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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vollmond projet (25/25)

5 vollmond projet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차가 아닌 전동차가 도시를 가로지르고, 파발마 대신 전화로 대륙 반대편으로 연락을 넣는 시대가 되었다. 즉위식을 몇 주 앞둔 황태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제국의 오래된 보물 창고를 뒤엎기로 마음먹었다.

“쌓아 놓기만 하고 손대지 말란 게 말이야?”

“제국은 역사를 중시하는 나라니까요. 오래된 것일수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미덕입니다.”

“그게 바로 쓰레기장을 만들겠단 소리지. 황제가 되자마자 전부 다 뜯어고칠 거야.”

보물 창고에는 너무 많은 물건이 오랫동안 방치됐다. 쌓인 물건만 발굴하면 박물관을 서너 개 차릴지도 몰랐다.

“전부 버리시게요?”

“어. 버릴 건 버리고, 쓸 만한 건 전부 박물관의 전시행이야.”

“제국의 보물도 있을 텐데요. 그것도 많이요.”

“그런 건 본궁의 보관실로 직행.”

청소부를 자처한 황태자는 창고 구석에서 오래된 상자를 발견했다.

보물 명부에 기록되지 않은 상자라 누군가 남몰래 숨겨 놓은 것 같았다. 황족일 수도 있고, 보물 창고를 관리하는 시종일지도 몰랐다. 뭐든 열어 보면 알게 될 테지.

“맞는 열쇠가 없군요.”

황태자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를 보좌하는 시종은 입을 떡 벌리고 뒷걸음질 쳐 거리를 벌렸다.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르니 위험합니다.”

“그래서?”

“허름한 상자니까 별것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냥 버리는 게 어떠십니까.”

“궁금하잖아.”

그는 방아쇠를 당겨 자물쇠를 망가뜨렸고, 빛바랜 초상화를 잔뜩 발견했다. 오래되어 색이 변했지만, 은발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였다.

“태자 전하와 같은 은발이군요.”

시종의 말에 황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발은 황족의 핏줄임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초상화의 인물은 황태자의 먼 조상일지도 몰랐다. 살펴보니 그림의 크기는 달라도 모두 한 사람을 그린 거였고, 로켓도 하나 발견됐다.

로켓 안에는 초상화 두 장과 잘라 묶은 은발이 들어있었다. 유골함으로 사용된 모양이었다. ‘나의 황제, 나의 오메가, 나의 첫사랑에게.’ 로켓에 각인된 문구로 추측해 보면 초상화의 주인공이 황제에게 선물로 준 듯했다. 황제는 그것을 모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겨 놓은 것이고.

누굴까. 오메가 황제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누군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선물을 받은 자가 어떤 황제인지는 조사를 해 봐야 하지만 왜 이런 곳에 아무도 몰래 은밀히 숨겨 놓았는지 궁금해졌다. 치정 문제이려나. 남의 연애사는 재밌는 법이다.

어차피 즉위식 전까지 크게 할 일도 없겠다,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초상화의 주인공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머리카락과 초상화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누군데?”

“커틀러 클로비스. 제국의 황후입니다.”

언젠가 한 번 스쳐 들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몇백 명이 되는 제국의 황제 이름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벅차 황후까진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시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물어보십시오.”

“누구야. 정말, 정말, 궁금해.”

“램파드 황제의 우성 알파 황후입니다.”

“정말이야?”

이번에는 아는 이름이 나왔다. 램파드 클로비스라면 제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황제로서 교과서나 기록물의 단골이었다. 제국의 수도는 그의 이름을 딴 램파드였으며 대대로 황제가 기거하는 본궁은 태양궁으로 불렸다. 또한, 화사한 금발을 가진 미남자로서 초상화의 인물 못지않게 아름다운 사내였다. 제국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아직 그의 초상화가 불티나게 팔려 얼굴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황제와 달리 황후는 역사서에 한 줄 적혀 있을 뿐,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램파드의 황후를 낡은 상자에서 발견하다니, 기분이 묘해졌다.

램파드 황제가 죽은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며 칭송하는 까닭은 램파드가 없었으면 제국은 사라졌을 것이며, 대륙은 화합이 아닌 전쟁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램파드만이 오메가가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만들었다. 그가 발견한 억제제로 오메가는 알파와 베타들과 나란히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로켓을 발견한 황태자도 램파드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이때껏 존경했다. 덕분에 오메가인 자신이 당당하게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으니.

램파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발견된 로켓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램파드와 커틀러에게 푹 빠진 황태자는 로켓의 존재를 알리기 전, 조사에 몰두했다.

