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1화 (1/15)

담뱃재 1권

목차

1.

2.

3.

4.

5.

6. (1)

1.

새해가 밝았다. 정태주는 올해부턴 좀 사람답게 살아 보기로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져선 안 될 다짐이었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예전만큼이라도 살 수는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쓴 한숨만 허공에서 흩어졌다.

“야 이 새끼야. 너 뭐 해.”

그때 거친 음성이 뒤통수로 날아왔다. 정태주는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툭 던지듯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쓰레기 버리는데요.”

가게 뒷문 앞에 선 까칠한 인상의 남자가 이 새끼 봐라, 하는 표정으로 태주를 노려봤다. 태주는 딴청을 부리며 속으로 빈정거렸다. 씨발 새끼가 또 지랄이네.

“내 말이 우스워?”

“아니요.”

태주는 어깨 위에 걸쳐져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지가 쓰레기 버리라고 시켜놓고 얼른 안 오냐고 고함을 지르는 게 짜증 나서 빼고 있었던 거였다.

“이 새끼가…. 이어폰 빼지 말랬지.”

결국 뒤통수에 손이 날아왔다. 내리꽂힌 충격에 머리를 숙이기 무섭게 고개가 뒤로 꺾였다.

“씨발아. 얼굴 반반하다고 뭐 좀 되는 것 같아?”

태주의 머리채를 잡은 매니저가 눈을 부라렸다. 태주는 그 시선을 잠깐 맞받아치다가 이내 아래로 시선을 두었다. 쓰레기봉투에 그새 파리가 꼬인 것이 보였다.

“잘해라. 처맞기 싫으면.”

“예에.”

불순한 대답에 매니저는 뭔가 더 쏟아내고 싶은 듯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곧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놓았다.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VVIP 룸. 얼른 가, 새꺄.”

툭. 뒤통수를 밀듯이 치며 매니저가 말했다. 태주는 뒷문으로 향하며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머리카락 몇 올이 뽑힌 게 분명하다. 이놈의 머리를 다 밀어버리든가 해야겠다.

뒷문으로 들어간 태주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툭툭 털었다. 바닥에 물기가 튀었지만 괜찮다. 직원용 공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왜 이제 와.”

복도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마자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음식을 낼 수 있도록 길게 뚫린 공간 사이로 주방장이 태주를 흘겨봤다.

꾸벅 고개를 숙인 태주는 이동식 트레이를 흘금 살폈다. 양주와 얼음, 잔, 안주 몇 개가 층층이 놓여 있었다.

세팅은 준비됐는데 서버가 없어서 못 나간 모양이었다. 태주는 뒤늦게 좀 미안해졌다.

“다른 사람들 없어요?”

태주가 트레이 손잡이를 쥐며 묻는 말에 주방장이 고개를 저었다. 서빙을 나간 직원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무척 흔한 일이라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야.”

트레이를 끌고 나가려는데 주방장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예?”

“조심해라.”

“진상이에요?”

태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주방장이 뜻 모를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말할 듯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흘깃 시계를 보았다.

“……뭐. 암튼. 까불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시간이 없어 말을 아낀다는 태도였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서빙 들어가기 전에 이런 경고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심각한 진상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태주는 예, 하고 대답했다.

태주는 음식 냄새를 막기 위해 길게 뺀 복도를 지나 자동문 앞에 섰다. 툭, 버튼을 눌러 문을 열다가 그러고 보니 VVIP 룸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까맣게 반질거리는 유리문이 열렸다. 눈앞에 보이는 널찍한 복도는 붉은빛이 도는 간접등이 전부였다. 천장과 바닥 가장자리를 비추는 조명은 고급스러운 맛이 있었으나 태주는 그게 퍽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딱 룸에서 별짓 다 하는 놈들이 놀 곳 같지 않은가.

하긴 그 짓에 어울려 주는 게 그의 일이긴 했다.

정태주는 길게 쭉 뻗은 복도로 향하는 대신 트레이를 돌려 왼쪽으로 빠졌다. VVIP 룸은 일반 손님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깊숙한 곳에 있었다. 입구도 따로 하나가 있으니 말 다 한 거다.

똑똑-

금박으로 ‘VVIP’라고 새겨진 문 앞에 선 그가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리고 하나…, 둘…, 하고 느리게 수를 세며 문손잡이를 쥐었다. 손바닥에 차가운 금속이 닿자 문득 주방장의 경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심해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경곤데. 돈 많은 새끼라 갑질이 심한가. 이런저런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셋.

달칵. 태주는 지체 없이 문을 열며 싸한 기분을 지워냈다. 진상이 거기서 거기지 뭐. 팁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깨달았다.

이거, 잘못하면 좆 되겠구나.

“씨바, 왜 이렇게 늦어.”

“죄송합니다.”

가장 가장자리에 앉은 남자 하나가 건들거리며 말했다. 태주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는 트레이를 밀고 들어갔다. 욕설을 지껄이던 남자는 이내 태주에게서 신경을 끄고 옆에 앉아 있는 직원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테이블의 풍경이야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대여섯 명쯤 되는 사내들이 각자 직원 하나씩을 끼고 몸을 주물럭거리는 것.

그러나 테이블 맞은편의 광경은 전혀 다른 장르였다.

태주는 트레이 손잡이를 꽉 쥐며 몇 걸음을 더 걸었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곁눈질을 했다.

시선이 향한 곳은 테이블과 문 사이 공간, 그곳에 무릎을 꿇은 어떤 남자였다.

그 사람은 심하게 다쳤다. 문을 열고 순간적으로 마주했을 때 비명을 지르지 않은 제 자신이 용할 정도로.

온통 피로 뒤덮인 얼굴은 뼈가 내려앉기라도 한 듯 형태가 일그러져 있었다. 눈알이 아플 정도로 곁눈질한 결과, 태주는 남자의 짧은 머리 역시 피로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만큼 피가 날 정도면 머리통이 깨졌을지도 몰랐다.

여자나 주물럭거리고 있는 손님들이 119를 부를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러다 송장 하나 치우는 건 아닐까.

