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비상구의 방향
새벽의 찬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자 코가 찡했다.
밤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면 긴장하고 다녀야 할 만큼 달동네의 새벽은 유독 어두웠다. 두영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으로 벽을 짚으며 걸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을 지나쳐 길목을 꺾는 순간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와 두영을 붙잡았다.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 나오는 걸 몸소 증명했다. 두영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게 발버둥 쳤다.
“나야!”
귀에 익은 목소리에 두영이 멈칫했다. 긴장을 풀고 음영이 진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저보다 놀란 듯한 홍승표가 보였다. 홍승표는 어울리지 않게 난처한 모습을 했다.
“…내가 다시는 이렇게 붙잡나 봐.”
“뒤, 뒤에서… 그래서 놀랐, 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두영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낸 홍승표가 두영이 얼마나 놀랐는지 궁금하다며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은근히 힘이 실린 손은 다른 의도를 명확히 품고 있었다. 두영은 몸서리치며 그의 손을 떼어 내고 머뭇머뭇 물었다.
“어, 언제 왔어? 많이 기다, …서 있었어?”
“금방 왔고, 너 기다린 거 맞아.”
건방져 보이는 것 같아 일부로 말을 바꾼 건데. 홍승표는 용케 알아듣고 반응해 주었다. 이럴 때마다 입천장이 간지러웠다.
“왜… 기다렸어?”
“너 알바 하는 거 구경하려고.”
“별거 없는데…….”
“나 신경 쓰지 말고 해. 최대한 자연스럽고, 최대한 섹시하게.”
홍승표는 누가 저를 때린다면 같이 때려 주라고 했다. 그럼 개소리는 개소리로 보답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두영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모범생처럼 어떤 개소리를 해 줄지 고심했다. 그러다 홍승표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냉큼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달동네를 벗어나 평탄한 길로 내려왔다. 큰 도로의 불빛까지 비쳐 오자 두영은 그제야 홍승표가 얼마나 가벼운 차림으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인간 핫팩 홍승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두영은 직접 말은 하지 못하고 힐끔힐끔 훔쳐볼 뿐이었다. 기민한 홍승표가 자기 옷차림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눈썹을 까딱였다.
“걱정 마. 안 추워.”
“오늘 춥다고 했는데…….”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몸 아프면 서러우니까.”
“그럼 네가 간호해 줘. 나도 서러울 예정이니까.”
두영은 어색하게 입술을 꾹꾹 깨물었다. 서럽지 않기 위해 아프지 말자는 건데……. 홍승표는 항상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들었다.
몇 년째 새벽에 홀로 걸었던 길이 홍승표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 새로운 길이 되었다. 오늘따라 사무실에 빨리 도착한 것 같아 묘하게 아쉬움이 아른거렸다.
사무실에 들어간 두영은 냉큼 오늘치 우유만 챙겨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홍승표가 굳이 사무실로 안쪽을 비집고 들어왔다. 두영은 저도 모르게 그의 옷가지를 붙잡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이미 강순자의 눈에 홍승표가 들어온 직후였다.
“세상에. 두영이 친구 아이돌이야?”
강순자가 홍승표를 향해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두영은 부디 홍승표가 인성질을 하지 않기를 속으로 빌며 대답했다.
“오,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두영이 친구예요.”
지극히 예의를 차리는 홍승표의 모습에 두영은 꽉 막힌 위장을 쓸어내렸다.
“남자 친구.”
덧붙인 그의 말에 다시 위장이 타들어 갔다.
“아아, 베프 말하는 거지? 하하!”
“아하하…….”
생각보다 견고한 세상의 편견이 두영의 위장을 지켜 주었다.
“근데 친구 키가 어떻게 돼? 쳐다보는데 목 꺾이겠네.”
두영은 강순자를 따라 자신의 뒤쪽에 비스듬히 선 홍승표를 올려다봤다. 시선을 느낀 홍승표도 고개를 살짝 기울여 눈을 맞췄다.
“두영이보단 조금 커요.”
“두영이도 키만 더 크면 딱 좋을 텐데. 내가 다 아쉬워.”
“더 안 커도 됩니다. 한 품이라 딱 좋아서.”
“둘이 많이 친한가 봐?”
“예. 한 이불 덮고 잘 만…….”
“오, 오늘치! 오늘치 빨리 주세요!”
두영은 어울리지도 않게 쾌활한 척을 하며 오늘치 할당량을 자전거에 실었다. 출발하기 전 강순자가 새로 추가된 집 주소를 알려 주었다. 두영은 주소를 잘 새겨듣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푸른 어둠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별안간 홍승표가 두영의 손에서 자전거 빼앗아 대신 끌었다. 그리고 눈짓으로 우유를 가리켰다.
“저게 다야?”
“응……. 나는 거의 꼽사리라 양이 별로 없어.”
“꼽사리?”
“몇 년 전부터 인력 줄이느라 나처럼 소량으로 배달하는 사람은 잘 써 주지 않아. 나도 원래 그때쯤 그만둬야 했는데 사장님이 내 형편 아시고 소량으로 일거리 떼어 주셨어.”
“언제부터 이 일했는데?”
“중학생 때부터…….”
두영은 누군가에게 제 얘기를 하는 게 어색해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순차적으로 배달을 하는 동안 홍승표는 직접 자전거를 몰아 보거나,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두영을 뒷자리에 태웠다.
“꽉 잡아.”
“…….”
두영은 홍승표의 옆구리를 얄팍하게 잡았다. 곧바로 홍승표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중간에 낀 상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가 페달을 힘차게 밟고 나아갔다. 찬 바람을 막아 내는 홍승표의 덩치 덕분에 얼굴이 시리지 않았다. 두영은 눈을 감고 제 몸을 감싸는 홍승표의 체취에 집중했다.
추운 계절에 그를 만나서 그런 걸까? 그의 체취를 맡으면 겨울 숲이 떠올랐다. 문득 봄에 만나면 봄의 숲 같을지, 여름에는 여름의 숲 같을지 궁금해졌다.
두영은 머뭇거리다가 홍승표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생각보다 허리가 가늘었다. 넓은 등판에 뺨도 기댔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우유 상자에 명치가 짓눌렸지만 참을 만했다. 얼굴에 닿은 온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승표야.”
“응.”
“나랑 같이… 아침 먹을래? 비싼 건 아닌데…….”
“내 입 엄청 싸구려야.”
확고한 자기비판에 두영은 입술이 간지러웠다. 그 순간 잘 달리던 자전거가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새벽이라 지나다니는 차가 없었지만 그래도 위험했다.
두영은 허리를 세우고 홍승표의 뒤통수를 보았다. 마침 홍승표도 고개를 뒤로 돌려 시선을 맞췄다.
“왜 그렇게 웃어?”
“안… 웃었어.”
“아냐 웃었어. 엄청 야한 목소리로.”
음습한 시선이 두영의 입술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두영은 민망해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시선 끝에 첫 차 운행을 시작한 버스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빨리… 빨리 가.”
재촉하는 말을 또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홍승표는 안광을 빛냈다. 마음이 급한 두영이 뒷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홍승표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일부러 근엄한 표정을 지은 두영은 원래도 잘 안 웃었지만, 더 웃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그러다 배달할 곳을 건너뛰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두영은 우울한 낯짝으로 홍승표한테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표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꼬리를 연신 씰룩거렸다.
오늘 추가된 집은 홍승표의 집과 5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손에 우유를 쥔 두영은 홍승표에게 힐끗 시선을 주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 금방 갔다 올게.”
그리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냉큼 아파트로 뛰어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기다림을 전하는 말이 이 정도로 심장이 쿵쾅쿵쾅 뛸 일인가 싶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는 한 동밖에 없었고 9층까지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뒤늦게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점검으로 인한 나흘간 운행 정지였다. 오늘이 그 나흘째였다.
배달할 집은 903호였다. 두영은 착잡하게 비상구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묵묵히 계단을 올라가다가 7층 계단참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4층부터 센서 등이 켜지지 않아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져 서둘러 9층까지 올라갔다.
중앙 비상구 문을 열고 나가 복도 좌우를 둘러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비상구 맞은편 집이었다. 발소리 없이 걸어간 두영은 우유를 보관 주머니에 집어넣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야.”
어느 남성의 목소리에 두영은 흠칫 놀랐다. 환청을 들었다고 되뇌며 다시 비상구를 향해 걸어갔다.
“야 시발 허두영.”
이번에는 정확히 이름이 불렸다. 쇠가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방금 우유 배달을 끝낸 집 현관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이는 김진호였다.
“내가 널 우리 집 앞에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집?”
“여기.”
김진호가 복도 쪽으로 난 창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내 방이거든.”
입에 담배를 문 걸 봐선 담배 때문에 나온 것 같은데 불붙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김진호는 우유 가방에서 우유를 꺼내 들고는 보석 감정하듯이 세심하게 훑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던 두영은 다시 몸을 돌렸다.
“야 안 멈춰?”
그의 명령에 두영은 우뚝 멈추었다. 무시하고 싶었는데 뼛속에 각인된 똥개 세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존나 오랜만이다? 근데 반가운 건 나뿐인가 봐?”
두영은 마지막으로 김진호를 봤을 때가 언제인지 생각했다. 1월.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두영은 아직도 그날 일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그러나 안 좋은 기억보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항상 먼저 생각났다.
