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1)

02

황제가 뿌듯이 웃으며 태후에게 말을 건넸다.

“태자 부부 내외가 퍽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나-”

“엊그제 태자가 발현열을 앓았다는군요, 어마마마.”

“어이구, 어이구!”

태후는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넘어갈 듯 기꺼워하며 웃었다.

거하게 밤을 지새운 다음 날 제현과 연우는 어색하게 문안 인사를 올리러 태후전으로 향하였다. 제현은 이전과 달리 매우 천천히 걸음을 옮기었고, 연우는 궁에 큰 돌멩이는 없나 살피듯이 바닥만 보고 걸었다. 한데 황실 어르신들은 그런 둘의 분위기고 자시고 간에 보자마자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첩이 궁녀 몇을 보내었는데, 아이들이 얼굴이 발개져 돌아왔답니다.”

“드디어 우리 강아지들이!”

“…….”

“아, 제발 그만들 하십시오! 어찌 이리 창피를 주신단 말입니까?!”

“아주 좋아 죽는구나. 입꼬리나 내리고서 말을 하거라.”

제 아비의 면박에도 제현은 꿋꿋이 연우의 편을 들어주었다.

“자꾸 이리 창피를 주시면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오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하, 어찌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저는, 그런 게 아니고…….”

“제 부인 말이라면 꼼짝도 못 하는 놈이…….”

황제는 기가 막히단 듯이 제현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하나 제현은 연우가 제게 실망하였을까가 걱정이 되어 염치 불고하고 해명을 하였다.

“부인이 부끄러워할까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

“매일 문안을 드리러 오는 것을 아, 아시지 않습니까, 부인.”

“…알겠으니 이 손 놓으셔요, 저하.”

창피는 네가 나한테 하는 이런 행동이 창피다….

연우는 속으로 읊조리며 태자의 손을 한 번 꾹 쥐었다 놓아주었다. 태자는 그제야 밝게 웃으며 이제 가 보겠다 말하였다. 태후는 손주 내외가 그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황제와 황후는 다 들리게끔 속살거렸다.

“제 아내라면 좋아 죽는 것이 꼭 나와 같구려.”

“누가 황상의 씨 아니랄까 봐, 정말…….”

“허헛, 부끄럽소만!”

“부끄러운 줄 아시면 조용히 하세요, 황상.”

연우는 얼굴이 달아올라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태후전을 빠져나왔다. 제현은 열없이 뒷목만 만지작거리는 제 부인에게 다가가 헤벌쭉 웃으며 말하였다.

“자시고 싶은 것 없으십니까, 부인? 제가 침방나인에게 다과를 가지고 오라 할까요?”

“아닙니다, 아침을 방금 먹었는걸요.”

“그러면 밤에 술상을 차리라 이를까요? 오늘은 날도 좋으니 부인과 같이 달이나 보고, 또…….”

“또?”

제현은 저를 살짝 올려다보며 무엇을 하고 싶으냐 눈으로 묻는 연우에게 부끄러워하며 귀를 빌려 달라 청하였다.

“아, 안고서 풍류를 즐기면 좋지 않습니까.”

풍류를 즐기는 것이면 즐기는 것이지 안고 즐기는 것은 또 뭐람. 연우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답을 기다리는 태자에게 가벼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제야 제현은 꽃이 피듯 웃으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궁인들이 저를 보고 팔불출이라 수군거리는 것은 들리지도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합방을 한 뒤 태자는 눈에 띄게 제 아내와 같이 있기를 원하였다. 말을 더듬는 것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고, 대신에 어떻게든 태자비를 매만지려 애를 썼다. 슬그머니 허리께로 다가오는 손이나, 입술만 쳐다보는 진한 시선이 연우의 눈에는 영락없는 똥강아지여서 문제였지만.

연우는 태자의 절륜함에 감탄하긴 하였으나 밤이 아닐 때는 여전히 어린 태가 난다 생각하였다. 신장과 덩치는 훤칠하고 두툼하였으나 제 앞에서는 낑낑거리며 저를 봐 달라 애를 쓰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단 것을 찾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였고.

“헤어지기 싫습니다, 부인….”

“이따 볼 것인데 어찌 떼를 쓰셔요.”

“아아, 그래도…!”

“…이리 오세요, 저하.”

태은궁까지 연우를 데려다주고서도 입술을 삐죽이며 나가지 않는 제현의 목을 끌어온 연우가 몇 번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닿아 올 때마다 눈을 질끈 감던 제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제하기 힘들어 차라리 얼굴을 가리었다. 연우는 그런 태자가 그저 귀여웠다.

“밤에는 못되게 구시면서.”

“아이, 제가 언제 못되게, 응? 안 그러지 않았습니까, 부인….”

“소첩을 못살게 구셨으면서.”

“아, 아닌데…. 부인도 좋아하셨는데, 분명…….”

“부끄러운 소릴 하시고….”

입을 막아야 그런 말을 안 할 거냐 물으며 연우가 태자의 입술로 가까이 갔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남겨 놓고 본 태자는 아무리 보아도 잘난 곳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우는 그제야 조금 쑥스러워 고개를 숙였다. 하나 태자는 바보가 아니었다.

“약 올리기만 하시고 도, 도망가면 안 되지 않습니까. 바로 앞까지 오셔 놓고는.”

맞닿는 입술에 태자비도, 태자도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가벼이 닿기만 해도 좋은 입술이 이제는 오물거리며 서로 감쌀 줄도 알고, 혀도 상대에게 갈 줄을 아니 등골이 쭈뼛 설 정도로 몸과 마음이 동하였다.

태자는 태자비의 신장에 맞추어 허리를 조금 숙여 깊숙이 입을 맞추었다. 연우 또한 기꺼이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서 장단을 맞춰 주었다. 쯥- 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혀를 문대고 비비던 둘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입술을 맞대고 혀를 얽었다.

“음, 그만, 저하….”

“히, 힘드셨습니까, 부인?”

“그런 것은 아니오나, 아직 날이 밝으니….”

“그… 그렇지요! 하면 밤에, 응, 밤에.”

“예, 소첩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천천히 오셔요.”

“금방 올 것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올 것인데요.”

보고 싶어서 어떻게 참으라고! 태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제 부인을 꾹 끌어안았다. 이전에는 맡아지지 않던 향이 지금은 저를 어디도 갈 수 없게 꽉 붙잡았다. 발현열이 났을 때처럼 극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미미하게나마 연우에게서 향이 느껴졌다.

제현은 연우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서 연신 킁킁거리다가 아무렴 어떠냐고, 연우는 저밖에 모른다 하였다고 곱씹으며 웃었다. 월앙인의 향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도 느껴진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양인으로 발현한 이와 월앙인의 각인이 이루어지면 여타 사람들에게는 월앙인의 향이 느껴지지 않아야 했다. 하나 간혹 월앙인 중에서도 그 기운이 강한 이는 각인을 하였음에도 타인에게까지 향을 뻗치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향이 강한 월앙인일수록 사내여도 회임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간지럽습니다, 아하하!”

“이제 부인 앞에서 조금은… 남편다운 남편이 되겠습니다.”

이제 매일 서로의 향을 맡을 수 있으니 좋군요.

불행이라 하여야 할지, 다행이라 하여야 할지 모르겠으나 제현은 연우의 향을 맡으며 퍽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

태영국의 사내들이 발현열을 앓고 양인으로 발돋움하듯이, 은월국의 백성들 역시 그 징조라 할 만한 것들을 차차 보이다 월앙인이 되곤 하였다. 연우의 경우에는 왕실에서는 백 년 만에 태어난 남자 월앙인이었다. 대개 월앙인은 선택받은 자라 일컬어져 왔기에 신탁을 전하기도 하고, 마을의 여신처럼 받들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하나 사내가 월앙인인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부인!”

“태자 저하를 뵈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저하, 어찌 뛰어오십니까.”

“보고 싶어, 부인이 빨리 보고 싶어 그랬습니다.”

좋게 말해 태영국의 황후였고, 속뜻은 더 이상 은월국의 왕자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미하게 향이 날 때부터 연우는 황궁에서 떠날 준비를 하였다. 향이 짙어질수록 고와지는 얼굴선에 연우는 좌절하였다. 활을 잡는 것도, 기마도 좋아하였으나 이제 쉬이 할 수 없겠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몸이란 대개 그런 것을 못 하니. 여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나 사내들에게는 영 와닿지 않는 일이었다. 연우도 마찬가지였다.

월앙인으로의 발현 중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희락기였다. 태자가 겪었던 발현열과 비슷하였으나 그보다 자극에 훨씬 약해지고, 회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연우는 첫 희락기를 제 궁에서 맞았다.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였고, 꼬박 사흘을 앓았다.

“내일은 저와 꽃놀이를 가시지요, 부인.”

“예, 저하. 정원으로 가시는 거지요?”

“부인께서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시면 저는 거기로 갈 것입니다!”

태영국으로 가겠습니다. 연우가 첫 희락기를 겪고 한 말에 왕비와 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형들은 가기 싫으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하였으나 연우는 왕실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연우가 처음으로 분칠을 하고 떠나던 날 그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음 깊이 그의 행복을 바랐으나, 더 이상 볼 수 없을 그가 벌써 그리워서.

사실 첫날밤 합궁에 느지막이 술 한잔 걸치고서 나타난 태자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다정한 구석은 눈곱만치도 없구나. 하기야, 같은 사내를 안으려니 오죽 답답하고 구역질이 날꼬. 연우는 애써 자위하며 그저 훗날 좋은 황후의 역할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부인, 여, 기…… 여기에 앉으십시오.”

“…저하 무릎에 말입니까?”

태자의 첫인상은 날카롭고, 패기가 넘치나 풋내 나는 소년에 그쳤다. 연우는 은애하는 감정은 아니더라도 그와 좋은 친우이며 동반자로 살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었는데.

“궁인들이 있는데 어찌….”

“다들 물러가거라. 태자비가 불편하다 하지 않느냐?”

“예, 태자 저하.”

“아니, 저하, 그런 말이 아니오라…!”

“이제 됐지요? 이리 오십시오, 부인.”

제 팔을 살살 끌어 허벅다리에 앉히고는 더 이상 뭘 어찌할 줄 모르고 가만히 얼굴만 보고 있는 태자에 연우의 얼굴도 붉어졌다. 첫날밤에는 정말이지 태자와 이리 가깝고 돈독한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연우는 제가 사내를 평생 마음에 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그게 태자는 아니리라 생각하였고.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만큼 연우에게는 태자가 어려웠다. 저보다 어리긴 하나 황위에 오를 양인의 기운은 압도적이었으니. 썩 다정치도 않았던 합궁을 하고서 사내는 사내구나, 느꼈을 뿐이고 그 후로는…….

