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악연 (2)
팀장님의 퇴원 선물을 외면할 수 없었달까, 훈련을 빼먹고 부탁받은 조사를 위해 새벽부터 부대로 출근해 곧바로 탈의실로 직행했다.
어디를 가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20대의 복식을 찾기 위해 옷장을 뒤졌다. 적당히 신축성이 있는 청바지와 맨투맨티를 입은 뒤 크기가 맞는 흰 운동화로 갈아 신고서 허리춤, 발목, 소매까지 나를 지킬 수 있는 것들로 무장을 했다.
“어디 간 거야.”
일찍 도착해 재혁에게서 조사해야 할 사항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부대 안에선 그의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꼴에 지각을 하나 싶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6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었다. 전화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것도 무색하게 난 그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지각자에 대한 고발은 둘째치고 그를 깨우러 관사에 가야 하나 싶었는데, 심지어 그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면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 부대 관사로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별안간 차 한 대가 나의 옆을 스치듯 달려가다가 멈추었다.
직감이 모든 걸 말해줬다.
“야!!”
……저건 그놈이라고.
나의 호통에 순순히 차가 멈췄다. 순종적인 차에 헛다리를 짚었나 싶어 주춤주춤 걸어갔다. 햇빛이 사이드미러에 반사되어 운전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빛을 피해 지그재그로 걸어가니 조금씩 사람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상대는 창문 밖으로 손을 빼 슬그머니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곤 액셀을 밟으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잡을 시도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나…….”
무작정 부대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당연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차를 잡을 수는 없었다.
“장소 모른다고, 개새끼야!”
무작정 골목을 가로질러 뛰었다. 차로 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벽에 부딪치는 몸을 막느라 아직 손바닥에 붙여놓았던 하얀 밴드가 먼지와 돌가루를 머금고 때가 탔다.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그에게 죽은 마이너처럼 내 손이 갈렸을 테니까.
불법 주차 차량이 즐비한 길을 지나가기 위해 담벼락에 올라가 고양이처럼 뛰어다닌 것도 잠시, 주택과 나무들 사이로 홀로 질주하는 차가 보였다.
계산이 틀리지 않는다면 작은 풀숲을 지나 두 골목을 건넌 뒤 만날 것이다. 목줄에 묶인 개들의 울음소리를 응원 구호 삼아 쉴 틈 없이 달렸다. 해가 뜬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각, 준비 운동도 없이 온몸을 쓰며 뛰어다니고 있으니 관절과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에구머니나!”
웬 할머니가 불쑥 나타난 나를 보고서 들고 있던 화분을 놓쳐 깨트리셨다. 가여운 꽃의 명복을 빌었지만 멈추어 서서 사과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하아, 하……!”
더울까 걱정했던 옷을 방패 삼아 풀숲을 벗어났다. 때 아닌 추격전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치솟았다.
무언가 목표 지점이 있다는 것은 진행 중에 큰 동기 부여가 되기 마련이었다. 나머지 힘을 남은 두 블록에 쏟아부으며 달렸다. 이미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달려오는 차를 당당하게 마주했다.
이 이기적인 새끼야.
“사람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미친놈이 모는 차는 멈출 생각이 없었고, 나도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대로 돌진하는 차를 바라보며 달렸다. 귓가로 울리는 심장 소리는 나를 재촉하고 있었고 재빠르게 돌린 시뮬레이션을 따라 속도를 조절하며 뛰어 올라 자동차 위에 안착하려고 했으나…….
“억!”
보닛을 밟고 올라간 순간, 차가 그대로 멈춰 섰다. 균형을 잃은 몸이 데굴데굴 굴러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부딪힌 충격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고, 목구멍에서 앓는 소리만 새 나왔다.
“으으……!”
어렴풋이 들린 자해공갈단이라는 단어에 뭐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한 채, 하나둘씩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죄인처럼 얼굴을 숨기고 보조석에 올라탔다.
“끄흡, 큽…….”
그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이 작은 주택가에 얼마나 많은 구경꾼이 몰려나왔는지 짜증과 민망함, 고통이 동시에 밀려왔다. 퍼부으려고 했던 말들은 까맣게 잊힌 뒤였고, 숨을 고른 입에서 나온 말은 참으로 간단했다.
“……출발하지?”
10년 뒤에 오늘을 곱씹으며 이불을 차겠지.
그는 액셀을 밟으며 말을 걸었다.
“재주도 좋아. 매번 그렇게 다치고서도 멀쩡하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참 생명력 하나는 질겨. 안 그래?”
올라오는 열감에 옷을 걷어보니 옆구리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곧 시퍼렇게 멍이 들 게 분명했다. 이놈을 만난 뒤부터 몸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이 정도면 내 몸도 눈치껏 상처 나지 않을 때도 되지 않았나?
