시켜야 했다.

그러니까, 좆을 잘 빨아야 한다.

태주는 입 안에서 귀두를 굴리며 손으로 기둥을 쥐고 흔들었다. 자신이 좋을 것 같은 부분을 떠올려 보니 역겨움만 참아내면 아주 어렵진 않았다.

태주는 핏줄이 불거진 기둥을 뿌리부터 길게 핥아 올리며 흘긋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나른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얼마나 줄까. 술을 따라 주고 100을 받았으니 그보단 많이 받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좆을 입에 물고 고개를 숙일 때였다.

뒤통수에 커다란 손이 닿았다. 태주는 반사적으로 남자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밀어냈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커헉…!”

“꾀부리지 말고, 태주야.”

남자는 잇새로 담배를 문 채 태주의 머리를 제 고간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움찔거리는 목구멍을 좆대가리로 비비자 다리 사이에 가둔 몸이 들썩거렸다.

“제대로 삼켜야지.”

“흐윽, 컥…. 후윽, 으으.”

겁에 질려 내뱉어내는 신음이나 다리 안쪽으로 닿는 얼굴의 뜨끈한 열기 같은 것이 남자를 묘하게 고양시켰다. 좀처럼 완전히 열리지 않는 목구멍에 억지로 좆을 쑤시며 남자는 무심코 손에 힘을 주었다. 머리채를 쥐려던 것인데 정태주의 짧은 머리카락은 손가락에 엉키지 않았다.

피식. 남자는 짧게 쳐올린 머리칼 밑으로 태주의 목덜미가 새빨개진 것을 내려다보며 동그란 머리통을 쥔 손아귀에 힘을 줬다.

그다음부터는 자위 기구 쓰듯 정태주의 목구멍을 쑤셨다. 목구멍 가장 안쪽까지 좆을 박아 넣고, 정태주가 다 받아먹지 못한 기둥을 아쉽게 보며 더욱 머리를 끌어당겼다.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움직임이 격해졌음에도 힘으로 짓누른 채 퍽, 퍽 소리가 날 만큼 강하게 삽입했다.

“잘 좀 해봐. 돈 받아야지.”

어르듯 다정하게 말하는 목소리도 태주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억센 손에 붙잡혀 머리가 흔들리고, 시야가 정신없이 깜박였다. 까칠한 음모가 코끝에 스칠 만큼 성기가 목구멍을 파고들면 이대로는 죽는다는 생각에 몸부림을 쳤다. 그럼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았고, 태주는 이 시간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남자는 한참 만에야 좆을 빼내고 태주의 얼굴 위로 사정했다. 그리고 모자란 호흡을 채우는 태주를 내려다보았다.

희고 미끈거리는 액체가 긴 속눈썹과 우뚝한 코에 걸쳐진 채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붉게 달아오른 입술 위로 흐르는 것까지 빤히 보다가 남자는 금방이라도 재가 떨어질 것 같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허억, 콜록, 콜록, 후으…. 흐….”

멍하게 숨을 고르기만 하던 태주의 옆으로 툭, 무언가가 떨어졌다. 힘없이 고개를 돌린 태주는 그것을 보며 굳었다. 콘돔이었다.

태주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움직여 고개를 들었다. 흥분감이 어려 더욱 사납게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저, 저는….”

툭. 남자의 손이 태주의 턱을 가볍게 건드렸다.

태주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깊숙한 곳에 있던 목소리가 견디라고 소리쳤다. 시작했으니 돈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지금 도망치면 남자가 좋게 놔줄 것 같냐는 현실적인 설득도 보탰다.

태주는 바닥을 짚은 손을 거뒀다. 바지 벨트를 푸는 손이 눈에 띌 정도로 덜덜 떨렸다. 가까스로 속옷까지 벗어내자 남자의 시선이 제 다리 사이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

콘돔을 주워드는 태주에게 남자가 무심히 말했다.

“시간 줄게.”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남자끼리 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는 태주도 알고 있었다. 콘돔 포장지를 뜯고 제 손가락에 끼우는 것까진 그런대로 빠르게 해냈지만 그것을 엉덩이 사이로 밀어 넣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남자가 준다는 시간이란 게,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태주는 눈을 굴렸다. 얼음이 든 잔에 술을 따르는 커다란 손과 눈을 내리깐 얼굴을 보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바지를 피로 흠뻑 적신 채 실려 나왔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입을 연 것이다.

“보여드릴까요?”

목구멍을 계속 자극당했기 때문인지 잔뜩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남자는 억지로라도 태주의 후장을 뚫을 것이고, 반병신이 되고 싶지 않다면 남자의 비위를 잘 맞춰야 했다.

태주는 자신이 이런 짓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비참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남자에게 구멍을 팔겠다고 얘기했을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 기분이었다. 어딘가 몽롱했고 현실감이 없었다.

말하자면 악몽 속인 것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 악몽 말이다.

“그래.”

빤히 쳐다보던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태주는 남자가 술잔을 쥐는 것을 보며 뒤돌아섰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가 술 한잔 비워낼 때까지의 시간인지도 몰랐다.

태주는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조금 굽혔다. 중심을 잃을 것 같아 한 손으로는 테이블을 쥔 채 콘돔을 끼운 손가락을 엉덩이골에 가져갔다.

촘촘히 닫힌 구멍 위를 힘주어 누르자 손끝이 내벽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은 이상할 만큼 뛰고 온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조금 더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통증은 없었으나 불쾌했다. 그러나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태주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힘주어 다문 턱이 잘게 떨렸다.

남자는 태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술을 한 모금 넘겼다. 바쁘게 움직이는 척하지만 과하게 힘이 들어간 손이나, 손목이 원을 그릴 때마다 움찔거리는 엉덩이, 떨리는 허벅지.

남자는 엉덩이 사이를 출입하는 두 손가락을 보며 손에 든 잔을 기울였다. 얼음만 남을 때까지 전부 술을 비워내고 나서 탁, 내려놓자 하얀 몸이 떨렸다.

정태주는 마치 믿고 싶지 않은 것을 확인하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앳된 얼굴은 결국 공포를 숨기지 못했다.

남자는 팽팽히 입술을 늘린 채 웃었다.

“자, 잠깐만요.”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태주는 사색이 됐다. 아까보다도 더 커진 것 같은 흉흉한 좆에 콘돔을 끼우고 있는 남자는 이제 정말로 태주의 뒤를 뚫을 생각인 것 같았다.

손가락 두 개도 겨우 들어가는 곳에 저런 게 들어갈 리 없었다. 태주의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남자는 구멍을 가리고 있는 태주의 손을 성가시다는 듯 툭 쳐내고 태주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태주는 소파 등받이를 쥔 채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히게 되었다.

“흐….”

엉덩이를 거칠게 주무르는 손길에 겁먹은 숨이 흘러나왔다.

태주의 엉덩이가 모두 들어갈 만큼 커다란 손이 한쪽 엉덩이를 힘주어 벌렸다. 그리고, 평소 인식해 본 적도 없는 그곳에 뭉툭한 것이 닿았다. 조금 전 밀어 넣었던 제 손가락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굵고 거대한 것 말이다.

태주는 눈을 부릅떴다. 입은 저절로 벌어졌으나 비명 대신 짧게 끊긴 숨만 터져 나왔다.

태주가 비명을 지른 것은 남자가 굵은 좆대가리를 기어이 밀어 넣었을 때였다.

“아아악!”

힘 빼. 거친 음성과 함께 엉덩이에 작열감이 일었다. 그러나 태주는 그 말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악, 헉… 아, 안 할래요. 안 해, 씨발.”

태주가 난리를 치며 몸을 비틀자 고작 귀두만 삽입되어 있던 좆도 빠졌다. 남자는 정태주가 소파를 더듬거리며 도망치는 꼴을 짜증스럽게 보았다.

“죄송한데, 저 그냥 안 할…… 우웁…!”

남자가 주절거리는 정태주의 목덜미를 붙잡아 소파로 처박았다. 커다란 손은 움켜쥔 목덜미뿐만 아니라 동그란 뒤통수까지 뻗어져 태주의 얼굴을 강하게 짓눌렀다. 차가운 가죽 소파에 태주의 코와 뺨이 완전히 짓뭉개졌다.