“세팅하겠습니다.”

얼른 나가서 매니저에게 말을 해야겠다. 휴대폰도 없고, 멋대로 나섰다가는 자신도 저 꼴이 될지 모르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뿐이었다.

태주가 무릎을 굽혀 트레이 아래 칸에 있는 안주를 올리려던 때였다.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술부터.”

태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몸집이 거대했다. 검은 셔츠에 감싸진 흉곽이 아주 컸고, 굴곡진 팔뚝은 태주의 팔을 세 개는 모아 붙인 것처럼 굵었다. 문득 무릎을 꿇은 남자의 얼굴을 뭉개놓은 게 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큼직하게 튀어나온 목젖을 지나 시선을 들어 올린 태주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목소리의 주인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남자의 눈은 움푹 들어가 음영이 졌고, 눈동자는 새카만 색이었다. 그래서일까. 무심한 눈빛에도 태주는 위협을 느꼈다.

턱 아래 걸린 숨을 힘겹게 삼켜내며 태주는 남자가 가장 상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 상기했다. 그러므로 남자는 사람 하나를 저렇게 폭행해놓고 태연히 술을 마시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추측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나이, 성격 같은 기본적인 정보 대신 오직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운 경고만이 태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남자의 단단한 턱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내리깐 시야로 보였다.

“죄송합니다.”

태주는 재빨리 양주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잔을 놓고 얼음통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데 커다란 손이 병목을 낚아챘다.

대충 뚜껑을 딴 손이 잔에 양주를 콸콸 쏟아부었다. 그게 꼭 남자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 같아 접시를 나르는 태주의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여기서 실수를 하면 좆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니 확신이 들었다.

태주가 손끝에 단단히 힘을 주고 잔과 접시를 옮기는 동안 룸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평소라면 높은 목소리로 교태를 부렸을 직원들도 속닥거리기만 했다.

등 뒤에 있는 환자를 의식하며 태주는 시야의 가장 위쪽으로 기민하게 남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태주가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과일 접시를 내려놓을 때였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앉아 있던 남자가 돌연 움직였다. 피이익, 새카만 가죽 소파가 연약한 비명을 질렀다.

정태주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 흘금 눈을 굴렸다. 남자가 등을 구부리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려놓자 팔과 어깨를 휘감은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황급히 눈을 돌리다 몇 마디 말을 나눠 본 적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스르르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안 도와주겠다는 뜻이었다.

이어폰을 낀 한쪽 귀로 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태주는 불안해졌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도망치듯 황급히 허리를 숙이던 태주는 못 봤으면 좋을 것을 보게 되었다. 멈추라는 듯 남자가 허공에 내민 손, 마디가 굵고 울퉁불퉁한 손가락,

그리고 손톱 주변에 낀 핏자국.

사색이 된 태주가 어정쩡하게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남자의 시선은 곧았다. 그 전부터 쭉 태주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태주는 최선을 다해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한껏 올라간 태주의 입꼬리에 남자의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고개를 기울인 남자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새로 왔나.”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불명확한 말투였다. 목소리는 너무 낮아 꼭 귀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공손히 두 손을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귀를 비벼댔을지도 몰랐다.

“…예. 일주일 됐습니다.”

입 안이 바싹 말라 목소리가 조금 거칠게 나갔다. 태주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헛기침을 했다.

잠깐 태주를 바라보던 남자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하얀 수표 몇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관심이 떨어진 듯 제 술잔에 술을 채웠다.

남자의 피 묻은 손이 드는 유리잔과 테이블 위 하얀 수표를 멍하게 보고 있던 태주의 눈이 점점 커졌다.

“감사합니다!”

태주가 좀 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씩씩하게 인사했다. 술잔을 입에 댄 남자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긴장이 조금 풀린 태주는 그제서야 남자의 턱에 오래된 흉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입술 옆에서부터 턱 안쪽까지 이어진 제법 큰 흉터인데, 위압적인 분위기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남자는 이내 소파에 등을 기댔고, 태주는 소파가 내지르는 연약한 소리를 다시 한번 들으며 트레이를 끌고 조심스럽게 뒤로 걸었다.

남자의 옆에 앉은 여자가 그새 또 빈 잔에 술을 따라 주는 것이 보였다. 좀 전까지 자신이 그녀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했다.

룸을 빠져나온 태주는 손안에 쥐고 있던 수표를 확인했다.

고작 서빙에 받은 팁은 오십이었다.

***

“매니저님. 저 안에 다친 사람 있어요.”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한 말에 매니저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정태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사람의 힘없는 뒷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많이 맞은 것 같아요. 피도 많이 나고요.”

“근데.”

매니저가 포스기를 확인하며 설렁설렁 대답했다.

“구급차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야.”

매니저가 표정을 달리하며 태주를 응시했다. 작은 눈이 짜증스러움을 고스란히 내비치며 한껏 찌푸려졌다.

매니저는 유독 태주를 싫어했다. 오토바이 배달이나 하던 스물한 살이 빚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인가.

어쩌면 태주가 중졸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매니저는 고학력자나 명문대생인 직원을 좋아했다.

“룸에서는 귀 닫으랬지. 귀 닫고, 봐도 못 본 척. 그게 기본이라고.”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아오. 안 죽어, 새꺄.”

답답하다는 듯 매니저가 태주에게 손을 올렸다. 태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뚱하게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매니저는 태주보다 키가 좀 작고 체격도 그리 좋지 않아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태주는 순간 그 남자를 떠올렸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무섭다고 말할 수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싶으면 계속 착한 척해 봐. 이 양아치 새끼야.”

태주가 조금 인상을 쓰자 매니저가 뒤통수를 몇 대 후려갈겼다. 퍽, 퍽 소리가 날 때마다 태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쩌다 이런 새끼가 들어와서. 어휴.”

한숨을 푹 내쉰 매니저가 대기실을 나갔다. 태주는 약간 등이 굽은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누가 오고 싶어서 왔나. 중얼중얼 욕을 내뱉으며 태주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잘 접어놓은 수표가 바스락거렸다.

