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통제할 수 없는 (1)
“아니, 이건 제가 갖고 있…….”
상대가 내미는 손을 거절했지만, 절대 그를 무시하거나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의 여정에 챙겨 온 짐이라곤 몇 벌의 옷과 세면도구가 다였지만, 온통 재혁과 관련된 것들 속에서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일단은 품에 두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비행기나 잡아타고 가도 고작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를 비싼 돈을 들여 전용기를 타고 오는 것도 웬 돈 낭비인가 싶었는데,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공항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로 부담스럽게 차 있었다.
마치 먼 나라 귀빈이라도 온 것처럼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둘러싸고 보호하는 건, 다름 아닌 재혁과 나였다. 이런 곳에서 도대체 누구의 위협이 걱정되어 난리를 떠는 것인가 싶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타인이 문을 열어주는 차에 탔다. 유난스러워 보여도 오히려 그가 부대에 처음 온 날을 떠올리면 그에겐 이게 더 당연한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이곳에 온 일이 잘한 것인가 곰곰이 되짚어봤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정적을 이끌던 이들은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닦달하지 않았지만, 재혁은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허리를 조금 숙인 채 눈을 맞추며 말했다.
“타, 멍하게 서 있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게 다 무슨 난리야…….”
때 아닌 양복을 쫙 빼입던 그를 보며 무슨 오버를 떠나 싶었는데, 오히려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온 내가 유별난 놈이 되어 있었다. 앞뒤로 막아선 차를 힐끔거리자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무섭게 말을 꺼냈다.
“출발하겠습니다. 실례지만 벨트 좀 매주시겠습니까.”
“아, 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안전벨트를 매고 나니 차는 금세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입력해둔 메모를 줄줄 읊는 기계처럼 말을 내뱉었다.
“아직 저녁 모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조은 님이 그전에 만나기를 원하셔서 짐 정리가 끝나는 대로 본가로 모시겠습니다.”
낯선 이름에 고개를 돌리다가 재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고, 운전석의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선 개인 일정으로 오후 5시 이후에나 들어오실 예정입니다. 도착 30분 전쯤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재민 님은 제주도에 내일 오전 중으로 도착하실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오늘 마주칠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바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재민의 소식을 전달받는 게 마치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것 같았다. 괜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야 외면하고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은 선을 넘은 뒤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하려는데, 옆에 앉아 있던 놈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저녁엔 불편할 것 같으면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돼. 내일부턴 웬만하면 같이 다닐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그게 싫다면 제이한테 이야기하고.”
“제이?”
그는 손을 들어 친히 앞에서 운전하는 이를 가리켰다. 제이라는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 불편하면 혼자 돌아다녀. 하지만 괜한 곳 쑤시고 다니는 것보단 그냥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쪽이 좋을 거야. 쉰다고 하고 제대로 쉰 적도 없으니…… 아마 팀장님이 진짜 원하는 게 그걸지도 모르고.”
이른 아침에 출발한 터라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도시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는 구불구불한 숲길을 지나갔다. 가뜩이나 좁은 섬에 꼼꼼히 숨겨봤자 얼마나 깊숙이 있을까 싶었는데, 인적이 끊기기 시작한 뒤 연이어 파장이 터지며 차 안을 울렸다.
운전하는 이는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헛구역질을 하는 나에게 괜찮으냐며 물었다. 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 없이 곧 있으면 나아질 거라는 위로를 건네주는 것뿐이었지만. 다행히 정이 없는 말투일 뿐 정보는 정확했는지 울렁이던 속은 곧 가라앉았다.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을 거침없이 달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던 장소의 개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연신 창문을 때리는 나뭇잎 소리가 경고의 소리인지 환영의 소리인지 알 순 없었지만 조금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의 향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싱그러운 향이었다. 시트러스 향 사이로 섞이는 풀 내음에 복잡하게 엉키던 생각들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 공간이 그가 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면 왜 그와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러그를 관사에 깔아두었는지 이해가 됐다. 여름에 맞게 푸르지만, 눈을 감고 있다면 봄을 떠올릴 만큼 매력적인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트인 공간 사이로 햇빛이 들어찼다. 그제야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눈앞에는 생각보다 소소한 2층짜리 목조 주택이 서 있었다. 말 그대로 ‘생각보다’지, 혼자 산다고 한다면 작은 집은 절대 아니었다.
“금방 내려올 테니 따라오지 않아도 됩니다.”
문을 열어줄 때까지 고상히 앉아 있을 줄 알았더니, 재혁은 내리려는 제이를 제지하고 차에서 내렸다. 숲속이라 그런지 한여름인데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 습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흙을 밟고 내린 곳은 완만한 나무 계단을 따라서 돌담이 쌓여 있었다. 이곳이 정말 제주도와는 관련 없는 땅이라는 걸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돌담이 온통 구멍이 뚫린 현무암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나무와 풀이 자라 집 주위를 아우르고 있었다. 몇 안 되는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넓은 테라스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놓인 화단엔 잘 가꾼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집은 사방으로 창이 나 있었고, 높이가 있는 땅의 굴곡을 그대로 이용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저 숲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테라스를 막은 울타리마저도 화려한 기교 없이 뭉툭하게 깎아놓은 나뭇가지들이었다. 그가 집을 비운 지 적어도 석 달은 되었을 테지만 어제까지도 사람이 산 듯 비어 있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타인이 들어올 가능성 따윈 배제해둔 듯, 잠금 장치도 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신발은 거기 넣어 둬도 되고, 불편하면 그냥 옆에 밀어놔도 상관없어. 실내화는 신고 싶으면 이거 신고.”
