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도착지는 알 수 없는 곳, 그러나
스승의 날이면 담임을 맡은 교사들은 어느 정도의 기대나 설렘을 가지고 출근을 하곤 했다. 담임을 맡은 것이 이번이 다섯 번째여서 그런지 내게는 그런 마음이 별로 없지만 말이다.
첫 담임을 맡았을 때 아이들이 스승의 날 해 주었던 서프라이즈 파티가 생각났다. 첫 담임이라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인데, 케이크를 들고 나와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니 그간의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졌더랬다.
그러나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좋지 않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교사에게 무언가를 해 줘야 할 의무는 없다. 담임과 반 아이들의 사이가 좋지 않은 반도 종종 있고, 반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스승의 날이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간혹, 한 교무실에서 어떤 교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 더미를 들고 올 때가 있고 어떤 교사는 편지 한 장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티를 내지는 않아도 저조한 기분을 내내 가지고 퇴근을 하는 교사를 본 적도 있다.
담임을 한두 번 맡는 게 아니다 보니 이젠 아이들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구나,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저번 주에 미리 스승의 날 준비는 하지 말라고, 정 하고 싶으면 정성 어린 편지나 쓰고 선생님 말이나 잘 들으라고 못 박아 놓다가 원성 어린 야유를 받았었다. 그랬더니 저들끼리 쑥덕쑥덕, 뭔가를 모의하는 모양이었다.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다 왔나? 한 명 없네. 구영준, 지각.”
“에이, 쌤~ 스승의 날인데 한번 봐주시지!”
“스승의 날이니까 니들이 날 봐줘야지.”
또 야유가 날아온다. 웃어넘기고선 전달 사항을 전달하고 교실을 나섰다. 2반 교실이 시끌벅적했다. 스승의 은혜가 들려온다 했더니 2반이었나 보다. 칠판이 ‘선생님 사랑해요’란 글씨로 범벅이었다. 정 선생이 얼굴에 생크림을 묻힌 채로 이마를 찌푸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입가가 허물어져서, 입매를 톡톡 두드리고 걸음을 옮겼다. 교단에 선 게 처음이지만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기 좋았다.
교무실에 도착했을 땐 선생들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선생들을 붙잡고 파티를 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루한 일상에 이렇게 찾아오곤 하는 이벤트는 교사이기에 겪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하며 수업을 할 준비를 했다.
“어우, 오늘 들어가는 반마다 스승의 은혜 부르면서 어찌나 수업 안 하려고 하던지. 오늘 4교시 전부 들어갔는데 한 반만 수업했다니까요?”
“애들이 아주 수업 못 하게 하는 데는 도가 텄어요.”
그렇게 말하는 선생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오늘 수업에 있었던 일과 다음에 있을 학부모 수업 참관의 날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열쇠를 가져와 옥상으로 올라왔다. 담배를 막 무는데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 선생이었다. 입에 물었던 담배를 빼 손가락에 걸었다.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예. 정 선생은요.”
“저도요. 매일 이렇게 식단 알아서 나오니까 좋아요. 저녁도 학교에서 먹었으면 좋겠는데.”
“정 선생이 애들보다 학교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정 선생이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내 옆으로 다가와 난간 위에 손을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계속 좋네요. 이제 여름 오면 장마 때문에 비도 많이 올 텐데.”
“비 오는 거 좋아합니까?”
“보슬비는 좋아하는데, 장마는 별로 안 좋아해요. 김 선생님은요?”
“비 올 때 집에 있는 건 좋아합니다.”
“아하하! 맞아요. 비 올 때 출근하는 게 제일 싫었는데 말이죠. 아, 맞다.”
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 고리를 꺼냈다. 곰 모양 블록이 달랑거리는 고리가 낯익었다.
“스도쿠 10분 안에 풀면 주는 상품이요. 저 받았어요.”
“그걸 가서 풀었어요?”
“네. 아이디어 좋으시던데요. 수학 퍼즐반에서 이런 체험을 진행할 줄은 몰랐어요.”
“영화 감상반이나 미드 감상반 떨어진 애들이 와서 하도 의욕이 없길래, 그런 거라도 해 보라고 한 겁니다. 생각보다 재밌었던 모양이더라고요.”
“네. 자기들끼리 힌트도 주고 그것도 못 푸느냐면서 약 올리기도 하고, 귀여워서…….”