“오십만 원….”

이틀에 한 번씩만 이렇게 받아도 이번 달에 보낼 돈은 거뜬할 텐데. 다른 손님들에게 받는 팁도 더한다면 어쩌면… 딱 1년만 이 생활을 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태주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1년, 하고 중얼거릴 때였다.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얼마 받았냐?”

“아, 몰라. 미친 새끼가 가슴 존나 주물럭거리더니 겨우 십 주더라.”

유니폼을 입은 여자 직원 두 명이 시끄럽게 떠들며 들어왔다. 눈이 딱 마주쳐서 태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응, 태주 안녕.”

그녀들이 태주가 일어난 소파에 풀썩 앉았다. 구두를 벗어 던지고 소파 위로 발을 올리자 치마가 위로 조금 올라갔다.

“태주. 지금 내 다리 보니?”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는 예쁜 얼굴을 보며 태주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봐도 돼.”

“…진짜요?”

“응. 팁 주면.”

“안 볼래요.”

태주의 시무룩한 대답에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태주는 얼핏 고등학생처럼 앳돼 보여서 여자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몇 번 더 태주를 놀리던 여자들은 곧 자기들끼리 얘기를 시작했다.

“VVIP 오시는 줄 알았으면 아까 어떻게든 안 들어가는 건데.”

“그러니까. 거기 누구 들어갔지?”

“유리랑 연지. 아. 좋겠다 썅년들.”

태주는 조금 눈치를 보다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엄청 무서운 사람인 것 같던데….”

“어. 태주가 들어갔어?”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빙하고 나왔어요.”

“아아.”

“룸 안에서 누굴 때렸나 봐요. 맞은 사람은 막 피가 줄줄 나서 얼굴도 못 알아보겠고요.”

매니저가 올까 봐 문을 흘금거리며 태주가 속삭였다. 룸 안에서 있었던 일은 직원들끼리도 숨기는 게 원칙이었지만 직원들은 몰래 얘기를 한다고 했다. 매니저도 눈앞에서 걸리지만 않으면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원들은 밖으로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으니까.

그랬다가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여자들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태주도 팁 받았어? 많이 받았지.”

가슴을 내어주고 10만 원을 받았다는 그녀와 달리 태주는 서빙만 하고 50만 원을 받았다. 태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태주 좋겠네.”

“그 손님 2차 가면 백은 줘. 맘에 들면 이백이든 삼백이든 주고.”

“근데 하면서 담배 피우는 건 좀 그래. 봐봐. 나 여기 담뱃재 떨어져서 데인 거. 엄청 오래가잖아.”

여자가 팔 안쪽의 희미한 흉터를 손으로 더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다른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때 너 얼마 받았는데 이년아.”

“조온나 많이 받았지. 어후, 그냥 나를 재떨이로 쓰셨으면 좋겠다.”

“미친년.”

깔깔거리며 웃는 여자들을 태주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예인처럼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있는 곳, 웃음을 팔고 몸을 파는 곳, 모든 게 비밀이어야 하는 곳.

이곳에서는 꼭, 돈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

이곳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돈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태주는 그 누구보다도 돈이 필요했다.

태주의 빚은 1억 6000만 원이었다.

빚을 떠올릴 때마다 태주는 가슴이 꽉 막혔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는데 어디서부터인지, 어디에 따져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단순히 제 잘못이고 제 탓일지도 몰랐다.

며칠 전 태주에게 거액의 빚이 생기게 된 것은, 말하자면 사고였다.

태주는 오토바이 배달을 했다. 배달 어플 쪽 건도 맡고, 퀵이나 심부름센터 건도 같이 맡았다. 단기간에 돈을 모으기 위해 그랬던 것인데… 사실, 그 심부름센터 쪽 일은 하면 안 됐다. 그 녀석들은 누가 봐도 깡패 같지 않았던가. 별일 있겠나, 하는 안일한 생각이 어쩌면 이 상황을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날. 태주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심부름센터에서 배달을 맡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장이 그러는 것이다.

‘조심히 배달해라. 이 안에 든 거 외제 차 한 대 값이니까.’

‘예?’

태주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사장이 들고 있는 작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자의 크기는 가로 20cm, 세로 15cm 정도로 조그마했고, 무게도 무겁지 않아 보였다.

저게 뭐라고 외제 차 한 대 값이라는 건가.

‘…아, 예. 뭐, 갔다 오겠습니다.’

뭐든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태주는 상자를 받아 제 백팩 안에 넣었다.

그가 물건의 정체를 알게 된 건 배달을 마치고 난 뒤였다. 분명히, 그는 물건을 목적지까지 잘 가져가 전달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태주의 눈앞에서 그걸 열어 본 고객은 눈을 크게 떴다.

‘어…? 내 반지…!’

태주는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자신이 배달했던 물건이 반지라는 것, 그리고 그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

한마디로 좆 된 거였다. 고객은 난리가 났고, 태주는 우선 센터로 가 다시 찾아보겠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센터에 다시 도착하자마자 사장에게 뺨을 맞았다.

‘반지 어쨌냐?’

‘씨발, 전 몰라요! 열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배달했다고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상자는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반지 케이스만 없어지다니.

‘그러면 반지가 발이 달려서 도망가냐?’

‘아, 진짜 전 그게 반지인 줄도 몰랐어요. 제가 그걸 왜 훔쳐요.’

‘1억 넘는다니까 혹했겠지.’

‘1억이 넘는다고요…? 반지라면서요.’

고작해야 몇천쯤 생각했지 1억이 넘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상식적으로 1억 넘는 반지를 왜 심부름센터에 맡겨서 배달을 시킨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그런 건 따로 배달해 주거나 직접 찾아가는 시스템일 거다.

정태주는 길길이 날뛰며 아니라고 부인했고, 사장은 정태주의 몸수색을 해보고 난 뒤 잠깐 흥분을 가라앉혔다.

‘네가 훔쳤든, 씨발 누가 훔쳐 갔든. 네가 배달하다가 사라진 거니까 책임은 져야지.’

‘…….’