“그날 홍승표랑 잘 돌아갔냐?”
두영은 김진호가 어떻게 그날 일을 알고 언급하는지 의아한 표정을 띄웠다. 김진호는 기가 찬지 헛웃음을 뱉었다.
“이건 뭐 똘추 새끼 아니야. 니가 이래서 왕따나 당한 거야. 넌 주변을 좆도 안 돌아보거든. 졸업식에 존나 재밌는 일 있었다며?”
두영은 무심코 주먹을 쥐었다. 그때 찍힌 사진이 김진호한테도 공유된 건가? 김면식은 이주학뿐만 아니라 김진호랑도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곱슬머리가 보여 준 건가?
“구 체육관에서 김면식이랑 이철호, 박승준 나체로 김장 됐다면서. 몰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저는 종일 화장실에 있어서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 했다.
김진호는 발등을 덮은 검은색 츄리닝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두영을 빤히 쳐다보며 표정을 읽으려고 했다.
“지들 후장 빨아 주는 영상까지 퍼졌어. 정말 몰라?”
두영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 시발 존나 애지중지하네. 그러겠지. 너는 모르겠지. 이런 짓 할 사람은 홍승표 한 명뿐이니깐!”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이라 김진호는 크게 소리 내지 못했다. 그는 최후의 발언을 한 것처럼 눈에 이채가 가득했다. 동시에 악에 받쳐 있기도 했다.
하지만 두영은 대체 뭐가 그를 화나게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됐다. 김면식이 당한 일에 화가 난 건가? 어차피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넌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홍승표가 영상 찍은 거 말이야, 씨발.”
그제야 두영은 김진호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알아차렸다. 홍승표를 향한 분노였다. 김진호는 홍승표를 매도할 자격이 없었다. 설령 그의 말이 사실일지언정 자신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도 없었다. 홍승표를 매도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무결한 사람이어야 했다.
두영은 무심한 표정으로 김진호를 응시했다. 조금도 자극받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게 먹혀들었는지 김진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 너 진짜 그 새끼 좆 빨아 줬냐?”
“…….”
“…진짜 빨아 줬나 보네. 그럴 거면 시발, 내 것도 빨아 주지 그랬냐. 창놈 새끼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오래 승표를 기다리게 했다. 두영은 비상구 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뒤따라온 김진호가 두영을 벽으로 밀쳤다.
“윽……!”
“어디 가 시발놈아, 빨아 주고 가야지……!”
입술에 역겨운 촉감이 닿았다. 물컹하고 더러운 것이 입 속으로 들어왔다.
“싫, 윽, 흐지, 므읍……!”
“혀 좀 놀려 보라고 창놈, 아악!!”
두영은 김진호의 혀를 깨물었다. 곧바로 머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며 시야가 뭉개졌다. 김진호는 두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발기한 성기를 두영의 몸에 문질렀다. 귓가에 더러운 숨결이 쏟아졌다. 두영은 쇠꼬챙이로 제 귀를 찌르고 싶었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미친놈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언뜻 김진호에게서 술 냄새가 맡아졌다. 더한 혐오가 속에서 들끓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당장 게워 내고 싶었다.
두영이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보자 김진호가 두영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챘다. 살가죽이 뜯어지는 것 같았다.
“너도 참 너다. 그렇게 비싸게 굴더니 고르고 골라 홍승표냐? 결국 너도 똑같이 몸 파는 새끼야.”
“고른 적, 없어……!”
고르는 입장이 되어 본 적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이 저를 씹어 삼키려고만 들었지 아량을 베푼 적은 절대 없었기에.
“옛날부터 궁금했어. 왜 이주학이 너만 보면 미친놈처럼 구는지. 넌 안 그래? 이주학이 너랑 친해지고 싶은 건지, 약점 잡고 휘두르고 싶은 건지 존나 헷갈리게 굴었잖아. 그런 이주학이 너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남창이라고 하더라? 물론 나는 처음에는 안 믿었지. 걔 허언증 심한 거 너도 알잖아. 근데 너 하는 거 보니까 갑자기 신뢰가 쌓이네? 너 진짜 원조 뛰냐?”
이주학과 김진호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친해진 사이였다. 김진호는 워낙 잘난 이들에게 이리저리 달라붙는 간신배라 그가 이렇게 이주학을 무시하는 언동을 보여도 딱히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만 친해지고 싶었다는 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만약 저를 괴롭힌 이유가 친해지기 위해서라면 그딴 친구 영원히 없는 게 나았다.
그리고 자신은 이주학이 남창이라고 부를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돈이라도 받았으면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홍승표가 지갑에 넣어 준 돈이 떠올랐다.
사실 저도 모르게 남창이 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그가 사 주는 옷을 입고, 그가 주는 음식을 먹고…….
김진호는 두영의 가라앉은 낯빛을 발견하고 비릿하게 웃었다.
“홍승표 그 새끼는 우리랑 달라. 걔가 언제까지고 너랑 어울려 줄 것 같아? 걔가 입고 다니는 옷, 시계, 차, 그것만 봐도 사이즈 안 나오냐?”
이미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을 타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 힘이 빠졌다. 애써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홍승표와 자신의 생활 수준을 비교하는 것. 무얼 받든 순수한 마음으로 받지 못하는 것. 얼마인지 몰래 확인하고 혼자 초조해하는 것. 결국 제게 남은 건 지독한 허무함뿐이었다.
두영은 어두운 곳에서도 보일 만큼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쭐해진 김진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계속 입을 놀렸다.
“홍승표 그 클럽 단골이더만. 거기가 얼마나 미친 새끼들만 오는 곳인지 넌 아냐? 너 덮친 새끼들이 한 짓, 거기 룸 수만큼 일어나. 그런 곳 단골이 홍승표라고. 너는 잠깐 가지고 노는 놀잇감이야. 이주학이 홍승표 앞에서 너 따먹었다는 구라 쳐서! 그래서 너한테 관심 가진 거라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옆으로 몸을 틀었더니 다시 벽으로 강하게 밀쳐졌다.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양 손목이 붙들려 머리 위로 고정됐다.
“하긴, 너는 뭐 좋아서 빨아 줬겠냐. 좋아서 엉덩이 대 줬겠냐고. 그 새끼가 억지로 한 거겠지. 잘 들어 허두영, 너는 세뇌당한 거야. 원래 세뇌당한 사람은 자기가 세뇌당한 줄도 몰라. 니가 딱 그런 상황인 거라고. 홍승표가 이주학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똑같은 개쓰레기 새끼지.“
“…알아.”
“뭐?”
두영은 어둠 속에서 눈을 치켜떴다.
“네가, 뭘 알아. 어차피 너도 승표가 차고 다니는 시계 탐나서 짝퉁으로 따라 샀잖아. 승표가 앉아 있는 방식도, 승표가 자주 하는 습관도 전부 따라……!”
두영은 재차 머리가 돌아갔다. 눈앞이 흔들릴 만큼 강한 충격이었다.
“시발년이 머리통 뽀개 버릴라. 사람이 좋은 말을 해 줬으면 좋은 말로 돌려줘야지. 시발 기본 매너 초딩 때 안 배웠냐? 너 설마 진짜 홍승표 좋아하냐?”
두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김진호는 사늘한 얼굴로 두영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새끼 떡 치다 몸정 들었네. 그럼 니 아다 떼 간 놈은 이주학이냐, 홍승표냐? 아님 박은식이냐?”
두영이 눈에 심지를 세웠다.
“그렇게 보면 뭐. 박은식은 성역이다 이거야? 홍승표는 알고 있냐? 니가 박은식 영상 보면서 딸딸이 친 거 알고 있―.”
이번에는 김진호의 얼굴이 돌아갔다. 처음 사람을 때리는 게 어렵지 두 번째 쉬웠다. 상대가 김진호라면 더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 이 시발 개년이!!”
김진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눈을 질끈 감은 두영은 곧 다가올 폭력을 대비했지만, 얼굴이 돌아가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뜨자 김진호가 한 손을 허공에 든 채 계단 아래를 보고 있었다. 뒤늦게 두영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반 층 아래에서 남은 계단을 마저 걸어오는 발소리는 무음이었다. 모든 계단을 밟고 올라선 홍승표의 시선이 김진호의 치켜 올라간 손에서 두영의 붉어진 뺨에 닿았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직접 걸어오게 만든 곳에 누가 사나 궁금했는데. 일단 그 손 좀 놓지?”
“…어, 없는 게 아니라 고장 난 거야.”
“손 치우라고.”
김진호가 욕을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리 와, 허두영.”
“…….”
“같은 말 또 하게 하지 마.”
두영은 홍승표를 향해 느리게 걸어갔다. 겨우 몇 발짝 뗐을 뿐인데 성질 급한 홍승표가 두영의 손목을 틀어쥐고 등 뒤에 세웠다. 그는 김진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그, 그렇게 보면 시발 뭐 어쩔 건데.”
“…생각 중이야.”
“니가 생각하면 뭐, 죽이기라도 할 거냐?”
홍승표는 제 등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두영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불쑥 두영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터진 입술에 의문의 타액도 묻어 있었다. 홍승표의 턱에 힘이 들어가자 어금니가 짓이겨지는 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왔다.