큰 손 안에 쥔 블록이 앙증맞아 보였다. 가지런한 손톱을 눈에 담다가 운동장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침에 애들이 파티를 해 준 것 같던데요.”
“아, 네. 사실 저는 오늘이 스승의 날인 것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정신이 없어서……. 들어오면서 애들이 폭죽을 터뜨리길래 제 생일인 줄 알았다니까요.”
정 선생이 쑥스럽다는 듯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애들도 스승의 날 챙기는데 난 뭐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은사님 찾아뵌 지가 오래됐네요.”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았습니까?”
“음, 제가 귀찮게 해 드렸죠. 궁금한 게 생기면 끝까지 여쭤봐서 답을 들어야 성에 찼거든요. 덕분에 예쁨도 많이 받았고요.”
딱 그다웠다. 성실하고 바르고 밝고 활기찬 학생이었을 거다. 지금보다 앳된 얼굴로 교복을 입고 있었을 정 선생이 눈에 그려졌다. 그러고 보니…….
“그럼 그때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정 선생 학창 시절이 나오는 겁니까?”
“그때요?”
“축제 때요. 교복 입었었잖아요.”
선선한 물음에 답이 돌아오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정 선생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땐……. 아니, 그건, 여학생 교복이었잖아요. 가발도 쓰고…….”
“누가 뭐랍니까.”
“그……!”
“…….”
“……네.”
순식간에 조용해진 정 선생을 흘긋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많이 머쓱하고 부끄러운 모양이다. 정작 보는 사람은 예쁘기만 했는데.
“근데, 담배 안 피우세요?”
정 선생이 내 손가락에서 구르고 있는 담배를 가리켰다.
“제가 옆에 있어서 그러세요?”
“아니요. 그냥……. 별로 안 당기네요.”
그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을 다시 담뱃갑에 집어넣자 정 선생이 푸스스 웃었다.
“왜 웃습니까?”
“아……. 그냥요. 김 쌤은 배려심이 깊으시구나, 하고.”
눈썹을 치켜세우자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싱거운 태도에 의미 없는 웃음을 흘리고는 뒤돌아섰다.
“가죠. 종 치겠네요, 곧.”
“넵.”
수업을 모두 끝내고 종례를 하기 위해 교무실을 나와 교실로 향했다. 창문 밖으로 빼꼼 내민 얼굴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쏙 들어간다. 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짐짓 모른 체하며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종이 폭죽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입을 모아 스승의 은혜를 부른다. 교탁 위에는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반장이 조각 케이크 위에 초 하나를 꽂은 채로 내게로 다가왔다. 스승의 날을 따로 챙기지 말란 말을 생각해서 조각 케이크를 산 모양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촛불을 불었다. 아이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감동적인 반응을 기대한 모양이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감성은 없었다.
“준비하느라 수고했고, 고맙다. 편지는 집에 가서 다 읽어 볼게.”
“에이, 쌤! 그게 끝이에요?”
“그럼, 뭐. 울까?”
“네에! 울어 주세요!”
황당한 요구에 그저 웃어 주었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또 짝짝짝 박수를 친다.
“쌤! 교탁 밑에 보세요!”
세민이의 말에 교탁 아래를 보니 상자가 하나 있었다. 상자를 들어 뚜껑을 열어 보자 안에는 작은 늑대 인형이 있었다. 태양열을 받으면 끄덕거리는 늑대 인형의 눈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반원 모양이었다. 사나우면서도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선생님 닮았어요!”
“이게?”
“네!”
음. 어떤 면에서 닮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어서 늑대의 머리를 툭 쳤다. 그러자 저 혼자 흔들거린다.
“그래, 고맙다. 차에 둘게. 케이크도 잘 먹고. 이제 집에 가자, 반장.”
“네. 공수! 인사.”
아이들을 보내고 문단속을 한 뒤 교실을 나왔다. 옆 반에서 정 선생도 막 종례를 마쳤는지 문을 닫고 나오고 있었다.
“어? 그거 뭐예요? 애들이 준 거예요?”
“네.”
“와, 인형? 늑대네요. 어, 근데 이거 쌤이랑 닮았어요.”
“나랑요?”
“네. 되게 닮았다.”
정말 신기하다는 듯 입까지 벌리며 나와 인형을 번갈아 본다. 그러더니 인형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 늑대의 머리가 양옆으로 흔들리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김 선생님이 흔들흔들하는 것 같아요.”
“너무 웃는 거 아닙니까?”
