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칭칭칭 감겨드는
진아 씨는 갑자기 짐을 싸는 게스트의 행동에 놀란 표정이었다.
“가려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거친 손길로 옷가지를 배낭에 구겨 넣었다.
“이 밤중에? 내일 가요. 지금은 데려다줄 사람도 없을 시간인데.”
“지금 가야겠어요. 여기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대충 쑤셔 넣은 가방 지퍼를 닫았다. 캐리어는 타고 왔던 차 트렁크에 있을 테지만 그냥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뭐, 양심이 있다면 부쳐 주겠지.
“밤중에 산을 탄다는 건 미친 짓인데……. 여기 호랑이도 나오는데.”
진아 씨의 중얼거림이 신경 쓰였지만 두메산골도 아니고 차도도 잘 나 있는 걸로 보아 좀 내려가면 읍내가 나올 것 같았다. 핸드폰 라이트가 있으니 위험하진 않을 것 같았다.
“도련님한텐 얘기하고 가는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멨다.
“굳이 갈 거면 말리진 않겠지만, 호랑이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진아 씨는 일제 강점기 때 씨가 말라 버린 호랑이를 재차 언급하며 불안감을 심어 주고자 했다. 참 나. 내가 애도 아니고 전래동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나는 아주 감정적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깟 위협 따위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차수민을 피해 도망쳤더니 차수민에게 잡혀 차수민의 집까지 와 버렸고 결국에는 차수민을 향한 내 마음과 차수민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아주 적나라하게 알게 된 상황에서 더 상처 입고 싶지 않았다.
나를 찌질하다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상처 입는 건 무서워. 더 이상 차수민으로부터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안 됩니다.”
역시 대문으로 나가는 건 어려웠다. 한 명이라면 어떻게든 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려 세 명의 문지기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십니까?”
알겠냐? 알면 내가 이렇게 구차하게 오밤중에 길을 나서겠냐고. 그들이 막는다 해도 내게는 방법이 있었다. 이민혁이 가르쳐 줬던 창고 뒤 개구멍이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가랄 때 갈걸, 시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좀 없어 보이긴 하겠지만 알려 준 건 써먹어야지.
그러나 그 앞에 도착하자, 이민혁이 왜 마지막 기회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조그만 개구멍은 막혀 있었다. 친절하게 못질까지 해 놓았다. 그 짧은 시간에. 분명 이민혁일 것이다. 사람이 정 없게 이따위로 굴다니. 분하지만 내가 자초한 일이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최후의 보루를 택하기로 했다.
“으. 높긴 높네…….”
들어올 때 봐 두었던 나무를 타고 담을 넘기로 한 것이다. 담벼락 너머로 긴 가지가 뻗어져 있어서 올라가긴 힘들어도 착지는 안전할 것 같았다.
모양 빠지게 꿈지럭거리며 나무를 올랐다. 운동으로 다져져서인지 생각보다 내 몸은 쓸 만했다. 꽤 쉽게 중간 지점에 도달했다. 나는 가지에 다리를 걸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이 담장만 넘으면 차수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담장만 넘으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으로. 시원할 거 같았던 마음은 이상하게도 꽉 조여들어 심장을 아프게 했다. 아냐, 가야지.
나는 걸리적거리는 가방을 벗어서 담장 밖으로 내던졌다.
“어억.”
가방이 떨어지며 만든 둔탁한 마찰음은 얼핏 사람의 외마디 비명으로 들렸다.
“어?”
나는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뻗어 아래를 보았다. 지금까지 봐 온 깡패들 중에 제일 살이 투실하게 오른 떡대가 대머리를 빡빡 문지르고 있었다. 불쌍한 가방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태였다.
“씨벌, 이거 뭐야. 누가 내 대가리에 가방을 던졌냐~?”
진아 씨가 호랑이가 나온다 했던 말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메리야스만 걸쳐 입은 그의 등에는 주인을 닮아 투실하고 커다란 호랑이가 러닝셔츠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고 어흥거리고 있었다.
졸지에 대가리를 명중당한 그는 매우 화가 나 보였다. 돌이라도 씹어 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가며 본인을 후려친 가방을 들고 담벼락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나뭇가지 뒤로 몸을 숨겼다.
“허억.”
“씨팔, 어떤 놈이야! 걸리면 뒈질 줄 알어!”
그는 정말 호랑이같이 거대하고 사나워 보였다. 나는 죽기 싫었기 때문에 조용히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가방도 잃고 용기도 잃은 채 별채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진아 씨가 환하게 맞아 주었다. 호랑이는 봤냐는 물음에 나는 ‘그냥 날 밝고 가려고요’라는 세상에서 가장 멋없는 변명을 내뱉었다.
“이게 다 뭐예요?”
“정현 씨, 저녁도 안 먹었잖아요.”
테이블에는 맥주 한 잔과 약간의 안줏거리, 그리고 회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회……. 이것들은 부업으로 횟집을 하나. 매 끼니마다 꼭 올라오는 회 접시가 놀랍고도 신기했지만 못난 나를 신경 써 준 진아 씨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러실 필요 전혀 없는데……. 신경 써 주셨으니 감사히 먹겠습니다.”
나는 눈물 젖은 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진아 씨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집 사람들이 웃을 땐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잠이 넘실넘실 덮쳐 왔다. 진아 씨의 콧노래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꿈의 내용은 여전히 같았다. 끝이 없는 검은 길을 걷는다. 출구가 닿을 듯하지만 한 걸음을 옮기면 또 멀어져 있다. 마치 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길에는 비늘이 돋아 있었다. 흑요석처럼 반짝이고 예쁜 비늘이었다. 비늘이 돋친 검은 길, 예쁜 용 한 마리.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는데 손목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살짝 손을 흔들어 보았다. 짤랑, 쇠붙이가 일렁이는 소리가 났다. 멍했다.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어어……. 이게 무슨 플레이…….”
나는 서둘러 이불 속을 확인했다. 다행히 옷은 말짱히 입혀져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굿모닝.”
진아 씨가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다. 나는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진아 씨! 이것 좀 풀어 줘요. 이거 범죄예요. 어제, 어제 음식에 뭐 탔죠!”
그러나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방을 정리했다.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저 가야 한다니까요?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요!”
그녀는 옆방에서 동그란 원형 판을 가져와 철컹철컹 수갑을 풀어 보려고 애쓰는 내 뒤에 걸었다. 나는 아픈 팔을 부여잡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말짱한 듯 보여도 제일 맛이 간 여자였다.
“휴, 정현 씨. 뭐라고 했죠? 일하느라 못 들었어요.”
“이것 좀 풀어 달라고…….”
날카로운 다트 핀이 귓가를 스치고 날아들었다. 나는 삐걱대며 고개를 돌렸다. 원형 판 한가운데에 그녀가 힘차게 날린 다트 핀이 꽂혀 있었다.
“다시.”
“위, 위험하게 무슨 짓이에요. 저 좀 풀어-”
또다시 다트가 휘익 날아와 꽂혔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유진아는 그런 날 내려다보며 첫 만남 때처럼 다짜고짜 좋은 딕션으로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과 같은 무미건조한 서술을 줄줄 내뱉었다.
“때는 XX년, 뜨거운 여름. 소일거리로 웨스턴 바에서 몇 년간 바텐더를 했었습니다. 주 손님은 도박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지옥의 다트 훈련을 했었죠. 그때 생긴 굳은살이 아직 박여 있습니다. 몇 년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잘 던진답니다.”
진아 씨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집중력만 유지되면 말이죠.”
그러니까 조용히 하라는 암묵적인 압박이었다. 그녀가 다트 뭉치를 흔들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밤새 대단한 플레이를 하다가 아침을 맞아 버린 꼴로 묶여 있자니 수치스러웠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 괜히 앞섶을 여몄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이거 형 가방 맞죠.”
“민혁아!”
이렇게 그가 반갑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환상이 보였다. 나는 진아 씨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속닥거렸다.
“민혁아. 나 좀 살려 줘. 이, 이분 좀 상태가 이상하셔.”
“형이 도망가려고 하니까 붙잡아 두는 거 아니에요?”
“너는 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뭐가 문제냐는 얼굴을 마주하니 배신감이 들려다 말았다. 쟤 내 편 아니지, 참.
“말 잘했다. 탈출구 막아 놓은 사람, 너 맞지?”
“네.”
“아니, 치사하게 줬다 빼앗냐? 하루는 열어 둬야 할 거 아냐.”
“기회는 그때뿐이라고 했잖아요. 나도 죽기 싫거든요? 차수민한테 들어야 할 얘기가 있다더니 왜 이제 와서 나가겠다고 난리람.”
“그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으니까. 마음이 뚜렷해질수록 나는 점점 작아진다. 잠자코 입을 다물자, 이민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랑 나가요.”
나는 화색을 하며 물었다.
“탈출시켜 주는 거야?”
“그럴 리가요. 형 데리고 바람이나 쐬고 오래요.”
“누가? 차수민이?”
이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기랄. 맞구만.
차수민은 왜 날 순순히 보내 주지 않는 걸까. 가장 다루기 쉬운 놀잇감이라 놓치기 아까운 걸지도 모른다. 날 놀려 먹으려고 정성 들여 떡대들이 득실득실한 이곳에 데려왔을 테니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겠지. 차수민은 본인을 투명하게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가 생각하는 친구는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로는 따까리란 개념에 가까웠다. 나는 적격자라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났으니까.
고등학생 김정현이라면 까짓 거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김정현은 선을 넘어 버렸다. 그 제안이 전혀 고맙지가 않았다.
그래도 나랑 친구 할 거야?
차수민의 떠보는 듯한 물음에 당연히 당연하다는 말을 꺼내려 했다. 그가 얼마나 계획적으로 나를 속여 왔는지 깨닫기 전까진. 차수민은 원래 날 놀리고 속이는 재미로 사는 인간인데,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는데, 나를 어떻게 대하든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배신감이 들었다.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밀려난 기분은 아주 좆같았다.
친구라도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늦어 버렸다. 모 아니면 도. 이젠 어중간한 건 받기도 싫어. 그러니 내가 떠나는 게 맞았다. 너는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꽁꽁 묶어 놓고. 고문관이 따로 없다.
“그래서 안 갈 거예요?”
이민혁이 재차 물었다. 여전히 내 한 손은 수갑에 묶인 채였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래. 가자, 가!”
이민혁이 데려온 곳은 읍내의 작은 백숙집이었다. 계속되는 회 파티와 요상한 상황들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닭을 보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뭘 타진 않았겠지. 의심의 눈초리로 이민혁을 훑고 숟가락을 들었다. 한입 뜨기도 전에 갑자기 어퍼컷이 날아들었다.