“흡, 으읍, 웁….”

태주는 억센 손길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소파에 무릎을 대고 몸을 들썩였으나 손아귀 힘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아 몸이 점점 둥글게 말렸다.

발버둥 치는 태주를 무심히 내려다보던 남자는 마른 몸에 힘이 빠졌을 때쯤 손에 힘을 풀었다.

“허억, 헉….”

정태주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남자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태주의 팔을 뒤로 꺾어 등 뒤에서 움켜쥔 채 다시 좆을 찔러 넣었다.

비명을 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느릿하게 진입하는 남자의 성기를 꽉 물고 구멍이 팽팽하게 펴졌다. 남자는 둥글게 말린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내려다보며 엉덩이를 몇 대 내리쳤다. 하얀 엉덩이는 금방 붉어져 손자국이 남았다. 뜨끈한 살결을 툭툭 건드리며 남자가 말했다.

“찢어도 돼? 손님 받아야지.”

그 섬뜩한 말에 태주는 이성을 되찾았다.

그러나 힘을 빼려고 해도 좁은 내벽이 억지로 늘어나면 온몸이 절로 경직됐다. 정말 몸이 찢겨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커다란 손이 뱃가죽을 뚫어버릴 것처럼 강하게 허리를 쥔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리고 퍽, 소리와 함께 아래쪽이 완전히 찢기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다.

끔찍한 고통에서 그나마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소파에 얼굴이 짓뭉개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흐으, 아, 아파요. 아악, 제발…. 손님.”

태주는 계속 애원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성을 되찾자 어떻게든 이 고통을 줄이고 싶었다.

그런데 남자의 성기는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내장은 이미 다 찌그러지고 배 속에는 남자의 성기만 가득 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받아먹지도 못하는 구멍을 어떻게 팔겠다고.”

남자가 비웃듯이 말했다. 태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하윽, 아니에요.”

“뭐가 아닌데.”

남자가 한숨을 뱉어내며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성기가 다른 쪽을 찔렀는지 남자의 몸 아래 깔린 몸이 버둥거렸다.

“잘할게요. 할 수 있어요.”

억눌린 목소리는 그 나름대로 단단했다. 정태주는 한쪽 뺨을 소파에 댄 채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아프다고 도망치려고 했으면서 정신을 차렸나 보지. 남자는 태주의 눈에 서린 오기, 혹은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을 빤히 바라보다가 태주의 몸을 뒤집었다.

“아악…!”

좆을 담은 채로 몸이 뒤집히자 정태주가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괜찮네.”

가늘게 흐느끼는 소리가 사내새끼치고 나쁘지 않았다. 충혈되어 새빨개진 눈도 이상하게 음욕을 돋웠다.

아랫입술을 핥은 남자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태주에게는 지옥의 시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마침내 뒤에서 낮은 신음이 들리고, 제 몸을 억누르던 손길이 멀어졌다. 지포 라이터를 달칵이는 소리를 들으며 태주는 안도했다. 끝이구나. 지옥 같은 시간을 내가 견뎠구나, 하고.

매캐한 담배 연기를 맡으며 태주는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러나 태주가 본 것은 남자가 새 콘돔을 꺼내는 모습이었다. 태주는 겁에 질린 채 물었다.

“또… 또, 해요?”

“그래.”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너그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얻어맞은 데다가 소파에 쓸려 붉어진 태주의 뺨을 손으로 가볍게 문질러 주기도 했다.

태주는 좌절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상 돈이라도 최대한 많이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주실 건데요?”

벼랑 끝에 몰려 하는 행동은 늘 그렇듯 겁이 없었다.

남자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는 한 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태주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픽, 가볍게 웃었다.

“태주야.”

남자가 태주의 다리를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그는 제 허벅지 위로 태주의 다리를 올린 뒤 잇새로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돈 좋아하는 애들, 나쁘지 않아.”

뿌옇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 사이로 서늘한 눈빛이 태주를 응시했다. 허벅지 안쪽을 가볍게 문지르는 손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주제 파악은 해야지.”

남자는 입술을 질끈 깨무는 태주를 내려다보다가 다리를 벌리고 성기를 삽입했다.

앞선 삽입으로 풀려 있던 내부는 성기를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은 줄었지만 대신 뱃속이 휘저어진다는 불쾌감과 공포는 더욱 커졌다.

“흐으….”

태주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헐떡이는 숨만 내뱉어냈고, 남자는 한 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허릿짓을 했다.

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남창의 얼굴이 울 듯이 일그러졌다. 감각을 견디기 힘든지 본능적으로 다리를 움츠리는 모습에 허벅지 안쪽을 내리치자 쭉 뻗은 다리가 움찔거리며 옆으로 벌어졌다.

“하윽, 으읏, 윽….”

정태주가 눈을 굴렸다. 제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남자가 입매를 뒤틀었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흐으, 으….”

정태주는 입술을 달싹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몸을 팔겠다는 사람치고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태주는 대답했다.

“네.”

남자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하지 않자 또 덧붙였다.

“잘하는… 흐윽, 잘하는 것 같아요.”

남자는 소파 밑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그리고 잇새로 담배를 물고 태주의 허벅지를 가슴 쪽으로 밀어붙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구멍을 허공으로 향하게 한 뒤 그가 그대로 좆을 박아 넣었다.

퍽, 소리와 함께 핏줄이 불거진 기둥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아악! 흐으, 으, 으….”

정태주는 잠깐 잠잠했던 비명을 다시 질렀다가 금방 숨죽이며 눈치를 봤다. 그 모습에 남자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남자가 태주의 허벅지를 꽉 움켜쥐었다. 그대로 더욱 힘주어 누른 채 위에서 아래로 좆을 박아 넣자 맞닿은 살결이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퍽, 퍽. 퍽. 남자의 아랫배와 태주의 엉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다. 몰입한 남자가 잇새로 문 담배에서는 재가 흩날리듯이 떨어졌다. 그것이 태주의 어깨나 가슴 위로 떨어졌으나 시야가 가물거리는 데다 온통 신경이 다른 데 쏠린 태주는 따끔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흐윽, 읏, 손님… 아아…! 처, 천천히요.”

점점 더 움직임이 빨라지자 정태주가 본능적으로 남자에게 매달렸다. 굵직한 팔뚝을 더듬거리며 껴안으려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구멍도 남자의 좆을 끊어먹을 듯 조여왔다.

“아, 씨발.”

사내가 잇새로 욕을 뱉어냈다. 그는 쥐고 있는 살결을 손아귀에서 찢을 듯 움켜쥐며, 폭력적으로 좆을 쑤셔 박았다.

“아악! 아파요, 흐으….”

정태주가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거친 움직임에 손가락이 조금 미끄러지자 정말 추락이라도 하는 줄 아는 건지 손톱을 세우며 안간힘을 썼다.

남자는 호흡이 섞인 웃음을 뱉어내며 담배를 쥔 손으로 태주의 뺨을 툭 건드렸다. 눈물로 축축해진 살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짐짓 엄하게 말했다.

“징징거리면 안 되지.”

“네…. 네.”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건지. 남자는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고 짧아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피가 들끓었다.

***

“흐, 으으….”

눈을 반만 뜬 정태주는 정신을 잃으려는 듯 눈동자가 위로 넘어갔다가 내려오길 반복했다.

남자는 긴 한숨을 내쉬다 입술에 따끔함을 느꼈다. 아직도 담배를 물고 있던 것이었다. 짧게 타버린 담배를 소파 옆으로 뱉어내며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몰두한 섹스였다.

혀를 차며 몸을 일으킨 남자는 옷을 제대로 입었다. 하의를 전부 벗고 있는 태주와 달리 남자는 바지 지퍼만 올리면 되었다.

그는 조그만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위스키를 들이켜며 소파 위에 죽은 듯이 누운 몸에 시선을 줬다. 길게 뻗은 다리와 희미한 근육이 자리 잡은 배….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조금 더 시간을 들였다.