“네 팔뚝에도 나랑 똑같은 구멍 뚫어놓기 전에 운전이나 똑바로 해.”
“좁은 차에 꼼짝없이 두 시간을 갇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쌀쌀맞게 나오네.”
녀석의 옆구리에 같은 자국을 만들어버리고 싶었지만 내 목숨까지 싣고 운전을 하는 놈에게 그럴 수 없어 이만 바득바득 갈았다.
어쩌다 그와 드라이브를 하고 있냔 말이다. 왜 다들 나와 그를 붙여놓지 못해서 안달인 건지.
그의 다음 말까지 듣고 나니 이젠 삶마저 통째로 빼앗긴 느낌이었다.
“당장 오늘부터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뭐?”
대체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 녀석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손을 놓고 있었을까. 요주의 인물로 찍힌 이 지경까지 와서 내가 파트너를 바꿔달라거나 같은 관사에 들어갈 수 없다고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제 마음대로 내 숨통을 조여댔다 풀었다 하는 꼴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얌전히 녀석에게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다 양보해서 그동안 진 빚은 눈감아줄 테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부대로 옮겨.”
“그건 못 들어줄 것 같은데.”
단호하고 깔끔한 대답이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옆으로 보이는 눈매엔 확고함이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대체 이곳엔 뭘 하러 들어온 거야? 지지층을 얻고 싶거든 옷을 벗고 여자들을 꾀어내건, 나한테 하는 것처럼 숨통을 졸라대건 하라고.”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알고 있다만 나도 네놈이랑 같이 있는 거 썩 내키지 않으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그래.”
“그런 놈이 나랑 방까지 같이 쓰겠다고 결정을 내려?”
알랑방귀 몇 번이면 모든 일은 깔끔히 해결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질 텐데 무슨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지. 답답한 나머지 나는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숙소, 네 잘난 권력이든 돈이든 써서 따로 구해. 네가 나한테 한 짓들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전 대원이 너와 나를 힐긋거리는 판에 그 눈들을 따돌릴 수만 있다면야 언제든지 말해. 네가 원하는 곳에서 지내게 해줄 테니까. 그런데 들키는 날엔? 네 몸만 나에게 강제로 묶일 뿐 난 손해 볼 게 없는 일이야. 지금 그런 판을 원해?”
강제로? 그는 지금, 고작 따로 살다가 걸리는 일 따위로 내 몸을 쥐어짜 강제로 그에게 투여한다는 끔찍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관사 조항 어긴다고 그렇게까지는 안 해.”
“지금 네가 상대하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평생 부모가 진 빚을 갚으면서도 부자 놈들이 부럽지 않았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권력을 부러워한 적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들의 힘이 욕심이 났다.
“……젠장.”
답답한 마음에 라디오도 틀고 노래도 틀어봤지만, 그는 귀에 거슬린다며 모두 꺼버렸다. 내가 조용히 앉아 있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동 7인, 어른 9인 동시다발적인 실종, 인간 공장을 위한 기초 작업 중이라는 소문 확보. 오늘 맡은 임무는 잡혀 있는 인간들의 생사 파악으로, 제로 활동 시간인 오후 4시 전까지 완료 예정. 외웠어?”
대답 없는 나에게 그는 다시 설명을 지껄이진 않았다. 두 시간 동안 정적이 가득한 차 안에서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일이란 괴롭기 짝이 없었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지 말지를 수십 번이나 고민했다.
비포장도로를 무식하게 달리는 녀석 덕에 빈 위가 요동을 쳐서 헛구역질을 하느라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이 다 빠졌다.
간신히 도착한 지점은 마을은커녕 사람 한 명 있을까 싶은 산속이었다. 분명 날씨도 맑고 화창하건만 어딘가 스산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인이어를 귓구멍에 쑤셔 넣었다. 작은 기계는 귀 안으로 쑥 들어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알기 힘들었다. 마이크를 연결하자마자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해.]
“포인트 도착 완료했습니다.”
[사고 친 건 없고?]
내 몸통 박치기에 한껏 찌그러진 차를 보다가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위치 확인해주십시오.”
화려하게 망가진 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동쪽으로 언덕 하나 넘으면 돼. 빈손으로 돌아와도 상관없으니까 문제만 일으키지 마.]
“네, 알겠습니다.”
긴장감 없는 팀장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그냥 친분을 쌓길 바라는 마음에 붙여놓으신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덕이라더니 그냥 산을 하나 넘는 수준이었다. 덩굴들은 나무를 휘감고 있었고 풀들은 쑥쑥 자라 얼굴을 간질였다. 그런 풀들을 무참히 밟고 다니는 불청객이 무서웠는지 청설모들은 몸을 숨기기 바빴고,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경고를 날렸다.
언제 어디서 멧돼지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었지만 다행히 곳곳에 자리한 꽃들 덕에 살벌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애꿎은 식물에 네 피 먹이는 짓 좀 그만해.”