‘쟤 봐라. 너 때문에 지금 전화 끊지도 못하고 있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난린데 씨발.’

‘경찰 부르라고 하면 되잖아요.’

‘아오, 씨발. 영업장 문 닫을 일 있냐?’

사장이 태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태주는 얼얼한 뒤통수를 붙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사장이 말했다.

‘배상해라.’

태주는 멍하게 물었다.

‘제가요?’

‘하. 제가요?’

사장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태주의 머리를 몇 대 때린 다음 서랍에서 계약서를 꺼내 왔고, 배달 중 파손되거나 분실된 물건의 배상은 배달원이 한다는 계약서 조항을 태주가 소리 내어 읽게 했다.

태주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으나 1억이 넘는다는 반지를 배상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감이 없었다.

그 뒤로 모든 것은 태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갔다.

손님과의 협의로 총 배상금은 1억 6천만 원이 되었고, 태주는 사장이 운영하는 대부업체에서 강제로 그 돈을 빌리게 되었다. 대출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는 손이 덜덜 떨렸다. 지금 제 인생이 엉망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쯧. 너 어떻게 갚을래?’

‘씨발, 이거 불법이잖아요.’

눈을 똑바로 뜨는 태주를 보고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태주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너 이 새끼 여기서 나가면 신고하겠다? 어쩌냐. 계약서에 법적으로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는데.’

문제가 없다니.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쓴 사채 계약서였다. 그들은 태주의 휴대폰을 뺏었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손도 여러 번 올렸다.

배상 책임이 태주에게만 있다는 것 역시 말도 안 된다. 솔직히 그렇게 고가의 물건이 분실되었으면 경찰에 신고해서 잘잘못을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들이 경찰 부르는 게 싫어서 안 불러놓고, 책임은 왜 배달 기사만 져야 하는가.

태주는 물건을 사무실에서 받아 가방에 넣고 나갔으며 손님에게 전달할 때까지 가방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그럼 누군가 태주의 백팩에서 반지 케이스만 꺼내 훔쳐 갔다는 얘긴데, 어쩌면 태주가 물건을 받기 전부터 도난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사장은 태주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는 납치하다시피 태주를 이곳으로 끌고 왔다.

경찰에 신고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내거나 빚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았으나, 휴대폰을 뺏긴 채 감금된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게 아니면 자신이 중졸이라 모르는 것인가.

“씨발, 그래서 내가…….”

“어? 태주 뭐라고?”

태주가 중얼거린 말에 대기실에 있던 여자가 휙 돌아보았다. 태주는 아니에요, 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정태주는 감금됐다.

이곳의 사람들은 심부름센터 사람들보다도 악질이었다. 심부름센터 사장, 조덕현은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기라도 하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었다.

직원들 중 안색이 매우 나쁜 사람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신장 하나가 없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태주는 그 말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괜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행동하면 괜찮다는 다른 직원들의 위로도 진심 같았다.

태주는 우선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것이다.

***

새벽 5시. 일을 마친 태주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직원 숙소는 같은 건물 5층인데 4층까지는 일반적인 호텔로 사용했다. 주로 2차를 나갈 경우 가게 되는 곳이었다.

“태주야. 먼저 씻어.”

숙소로 들어오며 경준이 말했다. 경준은 태주보다 네 살이 많은 형으로, 맨몸으로 끌려온 태주에게 필요한 것을 사 주고 여러모로 많이 도와준 사람이었다.

경준 역시 빚이 있었는데 태주처럼 그 깡패 새끼들에게 빚을 진 건지, 매화 사장에게 진 건지는 잘 몰랐다.

태주는 텅 빈 숙소를 돌아보고 현관문을 힐긋거리며 물었다.

“다른 형들은요?”

“걔네 술 마시러 갔어. 그렇게 마시고도 또 먹고 싶나 몰라.”

손님이 술을 마시라고 하면 마셔야 하고, 술을 마시면서 또 매상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매일 술을 마셨다. 형들은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버리기도 한다는데, 그게 걸리면 좆 되는 수가 있다고 해서 태주는 꼬박꼬박 받아 마셨다. 술이 센 편이라 다행이었다.

어쨌든 남자 다섯 명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니 숙소에서는 항상 술 냄새가 났다.

“아, 근데 형은 안 씻어요?”

태주는 욕실로 들어가려다가 멈춰 섰다. 형이 거실 창문을 열며 손가락에 낀 담배를 흔드는 것을 본 뒤에야 마음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은 다음 거울 앞에 섰다. 양치 컵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칫솔 중 초록색 칫솔을 자연스럽게 집어 들고 치약을 짜 입에 넣었다. 화한 맛이 입 안에 번지자 속에 남은 술 냄새가 가려졌다. 살 것 같았다.

“…….”

태주는 문득 거울 속 제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럭저럭 멀끔한 얼굴이 이질적으로 보였다.

이곳에 처음 온 날에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두리번거리지 말고 똑바로 걸어, 새끼야.’

두꺼운 손바닥이 뒤통수를 후려쳐 태주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었다. 그러자 태주의 머리를 후려친 사내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사납게 물었다.

‘너 지금 인상 쓰냐?’

‘아뇨.’

‘똑바로 해라.’

‘예.’

태주는 고개를 숙였다. 눈은 단추 구멍만 한 새끼가 노려보기는.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그는 흘깃 눈을 돌렸다. 검은 바탕에 하얀색 글자가 있는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매화. 꽃 이름만 붙이면 다 있어 보이는 줄 알지.

그날의 태주는 일부러 이죽대듯 생각했었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모른 척하려고.

하지만 생각보다는 상황이 훨씬 괜찮았다. 장기가 털리든지 혹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도 맡을 줄 알았는데, 태주는 월급을 주는 곳에서 그럭저럭 잘살고 있었다.