“내가 우스운가 봐?”
툭 던져진 말에 두영은 내리뜬 시선을 들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다음 말을 듣고 독백임을 알아차렸다.
“왜 자꾸 함부로 건들지? 이해가 안 돼. 나도 아까워서 절절매는데.”
“미친 새끼. 잠꼬대는 자면서 해라. 너 피피 단골이라며? 거기가 어떤 곳인지 제일 잘 아는 네가 어디 설명 좀 해 줘 봐라.”
홍승표가 한쪽 눈을 찌푸리자 김진호가 더욱 샐쭉거렸다.
“야 홍승표 니 수준에 맞게 놀아. 그딴 게이 동영상이나 찍지 말고. 아 혹시 똥개 새끼한테 비밀이었냐? 니가 졸업식에서 한 짓.”
“맞아. 내가 한 거.”
“…뭐?”
희열감에 눈을 번뜩이던 김진호가 한순간 꺼벙해졌다.
“내가 했다고. 딱히 숨기지도 않았어.”
“진짜 또라이 새끼 아냐…….”
“너희들도 숨기지 않았잖아.”
두영은 눈을 크게 뜨고 경직했다. 어쩐지 홍승표의 뒷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김진호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순간에 낯빛이 창백해졌다.
“무, 뭔 개소…….”
“박은식.”
그 순간, 고장 난 센서 등이 켜지고 당황한 김진호의 표정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김진호는 억지로 인상을 구기며 어리숙한 표정을 숨겼지만, 광대 근육의 떨림을 가릴 순 없었다. 홍승표는 김진호를 너그럽게 보다가 덧붙였다.
“네가 그랬다며?”
“누, 누가 그래?! 이주학이 그러디?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이미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영상으로 본 것밖에 없어!”
홍승표가 한쪽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렸다.
“뭘 쫄아. 그냥 찔러 본 건데.”
눈 깜짝할 새에 김진호의 앞으로 다가간 홍승표는 다리를 군더더기 없이 휘둘러 김진호를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김진호의 팔을 비상구 문 사이에 끼워 넣고 팔꿈치를 밟았다.
그는 새하얗게 질린 두영에게 슬쩍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눈 감아.”
그리고 두꺼운 비상구 철문을 세게 닫았다.
“으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에 두영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홍승표는 문이 맞물릴 때까지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김진호의 팔을 두 동강 냈다. 센서 등이 정신없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 아래 홍승표가 비명을 지르는 김진호의 입을 신발 밑창으로 짓밟는 게 보였다. 그러다 불이 제대로 켜진 순간,
두영은 홍승표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언제부터 저를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홍승표의 눈이 평소보다 약간 크게 뜨여 사백안처럼 보였다.
문고리를 놓은 홍승표는 꺼질 듯한 날숨을 뱉는 두영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다시 김진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앞으로, 우유 입에 대지도 마.”
말을 마친 홍승표는 두영을 손목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두영은 잡힌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손목을 억세게 쥔 홍승표는 앞만 보고 내려갔다. 세 칸씩 내려가는 그를 따라가기 벅찼다.
“자, 잠깐…….”
1층에 가까워졌을 때 두영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홍승표는 그대로 두영을 받쳐서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씹어 먹어 버릴 듯 두영의 입술을 깨물었다. 혀를 집어넣고 좁은 곳을 거칠게 휘저었다. 엉덩이를 가득 쥐고 끌어당겨 맞닿은 아래를 문질렀다.
난폭한 그의 손길에 두영은 더럭 겁이 나 도리질 쳤다. 입 안에 침입한 혀를 제 혀로 밀어 냈지만 도리어 스스로 문대는 꼴이었다. 거대한 몸에 밀려 뒤통수가 몇 번이나 벽에 부딪쳤다.
눈을 감지 않은 채 두영을 빤히 응시하던 홍승표는 두영의 뒤통수를 손으로 감쌌다. 목구멍까지 혀를 집어넣고 난장을 피우듯 녀석을 탐닉했다. 이건 순수하게 더러운 오물을 정화하는 의식이었다. 그러니 녀석이 반항하건 말건 제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제 품 안에서 떠는 몸을 달래 주지 않고 더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긴 입맞춤이 끝나자 두영은 가슴을 들썩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홍승표는 무심한 눈으로 두영을 내려다보며 매정하게 내뱉었다.
“상처받은 표정 하지 마. 내가 상처받을 것 같으니까.”
소리 없이 울던 두영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닦았다.
“네 주변은 하나같이 쓰레기들뿐이야.”
“…….”
“근데… 내가 그 쓰레기들 중에 하나야. 그래서 속이 뒤집혀.”
홍승표는 두 팔 가득 두영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널 달래 줘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렇게 잘 안돼. 그 새끼들보다 더 추잡하게 괴롭히고 싶어. 더, 더 모질게 굴고 싶어. 왜 이렇게 병신이 됐는지 모르겠어. 그냥 나는… 네가 가볍지 않아.”
나지막한 목소리가 엷게 떨렸다. 젖은 눈을 느리게 깜빡인 두영은 넓은 어깨에 턱을 괴었다. 비상구 계단의 초록색 픽토그램 빛이 주변을 은은히 밝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소화기도 있었다.
화재 대피 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특별히 별나서 그런 건 아니다.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을 똑같이 지니고 있을 뿐이다.
두영은 살고 싶었다. 제 안의 비상벨이 시끄럽게 날뛰는 걸 들었지만, 지그시 눈을 감아 잠재웠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저를 껴안는 팔에 안심이 되었다.
위로 올라갈 만한 값어치였다.
24시 연중무휴 식당은 이른 시간임에도 꽤 손님이 있었다. 두영은 유리문을 당겨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막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치우던 김춘녀가 고개를 들었다.
“똥강아지, 무슨 일이야?”
“밥 먹으러 왔어요.”
김춘녀는 두영의 뒤에 서 있는 홍승표를 뒤늦게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주름진 손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승표도 잘 왔어. 얼른 앉아. 뭐 줄까?”
창가 쪽과 가까운 자리에 앉은 두영은 콩나물국밥 두 개를 시키고 홍승표를 힐끗 보았다.
“미안…….”
속삭임 비슷한 사과에 홍승표는 겉옷을 옆 의자에 걸다 말고 두영을 보았다. 그리고 한쪽 눈썹을 까딱 움직였다.
“뭐가?”
“할머니가 갑자기 손잡아서……. 누가 몸 만지는 거 싫어하잖아.”
식탁에 팔꿈치를 괸 홍승표는 손바닥으로 턱을 받쳤다. 가늘게 뜬 눈으로 두영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 미워하지 말라며.”
뺨을 긁적거린 두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물 가져올게…….”
그사이 김춘녀는 밑반찬을 가져와 날랐다.
“이 집 국밥 맛있어. 많이 먹고 부족하면 말해요.”
“예, 감사합니다.”
홍승표는 인성 밝은 청년처럼 웃어 보였다. 물통을 가져온 두영은 컵에 물을 가득 따라 홍승표에게 밀어 주었다. 그는 물컵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래서 나 안 만지는 거야?”
“…?”
“먼저 나 안 만지잖아. 나만 맨날 좆 세우고 들이대는데 너는…….”
“스, 승표야…….”
두영은 누가 듣지 않았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한 술 취한 아저씨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 두영은 티슈를 뽑아 홍승표 앞에 두고 수저를 올려 두었다. 그리고 자기 수저는 맨 식탁에 두었다. 두영은 물이 맺힌 물컵 테두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그건 아냐……. 그냥 누가 옆에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자신이 타인을 만지는 걸 떠나서 누군가 저를 만지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불쾌하기만 했던 타인의 접촉이 괜찮은 건 홍승표가 유일했다.
그때 술에 취한 아저씨 중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란 두영이 손으로 물컵을 쳐서 허벅지 위로 쏟았다.
“어이 김 씨! 앉아, 앉아. 옆에 학생 놀랐잖아.”
“그래 얼른 앉아!”
고개를 조아린 두영은 컵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먼저 일어선 홍승표가 두영 대신 컵을 줍고 식탁에 올려 두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영의 바지를 티슈로 털어 주었다.
“내, 내가 할게…….”
“됐어. 떨고 있잖아.”
두영은 주체 없이 떨리는 손을 말아 쥐었다. 김춘녀가 마른행주를 가지고 와 두영에게 건넸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고마워.”
“쯔쯧… 바지가 다 젖어서 우째.”
이런 일이 빈번한지 김춘녀와 다른 직원들이 손님의 술주정을 능숙하게 대처했다.
두영은 다시 의자에 앉아 홍승표가 따라 준 물을 꼴깍꼴깍 삼켰다. 물도 누가 따라 주느냐에 따라 맛이 변하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꿀을 탄 것처럼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주문한 국밥과 시키지도 않은 해물 부침개가 나왔다. 김춘녀가 자기가 사는 거라며 음식을 나르고 다시 조리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들 사이에 늙은이가 끼면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두영은 날달걀을 국밥에 풀며 홍승표를 힐끔 보았다. 다행히 그는 거르는 것 없이 잘 먹었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참지 못한 두영은 날달걀을 국밥에 넣어서 먹는 거라고 넌지시 훈수를 두었다.
“네가 해 줘.”