일부러 손을 뻗어 손가락을 베이며 걷는 모습을 보고서 충고해도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고 갈 길을 갔다. 그가 지나는 길마다 검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게 무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그는 나를 흘겨볼 뿐이었고, 나는 그의 흔적에 닿기 싫어 조금 더 거리를 벌린 채 걸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경사는 점점 심해지기만 하고 태양이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면서 땀이 삐질삐질 나오는데, 앞에서 가는 녀석은 지친 기색도 없이 보송보송했다.
뭐라도 이겨보겠다고 녀석을 앞질러 걸었다. 나의 사부작거리는 발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졌다.
“거리 간격 유지해.”
아직 예상 포인트 지점에서는 많이 떨어진 곳이었고, 나는 훈련 시 권장하는 ‘다―섯 발자국’이라는 거리를 유지하며 걷고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갑자기 당겨진 힘에 하마터면 산 밑으로 구를 뻔했다.
“뭐 하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 자세는 마치 백허그를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당연하게 그를 뿌리치던 몸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찝찝한 기운에 힘을 풀었다. 그도 더는 압박을 해오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행 불가입니다.”
[뭐?]
그의 손이 내 얼굴의 절반을 덮자, 습하고 열이 오르던 몸이 그의 얼음장 같은 체온을 만나 딱딱하게 굳었다. 지독한 라벤더 향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두고 무슨 소린가 싶어 올린 손이 저지당했다. 불필요한 접촉에 그의 얼굴에 머리통을 박아 넣으려던 순간, 허공에서 나타난 얼굴이 고작 10센티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나와 마주했다.
“읍!”
고름이 잔뜩 낀 피부에 반쯤 튀어나온 눈이 초점 없이 천천히 굴렀다.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있는 파란 눈동자는 구더기들이 꾸물거리듯 일렁이고 있었다. 얇은 투명 막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놈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숨이 턱 막혔다.
“그만 꿈틀거려.”
귓가에 바로 꽂히는 그의 음성이 낯설었다. 입을 막고 있던 그의 손이 눈과 이마를 덮었고, 시원하다고 생각이 될 때쯤 옷에 뭔가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숙이는 나를 막았다. 그의 손가락 틈으로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배에 닿은 것은 다름 아닌 새빨간 손톱이었다. 결박당한 상태에서 다가오는 압박이란 정신없이 싸우는 전투 상황보다 사람을 더 미치게 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조금 떨렸다. 나의 심장 뛰는 소리가 귀 안 가득 찼다. 그는 주먹을 한껏 쥐고 있는 나의 손목을 감싸 잡았다. 빠르게 뛰는 맥박이 그의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햄스터의 피에 굶주린 제로가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내내 별생각 없는 듯 들리던 팀장님의 목소리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맛만 본 놈이라면 굳이 굶주렸다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저런 표현을 하는 건 나의 피에 중독되어, 충분한 에너지가 있음에도 그저 쾌락을 위해 나를 찾는 놈이 있다는 뜻이었다.
제아무리 현장에서 뛰어다니고 다친다고 해도 그들에게 물린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런 곳에 그런 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재혁의 코가 나의 목 언저리를 간질였고, 간헐적으로 닿는 차가운 피부에 몸이 움찔거렸다. 혀끝이 스친 자리를 따라 그의 콧바람이 닿자 솜털이 쭈뼛쭈뼛 섰다.
몸이 바싹 붙어 있는 탓에 움직일 수도 없고 앞도 보이지 않아 더욱 예민해진 감각에 신경이 곤두섰다. 애꿎게 마른침만 삼키며 서 있는데, 목에 그의 축축한 입술과 함께 송곳니가 스쳤다.
“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나의 귀에 속삭였다.
“얼마나 대주고 다닌 거야. 이 정도로 집착을 하는 걸 보면.”
그럼 그렇지. 어쩐지 얌전히 군다고 했더니 성품이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던지는 힘에 하마터면 나뭇가지에 몸이 박힐 뻔했다. 쓸린 손바닥을 바지에 벅벅 털어냈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자연의 향을 이용해 인간의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는 원칙적인 행동이었지만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빠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채 다시 올려다봤을 땐 주위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너한테서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어.”
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닦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 놈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들어가지 않는 송곳니 하며 조금은 달궈진 입술과 귀를 보면 그도 본능이란 게 아예 없는 놈은 아닌 듯했다.
“백곰. 현재 열 이상의 제로가 활동 중입니다.”
[눈치를 챘나…… 사람들 생사는 파악했어?]
“풍기는 향으로 보아 아직 늦지 않은 듯합니다. 다섯 명 내외로 보이고요. 경계가 심해 잠시 기다렸다가 움직이겠습니다.”
보고가 끝날 때까지 그의 눈은 나를 향해 있었고, 나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좁히고 거침없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같은 일 반복하게 하지 말고 거리 유지해.”