내부라고 밖과 다를 것은 없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만이 인공적인 느낌이 난달까. 영화에서 본 것처럼 벽난로 같은 난방 시설은 없었지만, 포근해 보이는 소파나 바닥을 덮고 있는 카펫 덕에 한껏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집에서 오랜 생활을 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성격인지, 이 집에는 꼭 필요한 주요 가구 외엔 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흔한 시계도 하나 없고 액자나 장식품도 없이 그저 문양이 들어간 천 조각 정도가 다였다. 책을 채운 벽 외에 뻥 뚫린 창문 밖을 두리번거렸다.
“책을 읽을 것 같진 않다만 구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야 꺼내서 봐도 상관없어. 잠은 2층에서 자면 되고. 애초에 침실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지만 나름대로 구색은 갖춰놓았으니까 쓰기 불편하진 않을 거야. 나는 1층에서 지낼 거니까, 넓은 침대 혼자 쓰고. 짐은 편할 대로 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그의 말과 다르게 2층으로 올라가서 본 곳은 손님이 올 것을 예상하고 만든 듯 잘 꾸며져 있었다. 때 타지 않은 가구들은 집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튀지 않았고, 이불마저도 새하얀 게 그가 얼마나 깔끔한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하늘거리는 커튼이 책상을 간질이고 있었다.
이곳이 원래 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계단에서 바로 이어져 있어 문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1층에 있는 방에만 들어가지 마. 뭘 만들어 먹을 생각은 없겠지만 보다시피 주방은 없어. 식사는 제이가 끼니마다 가져다줄 거야. 궁금한 거 있…… 아, 화장실은 아까 2층 옷장 옆에 문이 있는데, 거기 열면 있어.”
“집 구조 한번 특이하네.”
그도 인정하는 듯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맛대로 지은 거니까. 실질적으로 지낼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쁘면 나가봐.”
계속 시각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렇게 말하니 그는 미련 없이 신발을 갈아 신으며 말했다.
“9시 정도면 돌아올 거야.”
“신경 쓰지 마. 아무 때나 들어와도 상관없어. 애도 아니고.”
“그래.”
그나마 현대적이었던 자동차마저 사라지고 나니, 홀로 숲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창문을 통해 밖을 보더라도 살아 있는 액자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하늘로 떠오르는 먼지들마저 어우러져 몽환적인 느낌을 줬다.
무슨 책이 이렇게 많나 싶어 책장을 둘러보니 대부분 일반적인 문학책이었고, 한구석에 대학 전공 서적 느낌이 물씬 나는 「뱀파이어의 이해」라든가 「뱀파이어의 역사 100년」 같은 제목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없던 독서 욕구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제목들에 진저리를 치며 발길을 돌렸다.
“음…….”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호기심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욕구였다. 잠금 장치도 없는 문 하나를 두고 한참을 서 있었다.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남은 재혁을 두고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었지만, 언제나 한 발짝 뒤에 서서 나를 지켜보는 그라면, 나의 행동을 예상하고 경고를 날린 건 아닌가 싶어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결국은 제목도 모를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눈앞에 놓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애초에 가져온 짐도 별로 없었기에 방 한구석에 가방을 밀어놓고 제목도 모를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지친 몸을 위하여 침대에 벌렁 누웠다. 침대를 고를 때 그렇게 신중하더니 그날만 유난을 떤 건 아니었나 보다. 구름 위에 누워 있으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포근한 감촉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비싼 게 좋긴 좋네.”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보통이라면 1층에 있을 화장실을 굳이 2층에 만들어두었을까 싶어 옷장 옆에 있는 문을 열었더니 들어가자마자 웬 벽과 장식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들어가서도 양옆으로 나뉜 공간을 보니, 씻는 공간과 싸는 공간이 철저히 나뉘어 있었다.
조그만 문과 다르게 욕조는 네 사람도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다. 물을 가득 담았다간 집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큰 욕조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씻는 일에 환장을 한 놈이란 걸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버하는 거 은근히 좋아한단 말이지…….”
하늘하늘한 커튼과 유난히 잔뜩 달린 전구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잠시 있을 곳에 책상까지 자리 잡은 걸 생각하면 마치 사람이 살고 간 흔적 같아 보였다. 책상 앞에 서자 바로 옆에서 들이치는 햇빛에 절로 눈이 감길 정도였다.
나름대로 남의 집 가구라고 서랍을 조심히 열었는데, 비어 있을 줄 알았던 서랍 속에서 펜 한 자루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어울리지 않게 캐릭터가 조각된 펜을 들어 구경했다. 툭 튀어나온 뭉툭한 부리에 동글동글한 얼굴이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새였다.
“오리……?”
“오리 아닌데. 오리너구리라니까. 부리도 훨씬 넓고 대가리도 더 납작하게 생겼잖아.”
