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약속
커다란 얼음 조각이었다. 눈앞에 놓인 건.
핑크빛을 띠는 곰돌이 모양 얼음 조각은 단단하게 얼어 제 모양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펄펄 끓는 사막에 왜 이런 조각이 놓여 있는지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은 타들어가고 있었고 숨이 턱턱 막히고 있었으니까.
나는 웅크렸던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우우…….”
고작 한 발자국 거리를 가는데, 얼마나 힘겨운지 서러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원하는 게 있었으니.
핑크빛이 웬 말이냐는, 귀여운 곰돌이를 위해 꿈틀댄다는 그런 체면은 버렸다. 단단한 얼음 조각을 껴안자마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볼에 닿는 한기가 얼마나 단단하고 부드러운지.
……부드러운지?
“……뭐야.”
“합법적인 일. 나는 가만히 누워 있었고, 네가 파고든 그런 상황.”
고개를 들자 시야에 그의 턱이 가득 찼다. 본인이 한 말의 증거라도 내미는 듯, 그는 한껏 힘을 뺀 채 나를 받아주고 있었다.
평소라면 기겁을 하며 내동댕이쳤겠지만, 서늘한 피부에 닿은 몸은 그에게서 떨어지기를 거부하고 찰싹 붙어 마음껏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여느 때와 다른 나의 태도에 그는 움찔하며 상황을 판단하느라 바빠 보였다. 들었던 고개를 다시 숙여 열이 오른 얼굴을 그의 가슴팍에 박아버렸다.
“흠…….”
그의 작은 고민의 소리가 선명했다.
내가 이렇게 구는 건, 단지 그를 일주일 만에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한 3년이란 시간은 넘은 지 오래였고, 그는 언제라도 떠날 것처럼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빨리 와라 외치던 날이 막상 다가오니 왜인지 울적해졌달까. 혼자 살던 때엔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멍청하게 굳어 있는 녀석을 닦달하듯 꼭 끌어안았다. 그는 괜찮겠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팔로 감싸 안으며 남은 손으로는 나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쓸었다.
“…….”
얇은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손가락이 등을 쓸어내리자 나는 그의 몸에 더 찰싹 붙었다. 울룩불룩한 흉터들을 지분거리던 손은 점점 대담하게 움직이더니 그대로 바지 속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조몰락거렸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손길에, 잠결에 불끈 솟은 앞을 그에게 비비적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였다.
“윽!”
우당탕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방문이 벌컥 열린 건.
“학교!! 학교 갈 준비 다 했어!”
있는 힘껏 발을 날렸다. 승아의 외침과 함께 그는 바닥으로 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어, 그래. 학교 가야지.”
승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얼굴은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거리고 있었다.
“뭐 했어?”
“어?”
“후응…… 안 알려줘도 알아! 아빠가 또 아저씨 덮쳤구나!”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재혁이 입꼬리를 내린 채 어깨를 으쓱하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기에,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해 나는 다급하게 침대를 벗어나며 말했다.
“바, 밥이나 먹고 얼른 나가자.”
이런, 시간이 늦었나. 밥을 차리기엔…….
급하게 시계를 보며 뛰쳐나갔지만, 이미 식탁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노력한 끝에 노른자가 멀쩡한 계란프라이를 만들 수 있게 되어 만세를 외쳤던 나였건만, 그런 노력이 부끄럽게 식탁은 푸짐했다.
“아.”
그는 독하게 나의 말을 잘 듣고 있었다. 처음엔 어울리지 않는 수첩을 펴놓고서 1그램이라도 벗어나지 않게 무게를 재며 음식을 만들더니, 이젠 먹고 싶다는 음식을 기계처럼 줄줄이 내왔다.
헛구역질을 하며 음식을 만드는 그보다, 왜인지 험악한 얼굴로 서 있는 그에게 요리를 가르친 제이가 더 대단해 보이긴 했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차려달라 그랬지 만들어달라고 한 적은 없었단 말이지.
“오늘 체험학습 갈 거니까 빨리 나가야 하는데!”
승아가 식탁으로 뛰어가 밥을 우물거렸다. 나는 그제야 왜 이렇게 아이가 들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맞다…… 체험학습.”
“까먹었어요?”
“아, 아니. 오늘은 머리 어떻게 묶을 거야.”
승아는 인상을 팍 쓴 채 고민을 하더니, 방을 나오고 있는 재혁에게 달려가 다리를 꼭 끌어안으며 나를 흘끔 봤다.
“아저씨가 묶으면 머리카락 다 뽑힐 것 같아…… 아빠한테 묶어달라고 할 거야.”
그렇게 고생해서 묶어줬건만. 동영상까지 보면서 혹시나 그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엉키진 않을까 싶어 신중을 기하며 묶어줬건만!
“……마음대로 해.”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의 맞은편에 앉았더니, 재혁은 그런 나를 보며 빗을 들고 주방으로 다가왔다.
“승아야, 아저씨 삐졌네. 어떡하지?”
“아저씨 삐졌어요?”