아무래도 권장 기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어린이 다섯 걸음’으로.
결계에 보초까지 세워두었다는 건, 둘이서 난리를 쳤다가는 큰 판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섣불리 그들을 자극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붙잡힐 수도 있었기에 조용히 몸을 숨기고 주변을 돌았다.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지 그 흔한 흔적 하나 보이지 않고 일대는 고요하기만 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주위를 돈 지도 세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지치지도 않는지 일정한 속도로 걸었고, 나는 그를 페이스메이커로 삼았다. 이미 이렇게 경계를 하는 이들이 오늘 내로 자신들을 드러내진 않을 것 같았다.
“으.”
그렇게 반쯤 포기하고 있을 때쯤, 재혁이 걸음을 멈추어 나를 막았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을 보니, 한쪽의 결계가 풀리며 제로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더운 날씨에도 검은 천으로 몸을 감춘 채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장갑과 신발까지 모두 새까만 색이었지만 가면은 새하얀 색이라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었다.
그들의 가면은 코를 중심으로 새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모두 다른 방향을 향했으며 개수 또한 달랐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딘가 기이한 모양새라 보면 볼수록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백곰, 확인된 제로 13, 결계 뚫렸습니다.”
[결계가 뚫렸다고?]
오히려 그의 말을 들은 팀장님이 더 놀란 눈치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동안 결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인력을 잃었던 걸 떠올리면 말이다.
이럴 거면 왜 둘이 온 거지?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빈손으로 돌아와도 상관없으니까 위험한 짓만 하지 마.]
한참을 앞에서 움직임 없이 서 있던 녀석들은 유유하게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나무 뒤에서 숨을 죽이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더니 결계 주변으로 몸을 옮겼다. 결계는 일렁이며 다시 닫히고 있었다. 나는 그를 저지했다.
“누가 봐도 함정이잖아, 이건.”
“알아.”
뭐?
“같이 갈 거면 들어가고, 아니면 놓고 산책이나 마저 해. 너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는 지금,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적이 가득하며 인간을 잡아다가 유린한 뒤 피를 죽죽 짜고 있는 공장에 들어갈 건지, 여기서 혼자 남아서 산책이나 하고 있을 건지 묻고 있었다.
심지어 그게 함정일지라도.
“참고로 말하자면 저들은 다시 이곳을 들락날락할 거야. 혼자 있다간 잡혀서 단물 짠물에다 엑기스까지 다 뽑힐 수 있다는 거고.”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을 많이 보고 싸워왔다고 해도 지금 이런 복장을 하고서 이런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이런 일을 두고 어떻게 ‘퇴원 선물’이라고 지껄일 수 있는 건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결계는 허리춤에 겨우 걸칠 만큼 줄어들었다.
“결계 들어갑니다.”
나는 결국 돌발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다며 대비하라는 팀장님의 말을 곱씹으면서, 손에 보잘것없는 단도 한 자루를 들고 막혀가는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연락 끊……!]
“윽!”
인이어를 잡아 뺐지만, 이명에 잠긴 재혁의 목소리는 도무지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쌓아놓은 철근이나 속이 훤히 보이는 콘크리트 벽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기초 공사도 이미 몇 년 전에 끝난 듯 온전한 건물이 서 있었다.
보기 좋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마치 실험실 같은 깔끔한 느낌의 직육면체 구조물은 3층짜리였다. 창문은 전부 내부가 보이지 않게 작업이 되어 있어 외부에 있는 자연이 비추어 보였다.
처음에 나와 마주했던 놈은 여전히 결계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다시 봐도 징그럽게 생긴 외모였다.
어깨를 두드리는 힘에 뒤를 도니,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가 말했다.
“한눈팔지 말고 따라오라고.”
웬 명령이야……?
다행히 뜨겁게 찌는 햇살에 그들은 몸을 숨긴 채 밖을 나돌아다니지 않았다. 몸을 낮추고 그들의 눈을 피해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열린 창문 틈으로 안이 보였지만 어두워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깔끔하게 꾸며진 외관에 비해 어지러웠다. 사람들의 옷가지나 학용품, 책, 가방, 휴대전화 등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적어도 20년은 지났을 디자인이 하루 이틀 지난 물건은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그걸 증명하듯 방 안엔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고, 몇 년은 방치된 듯 먼지가 쌓여 있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하수도 소리만이 내부를 간간이 울렸다. 그는 성큼성큼 물건들 사이를 가로질러 나아가 문 옆에 기대어 섰다. 그를 따라 벽과 문에 귀를 기울여도 그 흔한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계획이라도 있어?”
나의 질문에 그는 콧방귀를 뀌면서 대답했다.
“이런 곳에서 계획을 세워봤자 무용지물이란 걸 알 텐데.”
“무식한 새끼.”