“형. 차수민 좋아하죠.”
“푸헉.”
“아씨, 드러.”
민혁이 티슈를 뽑아 제 얼굴을 닦아 냈다. 나는 떨어진 숟가락을 줍는 것도 잊고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맘고생 좀 했겠어요. 차수민이 별나긴 하잖아요.”
이민혁이 수저통을 뒤져 새 숟가락을 꺼냈다. 얼룩이 묻어 있는 수저를 대충 손으로 문질러 닦고는 내게 건넸다.
“지금도 고생 중인 거 같은데. 취향 참 특이하네요.”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당황하여 민혁의 얼굴을 샅샅이 살폈지만 떠보거나 농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심 섞인 제스처였다.
“형은 얼굴에서 다 티 난다니까. 먹어요. 식겠다.”
“언제부터……. 아니, 차수민도 알……아?”
뚝배기 바닥을 긁던 이민혁이 고개를 들었다. 가지가지 한다는 표정이 언뜻 스쳤으나 그는 이내 가식적인 미소를 보여 주었다.
“있잖아요, 형. 이수민, 아니 차수민한테 화난 이유가 뭐예요?”
젓가락이 육질 사이를 가르고 들어갔다. 민혁은 살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집안 꼴이 조폭 소굴인 걸 알게 되자마자 도망갈걸요.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고요. 형은 겁도 많으면서 이상하게 쫄지도 않고 굳이 굳이 남았지. 정체를 숨긴 것보다도 왜 형을 속였는지에 대해 화내고 있고.”
“…….”
“그래요, 화날 만하죠. 근데 형. 차수민이 마음먹고 속이려고 했으면 형은 평생 몰랐을걸요.”
“그게 무슨 소리야?”
“차수민 나름대로 힌트를 주지 않았냐는 말이에요. 솔직히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을 텐데 모른 척 넘어간 쪽은 형이 아니었냐고요.”
이상한 부분……? 나는 머리를 굴려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사소한 조각들을 끌어냈다.
첫 만남부터 제 덩치의 두 배 되는 놈들을 때려눕히고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수하로 부려 먹었다. 내로라하는 양아치 선배들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했으며 직장인 연봉으로도 사기 힘든 비싼 오토바이를 몰고 다녔다. 일인 병실을 가득 메운 난초와 커다란 화환들. 험악한 인상의 늙은 전학생과 부산에서 만났던 조폭들.
이제 보니 아주 대놓고 알아주세요, 하고 본인 신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치 못 챈 게 미안할 정도잖아. 나는 머리를 벽에 쿵 박았다. 눈치를 어따 팔아먹었냐.
“그래. 생각해 보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긴 했네. 내가 눈치를 밥 말아 먹어서 차수민이 대단한 깡패 집안의 후계자인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은근슬쩍 티 낸 걸 몰라봐 준 내 잘못이라는 얘기야?”
민혁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틀 동안 가장 자주 보는 그의 표정이었다.
“와. 형도 만만치 않네요. 집안 사정 말고요. 차수민이 형한테 뭔가 다른 티도 내지 않았냐고요.”
“다른 티? 뭐?”
“……정말로 눈치를 밥 말아 드셨네. 밥이나 먹어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민혁이 물었다.
“그래서 차수민이랑 어떤 사이가 되고 싶은 건데요?”
“그야…….”
그야 좋은 친구……?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외적 대답을 떠올려 놓고, 망설였다.
방금 전까진 모 아니면 도라고 했으면서 또 찌질하고 비굴한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곧 떠날 것처럼 짐까지 싸 놨으면서 벌써 그가 다시 보고 싶었다. 이젠 어중간한 건 받기도 싫다고 했으면서 그거라도 받고 싶은 간사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친구. 그 짤막한 단어에 가슴이 쓰렸다. 차수민이 원한다면 그의 어두운 면까지 품어 주는 친구를 흉내 내어 줄 수는 있지만 사실 나는 그 이상을 원한다. 차수민의 부드러운 두 뺨을 쓸어 볼 수 있는 그런 사이.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이라 전에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사이. 따까리 근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차수민에게 화가 난 이 순간에도 불경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야 친구만 돼도 좋을 것 같아.”
싫어. 진짜 졸라 싫은 단어인데 어쩔 수가 없잖아. 이 마음을 숨겨야 한다 해도 어쨌든 함께할 수 있잖아. 나는 뒷말을 삼켰다. 민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엑셀을 밟았다.
“차수민은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아요. 지랄 맞긴 해도 은근 여린 구석이 있다니까. 지레 겁먹은 쪽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지금 나더러 고백하라는 말로 들린다.”
바람을 맞으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더니 혀를 쯧쯧 차 온다.
“내가 닭다리나 뜯으러 온 줄 아나. 둘의 문제는 이거야. 겁이 너무 많아. 누구 하나는 솔직해져야지 대화가 시작이라도 될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둘이 좀 얼굴 맞대고 얘기해 보면 안 돼요? 형도 그래.”
“미쳤어? 너 같으면 사내놈이, 그것도 고등학교 동창이 너 좋다고 매달리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이겠냐? 주먹부터 날리지. 네 직장 동료들 다 데려와서 날 야산에 묻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떠듬떠듬 떠들었다.
차수민을 좋아한다.
이걸 인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고백은 상상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나를 제 수하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애한테 좋아한다 말하라고?
사실이었다. 나는 겁이 많다. 무섭다. 거절당하는 것도. 그래서 다시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이대로가 좋아. 친구도 괜찮아. 짜증 나지만 어쩌겠어. 날 또 속여 먹어도 결국은 내가 지게 돼 있어.”
결국은 여기가 내 최대치인 것이다. 따까리로 시작하여 친구까지. 그래도 신분 상승했다고 자기 위로를 건넸다. 발악을 해 봤자 좋아하는 쪽이 지는 게 순리였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운치에 잠기기가 무섭게 이민혁이 차를 급정거시켰다. 끼이이익, 차가 힘겨운 비명을 지르며 갓길에 멈췄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시발.”
“왜, 왜 화내고 그래. 네가 자꾸 물어보니까 대답한 건데…….”
온몸에서 짜증을 뿜어내는 이민혁을 피해 조수석 귀퉁이에 몸을 밀착시켰다. 이민혁이 벅벅 얼굴을 비볐다.
“안 되겠다. 야. 그냥 두 눈으로 봐라. 삽질하지 말고.”
“네?”
나는 갑작스럽게 말을 까는 후배를 앞에 두고 몸을 떨었다. 조폭이다, 조폭. 영락없는 깡패 한 마리가 위압적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저,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저, 저 그냥 집에 꼼짝 않고 있을게요. 읍내 가자고 다신 안 할게요.”
겁에 질린 나를 차가운 눈으로 올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는 듯했다. 그는 안면 가득 다시 가식적인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이마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핏줄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더 무서웠으나 차 문이 단단히 잠겨 있어서 뛰어내리지도 못했다.
한참 동안 목을 가다듬던 이민혁이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 그러지 말고 차수민에게 김정현은 어떤 존재인지 한번 시험해 볼래요?”
✲ ✲ ✲
나는 어느 산골 외진 공터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정되어 있었다. 내 두 손은 나무를 뒤로하고 밧줄로 꽁꽁 묶인 채였다. 나를 세워 놓은 이민혁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대작을 완성한 조각가의 얼굴이었다.
“호성파 말단에 아는 애를 심어 놨었거든요. 얘기 들었을 테니까 곧 올 거예요.”
“네 계획이 뭔진 모르겠는데 나를 굳이 묶어야 하니? 안 도망갈 테니까 풀어 주면 안 될까?”
“형을 차수민으로 알고 있을 테니까 묶여 있는 편이 나아요. 그래야 원활하게 납치해 가죠.”
엥, 얼빠진 얼굴로 이민혁을 바라보았다. 그가 씨익 웃었다.
“차수민 잡아 놨다고 연락 넣어 놨어요. 호성파 놈들, 며칠 전에 크게 처맞아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을 때니까 금방 도착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차수민한테도 전화 때릴 테니까.”
허망하게 쳐다보는 날 무시하고 이민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 후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힘 있는 미성의 여보세요. 나는 한 글자라도 더 들으려고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형. 저예요. 네. 밥은 잘 먹였어요. 네? 회를 또 먹일 순 없잖아요. 철웅 형이 추천해 준 닭백숙 집 갔어요. 뭐, 잘 먹던데요.”
민혁이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근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차 빼 오는 중에 김정현이 사라졌어요. 우리 미행하던 놈들이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호성파에서 보낸 것 같은데요. 그냥 분위기만 살피는 중이라 생각했는데, 그놈들 소행인 거 같아요. 형 얼굴 모르니까 저랑 있는 걸 보고 형으로 착각한 거 아닌가 생각되는데. 네. 지금 따라가는 중입니다. 예, 내비 찍어 볼게요, 여기 주소가요.”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청산유수였다. 내가 이런 놈을 성격 좋은 후배라 생각했다니. 치가 떨렸다. 통화를 마친 이민혁이 다가왔다.
“형.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가 저어기서 보고 있을 테니까. 크게 다칠 것 같으면 와서 도와줄게요.”
위로라도 하듯 이민혁은 내 어깨를 두 번 툭툭 치고 건너편 풀숲으로 가 버렸다. 이런 시발놈.
그의 말대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배기관 울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차 한 대가 다가왔다. 공터 주변을 배회하더니 나무에 묶인 불쌍한 인간을 발견했는지 내 앞에 멈춰 섰다. 차수민의 집에서 본 떡대들과 비슷한 덩치의 사내들이 내렸다.
공기가 무겁게 훅 가라앉았다.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며 이민혁이 숨어 있는 쪽을 흘끗거렸으나 그는 폰 게임 삼매경이었다. 이 시발롬!! 믿을 건 나밖에 없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을 묶은 밧줄을 나무줄기에 힘차게 비벼 댔다. 먼지 나게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데, 사내들 중 덩치가 가장 큰 놈이 내가 묶인 나무로 다가왔다. 치렁치렁한 금목걸이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네가 그 유명한 차수민이냐? 소문처럼 작진 않은데? 사이즈 차이가 너무 나잖아. 왜 이렇게 커다래?”
금목걸이가 까치발을 하며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나는 시선을 모로 돌렸다.
“저, 사람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우리 빚이 좀 있지? 얼마 전에 준 수모 잘 받았거든. 우리 보스가 아주 널 보고 싶어 하셔. 친히 시멘트로 세수시켜 준다니까 잘생긴 얼굴과 미리 인사 나눠 둬라. 오늘부로 상판대기 싹 갈아 주려니까.”