램파드는 다른 황제보다 일찍 황좌에서 물러났다. 스스로 상황이 된 그는 황후와 함께 먼 남부 지방으로 떠나 병마 없이 오래 살았고, 남겨진 초상화는 전부 황제로 군림한 젊을 적 모습이었다.

그의 짧은 재위 기간은 역사서가 몇 권이나 남을 정도로 화려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별다른 기록이 남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살았다. 얼마 없는 은퇴 기록으로는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 가다가 황후가 먼저 세상을 떴다지. 반년도 채 안 되어 뒤따르듯 눈을 감았지만, 함께한 세월이 긴 만큼 공허했을 것이다.

죽은 황후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런 초상화를 여러 장 그리게 하였을까. 초상화를 모조리 챙겨 온 황태자는 한 장 한 장 살펴봤고, 안타까워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 안쪽이 저릿해졌다.

황태자는 초상화를 정돈하여 깨끗한 상자에 모두 넣었다. 램파드의 마음을 존중하기로 해 이대로 영구히 보관될 것이다.

“제국의 역사서를 손봐야겠구나.”

역사서에 기록된 램파드 황제는 베타였다. 당시에 사실을 밝혔다간 오메가가 오메가의 편을 들었다며 모든 업적을 백지화로 되돌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황후와 함께 한평생 비밀로 간직했을 터.

역사서를 손대는 건 쉽지 않지만, 램파드 황제의 잘못된 정보를 수정한다면 대중도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할 것이다.

“손봐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제국의 역사학자를 모조리 초청해서 최대한 빨리 진행해.”

커틀러에 대한 정보도 수정해야 했다. 램파드 황제의 유일한 오점은 후계자 생산도 못 하는 알파를 황후로 삼은 거였다. 심지어 황후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고, 오직 힘을 과시할 용도로 혼인했을 거라 추측됐다.

알파를 황후로 삼으면서까지 권력을 뽐냈으면서 이상하게도 차기 황제는 황후의 동생이 되었다. 지금 보면 처음부터 루트비안을 황제로 올릴 작정이었던 것 같았다.

차기 황제 후보는 램파드의 유일한 핏줄인 서자였는데 그는 자진해서 사퇴했다.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황제가 스스로 물러나자, 황위 계승권은 자연스레 황후에게로 돌아갔다. 그다음 계승 순위는 황후의 혈족이었고.

황후마저 즉위식도 치르기 전에 자리를 거부하자 기다렸다는 듯, 콘테 공작가의 루트비안이 황제 후보로 올랐다. 당시 반발이 심했지만, 제국법상 문제없다는 이유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세상 그 어떤 권력자가 자신의 혈족이 아닌 자에게 실권을 넘겨줄까. 생각지도 못한 일이니 관련법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들은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지금 황태자의 은발과 성은 콘테 가문에게서 받았다. 가장 존경하는 황제의 피가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쉬웠었다.

“어쩐지 차기 황제의 즉위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국의 역사를 배운 황태자도 같은 생각을 했다. 번거롭게 황제가 된 루트비안은 램파드와 커틀러의 자식일 확률이 높아졌다.

“황좌에서 물러난 램파드 황제께서 먼 곳으로 떠나 지내는 것도 이상했어.”

수도에 있으면 호의호식할 수 있는데, 가장 시골인 남부 지방으로 커틀러와 떠났고, 조용히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기 전, 황궁으로 돌아갈 때까지 근처 아카데미에서 검술 교관을 맡았는데, 수도에도 아카데미는 있었다. 왜 하필 남부 지방으로 떠났을까.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렇죠.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마치 쫓겨난 것 같잖습니까. 비밀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은거하신 거라면 이해되는군요.”

“이분들이 데려다 키운 고아도 알아봐.”

램파드와 커틀러가 남부 지방에서 키웠다는 고아가 하나 있었다. 금발을 가진 그녀는 루트비안 황제의 비호를 받아 준귀족의 신분이 되었다가 검 하나로 로열 가드의 단장 자리까지 올라간 실력자였다. 루트비안과 마찬가지로 번거롭게 태생을 숨겨 황궁으로 간 느낌이 들었다.

조사를 위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수도로 불려 왔고, 어렵지 않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램파드 황제가 기른 그녀는 아이리스 클로비스 백작입니다.”

“전쟁도 없던 시절인데 고아가 작위를 받을 명분이 있나?”

준귀족에 알파였으니, 기사가 되어 준남작 정도는 괜찮지만, 백작 작위는 받기 힘들었다. 루트비안 황제가 그녀의 오빠일지도 모르니 여동생을 위해 작위를 마련한 것인가. 백작 작위를 내렸다면 분명 거센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램파드 황제의 공로를 인정해 수양딸을 자식으로 인정한 모양입니다. 클로비스의 성을 지켜 나갈 수 있게요.”