그의 손에 들렸던 누런 원피스가 공중을 날아 나에게 떨어졌다. 원피스를 잡은 손에서 꿉꿉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손에 얼굴을 처박고 킁킁거리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네 입으로 들으니 별 타격이 없네.”
“그동안 이곳을 밖에다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는지는 알아? 허망하게 죽어버릴 예정은 없으니까 무턱대고 갈 생각이면 지금이라도 포기해.”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면 들어오지도 않았어. 그리고 죽을 일도 없고.”
“허세는.”
그의 신호에 맞춰 방을 나섰다. 그동안 수없이 미친 짓을 하며 돌아다녔지만, 오늘만큼 답 없이 뛰어들었던 적은 없었다. 이미 몸은 직진하는 중이었고 눈은 담으면 안 될 것들을 모조리 담으며 새로운 정보들을 저장하고 있었다.
건물은 중앙이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외벽을 타고 방들이 징그럽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문은 검은 페인트를 쏟아부은 듯한 벽들과 달리 묵은 때 하나 타지 않은 백색이었다. 새빨간 선들이 제멋대로 그어진 게, 마치 그들의 가면 같기도 했다.
나의 시선을 앗아간 건 중앙에 자리 잡은 동상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흐르는 진흙더미 같아 보이는 동상은 10미터가 족히 넘어 보였고 성인 열 명이 팔을 벌려야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거리를 두고 힐긋거리며 본 동상은 분명 사람들이 얽히고 얽혀 사방으로 손을 뻗으며 절규를 하는 모양새였다.
기괴한 형상에 애써 그들의 눈을 피할수록 도와달라는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발소리마저 죽인 채 사방을 경계하며 나아가는데 앞에서 걷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공장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난리를 떨었다고?”
“과거엔 흔적도 남기지 않고 활동한 덕에 뜬소문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데에만 10년이 걸렸어. 확인되는 대로 정면으로 부딪친 게 세 번, 잠입 수사까지 했지만 실패한 게 두 번. 진전이 있을 법할 때마다 다른 사건이 터지는 덕에 관심이 흩어져 흐지부지됐고. 요즘 들어서야 실종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시체가 발견되는 덕에 주의를 끌었던 것뿐, 그동안은 발견되는 피해자도 적고 피해도 별로 없으니 안 믿는 사람들도 많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향해 한마디 더 던져줬다.
“이런 정보는 여기까지 와서 묻기 전에 사전에 좀 탑재하고 다녀.”
콧방귀를 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정정해줘야겠는데, 예나 지금이나 피해자들은 계속 보였어. 조사하는 놈들이 제대로 확인을 안 해서 그런 것뿐이지.”
“아?”
조심스러움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녀석을 따라서 비상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기온은 점점 낮아졌고 빛이 없어도 훤히 보이는 그들에게 맞춰진 실내에선 전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나는 오직 청각과 촉각에만 의지하며 길을 걸어야 했다. 손끝으로 차가운 철문들과 거친 콘크리트, 그리고 이따금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지하라서 쇠 냄새가 진동한다고 생각했건만, 발밑에서 무언가 질척이기 시작했다. 재혁은 주춤거리며 걸어가는 속도를 늦췄다. 이윽고 발길을 멈춘 그에게 말했다.
“……너무 조용하잖아.”
제아무리 적은 사람이 있고 적은 그들이 있다고 해도, 그 작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고 관리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밖을 지키는 녀석들이 있는 판에 건물 안을 지키는 이는 하나도 없다니. 앞에 있는 철문을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굳건히 닫혀 열리지 않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 몇이나 있어?”
“서른다섯.”
뭐?
“여기. 지하에만 서른다섯.”
“그게 지금 말이 되는……!”
그가 나를 밀쳐내는 힘에 바닥에 고꾸라졌다. 바짓단을 적시며 질척이던 액체들이 온몸을 적셨고, 감아둔 붕대로 열을 내뿜던 손바닥도 액체를 머금어 서늘해져갔다.
사방이 갑자기 밝아진 탓에 눈을 뜨지 못하고 두 손을 뻗어 벽을 더듬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양손에 얽히는 축축한 감촉과 무거워진 옷에서 풍기는 비린내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서서히 빼앗기는 체온에 닭살이 돋았다. 두 눈을 아무리 깜박여도 희미한 형태만 보일 뿐이었다. 하얀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재혁을 간신히 찾았건만, 그의 가슴을 통과한 칼이 허리까지 뚫고 나온 상태였다.
“크윽…….”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날아오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꽂힌 칼의 각도로 날아온 방향을 유추해보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날아올 수 있는 각도가 아니었다.
재혁은 단박에 가슴을 뚫은 칼을 뽑아내더니 피를 토하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옅은 노란빛을 띠는 칼날과 그의 몸이 서서히 검게 변하는 걸 보니 그들의 독이 섞인 칼인 듯했다.