여린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여자의 흰 원피스는 힘없이 걸린 커튼과 다를 바 없이 바람에 흩날렸고, 그녀가 빼앗아 든 펜의 캐릭터가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여자는 기껏해야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고, 햇빛을 받아 투명한 피부는 핏줄이 그대로 비쳤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에는 죽은 나뭇잎들이 달라붙어 있는 게, 금방이라도 풀숲을 구르고 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더군다나 그녀의 품에는 장미꽃이 한가득 있었는데, 가시가 제거되지 않아 그녀의 팔은 긁힌 자국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예?”
멍청한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펜을 가져다대며 조용히 나를 나무랐다.
“작게 말해야지! 있는 거 들키면 안 된단 말이야.”
그녀는 나의 경계하는 태도에도 상체를 흔들며 여유를 부렸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이 흩날려 현대무용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처음 보는 얼굴이네. 왜 오리너구리를 몰라보는 거야. 내가 그려주기까지 했는데 기억 안 나? 이렇게 눈이 뿅! 있고 헤엄을 이렇게 네발로 슉슉! 치는 거.”
해맑게 웃는 게,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거려주니 상대는 눈웃음까지 지으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시험!”
그녀는 당당히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오리너구리는 포유류일까, 조류일까!”
한참이나 대답 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입을 삐죽거리고는 펜을 나의 얼굴에 들이밀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포유류일까, 조류일까. 내가 말해줬었잖아.”
“……조류요?”
“땡! 포유류라고 했잖아.”
목소리를 한껏 죽이고 말하는 여자는 실망스럽다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난데없는 상황에 뒷걸음질을 쳤지만, 얼마 안 가 허벅지 뒤에 닿는 책상에 막혀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무슨…….”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더욱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내 가슴께에 코를 박곤 냄새를 맡았다. 겁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말한 상대는 되레 인상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우웅…… 사람이었네.”
그녀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웅얼거렸다. 마치 내가 사람이면 안 된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내내 약에라도 취한 듯 움직이던 여자는 실내화를 신으라는 집 안에서 당당히 맨발로 걸어 다녔다. 그녀는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더니 책상에 올려놓았던 책까지 품에 안고는 단숨에 아래층까지 뛰어 내려갔다.
발소리가 요란하게 옮겨 다니는 걸 보니 집 안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듯했다. 1층에 있는 문이라곤 집 밖으로 나가는 앞문과 재혁이 자신의 방이라고 경고하던 문밖에 없었지만, 여러 번 문소리가 나는 걸 봐선 거리낌 없이 그의 방까지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다 돌아다녔는지 밖으로 나간 여자는 여전히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흙을 그대로 밟고 돌아다녔고, 곧장 고개를 들어 창가에 서 있는 나와 눈을 맞췄다. 빨갛다 못해 흑적색을 띠는 장미꽃 다발과 책을 꼭 끌어안은 여자는 공허한 표정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잠깐 사이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뭘 찾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소파 위에 놓여 있던 쿠션들은 제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차분히 깔려 있던 카펫은 마음대로 접혀 있었다.
책장까지 뒤졌는지 그나마 손쉽게 움직일 수 있는 소품인 책들은 제멋대로 펼쳐지고 구겨져서 처참하게 떨어져 있었다. 짧은 시간에 엉망이 된 집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뒤집어놓은 물건 이외엔 내던질 물건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달까.
굳게 닫혀 있던 창문과 문들은 활짝 열려 모두 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노력할 필요도 없이 열린 방 안으로 눈길을 돌린 순간,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경계심도 공격성도 없어 보이던 상대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쏟아냈다.
“몰래 나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장미꽃 좋아하니까…… 새벽부터 정원에 가서 꺾어왔는데, 잠깐 잠들어버렸어. 너무 졸려서 한 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벌써 해가 머리 위에 떴잖아.”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겁에 질린 채 쏟아내는 말들에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오래 못 볼 수도 있다고 하더니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느라 못 오게 하려고 그랬던 거였어. 그래서, 와도 없을 거라고, 오지 말라고 했나 봐.”
“…….”
“내가 혼자 여기 있어도 된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큰집으로 보내버리고 모르는 사람들 덕지덕지 붙여놓더니. 그래서 그런 거였어. 이제 내가 필요 없어졌나 봐. 너무 약하니까. 이제 쓸모없어졌나 봐.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
울상이던 여자는 갑자기 거친 숨을 토하며 얼굴을 붉혔다.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집어 던졌다. 어쩔 줄 모르며 손을 휘적거리다가 이내 장미꽃 다발을 움켜쥐고 마구 휘둘렀다.
단단한 가시들은 살을 파고들었고, 바닥은 떨어진 꽃잎과 선홍색 피로 처참해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게 맞지? 난 멍청해 보여도 눈치는 빠르니까. 그러니까 분명해. 내가 틀릴 리가 없어.”
그녀는 들고 있던 장미꽃을 나에게 무작정 들이밀었다. 볼품없이 축 처진 꽃은 이미 바닥에 잎을 다 떨군 뒤였고, 줄기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너 가져. 난 이제 필요 없으니까.”
나에게 꽃을 넘긴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들고 있던 펜을 강하게 쥐었다.
“아니, 잠……!”