“그렇지만 지금은 클로비스를 성으로 사용하는 자가 없지 않나.”

“후손이 살아 있으니까 자세한 건 직접 물어보십시오. 뭔가 더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아보니 클로비스의 성이 부담스러워서 몇 대 전에 개명한 거였다. 누구나 존경하는 유명인의 성을 사용하면 필연코 지대한 관심을 받으니까. 평범한 사람으로서 램파드의 후광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도 램파드의 수양딸인 그녀의 일기가 가보처럼 남아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보존 상태가 좋아 남겨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은 어머니가 먼 곳까지 나가 민물 농어를 잡아 오시고 아버지가 요리하시기도 했다. 전 황제의 저택은 시종의 숫자가 유독 적다. 어쩔 수 없이 저택의 주인들이 몸을 움직여야 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행복해 보였다.」

「왜 시골을 선택했는지 어머니께 물어봤다.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적당한 권력으로 한량처럼 사는 것이 아버지의 오래전 꿈이었단다. 그의 꿈을 몰래 이뤄 주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자며 고집을 부리신 거였다.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어머니가 웃었다.

‘계속 황궁에 남아 있었으면 꿈을 이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을 밝혀도 황궁에 묶여 있었을지도 모르고.’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니까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꿈을 이룬 그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아느냐. 너무 진귀해서 품속에 넣기만 한 그의 미소를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검을 휘두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 곁에서 온종일 감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된다. 나도 그를 따라 훌륭한 검사가 되고 싶다.」

「대체 몇 번째입니까……. 내가 기억하기로 박살 난 침대만 셋이 넘는데 이번에는 주방의 보조 탁자가 무너졌다. 거대한 나방이 들어와 검을 휘둘렀다는 어린애도 안 믿을 거짓말을 하셨다. 탁자가 부서진 이유를 알지만, 새빨개진 어머니 때문에 모른 척했다.」

「내가 알파로 발현한 날 어머니가 우셨다. 언제나 강인한 그가 우는 모습을 난생처음 보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너는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며 연신 말씀하셨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로열 가드 시험에 합격했다. 황궁으로 떠나기 전 가장 먼저 나를 주워 몇 년 돌봤다는 와인 메이커를 만났다. 그에게는 나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부고 소식에 서둘러 남부 지방으로 내려갔다. 10년이란 세월은 남겨진 그의 머리를 떠난 자처럼 환한 백색으로 만들었다. 날 반긴 그는 이놈은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며 웃었다. 슬프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마지막에 울지 말라며 먼저 간 거란다. 자신이 먼저 눈을 감았으면 그를 걱정하느라 끝까지 울었을 거라고. 원래 이놈이 몇 달 먼저 태어났으니 순서가 맞다, 자신이 다음이라 다행이란다.」

「국장을 위해 그와 함께 황궁으로 돌아왔다. 환복을 끝낸 그는 빛이 났다. 오랫동안 황궁을 떠나 나이가 들어도 태양은 지지 않았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그 말에 동의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던 것처럼 황궁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의 세대는 큰 손실을 보았다. 부조리한 편견 때문에 오래도록 위대한 황제를 모시지 못했으니.」

「그는 루트비안 황제가 준비한 별궁에서 지냈다. 호위를 핑계로 그를 만나러 갔는데, 창가 옆에 앉아 하염없이 로켓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목에 걸고 다닌 로켓이었다. 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소중히 여기는 걸까. 남부 지방에서 함께 지낼 때, 궁금해서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그는 귀 끝만 붉힐 뿐 끝내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이제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국장이 끝날 때까지만 머무는 손님으로 취급하여라.’

단단히 못 박은 그는 황궁 안을 어슬렁거리는 뚱뚱한 고양이를 한 마리 낚아 산더미 같은 책과 함께 별궁에 틀어박혔다. 조용히 찾아가면 한 손에는 읽다가 만 책을, 또 다른 손에는 로켓을 쥐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반응하곤 했다.」

「정치에 엮이지 않기 위해서 상황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맞지만 루트비안 황제는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루트비안 황제가 나에게 찾아와 칭얼댔다.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한 내가 부럽단다. 자신이 거기 있고 싶었다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를 몇 번이나 본궁으로 초대했지만 죄다 거절당한 거였다. 명망 높은 상황은 대신들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황제에게 피해가 가니까 일부러 피한 거였다.」

「책에 둘러싸였지만 그는 어딘가 무료해 보였다. 이야기를 들은 루트비안 황제는 정무에 크게 연관되지 않은 자문을 든 대신을 별궁으로 보냈다. 몇 번 거절하던 그도 심심풀이 삼아 대신들의 독대를 허락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 젊은 대신들은 하나같이 오래가지 않아 그에게 푹 빠져 존경을 표했다. 곤란해진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독대를 전부 사양했다.」

「루트비안 황제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상황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봐 그를 별궁에 감금한 거라는 망언을 퍼뜨렸다. 정작 당사자인 루트비안 황제는 대수롭지 않아했고, 오히려 신경 쓴 그가 별궁 밖으로 튀어나왔다.