“여인네의 손처럼 곱지가 않지요?”

“마디마디가 다, 다 어여쁩니다. 매일 만지고 물고 싶을 정도로…….”

누가 보아도 조심스레 제게 다가오는 태자에 놀랐다. 저도 퍽 다정하게 군다 생각하였으나 태자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태자는 감히 제 부인에게 거칠게 굴 생각도 못 하였다. 정해진 합궁일에 꼬박꼬박 찾아와 하는 것이라곤 몰래 얼굴을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며 가랑이를 가리는 것이 다였다. 연우는 불뚝 선 것을 애써 숨기는 태자를 볼 때마다 가슴팍을 괜히 꾹 눌러야 했다. 좋아하지 않기로 하였는데 어찌 마음이 이럴까. 태자는 나 같은 사내보다야 아리따운 여인네들이 잘 어울리는 호걸인데.

“…보고 싶었습니다, 저하.”

“저, 제가 더 보고 싶었습니다, 부인.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하나 발현열이 나는데도 저를 안았다가 떨어뜨려 놓기만 반복하는 태자를 보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환락과도 같은 황홀한 밤을 보내면서 연우는 아침이 오면 그가 사라질까 걱정하였다. 월앙인이 되고서 제게 행복은 먼 단어였기에.

“어찌 이리…… 좋을까요, 부인…….”

“…….”

“내내 그대와 이리 안고만… 있고 싶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사람입니까…….”

발치에 떨어진 행복에 연우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황위에 올라 자애로운 성군이 되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라는 마냥, 그가 저를 멀리할 줄 알았는데. 솔직하게 제가 좋다 고백해 오는 태자에게 저 또한 좋다고 말은 하였으나 그게 온전히 전달될까 두려웠다. 은애하는 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가서 이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밤이 길지 않습니까, 저하…….”

“그렇지요, 부인.”

“……가지 마소서, 저하. 소첩 곁에 있어 주셔요.”

오늘은 마음에도 없이 툴툴거리지 말아야지. 연우는 다짐을 한 대로 찬찬히 말하였다. 다행히 제 뜻이 온전히 그에게 간 모양이었다.

“당연하지요. 부인을 지킬 사람은 저뿐이지 않습니까!”

“저하를 소첩이 지킨다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고. 내가 품에 내도록 그대를 안고 나쁘고 무서운 것에게서 지켜줄 것입니다. 다시 그런 말을 하시면… 호, 혼내줄 것입니다…!”

같이 있자는 말에 그저 좋아 헤벌쭉 웃던 제현은 그를 지킨다는 제 말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볼을 살짝 꼬집고 달아나기 바빴다. 귀여워라. 연우는 저를 꼬집은 손가락을 입에 넣고 쪽쪽 빨며 말하였다. 볼은 벌써 발긋하게 달아올라 곧 있을 성애를 기대함을 내비쳤다.

“어서 혼내주셔요, 응? 소첩이 잘못하였어요…….”

“엇, 어, 그, 정말….”

“응?”

“혼내줄… 것이니, 각오하십시오, 부인.”

힘을 잃고 가만히 입 안에 담겨 있던 손가락이 불시에 혀와 점막을 꾹 눌러옴에 연우가 파르르 떨며 태자의 품에 안기었다. 마냥 싫기만 했던 희락기도 이제는 괜찮았다. 제가 사랑하는 정인이 곁에 있어 줄 터이니.

***

격렬해지는 허릿짓에 연우의 교성이 높아졌다. 길게 뻗어지는 다리를 서둘러 안고서 태자는 열심히 허리를 놀렸다. 몸을 섞은 지 어느 정도가 되다 보니 태자도, 태자비도 이제는 슬슬 서로의 몸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해서 둘은 거의 매일 밤 합방을 하는 중이었다.

“거기, 응, 저하아-!”

“허억… 윽, 크흐-!!”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태자비의 안에 양물을 쿡 박아 넣은 태자가 씨근덕대며 몸을 떨었다. 아래에 깔린 이는 발개진 몸을 하고서 입술을 갈구하였다. 제현은 합궁을 할 때면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태자비가 좋았다. 언제는 안 좋았냐마는. 하여튼 제현은 성숙한 태자비가 제게 매달리며 울 때마다 그를 어떻게 더 괴롭게 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매번 고생이었다.

안을 흥건히 적신 후에야 크기를 줄이는 물건에 연우가 밭은 숨을 내쉬었다. 잠시간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태자가 저를 달랑 안아 드는 게 느껴졌다. 느른하게 눈을 뜨니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이는 태자에 연우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언제나 귀염을 떠시지요, 응?”

“귀여워해 주세요, 부인….”

“아이구, 귀여운 우리 저하-.”

“부끄럽습니다…….”

“하면 그만할까요?”

“아, 아닙니다! 그런 말은 안 하였는데…!”

연우는 활짝 웃으며 태자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축축이 젖은 가슴팍에 입을 맞추며 기대자 토정 후에 늘어져 있던 태자의 양물이 다시금 뻣뻣하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하나 연우는 태자를 쉬이 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하, 어찌 또 아래를 세우고 그러십니까.”

“부인이 이리 안아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하기야. 밤은 여전히 길지요.”

“무, 물론이지요, 부인!!”

제현은 밤은 길다 말하며 유두를 쓱 문지르고 가는 태자비에 퍼르르 떨며 그의 목덜미를 살짝 물고서 다시 눕히려 하였다. 하나 태자비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것이 아닌가. 제현은 버쩍 서서 꺼덕이는 물건을 쥐고서 태자비의 허벅지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이것 좀 넣게 해 달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도 태자비는 고개를 젓기만 하였다.

연우도 딴딴하게 찌르기 좋게끔 발기한 것을 어서 품고 싶었으나 베갯머리송사를 펼칠 예정이었기에 조금 뜸을 들였다.

“닷새 뒤에 사냥을 나가신다면서요, 저하?”

“그럴 리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어찌 소첩을 속상하게 만드십니까……?”

“아, 부, 부인, 그것이…!”

연우는 아예 태자의 팔을 퍽 소리 나게 밀어내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들은 게 있는데 잘도 거짓을 말한다 이거지? 아닌 게 아니라 연우는 검술을 가르치는 스승에게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사냥에 대해 들은 터였다.

처음 사냥에 대한 소식을 접한 연우는 마냥 기쁘기만 하였다. 은월국에서 연우는 명궁으로 소문이 자자하여 자리에 가만 앉아 있기보다도 산으로 들로 마구 나다니기 바쁜 이였다. ‘사냥에 내가 빠질 수 없지!’ 의기양양하게 제 실력을 뽐낼 생각을 하던 연우는 한데 어째서 태자가 제게 말을 하지 않았나 궁금해졌다.

그러자 태자에게 듣지 못했다는 연우의 말에 스승은 이리 말하였다.

‘마마께서 간다고 하실 것이 빤하니 저하께서는 말을 아끼신 게 아니겠습니까. 다칠까 저어되니.’

당시에는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였으나 곱씹어 볼수록 속이 뒤집혔다. 제가 말을 타고 활 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 나만 빼고 다른 무과 생도들과 사냥을 나간다고?

해서 연우는 부러 삐진 체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사냥에 나가고 싶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애가 타는 것은 태자였다. 연우가 끝까지 모르게 할 작정으로 소수 정예에게만 사냥 나갈 날을 알려주었는데 그게 모두 수포가 되었으니.

“부인, 제가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예? 제가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부인의 안위만, 오로지 그것만 걱정하여 그런 것이었는데…….”

“……소첩은 약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하께서 할 수 있는 것은 소첩도… 할 수 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도 알고 있으나 소첩은 속이 상합니다…….”

“부인…….”

그대의 부인이라 아껴지기만 하는 것은 싫은데.

연우는 태자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차근히 늘어놓았다.

“저하께서 소첩을 아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이리 감싸고도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소첩은 저하의 곁에 당당히 서고 싶은 것이지…….”

“…….”

“천치처럼 궁 안에만 있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천치…! 천치라니요, 부인!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황궁 사내들이 소첩을 우습게 보는 것을 모르신다 말씀하실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월앙인이라 무시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사냥에 나갈 생각을 꺾지 않을 것이어요.

태자비의 말에 제현이 울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그를 품에 당겨 안았다. 알고 있었다. 모두 알고 있었으나 평생 태자비는 모르게 할 작정이었다. 황위를 물려받으면 그를 부정한 치들을 모두 처형대에 올려 죄를 묻고, 그에게는 아름답고 좋은 것들만 보이고 싶었다.

“나는…….”

“저하의 마음도 모두 압니다. 저하께서는 착한 신랑이지 않습니까.”

“부인을, 너무도 은애… 하여…….”

“……소첩도 저하를 은애합니다. 하니 사냥에 나가는 것을 허해주셔요.”

저하께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그런 것이니. 그리 말하고선 생긋 웃어 보이는 태자비에 제현도 어렴풋하게나마 미소 띤 얼굴을 하였다.

“하면 이제 하던 것을 마저 해야지요?”

“무엇을…… 헉…!”

“하아…… 은애한다, 하셨지요 저하…?”

“네, 네, 부인……!”

제 것을 쥐고서 그대로 앉으며 삽입한 태자비를 멍하니 보던 제현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잘생긴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지는 것에 연우는 아래로 애액을 쏟아내며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였다. 제현은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작게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태자비의 허리만 말없이 쓸어내렸다.

“안이 간질거리는데…… 저하께서, 풀어, 흣! 풀어주셔요…….”

“윽, 부인……!”

“아흣! 가, 갑자기 그러시면… 아으응-!”

다리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하는 말에 제현은 더 참지 못하고 추삽질을 시작하였다. 꽉 조였다가 입을 맞추면 슬슬 풀어지는 아래에 태자는 솔직히 말하였다.

“부인은 비문도 이리 귀여우십니다.”

“아아, 그런, 응!”

“아래에 잔뜩, 잔뜩 먹여줄 터이니 다리를 조금만 더, 으윽…… 더 벌려.”

“아흑, 조, 좋아, 아앗……!”

눈도 뜨지 못한 채 교성만 내지르는 태자비에, 제현이 질 나쁜 웃음을 흘리며 볼기짝을 손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였다. 제현이 시정잡배나 할 법한 말도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하게 되어 둘의 색사는 점차 농밀해지는 중이었다. 연우는 맨정신에는 인상을 찌푸릴 말을 들었지만 태자의 것이 제 밑을 찍어 올리는 것에 파들파들 떨며 기꺼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더, 흐읏! 저하, 우윽, 더 먹여주셔요, 아앗!!”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진짜 밤이 새도록 할 것입니다, 후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벽에 쏘아지는 태자의 씨물에 연우가 먼저 태자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연우는 입을 맞추며 오물쪼물 그의 양물에 아래를 맞췄다. 제현은 구태여 의식하지 않고도 충분히 저를 유혹하는 태자비의 행동에 다시금 허릿짓을 하였다. 귀여운 나의 부인. 소곤거리자 귓가로 촉, 소리가 나게 입술을 내리는 이는 몇 번을 보아도 애틋하였다.

