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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추문 (23/25)

3 추문

1년 후, 잔트는 무사히 둘째 아들을 낳고 요양까지 끝마쳐 돌아왔다. 그는 루안이 큰 사고를 치고, 황궁이 한바탕 뒤집힌 사실을 몰랐다. 임신한 몸으로 수도로 돌아올까 봐 비밀로 한 탓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램파드와 루안의 사이가 부쩍 가까워진 걸 보며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며 기뻐했고, 남몰래 독대를 신청했다.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램파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린 잔트에게 맞은편에 앉으라 손짓했다. 잔트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주변에 있던 시종들은 그의 얼굴을 흘끗거리느라 바빴다.

그는 작은 모임은 나가지만 무도회에는 얼굴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황궁의 시종은 소문만 무성한 잔트를 처음 본 것이다. 어떻게 뜯어봐도 커틀러를 그대로 본뜬 모습이라 그들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인상을 찡그린 램파드는 시종을 모조리 물려 버린 후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새로 들인 시종들이 버릇이 없구나.”

램파드는 시종들이 준비해 둔 차를 홀짝이며 혀를 찼다.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그래, 무슨 일로 짐을 찾았느냐.”

잔트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에 무사히 둘째를 얻었습니다. 제 작은 보답을 받아 주십시오.”

잔트는 잘 포장된 작은 상자를 램파드에게 건넸다. 귀족의 선물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곧바로 뜯는 것이 예의였다. 잔트가 직접 묶은 아기자기한 리본을 풀고, 작은 상자 뚜껑을 열자 백금으로 만든 로켓이 들어가 있었다.

“로켓?”

“열어 보시지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둥그런 로켓을 만지작거린 램파드는 안을 열어 보고선 한참이나 바라봤다.

“잘 나왔죠?”

“이런 건 언제 만든 거냐.”

램파드는 고개를 기울이고 볼을 괴며 웃었다. 로켓 안에는 세 살배기 루안을 안아 든 커틀러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루안이 세 살이 되었을 때 그린 초상화입니다.”

“네가 지시한 일이냐?”

“아닙니다. 커틀러가 직접 서왕국의 화가를 고르고 초청해 와 그린 겁니다.”

아기방도 그렇고, 이렇게 은밀하게 진행하는 걸 보면 웃음이 계속 나왔다.

“실력이 좋은 자로군.”

루안을 안은 커틀러의 입매는 딱딱 보이지만, 그를 잘 아는 램파드는 희박한 미소를 머금었단 걸 알았다. 세세한 부분을 묘사한 점이 마음에 쏙 들었고, 만약 램파드가 의뢰자였다면 훈장을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서왕국에서 으뜸가는 화가가 작업한 겁니다. 제국 물이 싫다고 고집을 하도 부리는 통에 데려오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죠.”

최근 무역으로 왕국의 예술품이 종종 들어왔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실력만큼은 제국보다 왕국 쪽이 뛰어났었지.

“서왕국은 화가의 숫자가 유독 많지 않으냐. 다른 이를 데려와도 됐지 않나.”

“그자의 묘사가 마음에 든다며 고집을 부렸답니다.”

어떤 부분이 마음이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커틀러의 작은 미소를 표현한 점과 함께 두 사람의 은발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환했고, 은을 녹여 그린 것만 같았다.

“정말 고생했죠.”

뭔가 일이 있었긴 한 모양인지 잔트는 한 번 더 강조했다.

“자네가 그리 말하니까 어떻게 꾀어 왔는지 궁금해지는군.”

“저보다 커틀러에게 듣는 것이 재밌으실 겁니다.”

커틀러는 한번 마음먹으면 굽히지 않는다. 화가들도 괴짜가 많아 돈으로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텐데 어떻게 데리고 왔을는지. 어떻게든 수를 냈을 커틀러를 생각하자 한차례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루안이 세 살 때라면 꽤 오래전에 만들었던 거다. 커틀러는 초상화가 있다는 작은 언급조차 없었다. 그려진 모습이 마음에 들지만 잔트를 위해 만든 선물이라는 생각에 심통이 났다.

“몹시도 언짢은 선물이구나.”

“무엇이 불편하신지요.”

“자네에게 줄 선물이지 않으냐.”

불쾌하다고 말하지만, 얼굴은 싱글벙글했기에 잔트가 미소로 화답했다.

“폐하, 로켓 뒤쪽을 살펴보십시오.”

로켓의 뚜껑을 닫은 램파드는 뒤집어서 확인했다. 나의 황제, 나의 오메가, 나의 첫사랑에게. 커틀러의 유려한 필체로 각인된 문구에 램파드의 귀 끝이 새빨개졌다. 헛것을 봤나 싶어 심호흡 후 한 번 더 읽었더니, 이번에는 목까지 벌겋게 변해 온몸이 간지러웠다.

잔트는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자신의 입가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갔고.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폐하께 드리지 않아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부디 제가 드렸단 건 비밀로 해 주십시오.”

“…….”

“시원한 차가 필요하시겠군요.”

램파드의 입이 떨어지지 않자 그는 장난스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직접 다리를 움직여 응접실 문을 열고 시종을 불렀다.

한번 열이 오른 램파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손등으로 자신의 볼을 문지르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몸은 더욱 뜨거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잔트의 말대로 시원한 음료가 필요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물렸던 시종들이 차를 준비해 왔고, 그들은 이번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램파드를 흘끗거리느라 바빴다.

며칠 후.

한 해에 한 번꼴로 진행하는 어전 회의가 개최됐다.

이번에 준비한 안건은 대신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될 것이다. 결과가 뻔히 정해진 일인데 몇 시간 내내 앉아서 듣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램파드는 한스와 함께 어전 회의실에 딸린 준비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작은 대기실이다 보니 곁을 지키는 시종은 하나뿐이었고, 그는 황제의 옷맵시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걸친 옷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램파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크나큰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데. 왠지 놀라 까무러칠 소리를 할 것 같아 할 수만 있다면 준비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짐 대신 자네가 황좌에 앉아 있거라.”

역시나 엄청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예?”

“뭘 놀라나. 짐의 직인도 만져 보지 않았는가.”

황제의 집무실 책상에 앉아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으란 말에도 펄쩍 뛰었는데, 황좌에 앉으라니. 개인실인 집무실과 사방팔방 뚫려 있는 회의실은 차원이 달랐다.

“안 됩니다. 황좌에 안기 전에 로열 가드에게 제지당해 끌려갈 겁니다. 포박당하면 다행이죠. 닿기도 전에 칼에 찔려 죽습니다.”

“짐은 호위를 따로 두지 않으니 조용히 들어가면 아무도 모를 거다.”

“대신들은요? 그들이 손가락질하면 곧바로 처형대에 오르잖습니까!”

“어전 회의를 시작하기 전 황좌에 막을 쳐 놓으니까 입만 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막을 칩니까?”

“어전 회의만큼은 대신들끼리 의견을 자유롭게 교류하라며 황제의 시야를 차단해 둔다. 짐은 듣기만 하면 되는 거고, 몰랐느냐?”