“어이쿠, 뚫어버렸네.”
허공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바닥에 버려진 칼은 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 그의 손아귀로 돌아갔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지금까지 현장에서 마주한 다른 놈들과는 급이 다른 놈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긴급 키트를 열어 정화제를 재혁에게 주입하려 했지만, 새빨간 액체에 자꾸 손이 미끄러졌다.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손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떨어트린 정화제는 액체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젠장!”
웅덩이를 더듬어가며 정화제를 두 손으로 겨우 잡았다. 이제 그에게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찰나, 그림자가 지나 싶었더니 가까이 온 사내가 가차 없이 내 손을 짓밟았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내 손가락은 으득거리는 소리와 괴이하게 꺾였고, 손바닥에 둘러놓았던 붕대는 액체를 머금고 빨갛게 물들었다.
“으…….”
“겁도 없이 제 발로 들어오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손안에서 떨어져 나간 정화제를 다시 주우려던 순간, 정화제는 사내의 발에 형체도 없이 뭉개져 피 웅덩이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절제 없이 풍기는 힘이 가까워질수록 몸이 굳어갔다. 불편한 눈을 아무리 깜박여도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빨간 줄이 십자로 그어진 섬뜩한 가면만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아니, 탈출했다고 해야 하나?”
감각에 의지해 발을 노리고 다리를 휘둘렀지만, 사내의 옷에 스치지도 못하고 바닥을 미끄러졌다. 다시 중심을 잡으며 칼을 잡고 달려들었건만 사내는 여유롭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익숙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게 아무래도 맛있었던 것 같단 말이야. 어디서 맛본 놈이었더라.”
“닥쳐!”
사내는 질척거리는 말을 내뱉더니, 장갑을 벗고 벽에 묻은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끈적이는 액체가 하얀 손을 더럽혔다. 여유 부리는 상대를 두고 나 홀로 발악하며 덤벼들었다. 숨이 차오르고 기운은 빠지고 있었지만, 내가 상대에게 남긴 거라고는 가면에 튄 몇 방울의 핏자국이 다였다.
애꿎은 재혁에게 소리 질렀다.
“이럴 거면 대체 그렇게 자신 있는 척은 왜 한 거야!”
지끈거리는 손을 들어 재혁의 몸을 더듬었다. 불행히도 그의 몸엔 무기라곤 없었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은 예사롭지 않은 경고를 던지고 있었다. 설마 하며 다시 더듬어도 그의 몸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갸웃거리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사내는 내가 달려가는 모습을 훤히 보고 있으면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맛이 간 손이 혹여 잭을 놓치지 않을까 끈을 둘러 고정했다. 질척거리는 땅에 발이 잡히긴 했지만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사건 때 출동을 하면서 총기류가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건만 그런 상황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가면에 막힌 먹먹한 목소리가 울렸다.
“분명 익숙하단 말이야. 네 입으로 말해봐. 우리가 어디서 만났었는지.”
“그런 식상한 멘트 칠 시간에 네가 기억해내.”
계산보단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좁은 복도에서 무식하게 힘만 믿고 능력을 써대는 상대에게서 섬세함을 찾을 순 없으니, 그 빈틈을 노렸다. 슬프게도 두껍게 두른 천을 뚫고 난 상처는 보잘것없었지만.
상대는 한사코 덜컥거리는 가면을 지켰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면 뒤에 어떤 모습을 숨기고 있기에 저리 유난을 떠는지. 놈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일을 포기하고 얼굴을 노리니 오히려 본격적으로 반격까지 하며 공격을 해왔다.
“얼굴 하나 까지 못하고 덤빌 거면…….”
한껏 뒤로 뺀 손을 놈에게 휘두른 순간, 나는 목을 놈의 손아귀에 잡혀 공중에 매달렸다.
“윽.”
이미 엉망이 된 손으로는 놈의 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산소가 점점 부족해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눈에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그걸 몰라. 자기들이 잡아먹힐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지금도 분명 네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어리석은 생각이란 걸 굳이 일일이 알려줘야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발버둥을 칠수록 몸은 축 늘어졌다. 정말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네놈들이 동물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인간을 먹기 위해 기르고 죽이고,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하면 이렇게 발악을 하면서 덤벼들곤 해. 위협도 안 되지만. 그렇지?”
그는 고개를 돌려 재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들이 진짜 원하는 건 뭐였을까. 평화? 공존? 아니, 그저 때깔 좋은 사냥터를 독식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암만 착한 척을 해도 너희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어.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너희들은 동족을 죽이고 있다는 거지.”