홍승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덧붙였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대부분 홍승표의 약한 척은 구라에 가까웠다. 두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손에서 날달걀을 건네받았다. 뚝배기에 달걀을 톡톡 두드렸다. 반으로 갈라진 껍질에 노른자를 이리저리 옮겼다. 보기 좋게 노른자를 맨 위에 띄우고 고개를 들자 홍승표가 나른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지극정성이 황송해서 먹기 아까운데.”
“…뜨거우니까, 조심히 먹어.”
소심하게 중얼거린 두영은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가 뜨거워서 도로 뱉었다. 앞에서 가볍게 웃는 소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러다 수저를 드는 듯한 홍승표의 손길에 두영은 힐끗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의 표정이 묘하게 풀어져 있었다. 덩달아 나른해진 두영은 찬물을 머금는 것도 까먹고 홍승표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두영이 겨우 반을 비웠을 때 홍승표의 뚝배기는 국물만 남은 상태였다. 그는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먹고 있어.”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며 밖으로 나간 그는 유리창 앞에 서서 누군가와 통화했다. 두영은 입에 수저를 물고 홍승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늘 졸린 것처럼 흐느적거렸지만, 생각보다 밝고, 쾌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은 모두 별의 아이라고 했다. 그럼 홍승표는 가장 빛나는 북극성이었고 자신은 이름조차 없는 떠돌이 별이었다.
앞쪽에 기척이 느껴져 두영은 고개를 돌렸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김춘녀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할무니 퇴근 시간 됐구나.”
“그려. 가서 장 설 준비나 해야지.”
“집에 바로 안 가시고?”
“저기 박 씨가 술 떡 찌는 것 좀 도와 달라 해서 그거 후딱 알려 주고 일당이나 챙겨야지.”
고개를 끄덕인 두영은 이제는 미지근해진 국밥을 한 숟갈 크게 떠서 오물오물 씹었다.
“친구 덩치가 커서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우. 스호, 새가호다 마이 아 무어.“
“에끼. 다 삼키고 말해. 할미 하나도 못 알아먹어.”
“우우.”
두영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이거 내가 계산했으니까 다 먹고 몸만 나오면 돼. 알았지?”
“잉. 왜 할무니가 계산했어. 내가 사려구 했는데…….”
“잉은 또 무슨 잉이여. 할미가 고마운 게 있어서 그래.”
두영은 숟가락으로 국밥을 휘적휘적 저었다. 저도 고마운 게 있어서 먼저 밥 먹자고 힘들게 말한 건데…….
“할미랑은 자주 못 보니까 이번은 양보하고 나중에 네가 사 주면 되지.”
“으응. 그럴게.”
김춘녀는 기분이 좋은 얼굴로 홍승표의 됨됨이에 대해 칭찬했다. 두영은 지금껏 김춘녀에게 한 번도 친구를 소개해 준 적이 없었다. 홍승표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김춘녀가 저런 얼굴로 홍승표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딴지를 걸 수가 없었다. 김춘녀가 말한 내용 중 90퍼센트는 홍승표의 본모습이 아니었지만, 두영은 그냥 입에 밥을 쑤셔 넣을 뿐이었다.
“…너 좋아하는 게 뭐냐고 전화로 물어보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두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방금 뭐라고 하셨어?”
“친구한테 못 들었어? 네가 밥도 잘 안 먹고 있다며 따로 좋아하는 게 있으면 알려 달라고 전화 왔었어. 너 어렸을 때 환절기만 되면 골골 앓아서 목도 퉁퉁 붓고, 아무것도 못 삼키고, 억지로 먹이면 토하고. 근데 한밤중에 갑자기 복숭아 먹고 싶다고 소리 하나도 안 내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할미 가슴 안 미어지겠어? 그런데 한겨울에 복숭아를 어디서 구해. 급한 대로 통조림이나 사서 먹였지.”
두영은 두 눈을 끔벅였다. 김춘녀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졌다. 목이 아파서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던 어린 날의 자신은 그 이후로 아플 때마다 복숭아 통조림을 먹었다.
달짝지근함이 한계치를 넘어선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꼬리뼈 부근이 간지럽고, 흐물흐물 녹아 버릴 것 같고……. 그렇다고 이 기분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기분이 낯설어 낯가릴 뿐이었다.
“이제 할미 가야쓰겄다. 인나지 말고 어여 먹어.”
“조심히 들어가요.”
두영은 앉아서 김춘녀를 배웅했다. 마침 통화를 끝낸 홍승표가 밖으로 나온 김춘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김춘녀는 자기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두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 두영도 입술을 가볍게 당기며 손을 좌우로 팔랑팔랑 흔들었다.
홍승표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두영이 빤히 쳐다보자 그는 가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팔짱 낀 팔을 식탁에 올리고 얼굴을 들이댔다. 두영은 그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건 줄 알고 얼결에 식탁 안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매끈한 미간을 구긴 홍승표가 짐짓 심각하게 말했다.
“내가 잘생기긴 했지만 그렇게 뜨겁게 쳐다보면 좀 힘들어.”
“…….”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야하게 눈 뜨고. 왜 나 유혹해? 나 지금 섰어. 여기서 빨아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서게 만들어? 내 신체적 피해 보상 어떡하려고. 알지? 난 돈으로 보상 안 받는 거.”
능구렁이 같은 표정으로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홍승표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스며드는 존재가 아니었다. 별안간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흠뻑 젖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했다.
김진호의 말대로 홍승표와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저를 망치는 게 홍승표라면 모든 걸 내줘도 좋았다. 비는 맞으라고 있는 거니까.
두영은 주변이 시끄러워 잠에서 깼다. 누군가가 제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기댄 자세가 편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됐다. 분명 할머니가 일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러고 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의 집에 와서 몸을 섞었고, 사정한 제 성기를 홍승표가 계속 흔들었다. 예민해진 귀두 끝을 손으로 막고 아래를 난폭하게 쳐 대니 제정신일 수 없었다. 그러다 기절한 것 같았다.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홍승표의 목울대가 보였다. 두영은 그의 다리 사이에 앉아 넓은 어깨에 뺨을 기댄 상태였다. 서로 닿아 있는 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홍승표가 두영의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겨 주며 말했다.
“자꾸 눈 깜빡거리지 마. 간지러워.“
그의 말에 두영은 눈을 감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속눈썹으로 홍승표의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있었나 보다.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소음의 정체는 드라이기였다.
홍승표는 건조하게 마른 두영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다가 적당량의 로션을 손에 덜어 두영의 몸에 발라 주었다. 집요한 손길로 엉덩이 사이와 발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바른 후 두영을 놔주었다.
두영은 부엌으로 향하는 홍승표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소파에 몸을 구기고 꾸벅꾸벅 졸았다. 나른함과 피곤함이 합쳐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한 손에 물을 들고 돌아온 홍승표가 처량하게 졸고 있는 두영을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그 앞에 앉아 제대로 구경했다. 마치 먹고 자고 뛰노는 게 전부인 새끼 고양이가 굳이 두 발로 서서 조는 모습 같았다.
홍승표는 두영을 안아 들고 계단을 올랐다.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허두영이 제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며 잠꼬대했다. 녀석의 흔하지 않은 어리광에 뱃속에 똬리 튼 시커먼 기분이 꿈틀거렸다.
침대에 허두영을 눕히고 방금 씻겨서 따끈따끈해진 몸을 사지로 옭아맸다. 민둥산이나 다름없는 음부를 매만지다가 힘없이 처진 음경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녀석이 몸을 뒤척거리며 심통이 난 아이처럼 미간을 구겼다.
그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운 두영을 뒤에서 끌어안고 이번에는 불알을 조몰락거렸다. 축적된 정액을 전부 쏟아 내서 그런지 유독 콩알만 하게 느껴졌다.
홍승표는 두영의 길쭉한 나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훑었다. 튀어나온 척추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내려갔다. 마른 몸에서 유일하게 살푸둥이가 좋은 엉덩이를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렀다.
엉덩이를 한쪽 방향으로 잡아 벌리자 벌게진 구멍이 드러났다. 방금까지 제 것을 맛있게 물고 있던 구멍이었다. 조신하게 다물려 있는 구멍을 엄지손톱으로 긁적이자 녀석이 살짝 움찔거리며 아예 엎어졌다.
떠먹여 주는 걸 굳이 거절할 필요 없었다. 홍승표는 두영의 엉덩이를 깨물고 쪽쪽 빨았다. 순식간에 새로 생긴 키스 마크를 앞니로 갉작거리며 그 옆에 또 다른 흔적을 만들었다.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하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허두영을 보면 계속 만지고 싶었고, 이 구멍에 제 것을 물리고 종일 품게 하고 싶었다. 몇 번이나 녀석을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갈증만 돋을 뿐이었다.
그는 그새 발기한 성기를 구멍 입구에 맞추고 천천히 삽입했다.
“하아…….”
귀두만 넣었을 뿐인데 진한 황홀감이 몰려왔다. 그는 제 것을 오물오물 씹는 구멍을 짙은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여전히 눅진하고 보드라운 내벽이었다.
녀석의 볼기짝에 음모가 비벼질 만큼 성기를 쑤셔 넣고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완벽한 아늑함에 잠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힘껏 들이박아 허두영을 깨우고 싶다가도,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용되는 구멍이 자극적이라 그냥 두었다.