“참여해 봤어야 알지요……. 어전 회의는 시종들도 출입하지 못하잖습니까…….”

“이 기회에 회의실 구경도 해 보아라.”

램파드는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 툴툴대는 한스의 어깨에 걸쳤다. 차림을 갖추니 윤곽만으로는 누군지 간파하기 힘들어 보였다. 램파드는 혼자서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스는 울상이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부디, 예상하신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찾아와 주십시오.”

“글쎄.”

“폐하…….”

램파드는 얼른 들어가라며 대충 손짓했고, 한스는 한숨을 푹푹 쉬며 황좌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자유의 몸이 된 램파드는 화이트 테일 건물로 향했다. 평소 이 시각이면 기사들의 훈련 소리로 소란스러울 건데, 모조리 순찰을 나갔으므로 텅텅 비었다.

미리 한 약속이 있었기에 램파드는 곧장 기사단장실로 향했다.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주인인 커틀러가 아닌 황의가 반겨 줬다.

“램파드 폐하, 기다렸습니다.”

황의는 램파드의 출산을 돕던 콘테 가문의 의사였다. 지금은 황의로서 램파드의 진찰을 도맡고 있었다. 평범한 검진이라면 다른 시종들의 눈에 띄어도 상관없지만, 오메가가 가진 기관은 다르니 검진도 비밀스럽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황의는 몇 가지 진찰을 시작하더니 한시름 놓았단 표정을 지었다.

“건강해지셨습니다.”

손꼽아 기다린 말이었다. 한 번 쓰러진 이후로 커틀러의 잔소리에 떠밀려 주기적으로 검진을 하는 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치가 떨리는 과거를 짧게 회상한 램파드는 필요한 용건만 물었다.

“아이를 가져도 되려는가?”

“지난번처럼 임신 중에 술과 발정제를 여러 병 드실 겁니까.”

“아니지.”

“배 속에 아이가 있는데 곰을 상대로 말을 타고, 활까지 쏘시는 건요?”

“안 해.”

잔트의 별장에 실려 온 램파드를 살펴본 황의는 그간 있었던 일을 듣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잊지 못했는지, 하나하나 기억하며 다 되짚었다.

“아무리 안전한 시기라고 해도 노팅은 안 됩니다.”

“그건 그대의 주인한테나 말하거라.”

“폐하께서 직접 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아마, 임신도 쉽게 허락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시끄러운 잔소리라 생각하는 램파드는 아까부터 문 앞에 조용히 서 있는 그를 향해 물었다.

“어때, 네 생각은?”

“폐하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주인의 목소리에 황의가 흠칫 놀랐다.

“어…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진찰을 시작할 때부터.”

“순찰 임무는 어찌하시고…….”

“내가 네놈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나.”

“물론 아니지요!”

농땡이 피우고 중간에 빠져나온 게 분명하지만, 감히 지적하지 못했다. 커틀러가 램파드 곁으로 다가왔고, 황의는 잔뜩 긴장했다.

“제… 제가 맡은 일은 다 끝났으니……. 기사들이 돌아오기 전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황의는 자신이 내뱉은 말 중에 주인을 욕한 게 있는지 되짚어 보는 중이었다. 딱히 뒷담을 하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몰라 여러 번 검증했고 빨리 사라지고 싶었다.

“나가거라.”

램파드의 목에 팔을 두르던 커틀러가 그의 볼에 입술을 가볍게 대며 말했다. 방해하지 말고 꺼지란 뜻이겠지. 황의는 서둘러 허리를 굽히고, 들고 온 진료 가방을 부랴부랴 챙겼다.

“들으신 대로 발정제를 마시고, 임신 준비를 하셔도 좋습니다. 둘째를 가지실 거라면 미리 지내실 곳도 알아보십시오.”

뭔가 다른 말이 튀어나올까 봐 황의는 서둘러 한마디 덧붙였다.

“나가는 김에 문도 잠그겠습니다.”

커틀러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눈치 빠르게 움직인 황의에게 기사단장실 열쇠를 휙 던졌다. 그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열쇠와 함께 잽싸게 사라졌다. 이제 단장실 안으로 들어오려면 안에서 따 주든가 벽을 타고 기어올 수밖에 없었다.

램파드는 큭큭 웃으며 몸을 돌려 커틀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눈치 좋게 자리까지 만들어 줬는데 어때?”

“무엇을요.”

모른다며 시치미 떼는 말과 달리 그의 입술은 램파드의 볼을 지나 귓불을 우물우물 물었다.

“어전 회의가 끝나기 전에 아이를 하나 더 만들어 보자고.”

그는 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나뿐인 입술이 귓불을 지나 목 아래를 훑고 있었으니까. 간지러움을 느낀 램파드는 한쪽 눈을 찌푸리며 가슴과 가슴을 단단하게 밀착했다.

“급하기는.”

“알고 계시면 도우십시오.”

“어떻게?”

“제 좆을 만져 주시든지요. 빨아도 좋습니다.”

이 자세면 지퍼를 내리고, 성기를 꺼내 주무르기 딱 좋았다. 손으로 주는 자극 말고, 다른 것을 준비한 램파드는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며칠 전부터 억제제를 끊었고, 여기 오기 전에 발정제 한 병을 마셨어.”

목선을 부드럽게 핥던 혀가 우뚝 멈춰 섰다. 기사단장실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건강해졌다는 통보를 듣기 전이었다.

“피임약도 안 먹었지. 너만의 완벽한 오메가가 될 수 있어.”

“…….”

“아, 그렇지만 노팅은 안 돼. 대타로 세운 한스를 구하러 시간 맞춰 가야 하거든.”

“램파드 폐하…….”

“잔소리는 됐어. 결국, 먹어도 된다는 진단을 받았잖아?”

고개를 치켜든 그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시끄러운 소리를 쏟아내려는 모양이었다. 램파드는 그의 양 볼을 감싸 쥐고 입술을 틀어막았다. 고집스레 다문 입술은 금방 열렸다. 옅게 풍기는 램파드의 페로몬에 반응하는 그는 평소보다 달게 느껴지는 타액을 쫓아 성급하게 혀를 움직였다. 입천장이 간질간질한 램파드는 웃으며 입술을 떼어냈다.

“결국, 너도 좋으면서.”

“그렇게 둘째가 가지고 싶습니까.”

“아니, 오랜만에 너한테 발정하고 싶거든.”

관계는 합방날이 아니어도, 침실에서도 한다. 하지만 황제의 침실에서 오메가의 페로몬이 풍기면 곤란하기에 약을 꼬박 먹어 억제했다. 지금의 램파드는 어전 회의실에 앉아 있는 걸로 되어 있으니, 황궁 내 오메가 페로몬이 퍼져도 그를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오랜만에 맡는 램파드의 향기가 마음에 든 커틀러는 그의 옷을 거칠게 풀어헤쳤다. 같은 옷으로 한스를 만나러 가야 하므로 찢는 건 곤란했다. 램파드는 그의 가슴을 밀어 떨어뜨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하나씩 벗었다. 금실로 자수를 놓은 조끼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셔츠 단추를 푸르며 책상 쪽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쳐 그를 이끌었다. 커틀러는 단 간식에 이끌린 아이처럼 그를 쫓아 책상 쪽으로 향했다.