앞뒤 없는 상황에 상대의 팔목을 잡았지만, 그녀는 이미 제지당할 걸 알았는지 반항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뭐라고 하셨대?! 재민이는? 아빠는! 나는 내가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된 줄 알았잖아. 그래서 매일 말도 잘 들었는데! 오늘 몰래 나와서 그런 건가? 분명 모르고 있을 텐데도?”
구면인 사람이었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밀어붙였겠지만,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를 상대로 무조건 마음대로 굴 수 없어 그저 버티고만 있는데, 다음 순간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재혁이 거칠게 튀어나오는 숨을 참으며 펜을 뺏어 들었다.
그렇게 몸부림치던 여자는 재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품으로 달려들어 고분고분한 양이 되었다.
“나 안 버리기로 했었잖아! 다른 사람 안 만나기로 했잖아. 나 큰집에 두고 간 거, 저 사람 때문이야?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울먹이며 품에 안긴 여자의 어깨를 한쪽 손으로 감싼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른 얼굴을 쓸었다.
나름대로 겪을 일은 다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벌어지는 정신없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건 나뿐인 듯했다.
그녀의 엉망이 된 옷과 몸을 본 재혁은 엉뚱하게도 나의 손에 들린 장미꽃 줄기를 앗아갔다.
“그런 거 아니야.”
짧은 말에도 그가 화를 참고 있다는 것쯤은 이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을지.
“여기 나 말고 다른 사람 온 적 없었잖아! 엄마랑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올 거라고 해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 재혁이 장미꽃 좋아하니까. 그래서 꽃도 꺾어서 가지고 왔는데! 들키면 안 되잖아. 그래서 큰일 나면 숨어 있으라고 했던 곳에 숨어 있었는데 너무 깜깜해서 잠들어버렸어.”
나는 어느새 그들의 대화 속 불청객이 되어 있었다. 분명 분노를 표출하던 여자는 애써 나오는 울음을 참으면서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 잘못한 거야? 응?”
같은 주제를 가지고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하면서 서 있는 둘의 대화에서 나 자신이 불편하게 언급되는 걸 듣고 있자니 괜히 죄인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시선을 줄 때면 여자는 더 끈질기게 그를 닦달했다.
더는 그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계단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투박한 벤치가 무슨 쓸모가 있나 싶었는데 이거야말로 나를 위해 준비한 게 아니었을까.
거리낌 없는 대화에 가족인가 생각했지만 생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녀를 잘못 본 건가 싶어도 상처 난 몸을 보면 인간이 아니라는 게 더 말이 안 됐다.
처음엔 내가 사람이라 적대시하는 걸 보고 그에게 정기적으로 피를 준다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뼈밖에 없다고 해도 믿을 만한 상대의 몸을 생각하면 가능성조차 논할 수가 없었다.
가족도, 친척일 리도 없는 이가 아무렇지 않게 그의 가족을 언급하는 걸로 보아 무슨 드라마에 나오듯 내정된 약혼자라도 되는 건가, 생각까지 막장으로 흘러갔다.
제이는 쫓겨났는지 뚜벅거리며 나오면서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제이는 집 안에 시선을 남겨둔 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 질문도 없으시네요.”
제이의 목소리에서는 한결같이 단단함이 묻어났다. 설명이라도 해줄까 싶어 기다렸지만, 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다. 기계 같은 상대에게 입력을 해줘야 돌아오는 말이 있을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사람 맞죠?”
“하프입니다.”
“제이 말고요.”
제이는 짧은 탄성을 내뱉고 바로 대답했다.
“조은 님이라면 사람이 맞습니다.”
막상 뭐라고 질문을 해야 하나 싶어 열심히 대화 중인 둘을 보고 있는데, 화난 얼굴로 돌아선 여자가 책장으로 가 아직 무사히 꽂혀 있던 책들을 바닥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뜯어말릴 줄 알았더니 재혁은 말리기도 포기한 듯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구겨서 보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던 것 같은데 책이 생각보단 소중하지 않나 보네요.”
“그래도 책보단 조은 님이 중요하실 테니까요. 그리고 진짜 중요한 책들은 본가나 방에 있을 테니 괜찮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등장한 이름의 주인공은 한참 동안 책을 짓밟고 나서야 화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진 듯 보였다.
“생각처럼 흘러가는 날이 드뭅니다. 모든 일은 언제나 돌발 행동으로 이어져 예측하기가 힘들죠.”
턱을 긁적이며 말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서 둘이 같이 살았어요?”
“아닙니다.”
제이는 주춤거리더니 곧 바른 자세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조은 님이 침입하셨다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두 분 다 본가에서 사셨으니까요.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날 때까진 이렇게 심하지 않으셨는데, 재혁 님이 졸업하시고 외부활동이 잦아지시면서 집착하는 일이 많아지셨습니다. 이 집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조은 님의 치료 목적으로 지은 겁니다. 좀 더 확실한 분리와 만남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대체 무슨 사이길래…….”
“그건 제가 섣불리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네요.”
다 대답해줄 것처럼 술술 불던 제이가 말을 뚝 끊어냈다. 무슨 서사가 있기에 저렇게 단호히 거절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이제 진정한 듯 보이는 조은을 보고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를 위해 재혁이 거리를 벌리려고 하자 여자는 나를 힐긋거렸고, 한참이나 시간을 끌고서야 그를 놔주었다.