재혁은 아이를 번쩍 들어 의자에 앉혔고, 아이는 고개를 꺾어가며 흰쌀밥을 우적거리며 씹는 나를 이리저리 구경했다. 재혁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행여 음식에 닿을까 아이를 끌어당겨 똑바로 앉혔다.
“……안 삐졌어. 식탁에서 떠드는 거 아니라고 했어. 빨리 밥 먹어.”
“살벌해라. 진짜 삐졌나 보네.”
재혁은 어울리지 않게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놀렸다.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미역국을 마시는 틈을 타서 나는 얼굴로 그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었지만, 그는 눈썹을 으쓱거리며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는 데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엉성하기 짝이 없던 요리도 이제 나가서 먹는 것보다 맛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를 위한 반찬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이젠 바깥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의 음식과 비교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익숙해졌다는 거겠지.
그가 몇 분도 안 되는 동안 만지작거려 완성한 아이의 머리는, 누가 봐도 내가 몇 십 분 동안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노력한 것보다 깔끔하고 귀여웠다. 작은 움직임에도 찰랑찰랑 흔들리는 양 갈래를 보니 역시 그에게 맡기는 게 맞는 것 같았다.
“…….”
언제 저렇게 원하는 걸 당당하게 말할 만큼 컸는지…… 멍하게 앉아서 음식을 오물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손이 불쑥 나타나 나의 볼을 조물거리다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끝을 모르고 더 과감하게 만지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볼을 기대어 비비는데, 그 순간 승아가 고개를 바짝 들어버린 탓에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그의 손을 쳐내버렸다.
“그…… 그, 오후에 아래층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표성이 살려달라며 애원하던 것이 생각나 말했지만, 재혁은 어딘가 불만이 많아 보였다.
“오늘은 왜?”
“아기, 아직 돌도 아직 안 지났잖아. 혼자 보기 힘들대. 서연 씨 오늘 부산에 내려간다고 했으니까.”
“둘째면 이제 혼자 잘 돌볼 때도 된 것 같은…….”
“승아도 같이 갈래요! 아기 보러 갈래!”
승아는 시원하게 국을 원샷 하더니 그대로 빈 그릇들을 들고 싱크대로 달려갔다. 재혁은 그런 아이를 번쩍 들어 싱크대에 그릇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줬고, 다시 바닥을 디딘 승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나도 동생 갖고 싶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기대에 찬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봤더니, 재혁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동생 돌보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다 할 줄 알아야지. 밥 먹은 다음에 뭐 하라고 했었지?”
대답도 없이 우당탕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승아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승아가 혼자 이 닦고 가방 쌀 줄 알면 너 아기도 낳을 수 있냐? 말도 안 되는 약속 같은 거 하지 마.”
“네가 낳아야지.”
“지랄 똥 싸는 소리 하지 말고 제발 뒷일 좀 생각하고 말해. 너 가고 나면 그건 다 내가 해결해야 할……!”
“아기 보러 갈래! 체험학습 끝나고 나도 같이 가요!”
그때 승아가 양치질을 하며 다급하게 뛰어나와 소리를 질렀다. 재혁은 그런 아이에게 양치질은 화장실에서 하는 거라며 다시 들어가라 손짓했다. 순순히 화장실 안으로 돌아간 아이를 보며 그릇을 치우는데, 그가 반찬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같이 해결하면 되지 뭘 혼자 다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을 해.”
진지함이라곤 묻어나지 않는 그의 가벼운 말투에 어쩐지 나 홀로 고민한 것 같아 욱했다.
“너 조만간 제주도로 내려갈 거잖아. 일도 대부분 끝났고 이제 바쁜 것도 다 정리됐고, 팀원들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들 대충 알고 있…….”
“승아도 같이 데리고 가야 해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불을 끄면서 나온 아이는 곧바로 가방을 메고 뛰쳐나와 빨리 나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허둥지둥 나갈 준비를 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정신없던 아침을 보내고 관사로 돌아왔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신발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그가 뒤에서 목을 끌어안으며 내 주머니에 나머지 손을 쑤셔 넣었다.
“뭐야, 비…….”
“오늘 이상해.”
“어, 너 엄청 이상해. 비켜봐, 무거워!”
“진짜 비켜?”
“어!”
물러날 생각이 없는 녀석의 발을 콱 밟았더니 그는 그제야 나를 놓아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나를 잡은 건 그의 물리적인 힘이 아닌, 한마디 말이었다.
“나 어디 안 가.”
“……뭐?”
뜬금없는 고백에 돌아보자, 밟힌 발을 쥐고 쪼그려 앉은 그가 한 번 더 확고하게 말을 던졌다.
“여기 있을 거야. 너랑.”
나와 눈을 맞추는 녀석은, 모든 게 쉬운 녀석이었다. 말하는 것도, 다가가는 것도, 내 삶에 들어오고 나가는 일도.
“…….”
“걱정했어? 나 어디로 가버릴까 봐?”