깨끗하게 닦여진 기사단장실 바닥에 램파드의 옷가지와 속옷이 차례대로 떨어졌다. 알몸이 된 램파드는 책상에 드러누우며 눈웃음쳤다.

“흥분하기엔 향이 조금 부족하지?”

램파드는 발끝으로 서 있는 그의 중심을 꾹 눌렀다. 탄력이 느껴졌다. 이미 단단하게 섰고, 날뛸 준비가 되었지만 좀 더 기름을 부어 난폭하게 만들고 싶었다.

“네놈 정액을 너무 많이 받아먹어서 발정제만으로는 해방되지 않는군. 나머지는 네가 직접 해방해 줘.”

그는 자신의 물건을 짓누르는 램파드의 발을 낚아챘다. 그리고 발끝에 입을 맞추며 지퍼를 끌어 내렸다.

“후회하실 겁니다.”

그도 상당히 급한 모양인지 탈의할 생각조차 안 하고, 제 중심을 꺼내 쥐기 바빴다. 램파드는 윗입술을 할짝대며 드러난 남근을 관람했다. 각인한 오메가의 행동은 모두 다 유혹이었고, 알파의 사나운 기운이 풍겼다.

“각오하고 왔으니까 거칠게 해도 좋아.”

잔뜩 흥분한 아래는 이미 애액이 흘렀다. 사납게 세워진 알파의 단단한 성기가 비집고 들어오기 충분했다.

“……아!”

램파드의 다리를 벌린 커틀러가 자리를 잡더니 단번에 파고들었다. 그도 오랜만에 맡는 램파드의 페로몬이 급해졌는지, 허리를 퍽퍽 쳐올리기 바빴다.

“하읏, 좀… 더.”

마음과 몸이 원하는 관계는 단번에 만족으로 채워졌다. 특히 심장이 간지러웠다. 가슴 안쪽까지 깊이 찔러 줬으면 하는 마음에 다리를 활짝 벌렸다. 램파드의 행동에 응해 주는 그는 허리를 강하게 움켜쥐고 찔렀다.

“읏!”

안쪽이 찔릴 때마다 오메가의 페로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는 램파드의 포궁이 있을 자리에 손을 올린 후 쓰다듬었다. 그의 손등 위에 손을 겹친 램파드가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도발했다.

“후으, 아직 안 열렸어.”

램파드의 금발이 땀과 엉켜들었다. 힘들어 보이건만 그는 태연한 척 애썼다.

“속까지 제대로 벌려 드리죠.”

도전에 응한 커틀러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평소 완벽하게 갈무리한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삽시간에 사나운 짐승의 향에 취한 램파드의 가슴이 위아래로 빠르게 헐떡였다. 숨이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떠는 오메가의 몸이 유독 맛나 보인다. 커틀러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

“아앗!”

오랜만에 맡는 오메가의 페로몬에 취한 그도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램파드의 유두 주변은 강하게 움켜 문 이빨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살짝 붉게 물든 흔적과 옅은 피 맛에 커틀러의 고삐가 풀려 갔다.

램파드는 짐승 같아진 그의 눈동자가 마음에 쏙 들었다. 커틀러가 자신에게 흥분하여 발정하는 거니까. 이 예쁜 알파를 성욕에 미친 짐승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오롯이 자신뿐이었다.

“커틀러…….”

잔뜩 원하는 마음에 양손을 뻗었고, 커틀러는 자신의 목깃을 풀며 고개를 숙였다. 황명을 받아 신경 써서 치료한 목은 작은 흉터 하나 없이 매끈했다. 램파드는 눈앞까지 다가온 커틀러의 등을 꽉 움켜쥐며 그의 목을 깨물었다.

오랜만에 남기는 흔적이니 신경 써서 빨고 싶건만 알파의 페로몬에 취해 가는 덕분에 정신없이 깨물 수밖에 없었다.

“램파드 폐하, 하아… 램파드…….”

그는 사랑스럽게 이름을 읊조리곤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속살이 찔리자 램파드의 몸이 덜컥거렸고,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 숨을 쉬기 버거울 정도로 강한 악력으로 끌어안았다.

발정제로 억지로 몸을 열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램파드는 몸 안쪽을 움찔움찔 조이며 속까지 들어오라며 재촉했다.

“흐읏, 좀 더 안에…….”

“여기요?”

“하으 좀… 더……! 거기……. 흣!”

그는 램파드가 원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찔러 올렸다. 여러 번 쾌락 점을 찔리자 램파드의 팔에서 힘이 풀렸고, 몸이 축 처졌다. 결합한 부분을 빼기 싫어, 그는 축 처진 몸을 단단하게 감싸며 속에 콱 박은 채로 감질나게 움직였다.

“절 도발한 것 치고는 쉽게 무너지시네요.”

힘이 쭉 빠진 램파드는 쾌락을 쉽게 놓았다. 어차피 금방 달아오를 테니, 느끼는 족족 정액을 질질 흘렸고, 일부는 커틀러의 제복에 튀었다.

커틀러는 자신의 옷에 튄 램파드의 정액을 쓸어 혀로 핥았다. 몸이 열렸기 때문인지 램파드의 페로몬 향이 나 진미로 느껴졌다.

“후으…….”

정액 맛을 본 그는 콱 박힌 좆을 절반 정도 빼내더니, 안쪽으로 빠르게 짓이겼다. 커틀러의 움직임에 맞춰 램파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기분 좋긴 하지만 조금만 더. 커틀러의 아랫배가 좀 더 단단하게 밀착하며 안쪽으로 들어왔으면 해 내벽을 꽉 조였지만 원하는 곳으로 파고들지 않아 애가 탔다.

램파드가 바르작거리자 그는 볼을 쓰다듬어 줬다. 손길도 좋지만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램파드는 그의 손바닥을 혀로 핥았다.

“벌써 지치셨습니까?”

그가 도발하며 웃었다. 숨을 쉴 때마다 흥분한 알파의 페로몬과 살냄새가 난다. 각인한 알파의 페로몬만으로도 몸이 나른해졌다. 그의 도발마저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리다니, 그래 커틀러가 이긴 것이다. 순순히 인정하며 야릇하게 웃었다.

“응.”

“회의장으로 돌아가셔야겠네요.”

램파드는 멀어지는 커틀러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매끈한 손가락을 좆을 빠는 것처럼 혀를 써서 핥았다.

“마지막은 네 페로몬으로 끝까지 열어 줘.”

“폐하의 명대로…….”

손가락을 빼낸 그가 램파드의 어깨를 잡더니 뒤집었다. 책상에 엎드린 램파드는 좀 더 편히 그가 박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알파의 향이 한층 더 짙어지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감각이 들었다.