녀석이 눈을 떠도 백치처럼 다리를 벌렸으면 좋겠다. 나사 하나 풀린 것처럼 저만 찾고, 저만 원하고, 저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이 집에 허두영을 가두고 싶었다. 녀석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제 입맛대로 통제하고, 억압하고 싶었다.
서서히 속도를 내며 구멍을 드나들자 이제는 스스로 오물거리는 구멍이 야한 소리를 찌걱찌걱 뱉었다. 홍승표는 한계치까지 벌어진 구멍에 시선을 고정했다. 녀석의 엉덩잇살이 짓이겨지는 시각적 자극에 절정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 순간 두영이 눈을 떴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홍승표가 시선을 겹친 채 사정했다. 두영이 입술을 뻐끔거리며 제 엉덩이와 홍승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홍승표는 두영을 깔고 엎드린 채 아래를 짧게 짧게 드나들었다.
“흐윽, 이게, 뭐…….”
“더 자.”
그가 자장가를 불러 주면 어울릴 듯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두영은 배 깊숙이 들어온 성기에 멍한 정신을 깨우고 앞으로 기어갔다. 그러나 저를 깔고 엎드린 홍승표 때문에 벗어나기가 여의찮았다.
그때 홍승표가 성기를 수직으로 쑤셔 박았다.
“아윽! 기, 깊어……!”
“더 자. 내가, 알아서, 할게…….”
그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두영이 가장 느끼는 곳을 찔러 주었다. 그러자 두영이 울먹거리며 팔을 앞으로 휘저었다. 홍승표는 두영의 손목을 머리 양옆에 잡아 누르고 연신 성기를 뿌리까지 담금질했다.
“거기, 싫, 아아! 흐아아……!“
홍승표는 두영의 턱을 받쳐 들었다. 보송보송했던 얼굴이 금세 눈물 콧물로 범벅이었다. 조용히 그 얼굴을 응시하다가 게걸스럽게 핥았다. 두영이 마구 할딱이며 발등으로 매트리스를 때렸다. 힘겹게 입맞춤을 받아 주는 그 모습에 홍승표는 두영의 눈가에 입술을 문질렀다.
“아팠어?”
턱을 떨던 두영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좋아?”
“…….”
“좋으냐구.“
성기를 깊게 박은 채 원을 그리며 닦달했다. 두영이 눈을 가늘게 접고 입을 살짝 벌렸다. 느끼는 녀석의 얼굴이 야했다. 당장 씹어 버리고 싶을 만큼.
다시 체중을 실어 말뚝을 박자 원래도 비좁았던 구멍의 조임이 더해졌다. 그는 더 들어갈 것이 남은 것처럼 아래를 밀어붙였다. 살 부딪치는 소리가 가히 폭력적이었다. 마른 몸이 불쌍하게 구겨지도록 내몰았고, 발버둥 치는 다리의 오금을 제 발등으로 눌러 제압했다.
“하윽! 아아, 아읏!”
“좋아?”
“조, 좋아… 제발…….”
두영이 애처롭게 속삭였다. 별안간 홍승표가 온몸에 힘을 풀고 두영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그리고 조금의 틈도 없이 밀착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 두영은 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오르가슴에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홍승표 때문에 좀 전과 다른 의미로 목소리가 떨렸다.
“승표, 야… 하지 마. 나 무서워…….”
“…….”
“스, 흐으, 표야, 나 이거, 싫어, 흐윽…….”
두영이 서럽게 흐느끼며 홍승표에게 붙잡힌 손을 흔들었다. 사지가 결박되어 있으니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그렇게 벗어나려고 등허리를 들썩거린 순간이었다.
“흐으으……!”
배 속에 파묻힌 그의 성기가 예민한 곳에 스쳐 두영은 저 혼자 정신없이 가 버렸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침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 의지가 아닌 힘으로 그의 성기를 조이자 잔뜩 예민해진 내벽이 그것마저 자극으로 인식하고 연달아 절정에 치닫게 했다.
순간 사레에 걸린 두영이 거칠게 몸을 흔들며 기침했다. 덩달아 내벽에도 힘이 들어가 또다시 강렬한 쾌감에 발작하듯 몸을 들썩였다.
“나 이상, 해……. 아래가, 울려……. 제발, 승표야…….”
두영은 연이은 절정에 시야가 어룽졌다. 그때 결박된 손목이 풀리고, 커다란 손이 두영의 턱을 붙든 채 반대쪽으로 돌렸다.
두영은 홍승표와 시선이 겹치자 한순간 안심이 되어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를 아이처럼 옹알거리며 울자 홍승표의 가라앉은 눈빛이 더 짙어졌다.
그는 손으로 매트리스를 짚고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 두영의 내벽을 거칠게 들쑤시기 시작했다. 난폭하고 무자비한 허리 짓에 두영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었다.
“아! 힉, 시, 흐어! 그, 마아……!”
홍승표는 이를 악물고 아래를 빠르게 쳐 댔다. 거뭇한 음모가 두영의 볼기짝에 부딪쳐 치즈처럼 늘어났다.
그가 성기를 박은 채 두영을 돌려 눕히자, 두영이 허리를 경련하며 묽은 정액을 질질 쏘아 댔다. 아찔함을 넘어 미칠 것 같은 쾌감에 눈시울이 재차 뜨거워졌다.
두영의 두 다리를 어깨에 걸친 그가 다시 난폭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몸이 반으로 접힌 채 박히던 두영은 홍승표를 엉망진창으로 밀치고 그의 몸에 손톱을 박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그 행동이 홍승표를 부추긴 꼴이 되어 육중한 살덩어리가 배 속을 묵직하게 때렸다.
“조, 흐웁, 좋아, 아으읏! 으응!”
계속되는 사정감에 이제 뭐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터질 것 같은 야릇한 성감에 지배되어 스스로가 뭐라고 내뱉는지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입맞춤을 퍼붓는 홍승표를 간신히 받아 주었다.
그게 무슨 신호라는 된 듯이 홍승표가 두영의 무릎을 매트리스에 닿을 만큼 누른 채로 난폭한 허리 짓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깊어……! 아! 아아!”
“큿……! 하아……!”
그는 처음 싸는 것처럼 오랫동안 사정했다. 좁은 내벽은 그의 씨를 다 품지 못하고, 남은 정액이 구멍 틈으로 흘러나왔다. 단 한 순간도 눈을 깜빡이지 않던 그가 두영의 머리 양옆에 팔꿈치를 괴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안아 줘.”
애정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너무 안타까워서, 너무 애틋해서 두영은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그의 목에 팔을 감아 조였다. 홍승표는 두영의 등과 뒷덜미를 손으로 감싸 미약한 조임에 힘을 더했다.
상체가 일으켜 세워진 두영은 뱃가죽을 뚫고 나오려는 그의 성기에 기겁하며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홍승표가 곧바로 두영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아 누르며 아래를 매섭게 쳐올렸다.
“흣, 흐윽…….”
두영은 이제 더 이상 버틸 만한 체력도, 기력도 없었다. 제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성기가 무서우면서도 그 안에 싹트는 이상야릇한 쾌감에 덜컥 서러워져 눈물을 떨구었다.
홍승표는 축축하게 젖은 두영의 얼굴을 붙들고 뺨에 남은 물 자국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핥았다. 볼을 양쪽에서 누르자 두영의 입술이 앞으로 삐죽 나왔다. 그 입술이 부을 때까지 물고 빨다가 슬쩍 떨어졌다. 그러자 두영이 훌쩍거리며 다시 입술을 비벼 왔다.
눈을 게슴츠레 뜬 홍승표가 허리 짓을 멈추자 이번에는 두영이 엉덩이를 스스로 흔들어 가며 아래를 마찰했다. 이어진 하체는 서로의 체액으로 진득하게 젖어 물소리가 걸쭉하게 울렸다.
침대 머리에 반쯤 기대 누운 홍승표가 자기 팔뚝만 한 걸 품고 움직이는 두영을 눅눅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두영이 그의 배를 손으로 짚고 개구리처럼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그러다 자세가 불편한지 무릎을 내리고 앞뒤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하앗, 아아… 흐응…….”
힘없이 서 있는 두영의 성기에서 묽은 정액이 찔끔찔끔 터졌다. 자기가 이미 간 줄도 모르고 계속 아래를 문지르는 녀석은 발정제를 먹은 것같이 눈에 초점이 풀려 있었다. 자신의 움직임이 답답한지 녀석은 다시 무릎을 세우고 철퍽철퍽 주저앉았다.
턱에 힘을 준 홍승표가 크림처럼 엉킨 아래를 주시했다. 순백의 살이 검붉은 자지를 삼키는 게 외설스러웠고, 부도덕해 보였고, 돌아 버릴 만큼 아찔했다.
“승, 표야… 움직여, 줘. 젭… 아아!”
그 말을 들은 홍승표가 무섭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거친 경주마를 탄 듯이 엉망진창 흔들리는 두영이 자꾸 위로 튕겨 올라가자 그는 두영의 골반을 붙잡고 아래로 잡아 앉히며 퍽퍽 치댔다. 두영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달아나려 하자 홍승표의 허리 짓이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빨라졌다.