“뭐요? 시멘트라뇨? 차수민이 죽을죄라도 지었습니까? 이 아저씨가 정말 말 심하게 하시네.”
나도 모르게 발끈한 것이 금목걸이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아니, 사람이 뭐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혈질이야.
“하, 이 예의 없는 새끼. 여기서 아무리 아닌 척 시침 떼 봤자 너는 죽은 목숨이야. 곧 꼼짝없이 갈릴 새끼가. 그 뻣뻣한 혀부터 잘라 줄까?”
“이, 이봐요!”
그는 번쩍이는 날붙이를 들고 금방이라도 내 목을 썰어 버릴 것처럼 다가왔다. 나무에 칭칭 감겨 있는 탓에 도망도 갈 수 없었다. 그가 손에 쥔 칼과 목에 건 금목걸이는 세트로 번쩍였고 내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가 마지막 한 걸음을 옮기는 순간, 방어 기제가 발동한 건지 한 학기 동안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짭 유도 관장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자, 칼침을 피할 때는 어떻게? 무조건 튄다.’
‘저게 무슨 유도 강의야……. 나도 하겠다. 아니,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칼 맞을 일이 있겠어?’
‘거기, 수군거리지 마라! 흠흠. 그러나 살다 보면 튀는 게 용이하지 않은 환경에 놓일 때도 있다. 그럴 때 노려야 할 부위는 어디일까?’
‘거기요? 아니, 이게 무슨 놈의 유도…….’
‘그렇지! 상대의 가랑이 사이다. 눈 딱 감고 죽을힘을 다해 차라. 그리고 도망갈 시간을 벌어라.’
회상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쭉 올라갔다. 가까이 온 그를 발로 세차게 차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낭심을.
“어억!”
금목걸이가 눈을 까뒤집으며 고꾸라졌다. 의도치 않은 킥이었기에 내가 차 놓고도 어안이 벙벙했다. 한 놈을 쓰러뜨렸다고 좋아하기엔 상황은 순탄치 못할뿐더러 더 나빠졌다. 뒤에서 킬킬대고 있던 다른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형님!”
“이게 감히!”
나는 악에 받쳐 달려드는 한 사람을 발로 걸어 넘어뜨렸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비틀거리던 놈이 바로 내 앞에서 무너져 내려 입을 맞출 뻔했다. 혐오스러운 감촉이 어깨에 닿았다. 으억. 나는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빨리.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뒤로 묶인 밧줄을 쏠아 냈다. 매듭이 좀 느슨해진 것 같았다. 기뻐할 틈도 없이 휘청했던 놈이 주먹을 날리며 다시 달려들었고 나는 몸을 돌려 그의 돌진을 피했다. 풀었다. 거친 나무 표면이 그의 손등에 닿았다.
“아악!”
두 팔의 자유가 이렇게나 소중했구나. 손을 구속하고 있던 밧줄이 떨어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머뭇대는 멸치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아니,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쳐 놓고도 놀라 백스텝을 밟았다.
“어이쿠. 이봐요. 괜찮아요? 악의를 품고 한 행동은 아니었어요. 그, 나도 살아야 하니까…….”
눈을 감은 멸치를 흔들어 깨우는데 발에 걸려 넘어졌던 떡대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등에는 나무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미안하게도, 내가 살아야 했기에 그의 손등을 주먹으로 꽝 내려쳤다.
“윽!”
인정하기는 싫지만 짭관장에게서 한 학기 동안 귀에 박히게 들었던 어드바이스들이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사내가 주춤하는 사이 배를 걷어차 뒤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어억.”
그가 풀썩 쓰러졌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널브러진 아저씨들이 즐비했다. 공터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뭐야, 이것들 조폭이라며…….”
내가 잘 때려 맞춘 건가 아니면 이들이 잔챙이인 건가. 실전 기술을 그렇게 가르쳐 주더니 한 학기를 쏟아부은 유도 수업의 효과가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 뒤늦게 달려온 이민혁이 호들갑을 떨었다.
“헐, 형! 다 때려눕혔어요?”
민혁이 쩍쩍 박수를 쳤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민간인을 깡패 밭에 처넣고 느긋한 등장이라.
“형. 피지컬 값을 하는구나. 그 몸뚱이가 헛것이 아니었어. 나 너무 놀랐잖아요. 스카우트해도 되겠어. 그래도 이건 다시 묶고 있자. 얘넨 1차 선발대고 2차 놈들이 지금 또 오는 중이라니까 완벽하게 맞이해 줘야지.”
민혁이 주섬주섬 밧줄을 주워 들었다. 또다시 나무에 고정되어 있긴 싫었기 때문에 성큼성큼 뒷걸음질을 쳤다. 어허, 이리 와! 초저녁 술래잡기가 시작되려는 찰나,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검은 차가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민혁이 말했던 ‘2차 선발대’인 듯했다.
“야…… 한두 명이 아니잖아. 친구들 다 끌고 온 모양인데 어떡해.”
“음…… 내 예상 밖이긴 하네요. 일단은 차수민인 척해요. 그러면 죽이지는 않을 거니까.”
“죽이지는 않으면? 반병신은 만들어 놓는다고?”
민혁은 애써 내 외침을 무시하는 듯했다. 아까의 전투로 애들 장난같이 느껴졌던 조직의 향기가 이제야 진하게 올라왔다. 차수민은 뭘 하고 다녔길래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한가득일까.
뒤늦게 도착한 떡대들은 쓰러진 선발대 직원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머쓱하게 서 있는 우리도. 집채만 한 인간들이 눈을 헤까닥 뒤집으며 멧돼지처럼 달려드는데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민혁은 어디서 났는지 야구 배트 하나를 던졌다.
“트렁크에. 항시 배치하거든요.”
김정현 인생 스물셋, 고딩 때 양아치 짓을 한 적은 있어도 패싸움에 낀 건 처음이다. 2 대 다수 중 2에 내가 속한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고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발로 찼다. 그러나 개떼같이 달려드는 전문 인력을 감당하긴 어려웠다. 몇 대를 두들겨 맞자, 사지가 멍들고 눈탱이 한쪽이 시퍼렇게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 악물고 되돌려 주었다. 생존 본능이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 없으니까!
“와, 형. 꽤 하는데요. 기대를 너무 안 해서 그런가. 그냥 처맞을 줄 알았더니, 의외의 재능, 아윽.”
“너 내 눈깔 안 보여? 이 상황에서 농담이 하고 싶어?”
“그 정도면 선방이죠. 형! 뒤에!”
뒤를 돌아보니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사람이 보였다. 그래, 이게 진짜 조폭 싸움이지…… 어쩐지 쉽다 했어……. 피하기 글러 먹은 거리였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앗싸리 찔리고 병원으로 피신하고 싶었다. 옆구리에 찾아올 아픔에 대비하며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피부를 찢는 날카로움도, 장기를 관통하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눈꺼풀을 뚫고 강렬한 빛이 쏟아 들었다. 눈을 뜨니 저 멀리서 쌍라이트를 켜고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부릉거리는 기계음이 지속되었다. 모래바람이 가뜩이나 답답한 시야를 가렸다. 갑자기 날아든 무언가가 사람 몇 명을 쳐 냈는지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환한 빛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다. 도로에서 만났다면 쌍욕감이라 생각했다. 멀기 직전까지 갔던 눈이 서서히 돌아오기 전까진.
바이크의 주인은 차수민이었다.
“차…….”
그런데 평소의 차수민이 아니었다. 어딘가 어긋나 보였다.
그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귓불이 빨갰다. 강한 빛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차수민은 극도로 흥분하거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면 귓불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지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았다. 표정이 그랬다.
차수민이 이쪽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나는 문득 따끔할 거라 생각했던 옆구리에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단 걸 다시금 깨달았다. 칼을 들고 있던 인간은 바이크 너머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차수민은 야차의 얼굴을 하고 오토바이로 사람을 갈아 버리는 중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민혁도 느꼈는지 살금살금 도망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내빼는 민혁을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
호랑이같이 배기구에서 으르릉 소리를 내뿜는 괴물의 뒤로 헐레벌떡 검은 차가 들어섰다. 왜 이놈의 깡패 새끼들은 블랙을 고집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검은 세단이 열리고 짭관장과 덩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들이 쥐약을 잘못 먹었나. 며칠 전에 처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네.”
“그짝이야말로 철부지 도련님 관리를 좀 잘하든가. 제발 데려가 주십쇼, 하고 아예 물가에 내놨드만?”
“이것들이!”
난투가 시작됐다. 그야말로 개싸움이었다. 당사자가 쏙 빠진 난장판에 욕설과 주먹질이 오갔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저 멀리 피신해 있는 이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이 일은 평생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허망하게 서 있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동그란 정수리가 내려다보였다.
“김정현……! 어디 다친 데 없어?”
“차수민.”
“눈이, 눈이 그게 뭐야.”
떨리는 손끝이 내 눈두덩에 닿자 알싸한 쓰라림이 올라왔다. 차수민의 안색이 새파랬다. 네가 다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놀란 차수민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뒤는 맡기고 우리 먼저 가자. 빠, 빨리 가서 치료해야지.”
수민이 손에 힘을 주며 앞장섰다. 내 손목을 잡은 손이 차가웠다.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가만히 차수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려고 했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우리는 검은 세단 중 하나를 골라 탔다. 전방엔 여전히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부와 차단된 차 안은 조용했다. 차수민의 불규칙한 호흡만 들릴 뿐이었다.
“야. 네가 더 놀란 것 같다. 내가 운전할 테니까 내비 켜 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서 뭔 핸들을 잡겠다 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순히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차가 부드럽게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스무스한 엔진음만 들릴 뿐, 정적이 흘렀다.
차수민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싸운 이후로 영 좋지 못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묵묵히 운전에 집중하는데 차수민이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미안해.”
“뭐? 네가 왜 미안해.”
사과해야 할 쪽은 나였다. 얌전히 닭백숙이나 먹고 돌아가면 될 것을 이민혁의 이상한 장난에 휘말려서 온 집안 식구들을 출동하게 만들었으니까.
“미안해. 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해서.”
또다. 익숙하지 않은 차수민의 사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항상 제 할 말만 하고 눈을 홉떠야지. 남이 상처받건 말건 무신경하게 돌아서야지. 언제 그랬냐는 듯 내킬 때 돌아와 쥐 잡듯이 나를 괴롭혀야지. 그게 차수민이지. 이러지 마. 낯설어서 네가 아닌 것 같아.