쿵, 제 위에서 박을 타던 이를 한 번 푹 찍어 올리자 안고 있던 허리가 살짝 굳은 게 느껴져 조금 더 다정히 입을 맞추었다. 지금 당장 끝내고 싶지 않았다. 태자비의 말대로 밤은 아직도 남아 있으니.

***

사냥을 앞두고 제현과 연우는 침방나인 몇을 불러 머리에 두를 띠와 사냥복을 맞추었다. 연우는 그냥 있는 걸 입으면 되지 않느냐 말했으나 제현이 그럴 수 없다며, 친한 무과 생도들에게 부부가 합을 맞춰 입은 걸 보여주기로 했다며 뻗대는 바람에 이번 한 번만 연우가 져주기로 하였다.

“마마, 팔을 들어 보셔요.”

“응, 이리하면 되겠느냐?”

“예, 예에…….”

“갑자기 불러 일을 시켜 미안하구나.”

“아니어요, 마마…!”

“너.”

“예?!”

“태자비에게 불손한 마음을 품지 말거라.”

하나 제현은 급히 후회하였다. 다정한 태자비가 치수를 재는 침방나인들에게마저 사근사근 대하니 어린 궁녀들이 금세 얼굴을 붉히며 눈도 못 마주치는 것에 영 배알이 뒤틀린 것이었다. 제 부인에게야 그저 ‘어이구, 우리 부인님!’ 하였으나 사실 제현은 클 때부터 싹수가 노란 황자로 이름을 날렸다. 태자비에게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는 두고 보기 힘들었다.

한편 연우는 삽시간에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태자에 놀라 고개를 휙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린 궁녀를 보는 눈이 너무도 냉랭하여 아이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우는 아이의 머리를 작게 토닥이며 괜찮다 말하고선 딱딱히 굳은 표정의 태자에게로 갔다. 몇 마디 어쭙잖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낫겠지? 연우는 그리 생각하며 태자를 품에 안고서 등을 토닥였다. 태자의 덩치가 커 다 안기가 좀 버거웠으나 안아주니 대번에 기대 오기에 팔을 풀 수 없었다.

“……실망, 하셨지요…….”

“아닙니다. 소첩이 실망할 이유가 없지요.”

“투기가 이는 것을… 어찌 참아야 할까요, 부인?”

“투기? 아이에게 투기심이 생기셨습니까?”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연우는 자꾸만 제 어깨에 얼굴을 숨기는 태자를 피하며 굳이 눈을 마주했다. 볼과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게 영 귀여웠다. 연우는 환히 웃으며 태자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잔뜩 해주었다.

“귀여워라…. 소첩은 저하가 이리 좋아해 주시니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부인을 안 좋아하는 이가 이 황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모두 부인을 보면 안색이 금세 밝아집니다.”

“소첩은 저하만 있으면 되는데.”

제현은 태자비의 말에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나가거라! 치수는 이따 다시 부르면 그때 재게 할 터이니!”

“예, 저하-”

그러고는 다급히 태자비의 입술을 찾았다. 킥킥 웃는 소리가 입술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흘렀다. 제현은 태자비에게 진짜 귀여운 것은 부인이라 말하며 다시금 입을 맞추었다.

결국, 치수는 한참 후에야 잴 수 있었고, 둘의 입술은 무엇에 쏘이거나 물린 듯 퉁퉁 부어 있어 궁녀들은 연신 얼굴을 붉히었다.

***

제현은 이제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태자비의 손을 문지르며 연신 일러주었다.

“위험하다 생각되면 언제든 이 호각을 부셔야 합니다, 알겠지요? 응?”

“알겠다 몇 번을 말하였는데……. 알겠습니다. 하나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 마셔요.”

“어찌 군을 저와 달리 짜서 이리 제 마음을, 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저와 함께 다니시지요, 부인.”

“싫습니다.”

“…나쁩니다, 부인. 진짜로 나쁩니다.”

사냥에 걸맞은 복장을 다 갖춰 입고서 무과 생도들에게 인사를 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나 연우가 태자비와 태자가 각각 군을 짜 사냥감을 얼마나 잡는지 대결을 하자고 한 시점부터 태자의 낯빛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사냥에 나가는 것만도 충분히 불안해 죽을 지경인데 저와 따로 다니겠다니?

“싫단 말입니다, 부인…….”

해서 제현은 몰래 태자비를 끌고 가 투정을 부리는 중이었다. 가지 마, 나랑 같이 다니기로 했잖아. 왜 내가 아닌 이들과 군을 짜서 사냥을 간단 말이야, 왜!

하나 연우는 태자에게 손아랫사람처럼 구니 앙큼하다는 말을 하며 뜻을 굽히지 아니하였다. 입술을 삐죽이며 절대 안 보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태자의 입술을 기술 좋게 춥춥 빨기만 할 뿐.

“귀여우시긴. 하여 소첩에게 가장 믿는 자들을 붙여주셨으면서 이리 떼를 쓰시지요, 저하.”

“나는! 나는 부인이 눈에 보여야 마음이 편하단 말입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면 됐지, 뭘.”

“아니, 하루 온종일 붙어 있어도 부족한데……!”

연우는 연신 주먹을 꾹 쥐고서 억울함과 서운함, 섭섭함을 호소하는 태자에게 깊이 입을 맞추고는 콧방울을 톡 쳤다.

“뜻을 접을 생각은 없으니 소첩을 계속 미워하셔요.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저하.”

“부인, 정말……!”

“사냥에서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그럼 소첩은 생도들과 인사를 하러 이만.”

“부인!!”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제현은 연신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재주 많은 부인을 두니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구나, 신세 한탄을 하며.

제현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모든 것을 다 받아주다간 아무것도 못 하는 태자비로 낙인이 찍힐까 저어된 연우는 무과 생도들의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하였다.

“내 태자비씩이나 되어 그대들에게 인사가 늦었소.”

“태자비마마를 뵈옵니다!”

“금일의 사냥은 태자 저하와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하니, 군의 장이 월앙인이라 하여 소홀히 하여선 안 되겠지.”

뒤에서 태자비가 월앙인임을 알고 조롱하던 생도들은 연우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연우는 고개를 숙인 이들을 굳이 책망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제 앞에서 경거망동을 한다면 모를까, 이미 죄를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는데 구태여 벌을 내릴 이유가 없단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맥없이 저만 바라보는 생도들은 조금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월앙인인 것을 몰랐던 것인가? 그도 아니면 신기하여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저를 따라 모로 고개를 기우는 모습들이 영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디가 아픈가 싶었던 연우는 몸이 좋지 않은 이들은 사냥을 강요하지 않을 터이니 거수하여 뜻을 비치라 하였으나 생도들은 그 말에 얼른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음……. 무리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 언제든 몸이 안 좋은 이들은 내게 오도록 하게. 그럼 가 볼까.”

“예, 마마!”

“한데 정말 괜찮은 것인가? 이 생도는 열도 나는 듯한데.”

“괘, 괜, 무리 없사옵니다 마마!!”

영 상태가 안 좋아 뵈는 자들을 쓱 훑어본 연우는 말의 고삐를 쥐며 옷매무새와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였다. 생도들은 연우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미 하나의 정인과 각인한 본인은 잘 몰랐으나 연우는 혈기왕성한 생도들에게 한 번이라도 닿고 싶은 존재였다. 태자는 그와 친분이 두터운 생도들에게도 연우를 한 번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애정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하여 언제나 자랑은 심심찮게 늘어놓았던지라 생도들은 연우에 대한 반감이 반, 기대가 반인 상태였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기에 저밖에 모르던 태자가 정신을 못 차리나 싶었던 그들은 연우를 보자마자 태자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저하, 소첩 먼저 군을 끌고 가도 되겠지요?”

“부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아랫것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와 함께 가자는 말을 하는 태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생도들은 저들에게 말할 때와 정인에게 말할 때의 분위기가 다른 연우만을 보기에 바빴다.

연우는 울상을 지으며 귓가에 대고 싫다며, 다 싫고 사냥도 흥미가 없어졌다며 팩하니 고개를 돌리는 태자의 귓바퀴를 매만지며 다정히 말하였다.

“아이참, 저하께옵서 사냥을 기다렸다는 것을 아는데 어찌 이러셔요. 소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까, 저하?”

“아니… 부인은, 부인은 착한 사람이지요…….”

“소첩 저하들의 사람을 믿사옵니다. 저하께 걱정 끼칠 일 따위 없으니 저어 마셔요.”

“……알겠습니다. 하나 무리하시면 아니 됩니다, 부인.”

“응, 걱정 마십시오, 저하!”

태자의 눈썹 끝을 엄지로 문질거리며 활짝 웃어 보이는 연우에 이제는 태자가 이끌 생도들마저 얼굴을 붉히었다. 아름답다. 저런 이를 매일 밤 품는 태자는 어떤 기분일까.

제현은 배시시 웃으며 잘 다녀오시라고 손을 홰홰 흔드는 태자비를 한 번 꾹 안고서야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묘한 불안감은 그를 안는다 하여 씻겨 내려가지 않았으나 그래도 안으니 마음은 조금이나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이랴!”

오른발로 말의 옆구리를 치며 나아가는 태자비를 보며 제현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태자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연우는 춤을 추듯 유려하게 말을 몰며 거침없이 활을 쏘았다. 생도들은 모두 놀란 눈을 하고서 연우가 사냥감을 잡을 때마다 감탄할 뿐이었다.

“맞았다!”

“마마, 석궁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은월국에서는 명궁으로 이름을 날렸던 적도 있었네.”

“저희 모두 태자비마마의 실력은 따라가지 못할 듯합니다.”

활을 쏠 때의 아름다움 역시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생도들의 우두머리 격이자 태자가 가장 믿는 생도 하나가 연우의 뒤를 쫓으며 그를 보필하였다. 이조판서의 아들인 서주는 신장이 태자를 웃돌 정도로 커다란 호남형의 사내였다. 행실 또한 바르고 곧아 생도들뿐만 아니라 태자 역시 그를 아꼈다. 서주 역시 태자를 깊이 존경하여 따랐다. 하나 서주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내 반드시 저하를 이겨 다음 사냥도, 그다음 사냥도 나갈 것이다. 그들도 나와 다시 군을 짜고 싶다면 사냥감을 놓치지 말도록!”

“예, 마마!”