매화의 월급은 300만 원이었다. 야간에 일하는 것치곤 아주 크지는 않은 금액이지만 팁을 챙기니 보통 한 달에 몇백은 그냥 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 듯 태주는 벌써 팁을 많이 받았다. 고작 일주일 만에 100만 원 넘게 받았으므로, 계속 이렇게만 받는다면 한 달에 800만 원이 넘는 터무니없는 상환금도 갚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어디 가서 달에 800을 벌겠냐. 씨바, 장기 떼다 팔 수도 있는 거 우리가 돕겠다는 거잖아.’

조덕현이 윽박지르듯 한 말이 떠올랐다.

솔직히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어디 가서 달에 800을 벌까. 할머니와 자신이 둘이서 아무리 벌어 봤자 그 돈은 채울 수 없을 것이고, 어차피 지금은 감금당해 할머니와는 연락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곳에 감금당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할머니에게만큼은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 없이 자란 데다가 늘 엇나가기만 하던 손자 녀석이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 한다는 얘기가 ‘할머니 나 빚 생겼어. 1억 6000.’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거기다 할머니는 예전에도…….

“……아.”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느라 입술을 타고 거품이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다. 태주는 거품을 닦아내고는 다시 칫솔을 쥐었다.

어쨌든 태주는 제 선에서 이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곳에 끌려온 날 새벽, 두려움과 공포를 덮어두며 했던 다짐이었다.

새해에 두 번째로 하게 된 다짐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1억이니 800만 원이니 전부 실감이 안 나는 금액이지만, 분명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감시가 심해 바깥에 나가지 못하지만 감시가 약해진다면 경찰을 찾아갈 거고, 빚을 갚지 않을 방법 또한 찾아볼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나라에서 뭐라도 해 주지 않을까.

그러니 자신은 우선 몇 달만 이 개새끼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매화의 사장은 매화를 퇴폐업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비스가 뛰어난 고급주점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섹스만 안 하지 룸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이루어지며 성매매를 알선하기도 하는데.

허울 좋은 포장이었고, 역겨운 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태주의 마음을 안정되게 했다. 태주는 때때로 생각했다. 자신은 옆에 앉아 술을 따라 주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준 것뿐이고 그건 바텐더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 거라고.

“별거 아니네.”

태주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매일 술을 마셔서 그런지 다크서클이 좀 내려온 것만 빼면 건강해 보였다.

그래. 나쁠 것이 없었다.

상황이 좆같이 되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살았고, 빨리 돈을 갚고 이곳을 나가면 그만이었다.

태주는 퉤, 하고 거품을 뱉었다. 가슴께가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것은 모른 척했다.

***

VVIP에 관한 소문은 계속 들려왔다. 어째서 전엔 듣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1주에 한 번, 2주에 한 번, 가끔은 두 달에 한 번씩. 불규칙적으로 찾아온다는 그 손님은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그 손님을 찬양하다시피 하는 말이 조금 거북해서 태주는 그가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조용히 있으면 손 안 대.”

그 사람은 그럼 조용히 있지 않아서 맞은 건가. 얼굴이 함몰된 남자를 떠올리는 태주를 두고 누군가 말했다.

“예전에 까칠한 게 컨셉인 애가 있었거든? 걔 5분 만에 실려 나왔다.”

태주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가 넌지시 물었다.

“근데 걔 위로금으로 얼마 받았게?”

“얼마요?”

“2천.”

치료비는 따로고. 그가 덧붙였다.

“솔직히 우리가 신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게 쪽에도 돈 좀 줬을 텐데. 확실히 돈이 많긴 한가 봐.”

“그러니까. 창놈 하나 때렸다고 누가 2천을 주냐.”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태주는 눈을 깜박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웃지 않았다.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존나 좋겠다.”

“야. 잘못 맞아서 고치지도 못하면 어떡해.”

“그럼 더 많이 주겠지.”

“그렇지? 얼마나 주려나. 1억은 줄까?”

“난 1억 받으면 이 일 당장 때려치울래.”

“새끼야, 1억이 뭐야. 2억은 받아야지.”

대화를 들으며 태주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씨발, 나 VVIP 방 호출.”

“나도 나도.”

“아, 존나 좋겠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요란스럽게 자리를 벗어났다.

자주 오지 않는다던 그 손님이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를 찾은 것이 몇몇 직원들에게는 설레는 일인 듯했다.

그 손님에게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직원들 중 매니저가 평소에 예뻐하는 직원 몇 명이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그중에 태주는 끼어 있지 않았다.

남자에게 받은 팁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최근 태주가 깨달은 바는 그런 류의 사람들과 얽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심부름센터의 사장 조덕현이나, 매화의 사장과 깡패들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태주는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고는 곧장 서빙을 하러 나갔다. 앉아 보라고 하면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술을 따라 주거나 뺨을 만지게끔 두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뺨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안주 없이 독한 술을 마셔 그런지 명치가 쓰렸지만 덤덤히 삼켜내고 웃는 표정이나마 억지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새벽 2시쯤이 되었다.

막 룸을 다녀와서 좀 쉬려는데 매니저가 손짓했다.

“농땡이 부리지 말고 새끼야. 바로 나갈 수 있게 여기 서 있으라고.”

“네.”

머리를 툭툭 치는 손길이 기분 나빴으나 좀 전에 마신 양주 몇 잔에 취기가 올라서 가만히 서 있었다. 곧이어 트레이가 태주의 손에 맡겨졌다.

“VVIP 룸.”

“네!”

방금까지 뚱하게 있던 태주가 싹싹하게 대답했다. 아차. 위험한 상황은 피하기로 했는데 술기운 탓인지 저도 몰랐던 본심이 나온 것 같다.

매니저의 황당하다는 시선을 뒤로하고 태주는 재빠르게 VVIP 룸으로 갔다.

거의 뛰듯이 그 앞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노크를 했다. 하나, 둘, 셋. 조금 바쁘게 숫자를 센 다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룸 안의 공기에는 미묘한 열기가 있었고, 담배 냄새가 짙게 났다. 불현듯 누가 또 맞았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어 태주는 눈을 굴렸다. 다행히 바닥에도 아무도 없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여자도 건강해 보였다.