벗어 놓았던 재킷을 걸친 남자는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어 태주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늘어져 있던 태주는 제 살결에 달라붙은 종이를 주섬주섬 떼어냈다. 찢어질까 조심스럽게 떼어내면서는 마른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액수를 확인했을 때, 미소는 사라졌다. 태주는 수표를 한참 보다가 눈을 감았다.

후장을 판 대가로 받은 금액은 하필 300만 원이었다.

***

모자란 금액을 송금했다. 그리고 출근을 했을 때 가게로 전화가 걸려왔다. 입금이 확인되었다는 말과 잘하면서 왜 그랬냐는 웃음 섞인 타박을 들었다.

태주는 표정을 지워냈다. 다행이다. 잘됐다. 입 밖으로 몇 번 중얼거린 뒤 절뚝이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엉덩이 사이는 특히 아파서 제대로 앉기도 힘들었다. 아침에 송금을 마치고 저녁까지 숙소에서 내리 잤지만 그걸로 몸이 회복되기는 틀린 듯했다.

그래도 쉴 수는 없었다. 일을 쉬게 되면 매니저는 신이 나서 월급을 차감할 게 분명했다. 그 좆같은 숙박비로 150이나 차감되는데 거기서 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수습 기간이 끝나 이번 달부터는 제값의 월급에서 150만 원만 차감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매니저가 꼭 선심이라도 쓰듯 말해 준 사실이었다.

“더럽게 룸에서 씨발.”

경멸하듯 보는 시선은 그대로 맞받아쳤다. 좆같은 새끼가 VVIP한테는 한마디도 못 하는 게. 관자놀이로 흐른 식은땀을 닦아내고 태주는 문득 대기실에서 수다를 떠는 직원들을 눈에 담았다.

묘한 소속감이 들었다.

그 불편한 감정을 태주는 피하지 않았다. 태주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고, 세상은 어딘가 달라졌다.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다시 되돌려놓으면 되는 거니까. 분명히, 모든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통증을 참아내며 태주는 서빙을 했고, 누군가 엉덩이를 만지는 손길도 모른 척했다. 뒷주머니에 꽂힌 것이 5만 원인 것을 확인했을 때는 노란 지폐를 뚫어지게 보다가 주머니 깊숙한 곳에 꽂아놓고 또 바쁘게 움직였다.

최대한 많은 서빙을 나가고, 손님들이 원하는 요구는 뭐든 들어주었다.

그런 며칠이 반복되고 아픈 몸도 자연스럽게 회복이 되었다. 더는 새벽에 끙끙 앓지도 않고 일하던 와중에 몰래 식은땀을 닦지도 않았다.

그러나 팁은 여전히 부족했다.

말주변이 없는 태주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얼굴을 보고 옆에 잠깐 앉혀놓았다가 흥미를 잃고 다른 직원을 찾는 거였다.

그래서 태주는 VVIP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경준에게 부탁해 구매한 뒤 늘 가지고 다녔던 물건을 챙겨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와 매니저에게 향했다.

“VVIP 룸으로 보내 주세요.”

“왜. 후장 팔고 싶어 미치겠냐?”

매니저는 2차를 나가라고 태주를 괴롭혔으면서 실제로 태주가 VVIP와 섹스를 하고 나자 틈만 나면 빈정거렸다. 태주는 잠깐 매니저를 쏘아보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저번에 방문하셨을 때 다음에도 저 들어오라고 하셨는데요.”

“손님이 그러셨다고?”

매니저가 미심쩍은 눈을 하고 물었다. 태주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 거짓말이다.

매니저는 잠깐 고민했다. 확인을 해보는 것이 맞으나 VVIP를 귀찮게 했다가는 좋은 소리 못 듣는다.

“그래, 뭐. 맞아도 네가 맞겠지.”

“.....”

태주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여자 들이라는 말은 안 하셨으니까 서빙만 해라, 남창 새끼야.”

“씨발.”

“뭐 이 새끼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작게 욕설을 내뱉은 태주는 시치미를 뚝 떼고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트레이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저도 같이 들어갈게요.”

“태주 요즘 되게 열심히네.”

여자 직원이 웃으며 태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태주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그전까지는 직원들과 그럭저럭 잘 지냈는데, 후장이 뚫린 뒤로는 좀 껄끄러워졌다. 팁 얼마 받았냐며 호기심을 보이는 그녀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실제로 남자 직원 몇은 묘하게 웃거나 뒤에서 속닥거리기도 했다.

룸으로 들어갔을 때 태주는 조금 당황했다. 저번과 달리 오늘은 룸에 사람이 많았다. 깡패들이 단체로 회식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흔들리던 태주의 시선이 남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태주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다른 직원들의 뒤에 가만히 섰다. 그들은 일정한 속도로 유리잔을 분배하고 술을 따랐다.

그러고 나자 가장 바깥쪽에 앉은 인상이 더러운 남자가 나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태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상석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힐긋, 눈이 마주친 남자가 잠깐 태주를 응시했다. 그는 이내 서늘한 눈매를 묘하게 풀어내며 손짓했다.

“와서 잔 채워.”

“예.”

태주는 꾸벅 인사를 하고 테이블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은 태주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었지만 태주의 걸음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태주는 마침내 남자의 옆에 앉는 것에 성공했다.

“후으….”

저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쉰 태주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다른 남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술을 마시고 있었다.

회식인가 했는데, 일종의 회의 같기도 했다. 물론 그 내용은 꽤나 살벌했으나 태주의 신경은 온통 남자에게 쏠려서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태주는 남자의 잔이 비면 금방 채워 주고, 남자가 담배를 물면 불을 붙이고 재를 털어낼 수 있게끔 간간이 재떨이를 들이밀었다.

남자는 그런 태주를 이따금 쳐다보았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나서는 더 이상 일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부하들이 하는 얘기를 흘려들으며 태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입술에 피딱지가 내려앉은 게 보였다. 남자는 턱을 문지르며 잠깐 생각했다.

뺨을 몇 대 때렸던 것도 같은데 그때 생긴 것인가. 자연스럽게 그날의 섹스를 떠올리던 남자는 묘한 것을 발견했다. 정태주는 엉덩이를 살짝 띄운 채 앉아 있었다.

후.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남자가 물었다.

“구멍 팔 생각에 가만히 못 앉아 있겠어?”

마주친 눈은 저번과 달리 충혈되지 않고 맑았다. 정태주는 표정을 찡그렸다가 아니요, 하고 답했다.

“아아. 형님, 이 새끼 후장 파는 놈입니까?”

그 대화를 들은 누군가 말했다. 남자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정태주는 푹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생긴 꼬라지가 딱 그렇더라.”

“야. 야. 너 맛있냐?”

옆에서 태주를 툭툭 쳤다. 얼굴이 벌게진 채 제 무릎만 노려보던 태주는 그 손길을 피하느라 본의 아니게 남자에게 조금 더 붙게 되었다.

“후장 파는 새끼가 내숭을 떠네.”

퍽, 뒤통수를 후려치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태주의 몸이 휘청했다. 남자는 제 쪽으로 붙을 듯 휘청인 태주에게 시선을 줬다. 소파 위의 손이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게 보였다.

“태주야.”

남자가 퍽 다정한 듯이 이름을 불렀다. 태주는 고개를 들었고, 남자는 소파에 깊숙이 앉은 채 턱짓했다.

“너 맛있냐잖아.”

“……네.”

“응?”

“맛있어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하며 정태주는 속눈썹 사이로 분노를 숨겼다. 몇 번 조롱이 이어지는 동안 남자는 빨개진 태주의 귓불에 손을 댔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랑한 귓불을 손가락 사이로 세게 문지르고는 바닥을 향해 턱짓했다.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중에 바닥으로 내려가 좆을 빨라는 거였다. 태주의 표정이 순간 흐려졌으나 금방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태주보다 먼저 바닥에 떨어진 심장이 저 여기 있다고 처절하게 펄떡였다.

태주는 남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무심히 태주가 앉은 자리를 지나던 남자의 시선이 멈췄다.

“아.”

날카로운 웃음을 뱉어낸 남자가 태주의 팔을 쥐고 끌어당겼다. 태주는 휘청이며 남자의 다리 사이로 끌려가 섰고 커다란 손이 태주의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저게 뭐야, 태주야.”