신발을 벗지 않고 있던 재혁은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팔짱을 낀 채 걸어 나오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햇빛에 눈이 부신지 조금 인상을 쓰던 그는 내 앞에 섰지만, 집 안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곧 돌아섰다.
제이와 다를 바 없는 행동에 황당함이 앞섰다. 그의 바지 주머니는 그가 손을 넣고 꼼지락거리는 통에 울룩불룩했고, 테라스를 들락날락하는 다람쥐는 그의 바지 움직임을 더욱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다.
무심코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가 절로 들렸다.
“너랑 승아같이 쉽게 설명할 사이는 아니야.”
“나랑 승아가 쉽게 설명할 사이라는 것부터 놀라운 얘기네. 얼마나 대단한 관계길래 그래?”
“피가 섞인 건 아니지만, 거의 14년간 같이 살았으니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고.”
순순히 대답하다가도 금방 입을 닫아버린 그에게 혼잣말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조심해야겠던데,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자는 사이에 칼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고.”
“……그럴 일 없어. 네 생각보다 나쁜 애는 아니니까.”
“그렇겠지.”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간 때문인지 싱겁게 오가는 대화에 긴장감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입안 주머니에 땅콩을 잔뜩 욱여넣은 다람쥐의 모습에 집중했다.
한계를 모르고 늘어나는 볼 주머니에 과연 얼마나 더 많은 땅콩이 들어갈지 보고 있는데, 그는 변명을 늘어놓듯 집 안에 있는 사람의 변호를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땐 더 심했어. 차라리 너처럼 돌아갈 곳이라도 있었을 꼬마였으면 덜 심했을지 모르지만, 놈들한테 잡혀서 살았던 애라…… 지금도 그냥 겁내고 있는 것뿐이야.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잘못 골라서 그래.”
같은 경험을 했지만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았을 사람이니까 이해하라는 건지. 그는 묻지도 않은 사실 관계를 늘어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궁금하진 않았지만, 그가 가엽게 보고 있는 저 사람과 나를 겹쳐 보고 있던 건 아닐까.
내가 보던 그의 어디서부터가 본모습이고 어디까지가 색안경에 씌워진 모습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타인을 향한 그의 눈이 어쩌면 모두 거짓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그들에겐 먹이에 불과한 생명이었다. 그런 인간들의 어떤 면이, 그의 마음에 불편함을 심어 저런 태도와 눈빛을 만들어냈을까.
그가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한테 칼을 내던지기 전에 손목을 그었다면 좀 더 편한 삶을 살았을걸. 안 그래?”
또렷한 나의 말에도 그는 제 할 말만 내뱉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흥분하는 일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얘기해. 지금 이미 좀 늦어서 집은 갔다 와서 치울 테니까 그냥 두…….”
조금 전까진 할 일이 없는 세상 속에서 책상이나 뒤적거렸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눈앞에 널린 게 다 그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같이 가. 안 불편해. 눈만 마주쳐도 재수가 떨어지던 너랑 휴전 협정까지 체결했는데 더 불편할 게 뭐가 있어.”
나의 제안에 놀랐는지 시계와 여자를 번갈아 보던 그는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참 올려다보는 시선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내일부터 같이 다니다 보면 다 만날 거 아니야. 오늘 하루 일찍 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오늘 저녁엔 아마 친척들까지 한자리에 모일 거야.”
“가족 말살에 관해 얘기한 것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아직 실행 계획은 없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건지 대답 없이 서 있는 놈을 뒤로 밀어냈다.
“옷 갈아입을 시간은 줘라. 그 정도 예의는 지키고 싶네.”
챙겨 온 셔츠가 구겨지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떼는데 잡힌 어깨에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지 입을 벙긋거렸다. 나올 듯 나오지 않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인내심이 폭발해버렸다.
“뭐.”
그는 결국 입을 벙긋거리기를 포기하고 나를 놓아주었다.
“……됐다. 갈아입고 나와.”
***
1년 전 표성의 결혼식 때문에 사놓았던 양복은 그때는 분명 딱 맞았었지만, 지금은 조금 품이 넉넉했다.
“저기, 이리 좀 와봐.”
왜 이렇게 자리가 불편한가 했더니 옷 때문도 아니고 옆에 앉아 나를 째려보는 사람 때문이었다.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내던 조은이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빨리.”
굳이 응답할 이유가 없어 무시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다가와 가까운 거리를 만들었다. 앞에 앉으라는 재혁의 요구를 한사코 거절하더니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나, 원래 훨씬 더 가벼웠다? 살찌려고 12시 넘어서 밥도 먹고 막 푸딩도 먹었어. 엄마가 남긴 케이크도 다 먹어버리고. 부럽다! 나도 엄청 덩치 커지고 싶은데. 그럼 피도 엄청 많아지고 팔뚝에 핏줄도 막 튀어나오고 그랬을 텐데.”
설마 했더니 진짜 저 마른 몸에서 나오는 피를 마시고 살았다는 소린가.
“내 손 엄청 하얗지? 만져볼래?”