사실 건강하다기에는 너무 힘이 없어 보였다. 꼭 섹스라도 한 모양새인데, 원래 룸에서 섹스는 금지되어 있었다. 매니저나 사장도 그 부분은 신경을 썼다. VVIP라 뭔가 좀 다른가….

왼쪽에 누운 여자의 치마가 배 위까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태주는 얼른 눈을 돌렸다. 그래도 직장 동룐데 저런 모습은 좀 그랬다.

그때 픽,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태주는 얼어붙어서 정면을 보았다.

그 손님이었다.

소파에 늘어지게 등을 기댄 사내가 반쯤 뜬 눈으로 태주를 보고 있었다. 그는 셔츠 단추 몇 개가 풀어 헤쳐진 것 빼고는 그런대로 단정한 모습이었다. 다시 봐도 거대한 몸집이 단정하다는 말과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테이블로 다가가며 태주는 쟁반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남자가 상석에 앉아 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놓고 가라고 대충 손을 젓는 손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남자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태주는 소파에 누워 있는 여자를 스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옆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 - 남자의 주먹은 닿지 않는 - 에 멈춰 서서 쟁반을 내려놓았다.

팔을 옆으로 쭉 뻗어 남자의 근처에 양주를 두는데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있는 까만 재떨이에 담배꽁초 몇 개가 대충 꽂혀 있는 게 보였다. 신경 써서 담배를 끄지 않은 듯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태주는 얼음통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테이블을 정돈했다. 간단한 그 행동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새 유리잔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테이블 밖으로 나왔을 때는 숨이 가빴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고 나서 팁이 생각났다.

흘긋 살핀 남자는 움직임이 없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팁을 줄 정신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까도 혼자 웃지 않았는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술병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아쉽지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불쑥, 낮은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잘한 것 같아?”

제법 다정한 말투였으나 태주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네?”

“잘한 것 같냐고.”

사내가 무심한 말을 툭 던졌다. 태주는 바보같이 눈을 깜박이다가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허공에서 손짓했다. 커다란 그 손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느른한 어투로 덧붙였다.

“잘했으면 상 받아야지.”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실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마른침을 삼킨 태주는 쟁반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멈춰선 태주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몇 살.”

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주는 말을 하려다가 움찔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있으면 손 안 대.’

돌연 그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말 못 해?”

그런 태주에게 남자가 무심히 물었다.

“예? 아뇨! 그…… 스물한 살이요.”

당황한 태주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러곤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남자는 하얀 이에 짓이겨지는 태주의 입술을 잠깐 쳐다보다가 지갑을 꺼내 수표를 건넸다. 전과 같은 다섯 장이었다.

감사합니다. 태주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돈을 받은 뒤 조심스럽게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 것 같았으나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문을 조심스럽게 닫으며 VVIP에 대한 태주의 마음가짐은 바뀌었다. 굳이 피하지는 말자, 로.

***

“어머, 완전 애기네.”

중년 여자가 태주의 뺨을 쓰다듬었다. 태주는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지?”

태주는 여기 와서 이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거의 하루에 세 번씩은 듣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자동으로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스물한 살이에요.”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제 나이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제 나이처럼 다른 것도 빨리 익숙해져야 할 텐데…….

“아아. 생각보다 어리진 않네.”

뺨을 쓰다듬던 여자의 손이 턱으로 살살 내려갔다.

…쉽지가 않았다.

긴팔이라 소름이 돋은 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태주는 앞에 놓인 맥주병을 들었다.

“한잔하세요, 누나.”

그래도 누나 소리는 이제 곧잘 나왔다.

술자리가 거의 끝날 때쯤 손님이 태주에게 2차 가지 않겠냐고 은근하게 물었다.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이상 나아가면 다신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자꾸 제동을 걸었다.

차라리 도망쳐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월급까지 더하면 벌써 반쯤은 돈을 만들어 냈으니까. 이번 달은 이대로만 해보고 그 후에 다시 신중히 행동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2차는 나가지 않더라도 룸에서 만큼은 적극적으로 팁을 끌어내 보아야 했다. 물고 빨고 그런 것쯤이 뭐 별거라고.

“…….”

태주는 오늘 받은 팁을 세어 보았다. 어떤 형들은 룸에서 받는 팁으로도 백 가까이 번다던데 태주는 아니었다.

대기실로 돌아가며 태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머리가 잡아 당겨졌다.

“아!”

“야, 이 새끼야.”

또 매니저였다.

“이거 놓고 말해요.”

태주가 그의 손을 밀어냈으나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마른 체구와 달리 아귀힘이 좋은 것 같았다.

“너 2차 왜 안 나가. 못 배워 먹은 게 몸이라도 팔아야지, 어디서 비싸게 굴어.”

“2차 나가는 거 의무 아니잖아요, 씨발.”

“뭐? 씨발?”

머리채를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통증에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싶었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그딴 식으로 해서 빚 갚을 수 있나 봐라. 그놈들한테 처맞고 오면 멍 빠질 때까지 출근 못 하게 할 거고, 월급도 없어 새끼야.”

“다 갚을 수 있거든요?”

태주가 수그리지 않고 대들자 매니저가 코웃음을 쳤다. 그가 태주의 머리를 밀며 손을 거칠게 빼냈다. 뽑힌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태주는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붙잡고 그것을 빤히 노려보았다. 씩씩거리며 어디 두고 보라고 오기를 불태웠다.

내일부터는 진짜 적극적으로 팁을 끌어모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몸 좀 만지게 해 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었다. 뺨이나 허벅지나 엉덩이나. 다 똑같은 살덩이 아닌가. 지금 이 마음으론 손님과 키스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

다음 날.

“태주야….”

저녁 가까운 시간쯤 눈을 뜬 경준은 태주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가장 늦게 욕실로 들어가서 한참 나오지 않더니.

“바리깡은 정리해서 형 서랍에 넣어놨어요.”

태주가 태연히 말하며 휑한 목뒤를 벅벅 긁었다. 경준은 멍하게 있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머리를 조금, 정리한다더니….”

“네. 정리했어요.”