태주가 앉아 있던 자리에 묘한 물기가 번져 있는 것을 내려다보며 남자가 입술을 비틀었다.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젖은 엉덩이에 시선이 쏠렸다.

“와. 이년 싼 겁니까? 미친년이.”

“씨발년 물 많나 보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에 피식, 웃은 남자가 지갑을 꺼냈다. 태주는 수치심을 참으며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남자는 수표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놓으며 말했다.

“다른 데서 놀아라.”

한참 술을 먹다가 쫓겨나게 됐으니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 그들은 좀 전까지 지껄이던 가벼운 말도 집어치우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들이 몸을 일으켜 나가는 동안 남자는 태주의 엉덩이를 세게 내리치고 턱짓했다. 태주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제 바지를 벗었다. 발목에 걸린 바지를 빼내려 몸을 숙였을 때, 문 쪽에서 끈적한 시선을 받은 것도 같으나 금방 문이 닫혔다.

정태주는 뒤로 돌아섰다. 팬티의 얇은 천은 엉덩이에 축축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예전이었더라면 상상도 못 할 곳에 스스로 짜 넣은 젤이 체온에 녹아 물처럼 흘러내렸다.

태주는 사람이 떠난 테이블에 시선을 둔 채 축축한 속옷을 벗었다. 주륵, 허벅지 안쪽으로 무언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움찔 테이블을 짚으며 허리를 굽히자 침묵이 흘렀다. 태주에게는 제법 길었던 침묵은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에 깨졌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남자의 눈이 어두운 조명에서도 희번덕 빛났다.

축축이 젖어 번들거리는 엉덩이 사이로 삐져나온 분홍색 플라스틱을 빤히 보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흠뻑 젖은 손잡이를 건드리자 즈윽, 희미한 소리를 내며 딜도가 빠져나왔다. 그것을 막아내듯 하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후장 팔고 싶어서 전에는 어떻게 참았을까.”

남자의 음성은 거친 웃음을 담고 있었다. 태주는 자신이 저지른 미친 짓을 고객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거의 뽑아냈던 딜도의 손잡이를 쥔 남자가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쑤셔 넣었다.

“아…!”

태주는 고개를 바짝 치켜들며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배에 차가운 테이블이 닿고 유리잔과 접시 몇 개가 밀려났다.

“안 판다고 해놓고, 사실은 판 지 좀 됐던가.”

“흐윽, 아으.”

딜도는 아주 굵은 크기는 아니었으나 태주로서는 정말 힘들게 넣은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해가면서. 그런데 남자가 그것을 아무렇게나 퍽퍽 쑤셔 박으니 허리가 저절로 뒤틀렸다.

“내가 헐값인 걸 돈 주고 샀나….”

낮은 음성이 하는 말을 뒤늦게 이해하고 태주가 고개를 저었다.

“윽, 아니, 아니에요. 처음이었어요.”

딜도를 쑤셔 박으며 남자의 손등 뼈가 태주의 엉덩이를 아프게 때렸다.

“지, 진짜예요.”

남자는 필사적으로 부인하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반대쪽 손으로 동그란 뒤통수를 거칠게 문질렀다. 그러고 나서 딜도를 뽑아내 뒤로 아무렇게나 던졌다.

태주가 앉았던 얼룩진 자리에 질척한 딜도가 떼구르르 굴러갔다. 정태주는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웃었다.

“그럼 천직 찾았네, 태주.”

남자는 버클을 풀고 곧장 성기를 꺼냈다. 이미 터질 듯이 발기한 것은 몇 번 기둥을 훑어 준 것이 다였다. 남자는 핏줄이 불거진 좆을 질척하게 젖은 구멍에 맞추고 단번에 쑤셔 넣었다.

“하으윽…!”

축축이 젖은 내벽은 무리 없이 남자를 받아들였다.

“좆 받는 걸 얼마나 좋아하면 피까지 흘려놓고 또 좆 받겠다고 미리 준비를 해.”

“후으, 으.”

“응? 태주야. 적성에 맞아?”

남자가 태주의 엉덩이를 벌리며 엄지로 구멍 주변을 문질렀다. 얼마나 젤을 쏟아 넣었는지 아직도 미끌거리며 남아 있었다.

태주는 구멍 주변을 훑는 남자의 손가락이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으로 파고들기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대답했다.

“네! 흐읏, 네. 적성에 맞아요….”

“잘됐네.”

웃음기 어린 말을 내뱉은 남자가 태주의 허리를 움켜쥐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퍽 좆을 쑤셔 넣을 때마다 테이블이 덜컹이며 그 위의 식기들이 덜그럭거렸다.

테이블 위에 엎어진 채 흔들리며 태주는 손끝을 세웠다. 그러나 몸 전체를 꿰뚫을 듯 깊이 좆이 들어오자 간신히 고정하고 있던 손이 주욱 앞으로 밀렸다. 손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진 접시와 유리잔들이 요란하게 깨졌다.

그러나 남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좆을 더 깊이 밀어 넣으려 태주의 엉덩이 한쪽을 벌리기만 했다. 동그란 엉덩이가 흔들리며 뭉개지는 모습을 보던 남자는 문득 손을 뻗어 태주의 뒤통수를 쥐었다.

“얼굴 이쪽으로.”

거친 속삭임에 정태주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뺨이라도 맞을 줄 알았는지 질끈 감은 눈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남자는 힘이 잔뜩 들어간 뺨을 툭, 가볍게 쳤다.

그러자 정태주가 눈을 떴다. 놀란 듯 올려다보며 몸에 힘을 주자 내벽도 성기를 씹어 먹을 듯 조여왔다.

가볍게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태주의 허리를 움켜쥐며 더욱 폭력적으로 움직였다.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로 명령도 덧붙였다.

“눈 떼지 마.”

“흐읏, 네.”

얌전히 올려다보는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목에 핏대를 세운 얼굴은 섹스 중이라기엔 몹시 사납고 무서웠다.

장기를 들쑤시는 감각과 메슥거림을 견디며 태주는 이를 악물었다. 마주친 검은 눈동자에 정신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발부터 머리까지, 온몸의 살결이 뜯어 먹히는 듯한 오싹함에 솜털이 바짝 섰다.

마치 짐승 같은 눈동자와 독한 술 냄새, 몸을 죄이는 억센 손길, 거북함에 가까운 통증.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때 검은 손이 눈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짓눌렀다. 커다란 손에 얼굴 전체가 가려지자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태주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빼꼼히 튀어나온 혀가 단단하고 짭조름한 무언가에 닿았다.

욕설이 들리는 듯했고, 퍽- 성기가 턱 끝까지 들어왔다. 그런 기분이었다.

“하아….”

잠시 후 낮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짓눌렀던 손이 거둬졌다. 깔아뭉개지 않았음에도 그런 기분을 주던 거대한 몸 또한 멀어졌다.

태주는 헐떡이며 눈을 굴렸다. 저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잠깐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였다. 그가 태주의 얼굴 근처에 손을 짚자 남자의 그림자에 태주가 파묻혔다.

“태주야.”

남자는 조용히 숨을 죽인 태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다음에도 준비하고 있어. 제일 비싸게 사 줄 테니까.”

그가 구멍에 엄지를 푹, 찔러 넣어 옆으로 벌렸다. 그 사이로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으…!”

정태주는 입을 크게 벌리고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다 저를 보는 남자의 눈동자를 알아차리고 뒤늦게 대답했다.

“네, 네….”

그런 태주를 보며 남자는 배부른 미소를 지었다.

***

처음 했던 날보다는 나았으나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뻐근한 것은 같았다. 거기다 태주가 입은 유니폼 셔츠는 단추가 전부 뜯어져 꼴이 엉망이었다.

흐트러진 셔츠 아래로 드러난 태주의 허리를 붙잡은 남자가 거친 손바닥으로 살결을 문질렀을 때 그렇게 됐던 것 같다. 남자는 이내 손에 닿는 대로 살갗을 움켜쥐다가 나중엔 거추장스럽다는 듯 셔츠의 단추를 뜯어냈다.

여러모로 꼴이 엉망이 됐지만 이번에도 태주는 300만 원을 받았다.