별것 아닌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 그간 품고 있던 긴장감이 모조리 흘러내린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가슴을 졸이며 그에게 안절부절못하고 낯부끄러운 행동을 보였을 걸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아니, 안 했는데? 가려면 가. 하나도 안 아쉬워.”
잠깐의 정적에도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든 신경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설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잡아주겠지. 아무리 매몰차게 밀어내도 다시 상냥하게 다가왔었던 것처럼 오늘도 다를 바 없이 감싸주겠지.
달기만 했던 일상들 덕분에, 당연하게 생각하면 돌아오는 건 상처밖에 없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가라고 하면 가야지. 사실 좀 무리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긴 하거든. 싫으면 가야지, 당사자가 거부하는데.”
그는 태연하게 나와 시선을 맞추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펑퍼짐했던 티셔츠를 벗고서 셔츠를 입고는, 태평하게 넥타이 길이를 조절하며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그를 똑똑히 보고 있는데도, 그는 나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렇게 여유를 떨고 있었다.
진짜 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지. 그의 자리를 내가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막막했다.
쓸데없는 밥은 그렇게 잘 차려줘놓곤, 왜 지금은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건데.
“……넌 치사하게 이럴 때에만 말 더럽게 잘 들어, 왜.”
“흠…… 같이 있어달라고 해주면 안 나갈 수도 있고.”
그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입꼬리를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잔뜩 일그러진 나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여느 때라면 그런 녀석의 등을 냅다 걷어차버렸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가 지금이라도 훌쩍 자리를 비우고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내 곁을 떠났던 다른 사람들처럼.
멀뚱멀뚱 서 있는 그의 품에 파고들며 입을 열었다.
“……가지 마.”
모든 게 멈춘 짧은 찰나의 순간이 두려웠다. 조금 더 솔직할 수 있었다면, 내가 이런 모순적인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숨을 쉰다는 게 고통스러웠어. 눈을 감으면 차라리 이대로 내일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
……라는 싱거운 그의 대답에 다급해졌다. 짧게 숨을 들이마시기를 반복하면서 마음 한편에 감춰두었던 생각들을 토해냈다.
“근데 이젠 하루하루가 소중해졌어. 증오와 두려움에 버텨내야 했던 삶이 지키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버렸어. 밀어내고 싶어서 악으로 견딘 일들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나를 봐주는 눈이 있다는 게 좋았다. 뒤척거릴 때면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는 손길이, 매번 내가 어디를 향해 있더라도 나를 향해 있는 시선이 좋았다.
“욕심이 나.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억누를 수가 없어. 내가 나를 봐도 너무 한심하고 답답한데 그만둘 수가 없어. 내가 이기적이고 못된 놈이라는 거, 거칠고 갑갑하고 겁 많은 놈이라는 것도 알아.”
“…….”
“근데…… 갖고 싶은데, 계속 네 시선이 나에게만 향해 있었으면 싶은데 어떡해. 불안하고 초조해. 네가 말없이 사라질 때마다 멍청하게 겁먹은 쥐새끼처럼 심장이 뛰고 가슴이 저려와. 아닌 척해도 덮쳐오는 공포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아무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나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니까 가지 마. 같이 있어. 나랑 계속…….”
그는 피식 웃으며 그런 나를 부드럽게 안아줬다. 시원한 그의 피부에 닿으면서도 왜 따뜻하다고 느껴지는지.
“알았어.”
울컥한 마음에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내 속을 알 리 없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불안하게 둔 내가 잘못했어. 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내가 잘못한 거야. 하나도 바보처럼 보이지 않아. 왜 눈앞에 놓인 해피엔딩을 두고 자꾸 덮어버리려고 해.”
그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깨달았다. 다른 때였다면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으며 과거의 나를 나무랐겠지만, 오늘은 그런 폭력적인 감정이 아닌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품을 내어주다가 몸을 떼고는 열이 오른 내 볼을 양손으로 감싸왔다. 나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데, 피식피식 웃는 얼굴이 얼마나 얄미운지.
시원한 손에 얼굴을 맡기고 있자, 왜 내가 아침 댓바람부터 찌질하게 눈물을 쏟고 있어야 하나 싶어 어딘가 억울했다. 있는 힘껏 그를 노려보자, 그는 나의 양볼을 누르면서 키득거리며 말했다.
“출근 시간 20분밖에 안 남았어. 그런 얼굴 보이면 내가 너무 곤란하……!”
남의 속도 알지 못하고 능글맞게 속삭이는 그의 발을 밟아버렸다.
“……짐승 같은 새끼. 네가 뭐가 좋다고 내가 이러고 사냐…….”
덕분에 눈물은 쏙 들어갔다.
그가 내가 한 마지막 말을 못 들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도망치듯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옷 안 갈아입고 가?”
더럽게 빠른 녀석은 단번에 나를 따라잡으며 물었고, 그에 지기 싫어 이를 악물고 달리며 소리 질렀다.
“가서 갈아입을 거야!”
더 루트 오브 블러드(The Root of Blood)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