그러나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전화 받자마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이러려고 데려온 게 아닌데. 다…… 내가 잘못했어. 내일 집에 보내 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거의 속삭이다시피 하는 차수민의 작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난 돌처럼 굳었다. 이민혁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차수민은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아요. 지레 겁먹은 쪽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그렇지만, 겁먹은 차수민은 말이 안 되잖아……. 차수민은 태어났을 때부터 올 스탯을 사디즘과 강함에 몰아 찍었을 것 같은 인간인데.
그러나 눈앞의 그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얇은 막이 벗겨지는 듯했다. 비로소 원색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차수민은 무슨 생각으로 날 이 집에 데려왔을까? 무슨 생각으로 본인의 공간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했을까? 빙빙 돌리고 돌려 결국에는 진짜 차수민을 보여 준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묘하게 내 눈치를 살피던 차수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내 주위를 맴도는 차수민은 정말 어울리지 않아. 그럼에도.
“그래도…….”
제 얼굴을 쓸어내린 차수민이 정신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비겁하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김정현. 왜 너만 무서울 거라 생각했니.
거절당하는 건 누구에게나 아픈 일이다. 마음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보다도 다가올 현실이 무서웠다. 경멸의 눈초리로 원치 않을 대답을 내놓을 상대가 두려웠다. 우리는 돌아올 창날이 무서워 서로의 주변을 쿡쿡 찔러 대기만 했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린 차수민의 신호들은 얼마나 잔인하게 부서져 내렸을까.
나는 핸들을 돌렸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기긱, 내 초조함을 반영한 소리와 함께 차가 앞으로 쏠렸다. 얼이 빠져 축 늘어져 있던 차수민이 깜짝 놀라 내 쪽을 바라보았다.
갓길에 멈춰 선 차 안, 나는 차수민에게 처음으로 솔직해지기로 했다.
“어떡하지? 난 진짜 병신인가 봐.”
몸을 숙였다.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목덜미에서 은은한 머스크 향이 감돌았다. 심장이 잘게 흔들렸다. 서로의 코가 닿을 때까지도 차수민은 별다른 반응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입술이 닿는 감촉은 생소했다. 그리고 따듯했다.
나는 손을 수민의 뒤통수로 가져가 창문에 눌리지 않도록 했다. 수민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고, 허락이 떨어진 문을 혀가 조심스레 가르고 들어갔다.
서로의 호흡이 섞였다. 숨이 차서, 혹은 가슴이 벅차서 나는 조수석 끝까지 그를 밀어붙였다. 한 손은 차수민의 손목을 잡았다. 서늘한 유리창의 온도가 느껴졌다. 혀와 호흡이 섞이는 동안 차 안은 불규칙한 숨소리로 가득했다.
우리는 한참 서로를 탐했다. 그간의 애달픈 기다림이 맞댄 입술 사이로 무너졌다.
“미안해…….”
“뭐가…….”
“그냥. 다.”
수민이 목을 길게 빼내어 촉, 하고 입을 맞췄다.
“김정현스러운 말 하지 마. 그냥. 지금은.”
“응.”
그가 눈앞에 있다. 펄떡거리는 맥동과 발그레 상기된 피부까지 느낄 수 있다. 나는 그의 귓가에 뺨을 부볐다.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귓불이 말랑했다. 눈치를 살피며 이를 세워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수민이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다.
“아아.”
“너무 좋아.”
“으흣. 뭐……가.”
“너. 네가 너무 좋아.”
귀를 살짝살짝 깨물며 차수민의 티셔츠를 말아 올렸다.
“차수민, 계속 친구 할 거냐고 물었지.”
술도 취하지 않았고 잠에 취한 사람도 없었다. 한쪽만 가슴을 앓아야 하는 일방적 관계도 아니었고 쾌락만을 위한 일시적 관계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보며 입술을 맞댈 수 있을 때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뻥 뚫려 버린 5년의 공백이 아까워 죽을 것 같았지만 우리는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도착했다.
“난 싫어. 친구 안 해. 너랑은.”
나는 드러난 차수민의 흰 속살에 입을 맞췄다. 가슴을 어루만지자 두 개의 유두가 꼿꼿이 일어났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바짝 선 유두를 핥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차수민의 손가락이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
“이젠 친구 안 할래…….”
손을 뻗어 의자 밑 레버를 당겼다. 차수민을 내려가는 조수석 의자 위로 밀었다.
무너진 그 몸뚱이 위로 무게를 실었다. 그의 벨트를 풀었다. 마음이 급하니 헛손질이 반복되었다. 드로즈 안에 손을 넣어 둔덕을 움켜쥐었다. 수민이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보이는 족족 맨살에 키스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흰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달빛이 휘영청 쏟아져 내려 하얀 나신 위로 흩어졌다.
나는 내 티셔츠도 벗어 냈다. 등이 배기지 않도록 뒷좌석의 쿠션을 가져와 수민의 허리 아래 대어 주는데 간지러운 손길이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너 이거 뭐야? 다쳤잖아.”
“아. 그냥 멍 좀 든 거야.”
“뭐에 맞은 거야. 각목? 어떤 씹새끼가.”
차수민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슴을 꾹꾹 눌러 댔다.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 아파! 누르지 마.”
“아파? 아파? 여기도?”
장난스럽게 가슴 근육을 눌러 오던 손가락이 점점 내려와 유두 언저리를 맴돌았다. 부드러운 손길이 유두를 지분거리고 꼬집었다.
“아윽.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윽? 왜 너는 네 맘대로 조물딱대면서 나는 하면 안 되는데?”
수민은 손바닥을 펼쳐 내 가슴에 대었다가 힘을 줘 움켜쥐었다. 간지러워 피식 웃음이 났다.
“김정현. 가슴이 왜 이렇게 커. 시발, 한가득이네. 나 몰래 헬스라도 다녔어?”
“너는 차수민스럽게 굴지 좀 마라.”
나는 차수민의 두 손목을 잡아 겁박시키고 복수라도 하듯 그의 유두를 조금 세게 깨물었다. 방금 전까지 맹랑하게 떠들던 그가 파드득 몸을 떨었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유두가 벌겋게 솟아올랐다. 가슴으로 느끼는 건 자기면서.
“근데 나 좀 웃기지. 눈 하나 시퍼렇게 멍 들어서 이러고 있는 게.”
“뭐……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걸. 그리고, 아흑. 깨물지 마.”
“그리고, 뭐?”
“괜찮다고. 읏. 하아. 나는 너의 찌질함을 좋아하니까.”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서 무언가 뿌리째 뜯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 김정현! 야!”
나는 거칠게 발버둥 치는 차수민을 힘으로 제압했다. 그가 난리를 치건 말건 차수민의 페니스를 잡아 입에 넣었다. 혀끝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내 머리통을 밀어 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뿌리부터 깊게 빨아들였다.
쪽쪽 빨았다. 그의 모든 걸 삼키고 싶었다. 차수민이 나 때문에 흥분하고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 나는 끝부분을 입천장에 밀착시키고 점막 부분으로 문질러 댔다. 혀의 돌기가 예민해진 그의 선단에 닿아 자잘자잘한 자극을 주었다. 수민의 발가락이 곱아졌다.
“아앗, 아아…… 흐으. 야아……. 하지 마.”
“히흐헤(싫은데).”
점차 무게감을 실어 가는 그의 것을 입안으로 품으면서 움찔거리는 차수민의 몸을 눈에 담았다. 귀여워서 전부 입속에 넣고 빨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미친 것 같았다. 차수민의 것을 입안에 넣고 있단 생각만으로 흥분이 차올랐다.
입속에 넣은 것이 따듯했다. 혀를 돌려 젖어 가는 살 기둥을 쓸어내렸다. 수민의 허리도 함께 돌아갔다. 차 안이 열기로 후끈했다. 저녁의 선선한 밤공기를 유리 벽 사이에 두고 뜨거운 손바닥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그만…… 으흥, 흣, 아! 나올 것 같…….”
뭐가 문제야? 그냥 싸. 입안 가득 페니스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에 대신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알아들은 건지, 흥분으로 정신이 없는 건지 차수민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입안에 싸게 만들어야겠다는.
나는 그의 골반에 얹어져 있던 두 손을 천천히 엉덩이로 가져갔다. 등 뒤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공작에 수민의 몸이 잠시 굳었으나 혀끝이 귀두를 공략하자 다시 녹아내렸다.
“으응, 읏, 흐아. 뭐 하는, 거야.”
커다란 두 손이 봉긋한 엉덩이를 갈랐다. 손가락 하나가 구멍 입구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차수민이 그의 것을 열심히 빨아올리는 내 머리카락을 잡았다. 평소의 그였다면 모발 뿌리가 다 뽑힐 정도로 무지막지했을 텐데 힘이 다 빠졌는지 아프지도 않았다. 그런 것까지 귀여워서 빨리 그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검지 손가락을 애널에 찔러 넣었다. 동시에 이를 세워 귀두 끝을 잘근거렸다.
“흐아아, 앗…….”
내부 근육이 수축해 손가락을 꽉 조이는 게 느껴졌다. 내 머리칼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풀렸다. 팟, 입안 가득 그의 액체가 퍼졌다. 차수민이 나를 밀어 내며 으르렁거렸다.
“하아. 내가, 쌀 것 같다고 했잖아……!”
“들었는데?”
나는 씨익 웃으며 차수민의 정액을 손바닥에 뱉어 냈다. 그리고 끈적거리는 액체를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차수민의 구멍에 잔뜩 발라 댔다. 사정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구멍을 문질거리는 미끄러운 자극에 수민은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의 매끈한 어깨를 콱 깨물었다.
“정신 놓지 마.”
“아윽…… 정현아, 나 힘들어…….”
“힘들어? 아까 보니까 날아다니던데, 고작 한 번 가 놓고 힘들단 말이지.”
“지금은, 하아. 긴장이…… 풀렸단 말이야. 읏…….”
“그럼 그만할까?”
나는 애널을 탐색하던 두 개의 손가락을 멈췄다. 그러자 그의 내벽이 움찔거리며 더 큰 자극을 재촉하듯 조여 왔다.
“여기는 더 달라는데…… 진짜 그만해?”
은근히 묻자 차수민이 말없이 두 팔을 내 목에 걸었다. 나는 하체를 그의 둔부에 밀착시키며 귓가에 속삭였다.
“다행이다……. 그만하라 했으면 나 죽을 뻔했어.”
잔뜩 성난 기둥이 엉덩이에 닿자 차수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윽. 미쳤냐. 왜 이렇게 단단해…….”
“너만 한 번 갔잖아. 또 지만 생각하지, 차수민.”