이리 아름다운 이가 태자의 정인일 줄이야. 서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으나 자꾸 태자비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냥터를 제집처럼 자유로이 다니는 태자비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아름다웠다. 나무의 색을 닮은 머리칼이 바람을 맞아 휘날리는 것은 차마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빛이 났다. 그의 미소는 또 어떠한가? 지저귀던 새들마저 그에게 다가갈 정도로 맑고 밝은 미소는 서주의 마음을 앗아갔다. 서주는 과거 제게 태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저하께서는 어찌 태자비마마를 보여 주시지 않으십니까?’

‘이리 말하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와아-! 호랑이를 잡았으니 우리 군의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로구나!”

말에서 내려 사냥감을 어깨에 지고 자랑을 하는 태자비의 주위로 생도들이 모였다. 그들은 모두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 얼싸안고 다음 사냥을 기약하였으나 서주는 애써 웃는 척만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태자의 말을 떠올리며. 태자는 눈가를 문지르며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그맣게 말하였었다.

‘그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하여 그대들에게도 차마 보여주질 못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자인가, 그렇지?’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한심하여 달리 할 말이 없었으나 서주는 태자비를 보자마자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더 이상 사냥을 할 필요도 없다. 저하께 가자, 우리의 승리가 확실하니.”

그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였다. 은월국의 왕자이자, 이제는 태자의 비가 된 이는 누구에게나 연정의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이였다.

***

즐거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연우와는 달리 태자는 일찌감치 출발 장소로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생도들은 대충 사냥을 끝내고―대충 끝냈으나 사냥감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돌아가자 다그치는 태자에게 차마 반발하지 못하고 사냥감의 수나 세고 있었다. 태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에서 내려 이리저리 방황하다 그의 정인이 돌아오는 것을 눈치채고는 버선발로 뛰어가 그의 말 앞에 섰다.

“부인!!”

“저하-! 소첩 이리 많이 잡았답니다!”

“다치신 곳은? 없지요, 응?”

“다치다니요, 생도들이 잘 보필해 준 덕분에 소첩 무탈히 사냥을 마쳤습니다. 그렇지 않은가, 서주?”

“아, 예, 마마.”

“제게 안기십시오, 부인. 어서, 자.”

서주고 자시고 간에 태자비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제현은 여태 말 위에 앉아 있는 태자비에게 팔을 뻗으며 안기라 말하였다. 혹 그럴 일은 없으나 태자비가 낙마라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고, 그와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나 그보다 더 큰마음은 다른 것이었다.

“아이쿠!”

“아아, 귀여워라…….”

“귀엽기는 무어 귀엽다고 그러셔요, 저하.”

“귀엽기만 한 것을요, 부인…….”

촉, 소리가 나게 태자비의 볼에 입술을 부딪고 뗀 제현은 보란 듯이 생도들을 휘 둘러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제현은 생도들에게 태자비는 제 것이라 티를 내고 싶었다. 다행히 연우도 그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던 터라 태자의 장단에 맞추어 그의 양 볼에 입을 맞추었다.

“사냥은 즐거우셨습니까, 부인?”

“네! 생도들이 호랑이도 잡았답니다, 소첩 다음 사냥에도 나갈 것이어요.”

“다, 다음 사냥……?”

“다음 사냥에는 소첩을 빼고 가실 생각이셨습니까, 저하?”

“아, 아아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면 같이 가시어요. 소첩 이제 저하의 곁에 붙어 사냥을 가고 싶습니다.”

해사하게 웃으며 다음 사냥은 제 곁에 꼭 붙어 가겠다는데 어찌 안 된다 말할 수 있을까. 제현은 흐들흐들 풀어진 얼굴을 하고선 태자비를 품에 끌어당겼다. 좋은 향이 폐부로 가득 차게 숨을 들이마시자 간지러운지 등을 콩콩 때리는 손길도 달콤해 죽을 지경이었다.

제현은 사냥에 이겨 기뻐하는 태자비에게 귓속말하였다. 오늘 부인이 나를 이겼으니, 침상에서 나를 혼내주시오, 하고. 태자비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각오하라며 제현의 턱 끝에 쪼듯이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서주는 그 모습을 보며 태자의 자리에 저를 세워 상상하였다. 연우가 제게 저리 웃어주고, 살갑게 대하는 장면을 그려 보는 것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신하로서 불온한 마음을 품는 것에 자책하던 서주에게 연우가 다가간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서주는 제 어깨로 닿는 손길에 움칠 떨며 태자비와 시선을 같이하였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은 따스한데 어찌 몸이 굳는 것인가.

“내 오늘 그대 덕분에 안심하고 사냥을 즐길 수 있었지. 고맙게 생각하네.”

대체 이 향은 다 무어란 말인가.

“그대 이름이 서주라 하였지?”

꽃향기? 그도 아니면 산열매 향기?

“그대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네.”

어깨를 툭툭 치고 손을 흔들며 가는 연우에게 예를 차리지도 못하고 서주는 숨만 헐떡였다.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 향은, 이 감각은.

“…….”

“저하, 이제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그러지요, 부인.”

태자만이 그런 서주의 모습을 눈에 새길 따름이었다.

***

사냥의 노곤함을 풀겠다며 태자와 태자비는 목욕물을 준비하라 이르고는 서로의 옷가지를 벗겨주었다. 궁인들에게 시켜도 되는 일이었으나 둘 다 그들에게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으음, 부인…….”

“읏, 흐응…….”

“어서 벌을 주시지요, 응?”

“손도 가만히 두지 않으시면서. 소첩을 놀리는 것입니까, 저하?”

“내 언제 그대를, 어찌 놀린단 말입니까? 어서 나를 아프게 하세요, 부인….”

“음란하시긴.”

입고 있던 것을 모두 벗은 태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연우는 그의 둔부를 한 번 꽉 쥐었다 놓으며 말하였다.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괴롭혀 줄 것입니다. 괜찮지요?”

“많이… 피곤하십니까, 부인……?”

“…….”

기대와는 다른 답에 풀이 죽어서는 차마 연우에게 조르지도 못하고 낑낑대는 태자를 가만 보던 연우는 다시 말하였다.

“하면 오늘은 한 번만.”

“응, 응!”

“이리 귀여우시니 어쩐단 말입니까, 저하?”

“어서, 어서 탕에 몸을 담그러 가시지요. 내 부인을 찬찬히 씻겨드릴 터이니.”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짓는 태자비의 속곳까지 훌떡 벗겨 버린 제현은 제 부인을 답삭 안아 들고서 탕으로 향하였다. 궁인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냐며 아프게 가슴팍을 때리는 손에도 그저 회가 동할 뿐이었다.

오늘도 잔뜩 씨를 뿌려주어야지. 제현은 목에 매달려 순하게 웃는 태자비를 보며 말로는 못 할 생각을 하였다.

***

“물, 흐윽…. 물이 들어온단, 말입니다…!”

“허억, 큿-!”

“으, 아, 아!”

목욕을 시작하자마자 달라붙은 둘은 세 번쯤 사정하고서야 지쳐서 목욕만을 할 수 있었다. 연우는 싫다는데도 부러 탕 안에서 제 안에 양물을 넣고 휘저은 태자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랫도리가 너무 잘나 문제이지요. 소첩이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더 거칠게 굴지 않사옵니까?”

“부인…….”

웅얼거리던 제현은 헛기침을 몇 번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사냥 좀 갔다 왔다고 시샘을 하는 것이 어리고 서툴게 느껴져 부인에게 사과할 생각이었다. 생도들에게 그를 보인 것이 좋으면서도 불안하고 싫었고, 제현은 그 기묘한 감정에 울렁거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를 좋아해 본 적도 없고, 누구를 생각하여 아껴 본 적도 없고…….”

“응, 응.”

난생처음 정인을 갖고, 온몸에 가득한 애정을 풀어내는 방법이 서툰 것은 연우도 마찬가지였다. 연우는 여타 궁인이나 교육을 함께 받는 고관 신료들의 자제에게는 엄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제게는 퍽 약하게 구는 제현이 도무지 밉지가 않았다.

물에 젖은 머리칼을 살살 귀 뒤로 넘겨주는 다정함에 연우는 물의 온도와 같이 따뜻한 시선을 하고서 그를 안았다.

“다 부인이 처음이니… 나도 내 서툰, 그런 것이 싫습니다…. 잘해주고 싶은데, 어찌하면 부인이 좋아할까 생각하는데…….”

매일 제현은 제 부인만 생각하였다. 좋은 것을 보면 자연스레 태자비가 떠올랐고, 나쁜 것을 보면 그가 보지 못하였으면 해 아랫것들에게 당장 시정하라 이르기가 매일이었다. 사고의 귀결이 모두 연우였다. 한데 막상 태자비를 보면 그저 가두고 싶고, 손안에 쥐고서 울리고만 싶으니 저도 이런 제가 싫었다. 가끔은 이런 사특한 감정은 은애하는 마음이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하였다.

연우는 뚝뚝 끊기는 말도 사랑스러운 태자에게 조심히 입을 맞추었다. 태자가 보기보다 훨씬 과격한 건 몇 번의 밤으로도 눈치챈 참이었다. 그런 성벽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매일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지.

“소첩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 저하 곁에 꼭 붙어 있을 것이어요.”

“……저도, 부인 곁에 언제나, 머물 것입니다.”

“소첩도 정인을 갖는 게 처음이라 서툴…….”

“부, 부인께서도?! 정말이십니까?!”

“은월국에서 소첩을 좋아하는 이는 있었으나 소첩에게는 정인이 없었습니다.”

언제는 처음이든 아니든 상관없다고 초연한 듯이 굴더니만. 제가 첫 정인이라는 말에 뺨을 발갛게 붉히며 좋아하는 태자에 연우가 쿡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하께 꽉 붙들려 사니 이제 정인을 만들 기회도 없지요. 평생 저하뿐이옵니다.”

“으, 하……. 나도, 평생 부인뿐입니다…….”

나긋한 말씨가 저를 안아주는 듯하여 제현은 그제야 웃으며 제 비에게 입을 맞출 수 있었다. 제현은 그의 손가락마다 입을 맞추며 어찌 손가락마저 아름다운 것이냐며, 이래서야 제가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냐고 말하였다.

“귀여우신 저하.”

“아아, 부인이 더…….”

도망가는 연우를 붙잡아 끌어안음에 탕의 물이 밖으로 넘쳐흘렀다. 둘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도무지 애정의 끝이 보이지 않아 유난히 짧게만 느껴지는 밤 안에서.

***

태자와 태자비의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황실의 어른들은 또 어떠한가. 제현은 연우에게 불편하다면 굳이 어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필요가 없다 하였으나, 연우는 최선을 다하여 황실의 윗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내 손주 며늘아기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구나.”