눈앞에 까맣게 덮였던 안개가 다시 걷히는 느낌이었다. 폐 속을 후비는 공기들 때문에 기침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고개를 드니 재혁은 사내의 멱살을 잡아 벽에 짓누르고 있었다. 금이 간 벽이 무색하게 사내는 재혁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알고 있잖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그럼 줄을 똑바로 서야지, 그렇게 엇나가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사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재혁의 상처는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고, 이내 그의 셔츠를 벗어나 목에도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꿀렁거리며 움직이는 피부가 곧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가 힘을 주고 놈에게 달려들수록 점점 더 격하게 요동치는 피부를 보며 저놈은 살려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죽으라고 고사를 지낸 게 몇 날 며칠인지 셀 수도 없건만, 녀석이 굳이 이런 자리에서 맛이 가고 있는 바람에 내 손으로 살리기 위해 발악해야 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했다.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몸을 대신해 손에 묶어둔 잭을 풀어서 그를 향해 날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혁은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적에게 달려들었다. 얽히고설킨 진흙탕 같은 싸움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굉음들이 지하실을 울렸다. 지금 당장 건물이 무너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항상 거만하던 이는 온데간데없고 분노와 고통에서 몸부림치며 악착같이 덤벼드는 재혁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목에 잔뜩 핏대를 세운 채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몸은 한계를 모르고 절제를 잃고선 고장 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고생 한번 해본 적 없던 것처럼 깨끗하던 그는 지금 썩어 문드러진 피부와 외부의 충격으로 다 망가져 있었다.
언제까지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몸을 일으켜 세운 순간, 폭발에 건물이 휘청거렸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지하실은 먼지로 가득 차올랐고, 어디서도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으, 콜록…… 콜록!”
시큰거리는 눈과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돌조각들의 칼칼함에 팔뚝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 와중에도 지긋지긋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참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네.”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곤 뿌연 연기뿐이었다. 무언가 손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든 것도 한순간, 건물 일대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지며 공중에서 흩날리던 조각들이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단번에 트인 시야 앞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웬 남자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그 남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잭을 들어 거침없이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그러고는 재혁의 턱을 우악스럽게 잡곤 고개를 젖혀 입을 벌리게 했다. 손목에서 떨어진 피가 재혁의 얼굴을 적시며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울컥거리는 그의 목울대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고, 끊임없이 흐르는 액체는 그의 볼을 타고 턱선을 따라 옷을 적셨다.
충혈된 재혁의 눈과 마주쳤다. 서서히 진정되어가는 몸과 다르게 탁한 눈동자는, 제 모습을 찾으며 점점 선명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
“어째서…….”
꽃잎과 나뭇잎은 보잘것없는 산바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흩날리며 자취를 감출 때까지 햇빛을 받고 반짝이며 존재감을 뿜어냈다. 버젓이 쳐져 있던 결계는 사라졌다. 주위를 돌던 놈들도 자취를 감췄다. 종일 신경을 쏟아부은 일대는 그렇게 다른 곳과 다르지 않게 풀로 덮여 있을 뿐이었다.
급하게 몸을 이끌고 나온 곳에 남은 것이라곤 낡은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낸 옷가지 몇 개, 그리고 이미 백골화한 시체뿐이었다.
살아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흔적이 고작 뼛조각이라니. 그들을 구해 돌아올 생각으로 들어간 곳은 아니었지만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남자는 재혁을 나무 그늘에 내려놓았다.
“좀 있으면 깰 거야. 쉬다가 내려가.”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남자는 태연하게 재혁의 옆에 앉아 바람을 쐬며 앉아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에, 비웃음으로 넘겼던 질문을 남자에게 던졌다.
“어디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넘기려던 남자는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앉으라며 손짓했다. 친절해 보이는 행동이지만 어딘가 거만한 느낌이 있었다.
나는 피를 한껏 머금은 티셔츠를 벗어 들었다. 미적지근하게 부는 바람에 얼었던 몸이 조금씩 녹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상처들마저 존재를 알리며 열을 뿜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이네. 앉아. 올려다보면 햇빛 때문에 눈부셔.”
남자는 눈을 찡그리며 나를 봤다.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이치는 빛줄기들이 머리카락에 닿을 때면 반사되는 탓에 그의 머리는 마치 빛을 내는 듯 반짝였다.
“……누구십니까.”
남자는 발을 떼지 않은 그대로 서 있는 나를 보며 다시 말을 걸었다. 가늘게 뜬 눈이 나를 훑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남자는 손가락으로 재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보호자?”
보호자가 아니라 재혁이 보호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해맑았다. 지하실에서 보이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밝은 모습이었다. 남자는 재혁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어때, 파트너로 괜찮은 놈 같아? 내 생각엔 엉망진창인 거 같은데. 제 몸도 못 지키는데, 뭐.”
“대답할 의무는 없어 보입니다.”
“뭐 궁금해서 물어본 것도 아니니 상관없어.”
“뒤를 밟고 있던 겁니까?”
“뒤를 밟았다니 조금 께름칙하게 들리네. 목숨도 살려줬는데 좋게 말하자, 뒤를 봐주고 있었다고.”