명함 한 장도 얻었다. VVIP는 건설회사 전무 자리를 맡고 있었다.

이름은 계범호.

명함을 내려다보던 태주는 중얼거렸다.

“깡패 새끼 주제에 전무는.”

별로 익숙한 회사명이 아니니 깡패 회사일 게 분명하다.

태주는 남자의 명함을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수표는 조심스럽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다음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래 봤자 셔츠 단추가 모두 뜯어진 탓에 단정해지진 않았지만 최대한 여몄다.

그러고 보니 셔츠에 검은 점들이 튀어 있었다. 어떤 부분은 작은 구멍이 보이는 것 같았다.

담뱃재 때문이다.

자국을 문질러 보았지만 지워질 리가 없었다. 셔츠 한 장을 더 달라고 하면 줄까. 신나서 셔츠값을 월급에서 제할 매니저를 생각하니 짜증스러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300만 원이나 받았다. 다음에도 찾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친 짓의 성과로는 괜찮은 것 같다.

태주는 수표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손끝으로 쓸어보다가 셔츠 위로 재킷을 걸쳐 입었다. 재킷 단추를 잠그고 문 앞에 서서는 룸 안을 쭉 훑어봤다. 테이블에는 술병이 나동그라져 있었고, 바닥은 유리잔과 접시가 깨져 엉망이었다.

태주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문을 열었다. 비릿하고 습한 냄새를 맡은 것 같았으나 모른 척 빠른 걸음을 걸었다.

곧장 직원 공간으로 들어가 대기실로 직행했다. 한창 바쁠 시간이라 대기실에는 소수의 직원뿐이었고, 그들은 태주가 엉망인 꼴로 사물함을 열어도 말을 걸지 않았다.

태주는 제 사물함에서 여분의 셔츠를 꺼냈다.

처음 이곳에 올 때 유니폼으로 재킷과 바지, 셔츠 2장을 지급받았는데 이제 셔츠가 한 장밖에 없으니 부지런히 빨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태주는 흘긋 구석에 앉은 남자 직원을 보고는 재빨리 재킷과 셔츠를 벗고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단추를 막 채워 올릴 때였다.

“룸 안 치우고 뭐 하냐?”

반갑지 않은 사람이 들어왔다. 태주는 매니저를 흘긋 보고는 말했다.

“이제 갈 거예요.”

“새끼가.”

매니저가 태주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처맞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엉망진창인 룸 꼴에 매니저는 태주가 남자에게 맞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꼭 실망이라도 한 것 같아 보여 태주는 인상을 구겼다.

“아, 뭐요.”

“이게 언제 한번 제대로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퍽. 태주의 머리를 후려친 매니저가 대기실을 벗어났다. 태주는 매니저를 보며 잠깐 씩씩거리다가 겨우 숨을 골랐다.

태주는 흘긋 뒤쪽으로 시선을 줬다. 구석에 몰려 앉아 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돌려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는 게 보였다.

이제 VVIP에 관한 소문에 제 얘기도 추가되겠지. 태주는 쓰게 느껴지는 입 안에서 혀를 굴렸다. 그리고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대기실을 벗어나 VVIP 룸으로 들어갔다.

룸 정리도 담당 서버가 맡는데, 2차를 간다든가 하는 이유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이 대신 정리를 하곤 했다. 사실 다른 직원들은 일부러 청소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나 태주는 쉬는 시간 없이 일을 했다.

돈을 받으니 당연히 일을 하는 거였는데, 매니저가 제 월급을 깎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걸 알고 나서는 책잡히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다.

게다가 자신이 머물렀던 공간은 직접 치우는 게 좋았다. 태주는 성큼성큼 VVIP 룸으로 갔다.

룸은 아직 비어 있었고, 태주는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던 태주의 시선이 소파에 고정됐다. 태주는 곧장 티슈로 소파를 벅벅 문질러 닦았다.

“씨발.”

욕이 절로 흘러나왔다.

***

고되다고 끝나지 않는 하루는 아니었다.

태주는 무사히 숙소로 돌아갔고, 술 냄새에 찌든 옷을 벗을 수 있었다. 셔츠와 바지를 빨래 바구니에 넣은 그는 샤워기 물줄기 아래에 섰다. 어차피 하루 5만 원으로 계산하는 것, 태주는 요 며칠 전기며 물이며 펑펑 쓰는 중이었다.

“하아….”

뜨거운 물줄기가 닿자 경직되어 있던 몸이 노곤하게 풀어졌다. 태주는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들이쉰 다음, 제 손을 뒤로 가져갔다.

느리게 움직이는 손가락 위로 잔 물방울이 튀었다. 그 재촉에 태주는 엉덩이 사이를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훑었다. 그곳은 퉁퉁 부어 있었다.

몇 시간 전 자신이 무슨 정신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며칠 전부터 자신은 좀 미친 게 분명했다.

당황스러워하던 경준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났다.

‘어? 그걸 구해 달라고?’

‘예, 형. 좀 부탁드릴게요.’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태주는 씨발, 하고 욕설을 뱉어낸 뒤 손바닥에 바디 워시를 거칠게 덜어냈다.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몸을 벅벅 문지르고 있는데, 살갗이 따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몸을 헹궈 보자 가슴에 붉은 반점이 두어 개 보였다. 태주는 그걸 손끝으로 문지르다가 몸을 마저 씻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등 뒤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개새끼….”

계범호. 그 깡패 새끼가 담뱃재를 떨어뜨려 생긴 것이었다. 심한 화상은 아니었으나 묘하게 따끔거려 짜증이 났다.

미간을 구기고 있던 태주는 문득 거울을 빤히 보았다. 제 생김새가 변하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창놈처럼 보였다.

“맞지, 창놈.”

태주는 비죽 웃었다.

당분간만이니까. 그는 뺨을 짝짝 두드리고 양치를 한 다음, 오늘 입은 셔츠 손빨래까지 마치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숙소에 들어올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거실에 누군가 서 있었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아하니 경준이었다. 젖은 셔츠를 손에 든 태주는 조용히 방으로 향하려 했으나 경준이 말을 걸었다.

“셔츠 빨았어?”

“네.”

태주는 화들짝 놀랐으나 그러지 않은 척 대답했다. 경준이 더 말을 걸지 않을 것 같아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는데, 조용한 목소리가 태주를 붙잡았다.

“VVIP 방에 들어갔다며.”

“아… 뭐.”

태주는 엄지의 거스러미를 뜯어내며 가까스로 태연한 표정을 만들어 냈다. 새벽빛이라 새빨개진 얼굴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들어갈 때는 진짜 조심해야 돼, 태주야.”

경준이 고개를 살짝 돌린 채 태주를 보고 있었다. 태주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그가 물었다.

“오늘 맞았어?”

“…아뇨.”

어색함을 느끼는 어린애가 그러는 것처럼 목소리가 조그맣게 나왔다. 경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매니저가 너 VVIP한테 맞은 것 같다고 그러길래.”

태주는 며칠간 서늘했던 몸에 피가 도는 것을 느꼈다. 태주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고마워요, 형.”

“뭘.”

경준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담배 한 모금을 빨고 나서 조금 잠긴 목소리로 다시 입을 뗐다.

“월급 까이는 거 말 못 해서 미안하다. 아는 줄 알았어.”

다른 직원들도 그걸 몰랐냐는 듯 태주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모두 그런 설명을 들은 것 같은데, 자신만 몰랐다는 것은 자신이 매니저에게 어지간히 밉보였다는 뜻이었다.

“괜찮아요.”

진짜로요. 태주는 덧붙이며 주먹을 쥐었다.

***

남자는 그 후 두 번 더 방문했고, 그때마다 태주를 찾았다.

태주는 다른 직원들에게서 부러움을 샀다. 그럴 때마다 태주는 다른 직원들도 룸 안에서 남자에게 비슷한 취급을 당했는지 좀 궁금해졌다. 그러고도 남자의 방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건지.

하긴 자신도 남자의 방에 들어오려고 별짓을 다 하지 않았던가.

“우웁…! 읍….”