그의 허리가 허공에 띄워지자 중심을 잡지 못한 두영이 뒤로 나자빠졌다. 팽팽해진 뱃가죽이 비정상적으로 들쭉날쭉 튀어나왔다. 두영은 시트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흐물흐물한 두영의 성기에서 분수가 터지고 두 사람의 주변으로 맑은 액체가 흩뿌려졌다. 그 순간 홍승표는 두영의 팔을 잡고 다시 제 몸에 얹었다. 그 상태로 성기를 짧고 굵게 퍽퍽! 하고 처박으며 사정했다.
두영은 한참이 지나도 정신이 맑게 돌아오지 않았다. 강렬한 절정의 여운에 덜떨어진 모습으로 있었다.
홍승표는 씨근덕대는 두영의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몸 이곳저곳에 부드럽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그의 애틋한 입맞춤은 두영을 지독한 탈력감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정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서로를 탐할 뿐이었다.
두영은 갑자기 아래로 몸이 쑥 꺼져 팔을 허우적댔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추락한 몸이 딱딱한 바닥과 부딪치며 눈이 번쩍 뜨였다. 곧바로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두영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침대 아래로 떨어진 것을 알아챘다.
방금까지 꾸었던 몽글몽글한 꿈 때문에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작은 동물들과 들판에 누워 낮잠 자는 꿈이었다. 집채만 한 짐승도 나왔는데 빠르게 기억이 흐려졌다.
항상 무언가로 도망치는 악몽만 꾸다가 몸이 늘어질 만큼 나른한 꿈을 꾸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추락하는 꿈은 키가 크는 꿈이라고 하던데. 혹시 이제라도 키가 크려는 건지 몰랐다.
두영은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폭신하고 말캉한 매트리스 엎어져 시트에 얼굴을 마구 문댔다. 홍승표가 새 시트로 교체한 모양인지 잠이 들기 전에 눅눅했던 시트가 보송보송해져 있었다.
갑자기 두영이 베게 하나를 끌어안고 조용히 앓았다. 이불이 젖은 이유가 자신이 참지 못하고 물 같은 걸 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움직여 달라고 홍승표를 보채기까지 했다.
애꿎은 베개만 푹푹 때리던 두영은 문득 집 안이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아래층으로 내려왔지만, 그곳에도 홍승표는 없었다. 아무래도 외출을 한 모양이었다.
집주인이 없으니 넓은 집이 광활하기만 했다. 가구도 큼지막한 소파만 달랑 있어서 더 썰렁했다. 집 안으로 찬 바람이 부는 듯하여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목이 타서 부엌으로 향한 두영은 습관처럼 수돗물을 마시려고 했다가 건조대 위에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코앞으로 가져온 종이에는,
[목마르면 홈바 위에 있는 물 마셔.]
라고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두영은 홈바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코코아색 머그잔과 500mL 생수, 홍승표의 휴대폰이 있었다. 폰 위에도 쪽지가 있는 걸 발견한 두영은 냉큼 거리를 좁혀 쪽지 내용을 확인했다.
[전화 오면 받아. 집에 가지 말고 기다려.]
두영은 간결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움푹 파인 필체를 손끝으로 쓸었다. 무생물인 종이에서 생명이 느껴지고 온기가 느껴졌다. 아마 홍승표가 남기고 간 쪽지라 그런 걸지도 몰랐다. 어쩐지 마음이 저렸다.
눈동자에 각인될 정도로 쪽지를 훑고 난 뒤 고이 접어 홈바 한편에 밀어 두었다. 집에 갈 때 가져갈 생각이었다. 뒤늦게 휴대폰에 시선을 주었다. 혹시나 자고 있던 사이에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해서 최근 착신 내역을 확인했다. 다행히 못 받은 전화가 없었다.
두영은 검지 끝으로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집에 저밖에 없다고 확신이 서자 갑자기 안 하던 짓이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막상 뭐부터 구경해야 할지 몰라 아무 생각 없이 연락처에 들어갔다. 그리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깔끔하게 이름 석 자로 저장된 번호가 천 개를 조금 넘었다.
왠지… 괜히 확인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홍승표에게 느껴지는 벽이 있었는데, 방금 그 벽이 더 커지고 단단해졌다. 덩달아 그가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자신은 종일 휴대폰 없이 다녀도 불편한 거 하나 없을 만큼 인간관계가 좁았다. 그런 저와 비교하면 홍승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파워 인싸였다.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끼리끼리 만나는 것처럼, 짚신도 제짝이 있는 것처럼 홍승표와 자신은 서로의 짝이 아니었다. 저는 태생부터 초라했고 홍승표는 태생부터 눈부신 존재였을 테니까.
가슴이 갑갑하여 구부린 등을 폈다. 그때 이름 석 자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상한 이름을 발견했다.
[오목눈이.]
얼결에 번호를 확인한 두영은 두 눈을 끔뻑였다. 오목눈이는 자신이었다.
“왜… 오목눈이?”
아니, 그 전에 오목눈이가 뭐지? 눈이 오목한 건가?
한동안 화면 위에 뜬 네 글자를 조용히 응시하던 두영은 화장실로 뛰어가 거울을 봤다. 발꿈치까지 들고 더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오목눈이?”
피곤하면 눈꺼풀이 푹 꺼지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목할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찜찜한 기분으로 홈바에 돌아온 두영은 다음 염탐할 곳을 골랐다. 역시 만만한 건 사진첩이었다. 그런데 최근 사진부터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두영이었다. 시간을 보니 오늘 아침에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이었다.
“으엥… 나 왜 이렇게 자지?”
이불을 보쌈처럼 두른 자신은 한 마리 새우처럼 옹송그리고 있었다. 옆으로 넘겨 보니 다른 날에 찍은 사진이 수십 장은 족히 넘을 정도로 있었다. 공통점은 모두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을 때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더불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 안쪽으로 오므린 손가락, 손톱, 속눈썹 등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 많았다. 무슨 집요한 변태의 섬세한 기록 같았다.
지워 버릴까.
두영은 진심으로 고민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후환이 두려워서 못 지운 건 아니었다. 저로만 가득한 사진첩에서 낯선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고, 언젠가 유재민이 했던 말이었다. 두영은 낯선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지금 느껴지는 낯선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단순히 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불편할 뿐이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제 사진을 옆으로 넘기던 중 동영상이 하나가 나왔다. 두영은 자동으로 재생되는 영상을 아무 의심 없이 보다가 순간 낯익은 영상 속 배경에 멈칫했다.
구 체육관이었다.
두영은 휴대폰 화면이 바닥으로 향하게 내려놓았다.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우후죽순 떠오르는 잡념에 자아가 먹혀 버릴 듯했다. 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무슨 영상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쌍수를 들고 싸웠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두영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뒤집었다. 망설이는 손끝이 기어코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자살했어. 집에서 목매달고.’
초반부터 파격적인 대화 내용에 정신이 아찔했다. 두영은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목소리에 휴대폰 모퉁이에 고정한 시선을 옮겼다. 쌍꺼풀과 곱슬머리였다.
천 쪼가리 한 올 걸치지 않은 그들의 몸은 푸른 멍투성이였다. 그 너머에는 바닥에 드러누운 김면식도 있었다. 그 또한 맨몸이었다.
‘그, 근데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전부 이주학이 혼자 저지른 짓이야……!’
‘친했다며. 이주학이랑 박은식.’
두영은 홍승표의 목소리에 숨을 들이켰다. 박은식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이유가 이렇게…….
'치, 친했어……!'
'안 친했어!.'
쌍꺼풀과 곱슬머리의 대답이 엇갈렸다. 영상 속 홍승표가 옅은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그는 따분함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친하거나 모르거나 하나만 해. 그리고 너, 자꾸 모르는 척하지 마. 아까는 잘만 불었잖아. 너희가 지금 해야 할 건 비밀을 지키는 게 아니라, 너희 앞날을 걱정하는 거야.‘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은 화면 너머에 있는 홍승표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쌍꺼풀부터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박은식이랑 똥, …허두영이라 친했어. 근데 박은식이 이주학한테 붙더니 허두영 따 시키더라…….‘
바통을 이어받은 곱슬머리가 덧붙였다.
'나도 이주학이랑 같은 중학교 나와서 아는데 걔 옛날부터 문제 존나 많았어. 애들 따 시키고 그 애들 나체 사진 찍어다가 협박하고……. 그 덩치에 지 아빠한테 존나 처맞으면서 큰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달라지는 거 없더라. 똥개 따먹는다고 좆같이 지랄하던 새끼였는데…….'
'그,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허두영 노리는 줄 알았지. 근데 갑자기 박은식이라니……. 고1 여름 방학 끝나고 학교 오니까 박은식이 자살했단 소리를 들었어. 다들 왜 죽었는지 수군대기만 하고 이유를 몰랐는데, 이주학 패거리 몇 명이 징계받는 거 보고 대충 감 잡았지…….'
그 후로도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러나 두영은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역겨운 음식을 먹은 듯 구역질이 났다.
영상을 끄고 싶었지만, 이 또한 제게 내려진 벌이라고 생각하면 끌 수 없었다. 그렇게 영상이 끝에 다다랐을 때 제 손은 멀쩡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을 만큼 지저분하게 뜯긴 상태였다.