길이가 1cm는 될까. 잔디 같은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는 태주를 보며 경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태주는 오늘 새벽 경준의 바리깡을 빌려 머리를 짧게 밀었다. 처음 해보는 것치고는 고르게 잘 민 것 같아서 좀 뿌듯했다.

사실 자기 전엔 아주 조금 후회했는데 오늘은 생각이 바뀌었다. 샤워를 하는 데도 시간이 절약되고, 드라이도 안 해도 되고, 계속 보다 보니 자신과 꽤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인상이 좀 세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형. 나 좀 세 보여요?”

“…어.”

경준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또 머리 잡아 봐라, 씨발 새끼.”

태주가 매니저의 얼굴을 떠올리며 킬킬거렸다. 경준은 그런 태주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왜요, 형? 아. 저 다 씻었어요. 씻으세요.”

“…그래.”

애는 착하니까. 됐다.

태주는 경준의 표정이 애매해서 이상한가,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거울을 보았다. 경준의 반응이 아주 젠틀한 것이었음은 출근을 하고 나서 알았다.

보는 사람마다 태주의 머리에 경악했다. 어떤 사람은 미쳤냐고 진지하게 물어서 조금 멋쩍어졌다.

머리 민 게 뭐 대수라고. 태주는 입을 비쭉 내밀고는 주방에서 저녁을 받아먹었다. 매니저는 오픈 준비로 바쁜지 아직 태주를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반응이 이 정도면, 생각보다 지랄할지도 모르겠는데. 태주는 후루룩 국을 마시며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고슴도치 같아서 자꾸 손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태주를 본 매니저는 눈을 까뒤집고 지랄을 했다. 뒤통수도 몇 대 때렸는데 태주가 뻔뻔하게 나오니 할 말이 없는지 씩씩대다가 홀로 나갔다.

니 손해지 내 손해냐. 라는 말을 남기고.

“…내 손핸가?”

태주가 멍하게 눈을 끔벅였다.

태주는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빤히 보았다. 중학교 때도 안 해본 까까머리를 한 제 모습을 보며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상환일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 보고, 오늘은 얼마나 팁을 받아야 할지도 계산해 봤다.

그런 뒤에는 할 수 있다, 다짐하듯 고개를 주억이고 바깥으로 나갔다. 무의식중에 손을 털었으나 물기는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물기가 전부 말랐기 때문이었다.

“정태주. VVIP 룸 들어가.”

태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VVIP. 그 남자가 또 이곳을 방문했다. 태주는 어지간히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혀를 찼으며 동시에 내심 기대를 했다. 조금 더 싹싹하게 굴면 팁을 더 많이 줄지도 몰랐다.

“안 가냐.”

매니저가 때릴 듯이 손을 올렸다. 씨발 새끼가 머리 꼬라지 봐라. 뒤이어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매니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다른 직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은 남자애들로 서빙 넣어 달라셔.”

“…예.”

태주는 잠깐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술과 안주가 놓인 트레이를 미는 다른 형들을 뒤따랐다.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야. VVIP 남자랑도 잔다는 말 진짜냐?”

“아닐걸. 예전에 그 형은 그냥 처맞았던 거 아냐?”

“아니. 존나 바지가 피로 흠뻑 젖었었다던데. 억지로 후장 뚫은 거지.”

“그때 있지도 않았던 새끼가 아는 척은. 너 혹시 준비하고 왔냐? 이 게이 새끼 이거….”

앞서가던 형들이 하는 대화에 태주는 점점 사색이 되었다.

“원래 룸에서 섹스하면 안 되잖아요.”

“어? 아, 안 되지. 근데 저 손님은 돼.”

“왜…….”

반문하면서도 전에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소파에 널브러진 여자와 묘한 열기.

“몰라. 깡팬데 돈이 존나 많아. 저 방도 그 손님만 쓰잖아.”

여기 실제 주인이라는 얘기도 있고. 경준이 목소리를 낮춰 덧붙여 말했다. 태주는 미간을 찡그렸다.

“매니저도 사장도 저 손님은 제지 안 해.”

“누구 하나 죽어도 그냥 묻을걸.”

“그러니까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태주야.”

경준이 진지하게 충고했다. 태주는 멍하게 있다가 되물었다.

“안 하면요? 때려요?”

사람 얼굴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걸 보고서도, 소문 몇 개를 듣고서도 태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직원이 맞는 걸 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가 제게 까다롭게 굴지 않아서인지는 몰랐다.

경준은 흘깃 태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 그 소리에 태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와 섹스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 며칠 슬슬 했던 결심은 여자와 룸에서 스킨십 정도는 견뎌 보자, 였지 섹스는 생각한 적 없었고 더군다나 남자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여자와 2차를 뛰면 좋은 점에 대해서는 장점 여러 개를 찾아놓긴 했었다. 섹스도 할 수 있고, 운 좋으면 예쁜 누나랑 할 수도 있으며, 돈도 벌 수 있고…….

그런데 남자와 하는 섹스는 그 장점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테이블 세팅하겠습니다.”

먼저 들어간 직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룸에는 VVIP 혼자였는데, 몇 층짜리 이동식 트레이에는 술과 음식이 가득했다. 누가 또 오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멍하게 서 있던 태주를 경준이 팔꿈치로 툭 쳤다.

본래 직원들의 일은 서빙이다. 태주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세팅을 도왔다.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소음만 공간을 채우던 때였다. 낮은 목소리가 불청객처럼 끼어들었다.

“쟤는 머리가 왜 저 모양이야.”

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으나 태주는 고개를 들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머리를 짧게 쳐내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시렸다.

“구멍 파는 애가.”

“아닌데요.”

태주는 저도 모르게 불쑥 고개를 들고 남자를 보았다. 말투도 매니저에게 그러는 것처럼 불퉁하게 나왔다. 옆에서 형들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진 다음에야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시선을 내리까는데, 아래쪽에 흉터가 있는 입술 틈으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그냥…… 서빙하고요, 이것저것….”

태주가 말을 얼버무렸다. 남자의 두툼한 팔뚝과 거대한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씨발, 내가 왜 그랬지. 말버릇 좀 고쳐야 하는데.