나는 수민의 흰 얼굴에 입을 맞추고 빠르게 손가락 수를 늘려 가며 구멍을 풀었다. 긴장으로 굳어 버린 애널의 근육이 야들야들해질 때까지 나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좁은 구멍을 넓혀 갔다.
“아플까 봐.”
“됐으니까 그만 애태우고, 흐윽. 그냥 들어와….”
안 그래도 내 아래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차수민을 괴롭히며 팽창한 페니스는 부풀 대로 부풀어 드로즈에 갇혀 괴로운 상태였다. 나는 호흡을 고르며 내 것을 꺼냈다. 선액을 줄줄 흘리는 살덩이가 드러났다.
“그걸 넣겠다고?”
“그때도 했잖아.”
“너, 성장……했냐? 왜 그때보다 더 커 보이지…….”
아 진짜? 네 사랑을 받아서 레벨 업 했나 봐. 되지도 않는 잡소리를 하며 나는 껄떡거리는 페니스를 차수민의 애널 입구에 가져다 댔다. 한 손은 앞으로 가져가 반쯤 일어선 수민의 페니스를 쓰다듬는 중이었다.
“으응……. 야, 할 거면 빨리, 해.”
“성질은. 그럼, 들어간다.”
나는 천천히 내 것을 차수민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축축한 내부가 덜덜 떨리며 페니스의 침입을 반겼다.
“아아!”
나는 삽입을 중간에서 멈추고 몸을 숙여 땀에 젖은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그의 딱딱하게 선 유두가 내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수민이 손톱을 세웠다.
“하으으, 그만, 나 죽을 거 같아.”
“그때도…… 윽, 했었다니까.”
“그때는, 아으윽…… 술 먹었잖아. 맨정신으로 하려니까. 아, 찢어질 거 같아…… 너무 커…….”
“나도 죽을 것 같거든……? 그럼 진짜로 그만할까?”
내 물음에 그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한숨을 뱉었다. 그만해도 되는데…… 말과는 다르게 거대해진 페니스가 당겨져 아파 왔다.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럼 그만 조이고 심호흡 좀 해 볼래?”
수민의 페니스를 뭉근하게 문대었다. 위아래로 흔드는 손길에 아래서 고통스럽게 바르작대던 차수민이 숨을 골랐다. 좀 잔잔해졌다 싶어서 최대한 천천히 삽입했다. 애널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져 가며 내 것을 받아들였다.
“괜찮아?”
“으응…… 이상해. 꽉 찬 것 같아…….”
나는 조심스럽게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그의 페니스를 잡고 부드럽게 흔들었다. 내게 매달려 할딱거리는 차수민은 야했다. 밀려드는 시각적 자극에 나는 눈을 감아야 했다.
꾸욱, 다시 힘을 주자 잔뜩 부푼 내 것이 좁은 구멍을 밀고 들어갔다.
“너무, 깊, 하윽……. 깊어…….”
차수민의 등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마음 같아선 거칠게 뿌리 끝까지 쑤셔 박고 싶었지만 아프지 않길 바랐다. 나는 몸을 뒤로 뺐다가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하앗, 앗! 아응! 응!”
“여기? 여기야?”
특정 부위를 찔러 보자 수민이 바들바들 몸을 떨며 몸을 꽉 밀착시켰다. 거세게 반응해 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포인트인 듯했다. 빨리 찾아서 다행이었다. 찢어질 듯 내 것을 받아 내고 힘겨워하는 차수민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그러나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나도 가학심이란 게 있던 건지 금방 원하는 걸 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포인트를 묘하게 벗어나며 추삽질을 이어 갔다.
“흐아, 핫…… 우으응, 아…… 제발…….”
“제발 뭘 해 줄까.”
다시 땀에 젖은 수민의 머리를 넘겨 주었다. 더운 숨을 내뱉으며 차수민이 허리를 흔들었다. 반쯤 눈이 풀려 있었다. 사랑스럽게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차수민의 입에서 애원의 말이 나오길 바랐다.
“애태우지 말라고…… 아 앗. 거, 거기.”
“여기? 여기가 뭐? 왜?”
나는 바로 포인트를 한 번 찔렀다가 피스톤질을 멈췄다. 내부의 열기가 그대로 기둥에 스며들었다. 안달 난 듯한 내벽의 움직임이 적나라했다.
갑자기 멈춘 움직임에 차수민이 나를 홱 노려보더니 달려들어 귀를 깨물었다.
“아야!”
“죽는다, 진짜.”
“아. 알았다고.”
반듯한 이마에 입을 맞추며 세차게 허리를 치켜올렸다. 흰 몸이 뒤로 크게 젖혀졌다. 두 몸이 세차게 흔들렸다. 차수민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앗! 하읏! 으응, 아앗. 하…….”
나는 우리의 연결 부위를 더듬어 보았다. 질척이는 쿠퍼액이 배어 나왔다. 차수민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의 뺨에 키스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행복했다. 나는 초점을 잃은 차수민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읏, 생각해?”
“새, 새 차…… 응… 뽑아야겠다, 고…….”
“뭐야. 집중 안 하지.”
“네…… 덩치가 하도 커서 대가리가, 아흣, 하…… 천장에 닿잖, 아! 짐승 새끼. 아프지도, 흑. 않냐?”
“아하. 카섹 하기엔 차가 작다? 엉큼하네, 차수민. 또 차에서 할 생각이야?”
나는 어느새 뻣뻣이 고개를 든 차수민의 것을 손끝으로 눌러 보았다. 수민이 용수철처럼 파들거리며 튀어 올랐다.
“진짜 너……! 끝나면, 죽을 줄, 흐읏. 알아.”
“네에.”
빙글거리는 웃음을 그의 어깨에 묻었다. 어찌나 할퀴어 대는지 내 등짝에선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차수민의 안. 이 따듯하고 촉촉한 공간이 좋았다.
속도를 올렸다. 포인트를 향해 찔러 넣었다. 구멍은 움찔거리며 한계치의 자극을 소화해 내려고 노력했으나 페니스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아, 앗! 흐아…… 핫 으응! 응!”
“수민아…….”
“김, 정…… 흣.”
쾌감이 척추를 관통했다. 나는 페니스를 빼내어 수민의 배 위에 사정했다. 나른한 사정감과 함께 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려 앞을 살피니 수민도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것이 쿨럭거리며 쿠퍼 액을 뱉어 냈다.
그의 몸을 안아 주었다. 내 앞에서 몸을 떠는 차수민도, 그를 놓아 주지 않을 것처럼 껴안고 있는 나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같았다. 네가 좋아. 좋아해, 차수민. 이마에 버드키스를 하며 속삭였다.
“하아…….”
수민이 팔을 들어 반쯤 풀린 눈을 가렸다. 나는 얼굴을 가리는 팔을 내 목에 감게 했다.
“또 하게……?”
“힘들어?”
수민이 사정감에 감겨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한 손길로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면 자.”
“정현아, 나 너무 좋아. 그냥. 모든 게 다 좋아서…….”
중얼거리던 차수민의 숨소리가 곧 일정하게 바뀌었다.
나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원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래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수민의 검은 용이 목덜미를 칭칭 감아 왔다. 정말이지 이렇게 감겨 죽는다고 해도 경이로울 것만 같아서, 김정현은 울음을 참아야 했다.
✲ ✲ ✲
“허억.”
나는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멍 든 한쪽 눈의 붓기를 뺀답시고 올려놨던 숟가락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누군가 집합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더 자려 해도 도저히 잘 수가 없는 소음이라 터덜터덜 졸음 섞인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소리의 근원은 별채 마당에 있었다.
“기상! 기사아앙!”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다 했다. 짭관장은 이 집에서 대체 어떤 위치에 있는 걸까. 눈살을 찌푸리며 벽에 기댔다.
“다들 모일 때까지 스트레칭하며 몸을 푼다, 실시!”
짭관장은 단상처럼 펼쳐진 잘 가꾼 정원의 돌담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는 아무도 원치 않는 월요일 훈화 말씀을 늘어놓는 교장처럼 이래라저래라 지시 중이었다.
그 앞에는 시꺼먼 사내들이 꿍얼거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체력 단련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아침 체조는 역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없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하물며 저런 깡패 놈들도 먹고살겠다고 단련하는데 이 험한 대한민국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그치, 그치. 열심히 살아야지. 나는 졸음을 몰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짭관장은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자후로 이런 쓸데없는 잡생각을 깨부숴 주었다.
“아직까지 집합 안 한 놈은 정신이 있는 거냐!”
“그러게. 누군지, 참.”
어떤 놈인지 정신이 빠진 놈이 분명했다. 저 무서운 틈바구니에서 혼자 꿋꿋이 지각하는 게 더 어렵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품을 하고 있는데 마당을 꽉 채운 덩치들이 모두 뒤돌아서 나를 쳐다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켜 보았다. 짭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 일원이면 수련은 피할 수 없는 아침 행사이다.”
“전 손님인데요……?”
“너 이 집에서 밥 안 먹냐? 이 집에서 잠 안 자냐?”
“당연히 밥 잘 먹고 잠 잘 잤죠. 그야 손님이니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 인마!”
짭관장이 빽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명언을 갖다 붙이는 걸 보아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번 학기 유도 강의를 할 때도 조금이라도 거슬리거나 논리에서 막히면 사람 하나를 날려 보낼 것 같은 호통을 치며 밀어붙이곤 했다. 물론, 그 대상은 나였다.
저 새끼, 나를 어마무지하게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수십 명의 눈초리와 무언의 압박을 거스를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설렁설렁 마당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잘 부탁 드립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바닥이 보였다. 오늘 초면인 훈련 상대가 뻔뻔한 얼굴로 내뱉었다.
“기술 연습한 겁니다.”
초면에 다짜고짜 사람을 엎어 치고 팔짱을 끼며 툭 한마디 내뱉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예의인가 싶었다. 상대는 언제라도 내 목을 딸 준비가 되어 있을 것 같은 험상궂은 조폭이었지만 어제 하도 공사다망한 하루를 보내서인지 겁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상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저도 기술 연습한 건데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떡대들이 우글우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이놈이. 어디서 형님한테.”
조폭 싸움은 머릿수가 관건이란 걸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더불어 어쩐지 첫날부터 굉장히 이 집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온 얼굴의 근육을 일그러뜨리며 무언의 협박을 쏟아 내는 그들을 쭈글거리며 올려다보았다.
“후, 훈련이라면서요.”
그때, 구세주처럼 누군가 끼어들었다.
“너네 뭐 해?”
차수민이었다. 지나가던 길이였는지 옆구리에 서류 케이스를 끼고 있었다. 졸린 눈으로 이민혁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앗, 도련님. 그게, 어제 일도 그렇고. 언제 거사를 치를지 모르는 일이다 보니 미리 체력 단련이라도 해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의아하게 쳐다보는 차수민을 앞에 두고 짭관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더워 죽겠는데 들어가.”