“허윽!”

알파의 페로몬에 취한 포궁 입구가 말랑해졌고, 그가 힘을 줘 벌리는 게 느껴졌다. 히트싸이클이 시작된 램파드의 몸은 덜덜 떨렸고, 오메가의 향이 짙게 났다.

“안… 안까지 집어넣어 줘……!”

그는 램파드의 뒷목을 꽉 움켜쥐더니 책상에 고개를 처박게 하였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감대가 되었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달하며 움찔거렸다.

엉덩이와 배가 닿을 때마다 살 소리가 요란스레 들렸다. 램파드의 몸은 그의 움직임대로 정처 없이 흔들렸고, 책상 위에 올려둔 서류나 펜 따위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폐하.”

“으응.”

그는 램파드의 등에 자신의 가슴을 단단하게 붙였다. 거친 숨결이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사실 저도 약을 안 먹었습니다.”

안에 싸도 되냐고 허락받으려는 모양인데, 이미 배 속에 들어찬 알파의 성기는 씨를 뿌리며 꿈틀거렸다. 마음껏 해도 좋다고, 램파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톱을 세워 책상을 긁었다.

커틀러가 파정하자 향이 좀 더 진해졌고, 본능적으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속을 바짝 조였다.

“하아… 좋아.”

몸속에서 커틀러의 향이 났다. 자신의 향과 뒤섞여 묘하게 변했는데, 좀 더 잔뜩 맡고 싶었다. 커틀러 또한 혼합된 두 사람의 페로몬이 마음에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빼내지 않은 성기가 한층 더 뻣뻣했다.

아, 이대로 한 번 더 하려나. 대타로 세워 둔 한스가 살짝 걱정되지만, 쾌락에 찌든 몸은 아무렴 뭐 어떠냐며 남근을 바짝 조였다.

“……힉!”

“큿!”

양손으로 램파드의 뒷목을 꽉 붙잡은 그가 힘을 줘 성기를 빼냈다. 벌려진 포궁 안을 비집고 들어올 정도로 콱 박힌 좆이 한 번에 쑥 빠져나가자 램파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으응…….”

아쉬운 램파드가 그렁그렁 울었다.

“돌아갈 준비… 하셔야죠.”

마지막 이성을 붙잡은 그가 속삭였다. 잔뜩 달궈진 몸에 이성이 자리 잡자, 램파드는 눈을 질끈 감고 욕구를 억눌렀다. 하긴, 대타로 한스를 세워 둔 걸 들키면 시끄러워진다. 회의실로 돌아가기 전에 잔뜩 달라붙은 알파의 페로몬을 없애려면 씻을 시간도 필요했고, 속에 찬 정액도 품고 싶지만 빼내야 했다.

램파드는 아쉬워하며 일어났고, 그의 중심을 보자 살짝 입을 벌렸다. 꼿꼿하게 세워진 커틀러의 성기가 평소랑 달리 퉁퉁 부었고 피가 몰려 색도 유난히 검었다. 멍이 든 것처럼 짙은 색으로 변한 성기는 음낭 바로 윗부분이 터질 듯 부풀었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게 어떻게 몸에 들어가 있었지. 아니, 저렇게 되니까 노팅할 때마다 뼈가 비명을 지르고 며칠 내내 잠을 자는지, 혼절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거다.

거근에 깜짝 놀란 것도 잠시. 오메가의 몸속에 좆을 처박고 씨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틀어막는 것은 알파의 본능이었다. 노팅이 되기 전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뽑아낸 커틀러가 힘겨워 보였다.

“괜찮나?”

괜찮지는 않은 모양인지 단장실에 있는 소파에 털썩 앉은 커틀러가 헐떡였다. 뼛속까지 각인된 알파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거부했으니, 상당히 고통스러울 터. 램파드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문 그의 이마에 입을 살짝 맞추며 미안함을 전했다.

이제 조금만, 앞으로 몇 년만 버티면 루안을 후계자로 책봉하고 램파드의 족쇄가 풀린다. 그때가 되면 주군과 가신의 관계도, 베타 껍질을 뒤집어쓴 오메가를 지키기 위해 손해 보는 역할을 도맡을 필요도 없어지겠지. 오롯이 알파와 오메가만이 남게 될 테고. 그날이 오면 만에 하나 커틀러의 입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와도 그만두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나눌 것이다.

램파드는 휴식 시간을 틈타 무사히 한스와 맞바꿔치기를 했다. 황좌에 앉아 지난 회의 기록을 살펴봤고, 어전 회의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집무실에 돌아온 램파드는 긴 여운에 빠져 관계를 곱씹었다. 각인한 알파와의 관계가 잦다 보니 억제제를 먹지 않아도 몸이 절로 안정됐다. 히트 사이클은 상당히 오랜만에 겪었고 짧지만, 만족스러운 관계였다.

완벽한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며칠 뒤에 발생했다.

어쩔까. 알현실에 앉은 램파드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빠졌다. 무시하려고 해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오간 소문이 몸짓을 부풀러 램파드를 자꾸만 툭툭 건드렸다. 소문의 시작은 화이트 테일의 평기사, 혹은 화이트 테일에서 일하는 시종이었다.

“그거 들었나요? 화이트 테일 단장실에서 오메가 페로몬이 흘러나온 일이요.”

시작은 기사단장실에 알파의 페로몬이 진하게 퍼져 나온 거였다. 커틀러는 알파였고, 황후가 된 후 오메가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했을 테니 러트를 앓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알파 혼자 러트에 시달린 게 아니라 정체 모를 오메가의 페로몬이 남았다는 것.

“그때 램파드 폐하께서는 어전 회의에 참석 중이셨죠? 황제 폐하의 눈을 피해 일을 저질렀나 봐요. 대범하기도 하지.”

“개 버릇은 남 주지 못하나 봐요.”

“성인식을 치르기 전부터 창관을 드나들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얌전히 버틴 게 신기할 정도죠.”

황궁에서 일하는 시종들이 속닥속닥하였다.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소곤대지만, 자극적인 소문일수록 퍼지는 속도가 빠르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제국을 대표하는 황후의 추문이니 너도나도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성가시군. 한스에게 보고를 들은 램파드는 커틀러에게 붙은 소문을 어떻게 떨쳐내야 할지 고민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황족이 애인을 두는 건 유다를 것 없었다. 또한, 저들이 신나게 소문을 퍼뜨려 봤자 상대 오메가를 절대로 찾을 수 없었다. 바람 상대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질 텐데 날이 갈수록 램파드의 신경을 살살 긁었다. 커틀러 하나만으로도 거슬리는데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엉뚱 맞게 잔트까지 껴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황제가 먼저 잔트에게 관심을 보여 바람을 피웠고, 외로워진 황후가 알파의 본능에 따라 오메가 애인을 둔 것으로. 이제 램파드는 희귀한 깃털을 가진 새를 키우는 취미처럼, 진귀한 은발의 사내들, 그것도 부자 관계의 남자 둘을 건드린 파렴치한이 되어 있었다.