“아, 귀여워서요. 애들이 김 쌤 정말 좋아하나 봐요.”
선물을 받은 건 난데, 그가 더 기쁘다는 듯 웃는다.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 입꼬리에 눈길이 가다가, 내 눈길이 어디 있는지를 자각하고 시선을 돌렸다.
요즘은 정 선생을 보면 당혹스러움이 가슴속에 차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나와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그림과 하트가 가득한 색색의 편지부터 일기나 다름없는 편지, 종이를 채워 넣기 위해 꾸역꾸역 큰 글씨를 집어넣은 편지 등 다양했다.
어쩌면 진심일 수도, 어쩌면 빈말일 수도 있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감사해요’란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한참이나 박혔다. 이런 편지를 받을 때면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무얼 해 주었나 생각해 본다. 내겐 너무 과분한 편지일지도 모른다.
여태껏 받은 편지를 모아 놓는 상자에 오늘 받은 편지를 넣고 침대에 앉았다. 불그스름한 가로등의 빛이 달처럼 떠 있는 창밖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있다가 또 동이 트는 것을 보고 잠에 들지도 모른다.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 같다던 뻔하디뻔한 노랫말이 가슴속을 약 올리듯 드나들었다.
속이 허했다.
나는 모래로 만들어진 성이고, 곧 바람이 불어오면 그대로 흩날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눈을 감았지만 또다시 눈을 감는 심정으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 * *
학부모 수업 참관의 날이라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었다. 넥타이까지 챙겨 매니 답답한 감이 있긴 했지만 적당한 긴장감도 나쁘진 않았다. 머리 손질을 하고 구두를 꺼내 신은 뒤 밖으로 나갔다. 날이 맑았다.
차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와 막 도로로 들어섰을 때,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클랙슨을 울리자 그가 뒤를 돌아본다. 내 차를 발견하고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본 양 반가워하는 태도에 괜스레 멋쩍어졌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그가 눈을 가져다 댔다.
“저 타…….”
“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 머뭇거리는 눈길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여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 할 말 있습니까?”
“아니, 김 선생님 이렇게 머리 하시고, 옷 입으신 거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
“그건 정 선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평소엔 캐주얼하거나 심플하게 입고 다니던 정 선생은 짙은 회색의 슈트를 입고 있어 어느 때보다 단정해 보였다. 이렇게 입고 있으니 조금 제 나이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저도 이렇게 입는 거 오랜만인 것 같아요. 아, 떨린다. 선생님 반은 학부모님들 몇 분이나 오세요?”
“일곱 분 오시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여덟 분이요. 하아.”
“그렇게 떨려요?”
“제가 초면인 사람들이랑도 곧잘 얘기하곤 하지만, 학부모님은 좀 다를 것 같아요.”
“편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불편한 건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니까.”
“그렇겠죠? 김 쌤은 처음에 안 떨리셨어요?”
“떨리기보단 빨리 끝내고 싶었죠.”
아하하! 차 안을 울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어떤 음악보다 주변의 공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뭐가 그리 웃긴지 숨을 죽여 큭큭대던 그가 헛기침을 흘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마음이 막 안정돼요.”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네. 다행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선선한 바람처럼 흘러들어 왔다. 바람이 갈대밭을 헤치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나도 그처럼, 그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었다. 오늘 밤은 어쩐지 불면증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학부모들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에 참관하기에 오전에는 수업과 함께 교실의 청결을 확인하고, 아이들의 성적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점심을 먹고 옥상에 올라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담배 대신 사탕을 물었다. 일전에 정 선생에게서 받고 방치해 두었던 그 사탕이었다.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는 여자아이들 뒤로 정 선생이 눈에 띄었다. 햇빛을 받아 머리칼이 갈색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옆엔 교감이 있었다.
숱이 없어 반짝거리는 정수리 옆으로 즐거운 듯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정 선생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교감과 저렇게 말을 트고 지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학부모를 만나는 건 떨리는 일이지만, 교감과 단둘이 이야기를 하는 건 또 다른 일인가 보다.
교감이 먼저 들어가고, 고개 숙여 인사하던 그가 뒤에 오던 여선생들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넸다. 여선생 둘 중에 한 명이 먼저 들어가고, 나머지 한 명이 남아 정 선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 장기 자랑을 같이했던 임 선생인 듯싶었다.
둘이 친해진 모양이지. 어느새 작아진 사탕을 씹으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잘게 쪼개진 사탕의 조각만큼 작은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정 선생이 동성애자인가?