남자의 다리 사이에 갇힌 태주는 한쪽 뺨이 붉었다. 조금 전에 이가 닿았다고 얻어맞아 그런 것이었다. 한계까지 벌린 입은 양쪽이 찢어진 데다가 숨이 막혀 벌게진 이마에는 핏줄이 섰다.

“조용.”

툭. 남자의 구둣발이 태주의 허벅지 옆을 건드렸다. 태주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봐달라고 무의식적인 애원을 한 것이었는데 남자의 커다란 손은 불룩 튀어나온 태주의 목 아래만 건드렸다.

공간을 가늠하는 듯한 손길에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남자의 좆을 조금 더 뒤로 밀어 넣었다. 목구멍이 자극당하자 구역질이 났으나 혀를 더 길게 빼물고 뜨끈한 살기둥 아래를 받쳤다. 그러자 남자가 칭찬하듯 태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애들 몇 보내서 정리했습니다.”

룸에는 계범호를 제외하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계범호가 술을 마시는 동안 저 새끼는 보고를 하고, 태주는 좆을 빨았다.

씨발 새끼. 태주는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 하며 부족한 호흡을 삼켰다. 그러고 허벅지 위에 놓인 커다란 손을 곁눈질로 경계하며 다시 고개를 묻었다.

“문제 될 것 없도록 해.”

태주의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예, 형님.”

태주는 뒤쪽을 경계하며 좆을 뱉어냈다. 길게 늘어진 침이 주욱 이어져 아래로 곡선을 그렸다. 잔기침을 한 태주는 번들거리는 기둥을 뿌리에서부터 길게 핥아 올렸다.

음. 목을 울린 계범호가 태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태주도 몸을 조금 일으켰다. 혀를 앞으로 뺀 채 따라가 성기를 핥자, 묘하게 웃음기를 띤 목소리가 말했다.

“이건 뭐 개새끼도 아니고.”

태주는 흘긋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계범호가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또 이가 닿았던 건가. 태주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손길은 이마 쪽에서 느껴졌다.

이마에 선 핏줄을 꾹꾹 누르는가 싶던 손길은 조금 자라 위로 삐쭉삐쭉 선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고 들어왔다. 두피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도 태주는 긴장해 덥석 남자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태주의 턱을 만졌다. 꼭 개를 쓰다듬듯이.

“나가 봐.”

“예, 가 보겠습니다, 형님.”

뒤에서 조용한 인사가 들렸다. 별다른 말 없이도 태주에게 수치심을 줬던 남자가 가는 것 같아 태주는 흘긋 눈을 굴렸다.

그러자 턱에 닿아 있던 손이 뒤로 넘어가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사정을 봐주지 않는 폭력적인 손길에 굵직한 귀두가 목구멍에 콱, 박혀 들었다.

“커헉…! 콜록, 콜록. 흐으….”

큰 소리를 내며 기침을 뱉어낸 태주가 얼른 눈치를 살폈다. 계범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태주의 얼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준비하고 왔어?”

“으웁… 에….”

입 안이 꽉 막힌 탓에 신음처럼 흘러나온 대답을 남자는 알아들은 듯했다. 그는 태주의 머리를 잠깐 놓아주었다. 태주는 다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살아 보겠다고 헉헉거리며 숨을 쉬는 태주가 우스운 듯 계범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내 그가 태주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았고, 태주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웁…. 윽, 커흑, 흐으….”

찔걱이는 소리와 함께 핏줄 선 좆이 반쯤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안으로 모습을 감추길 반복했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남자는 태주의 머리를 더욱 깊이 끌어당겼다. 아래가 조금 나와 있던 성기가 기어이 전부 들어갔다. 억센 손길에 태주의 얼굴이 남자의 고간에서 완전히 뭉개졌다.

“우흡…. 크흡, 으으….”

단단한 아랫배에 코까지 뭉개져 숨을 쉴 수 없었다. 좆은 들어와서는 안 될 곳까지 들어와 목구멍을 채웠고, 숨통은 완전히 틀어막혔다.

경련하듯 움찔거리는 목구멍에 좆을 박은 채 남자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숨이 막혀 들썩이는 뒤통수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누른 남자는 곧 태주의 입 안에 사정했다.

“삼켜.”

한숨과 함께 뱉어낸 남자의 명령이 아니었어도, 태주는 진작 그 더러운 것을 삼켰다. 살고 싶어서 미친 듯이 떨리는 목구멍이 태주의 침이든 남자의 정액이든 가리지 않고 뒤로 넘겨낸 것이었다.

찔걱. 목구멍을 휘젓고 나온 성기가 아랫입술을 무겁게 누르고 빠져나왔다.

“허억, 허억….”

남자는 질척한 좆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얼굴 위에 문질러 닦았다. 붉게 부푼 뺨과 콧대, 귓가. 여전히 단단한 살덩이를 비비며 남자가 말했다.

“잘 먹네.”

계범호는 커다란 손으로 태주의 뺨을 두드렸다.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태주는 제 처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잠깐 눈을 내리깐 태주는 입을 다물고 침을 삼켰다. 비리고 쓴맛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정말 남자의 말대로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태주의 말에 계범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피식 웃었다. 태주는 잠깐 그런 그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그러고 나서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풀었다. 계범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으나 별다른 말이 없었고, 태주는 셔츠를 마저 벗은 다음 바지와 팬티도 차례로 벗었다. 완전히 알몸이 된 뒤에는 덤덤한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셔츠가 하나밖에 없어서요.”

말하고 나서야 조금 비꼬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슬쩍 눈치를 살폈더니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태주는 조금 고민하다가 등을 돌린 채 바닥에 엎드렸다.

하얀 엉덩이에는 붉은 반점 몇 개가 있었다. 남자의 손에 맞아 핏줄이 터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엉덩이 사이로 분홍색 손잡이가 삐죽 나와 있었다.

계범호는 발을 들어 그것을 꾸욱, 밟았다.

“아윽….”

하얀 엉덩이가 뭉개지는 것이나 힘이 바짝 들어간 허리가 움푹 패이는 것을 구경하며 계범호는 발을 몇 번 더 움직였다.

정태주가 고개를 바짝 들며 신음을 내지른 것은 두 사람 모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으응…!”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른 종류의 소리였다.

남자가 발을 거두자 움찔거리던 딜도가 주르륵, 뒤로 빠져나왔다. 정태주는 놀라 뒤에 힘을 주다가 또 흐읏, 하고 작은 신음을 흘렸다. 계범호는 태주의 손가락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구부러진 것에 시선을 두다가 입을 열었다.

“위로 올라와.”

“…….”

태주는 입술을 짓씹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외면하듯 웅크린 채 엎드려 있는데, 참을성이 없는 남자가 태주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태주는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일어선 태주를 보던 계범호의 시선은 느릿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하필 그때, 반쯤 걸려 있던 딜도가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다리를 스치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딜도에 흥건히 묻어 있던 젤이 물처럼 녹아 태주의 허벅지 안쪽에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계범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태주를 비웃었다.

태주는 눈을 깊이 감았다 떴다. 굳이 내려다보지 않아도 자신이 발기했음은 알 수 있었다.

계범호는 꼭 오줌 싼 어린애처럼 엉거주춤 선 정태주의 팔목을 끌어당겨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양쪽 다리를 벌리게끔 마주 보고 앉히자 빳빳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정태주의 성기가 한눈에 보였다.

그전까진 관심 밖이었던 것을 내려다보며, 남자의 눈에 흥미가 담겼다. 그는 깨끗한 색의 성기를 장난처럼 손끝으로 튕겼다. 그러자 정태주가 움찔거리며 허벅지로 남자를 바짝 죄어왔다.

“제, 제가 넣을게요.”

당황한 낯의 정태주는 다소 급한 몸짓으로 남자의 성기를 엉덩이 사이에 맞췄다. 보이지 않는 데다가 구멍이 너무 축축하게 젖어 귀두가 바깥쪽으로 미끄러졌다. 정태주는 흘긋 계범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는 태주가 하는 꼴을 지켜보겠다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댔다. 성기를 건드리던 손도 흥미를 잃었는지 담배를 찾았다.

계범호가 담뱃불을 막 붙였을 때, 태주는 굵직한 귀두를 제 구멍으로 밀어 넣는 것에 성공했다.