제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혈연관계인 사람을 황궁으로 데려와 모두 취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심할 때는 일가족 모두를 자신의 첩으로 만든 황제도 있었으니까. 과거 황제와 비교해 램파드는 얌전한 편에 속했고, 해결 방법도 손쉬웠다. 한동안 잔트를 멀리하고 커틀러를 알뜰하게 살피면 새로운 소문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추문은 괜히 나서서 일을 키우는 것보다 가만있는 편이 현명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특히 커틀러를 지조 없는 가벼운 놈으로 말하는 부분에 분개했고, 소문의 근원을 찾아 입을 쨀까, 뜨겁게 달군 돌로 목구멍을 막아 버릴지 고민이었다.

“네 생각은 어때?”

“불쾌하죠. 거슬리기도 하고요.”

아무렇지 않은 듯 멀쩡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도 내심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말이 커질 줄 알았으면 발정제를 먹지 말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와 램파드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너의 추문은 내가 책임지고 잠재우지.”

램파드가 직접 나서면 소문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바람피우지 못하게 마음을 꽉 잡았으면 될 것을 소홀하게 대했다가 인제 와서 챙긴다며 비웃음도 당할 터. 뻔히 먹잇감이 되어 주는 작업은 불유쾌할 것이다. 그래도 커틀러가 거슬린다니 수습해야지. 더불어 겁 없이 입을 놀린 놈의 입에 달군 돌을 넣고 꿰매 버리기로 다짐했는데, 뜻밖에도 커틀러가 말렸다.

“그걸 왜 들쑤십니까. 가만두면 조용해질 것을.”

“네 평판이 나빠졌잖아.”

“언제는 좋았다고 그러십니까.”

커틀러가 난봉꾼이란 소문은 아카데미 때부터 꼬리표처럼 달라붙긴 했지만.

“지금 네가 신경 쓰고 있잖아.”

그는 푹 숙인 램파드의 턱을 치켜들게 하였다.

“폐하는 어떠십니까.”

귓가에 윙윙거리는 날파리처럼 귀찮지만, 괜히 힘을 빼고 싶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커틀러가 신경 쓴다는 걸 알았으니, 황궁을 뒤집는 한이 있어도 날파리를 잡아내고 싶어졌다. 덤으로 그에게 미안함도 느끼고.

잔뜩 죄스러워진 램파드가 시무룩해졌다. 답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꿰뚫은 커틀러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엉덩이 가벼운 오메가 하나를 꾀어내서 기사단장실에서 겁탈했다는 소문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군요.”

“겁탈… 은 아니지.”

작정하고 발정제까지 미리 챙겨 먹어 유혹한 건 램파드니까.

“울고 불며 비는 오메가를 찍어 누르고 노팅한 채로 오입질했단 얘기는요.”

그런 거대한 남근을 받아 내는 것도 버거운데, 노팅한 채로 움직였다간 병원에 실려 간다. 항변하기 위해 내 황후의 중심은 어마어마하고, 노팅한 채로 움직였다간 상대가 죽으니까 소문이 거짓말이라고 밝힐 수도 없었다.

저렇게까지 소문이 났다는 건 남아 있던 오메가의 페로몬이 상대를 간절히 원해 다른 뜻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말. 그만큼 커틀러를 상대한 오메가는 노팅된 성기를 받아 내는 와중에도 상대를 끊임없이 유혹했으며, 부끄럽지도 않은지 페로몬을 질질 흘려 놓은 것이다. 실상은 노팅 전에 떨어져서 억울함도 있었다.

너무 좋아 매달릴 때는 생각 못 했는데, 뒤늦게 되짚어 보니 제대로 미친 짓을 했다. 하다못해 커틀러가 진정될 때까지 곁에 있을 걸 그랬나.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한층 더 미안해졌다.

“마지막은 구멍에 처박은 좆을 빼낸 후 자신의 애액까지 빨아먹게 했다더군요. 이건 그대로 한번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램파드는 고개를 도리질 쳐 자신의 턱을 감싼 그의 손을 떨쳐 냈다.

“그딴 짓 했다간 다시는 빨아 주지 않을 거야!”

평소의 램파드로 돌아오자 커틀러가 피식 웃었다.

“차라리 소문을 이용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제가 바람을 피운다고 당당하게 나가자고요.”

“하긴, 애인 하나 정도는 별스러운 것도 아니니까.”

황후를 너무나 사랑해서 바람피우는 것까진 용인해 준 황제도 있었다. 씨만 뿌리지 않고, 황후의 역할만 해내면 애인 한둘쯤은 상관없다고.

램파드도 과거 황제의 절차를 밟아 커틀러가 애인을 두든 말든 남편 자리만큼은 나라고 못 박으면, 저급하게 떠들 수 없게 된다. 앞으로 기사단장실에서 오메가 냄새가 나도 다들 못 본 체할 테니, 역으로 마음껏 페로몬을 내뿜고 그와 뒹굴 수도 있을 터.

“괜찮군. 앞으로 너랑 할 때 소리만 좀 죽이면 들킬 염려도 없을 것 같아.”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으시군요.”

“좋았으니까. 너도 좋았잖아.”

램파드가 눈웃음을 치며 솔직하게 인정했다. 커틀러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서로의 페로몬이 뒤섞인 냄새가 몸속에서 났다. 온종일 맡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향기를 떠올렸더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저도 오랜만에 폐하의 깊숙한 곳에 다다라서 좋았습니다.”

커틀러의 낮은 음성에 뱃속이 간지러워졌다. 이대로면 당장 옷을 벗을지도 몰라 말을 돌렸다.

“너도 좋았으면서 뭐가 불만이지.”

“제가 불쾌한 건 폐하께서 어머니를 보고 얼굴을 붉힌 일 때문인걸요.”

램파드는 눈을 껌뻑였다. 커틀러에게 붙은 소문만 신경 써서 잔트 쪽은 솔직히 말해 머릿속에 두지도 않았다. 엉겁결에 잔트가 왜 끌려 나왔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얼굴을 붉혔다고?

“변명할 기회를 드리는데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무슨 소린지 몰라.”

“목까지 새빨개질 정도로 달아오르지 않으셨습니까.”

영문을 알 수 없어 인상을 찡그렸다. 저렇게까지 확신을 두고 달려드는 걸 보면 스스로 조사를 해 내린 결론인 듯했다.

“얼굴만 비슷하다면 상대가 누구든 붉히실 겁니까?”

커틀러의 얼굴이 너무 좋아서 똑같은 동상이 있다면 잠깐 붉힐지도 몰랐다.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예쁘니까 빤히 보고, 기분 좋아지는 것이다. 램파드가 시선을 외면하자 그가 볼을 꽉 붙들고 자신을 바라보게 하였다.

램파드가 자신의 어떤 표정을 좋아하는지 아는 그는 일부러 시선을 떨구고 청초한 척했다. 버텨야 하는데 커틀러가 붙잡은 램파드의 볼이 따뜻해졌다.