그가 나를 마음에 두었다고는 했지만, 동성애자라고는 말한 적 없다. 그러니까, 양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임 선생을 향해 웃는 정 선생의 얼굴과 그의 팔을 웃으면서 살짝 치는 그녀의 손이 눈에 담겼다.
문득,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백화점에서 한 남자와 있던 정 선생. 둘의 분위기.
정 선생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럼 그 남자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뜻일까. 하지만…….
고개를 털었다. 그가 그와, 혹은 그녀와, 누구와 무슨 사이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임 선생이 사라지고 정 선생 혼자 남은 것을 깨달았다.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햇빛에 눈이 부시는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마 위로 손차양을 한다. 눈이 마주친 듯도, 아닌 듯도 했다.
그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네.”
-김 선생님. 저 보고 계세요?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 대답했다.
“네.”
-담배?
“아뇨.”
-그럼요?
“사탕이요.”
-아하. 무슨 맛이요?
“청포도 맛.”
-으흠.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정 선생이 일이 있어서 늦는 바람에 오늘은 같이 점심을 먹지 않았다.
“네. 정 선생은요.”
-저야 늘 맛있죠. 아, 오늘 학부모님 한 분 더 오시기로 했어요. 아홉 분이에요.
“그래요. 우린 한 분 안 오시기로 했습니다.”
-윽. 차이가 더 벌어졌네요. 아, 선생님. 제 얼굴 보이세요?
“네. 보입니다.”
-저는 잘 안 보여요. 햇빛 때문에. 눈부시네요.
그의 말에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 그의 고개가 내 움직임을 따라 돌아간다.
“이제 보입니까?”
-음, 조금요. 난간 때문에 더 안 보이는 것도 있나 봐요. 역시 좋은 아지트네요.
“안 올라옵니까.”
-어, 올라가고 싶은데 이제 종 칠 것 같아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 쳤다. 그가 설핏 웃었다. 그 웃음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
“네.”
-오늘 저희 학부모님들 뵙고 하면 엄청 수고하는 거잖아요.
“네.”
-끝나고 술 한잔하실래요?
그의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한 것은 친구로서 어디까지, 그의 마음을 알면서 어디까지 같이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그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좋습니다.”
-와, 제가 집 근처에 좋은 곳 알아 뒀거든요. 오늘 저 학부모님들 뵙고 일 끝내면 조금 늦을 것 같은데. 먼저 퇴근하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네.”
-네에.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정 선생이 이쪽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인 다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에 닿았던 귓가가 뜨거웠다. 손바닥으로 귓바퀴를 한 번 꾹 누르다가 옥상을 나왔다. 귓가의 열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학부모를 배웅하고 나서 잔업을 처리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정 선생을 기다렸다 갈까 싶었지만, 그가 워낙 바빠 보여 먼저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퇴근길이라 차가 막혔다. 멈춰 선 차 안에서 유난히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았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진행을 하던 디제이의 말이 끝나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볼륨을 키우고 창문을 약간 열었다. 바람이 흘러들어 와 머리칼을 간질였다. 노래가 다 끝날 즈음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물을 마실 무렵, 소파 위에 올려 두었던 핸드폰에서 짧게 진동음이 울렸다.
[저 지금 끝났어요. ㅠㅠ 빨리 가겠습니다!]
글자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깨는 축 처져 있지만 다 끝났다고 얼굴은 밝을 것이다. 별것 아닌 내용의 문자를 읊조리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텔레비전을 켜고 아무 채널이나 튼 채로 보다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채널을 돌리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
-어, 김 선생님?
“……네.”
-아. 저 지금 집에 와서 옷 갈아입고 나가려고요. 지금 나오시겠어요?
“네. 정 선생 집 쪽으로 가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벅차 있던 숨을 터뜨렸다. 잠시 멍하니 벽지의 미세한 무늬를 노려보듯 응시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정 선생의 집으로 향하는 길, 정 선생이 저 멀리 보였다. 회색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학교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영 다른 분위기였다.
“아, 선생님. 배고프시죠.”
“괜찮습니다.”
“전 배고파요. 점심을 1시도 안 돼서 먹었는데 8시가 다 됐네요.”
그가 배를 문지르며 우는 소리를 냈다. 그가 말한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술집이었다. 노란 조명이 불을 밝히는 작은 가게는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긴 전골이 맛있더라고요. 괜찮으세요?”
“네.”
“여기요.”