역시 아침 행사는 개뿔. 평소엔 하지도 않던 짓이었구만.
나는 분노를 담은 눈길로 유도 관장을 노려보았다. 짭관장은 그래도 본인의 짭 유도 동아리 강의가 어젯밤 큰 성과로 나타나지 않았냐는 눈빛을 했다. 씰룩이는 눈썹에 다 드러났다. 아니거든? 나는 이를 드러내 보였다.
“김정현. 잠깐 보자.”
그러나 달콤한 목소리에 짭관장을 향했던 분노는 깡그리 녹아 없어졌다.
“응!”
해죽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어젯밤 야살스럽게 신음을 내뱉던 차수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냉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프로페셔널한 보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잇자국이 살짝 남아 있는 그의 귓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붉게 물들었다. 그걸 본 내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차수민의 귀여운 목덜미를 쓸어 주고 싶었지만 이민혁이 눈엣가시처럼 착 붙어 있었다.
꺼져, 좀.
내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뚱한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다. 따지고 보면 어제의 조직 패싸움도 다 저 자식이 원흉이었다. 사실 그렇게 치면 차수민과의 진전도 이민혁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긴 했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인정하기 싫었다. 재수 없잖아.
“잘 잤어? 붓기는 좀 가라앉았네.”
부드러운 손길이 눈가를 쓸었다. 나는 주인의 손길을 느끼는 강아지처럼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손가락의 온도를 느꼈다. 눈을 떴을 때는 어쩐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의 이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시발. 나는 뻣뻣한 고개를 돌리며 애써 차수민에게 집중했다.
“아. 진아 씨가 숟가락을 얹어 줘서. 좀 나아?”
“뭐, 우습진 않게 됐네.”
차수민이 새초롬한 눈꼬리를 휘었다. 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현 선배 집에는 언제 데려다드릴까요.”
눈치 없이 이민혁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눈치가 없을 리 없었다.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아. 집에. 언제 갈 거야?”
그 목소리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미련이 얇게 저며 들어가 있었다. 도도한 차수민은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법이 없으니 내가 굽히는 쪽이 되어야 했다.
“별로 안 돌아가고 싶은데. 그냥 여기 눌러앉아 버리면 안 돼?”
차수민의 냉한 얼굴에서 살포시 웃음기가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눌러앉을 생각 말고 빨리 꺼져 버려. 매끼 먹이기도 귀찮아 죽겠어.”
“허어. 사람 데려와 놓고는 맘대로 방치하더니 이젠 꺼지라고 하네…….”
내 우는소리를 틀어막으며 차수민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쉿. 사실은 같이 밥 먹자고 불렀어. 어제 일 때문에 마저 처리할 게 좀 있어서…… 점심은 좀 바쁠 것 같고.”
“무슨 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물음에 차수민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와 내 눈가를 살짝 건드렸다. 그가 살풋 웃으며 읊조렸다.
“김정현. 내가 널 다치게 한 놈들을 가만둘 것 같니?”
가벼운 어조였지만 섬뜩한 기운이 가득했다. 곁눈질로 이민혁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인마, 너 때문이잖아……. 조직 하나가 공중분해 되게 생겼는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는 고갯짓이었다. 차수민이 돌아간 내 고개를 다시 돌려 눈을 맞춰 왔다.
“그러니까 이따가 진짜로 저녁 같이 먹자. 응?”
헤벌쭉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젯밤 이후로 차수민 전용 센서가 생겼는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에 모조리 반응했다. 바지를 벗겨 내면 프로펠러처럼 세차게 돌고 있는 꼬리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응. 좋아.”
기쁜 나머지, 픽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차수민의 귓가에 대고 나는 은근하게 속삭였다.
“근데, 저녁 먹고 나선…… 뭐 할 거야?”
배에 약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던 차수민이 미쳤구나? 물어 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저번의 냉랭한 식사는 이젠 다시없을 테니까. 이젠 모든 걸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믿기지가 않았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걸 하루아침에 얻어 냈다. 그도 나처럼 하루하루 버석하게 말라 갔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많고 많은 인구 중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당장 내 등가죽에 용 한 마리를 후벼 판다 해도 웃으면서 참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얘기 끝났으면 가시죠.”
멀찍이 떨어져 떨떠름하게 기다리고 있던 이민혁이 재촉했다. 다시 무표정한 보스의 가죽을 뒤집어쓴 차수민이 내 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눈인사를 건넨 채 본관 문을 지났다.
멀어져 가는 차수민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이민혁이 불쑥 끼어들었다.
“형. 나한테 고맙죠.”
“아, 깜짝이야. 왜 안 따라가고. 너 어제 일 때문에 혼나긴 했냐?”
“그럴 리가 있나. 아주 잘 둘러대었는걸요?”
이민혁이 얄밉게 미소를 지었다. 미꾸라지 같은 새끼. 너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그냥 말짱하게 죽으면 몰라. 뉴스에 나올 뻔했다고.
그래도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혼자 삽질하는 나를 구원해 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민혁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호랑이에 물리든 말든 짐을 싸서 하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분하게도 이민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잘 풀린 것 같은데. 맞죠? 깨가 쏟아지더만.”
“맞긴 뭐가 맞아. 너 때문에 다 같이 죽을 뻔한 건 기억 안 나냐?”
“선배 나한테 빚졌어. 기억해 둬. 난 절대 안 잊어.”
이민혁이 손가락을 튕기더니 몸을 돌려 차수민의 뒤를 쫓았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 어쩐지 오싹하게 느껴졌다.
“저놈 진짜 사채업자같이 말하네.”
이 집에서 차수민 다음으로 위험한 인간은 저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빚진 건 맞지……. 살면서 차수민이 눈깔 돌아서 연장 들고 쳐들어올 만한 일이, 그리고 그 기회로 그의 마음을 깨닫게 될 일이 얼마나 될까. 누구 같은 미친놈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빚이라면 지긋지긋한데 저놈은 뭘 받아 갈지 한숨이 나왔다.
저녁은 무탈하고 평범했다. 이 산 구석 어디서 자꾸 물고기가 나오는지, 그놈의 회가 또 올라온 걸 제외하면 흠잡을 데 없는 식사였다.
차수민은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내 어깨를 가만히 관찰하더니 상을 앞에 두고 내 옷깃을 들치어 냈다.
“뭐, 뭐 하는 거야. 여기서 하자고……?”
“어깨도 다쳤어? 어제 차 안에서는 말짱해 보이더니. 하긴 뭘 해. 하여간 머릿속이 그딴 거밖에 없지. 아다 따였다고 울먹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시도 때도 없이 발정이야.”
“내가, 내가 언제 그랬어. 그때는 오랜만에 본 동창이랑 자 버렸으니까 당연히……!”
“말 나왔으니 말인데, 그날 아침. 누가 보면 내가 너 강간한 줄 알았을 거야. 뚫린 건 난데 도리어 네가 질질 짜기나 하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널 마음껏 쥐어 패지 못한 게 한이야.”
“그건 미안합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치켜 올렸다.
“근데 너는 그때 기억 생생히 나? 나는 꽐라였던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로 너는 꽤나 말짱했던 것 같단 말이야.”
차수민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모르지. 나도 취했었으니까. 짜증 나게 조잘거리지 말고 다물어. 너 이거 찜질해야 돼. 다 먹었으면 따라와.”
차수민이 데려온 곳은 안채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온천이었다. 요 며칠 놀랄 일이 많았기 때문에 신경 줄이 굵어졌는지 갑자기 뒷마당에서 튀어나온 온천에도 놀랍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사업 규모가 어마어마한가 보구나.”
“원랜 영감탱 전용인데 지금은 없으니까 내 거야.”
차수민은 어느새 챙겨 온 양주병을 찰랑거렸다.
“뭐 해. 안 들어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어느새 나신이 되어 물에 젖은 차수민의 상반신이 야외 등의 불빛에 번들거렸다.
거기엔 검은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간 시달렸던 악몽의 내용을 알 것 같았다. 끝없이 반복되던 검은 비늘이 돋은 길. 아무리 걸어도 벗어날 수 없던 검은 길. 나는 저 검은 용의 먹잇감이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칭칭 온몸을 감고 천천히 입을 벌리는 신물. 그 앞의 나는 이제 얌전히 먹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때, 뜨끈뜨끈하지? 아!”
차수민이 살결에 닿는 감촉에 몸을 비틀었다. 나는 손을 뻗어 눈알이 빠질 듯이 나를 노려보는 용의 눈을 살짝 감겨 주었다. 약간은 거친 감촉이 손끝에 느껴졌다. 여린 살성과 어울리지 않는 문신이었다.
“그냥. 아팠겠다 싶어서. 몇 살 때 새긴 거야?”
“얘? 글쎄. 일본에 있을 때니까 너 만나기 한참 전일걸.”
차수민이 피식 웃었다.
“뭐야. 엄청 어릴 때네……. 아팠겠다. 아무리 차수민이라 해도 이거 새길 때는 찔끔거렸겠지?”
“난 원래 안 울어. 이 악물고 참았지.”
“안 울긴 무슨.”
나는 차수민의 젖은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다. 물속에 잠긴 손은 차수민의 둔덕을 향해 헤엄쳐 갔다.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너 여기 벌리면 앙앙거리고 울던데…….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아.”
차수민의 엉덩이를 쥐고 틈 사이를 벌렸다. 작은 물살이 벌어진 틈새로 쏟아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대가리를 한 대 세차게 맞을 거라 예상하고 속삭인 말에 차수민은 내 가슴에 몸을 기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안 때려?
조바심을 냈지만 돌아오는 건 기분 좋은 무게감이었다. 이렇게 유순하고 말랑말랑한 차수민이라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가 나른하게 기댄 채 중얼거렸다.
“너는 평소엔 숙맥처럼 굴더니…… 어제는 잘도 밀어붙이더라.”
“좋았지? 솔직히.”
나는 코끝으로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훑어 넘겼다. 뜨거운 수증기 때문인지 엉덩이를 쥔 손 때문인지, 아니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귓가에 자꾸만 위험한 말을 쏟아 내고 싶어 하는 동창놈 때문인지, 차수민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대답 없는 수민을 재촉하듯 잇새에 통통한 귓불을 끼우고 잘근잘근 씹었다.
“안 좋았어? 여기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데.”
“헉.”
두 손으로 그의 둔덕을 완전히 벌렸다. 그의 구멍 안으로 찔끔찔끔 들어가던 물살이 거센 물줄기로 바뀌었다.