거리낌 없는 반말에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체를 들이밀며 만져보라는 말에 아무렇지 않을 순 없었다. 반응이 없는 나의 태도에 조금은 당황했는지 뒤로 물러났던 여자는 큰마음을 먹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재혁이는 하얀 피부를 좋아하거든, 난 그래서 밖에 잘 안 나가. 햇빛을 많이 보면 살…… 이렇게 너처럼 타버리잖아. 콱 박을 때 하얀 팔뚝에 빨간 피가 주르륵 흐르는 걸 보면…… 내가 다 기분이 이상해진단 말이야.”
자신이 꽤 자랑스러운 듯 턱을 치키며 말하던 여자와 달리 앞에 앉은 그는 태평하게 밖이나 보며 앉아 있었다. 옆에서 종알거리던 여자는 어딘가 설레어 보이는 표정으로 물었다.
“재혁이가 좋아하는 색이 뭔 줄 알아?”
내가 좋아하는 색이 뭔지도 모를 판에 그가 좋아하는 색을 알 턱이 있나.
“……노란색이요.”
귀찮은 마음에 대충 색이나 내던졌건만 여자의 반응이 심상찮아졌다. 조용해졌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게 아마 내가 말한 색이 맞았나 보다. 그냥 조용히 있을걸.
“네 피, 먹은 적 있어?”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옆 사람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있다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대답을 안 하면 아까처럼 난리를 칠까 싶어서 없다고 대답하려던 순간, 앞좌석에 앉아 있던 놈이 대답을 가로챘다.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야.”
“진짜?”
그녀는 나에게서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은지 그가 아닌 나를 향해 되물었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확답을 주자 그녀는 세우던 경계를 허물고 처음 봤을 때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예민하게 굴던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싱겁게 인정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럼 여긴 왜 왔어? 친구야? 엄마가 좋아하겠다. 나한테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거든.”
질문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끊임없이 뱉어내는 덕에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초콜릿이라든가, 쉬는 시간엔 대부분 그림을 그리며 보낸다든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들으며 한참을 달려와 도착한 곳은 숲속 한가운데에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별장 같던 곳과 확연히 다른 곳이었다.
제대로 인공적인 느낌을 풍기며 깎인 나무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고, 길도 제대로 닦여 굴곡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대문이라는 곳을 지나고 나서도 차로 한참을 달려야 했다.
덩그러니 큰 집이 서 있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작은 집들이 지어져 있는데 여기가 전부 그의 집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일할 사람들의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뭐가 어찌 됐건 절대 한국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시트러스 향과 풀 내음이 섞여 나던 그의 집과 달리 이곳에선 철저하게 라벤더 향만 퍼지고 있었고, 제이에게서 희미하게 나던 캐모마일의 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집안을 과시하듯 길 따라 펼쳐진 토피어리들과 기하학적인 장식품들을 보며 앉아 있자니 얼마 가지 않아 보이기 시작한 집은 말 그대로 대저택이었다.
집 앞엔 수영장만 한 크기의 분수대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정성 들여 다듬어놓은 나무들이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건축물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하얀색과 아이보리색이 어우러진 벽에 남색 지붕을 덮어놔 촌스러워 보일 뻔한 집을 세련되게 만들어놓았다. 어느 하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확한 계산 아래 뚫린 창문들의 개수를 세는 것도 한참이 걸릴 정도였다. 5층이 넘는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방이 있을지, 이런 집에서 살던 놈이 어떻게 그 좁아터진 관사에서 살았을지 상상이 안 됐다.
“제이랑 방에 있어.”
재혁은 도착하자마자 조은에게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싫어. 나도 같이 갈 거야.”
“30분이면 돼. 얘기 끝나면 바로 방으로 갈게.”
심각한 표정으로 재혁을 보던 조은이 갑자기 내 팔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거의 매달리듯 달라붙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럼 얘랑 같이 갈래. 제이랑 가기 싫어. 재미없어. 나랑 같이 가자. 오리너구리, 오리너구리가 뭔지 모른다며. 내가 알려줄게. 내 방에 오리너구리 진~짜 많아.”
“이건 좀 놓…….”
내가 과연 제이보다 뭘 재미있게 해줬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떨어지려고 손을 잡아 뺄수록 더 강하게 잡는 사람을 내팽개칠 수도 없어서 멍하게 앉아 있으려니, 재혁이 더 단호한 태도로 조은을 불렀다.
“그만하고 나와. 지금 안 떨어지면 30분 뒤에도 안 보러 갈 거야.”
“우웅…….”
서서히 힘을 푼 조은은 눈치를 보며 차에서 내리더니 한껏 풀이 죽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약속은 지키라는 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분명 주위에서는 분수대에서 물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머리를 헤집는 것만 같았다.
괜히 붙잡혔던 옷자락을 한 번 털어냈다. 얼마나 쓸고 닦는지 외부임에도 바닥은 얼룩 하나 없이 광을 내고 있었다. 따라오라는 말에 군말 없이 재혁의 뒤를 따랐다.
실내로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이 넓은 집에 냉방을 다 돌리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할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앞서 걷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주먹을 내지를 줄 알았더니 얌전히 있고, 철저하게 종족을 차별하는 폭력이었나.”
“…….”
“아니었으면 말고.”
시답잖은 말을 무시하며 걸었다. 중간중간 동상처럼 서 있는 이들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연신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도 대수롭지 않게 받으며 걸었다.