빙하 아래 꼭꼭 숨겨 둔 기억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은식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이 지방으로 가게 되어 생애 첫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두영은 그 반지하 방이 참 좋았다. 달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집보다 반지하에 드는 일조량이 더 많았고,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없었고, 폭력만 일삼는 아버지도 없었다.
그 집은 피터 팬이 초대한 곳이었다. 불경한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 네버랜드. 그러나 네버랜드는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주학과 친해진 박은식은 그 어떠한 설명도 두영에게 해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두영은 이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처음 사귄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아는 게 전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체념뿐이었다.
그렇게 제 삶은 쏜살같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해 여름 방학식, 그 일이 일어났다.
후두부를 세 바늘 꿰맨 이주학은 자기 패거리와 함께 여름방학 내내 박은식 집에 쳐들어갔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그 당시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두영은 방학식 날 저를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박은식의 자취방을 찾았다. 우습게도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반지하 방 앞에서 박은식을 불렀다. 소름 끼치게 고요했지만, 두영은 그 적막을 깨부수고 재차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작은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집을 비우고 외출한 걸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두영은 집을 빙 돌아서 창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창문 안쪽을 들여다봤으나,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상태라 보이는 게 없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커튼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청테이프를 창문에 덕지덕지 붙인 흔적이었다. 그때부터 심장이 내려앉았다. 무더위 습한 장마철임에도 몸이 차갑게 얼어붙어 하염없이 굳어 있어야 했다. 그러다 창문 아래 작은 틈새를 발견했고 옷이 흙탕물에 젖든 말든 납작 엎드려 안쪽을 들여다봤다.
방 한가운데에 박은식이 서 있었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박은식 때문에 두영은 움찔 놀랐다. 정작 박은식은 처음 시선이 겹친 순간부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영은 박은식이 넥타이를 매고 있는 줄 알았다.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보았을 때는 그것이 넥타이가 아니라 길게 늘어난 혓바닥임을 알아챘다.
목을 매단 박은식이 도무지 저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혼의 유무 차이일 뿐인데 배신감이 들 정도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났다.
두영은 개학식 날 이주학에게 붙잡혀 또다시 구 체육관으로 끌려가야 했다. 그곳에서 보게 된 건 여름방학 동안 박은식의 자취방에서 일어난 영상이었다.
작은 화면 안에 갇힌 박은식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더 보고 싶지 않아 역겨운 영상에서 눈을 돌리면 이주학이 제 뒷덜미를 잡고 억지로 보게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상 중반부부터는 자위를 강요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이주학은 빠짐없이 촬영했다.
영상이 끝나 갈수록 육욕에 지배된 짐승 새끼들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짐승들 중 하나인 이주학이 지껄였다.
‘박은식이 이렇게 된 건 전부 너 때문이야. 니가 내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니 생긴 일이라고. 너 때문에 박은식이 희생당했어. 니가 박은식을 죽였어. 허두영은 살인자야.’
처음에는 부정했다. 그러나 이주학의 말대로 정말 모든 게 제 탓이었는지 가장 높게 나온 학폭위 처분이 겨우 6호였다. 심지어 이주학이 아닌 다른 아이가 받았다.
울분에 차서 처음으로 이주학에게 달려들었지만, 이주학은 이죽거리며 말을 얹을 뿐이었다.
이 또한 너 때문이라고.
더불어 자신이 왕따인 것도, 가난한 것도, 아버지의 폭력도 전부 제 탓이라고 했다.
지난 과거의 기억이 벌레가 알을 까듯 기어 나왔다. 체념한 영상 속 그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기혐오가 치민 두영은 팔 안쪽을 손톱으로 뜯었다. 손톱 안쪽에 살점이 쌓이고, 팔뚝 위에 네 개의 기다란 자국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그 순간 홍승표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움찔 놀란 두영이 화면에 뜬 이름을 보았다. 모르는 이름이지만 어딘가 글자 배열이 낯익었다. 전화가 오면 받으라고 했다. 두영은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뭐야? 당신 누구야?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앙칼졌다. 예민함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저, 저는 승표 친구인데요. 지금 승표가 집에 없어서…….”
―집에 없다니? 휴대폰을 두고 나갔다는 거예요? 아니 근데 그쪽은 누구신데 승표 집에 있죠?
“어, 그게…….”
―주인 없는 집에 혼자 있다는 게 말이 돼요? 감히? 우리 승표 집인데?
남자는 말할 시간을 주지 않고 떠들었다. 꽤 홍승표를 아끼는 것 같았다.
“아, 그, 어… 죄, 죄송합니다…….”
상대가 너무 불쾌해 보여 두영은 저도 모르게 사과했다. 그런데도 남자는 도통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지 거친 콧김을 내뱉었다.
―당신 이름이 뭐죠? 이름이 어떻게…….
두영은 냉큼 통화를 종료했다. 또 전화가 올까 봐 긴장했지만, 다행히 같은 사람에게 전화가 오거나 하지 않았다.
막상 통화를 끊고 나니 제 행동이 예의를 밥 말아 먹은 듯하여 스스로 못마땅했다. 하지만 너무 정신이 없어서 도저히 받아 줄 수 없었다. 더 받고 있다가는 말실수라도 할 것 같았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없었다. 과거의 기억을 제 발로 걸어가서 직접 보고 온 것 같았다. 사무치는 우울감에 조금 전 팔뚝에 새긴 상처를 가만가만 쓰다듬다가 그 틈을 살짝 벌렸다. 피가 들쭉날쭉 배어나며 홈바 위에 뚝뚝 떨어졌다.
스스로 학대하는 건 그 아이를 위한 제 애도 방법이었다. 분명 박은식도 이런 것을 원하고 있을지 몰랐다.
저는 살인자니까.
살아 마땅치 않으니까.
한동안 원형 스툴에 등을 구부정히 숙이고 앉아 있었다. 우울에서 빠져나온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두영은 제 죄책감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소파에 가서 드러누웠다.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는 있는데 뭘 하면서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원래라면 토요일 저녁에 단기 알바라도 하고 있었을 텐데, 요새는 가게를 마음대로 여닫으며 일할 수 있는 카페가 생겼기 때문인지 많이 해이해졌다. 배가 조금 불렀다고 벌써 이렇게 농땡이나 피우고. 역시 저는 글러 먹었다.
어느새 바깥은 저녁노을로 물들었다. 두영은 거실 중앙 등을 켜고 다시 소파에 앉아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았다. 환한 걸 싫어하는 홍승표는 서쪽 벽 한 면을 천장까지 뚫어 통유리를 세웠다. 아마 인공적인 빛을 싫어하는 듯했다.
며칠 전 그와 한 이불을 덮고 노을 지는 하늘을 구경했을 때가 떠올랐다. 전기매트가 없어도 홍승표와 이불만 있으면 따뜻했다.
“보고 싶다…….”
사그라드는 목소리로 뱉은 한마디가 안타까웠다. 두영은 더 부르지 못하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두 손으로 휴대폰을 소중히 쥔 채 눈을 감았다.
***
도심 한복판에 있는 3층짜리 카페는 주말이라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홍승표는 주문하기 위해 줄 끝자락에 가서 섰다. 스마트 화면에 띄워진 메뉴판에는 각종 메뉴가 영문으로 표기되었다. 흰 배경에 검은 글자.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마시는 음료는 정해져 있다. 그는 메뉴판을 보던 무료한 시선을 가지각색 디저트로 돌렸다. 단 걸 즐기지 않아 예전 같았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은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보았다.
제 차례가 다가오자 홍승표는 디저트를 종류별로 하나씩 주문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음료를 받는 곳 근처에 서서 카페 내부를 무심하게 둘러보았다. 카페는 전체적으로 모던하게 꾸며져 있었다. 현대적이면서 레트로한 감성이 어느 카페를 떠올리게 했다.
허두영이 일하는 카페 펜스테몬은 사장의 애장품이라는 앤티크인지 쓰레기인지 모를 식기가 곳곳에 오브제처럼 깔려 예술성을 쥐어짜 냈다. 그래 봤자 먼지가 잔뜩 쌓인 골동품 가게 같았다.
외벽과 내벽은 전부 붉은 벽돌로 마감해 세기말 감성이 느껴졌다. 한쪽 구석에는 굴뚝까지 연결된 실제 벽난로가 있었고 조명은 온통 전구 색 범벅이라 해가 지고 난 후에 밖에서 카페를 들여다보면 완벽한 벽난로의 형상이었다. 전생에 얼어 뒤진 것인지 사장은 따뜻한 분위기로 카페를 아득바득 꾸몄다.
그러나 대놓고 촌스러운 카페는 허두영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모든 것이 허두영의 분위기에 맞춰 꾸며진 것 같았다.
사장의 취향인지 허두영의 유니폼은 디자인이 자주 바뀌었다. 간간이 베레모를 쓸 때도 있었고, 레이스 장식이 달린 앞치마를 입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사장의 감각을 인정하는 바라 홍승표는 기립 박수 쳐 줄 때가 있었다.
그는 두영과 비슷한 체구를 가진 직원을 무덤덤하게 보았다. 여기서 녀석이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어울리지 않아 금방 그만두었다. 역시 허두영은 그곳에 있어야 했다.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들고 미리 잡아 둔 자리로 향했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홍승민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케이크? 단 거 안 좋아하잖아.”