평소 같으면 감히 입안에도 담지 못할 말이었으나 섹스만 하면 유해지는 차수민을 이때 아니면 언제 놀려 먹겠나 싶었다. 그가 벌떡 일어나 양주병을 거꾸로 쥐고 대가리를 깡 내리치더라도 지금은 수치심으로 물든 차수민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한테만 보여 줬으면 좋겠다……. 나만 아는 너의 모습. 네 수하들조차 모르는 진짜 너의 얼굴.
“끝까지 대답 안 하면 서운하잖아. 나는, 나는 너무 좋았는데.”
차수민의 몸을 거꾸로 돌려 마주 보게 만들었다. 흰 얼굴이 온통 분홍빛이었다.
“얼굴 빨개.”
“더워서 그러는 건데?”
차수민이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지만 나는 픽 하고 웃음을 삼키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 밑에서 흥분하는 너를 보는 것도 네 안에 들어가 너를 느끼는 것도 다 좋았는데, 가장 좋았던 건 너도 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였어.”
차수민의 페니스가 내 것과 닿았다. 물속에서 마찰하는 두 살덩이가 이질적이면서도 따듯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언제부터 그랬어?”
버둥거리며 몸을 떼어 내려는 그의 골반을 붙잡아 끌었다. 부끄러워하기는. 노골적으로 나의 페니스를 그의 것에 갖다 댔다. 고개를 푹 숙인 동그란 정수리를 보자 아래가 서서히 묵직해지고 있었다.
차수민이 불만스럽게 웅얼거렸다.
“결린 곳 있으면 찜질이나 하라고 데리고 왔더니 왜 자꾸.”
“언제부터 마음이 있었던 거야, 응?”
나는 푹 숙인 그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틀었다.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얼굴을 내어 주지 않았지만 대충 어떤 표정일지 상상이 갔다.
나는 킥킥 웃으며 손가락을 집어넣어 그의 구멍을 풀기 시작했다. 따듯한 물 온도에 애널 근육이 부드럽게 이완되고 있었다.
“하긴. 나도 잘 모르겠다. 물처럼 스며들어 있더라, 네가. 어쩌면 고등학생 때에도 너에게 끌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정과 회피가 내 특기거든.”
“눈치도, 읏. 없고.”
“맞아. 그리고 용기도 없어. 미안해.”
나는 차수민의 골반을 쥔 손에 힘을 주고 그를 내 허벅지 위에 앉혔다. 손가락이 구멍을 휘젓자 그가 몸을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관절까지 쑤욱 집어넣었다. 차수민이 숨을 참는 것을 느끼며 가까이 몸을 밀착시켰다. 두 페니스가 물살에 흔들려 까딱거리며 닿았다.
나는 그의 귓가에 어제부터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인데. 내 마음을 깨닫고 나서도 너를 피해 다녔어. 네가 날 혐오하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거든. 징그럽다 그러면 어떡하지. 친구로도 못 지내면 어떡하나. 네 얼굴 못 보게 되는 게 너무 무서웠어.”
“아읏, 하…….”
“네 마음을 알고 나서야 이렇게 다가갈 용기가 생기더라. 한심해해도 좋아. 겁쟁이라고 욕해도 돼. 정말, 정말 미안해. 네 말대로 난 찐따 새끼인가 봐.”
“아, 나도…….”
“응?”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두꺼운 손가락의 마디가 입구에서 걸리자 차수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애널을 살짝 조이며 멈춰 선 손가락의 움직임을 재촉했다.
“네가 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읏. 너에게 보여 줄 용기가 생긴 거야.”
멍하니 그의 입술을 바라보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검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리며 내부를 넓혀 갔다. 그가 움찔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 집안, 내 위치. 진짜 나……. 네가 보고 나서도 받아들여 주리란 판단이 섰었거든. 그런데 막상 데려오니 무섭고 후회되고, 나는 이런 거에 서툴러서…… 그래서, 아앗.”
“그래서?”
“하아. 그래서, 흐읏. 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었나 봐. 네 앞에선 말이 원하는 대로 안 나와. 개빡치게.”
‘우리가 모든 걸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잖아, 아직…….’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차수민을 떠올렸다. 그 말에 퓨즈가 나가서 폭발해 버린 내 모습도. 주먹 쥔 손을 폈다가 다시 쥐었다가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몸짓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차수민이 홱 고개를 들어 두 손으로 회상에 잠겨 있던 내 뺨을 붙잡았다.
“그러니깐……. 너나 나나 겁만 존나 많은 찌질이였다고. 너만 찐따가 아니란 얘기야.”
나는 빨갛게 상기된 차수민의 두 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쁜 두 눈이 올망졸망하게 나를 담아내고 있었다.
“수민아.”
“으응?”
“나 어떡하지…….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죽을 것 같아.”
나는 그의 엉덩이를 들어 올려 발딱 서 버린 내 것에 가져다 대었다. 그가 참방거리며 다리를 휘저었다.
“자, 잠깐……!”
페니스의 끄트머리를 구멍에 맞추었다. 다시 골반을 붙잡고 그를 끌어당겼다. 물이 윤활제 역할을 하는지 원활하게 들어갔다. 귀두 끝이 들어갔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나는 짐승처럼 허릿짓을 시작했다.
“아, 아……! 아!”
차수민의 허리가 뒤쪽으로 휘었다가 쑤욱 빠지는 페니스의 움직임에 앞으로 흔들렸다. 다시 쳐올리는 반동에 음낭과 엉덩이가 살 소리를 내며 퍽 하고 닿았다 떨어졌다.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흰 나체가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흑, 천, 천히…….”
넋이 나가 신음을 흘리는 차수민의 목덜미에 키스하고 이빨을 박아 넣었다. 물에 젖어 미끈거리는 여린 살결에 입술을 대고 쪽쪽 빨았다. 꽃처럼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를 갖고 싶어. 온전히 내 걸로 만들고 싶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가지고 싶어. 내 안달 난 몸짓에 고요했던 온천에 거센 파동이 일었다.
“하아, 하…… 네가 좋아. 네 몸 모든 곳을 어루만지고 싶어. 이걸 직접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읏. 너는 모를 거야. 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달콤하고 네 눈빛, 몸짓, 모든 게 예뻐 보여. 윽,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아앗, 응, 앗!”
나는 차수민의 좁고 질척이는 안을 거세게 파헤쳤다. 수축하고 잘게 떨리는 근육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황홀했다. 온몸의 감각들이 오로지 한곳, 차수민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차수민을 잠시 들어 올렸다가 붙잡아 내렸다. 기둥에 돌기가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페니스가 한곳을 쿡 찌르자, 차수민이 파들거리며 허리를 꺾었다. 나는 그 사랑스러운 몸짓을 눈에 담았다.
“수민아, 좋아해. 너를 좋아해.”
“제발 천, 천천히…… 아흑.”
“나도, 나도 듣고 싶어. 네 입술로 말해 줘. 좋아한다고. 이름 불러 줘.”
“아아, 김, 김정현.”
“응. 듣고 있어.”
“김정현. 좋아, 해. 좋아해 정현아.”
순간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감각이 들었다. 쌀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머리에 마약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윽.”
차수민을 큰 몸뚱어리 안에 가두었다. 한껏 상기된 유두가 명치에 닿았다. 일부러 몸의 접촉면을 늘려 위아래로 비볐다. 복근에 쓸려 더 빳빳이 고개를 들어 가는 차수민의 젖꼭지를 느끼면서.
그를 꼭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마찰에 괴로워하는 그의 페니스가 뱃가죽을 스쳤다. 나는 천천히 상하 운동을 시작했다. 음모에 그의 것이 쓸려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차수민의 구멍 속에 뜨끈한 물줄기와 나의 것이 번갈아 출입했다. 철썩철썩 살 부딪히는 소리가 물결에 부서져 가라앉았다.
나는 나른한 감각에 취해 속삭였다.
“한 번만 더 말해 봐.”
“하윽. 사, 사랑해. 정현아.”
선단이 찌릿거렸다. 좁고 따듯한 그곳이 내 씨물을 잔뜩 품게 하고 싶었다. 미친놈처럼 허리를 흔들었다. 차수민이 엇박자로 몸을 튕겼다. 강한 압박감이 페니스를 감쌌다.
수민이 신음을 토하며 내 등을 긁었다.
“아앗, 정, 정현아 제발……!”
희열감이 올라왔다. 밤낮으로 수민의 곁을 지키는 놈들조차 자신들의 도련님이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 외에는 아무도 몰라. 흥분하면 이렇게 얌전해져서 손톱에 힘도 안 들어간다는 거.
툭 쏘아붙이는 어조가 아니라 간지럽게 울리는 사랑한다는 말.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말. 차수민이 나를 사랑해 줘서, 나에게만 이런 모습을 허락해 줘서.
나는 차수민의 발목을 잡아 올려 그의 발에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 냈다.
힘차게 엉덩이를 쳐올리자, 귀두 끝이 가장 깊숙한 곳을 찔렀다.
“흐으아…….”
내벽의 휘어지는 부분에 페니스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 안에 갇혀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치던 차수민이 멈칫했다. 차수민의 제일 깊숙한 곳. 나는 조금 더 골반을 꾹꾹 눌러 가며 더욱 깊숙이 삽입했다.
“으응! 응! 읏!”
수민의 입에서 타액이 흘러나왔다. 입술로 핥아 주며 세차게 허릿짓을 반복했다. 두 사람의 몸이 격렬하게 닿았다 떨어졌다. 장이 꺾이는 끝부분에 페니스가 마찰했다.
“흐아, 정현. 나, 죽…….”
“읏. 수민아…….”
나는 휘어진 장벽의 끝에 한가득 토정을 했다. 뜨거운 액체가 좁은 구멍에 가득 넘쳐흘렀다.
차수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닿았다는 만족감에 눈앞이 흐릿했다. 질퍽하게 안을 채우는 정액을 느끼며 차수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모에 끈적한 느낌이 들었다. 바들바들 떨리며 뱃가죽을 스치는 살덩이도 함께 느껴졌다.
나는 그를 껴안은 채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을 세고 있었다. 차수민이 숨을 골랐다.
“미안해. 안에다 해 버렸다. 그게, 빼려고 했는데 네가 꽉 잡고 안 놔 줘서…….”
“사랑, 한다는 말이…… 하아. 그렇게나 자극적이었냐.”
“그만해. 나 또 서잖아.”
“이 미친놈.”
“아, 좋아. 만져 볼래? 우리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어.”
나는 차수민의 손을 가져와 결합 부분을 만지게 했다. 수민의 구멍이 한껏 벌어져 내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시발. 뭐 이렇게 커? 아, 갑자기 밑이 아파 오는 것 같아.”