“후으….”

압박감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몇 번의 관계로 태주는 몸에 힘을 빼야 덜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주는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계범호는 허공을 움켜쥐듯 주먹을 쥔 태주의 손을 잠깐 보다가, 고개를 기울여 성기가 반도 들어가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문 다음 태주의 허리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러자 무언가 직감한 듯 마주친 정태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남자는 맑은 눈동자를 빤히 보며 중얼거렸다.

“몸 파는 새끼가 순진한 척은.”

남자가 얄팍한 허리를 아래로 힘주어 끌어당겼다. 퍽, 남자의 고간과 하얀 엉덩이가 빈틈없이 맞붙고 정태주는 비명을 지르며 남자에게로 쓰러졌다.

“허으으….”

이마를 남자의 뺨 옆에 붙인 정태주는 자기가 무심코 남자의 어깨를 움켜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계범호는 픽, 웃으며 그런 태주의 등을 감쌌다. 손바닥에 닿는 살결이 부드러웠다.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빼내며 다른 손으로 태주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다음에도 옷은 전부 벗어.”

“후으… 아악! 네, 네….”

대답할 정신이 없는 태주의 엉덩이에 불이 났다. 태주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자기가 때린 엉덩이를 부드럽게 문지르고는 골반을 쥐었다.

태주는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는 바람에 태주의 성기는 점점 힘을 잃고 있었고, 딜도가 몸속 어딘가를 찌를 때 느꼈던 감각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때, 남자가 전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태주를 인형처럼 잡고 흔드는 대신, 내벽을 성기로 뭉근히 휘저은 것이다.

“흣….”

태주는 묘한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계범호는 얼핏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태주는 애써 태연한 낯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졌다.

굵직한 귀두가 또다시 어딘가를 가볍게 찔렀을 때, 진저리를 쳐버린 것이다. 벌어진 입으로는 짧은 비명도 내질렀다.

“…자, 잠시… 으응!”

성기가 그 부분을 다시 문질렀을 때는 비음까지 흘러나왔다. 제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야한 소리에 태주는 눈을 크게 떴다.

계범호는 당황한 듯한 정태주가 겁에 질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얼굴 위로 담배 연기를 내뿜자 정태주가 기침을 했다.

아니, 기침을 하고는 그것에 안쪽이 자극을 받았는지 또 비음을 흘렸다.

“흐응….”

꼭 강아지가 낑낑대는 것 같은 소리였다. 눈을 내리깐 채 웃던 계범호가 정태주의 뒤쪽으로 담배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러고 나서 행위는 빨랐다. 그는 양손으로 정태주의 허리를 움켜쥔 채 안쪽으로 좆을 퍽퍽 쑤셔 박았다.

“아흐읏…! 으읏, 으응, 아… 잠시만요. 자, 시, 싫어요. 아읏, 씨발.”

내벽의 볼록한 부분을 짓누를 때마다 정태주는 숨넘어갈 듯 신음을 내질렀다. 몸도 제대로 두지 못했다. 허리를 뒤로 꺾었다가 남자의 어깨를 움켜쥐었다가 밀었다가….

“쑤셔 주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아읏, 흐으… 가, 감사합니다!”

그대로 따라 하면 멈춰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라도 했는지 말간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것을 남자는 처참히 무시했다.

“착하네. 인사도 잘하고.”

계범호는 좆이 귀두만 걸쳐질 때까지 정태주를 들어 올렸다가 한 번에 내리꽂았다.

“하아악!”

숨넘어갈 듯한 비명을 지른 정태주가 의지할 곳을 찾듯 남자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았다. 턱 아래 닿는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며 계범호는 낮게 웃어버렸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창놈 새끼를 안고 그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정태주가 발버둥을 치며 매달려왔다.

“흐윽! 아, 안 돼요. 떨어져요… 아!”

귓가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안겨 오는데도 그리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좆이 터질 것처럼 흥분했다.

입술을 핥으며 계범호는 정태주를 소파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안쪽의 볼록한 부분을 좆으로 찍어 누르고 비벼댔다.

태주는 거의 울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도리질을 쳤다. 남자가 좆을 박을 때마다 전기가 튀는 것 같았다. 눈앞이 번쩍거리고 머리에 쥐가 났다.

“하아! 으읏, 하지 말라고, 씨발….”

찰싹. 태주가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린 건 뺨에 따가움이 느껴졌을 때였다.

“태주야, 정신은 차려야지.”

“흐으, 으….”

남자가 움직임을 멈췄음에도 자잘한 전류가 남은 몸이 자꾸 움찔거렸다. 태주는 헐떡이며 남자를 올려다봤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히끅, 소리를 내며 어깨를 떨었다.

계범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납게 웃었다.

그 뒤로 태주는 거의 기억이 없었다. 퍽, 퍽.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먹먹하게 울리고 누군가 몹시 야한 신음을 내질렀던 것 같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경련하듯 움찔거리며 사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주친 검은 눈동자는 무서울 만큼 번뜩이고 있었다.

***

그 이후로 계범호는 좆같게도, 태주가 느끼도록 섹스를 했다.

태주가 섹스 도중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이후에 자기 무릎에 앉히고는 장난치듯 성기를 만지기도 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웠다. 이제 태주는 남자가 전립선만 집요하게 자극하지 않더라도 끙끙거리며 느꼈다.

최대한 그 감각에서 멀어져 보려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태주도 마인드를 바꿨다. 이왕 섹스를 하는 것, 자신도 즐길 수 있다면 즐기면서 돈을 버는 일이 아니겠는가.

숙소로 돌아가는 새벽이면 기분이 진창으로 처박히긴 했지만 주머니 속의 수표와 남은 빚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후장은 계범호에게만 팔아야겠다.

이유도 하나 정했다. 다른 사람은 그만큼의 값을 쳐 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 다른 손님과 섹스를 했을 때도 느끼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21년간 멀쩡히 잘 살다가 갑자기 게이가 될 수는 없었다. 게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은 엉망이었고, 이미 엉망이 된 부분만 바로 돌리는 것도 무척 애를 써야 할 것이다.

“700… 800….”

중얼거리던 태주는 멍하게 제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수표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씨발.”

월급과 팁을 모두 더하면 이번 달 수익은 약 천만 원이었다. 팁으로만 800만 원 이상을 받은 것인데, 그 대부분을 한 사람에게서 받았다.

계범호 미친 새끼. 그런 생각을 하며 태주의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갔다.

천만 원. 한 달에 천만 원을 벌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면 정말 이 생활을 1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무슨 야동 주인공도 아니고 씨발.

그런데… 솔직히 계범호와 섹스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도 같다.

다른 손님들에게서 팁을 남들만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룸에 들어가도 크게 애쓰지 않았다. 일주일, 이 주일에 한 번씩 오는 계범호가 몇백만 원을 팁으로 주니 자연스럽게 나태해진 것이었다.

‘돈 많은 사모님 하나만 물어, 태주야. 그럼 너 빚도 갚고 팔자도 고친다?’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모님은 아니지만 계범호는 이곳에 오는 어떤 돈 많은 사모님보다 돈이 많은 것 같았다. 아니면 의외로 좀 호구거나.

거기다 몇 번 몸을 섞다 보니 계범호에 대한 태주의 두려움도 조금 줄어들었다. 어쨌거나 자신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는가. 처음보다 덜 때리는 것도 같고.

“…아닌가.”

태주는 금방 자신 없이 중얼거리며 제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남자는 태주가 조금만 굼뜨게 굴면 가차 없이 손찌검을 했고, 그 때문에 요즘 태주의 엉덩이는 성할 날이 없었다.

어쨌든 이번 달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상환할 수 있겠다. 매니저가 또 어떤 수를 써서 월급을 깎아도 충분한 돈이 있으니까.

태주는 손에 든 수표와 다른 돈까지 모두 챙겨 봉투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상환액을 맞춰 보내고 나서도 통장에 돈이 좀 남았다.

“됐냐.”

“잠시만요.”

태주의 말에 그들은 귀찮은 표정으로 턱짓했다.