“보십시오. 이런 표정은 어머니가 잘하시니 더 잘 먹혀들었겠군요.”

“그… 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잔트를 보면서 흥분하진 않았어.”

커틀러에 대한 소문만 골라 듣던 램파드와 달리 그는 반대로 램파드가 바람피웠단 이야기만 관심 있었다. 게다가 이쪽은 은밀하게 움직여 소문의 근원을 찾아냈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화내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이미 화나 보였다. 꾸민 표정을 거두고 나니까 더더욱 딱딱해 보이는 게 얼음으로 깎아 놓은 조각 같았다. 인내심도 떨어졌는지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램파드의 답보다 먼저 자신이 쥔 정보를 풀었다. 커틀러로서는 많이 양보한 거였다.

“며칠 전 어머니와 단둘이 담소를 나누실 때 얼굴을 붉히고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셨다면서요.”

잔트가 끼어들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램파드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어찌할 줄 몰라 한 건 잔트가 아니라 커틀러를 봐서였다.

“잔트 때문이 아니야.”

“그럼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몰래 넘겨준 선물이니까 사실대로 말하긴 좀……. 그래도 괜한 오해를 사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으니, 최대한 잔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말을 골랐다. 커틀러는 그 짧은 새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저에게도 말 못 할 이유인 겁니까.”

진실을 밝히려던 램파드가 입을 다물었다. 예쁜 걸 보면 얼굴 정도야 붉힐 수 있지, 그걸 꼬치꼬치 캐묻다니. 그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내가 진짜 바람피웠다고 생각하는 거냐?”

기분 상한 램파드가 인상을 구기며 그를 밀어냈고 커틀러의 입에 머물던 작은 미소가 사라졌다.

윽박지를 줄 알았는데 그는 입매만 굳히더니 다른 곳으로 나가 버렸다. 잡으러 갈까 싶다가도 의심받은 게 불쾌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

어쩌다 싸우게 된 거지.

이게 다 입을 싸게 놀린 시종 때문이었다. 잔트가 독대를 신청할 때 응접실에 있던 시종은 잡아다가 감옥에 가뒀지만, 얌전히 방치 중이었다. 당장 처벌했다간 커틀러에게 시인하는 꼴이니까. 시종을 족치기 전에 일단 오해를 먼저 풀어야 하는데 의심을 받아 기분이 나빴고 며칠 내내 제대로 대화도 하지 않았다.

황궁의 식구들도 램파드와 커틀러가 다툰 걸 알아챘다. 커틀러가 램파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꿀 떨어지지만 반대로 황제는 잔뜩 토라져서 차갑게 대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서로의 애인을 질투해서 싸운 거구나. 돌고 있는 소문이 있으니 따로 떼서 생각하기 힘들었다. 냉전이 분명한 황실 부부 사이에 꼈다간 엉겁결에 휘말려 불똥 튈 테니 가만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두 사람이 틀어졌다는 건 황궁에서 일하는 시종들은 물론 초청된 왕국의 사절단도 알아챌 정도였다.

이번에 제국을 방문한 사절단 대표는 아쥴린 여왕의 세 번째 후궁으로서 오메가였다. 그는 제국에 도착하자마자 황제를 알현하여 인사를 올린 후 연회 준비 중에 소문을 들었다.

“카일 님, 무언가 기분 좋은 게 있으셨습니까.”

“소문과 달리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던데?”

정략결혼이 아닌 오랫동안 친우로 지내 사이가 각별하다고 들었는데,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딱딱하게 앉아 있었다.

“미리 심어 둔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각자 애인을 두고, 서로 질투했다고 합니다.”

“각자라고? 황후도?”

“네. 황후께서는 오메가를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황제는 베타여도 외모만큼은 빼어나던데…….”

황후는 알파였다. 오랫동안 오메가와의 관계가 없었다면 한 번쯤 눈을 돌릴 법도 하겠지. 이야기를 들은 후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비스 황가와 콘테 공작가는 사이가 나빴지.”

사절단을 이끄는 후궁은 꾀를 하나 냈다. 각인한 오메가가 없는 커틀러를 유혹하기로. 아쥴린 여왕이 새로운 첩을 데려오려고 눈에 불을 켰으니, 살길을 따로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오메가와 바람을 피웠다면, 카일에게 승산이 있었다. 자신은 그만큼 아름다우니까.

“그분 실제로 보니 훨씬 멋졌어. 종류별로 모아 둔 초상화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야.”

“아… 설마했는데, 정말로 제국의 황후였을 줄은 몰랐어요. 한눈에 알아보겠더군요.”

예술품이 많은 서왕국은 인물화가 유행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름 모를 사내의 초상화가 호평이었는데, 제국의 황후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정말이었을 줄이야. 카일은 품속에 넣어 둔 초상화를 꺼내 빤히 봤다. 이렇게 어여쁜 알파를 곁에 두면 매일이 행복할 것이다.

사절단이 도착한 그날 저녁.

먼 곳에서 찾아온 사절단을 위해 연회가 마련되었다. 카일은 후궁이긴 하지만 왕족으로 대우해 주기 위해 램파드가 친히 참석하기로 했다. 램파드의 가슴을 장식한 금줄을 정돈하는 시종이 이상하리만큼 들떠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느냐.”

“예. 서왕국에서 왔다는 오메가 얘기로 황궁이 뜨겁사옵니다.”

사절단에 포함된 오메가는 여왕의 후궁뿐이었다. 우성 알파인 여왕은 각인한 오메가를 왕비로 삼고, 얼굴이 취향인 자들을 모아 줄줄이 첩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자가 세 번째 후궁으로 작년에 첫째까지 낳아 승승장구하는 자였다.

“대륙의 오메가 중에서 으뜸이라더니 실로 천사가 강림한 줄 알았습니다.”

램파드는 사절단의 알현보다 옆자리에 앉은 커틀러가 훨씬 더 신경 쓰였다. 평소보다 더욱 굳게 닫힌 그의 입매에 집중하느라 예의를 갖춘 사절단의 얼굴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아 말해도 모른다. 램파드가 걸칠 망토를 들고 있던 시종이 한마디 냉큼 덧붙였다.

“자네는 진짜 천사가 눈앞에 계시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가!”

“물론 베타까지 포함하면 램파드 폐하가 제일이십니다.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죠.”

“당연하지 않나. 대륙의 역사서를 뒤져도 폐하 같은 분은 다시는 없을 거다.”

또 시작이다. 램파드는 다투는 시종을 한심하게 바라봤지만, 그들은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하나 눈이 머는 바람에 당사자 앞, 그것도 황제 앞이라는 자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환복을 돕는 시종은 늘 이랬다. 가장 가까이서 램파드를 바라보다 보니, 광신도처럼 찬양하기 바빴다. 준비가 바쁜데 저들끼리 칭송 경쟁을 하고 있다니. 인상을 찡그린 램파드가 한마디했다.

“그쯤 하여라.”