“카페까지 왔으니 이제 헤어지자.”
“나 겨우 한 모금 마셨는데?”
단정한 셔츠 차림의 홍승민이 에스프레소를 얄팍하게 쥐고 홀짝였다.
“좀 더 대화 나누자, 형아랑.”
“내가 얼마나 오락가락한지 감시 다 했잖아.”
“감시 아니고 걱정.”
“그 걱정 좀 지겹네.”
“내 걱정이 지겨운 거면 승언이라도 부르고.”
“한국에 없잖아.”
“네가 오라면 오지.”
홍승표는 볼캡을 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홍승민에 비해 작은형 홍승언은 속을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홍승민과 다른 방식으로 극성맞았다.
“휴대폰은?”
“집에 두고 왔어.”
“정신이 없나 봐. 휴대폰도 두고 다니고.”
“겨우 휴대폰 하나에 또 무슨 추리를 하시게.”
홍승민은 무테안경을 추어올리고 홍승표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의 방사선 같은 시선은 이제 익숙했기에 홍승표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다.
“신약, 잘 받았니?”
“어.”
“바로 버렸겠네.”
“어.”
건성으로 대답한 홍승표는 지루함에 몸을 뒤틀었다. 빨리 집에 있을 허두영을 끌어안고 이 무료함을 씻어 내고 싶었다.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덜 지루했을 텐데,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새 휴대폰을 사기 전에 홍승민을 먼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카페는 계획에 없었다.
언젠가 집까지 찾아와서 약을 주고 간 홍승민이 바로 미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는 한국에 남았다. 그 후로 조촐한 가족 모임을 하게 되었다. 물론 홍승민이 일방적으로 주최한 모임이었다.
안건은 별거 없었다. 자신의 정신머리가 건강한지, 또 무슨 사고를 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형제지만,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홍승표는 디저트 상자를 손끝으로 긁적여 코팅된 겉면이 벗겼다. 홍승민은 홍승표의 손을 보면서 말했다.
“한국 와서 약 먹은 적 없다며. 그런데 아무렇지 않아 보여 놀랐어.”
“그 전부터 안 먹고 있었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그렇지. 그때의 너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새삼.”
“그렇다고 약을 학교에 뿌리다니. 너무 극단적인 처방 아닌가?”
캐나다 보딩스쿨에 재학 중이었던 홍승표는 2년간 먹지 않고 모아 둔 약이 학교에 퍼지면서 졸업 유예를 받았다. 약발이 잘 들지 않는 그의 체질에 맞춘 독한 약이라, 약을 한 번도 안 해 본 이는 물론, 한 번이라도 약을 해 본 사람마저 재기가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독한 약을 먹고 있었는지 그때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허탈했다. 약에 취한 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도덕과 법이 없는 육체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과 달리 자신은 약을 먹어야만 정상적인 상태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자신이 평범한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어렸을 때 깨우쳤지만, 막상 눈앞에서 제대로 확인하자 씁쓸함이 몰려왔다. 처음으로 제 몸뚱이가 괴물처럼 느껴졌다.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널 따라다니는데 넌 항상 뭐가 그렇게 지루할까.”
“그걸 알면 이 자리에 없었겠지.”
진실을 알았으면 진작 제 목숨을 후련하게 끊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약이 없어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고, 마땅한 이유 없이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게다가 긴 하루를 끝내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홍승표는 건조한 시선으로 창밖을 보았다. 땅거미 지는 하늘 아래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카페 맞은편 대형 스크린에 영화 예고편이 나오는 중이었다. 전작이 크게 성공한 히어로물이었다.
“좋은 친구 사귄 것 같은데, 같이 오지 그랬어.”
마저 예고편 감상을 끝낸 홍승표는 홍승민에게 눈길을 주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남자가 작은 머그잔을 입에 갖다 댔다.
“넌 어릴 때부터 취향이 확실했지. 마음에 든 게 있으면 꼭꼭 숨겨 두었고.”
“눈이 높아서 성에 차는 걸 발견하기 힘들거든.”
“그런데 변덕도 심하고.”
홍승표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렇게 만든 게 누구더라.”
“나라고? 난 막내가 귀여워서 장난친 것뿐인데. 그렇게 말하면 형이 좀 섭섭하고…….”
“항간에는 그걸 도둑놈이라 해.”
“다시 돌려줬잖아.”
“내 흥미가 떨어지면.”
“세상은 그걸 변덕이 심하다고 하지?”
홍승표는 여덟 살까지 돈 쓰는 법을 몰라 원하는 걸 스스로 손에 넣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손에 쥐여 주는 것으로 본인의 취향을 파악해야 했다. 대체로 공급처는 친형제였고 가끔 부모님이었다. 부모는 홍승표의 나이 두 자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흥미가 없었던 그는 뭘 받아도 무뚝뚝했다. 가끔가다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제 방에 숨겨 두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면 홍승민이 방에 몰래 들어와 그가 아끼는 물건을 가지고 나갔다.
홍승표는 딱히 제 형제를 미워하지 않았다.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자신을 끌어내기 위함인 걸, 어린 홍승표는 빠르게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통제받는 상황이 불편하여 차라리 좋아하는 마음을 끊어 내기로 했다. 여덟 살 홍승표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남의 손 탄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홍승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맹이가 없는 대화를 더 이상 나누고 싶지 않았다. 홍승민도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따라 일어섰다.
“케이크는 누구 거지? 그 꼬마 애?”
홍승표가 케이크 상자를 쥐다 말고 홍승민을 바라보았다. 홍승표의 까만 눈이 빛 한 점 없이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
“엄연한 성인한테 꼬마라니.”
“진호가 꼬마라던데? 지루하다고 아무나 건들면 쓰나. 차라리 약을 다시 해.”
“잘도 허락하겠네.”
정해진 약이 아닌 실제 마약에 손을 댔을 땐 며칠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그가 14살 때의 일이었다.
“잘해 줘, 때리지 말고.”
홍승표는 손만 흐느적 흔들어 보이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카페에서 유심히 지켜봤던 휴대폰 매장에 들어갔다. 제 것과 똑같은 기종으로 구입하고 계정을 로그인했다.
주차한 차에 올라타며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자 홍승표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곧바로 두 번째 전화를 걸었다.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는 순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
―승표?
“응.”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는 경계심에 피식 웃음이 샜다. 홍승표는 얼굴과 어깨 사이에 휴대폰을 끼우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크게 돌렸다.
“계속 잤어?”
―아까 깼다가 물 마시고…….
“물 마시고?”
―…또 잤어.
또 잔 게 머쓱해서 그런지 묘하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려는데 두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어디야?
“지금 가고 있어. 차가 좀 막혀서, 음,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 보고 싶어도 참아 봐.”
―…조심히 와.
음울한 미성이 귓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저 목소리로 어떻게 신음하는지 홍승표는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아래로 열이 몰렸다.
빨간 신호에 차를 세운 홍승표가 등받이에 느슨하게 기댄 채 시선을 떨어뜨렸다. 헐렁한 바지 위로 힘을 받은 음경의 형태가 드러났다. 당장 축축하고 보드랍게 감싸는 구멍에 들어가고 싶어 몸부림치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차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사 갈게.”
―없어.
“정말 없어? 생각도 안 하고 말하네.”
―…새, 생각했어.
“생각했어?”
어린아이 대하듯 되묻자 허두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입을 꾹 다물고 눈꺼풀을 바쁘게 깜빡거리고 있을 것이다. 허두영이 당황하거나, 난감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홍승표는 불안한 사람처럼 검지로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내비게이션에 띄워진 시간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본 시간에서 일 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금방 갈게.”
―응.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고.”
―응.
“이상한 사람이 문 열어 달라고 하면 열어 주지 말고.”
―…….
은근히 허두영은 개소리에 잘 반응해 주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며 시선을 피하고는 했다. 그게 귀여워서 종일 옆에 붙어 개소리나 지껄이고 싶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기대하지 않고 물어본 질문에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곤란해하는 반응을 보려고 던진 말이라 딱히 서운하지 않았다. 이만 전화를 끊기 위해 휴대폰을 얼굴에서 떼어 내는 순간이었다.
―보고… 싶어.
귀를 기울여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정지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뀌었다. 한참 뒤에 뒤차가 경적을 울렸지만, 홍승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핸들에 이마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겨우 몇 마디에 회생이 불가할 만큼 무너졌다.
공기가 반을 차지하는 허두영의 목소리는 항상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녀석이 조금이라도 입술을 벌리면 그 즉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소리에 집중해야 했다. 그 목소리로 하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밤하늘의 별을 따다 줄 만큼.
“…기다려. 빨리 갈게.”
통화를 끝낸 홍승표가 액셀을 풀로 짓밟았다. 자동차가 끊긴 고무줄처럼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사이 최고치로 융기된 음경이 드로즈 하단 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나날이 머저리의 절차를 밟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얼마나 더 호구가 되어 있을지 날로 기대가 됐다.
그전에 허두영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정리해야 했다. 녀석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좆 달린 새끼를 홀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허두영이 원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녀석을 추궁할 수도 없었다.
녀석의 구질구질한 과거는 이제 청산해야 했다. 그 무엇도 허두영을 옭아맬 수 없었다. 녀석이 아끼는 할머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