“아닙니다, 마마. 소첩이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제현이가 훈련을 하는 걸 다 보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오늘은 연우가 태후와 황궁을 한 바퀴 돌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 밤 태후와 시간을 보내야 해서 황실의 수업을 같이 듣지 못한다는 말에 남편이 불퉁히 입을 내밀던 것이 떠올랐으나, 태자의 어리광을 가만히 받아주기만 하는 연우가 아니었다.

가마를 탄 태후의 옆을 보필하듯이 연우는 말을 타고 갔다. 태후는 연신 연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젊었으면 너 같은 사내를 만났을 터인데, 하는 말에는 연우도 퍽 기분이 좋아 눈을 접어 웃기도 하였다. 궁인들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가는 태후와 태자비를 짐짓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이 태평성대가 아니면 무엇이 태평성대일꼬, 하는 마음들이었다.

“마마, 다 왔습니다.”

“세상에, 내 무과 생도들이 이리 많은 줄은 미처 몰랐구나-!”

“다들 훤칠하지요?”

“태영의 아들들이니 훤칠하기도 하구나. 한데…….”

“예, 마마.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다. 그저 우리 새아가가 어여뻐 보여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말거라.”

평생을 태영국에서만 살아온 태후는 훈련장을 누비며 다니는 무과 생도들을 보고는 그다지 놀라지 아니하였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었다.

태후와 태자비가 훈련장에 가까이 오자마자 대련을 하던 서주와 제현은 거의 동시에 목검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제현은 서주의 시선이 자신과 같은 곳을 향한다는 미묘한 불쾌감에 그를 바라보았으나, 서주는 그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언가에 심취한 상태였다. 태자비마마다, 이전의 향긋함이다. 서주는 그리 생각하며 멍하니 말을 타고 오는 태자비를 지켜보았다. 밝게 미소 짓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감히 만지는 것은 안 될 터이니 보는 것만, 그것만이라도 마음껏 하고 싶었다.

잘못 생각하는 것이겠지. 제현은 그리 여기며 태자비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이 주인을 쫓는 강아지와 다름이 없었으나 그 모습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은 황태후뿐이었다. 웬 놈의 사내 녀석들이 모두 태자비만 바라보니 태후는 그저 기가 막혔다. 그리고 동시에 제 손주인 태자가 부인이 어디로 갈까 노심초사하는 이유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창 욕구가 왕성할 시기의 사내들 앞에 부인을 내보이고 싶지 않겠지. 태후는 훌쩍 뛰어와서는 태자비의 손부터 찾는 제현을 못 말리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인!”

“저하, 깜짝 놀라셨지요?”

“어찌 온다는 언질도 주지 않으시고……!”

얼씨구, 아주 제 할미는 보이지도 않누나. 태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연우가 얼른 태자의 팔을 툭툭 건드렸으나, 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손에 입을 맞출 뿐이었다.

“연우가 아니었으면 내 평생 우리 손주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지 못할 뻔하였지. 그렇지 않느냐, 연우야?”

“저하께서 부끄럼을 타 그런가 보아요, 마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옵소서.”

“부인, 오는데 가마를 타지 않으시고…….”

“괜찮습니다, 저하. 소첩 말과 친해지는 중이랍니다.”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제현은 홍옥처럼 붉어진 얼굴로 헤실헤실 웃기에 바빴다. 말과 친해지는 중이라니, 친한 것은 서방님인 나 하나면 족하지 않은가? 제현은 밤에 따져 물어야겠다 다짐하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못하였다. 연우는 태자의 그런 속마음까지는 읽지 못하고 강직한 턱을 엄지로 찬찬히 문지르며 말하였다.

“태후 마마께서 저하와 생도들이 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첩이 활을 쏘는 것도 보고 싶다 하시었어요.”

“좋지요, 부인 곁에 제가 있겠습니다.”

“소첩은 저하만 곁에 있어 주시면 언제든 든든하답니다.”

“부인……. 나도, 나도 그러합니다. 나는 부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애정 표현 한 번 과격하게 하는구나, 우리 태자는.”

“하, 할마마마!”

제 부인이 좋아서 꼬리를 치기에 바쁜 손주가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으나 우선은 보기 좋은 마음이 더 컸다. 다만 훗날 신하 될 생도들 앞에서 애정 표현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그들 모두 태자비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태후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나 한 사내가 마음에 걸렸다.

“새아가, 저자를 아느냐?”

“누구… 아, 서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아, 그, 누구의 자라 하였지?”

“이조판서의 차남입니다, 할마마마.”

“기억이 나는구나.”

“소첩이 불러들일까요?”

서주! 자네 잠깐 이리 와 보게!

연우는 태후가 허하는 말을 하기도 전에 팔을 뻗어 크게 흔들며 서주를 찾았다. 지난 사냥에서 안면을 트고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연우는 서주가 상당히 마음에 든 참이었다.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하지 않고 그저 곁에서 가끔 말없이 거들어 주는 그의 태도가 우직하여 좋았다.

하나 손주 며느리의 뒤에서 태후는 상념에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잘 지냈는가?”

“예, 마마.”

“내 그대와 석궁 실력을 겨룰 참으로 여길 왔네. 괜찮은가?”

“소인이 훨씬 부족한 것을요.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에이, 서주 그대의 활 솜씨도 손에 꼽히게 훌륭한 것을 내 아는데. 그렇지요, 저하?”

연신 환히 웃으며 태자와 무과 생도 사이에 있는 연우가 어째 불안하여 태후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괜한 생각일 터다. 늙으니 눈이 좋지 않아 잘못 본 것이겠지.

“…하나 부인의 석궁 실력은 따라가지 못하지요.”

“괜히 소첩 기분을 좋게 하려 그리 말씀하십니다.”

“……태자비마마와 실력을 겨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일 것입니다.”

허해주시겠습니까, 마마.

서주는 태자비에게 허락을 구하면서 시선은 제 주군을 향하였다. 제현은 심기가 불편하였으나 태자비와 태후의 앞에서 감정에 서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드시 그대를 이겨 보이지!”

“이리 오세요, 부인.”

“네, 저하.”

“…….”

“…….”

보란 듯이 태자비를 안아 말에서 내려주는 제현에 태후는 다시금 무과 생도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태자비를 안은 팔에서 올라가 태자비의 겉을 모두 걸은 뒤 눈으로 향하였다.

“저하의 사람이라고 봐주지 않을 걸세.”

잠시간 눈이 마주치자 코를 찡긋거리며 짓궂게 웃는 태자비에 생도의 눈이 한순간 번뜩이는 것을 보고 태후는 불안한 듯 태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자의 눈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저하, 이제 소첩을 놓아주셔도 괜찮습니다.”

“……네, 부인.”

어찌 제 손주와 무과 생도가 같은 눈으로 며늘아기를 보는 것인가. 태후는 서주와 태자를 번갈아 보다가 둘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태후의 불안감을, 제현과 서주의 신경전을 눈치채지 못한 연우는 궁술을 뽐낼 생각에 가득 차 드물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화살이 즐비한 터로 달려갔다.

검은 깃과 노란 깃 둘 중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태자비에게 제현은 슬며시 노란 깃을 권하였다. 예로부터 태영국에서는 노란색이 복을 불러온다 하여 오랑캐들을 토벌하였을 때 노란색의 승전기를 흔들기도 하였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제현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였다.

“부인, 노란 깃이 달린 화살을…….”

“예, 저하.”

연우는 군말 없이 태자가 건넨 화살을 택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서주의 시선은 불현듯 연우를 찾아들었고, 제현은 그때마다 본능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태후는 그늘 아래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자신이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혹 나서게 된다면 그때가 언제일지를 짐작해 볼 뿐이었다.

하나 당사자인 연우가 서주의 시선에 대해 괘념치 않아 하니 그의 주위 사람들은 충고의 말이나 걱정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연우는 서주를 신하로만 생각하였고, 태자인 제현 말고는 어떤 사내도 저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누가 감히 향후 황제가 될 이의 사람을 좋아할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고.

연우는 제게 화살집을 안겨주고 서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태자를 의아히 생각하며 이마에 손을 짚어 보았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까, 저하?”

“…아, 아닙니다. 내 기분은 언제나 좋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부인.”

“소첩이 반드시 이겨서 저하의 기분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하니 잘 지켜보고 계셔요.”

“당연히, 그대가 이길 테지요! 나는 그리 믿고 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다정하게 저를 살피는 태자비에 제현의 기분은 단박에 평상시의 것으로 돌아갔다. 황태후는 그에게 체통을 지키라 하였으나 부인에 대한 사랑을 감출 길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주섬주섬 간이 경연을 준비하는 연우에, 제현은 허리에 매고 있는 비단 끈을 뒤에서 안아 고쳐주며 귀엣말을 하였다. 태후는 어린 손주와 며늘아기가 귀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생도들이 힐끗대며 쳐다보는 것은 후에 어떻게든 시정을 하여야 한다 느꼈다. 특히 서주라는 자의 시선을.

“좋은 향… 이 납니다, 부인.”

손에 잘 잡히는 화살을 고르던 연우는 퍼뜩 고개를 돌려 태자의 머리를 안고 귀엣말을 돌려주었다.

“아마 희락기가 오려 그러는 모양이어요, 저하.”

“희, 희락기?!”

“소리가 너무 크신…….”

얌전히 저를 책망하는 눈빛도 좋아 제현은 연신 손을 쥐었다 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태자비의 허리띠가 잡힌 채였다. 반려의 손안에서 구겨졌다가 펴지는 끈에 연우는 쿡쿡 웃으며 그의 손등을 문질렀다.

“희, 락기라 함은 어, 부인…. 나는 그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알려주십시오.”

“거짓말, 아시면서.”

짐짓 건네는 애교스러운 말에 태자는 무너지듯 연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는데…….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부인이 가르쳐 주셔야 좋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불쑥 고개를 가까이하며 흘리는 어눌하고도 사랑스러운 말에 연우는 말갛게 웃으며 말하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태자의 입술을 한 번 꼭 누르는 것은 습관과도 같았으나 태자는 어김없이 몸을 잘게 떨며 부끄러워하였다.

“하면 이따 밤에 알려드리지요. 잘 알려드릴 터이니 허투루 배우시면 아니 됩니다.”

“예. 물론이지요, 부인!”

“앉아서 소첩을 응원해 주셔요, 저하.”