‘차라리 하급 기사들을 가르치게 해 다오.’

평민이 대다수인 하급 기사는 권력 싸움에 엮일 필요가 없고, 심지어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황제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는 하급 기사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개중에 오메가가 한 명 섞여 있었고, 오랫동안 따돌림을 당했다. 세상이 변해 가고 있다지만 뿌리까지 깊게 박힌 혐오를 뽑아내긴 아직 일렀다. 기사들은 그에게 오메가를 내쫓길 아뢰었다.

‘실력이 뛰어난 자다. 제국법엔 오메가가 직업을 가져선 안 된다는 법이 없지 않으냐. 자질이 의심된다면 한번 겨루어 보아라.’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승리한 오메가를 지켜보던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별궁으로 돌아갔다.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그였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포도주를 한 병 챙겨 들고 가 오랜만에 술잔을 나눴다. 그는 오메가의 승리를 기뻐하는 반면 앞일을 걱정했다. 후견인이 되어 주면 좋으련만, 국장이 끝나는 대로 돌아갈 거라 여의찮았다.

‘제가 후견인이 될게요.’

나는 주저없이 말했고, 그는 드디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오메가는 훗날 나와 결혼했다.」

「그와 단둘이 축배를 들었다고 보고를 올리자 루트비안 황제가 잔뜩 토라졌다. 결국 온갖 이유를 붙여 그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국장이 끝났다. 현명한 그는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남부 지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그를 쉽게 보내지 않았다. 황제도 인정했고, 한술 더 떠 그를 마음에 들어 한 대신들까지 거드니까 다툼은 없을 거라 예상하지만, 그는 떠나고 싶어 했다. 눈물 공세로 마지못해 황궁에 남은 그는 로열 가드의 수련장에서 기사들을 지도하다가 쓰러졌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가장 어울리는 장소에서 눈을 감았단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으니까. 어디든 상관없다. 그는 그의 곁이 가장 어울린다.」

「고아라고 하지만 나는 내 부모님이 누군지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고아로 살아갈 것이다.」

보관한 자들은 이때껏 어머니와 아버지를 반대로 알았는데, 조사 결과 어머니 쪽이 램파드였다. 수확은 더 있었다.

램파드와 커틀러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정설이었다. 남아 있는 커틀러의 초상화는 딱딱하기 그지없었고, 누가 봐도 억지로 황궁에 끌려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램파드를 좋아하는 제국민은 자연스레 커틀러를 싫어했다. 존경하는 황제를 적대시하는 황후라니, 미워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다는 듯 초상화를 함께 걸지 않아 그의 얼굴이 잊혔다.

그러나 일기의 내용만 봐도 램파드와 커틀러의 사이가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생을 사랑한 그들의 이야기가 초상화 하나로 왜곡된 것이 아쉬웠다. 태양과 함께했다는 뜻으로 보름달 프로젝트라 붙여진 조직을 만들었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알리기 시작했다.

“황가의 계보도 바뀌게 되는 건가? 이왕이면 그분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황실의 성도 바꿨으면 하는군.”

“왜 이리 급하십니까.”

“좋으니까.”

“좀 더 조사해야 하지만 램파드 황제께서 오메가셨다면 원하는 대로 하실 수 있으십니다.”

“내가 램파드 황제의 후손이라니, 즉위식 선물 중 단연코 최고야.”

램파드가 살아간 시대의 오메가는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황제의 곁에 있던 커틀러는 태양 빛을 받아들여 시시때때로 모습을 변화하는 달처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바꿔 램파드를 지지해 줬을 것이다. 진실을 모르는 자들은 알파가 베타의 황후로 있었냐며 손가락질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오메가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곧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후세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최초의 오메가 황제가 된 램파드의 옆자리에 커틀러의 초상화가 당연하다는 듯 나란히 걸렸다. 그전에 황태자는 로켓 안에 있던 초상화를 토대로 커틀러의 표정을 고쳐 그리게 했다. 오직 램파드만을 위한 미소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짓는 눈웃음은 램파드의 곁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누가 봐도 금실 좋은 부부임이 분명했다.

더블스피크 외전2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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