복도는 각진 액자와 전등, 화병들로 심심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밝은 분위기에도 싸한 기분이 든 이유를 생각해보니 지나치게 깔끔하기 때문인 듯했다.
“집 더럽게 넓네.”
“막상 살다 보면 별로 크다고 느낄 정돈 아니야.”
“잘났다.”
“네 혼잣말 너무 커.”
“……그래. 꼭 이런 것만 걸고넘어지지.”
갑자기 멈춰 서길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했더니 방 문고리를 잡았다. 2층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그는 노크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질문에 굳이 다 대답할 필요는 없어. 적당히 넘기면서 얼버무려도 상관없…….”
방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밝은 목소리와 반갑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긍정의 의미라는 것쯤은 알았다.
“아들!”
젊은 여자 하나가 발그레하게 뺨을 붉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
“조은이는? 매일 혼자였지만 잠깐 겸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금세 쓸쓸해지네. 어떻게 나갔는지 정말…….”
흰 셔츠에 적당히 달라붙은 검은색 긴치마부터 과하지 않은 액세서리까지, 무엇 하나 튀는 것 없이 잘 완성된 인형 같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밖에서 만났다면 틀림없이 발레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긴 목과 곧은 자세를 한 몸으로 다가오는 여자는 그가 잘난 얼굴을 가진 이유를 모두 설명하고 있었고,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닮아 있었다.
왜 내가 이곳에 온 뒤로 만나는 이마다 인간인 건지. 순혈 운운하며 지랄 맞은 대우를 받던 이가 어째서…….
“조은이는 제이랑 같이 있어요.”
재혁이 몸을 숙여 가벼운 포옹을 건네자 그녀는 재혁의 뺨에 살짝 입술을 맞추며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손을 잡고 쓰다듬는 그녀는 미소를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고, 누가 봐도 광이 나고 있는 그를 향해 조금 푸석해진 것 같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더 자주 보면 좋을 텐데. 힘든 일은 없고? 재민이 말로는 잘 지내고 있다던데…….”
연신 그에게 집중하던 여자는 재혁이 살짝 몸을 틀고서야 나의 존재를 인식한 듯했다. 나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이는 방 안에 있던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앉아요. 이름이…… 백유운이라고 했던가? 시간에 딱 맞춰 와서 차도 딱 좋은 온도예요. 이 냉기 가득한 공간에서 따뜻한 차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
그녀는 작은 노란 꽃이 잠긴 유리 주전자를 들어 내용물을 찻잔에 부었다.
“아휴, 손 봐.”
찻잔을 드는 나의 손을 본 그녀가 짧게 탄식했다. 이 작은 상처에도 안타까움을 표하는 걸 보니, 옷을 갈아입고 오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너는 파트너분이 이렇게 다칠 때까지 뭘 한 거니. 상처가 남으면 안 될 텐데…….”
“괜찮, 습니다. 제가 부주의한 사이에 다친 거니까요.”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소리를 지껄인 재혁은 달궈진 찻잔을 만질 뿐 입으로 가져가진 않았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태연히 차를 권할 뿐이었다. 적당히 뜨거운 차는 쌉싸름하지만 깔끔한 맛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선뜻 와주셔서 감사해요. 대부분은 이곳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아 하니까요. 사람에게는 조금, 섬뜩한 곳이잖아요.”
그녀는 나에게 몸을 굽히며 속삭였다. 길게 늘어뜨려져 있던 목걸이가 탁자의 유리에 닿아 맑은 소리를 냈다.
“……뭐든 적응하기 나름이니까요.”
상대가 나와 같은 체온을 갖고 있다는 점에 시선이 누그러진 것도 한몫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유순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는 내가 그의 가족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함께 자리할 때면 감당이 안 될 때도 많은데……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를 흘겨보자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했다고 느꼈는지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어머,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예요. 뭐 캐묻는다고 대답해주는 살가운 아들은 아닌지라…… 그렇다고 꼬치꼬치 물어봤다거나 뒷조사한 것도 아니고요.”
“괜찮습니다.”
나의 호의적인 대답에 그녀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드물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기도 하니 모처럼 두근거리네요. 혹시…… 그 아이들과 어떻게 경쟁을 하면서 지내고, 아직도 이쪽에서 일하고 있으신 건지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별것 아닌 질문이었지만 들어올 때 들은 괜한 조언에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경쟁…… 경쟁이랄 것도 없지요. 이유가 어떻든 같은 목표를 가지고 들어간 곳이니까요.”
이제야 목을 축이는 재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제가 일하는 부대가 사라져도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수많은 이들과 부딪치며 지냈지만, 안면이 있는 상대와 함께 일하는 건 그것 나름대로 장점도 있고……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도 많이 접할 수 있었고요.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재혁은 피식 웃더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줄 몰랐네.”
“뭐…….”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의자에 각을 잡고 앉아 있으려니 몸이 다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갑갑하게 조이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자 다소 숨통이 트였다.
찻주전자에 둥둥 떠 있는 국화꽃들은 물속을 유영하며 자신의 마지막 향까지 모조리 토해내고 있었다. 미적지근해진 차를 비우자 그녀는 재빠르게 잔을 다시 채워주며 말했다.