마치 단골집에 온 것처럼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주문을 하는 정 선생을 흘긋 보며 컵에 물을 따랐다. 직원이 주문을 받고 가자 그가 “감사합니다.” 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오늘 어땠어요.”
“아, 오늘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많이 안 떨었고, 다들 저 예쁘게 봐 주시더라고요.”
그가 흐흐,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밝은 낯에 약간의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정 선생은 학부모들이 좋아할 스타일입니다.”
“제가요?”
“네. 바르게 생겼잖아요.”
“제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게 귀여워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처음 듣는 소리예요?”
“바르게 생겼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 같아요. 저 옛날에 날 티 난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있는데.”
“정 선생이요?”
“네. 클럽 잘 가게 생겼다고 그러던데요?”
아무리 봐도 ‘날 티’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어쩌면 외모도 멀끔하고 워낙 서글서글하니 인기가 많을 것 같아서 들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잘 가요?”
“어…….”
입을 딱 다물고 눈을 굴리는 폼을 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그가 물을 들이켜며 헛기침을 흘렸다.
“그……. 김 선생님은 오늘 어떠셨어요?”
“저도 괜찮았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다들 아이 걱정만 하시다 갔어요.”
“맞아요! 되도록 좋은 말만 해 드렸는데, 그래도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전골이 나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전골을 보고선 정 선생이 맛있겠다,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하얀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벌써 5월 말이 다 돼 가네요. 저 처음 와서 인사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적응은 좀 됐어요?”
“어, 네. 적응은 됐는데 역시 쉽지만은 않네요.”
전골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출렁였다. 맥주를 마실 때마다 그의 미간에 골이 팼다.
“애들한테 뭔가 남는 수업을 해 주고 싶다고 생각은 하는데, 진도도 생각해야 하고 애들이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가 비운 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시무룩한 낯을 하고 있더니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고선 금세 얼굴이 핀다. 단순한 건지 먹을 걸 정말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그렇습니다. 수업 실기 대회에서 1등한 수업도 지루해하는 애들 많아요. 시험 위주로 하면 지루해하고 새로운 시도는 귀찮다고 하죠. 수업에 있어 기술이 중요한 것만도 아닙니다. 적절한 게 제일 어려울 거예요. 정 선생이 기준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정체성을 확실히 갖고 수업하다 보면 어렴풋하더라도 길이 보일 겁니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실패한 수업은 아니니까요.”
직원이 다가와서 불을 줄여 주었다. 정 선생의 맑은 눈이 날 물끄러미 응시해 왔다. 별것 아닌 조언인데도 진중하게 들어 주는 게 민망해서 잔을 비웠다.
“신출내기든, 몇십 년을 교직에 몸담아 온 교사든 깊이만 다르지 똑같이 하는 고민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수업에도 정답은 없어요.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수업도 없고요. 그래도 지금 하는 생각들이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란 건 분명합니다.”
물방울이 송송 맺힌 맥주잔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아서 눈을 들었다. 그의 눈이 아직도 내게로 향해 있었다. 나를 지그시 응시해 오던 눈이 이내 설핏 접혔다.
“김 선생님 처음 뵀을 때가 생각나요.”
“처음?”
“아, 처음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교문 지도 하실 때요.”
노란 맥주가 반쯤 담긴 잔의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둥글게 훑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지각을 한 애가 있었어요.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어왔는지 헉헉대면서 들어왔는데 지각이었던 거죠. 그런데 상습범이었나? 학생 부장 선생님이 혼을 내시는데, 김 쌤이 딱 걸어오시더니 그 애 이마에 손을 올리시는 거예요.”
기억이 날 듯 나지 않았다. 지각을 하는 애들은 워낙 많았고 부장 선생이 누구를 혼내는 일 또한 워낙 많았다.
“손을 대 보시더니, ‘얘 이마가 불덩이 같은데요.’라고 하셨어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였거든요. 얼굴이 달아오르지도 않았고, 숨이 찬 건 그냥 달려와서 그런 것 같았고.”
잔의 주둥이를 훑던 그가 손톱으로 잔의 몸통을 톡톡 쳤다. 둔탁한 소리가 짧게 울렸다.
“부장 쌤이 어, 정말이라면서 보건실에 보내는 게 낫겠다고. 그래서 보건실에 갔죠. 걔 결국 조퇴했나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노란 조명 아래 다갈색의 머리칼이 노란빛으로 빛났다. 어느새 가게로 들어찬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마치 드라마 속의 장면처럼 멀게, 그러나 아득하게 들려왔다.