적당히 멈추라는 뜻이건만, 황제께서 소문의 오메가를 신경 쓴다고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램파드의 기분을 풀기 위해 덧붙였다.

“폐하와 견줄 수도 없는 자니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그런 오메가가 곁에 있어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가 폐하라는 생각을 모두가 합니다.”

램파드는 작게 실소했다. 세계 제일로 어여쁜 사람이라는 자리 같은 건 관심 없었다. 자신을 아름답게 생각해 주는 사람은 커틀러 단 한 사람뿐이면 되니까. 그와는 별개로 이때껏 살아오면서 칭송을 듣기만 했지 다른 사람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 봐 궁금해졌다.

채비를 끝마친 램파드는 연회장으로 향했다. 먼저 연회를 진행해라 지시했기에 음악 소리가 준비실까지 들렸다.

“잠깐, 기다려 보아라.”

호명관을 제지한 램파드는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벽에 기댔다.

소문의 오메가는 어깨를 감쌀 정도로 기른 금발과 연녹색의 눈동자를 가졌다. 선명한 녹음은 마치 보석 같았고, 커틀러만큼이나 하얀 피부 덕분에 붉은 입술이 도드라졌다. 얇은 몸은 금실로 장식된 화려한 예복을 잘 소화했고 매끄럽게 잘 빠진 고운 손가락이…….

“하.”

커틀러의 어깨 위에 살포시 놓인 채 오메가의 페로몬이 은은히 퍼져 있어 실소가 튀어나왔다. 귀빈이 오메가라 알파 경비와 시종을 전부 물렸는데, 저런 식으로 이용할 줄이야.

“폐하…….”

귀빈을 맞이하는 건 부인의 임무였다. 황후인 커틀러와 함께 연회를 맡은 후작 부인이 호명관 옆에서 램파드의 눈치를 봤다.

“자네가 본 것을 고하거라.”

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도착해 있던 그녀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 다 보았다. 언짢은 황제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일 님께서는 연회 시작도 전에 미리 도착하여 황후 폐하의 곁에 바짝 붙어 계셨습니다.”

“좀 더 상세히.”

그녀는 램파드의 시야에서 벗어나고자 좀 더 몸을 숙였다.

“여… 연회 세 시간 전에 먼저 도착한 카일 님은 황후 폐하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다가 다정하게 말을 거셨습니다. 그 후로 쭉 저 상태로 밀담을 나누셨습니다.”

램파드와 커틀러의 사이가 서먹해졌단 걸 들은 건가. 저렇게 대놓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 황당할 따름이었다.

늘어진 휘장 사이로 보이는 커틀러는 상당히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앉아 있었다. 남들이 보면 평소랑 다름없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아무런 쓸모없는 개똥을 어떻게 치워 버릴까 궁리하는 표정이었다. 잔뜩 골나서 당장 뒤엎고 싶지만, 황후라는 자리 때문에, 황제인 램파드를 위해 억지로 인내하는 모습을 보니 며칠 내내 뚱해 있던 마음 같은 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예전에는 저런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 또한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지녔는데.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미묘한 변화를 읽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다.

커틀러가 자신을 저버리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인가. 달라붙은 오메가 때문에 기분은 불쾌해도, 커틀러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내 알파가 뛰어나단 걸 몰라보는 것보다는 알아차리는 편이 더 좋았고.

후작 부인으로서는 램파드가 화가 난 것인지, 그게 아니면 기분이 좋은 것인지, 알기 힘들었다. 그녀는 성공적인 연회를 위해 황제의 기분을 가라앉히고자 들었던 정보를 줄줄이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부터 흠모하셨다며 속삭인 걸 엿들었사옵니다.”

“오래전?”

잔트가 서왕국 출신이긴 하지만 커틀러는 제국 태생이었다. 여왕이 즉위하고 첩으로 점지되었으니 그가 커틀러를 만날 일은 없었을 텐데.

“서왕국은 황후 폐하의 초상화가 유행이라 합니다. 그걸 밤마다 보신다고 하셨으니 단순 동경으로 저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헛웃음이 한 번 더 나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싶지만, 초상화라고 하니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화가들은 자신의 역작을 모작해 돈벌이로 삼곤 하니까. 커틀러와 루안을 그린 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돈을 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램파드는 입장하기 전 잠깐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리도 온 힘을 다해 애교를 부리는 걸 보아하니, 아쥴린 여왕이 새로운 사랑이라도 찾은 모양이었다. 남들 다 있는 곳에서 페로몬을 질질 흘리며 유혹할 정도면 상당히 조급하다는 뜻. 온종일 아양을 부려도 커틀러는 시큰둥할 텐데 참 애쓴다 싶었다. 카일의 페로몬을 맡은 주변 귀족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표했다. 베타들이 맡기에도 페로몬을 과하게 많이 뿌려 역할 정도였다. 가만 내버려 두면 알아서 웃음거리가 될 테지.

“호명해라.”

램파드의 명령에 호명관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우렁차게 말했다.

“제국의 태양이신 램파드 황제 폐하이십니다!”

카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황제가 오기 전에 커틀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사로잡아야 했는데 이리도 빨리 닥치다니.

램파드는 자신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린 왕국의 사절단에게 아무것도 모른 척 눈웃음쳤다.

“제국의 음식은 입에 맞는가.”

“예. 이리도 환대를 해 주시다니 서왕국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램파드는 시침 뚝 떼는 카일을 재밌게 봤다. 아직 페로몬을 갈무리할 생각을 하지 않다니, 어떤 의미론 참 대단한 자였다.

“그대는 꽤 독한 향수를 사용하는군.”

그는 흠칫 떨며 부랴부랴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몇 시간 내내 페로몬을 내뿜었는데 알파 하나 발정 나게 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황제의 말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릴 거면서 대범하게 황후는 왜 건드린 것인지. 주변 사람들이 속삭였고, 카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작은 소란이 잠재워지는 대로 램파드는 술을 마시며 사절단과 이야기를 나눴다. 카일과 함께 온 왕국의 대신들은 램파드의 대화에 기꺼이 참여했고 연회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정작 연회의 주인공인 카일은 자신이 부끄러워져 입을 꾹 다물고 하염없이 바닥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알파 하나 꾀어내지 못하고 망신당한 채 왕국으로 돌아갔다간, 첩인 자신은 입장이 더욱 난처해질 테니까.

연회장의 분위기가 물이 오르자 램파드는 시종을 불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은 짐이 흥을 돋울 필요는 없겠군. 회포를 풀며 즐겁게 지내도록 해라.”

램파드는 덤덤히 앉아 있는 커틀러를 흘끗 봤다. 램파드가 자리를 비우면 카일이 또다시 페로몬을 내뿜을지도 몰랐다. 원치도 않는 오메가의 유혹 가득한 페로몬을 맡으며 고생 한번 해 보라지. 자신을 의심한 커틀러도 한번 혼쭐나 보라며 구해 주지 않고 시종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입지가 곤란해져 궁지에 몰린 오메가는 황제가 자리를 완전히 뜨기 전, 그새를 못 참고 손을 움직였다.