깡패들은 뭘 말하기가 귀찮은가. 계범호도 턱짓을 할 때가 많았다. 무릎을 꿇어라, 좆을 빨아라, 옷 벗어라, 같은 말이 뭐가 어렵다고.

아. 창놈은 사람대우를 안 하는 것이니 귀찮을 수도 있겠다.

“씨발 새끼.”

태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처음 계범호를 만났을 때는 속으로 욕도 못 할 만큼 쫄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욕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좀 풀렸다. 돈을 무사히 보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으나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며, 10만 원을 인출했다. 그런 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숙소 문을 열고 나서 태주는 곧장 집 안을 둘러보았다.

“어, 형 아직 출근 안 했네요.”

바지는 유니폼이지만 위에는 편안한 티셔츠를 입은 경준을 보며 태주가 말을 걸었다. 경준은 주방 쪽으로 가며 응, 이제 해야지. 같이 나가자. 하고 말했다.

“형 이거. 담배 사요.”

태주는 경준에게 봉투를 건넸다. 경준은 눈을 크게 뜨고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씩 미소를 지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편안했던 마음은, VVIP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좀 흔들리게 되었지만 돈 많이 주는 고객님이란 생각을 하면 뭐든 못할까 싶었다.

“VVIP가 태주 진짜 마음에 들었나 봐. 요즘엔 태주만 찾잖아.”

“이러다 우리보다 먼저 빚 갚고 나가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태주는 누나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나중엔 아파트 한 채 해 줄지도 몰라. 이야, 좋겠다.”

“야. 애한테 헛바람 넣지 마. VVIP가 우리 사람 취급은 하냐.”

옆에서 남자 하나가 말을 얹었다.

“뭐… 그렇긴 한데, 혹시 모르지. 그 손님이 누구 지목하는 건 본 적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태주 진짜 팔자 피겠다.”

“근데 난 아무리 그래도 후장은 못 팔겠던데. 너도 참 대단하다.”

손뼉을 치며 신나 하는 여자들 뒤로 남자 하나가 덧붙여 말했다. 표정이 굳은 태주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경준이었다.

‘쟤 원래 저래.’

귓속말로 그가 한 말은 별것 아니었지만, 태주의 표정은 금방 풀어졌다. 때마침 들어온 무전으로 모여 있던 무리도 금방 흩어졌다.

태주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칸 안에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준비를 마치고 손을 씻으러 세면대 앞에 섰다. 조금 붉어진 양 뺨에는 수치심이 묻어 있었으나 손을 씻고 나서는 그도 사라졌다.

바리깡으로 밀었던 머리는 그사이 많이 자랐다. 하지만 아래로 가라앉을 정도로 자란 것은 아니라 허공에 뻣뻣하게 솟아 있었다.

“이상한가….”

아침에 경준에게 물어보긴 했었다.

‘형. 저 머리 이상해요?’

‘어.’

‘네?’

‘아니? 안 이상해. 그대로 둬 제발.’

경준의 대답이 좀 이상하긴 했는데……. 이런 머리는 또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 태주는 머리에 물을 묻혀 조금 가라앉히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성큼성큼 걸을 수가 없어서 태주는 느릿하게 주방에 도착했다. 때마침 세팅된 트레이를 이끌고 또 느릿하게 걸어 태주는 VVIP 룸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남자는 통화 중이었다. 태주는 조용히 세팅을 마치고 난 뒤 잠깐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어떤 날은 룸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좆을 빤 적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어떤 것을 먼저 하게 될지 몰랐다.

계범호는 눈을 데룩데룩 굴리고 있는 정태주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태주의 손목을 끌어당겨 가까이 서게 한 뒤 곧장 뒤쪽으로 손을 댔다.

재킷 아래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지자 불룩한 것이 느껴졌다. 계범호는 통화를 하는 채로 그것을 꾹 눌렀다.

“읏!”

정태주는 한 걸음 앞으로 가며 비틀거리다 발목을 가볍게 차는 발길질에 다시 되돌아왔다. 뒤를 꾹꾹 누르는 손길에 도망치지 않는 것은 퍽 힘겨운 일이었다.

태주는 주먹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얕은 신음이라도 나오면 손잡이까지 집어넣을 듯 손길이 거칠어졌기 때문이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느라 남자의 통화가 끊긴 것도 몰랐다.

계범호는 바짝 힘을 주고 있는 정태주를 물끄러미 보다가 툭, 다리를 건드렸다. 정태주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옷 벗을까요?”

태주는 곧장 재킷을 벗고 목 위까지 덮은 셔츠 단추를 풀었다. 두 개쯤 풀었을 때, 계범호가 말했다.

“몸 팔 생각에 신나나 보네.”

“예.”

굳어진 표정을 하고 대답하는 태주를 보며 픽, 웃은 그가 태주를 끌어당겨 제 옆에 앉혔다.

친절하지 않은 손길에 소파로 엉덩방아를 찧은 태주가 짧은 비명을 질렀으나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 술만 마시다가, 다른 잔에 위스키를 부어 태주에게 건넸다.

“마셔.”

“저 그냥은 잘 안 마시는데요.”

태주에게서 다소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원래 태주의 말투는 그런 경향이 있긴 했다.

“음료수 하나 가져오… 면 안 되겠네요.”

사내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보고 태주는 금방 말을 바꿨다. 그러고 “죄송합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한 뒤 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계범호는 신기한 것을 보듯 태주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아직도 해맑아.

“네?”

제대로 듣지 못한 정태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범호는 당연한 듯 무시했고, 태주는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위스키를 마셨다.

쓰고 독한 향에 코가 매웠다. 목구멍이 화끈거려 인상을 찌푸릴 때가 되어서야, 태주는 조금 전 제 말투가 좀 건방졌음을 깨달았다. 말투를 좀 고쳐야겠다고 종종 생각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계범호는 생각보다 - 태주는 각오를 단단히 했었다 - 손버릇이 아주 나쁘진 않았다. 가끔 때리긴 해도 전에 보았던 사람처럼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때리는 건 아니지 않은가.

거기다 요즘 매니저에게든, 경호원을 가장한 깡패들에게든, 워낙 뒤통수를 많이 얻어맞다 보니 폭력에 익숙해져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언제 한 번은 계범호가 그들보다 자신을 덜 때린다는 생각마저 했으니까.

소문이 과장되었거나 남자가 정말 자신이 마음에 들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태주는 흘긋 남자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주 오시네요.”

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기울여 태주를 쳐다보았다.

“내가 자주 와야 좋은 거 아닌가, 태주는.”

느릿한 목소리를 들으며 태주는 눈을 깜박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태주는 말했다.

“좋아요. 자주 오셔서.”

계범호는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시선이 얽히고, 굳은살과 잔 흉터를 여기저기 매단 손이 테이블 위로 잔을 내려놓았다. 탁, 하고 소리가 제법 크게 나 태주가 반사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태주야.”

가만히 부르는 목소리에 태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익숙하게 옷을 벗고 엎드렸다.

그 뒤로는 익숙해진 일의 반복이었다. 구멍을 팔고, 돈을 받는.

그러나 계범호가 금방 멀어지지 않고 허리를 지분거렸을 때, 태주는 문득 새로움을 느꼈다. VVIP 룸에 들어오기 전 다른 직원들이 했던 얘기도 떠올랐다. 아파트 한 채 해 줄 것 같다던가.

그런 건 전혀 상상되지 않지만, 계범호는 확실히 자신과의 섹스를 마음에 들어 했다. 조금 유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VVIP는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굴면 자기 직원이든 매화의 직원이든 관계없이 손을 올린다던데. 엉겨 붙거나 애교를 부리는 것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데 관계 중 엉덩이를 때리려던 손을 피해 태주가 덥석 목덜미에 매달렸을 때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말았다. 엉덩이에 멍이 들어서 만지지도 못한다는 말을 했을 때는 오히려 엉덩이를 세게 주무르긴 했으나, 처음 남자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무언가 많이 바뀐 게 맞다.

정말 그가 누나들에게 명품 백이며 액세서리며 사다 바치는 호구들처럼 되는 게 가능하다고?

태주는 정액이 말라 건조해진 얼굴을 문질러냈다. 그러고 나서는 생각했다. 그냥, 떡정 비슷한 거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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