이제 태후 곁으로 가 앉으라는 권유의 손짓도 서운하여 입을 삐죽이는 태자가 마음에 가득 차 연우는 기어이 그의 허리를 한 번 안고 말았다. 언제나 어린 태자 대신 혼자라도 중심을 잡자 다짐하였지만 가끔은 그가 좋아 견딜 수 없었다. 연우가 애정 표현에 점차 적극적이게 된 데는 태자 부부의 애정사를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는 궁인들의 덕도 없지 않았다. 하여 연우는 황궁의 모두가 그들을 좋게 볼 것이라 은연중에 믿기도 하였다. 기실 그것은 참이었다. 다들 태자 부부 내외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서주, 자네가 먼저 활을 쏘게. 내 순서를 양보하지.”

“하면 부족한 실력이나마 소인이 먼저 시위를 당기겠나이다, 마마.”

“나를 태자비라 여기지 말고 경연에 임하였으면 하네.”

“……예, 알겠습니다.”

하나 달리 생각하는 이가 없을 리 만무했다.

서주는 어깨를 다독이며 저를 격려하는 태자비에 감미로운 감정을 품었다. 그의 손이 제 어깨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거쳐 갔으면 하였다. 제 주군이 하는 모든 것은 저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태자비의 사내치고 가늘디가는 몸을 안는 것쯤 자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뒤를 돌아볼 그에게 연정의 마음을 담아 기대는 것 또한 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성심껏 할 수 있었다.

서주는 사대(射臺)에 서서 잠시간 태자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서주는 그 모습에 조금 전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나를 태자비라 여기지 말고 경연에 임하였으면 하네.’

나를 태자비라 여기지 말고, 나를 태자비라 여기지 말고…….

“…준비가 되었습니다.”

과녁을 향해 화살을 조준하며 서주는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였다. 주군을 향한 충성과 생애 처음 겪어 보는 감정의 파랑 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를. 살며 단 한 번도, 무과 생도가 된 후로는 더더욱 태자를 경쟁자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향후 나라의 황제가 될 자였으며, 그 자격 또한 충분한 자였으니. 그의 수중에 온갖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야 마땅하다 믿어 의심치 않아 왔다.

“부인, 내 곁에 앉아 계세요. 여기에.”

“예, 저하.”

“…….”

한데 어찌하여 그의 곁에 웃는 이는 이리도 앗아 오고 싶은 것일까.

결국, 서주는 제 마음의 향방을 찾지 못하여 첫 활을 과녁에서 한참이나 멀리 보내고 말았다. 그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꽂힌 화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게 꼭 제 마음 같아 서글프기도 하였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하나 태자비가 제게 하는 귀엣말에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긴장하여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나를 봐주려 그런 것인가?”

“긴장하여, 그런 것입니다. 다음 화살은 이리 헛되이 쏘지 않겠습니다.”

“그런 것이라 생각했네. 그대는 강직한 사내이니.”

“…….”

“이제 내 차례이니 서주 그대는 잠시 기다리고 있게.”

생긋 웃는 모습에 서주는 차마 그를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얼굴로 온몸의 열이 몰리는 듯하여 좀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제는 태자비를 보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였다. 이 마음을 대체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준비가 되었네.”

태자비의 말에 경연의 심판은 호각을 불어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추어 서주도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시합의 상대가 사대에 올랐는데 그를 보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었기에. 하나 차라리 예 따위 지키지 않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탕-!

“저하!”

“부인, 아아, 못 하는 것도 없지요, 응?”

“보았는가, 서주? 활은 이리 쏘는 것일세!”

“……예, 마마…….”

시위를 당기는 모습부터 과녁을 향해 한쪽 눈을 지그시 감는 모습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아름다웠다. 살아오며 무언가에 이리 욕심이 났던 적이 있는가? 남의 것을 빼앗고 싶다 생각했던 적은? 태자에게 충성을 다하겠다 결심한 후 한시라도 다른 마음을 품었던 때 역시 없었다. 맹세코 서주는 정해진 삶만을 달려온 사내였다.

“내, 내 어여쁜 사람-”

“저하도 제 어여쁜 사람이지요.”

하나 저도 그에게 듣고 싶었다. 어여쁘다는 말을, 은애한다는 말을.

서주는 화살을 들고서 노란 깃으로 태자의 볼을 콕콕 찌르는 태자비를 보며 바짓단을 꽉 움켜쥐었다. 태자에게서 그를 앗아 오고 싶어졌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아니 한순간만이라도 좋으니…….

“간지럽습니다, 부인….”

그를 안고 싶어졌다.

***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서주와의 경연은 연우의 승리로 마쳤다. 연우는 내내 풀죽은 모습의 서주에게 마음이 쓰였으나 태자의 눈이 계속 저를 좇아 길게 위로를 하지는 못하였다.

“내 그대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마음이 좋지 못하네.”

“……아닙니다, 마마. 소인은 마마와 함께 겨뤄 볼 수 있어 영광이었을 따름입니다.”

“정말인가? 정녕 그리 생각해 준다면 내 그보다 고마울 수 없을 것 같아.”

“정말입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으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알겠네. 오늘은 수라간 나인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라 하였으니 그대 입맛에 맞을 음식들이 나올 것이야.”

나는 식사 후에 생강편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대도 좋아하는가?

고개를 살짝 틀어 올려다보며 하는 말에 서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웃으며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연우에게 태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그만 가시지요, 부인. 정중하고도 단단한 말씨였으나 서주는 어쩐지 불쾌하기만 하였다. 감히 주군에게 불온한 감정을 갖는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으나 이 감정이 불쾌함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제현은 태자비가 무과 생도들에게 차례로 한마디씩 건네며 친목을 다지는 것을 뿌듯이 생각하였으나 서주에게 가는 것만은 마음에 내키질 않았다. 한 시진 전 희락기가 가까워져 오기에 향이 짙어진 것 같다며 생긋 웃던 것까지 떠올랐고, 웃는 얼굴을 곱씹어 볼수록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생각되었다. 특히 서주에게만은.

“태후마마께 가 봐야겠습니다, 저하. 모쪼록 즐거이 식사하기 바라네, 서주.”

“예, 마마.”

“저도 곧 가겠습니다, 부인.”

“예, 저하. 소첩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저를 잡은 태자의 손에 가벼이 입술을 묻고서야 자리를 뜨는 연우에게 두 사내 모두 눈을 떼지 못하였다. 하나 태자비를 그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제현뿐이었고, 제현은 태자비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서주 자네도 이제 혼인을 해야 할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

“아직 혼담이 오가지 않는다면 내 알아봐 줄 수 있네.”

최대한 감정을 담아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말하게 되었다. 어디 감히 태자비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으려 하느냐 다그치지 않은 것만도 제현으로서는 장한 일이었다. 제현은 제게 주어진 것에 애타 하지 않는 자였으나 태자비에 관한 일은 예외였다. 그는 언제나 제가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서 저는 언제나 작아졌으며,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우는 제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직 혼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하.”

“아아, 그래?”

“예, 저하. 소인의 나이가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고…….”

“나는 그대와 같은 나이에 짝을 찾았는데, 아쉽군그래.”

“…….”

“서주 그대도 어서 마음이 맞는 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의 것을 탐내 하지 말라는 뒤의 전언은 애써 감추고서 제현은 서주의 어깨를 한 번 꾹 쥐었다가 놓았다.

“언제든 혼인에 대한 생각이 인다면 내게 말하게.”

“……예, 저하.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얼. 이리 행복한 것을 그대도 알았으면 하여 하는 말이야. 나는 지금 태자비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니.”

그러니 자네가 들어올 틈은 없네. 우리 둘 사이에 새로이 들어올 사람은 아이 말고는 없을 거야.

제현은 길게 말하지 않고 서주의 곁을 떠나 제 비에게로 향하였다.

“저하, 어찌 이리 늦게 오십니까?”

“이야기를 좀 하느라…….”

“아- 하셔요. 음식이 식기 전에 드리고 싶어 소첩 애가 탔답니다.”

“아, 아아-”

서주는 먼발치서 태자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먹여주는 태자비와 그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황태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을 추스를 길은 여전히 묘연하여 끝까지 눈을 뗄 수조차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

“아, 음, 저하, 천천히…….”

“부인… 가르쳐 주셔야지요. 내게 희락기를 알려주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응?”

“하면 입술 좀, 입 좀…… 저하!”

태은궁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을 새도 주지 않고 쪽쪽거리며 제게 달려드는 태자를 어쩌지 못하고 받아주던 연우가 기어이 침상이 아닌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뒤로 넘어갈 때 태자의 팔과 손이 저를 받쳐주기는 하였으나 영 아파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부인, 어, 어떡, 태의, 태의를!!”

“태의를 불러올까요, 저하?!”

“마마, 괜찮으십니까? 소녀 당장이라도 어의를!”

“…시끄럽구나, 야단 떨지 말고 모두 물러가거라.”

제현이 난리법석을 떨자 덩달아 난리가 난 궁의 식구들에게 물러가라 말한 연우는 결국 태자의 팔뚝을 아프게 때리고 말았다.

“어찌 이리 급히 구십니까, 응?”

“죄, 죄송합니다, 부인….”

“휴……. 하마터면 머리가 깨질 뻔하였습니다.”

“…….”

“……소첩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니 이리 오셔요, 저하.”

“나는, 부인이 좋아서…….”

이리 오라는 말에 태자비를 아기 안듯 안아 든 제현이 그를 조심히 침상에 내려놓았다. 그게 기분이 좋아 곰살맞게 웃는 태자비였으나 제현은 제가 그를 넘어뜨린 것에 마음이 쓰였다. 오늘 활시위도 열 번이나 당겨 힘들었을 태자비를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하였고, 서주를 신경 쓰느라 부인에게 애정 표현을 덜 한 것 같아 그도 미안하였다.

연우는 침상에 앉은 저를 다시 번쩍 들어 올려 허벅다리 위에 앉히고서 둥가둥가 얼러주는 태자의 목에 팔을 감고서 해사하게 웃었다.

“힘도 좋으신 우리 저하.”

“힘쓰는 것은 언제든! 자신이 있습니다, 부인.”

“희락기 때 걱정할 일은 없겠군요, 다행입니다.”

“그, 그야,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지요. 한데 희락기에는… 몸이 아프신 겝니까, 부인?”

“아아, 소첩도 희락기는 아직 한 번밖에 겪지 못하였으나 많이 아프지는 않답니다.”

“……아프기는 아프신… 그런 겁니까?”

“음……. 조금?”

연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신 아파해 줄 요량의 표정인 태자에게 안심하라는 듯 과거 겪었던 희락기를 말해주었다.

“그냥 열이 좀 많이 납니다. 저하께서 발현열을 겪으셨을 때처럼.”

“그 외에는 달리 특이한 점은 없는 것입니까?”

“글쎄요…….”

곰곰 생각하던 연우는 태자의 어깨에 기대 말하였다.