그는 햇빛을 가리고 있던 손을 그대로 나에게 향했다. 그의 손짓 하나에 땅이 나를 끌어당겼고, 무릎이 꺾였다. 바닥이 흙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큰 충격이 가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재혁을 힐끔거렸지만, 그는 평온한 얼굴로 잠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무방비한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부드러운 느낌이었지만 다시 창백하게 돌아가 시체 같았다.
“저놈은 알고 있었던 겁니까?”
“눈을 시뻘겋게 번뜩이며 다니는 놈이 뭘 믿고 덥석 뛰어들었겠어. 다 내가 도와줄 걸 알았으니 그런 무모한 짓을 했겠지. 꼬리 내리고 도와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버틸 줄은 몰랐다만.”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 일 없었어. 네가 괜히 끼어든 거지.”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재혁이 눈을 떠서 그를 보고 있었다. 곧이어 손가락으로 눈을 지그시 누르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기침을 반복하다 진정한 재혁이 옆에 앉은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가 말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께서 일어나셨네. 내가 조금만 늦었다면 넌 진짜 죽었을걸.”
재혁의 눈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직 힘없이 떨리는 그의 시선을 피해 몸을 일으켰다. 젖은 옷에 죽은 풀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무의식중에 바지를 털어내려다 꺾인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티셔츠를 들어 올리는데 재혁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 죽어.”
“몸 그렇게 굴리다간 정말 죽는다니까?”
“넌, 여기 왜 있는 거야. 본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형한테 너라니, 이젠 이름으로도 안 불러주네. 아버님이 보내셔서 왔지. 공장에 대한 일은 우리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거든.”
어디선가 많이 봤다고, 닮았다고 생각했더니 그의 형이라니. 너무 다른 분위기에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대놓고 쓰는 호칭을 들으니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재혁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겸사겸사 네가 잘 적응하는지도 보고.”
“그게 주목적이었겠지.”
싱긋 웃은 남자는 나를 보며 대답했다.
“일처리를 잘하는지는 몰라도 적응 하나는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
남자는 주저앉아 있는 재혁을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남자의 손을 쳐내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다 망쳐놓았으니 그만큼 정보는 털어놓고 가.”
“흠.”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보고 온 것들이 허상이 아니라는 것?”
남자는 재혁이 아닌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마치 잘 새겨들으라는 듯 자기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는 게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재혁은 콧방귀를 뀌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어. 허접한 정보로 넘어갈 생각 말고 똑바로 털어. 그놈들 대가리랑 접촉했었다는 걸 들었으니까.”
“설마. 그럼 내가 이 풀밭을 굳이 뛰어다닐 필요가 없지. 다만 오늘의 노고를 보아 이 공장의 규모가 네가 오늘 본 것보다 거대하다는 것쯤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군.”
어떻게 이보다 큰 규모의 공장이 발견되지 않고 꼭꼭 숨어 있어 실체를 보기도 힘들다는 건지. 의심이 가득 찬 눈을 읽었는지 남자는 바닥에 나뒹구는 신원 모를 뼛조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새 발의 피지, 저 정도는. 하지만 전국에 저렇게 나뒹굴고 있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많을지.”
바스락거리며 나타난 고라니가 우리를 보고 놀랐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언덕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규칙적인 발소리는 점점 희미해지더니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시답잖은 말만 할 거면 이만 가봐.”
“너무 찬바람이 쌩쌩 부네. 생명의 은인인데.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남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 아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재촉하지 않아도 갈 참이었다. 시간 날 때 본가에 한 번 내려와, 무식하게 뻗대지 말고. 네가 잘못되면 슬프게도 나한테 온 불똥이 튄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래. 잘 아니까 그렇게 굴고 다니겠지.”
남자는 나에게 상냥한 인사를 남기고 산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얼마 가지 않아 조용하기만 했던 산속에 쇳소리와 발소리가 울렸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재혁은 여전히 나에게 시비를 걸 뿐이었다.
“적당히 좀 쳐다봐.”
뭘 위해 저놈을 살려보겠다고 손가락을 다 부러트렸는지, 과거의 나를 본다면 뒤통수라도 한 대 쳐서 기절을 시키고 싶었다.
“그래, 내가 문제지.”
그는 나의 혼잣말을 놓치지 않고 딴지를 걸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대원들이 나와 재혁을 보자마자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우리의 몰골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나는 완전 군장을 한 대원들을 보며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오늘 보고 들은 정보는 보고에 올리지 마. 결계를 통과한 순간 정신을 잃었다고만 기재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보고서를 조작하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네 신변에 문제가 되는 일인가 보지?”
“아니, 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모른 척하라는 거야. 왜 지금까지 남은 기록이 그것밖에 없는지 알고 있다면 답이 나올 텐데.”
담백한 어조로 내뱉는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순전히 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