“사실은 그곳에 들어간다길래 걱정이 많았어요. 이 아이 형을 키울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달려들면서 거리낌 없이 마시며 자랐고, 주위 다른 아이들만 봐도 제 배 채우기 바쁜 걸 보고 자랐으니 재혁이도 당연히 잘 먹고 크겠거니 했는데…….”
그녀가 강하게 들이닥치는 햇빛에 커튼을 치려고 하자, 재혁이 괜찮다며 말렸다. 다시 자리에 앉은 이는 나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부터 거부를 하는 통에 고생 좀 했거든요. 잘못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키웠는지…… 석 달 동안 집으로 오지도 않고. 상태를 보니 굶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면, 제가 유운 씨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겠죠?”
축 처진 눈썹으로 재혁을 바라보기에 함께 시선을 옮겼지만 이런 놈의 어디를 보고 걱정을 한다는 건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녀가 힘없는 갓난아기 때의 그를 보며 살아서인지, 아니면 좀 더 원초적으로 그를 배 안에 품었던 사람이라서 그랬을지. 뭐가 어찌 되었건 나는 재혁을 보며 그녀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순 없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공생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식사 시간이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에게 겉치레가 잔뜩 든 말을 내던지자, 상투적인 미소를 띠고 있던 나도 내가 하는 말이 웃겨 결국 자연스러운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아주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염치 불고하고 기회가 되면 한 번 초대해서 차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애써 지우고 있던 가족을 직접 언급해주는 덕에 나의 인생에서 굳이 필요할까 싶은 인물과의 관계성에 신경이 쏠렸다. 그가 얼마나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양분을 먹으며 자랐을지.
괜히 순혈, 순혈 칭송받던 그를 낳은 이가 당신이 맞느냐 가시 돋친 말이 튀어 나갈 뻔했다. 그녀가 상냥한 말투와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이미 혼잣말로라도 중얼거렸을 것이다.
악의 없는 말에 반감을 숨겼다. 기분이 나쁘냐고 한다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비교되며 떠오르는 존재에 치가 떨릴 뿐이었다. 부러우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수년에 걸쳐 무뎌진 관계에 정을 느끼고 싶다고 생각하기엔 이미 신물이 났으니까.
“첫 만남부터 부담스러운 말인 듯싶네요.”
상투적인 대답을 던지려는 나를 가로막은 건 재혁이었다.
“어머, 단순한 호의였을 뿐이니까 너무 무겁게 듣지 마요.”
본인도 아닌 타인이 나를 어림잡아 행동하는 것도 호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다. 집중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한창 커야 할 나이에 단식 투쟁을 했다면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자니 꽤 역사 깊은 고집이었네요.”
다행히 나의 말을 들은 상대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도 내려놓고 턱을 살짝 당긴 채 입을 뗐다.
“아기 때는 보모의 손가락을 빨아서 눈치채지 못했어요. 자라면서 더 많은 피가 필요해졌고 그때야 아이가 다른 뱀파이어들과 다르다는 걸, 단순히 피만이 아닌 사람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죠. 다시 순탄하게 자라나 싶었더니 언젠가부터 거부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자지러지는 소리 듣고 있는 것도 괴롭고…… 한참을 씨름하고 나면 제 방에 틀어박혀서 며칠이고 나오질 않으니 걱정이 많았어요.”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억지로 물려주고 먹이는 것도 한때지. 언젠가부터 자기 걱정해주는 내 마음은 하나도 몰라주고 나까지 무시를 해. 그래도 극도로 예민해져서 위태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아이가 악을 쓰더라도 밀어붙일 수 있던 시기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하며 호탕하게 웃었어야 할 타이밍이었을까.
“그나마 조은이가 오면서부터 조금은 수월해졌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한 모금 먹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신경전을 벌였을지, 혹여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을지 몸서리가 쳐질 정도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어머니뿐일 겁니다.”
재혁의 말을 들은 여자는 화를 내진 않았지만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제 자식이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그걸 차분히 보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니. 다른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데 매일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구는데.”
“제가 쓰러진 적은 없죠. 저 때문에 쓰러져 나간 사람들은 많아도.”
“그렇게 하나하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누누이 얘기하잖니.”
인자하게만 보였던 여자의 눈매가 조금은 사나워졌다. 쓰러져 나간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니. 같은 사람을 운운하던 이와 거리가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최소한 죄책감은 느끼셨어야죠. 자식들을 위해서 죄 없는 아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아직 느끼지 못하셨다면…….”
“……아이들?”
나의 중얼거림에 그는 찰랑거리던 찻잔을 한 번에 비워냈다.
“차라리 외면하는 게 낫습니다. 이만 일어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사를 챙길 사람이 둘이나 되네요.”
그의 말에 동요하지 않던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보더니 나를 향해 다시 친절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조은이 이리로 부르면 되니까 식사는 하고 가요. 이런 곳에서 살다 보니 남이 먹는 걸 보는 것도 작은 행복이…….”
“일어나.”
그가 차분하게 던지는 말에 그녀도 강요할 생각은 없었는지 오히려 내게 불편하게 대했다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제3자의 눈으로 볼 땐 줄타기를 하는 분위기였지만 당사자들은 일상적인 상황이었는지 헤어지면서도 가벼운 포옹과 짧은 볼 키스는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