“당시에 몸이 아픈 것보다도 사내가 월앙인으로 발현한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소첩은 방에서 홀로 발현하며 앓았는데 그때는 조금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

“아래가, 젖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어마마마와 아바마마께 먼저 태영국으로 가겠다 하였습니다. 몸이 이리되었으니 다 틀렸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저하처럼 좋은 짝이 생겼으니 소첩은 어느 때고 외롭지 않으니까요.

월앙인이 되어 다행이라고, 그대를 만나 이리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말갛게 웃는 태자비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제현은 눈물을 참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첫날밤을 그리 보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어떻게 더 잘해줄 수 있을까 그것만 고민하는데 그때는 왜. 제현은 뒤늦게나마 태자비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연신 턱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토닥여 주었다.

연우 역시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 잠자코 아껴주는 손길을 받고 있었다. 온몸이 노곤해질 정도의 다정함에 수줍음이 피어올랐으나 태자는 볼이 붉어진 것도 귀엽다며 그저 어여뻐해 줄 뿐이었다. 이래서야 버릇만 나빠질 것인데. 연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태자의 옷깃을 쥐고 흔들며 말하였다.

“저하께서 자꾸 어여쁘다 해주시면, 소첩은 진짜인 줄로만 안답니다…….”

“아, 어, 그…….”

“네, 저하. 말씀하셔요.”

“좋아하는 마음의 반도, 채 표현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인…….”

“아, 그, 그러십니까……?”

“그리고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여쁘신데…….”

한데 희락기에 그대 몸은 어떻게 변합니까? 서로의 아랫입술을 사이좋게 깨물다가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붉은 휘장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연우는 저를 내려다보는 태자의 음험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안이, 조금…….”

“예, 안이 조금, 어떻게?”

“그냥…… 조금 녹진, 녹진해지는데…….”

“지, 지금보다 더?”

“부끄럽사옵니다, 저하…….”

제대로 가르쳐 준다고 하였으면서 손안에 폭하니 얼굴을 숨기는 태자비에 제현은 애가 타 발만 동동 굴렀다.

“가, 가르쳐 주십시오, 부인! 내 잘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 한 번 배우면 잊지 않았습니다.”

“아읏, 저하, 잠시만!”

잠시만은 무슨 잠시만? 제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태자비의 입을 제 입술로 막고서 옷을 벗겨내었다. 어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제 부인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티끌이라도, 뭐든 궁금하니.

연우의 볼에 쪽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 제현은 연이어 그의 나신에도 차근차근 입을 맞추었다. 단단하면서도 매끈한 몸은 몇 번을 눈에 담고 취하여도 부족하여 제현은 항상 신부를 도가 지나치게 괴롭히곤 하였다.

“부인의 말씀대로, 녹진녹진…… 합니다.”

“읏, 하아…….”

“부인께서는 여기를…….”

여기를 좋아하지요? 채 다 묻기도 전에 연우의 허리가 퍼뜩 힘을 받아 휘었다. 연우는 태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몸을 뒤챘으나 제가 유독 약한 곳만 폭, 폭 눌러대는 태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해서 제현의 눈에는 그것이 제가 만져주는 게 좋아 몸을 비트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비쳤다.

“저하, 저하…….”

“제게 안기세요, 부인.”

희락기에 월앙인의 몸은 유달리 부드러워지고, 향긋해진다 합니다. 소첩은 잘 모르겠으나 그렇다고들 하여요. 조곤조곤 말하던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희락기에 가까워진 몸이 이 정도인데 희락기에 당도한 몸은 어떠할까. 제현은 군침을 삼키며 신음하는 태자비를 내려다보았다. 평상시의 잠자리와는 무언가 달라도 달랐다. 태자비는 제현의 물건이 저를 찌르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소리를 참으려 노력하곤 하였는데 지금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몸을 떨며 울먹이질 않는가. 여기를 눌러도, 저기를 매만져도 그저 훌쩍이며 제게 안기는 부인에 제현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구멍 또한 언급할 만하였다. 꾹 누를 때마다 옴찔거리며 달라붙어 오는데 제현은 그런 태자비를 함부로 대하고 싶은 마음을 죽이느라 온 힘을 다 쏟아야 했다. 말 그대로 만지기 좋게 풀린 구멍에 제 것을 박아 넣고서 그저 흔들고만 싶었다.

“부인, 힘들지 않으시지요? 힘들면 언제든, 응, 알겠지요?”

“좋아, 더 만져, 주셔요…….”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도톰한 아랫입술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물며 참는 제현에 연우가 나른하게 웃으며 그의 고개를 끌어왔다. 매번 저도 사내이니 어느 정도 거칠게 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는데도 태자는 점잖은 척을 하였다. 막상 넣고 나서는 그런 무뢰배가 없으면서도.

“넣어주셔요…. 아래가 허전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저하…….”

“아아, 부인……!”

미끈한 다리로 그의 허리를 안자 태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바투 겹치며 잔뜩 성이 난 것을 입구에 대고 슬슬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언제쯤 저게 들어올까, 연우는 그것만 생각하며 침만 꼴깍거렸다.

“벌써 허리를 흔드시면 어쩐답니까, 부인….”

“어서- 응? 저하, 제발…….”

어찌 소첩을 이리 애태우십니까, 소첩을 어서 취해주시지 않고. 열이 올라 툭툭 끊어 하는 말에 제현이 태자비를 안고 얼러주었다. 내 사랑, 삐친 모습도 귀엽기만 한 내 사랑-. 조곤조곤 하는 말에도 연우는 연신 신랑의 물건을 어떻게든 넣어 보려 안달이었다. 끄트머리만 설핏 담그게 만들고서 애달피 올려다보자 그제야 알겠다며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매우 기꺼웠다. 연우는 거근이 들어옴에 숨을 할딱이며 가슴과 허리를 띄웠다.

아름다운 동시에 야살스러운 태자비에 제현은 함께 헐떡이며 허리를 움직였다. 억,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부드럽게 풀린 구멍이 제 것을 품고 옴찔거려 왔다. 반 정도 들어갔음에도 몸을 한껏 움츠리고서 긴장한 태자비는 안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가여운 모습이어서 제현은 누운 이에게 입술을 내리며 다정히 말하였다.

“좋아, 너무도 좋아합니다. 나는… 나는 부인이 너무도 좋습니다. 견딜 수가 없이 좋습니다.”

절절한 고백에 연우는 입술을 삐죽이며 눈물을 참았다. 울지 말아야지. 나는 저하보다 어른이니 참아야 해. 하나 좋아한다는 고백은 저도 꼭 하고 싶었다. 연우는 태자의 품에 쏙 들어가며 말하였다.

“저도, 저도 좋아합니다. 저하의 정인은 저 하나라고 말씀해 주셔요. 소첩의 정인은 저하 하나이니…….”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 부인 말고, 내 어찌 다른 이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커, 커지지는 말고, 저하, 으, 아!”

몽글거리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태자는 양물을 불쑥 끝까지 집어넣고서 연우의 배꼽 바로 아래를 쓱 문질렀다. 별것 아닌 손짓에도 자지러지며 반응하는 아내는 포르르 떨며 제게 안겨 와 음심은 더욱 커졌다.

제현은 막힌 소리를 내며 잘게 허리를 움직이는 연우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그만 조이라는 뜻이었으나 연우는 그것마저 좋아 울며 잔뜩 토정하고 말았다. 이 요망한 월앙인을 어쩔꼬. 제현은 아래를 푹 적시고서 곧장 제 입술을 찾는 태자비에게 허릿짓을 하며 과격하게 입술을 부딪쳤다.

“읏, 저하, 아, 힉-!”

“또 가셨군요, 부인. 이리 많이 싸지르다니.”

“어읏, 더, 저하, 아아! 제발, 아응…!”

“더 무엇을?”

정자세로 활짝 다리를 벌린 채 저를 받아내는 태자비의 젖꼭지를 쭙쭙 빨던 제현이 아예 그의 가슴팍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다그쳤다. 더 무엇을 달라는 것인지 말만 하면 그 배로 줄 자신이 있었다. 달라고 할 것이야 제 것 말고는 달리 없음을 알고 있으니. 다만 궁금한 것은 태자비의 답이었다. 하도 빨아 대어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나올 말이 기대되었다.

눈물과 타액으로 흥건히 젖은 얼굴을 하고서 연우는 태자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기로 하였다.

“여기, 에…….”

그는 손을 아래로 내려 스스로 제 구멍을 슬쩍 벌렸다. 태자의 것이 여전히 담긴 채였다.

“싸, 싸주셔요…. 저하의 것을 더, 더…… 으응!”

더듬거리던 손이 제 것을 건드리며 더 안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며 제현은 짐승처럼 부인에게 달려들었다. 울룩불룩한 근육이 잔뜩 성이 난 채 움직이는 것에 연우는 또 한 번 왈칵 애액을 뱉어내고 말았다. 하나 이제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저 태자가 안을 들쑤시는 것이 좋을 뿐이었다.

“앗, 저하, 아, 아!!”

“왜, 더 달라 하셨잖습니까, 여기에!”

“으응, 다, 다 주셔요, 아윽! 거, 거기, 저하-!”

“요부가… 따로 없습니다, 부인.”

계속된 삽입으로 거친 음모가 계속해서 비벼지자 연우의 아래는 가는 실선이 생기며 붉어졌으나 태자는 그를 보고 허릿짓을 더 강하게 하였다. 어떻게 해줘도 그저 좋다고 우는 연우에게 음심은 자꾸만 커져 갔다. 태자는 꾸역꾸역 저를 받아내느라 잠시간 벌어진 상태로 머무는 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넣고서 꾹꾹 눌러 대기까지 하였다. 하나 연우는 그 역시 좋다고 울 뿐이었다.

“우으으… 저하, 조, 흐으, 좋습니다…….”

“나와 살을 붙이는 것이 좋습니까? 부인, 내 사랑-”

“응, 응. 조, 좋습니다, 저하가 좋아서, 흑…… 좋아합니다.”

움푹 들어간 지점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동시에 추삽질을 하자 정신없이 저를 좋아한다는 말만 반복함에 가슴이 빠듯할 정도로 행복해졌다. 아, 정말이지 귀여운 내 사랑. 제현은 빠르게 허리를 짓쳐 올리다가 연우의 아래에서 애액이 터질 때 함께 사정하였다.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하, 아…….”

“흑, 으응, 안아 줘…….”

“예, 부인. 안아드리지요.”

제현은 평소에는 죽어도 말을 놓지 않으면서도 색사를 치른 뒤에는 어리광을 부리는 짝이 좋았다. 언제나 저보다 성숙한 모습의 연우도 물론 좋았으나, 제게 안겨 자기를 더 예뻐하라 종용하는 연우는 정말이지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잔뜩 울어 눈가며 코끝이며 온통 발갛게 달아오른 곳에 찬찬히 입술을 내리던 제현은 혼자 다짐하듯 말하였다.