“서왕국에서만 나는 귀한 열매이옵니다.”

그는 보석으로 꾸며진 상자 안에서 루비를 닮은 열매를 들어 올렸고, 직접 먹일 생각인지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아, 해 보십시오.”

램파드를 빤히 보던 커틀러는 그걸 또 묵묵하게 받아먹었다. 하, 이것 봐라. 이제 작정하고 달려드는 오메가나 대수롭지 않게 받아먹는 커틀러도 똑같이 밉상으로 보였다.

질투에 환장해 날뛰면 그냥 아주 짧은 순간의 만족일 뿐, 아무런 도움 될 것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도발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램파드가 자리를 비우고, 커틀러를 유혹해 봤자 그는 반응조차 안 할 테니까. 연회장에 있는 사람은 카일의 추태를 보며 비웃을 테지.

램파드는 다시 연회장 중앙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연주하던 곡 소리가 멎었고, 눈치 빠른 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램파드를 중심으로 공기가 빨려 가 폭풍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황제가 황후의 멱살을 거칠게 잡자 곁에 있던 카일이 “꺅.” 비명을 질렀다.

“입 벌려라.”

고집스레 다문 커틀러의 입술을 핥고 꽉 깨물었다. 그리고 살짝 벌려진 틈으로 거칠게 혀를 밀어 넣고 몰아붙였다. 쨍그랑, 투박한 움직임에 술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번 일을 저지르자 뒤는 막힘없었다. 좀 더 입을 편히 맞추기 위해 차려진 접시를 한 손으로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커틀러를 테이블에 눕혀 몸을 겹쳤다.

은 접시가 바닥과 부딪치는 와장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이 많은 장소였건만 날카로운 충돌 음만 들릴 뿐, 모든 이들은 두 사람을 방해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존재를 지우기 위해 애썼다.

톡, 진하게 얽히는 혀 사이에 끼어 있던 붉은 과일이 터졌고 새콤한 맛이 입 안 가득히 퍼졌다. 우물거리는 입술 틈새로 붉은 과즙이 뚝뚝 흘렀다. 흥분한 알파의 입 안은 점차 뜨거워졌고, 입술을 떼어낸 램파드가 커틀러의 턱을 따라 흐르는 과즙을 핥았다.

“이런, 키스만으로 고삐가 풀린 거냐.”

램파드는 자신의 입술에 묻은 타액과 과즙을 닦으며 웃었다. 커틀러는 갈무리한 알파의 페로몬을 어느 정도 해방하고, 램파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고 싶은지 잔뜩 날을 세우는 게 마음 같아서는 몸을 던져 주고 싶었다.

한 번 더 입을 맞췄다간 램파드의 이성마저 끊어질 것 같아 정말로 자리를 떠야 했다.

흘러내린 망토를 끌어 올린 램파드는 커틀러의 페로몬에 노출되어 덜덜 떠는 오메가를 내려다봤다. 이빨을 드러낸 늑대 앞에 선 토끼 꼴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귀족들은 베타의 입맞춤으로도 흥분하는 알파 하나 유혹하지 못한 오메가를 한심스레 바라봤다. 혼인을 올린 여왕을 각인시키지도 못했으면서, 임자 있는 다른 사람을 건드는 꼴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램파드는 얼빠진 시종들에게 손짓했고, 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유치하게 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저렇게 아름다운 오메가의 페로몬에 오랜 시간 노출됐는데도 커틀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때껏 돌았던 추문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램파드는 입 안에 남은 과즙의 맛을 은은하게 느끼며 시종을 물리고 혼자서 회랑을 걸었다. 과즙과 함께 커틀러의 맛과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혀로 입천장을 꾹 눌러 그의 페로몬을 떠올리며 천천히 걸었다.

“연회는 어찌한 거냐.”

숨길 생각도 없는지 펄펄 풍기는 커틀러의 향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사실은 그가 따라올 줄 알았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거부할까.

“저를 발정 나게 하고 도망 한번 잘 치시는군요.”

“도망간 거 아냐. 네가 즐기는 것 같아서 피해 준 거지.”

램파드는 얼른 자신을 가져가라며 무방비하게 늘어졌다. 그는 거칠게 양손을 뻗더니 램파드의 허리를 감싸 목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빨아들였다.

“기껏 눈감아 줬건만 다른 오메가 맛도 한번 보지 그랬냐.”

“무슨 질 나쁜 농담이십니까.”

“농담으로 치기에는 유혹하는 걸 순순히 받아 줬지 않냐. 상대도 너에게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 가자고 하면 곧장 침대로 갈 수 있었을 거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제 몸은 폐하 말고는 반응조차 하지 않는데.”

“역시 넌 몸만 순결한 쓰레기야.”

그의 품에서 빠져나온 램파드는 커틀러의 가슴을 꾹 눌렀다.

“그 질 나쁜 농담을 네놈도 하지 않았나. 심지어 상대는 널 낳은 사람이고.”

“폐하께서는 저랑 달리 정조대가 필요한 몸이니까요. 누구에게 반응하실지…….”

커틀러의 목소리가 잦아졌고, 램파드가 그 뒤를 이어붙였다.

“불안하다고?”

“…….”

“커틀러, 넌 내 황후다.”

“그런 자리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나의 알파고.”

램파드의 허리를 꽉 붙든 그가 빤히 내려다봤다. 더 해 보라는 뜻이었다. 어디론가 날아갈까 봐 불안해하면서도, 날개를 부러뜨리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커틀러를 향해 예쁘게 웃었다.

“내 첫사랑도 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

허리를 감싼 그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리고 이마를 꽁, 부딪혔다.

“없어졌다 싶었더니 폐하께서 들고 가신 겁니까.”

“받은 거다. 내 선물로 만든 모양인데 왜 숨겨 두고 주지 않은 거냐.”

“뚜껑에 각인하고 나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뭐가 별로란 거지. 그려진 초상화는 제국의 보물로 삼을 정도로 뛰어났다. 굳이 램파드가 국보로 지정하지 않아도 후손들이 어련히 챙길 정도의 예술품이니까. 그는 생각한 것을 숨기지 않고 내뱉었다.

“폐하께서는 저의 긍지이자 명예, 그리고 생명입니다.”

“끝이야?”

“그럴 리가요.”

“더 해 봐.”

솔직한 고백은 쑥스럽지만, 이번만큼은 듣고 싶었다. 램파드는 그의 볼을 감싸며 속삭였다. 입술끼리의 거리가 좁혀졌고 아주 잠깐 기다렸다.

“첫사랑이자 다신 없을 마지막 사랑이지요.”

어떤 문구를 각인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한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남은 후보들을 좀 더 듣고 싶었지만 한계였다. 램파드는 그의 입술에 끌려가듯 닿았다. 커틀러처럼 말로 전하는 것보단 온몸으로 힘껏 표현하고 싶었다. 너를 사랑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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