“그럼 빼?”
“아!”
예고 없이 쑥 몸을 빼자 차수민이 허리를 꺾으며 경련했다. 묵직하게 채우던 것이 사라지자 벌어진 구멍으로 물이 들어찼다. 쾌감에 몸을 떨던 차수민이 이를 악물고 내 쇄골을 때렸다.
“아, 알았다니까.”
나는 천천히 수축하는 그의 구멍을 다시 지분거리다가 퍼즐처럼 내 것을 끼워 맞췄다.
“흣.”
“수민아, 돌아봐 봐.”
그가 덜덜 떨리는 몸으로 순순히 등을 내주었다. 여전히 결합 부위가 맞물린 채였다. 말 참 잘 듣네. 평상시에 살쾡이처럼 날 세우는 놈이 섹스할 때는 고분고분 순해지는 게 웃기고 귀여웠다.
차수민이 몸을 돌리자 페니스에 내벽 근육이 진득하니 맞닿는 게 느껴졌다. 수민이 잇새로 신음을 참았다. 귀여워, 정말. 나는 등에 새겨진 검은 용에 입을 맞추었다.
“울지 않았대도 아팠을 거잖아.”
나는 용 주위에 새겨진 미세한 칼자국들을 손으로 쓸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숨기며 입술로 하나씩 그의 등에 남은 흉터를 지워 갔다.
“네가 아픈 거 싫어.”
고백 같은 내 말에 수민이 등 뒤로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피차 마찬가지거든.”
아니, 넌 모를걸. 차수민이 조폭가 도련님이란 사실을 알아챈 순간부터 가슴속 깊은 곳에 돌덩이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범하지 않은 차수민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차수민이 더한 것을 한다 해도 개처럼 그의 뒤꽁무니를 쫓았을 것이다. 그의 따까리가 되어 버린 순간부터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나는 네가 걱정돼. 위험한 일은 안 하면 안 돼……?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수많은 떡대를 거느리고 등짝에 용이 꿈틀대는 차수민에게 요구하기엔 불가한 조건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확장하는 게 꿈이라며 당차게 말하던 어린 차수민의 포부를 아직도 기억한다.
애초에 내가 왈가왈부해도 괜찮을 일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다친 차수민을 상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를 좋아한다고 인정한 순간부터 수많은 감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요즘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행복, 그리고 그 기저에 얇게 스며들어 있는 두려움이었다. 용 대가리가 족쇄처럼 보이기 시작했으니. 이러다 내가 조직에 입단하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속 타는 마음을 수민의 등허리를 꼭 껴안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무튼 아프지 마. 아프더라도 혼자 끙끙거리고 숨기지 마.”
“딱히 숨긴 적 없어. 아픈 적도 별로 없고.”
“왜. 너 잘 그러잖아. 고딩 때 어쩐 일로 안 갈구길래 반 찾아갔더니 열 펄펄 끓으면서 엎어져 있었고, 여름 방학 때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도 집안 사업 때문이었다면서 나한테 언질조차 주지 않았지. 얼마 전에도 유도부 수련 때 삐끗했었다며. 부장이 말해 줘서 알았어.”
“그야 그땐 그런 사이…….”
“지금은 그런 사이니까 앞으론 다 얘기해 주면 안 돼? 아픈 것도 힘든 것도 나한텐 얘기해 주면 안 돼?”
내 앞에선 강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난 정말로 상관없는데. 덧붙여 말하는 대신 머리카락을 부벼 댔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해. 그렇게 네 마음을 얻고 싶더니, 막상 얻게 되니 너를 잃게 될까 무서워하잖아.
“나한테 숨길 필요 없어.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일도. 고민은 나누면 작아진다잖아. 네 집안 대소사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냥 작은 것도 괜찮으니까 혼자 품으려 하지 말고 말해 줘. 그래도 돼.”
조용히 듣고 있던 차수민이 입을 열었다.
“김정현. 이리 와 봐.”
그의 어깨 위로 고개를 숙이자 그가 몸을 돌려 입을 맞춰 왔다. 말랑한 혀가 치열을 스치고 사라졌다.
“미안해. 방학 때 갑자기 사라졌던 거. 그리고 그때 날렸던 빅엿도. 난 인간관계 같은 거 잘 못해. 관심도 없었고. 그대로 보여 주면 그게 약점이 되어 칼로 돌아오니까. 그렇게 자랐어. 그래서 그렇게 서툴렀나 봐.”
내 가슴팍 위로 기대 오는 따듯한 무게감이 포근했다.
“괜히 뭐라도 잘못 말했다가 네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나 싶다가도 그냥 나를 온 힘을 다해 싫어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나를 평생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싶더라. 좆같은 기억이라 해도 좋으니 네 기억에 남고 싶었어. 우리가 시작부터 순조로운 관계는 아니었잖아?”
옛날 일이 기억났는지 큭큭 웃던 차수민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전기가 찌릿 올랐다.
“노력해 볼게. 뭐 원한다니깐…….”
귀여워. 웬수 같던 네가 귀여워졌어.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나는 재차 차수민의 어깨에 머리카락을 부볐다. 웃으며 내 머리에 제 머리를 기대던 차수민이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런데 너…… 또 커진 것 같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그래. 그러니까…… 해도 돼?”
대답을 기다리며 차수민의 유두를 빙빙 돌렸다. 읏, 신음을 뱉으며 미간을 찌푸린 차수민이 늘 그렇듯 사람을 제 발아래에 두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발 빼냈다 이건지 아까보다 여유로운 태도였다.
“안 돼. 기다려.”
“야. 내가 개도 아니고.”
점차 부풀어 오르는 압박감에 발가락을 구부리며 그의 어깨를 깨물었지만 차수민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얄미운 마음에 손톱으로 유두를 긁어냈다. 순간 수민의 몸이 떨리며 그의 구멍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던 페니스가 확 조였다가 풀어졌다. 차수민이 살짝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읏, 김정현. 좋은 말로 할 때 손 떼라.”
나는 한 손을 떼어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여전히 다른 손은 그의 가슴 돌기를 지분거리고 있었다.
“두 손 다.”
시키는 대로 그의 유두를 비틀던 나머지 손을 떼 내어 물 위로 가지고 올라오자 그가 픽 하고 웃었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린 항복 포즈가 되어 있었다.
“잘했어. 그대로 있어. 손 내리지 말고.”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구멍을 조였다. 갑작스러운 압박감에 숨을 토해 냈다. 잘근잘근 씹어 대는 구멍에 영혼까지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피가 머리끝으로 몰렸다.
“아, 읏……!”
차수민이 여전히 내 페니스를 압박한 채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좁은 링이 기둥의 사방을 조여 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요사스럽게도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만하면 살살 힘을 풀어 조금씩 씹어 대며 부푼 나의 것을 달래 주었다.
너,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다시 조여 오는 애널 근육에 나는 하고 싶은 말 대신 신음만 뱉어 낼 수 있었다.
“아아, 윽. 너, 너…… 하으…….”
“옳지, 착하지.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말고 좆이나 잘 세우고 있어. 나머지는 이 형아가 알아서 다 해 줄 테니까.”
어느새 마주 보는 자세가 된 차수민이 눈꼬리를 휘어 가며 웃었다. 야살스러운 웃음에 쿠퍼액이 찔끔 쏟아졌다. 차수민이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정현아, 오빠가 기분 좋게 해 줄게…….”
말랑한 혀가 부드럽게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입가에 흘러내린 타액으로 침 범벅이 되었지만 윗구멍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차수민의 아랫구멍은 액을 줄줄 흘리는 내 페니스를 어르고 달래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배출의 욕구가 울컥울컥 올라올 때마다 힘을 풀어 사정을 지연시켰고 그와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할 때면 다시 엉덩이를 흔들어 촉촉한 내벽을 비벼 댔다.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자극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차수민이 입술을 떼어 낸 틈을 타 나는 애원했다.
“흐으…… 수민아. 제, 제발 가게 해 줘…….”
“벌써? 나는 아직 멀었는데,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네? 혼자 갈 생각을 하고. 안 되겠어. 이 못된 버릇을 고쳐 놔야지.”
수민은 내 허벅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약을 올리듯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귀두 끝에 겨우 구멍이 걸리게 하고선 내 목에 혀를 가져다 대고 핥아 올렸다. 그 모습이 우유를 먹는 고양이 같다고 겨우겨우 굴러가지 않는 머리에 힘을 주어 생각했다.
“울어 봐. 너만 나 울리니까 열 받잖아. 그동안 재밌었어?”
차수민이 내 가슴을 손가락 끝으로 튕기며 희롱했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킥킥. 미성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어 오소소 희열의 소름을 돋게 했다.
그는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만 찔끔찔끔 제공해 주며 닿을 듯 닿지 않는 쾌감에 엉망으로 풀린 내 얼굴을 감상했다.
“잘생겼네, 우리 정현이…….”
내 콧대를 쓰다듬던 차수민이 다시 입술을 덮쳐 왔다. 그의 페니스가 내 배에 닿았다. 그 역시 딱딱하게 발기해 있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
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두 손을 허공에 들고 있던 나는 키스를 틈타 그의 엉덩이를 붙잡았다. 화들짝 놀라 몸을 굳힌 차수민을 잡아끌어 세차게 내리꽂았다. 돌처럼 딱딱해진 내 페니스가 차수민을 꿰뚫었다. 갑작스럽게 삽입된 이물감에 차수민이 비명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아흑!”
“읏…….”
“아, 아…… 정현아. 아읏……. 천, 천천히…….”
“하, 차수민…… 너, 진, 짜…… 흣”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헐떡이는 신음과 첨벙이는 물장구 소리가 온천탕을 메웠다. 쫀득하게 감겨 오는 차수민의 안. 기분 좋아…… 내장 속 꺾인 부분까지 선명하게 느껴져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벗어나면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따라붙고 찌르고 들어가면 질세라 질척하게 압박해 온다. 쿡쿡 찌를 때마다 안겨 오는 몸뚱이가 사랑스러웠다. 뭘 해도 받아 줄 것처럼 나를 수용해 왔다.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반쯤 풀린 눈으로 차수민이 속삭였다.
“김정현, 안에다 싸도 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차수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내 정액을 가득 분출했다. 굉장한 사정감이 몰고 온 쾌감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하읏, 하…….”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여전히 사정하고 있는 차수민의 몸을 감싸 안았다. 파드득 몸을 떨던 수민이 고른 숨을 내뱉었다.
등에 닿는 보드랍고 따듯한 손의 감촉. 나는 차수민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한동안 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