“부인이 저를 좋아하시니,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응…. 소첩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 평생 그대만을 지킬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응……. 잠이 옵니다, 저하…….”

졸리면 신랑 품에서 잠드시면 되지요. 비단 금침에 저를 둘둘 말아 안고서 도닥이는 손길에 연우는 금세 잠이 들고 말았다. 제현은 색색 숨소리만 내며 잠든 연우를 귀하게 바라보다 다시 한번 고백하였다.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텝니다. 품에서 놓을 일 역시 없습니다. 내 영원한 반려.

***

제현의 아비는 따로 아들을 불러 말하였다.

“이제 슬슬 황위 계승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지.”

“예, 폐하.”

권유나 질문이 아니었다. 그리할 때가 되었으니 마땅히 받아들이라는 투였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 제현 역시 당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제게 건네지는 상소문 더미를 받았다.

“새아가와 함께 보아도 괜찮다. 은월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룰지도 궁금하구나.”

“…하면, 제왕학 수업 시간에 매번 태자비와 함께하여도 괜찮습니까?”

“상관없다. 오히려 좋지 않겠느냐.”

태자가 좀처럼 집중을 못 하는 것만 아니라면 사실 모든 일과를 부인과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황제는 놀리듯 말하며 제현을 바라보았다. 제현은 말없이 얼굴만 붉혔다. 아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 때고 태자비와 같이 있는 것이 나쁠 리 없었다. 황궁의 식구가 되었으나 타국에서 온 연우의 완벽한 적응을 위해서라도 그편이 더 좋은 것은 분명하였다. 해서 그가 태영국으로 오고 나서 한두 달 정도는 정말이지 거의 모든 수업을 태자와 함께하기도 하였다.

하나 제현과 연우가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며 황궁의 교육장들은 입을 하나로 모아 말하였다.

‘저하께서 수업에 도통 집중을 하지 못하시니, 태자비마마께옵서는 제왕학에서만큼은 걸음을 줄여주십사 하옵나이다. 불경한 말씀임을 아오나 장차 태영국을 짊어질 저하께서는 아직 배움에 더 정진하여야 할 것으로 아뢰옵니다.’

“…….”

“내 태자에게 제왕학을 가르치는 교육관에게 그리 들었지, 아마?”

“이제 그러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폐하.”

“그래, 한 번은 믿어주마.”

네 나이가 한창 들뜰 나이이기는 하지. 황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서 또 실실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이제는 앞에 누가 있어도 제 부인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보기 싫지가 않아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기실 황제는 여전히 제 부인만을 마음에 품은 지조가 곧은 사내였기에 아들의 그런 모습이 면경에 비친 제 모습을 보는 듯할 뿐이었다.

안아줘, 졸려, 싫어. 어젯밤 역시 향이 좋다는 핑계로 태자비를 한참이나 못살게 굴자 그가 했던 말이었다. 안아 달라는 말은 파정을 한 뒤 가만히 얼굴만 보고 있자 부끄러워 한 말이었고, 졸리고 싫다는 말은 안고 나서도 쉬지 않고 지분거리니 칭얼거리며 한 말이었다. 싫어어- 하지 마아-, 길게 끌며 말하다가 삽입을 하자 못 이긴 척 다시 안겨드는 몸은 좀처럼 잊히지가 않았다.

입가에 좀처럼 음흉한 미소가 가시질 않는 태자를 보던 황제가 결국 질색을 하며 말하였다.

“새아가도 밤마다 힘들지니 너무 괴롭히지 말거라. 이 호색한아.”

“그래도… 영 싫어하지만은 않습니다.”

“하면 네게 진심으로 싫다 하겠느냐? 매일 밤 무섭게 달려들 것이 눈에 선하구나.”

쯧, 혀를 찬 황제에 제현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생각하였다. 아닌데, 진짜 좋아하는데. 곰곰 생각하던 제현은 수업을 들으러 가기 전 잠깐 태은궁으로 가 부인에게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소문은 최대한 빨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봐도 괜찮으니 부담 가질 것 없다. 한데 지금 어딜 가려 하는 것이냐?”

“태자비를 보러…….”

“얼씨구?”

“수업에 늦을 일은 없으니 노여워 마십시오, 폐하.”

“연우가 아- 주 귀찮은 사내를 서방으로 얻어 고생이구나.”

제현은 저를 타박하는 말에도 그저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오셨습니까 저하, 하며 저를 반길 연우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듯하여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저놈이 처음에는 같은 사내와 인연을 맺기 싫다 하던 놈이 맞나, 하며 황제는 아들을 보내 버렸다.

“가 보거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을 것이 아니더냐?”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어이구, 좋아 죽누나, 죽어.”

“좋지요. 아니 좋을 수가 없습니다.”

부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꿈결을 걷는 듯한 표정이 된 제현은 서둘러 인사를 하고 황제 집무실을 떠났다. 그의 아비는 혀를 끌끌 차며 저놈이 누굴 닮아 저러느냐 한탄하였고, 그의 주변은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

“이 꽃은 무어야?”

“들별꽃입니다, 마마.”

“귀여워라, 꽃 이름이 꽃처럼 앙증맞네.”

“산에 가면 더 많답니다. 궁은 평지여서 나무 아래 한두 송이 피는 것이 다이지만요.”

“귀한 꽃이니 더더욱 아껴주고 싶은데……. 하나 산에 피는 꽃은 알아서 잘 자라게 두는 게 맞겠지?”

“예, 마마. 정원을 관리하는 이도 이런 들꽃, 산꽃은 따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니까요.”

깊은 산골에서 살다가 돈을 벌러 입궐하게 되었다는 궁녀 하나에게 꽃에 대한 설명을 듣던 연우는 제 패물 중 하나를 살그머니 건네주었다. 어린 궁녀는 놀라서 고개와 두 손을 동시에 저었으나 연우는 좀체 물러날 줄을 몰랐다.

“받아주렴. 나는 사내여서 이런 패물에는 관심이 없단다.”

“하, 하나 마마, 소녀는 이리 귀한 것은……!”

“하면 이리하자. 내 이것을 줄 터이니 은아는 내게 앞으로도 꽃에 대해 알려주렴.”

“마마…….”

“어서 받으렴. 모시는 이의 마음을 너무 거절하는 것도 서운하단다.”

자그마한 손에 가락지 하나를 꼭 쥐여준 연우가 생긋 웃으며 말을 보태었다.

“나 같은 사내보다야 은아 같은 아이가 이를 하는 게 백 배는 잘 어울려.”

“아, 아니어요, 마마….”

“미안해하지 말렴. 내 정말이지 쓸 데가 없어 너를 준 것이니.”

궁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고서 연우는 쪼그려 앉아 작은 산꽃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꽃잎에 꽃밥이 붉게 뻗어 나와 꼭 점이 찍힌 모양새가 신기하였다. 사계절이 뚜렷한 태영국과 달리 은월국은 대개의 날이 추웠다. 하여 초록의 산보다는 하얀 설산을 보는 일이 잦아 연우는 이런 꽃들이 신기하였다.

“귀엽다…….”

제 새끼손톱만 한 꽃을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가만 살펴볼 때였다.

“부인이 더 귀여운 것을요.”

“어…? 저하, 어찌 오셨습니까?”

“부인이 보고 싶어 내 이리 달려왔습니다.”

제 위로 그림자가 지는가 싶더니 묵직한 향이 저를 감쌌다. 연우는 뒤에서 저를 끌어안으며 낑낑대는 태자의 손에 쪽쪽 입을 맞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자는 무엇이 성에 안 차는지 궁인들이 모두 있음에도 저를 끌어안고서 목덜미며 귓불을 앙, 물었다 놓기를 반복하였다. 궁인들 앞에서는 부끄러워 싫다 하였는데도. 미운 일곱 살처럼 구는 태자의 볼을 꼬집은 연우가 그의 눈을 보며 물었다.

“속상한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그저…….”

“예, 그저?”

“……폐하께서 내게, 부인이 귀찮을 것이라 하질 않습니까….”

그래서 이리 풀이 죽었구나. 연우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툴툴대는 태자도 좋아 환히 웃으며 말하였다.

“좋기만 한 것을요… 물론 밤에는 조금 과하시지만.”

“저, 정녕 그리 생각하십니까? 매일 너무 힘드신, 그렇다면 내게 말을 하세요, 부인!”

아바마마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제현은 태자비의 팔을 살살 흔들며 물었다. 정말 싫었던 것입니까? 하지 말란 말이 진짜 하지 말란 말이었습니까?

애가 타 곧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태자에 궁인들이 모두 웃음을 참고 있는 걸 알긴 하는지. 연우는 가만히 태자의 귀를 끌어와 말하였다.

“아니어요. 소첩은 매일 저하와의 밤만을 기다리는 것을요.”

“그, 그렇지요…?”

“예, 저하. 게다가 근래에는 몸에 열도 올라서… 저하가 곁에 계시면 열이 내려 좋답니다.”

“어흠, 그, 지금도 부인께서 열이 나는 듯한데.”

“아니옵니다. 소첩 지금은…… 저, 저하!”

한참 눈을 맞대고서 서로의 귀에 속살거리던 게 감질났는지 제현은 연우를 번쩍 안아 들고서 화원이 아닌 궁 안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건장한 체격에 연우도 작은 몸은 아니었으나 좀체 모습이 보이질 아니하였다.

제현은 버둥대며 놓아 달라 청하는 태자비를 혹하게 하려 제 체향을 풀었다. 밤에만 풀고 싶었으나 지금 당장 부인을 취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 이래도 싫다 할 것이냐 묻기도 전에, 연우는 향에 취한 듯 남편의 가슴팍에 볼을 비볐다. 불퉁히 입술을 삐죽였으나 제현은 그도 어여쁘다며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들 뿐이었다.

“해가, 지지 않았는데…….”

“아닙니다, 부인. 저것은 달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눈이 부시게 밝은 저게 달이라고? 연우는 어이가 없었으나 제가 달이라 하면 달이라 믿으라는 식의 태자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이제 되었구나. 제현은 질 나쁘게 웃으며 걸음을 재게 놀렸다. 어서 들어가서 이 몸을 모두 발라먹어야지. 하나 저를 감시하는 눈 역시 적지 않았다.

“저하, 이국 정세 수업은…….”

“그 정세보다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게 있으니 금일의 수업은 내일로 미루도록.”

“예, 저하. 말씀 받잡겠사옵니다.”

“앞으로 내 태은궁으로 발걸음 할 때는 알아서 뒤의 수업을 비워 두거라.”

황손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하지 않은가?

뻔뻔스레 하는 말에 궁인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으나 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인만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황손이고 자시고 저는 부인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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