“머리가 왜 그 모양이냐고.”

그때 남자가 서늘하게 말했다.

태주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에 제대로 대답 안 하면 정말 좆 되는 거였다. 그래서 말을 고를 틈도 없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머리채 쥐는 게 좆같아서 빡빡 밀었어요.”

후다닥 튀어나온 날것의 말에 남자의 눈썹이 들썩였다. 남자는 동그란 뒤통수와 훤히 드러난 하얀 목덜미를 빤히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골 때리네.”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주를 보며 그가 슬쩍 웃었다.

“다 나가.”

“예.”

형들을 따라 태주도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남자가 태주의 명찰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태주는 남고.”

태주는 얼어붙었다. 왜 자신만 남으라는 거지. 긴장한 얼굴로 형들을 돌아본 태주는 경준과 눈이 딱 마주쳤다. 경준이 눈빛으로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으나 알아듣기는 불가능했다.

문이 굳게 닫히고, 태주는 무거운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 놀랐다. 남자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탓이다.

“구멍을 안 판다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안 파는 걸 팔라고 할 수도 없고.”

“…….”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좆같은 말을 들었으나 화가 나지도 않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전부였다. 남자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깔아뭉갤 것 같았고, 자신은 그런 남자에게 힘 한번 못 쓰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았다.

동물적인 감각이든 이성적인 판단이든, 태주는 남자가 원한다면 자신쯤이야 쉽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낮은 음성이 말을 끝맺었다.

“술이나 따라야지. 안 그래?”

태주는 눈을 깜박이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심한 태주가 얼른 남자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그게 눈에 훤히 보여 남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태주가 남자의 술잔에 얼음을 채우고 적당히 술을 따랐다. 말없이 잔을 받은 남자는 몇 모금을 마시고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태주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으나 남자는 그걸 무시하고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남자가 담배를 물고 깊이 들이마시자 단단해 보이는 뺨이 움푹 패었다. 그는 연기를 내뱉으며 무심히 물었다.

“누가 머리채를 쥐는데.”

“매니저요.”

남자는 물어놓고 태주의 대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나서야 태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태주가 어색하게 눈을 맞추자 남자가 묘한 눈빛을 했다.

“좆도 안 빨고?”

여상한 물음에 태주는 잠깐 멍해져 있다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가 혀를 찼다.

“고갯짓하면 안 되지.”

아이에게 가르쳐 주듯 하는 말투인데도 한기가 들었다. 태주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죄송합니다.”

그때 굳은살이 박인 손끝이 시야로 불쑥 들어왔다.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예상한 고통은 없이 미세한 가려움만이 느껴졌다. 목덜미 부근이었다. 눈을 뜨자 투박한 손이 제 귀 옆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멀어졌다. 태주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남자는 태주의 짧은 머리카락을 건드린 손으로 잔을 비워냈고, 태주는 곧바로 남자의 잔을 다시 채웠다.

짤막한 시선을 던진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태주는 이번엔 늦지 않게 라이터를 꺼냈다. 어쩌면 태주가 빨랐던 것이 아니라 남자가 태주를 기다린 걸지도 몰랐다.

남자를 향해 살짝 상체를 기울인 태주가 한 손을 둥글게 모아 불을 가렸다. 기름이 다 닳았는지 불이 쉽게 올라오지 않아 칙, 칙, 하는 소리가 두 번쯤 났다. 조마조마하게 라이터를 응시하는 태주의 속눈썹이 아래로 길게 내리깔렸다.

불이 붙기까지는 짧은 순간이었으나 어두운 눈빛은 긴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와 흰 뺨, 단정한 턱선과 이어진 귓불 등을 차례로 훑었다.

담배에 불이 붙고, 정태주가 스르르 멀어졌다. 술과 담배, 향수 냄새에 뒤섞인 체향이 남자의 코 아래를 스쳤다.

남자는 담배 한 모금을 깊이 삼켰다가 내뱉고, 간간이 술을 들이켰다.

태주는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숨을 쉬는 것도, 침을 삼키는 것도 평소처럼 되지 않았다. 술잔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남자는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고, 덕분에 태주는 남자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솟은 콧대며 짙은 눈썹, 쌍꺼풀이 없는 눈, 단단한 뺨, 턱선. 남자가 잘생겼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의 위협적인 분위기는 많은 것을 가리는 듯했다.

굵직한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가 필터 끝까지 닳았다. 직감처럼 태주는 흘긋 보는 시선마저 거뒀고, 남자는 재떨이에 꽁초를 꽂으며 침묵을 깼다.

“구멍 팔게 되면 얘기해.”

“네.”

씨발, 하고 생각했으나 태주는 얌전히 대답했다. 고개를 숙인 채라 태주의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셔츠 깃과 목덜미가 맞닿은 부분에 잠깐 시선을 주던 남자가 지갑을 열었다. 그는 수표 한 장을 꺼내어 테이블에 성의 없이 내려놓았다.

태주의 바로 앞에 내려놓은 게 아니라서 태주는 수표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0이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눈을 크게 뜬 태주의 귀로 낮은 음성이 파고들었다.

“적어?”

“힉, 아뇨!”

태주는 괴상한 소리를 내고는 수표를 손에 들었다. 차마 삼켜내지 못한 의문이 불쑥 튀어 나갔다.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주면 받아야지 쓸데없는 걸 물어.”

싸늘하지만은 않은 말투였으나 태주는 지레 겁먹고 큰 목소리를 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응. 남자가 목을 울리며 대답했다.

달칵.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서서 태주는 제 손을 멍하게 보다가 주섬주섬 수표를 펼쳐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백만 원 권이었다.

룸에 있었던 시간은 30분 남짓. 태주가 한 일이라고는 묻는 말에 대답한 것과 담뱃불을 붙인 것, 술을 따라 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100만 원을 팁으로 받았다.

태주는 누가 볼세라 돈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그러고 나서 걷는 걸음은 묵직하고 든든했다.

주머니 속의 수표 한 장.

그게 덫이었다는 것은 한참이 지난 뒤에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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