“저 선생님은 애들을 사랑하는구나, 싶었죠. 사실 그땐 선생님이랑 말도 별로 못 해 봤던 때였어요. 김 쌤 첫인상이 되게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었거든요. 모르시겠지만 몇 번 말 걸었을 때도 그렇게 반기는 눈치도 아니셨고, ‘다가오지 마.’ 하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시고.”
“내가요?”
“네. 처음 뵙고 ‘와, 저 쌤 잘생기셨다.’ 했었는데 분위기 때문에 다가갈 생각을 못 했었죠. 근데 그때 이후로 저 사람이랑은 꼭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주변에 작은 소음들이 아주 천천히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때 사실, 저도 지각해서 봤었던 거거든요. 그때 지각한 저를 아주 칭찬해 주고 싶다니까요?”
그가 장난스레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노란 조명이 비추는 얼굴이 감당할 수 없이 싱그러웠다. 그를 비추는 조명만 하얗고 반짝거리는 것처럼.
“별로……. 정 선생이 그렇게 말해 줄 만한 사람 아닙니다.”
“왜요. 쑥스러우세요?”
“단면이잖습니까. 극히 일부고.”
“전부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잖아요. 전 제 눈을 믿어요.”
정 선생이 내 빈 잔에 맥주를 따르고 제 잔을 내밀었다. 그의 잔에 내 잔을 부딪쳤다. 그가 반쯤 남은 맥주를 비우며 어깨를 움츠렸다.
“이웃사촌이 좋긴 좋네요. 같은 직종이라 그런지 말씀드리는 것도 더 쉽고. 제 친구들은 아직 취직 준비하는 놈들도 많고, 이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요.”
이웃사촌. 직장 동료. 친구. 그렇게 정의될 수 있는 관계.
그가 나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한 걸까. 그런 의문이 불쑥 떠오르자마자 손가락이 굽어 들었다.
“어, 여기서 더 마시면 안 되겠어요. 저 그때 취해서 김 쌤 배웅도 안 해 주고 잠든 거 생각하면 앞으로 조심해야죠.”
“자는 건 주사 축에도 속하지 않는데요.”
“여기서 자면 곤란하니까요.”
“한 번 업었는데 두 번은 못 업겠습니까.”
“아……. 그때 무게라도 줄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무게 줄이는 법은 모르겠더라고요.”
우는소리에 짧게 웃었다. 수학여행에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때 발목은 다 나았던 걸까. 그것 하나 물어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 버렸지.
“별로 안 무거웠습니다. 정 선생 키를 생각하면 가벼운 편이었어요.”
“제가 먹는 거에 비해서 잘 안 쪄서요. 정말 다행이죠.”
“그러게요. 더 나갔으면 허리 나갈 뻔했습니다.”
아하하! 그가 어깨를 떨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 특유의 웃음소리에 입가가 허물어졌다. 따뜻한 조명이 정수리를 데웠다.
심심하지만 무의미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미적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와, 이제 여름이 오긴 오려나 봐요. 별로 안 쌀쌀하네.”
“이제 하복 입을 시기니까요.”
“맞아요. 하복 혼용 기간이란 소리 듣고 ‘아, 이제 여름이 오는구나.’ 했어요. 그 생각 하면서 진짜 학교에 적응했구나 싶더라고요.”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별이 많네요, 하는 말에 그를 따라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별들이 반짝거리며 제 존재를 열심히 알리고 있었다.
“오늘 같이 술 마셔 주셔서 감사했어요.”
“아닙니다.”
“후진 쌤.”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오는 내 이름에 열리려던 입술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김 선생님이 제 곁에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이 어떤 사람이신지는 이미 증명된 일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아. 아아.
별빛의 반짝거림이 뚝 멎어 버렸다. 찾아온 밤과 함께 어두워진 그의 눈에 이 하늘의 별과, 가로등의 불빛과, 색색의 네온사인이 전부 담겼다. 그가 나를 봄으로써 나를 밝히고 있었다.
내가 그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의 곁에 있는 것인데.
모르는 사람은 두렵다. 언제 내게 실망해서 돌아설지 모르니까.
그가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자 천천히 울리던 심장 박동이 점차 온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가슴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에 쓸려 가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도착지는 나도 알 수 없는 곳. 그러나 아주 낯익은 곳이 될 것만 같은 예감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