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스피크 (Doublespeak)
수비
1 침실
달이 어슷거리며 지기 시작하는 새벽.
평소보다 일찍 깨어난 램파드는 눈을 여러 번 문질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방 안은 어두웠고 눈을 비벼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몇 번 더 문지르곤 자신의 가슴을 감싼 커틀러의 손을 붙잡았다.
“커틀러.”
이름을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몸을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램파드는 곁에 있는 커틀러를 내려다봤다. 그새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에 머리도, 피부도 밝은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언제나 눈을 먼저 뜨는 쪽은 그였건만 별일이었다.
커틀러가 푹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엔 서왕국으로 먼 출장을 홀로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였고, 이번은 아마 램파드의 일을 모조리 빼앗아 저 혼자 떠안았으니, 피로가 누적된 듯했다.
아무래도 지난번 관계 때 한차례 코피를 쏟은 것이 퍽 신경 쓰이는 모양이지.
시종이 찾아오기까진 두어 시간 정도 남았다. 그와 단둘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란 말이었다. 커틀러의 손을 만지작거렸지만, 그는 작은 미동도 없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를 감상하는 것뿐이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곤히 잠든 그의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가지런한 은발이 흐트러져 있고, 축 늘어진 속눈썹도 전부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평소엔 작은 틈도 없이 굳건해 보이는데 지금은 말랑말랑해 보인달까. 램파드는 그의 볼을 손끝으로 톡톡 쳤다. 이미 여러 번 볼끼리 부딪치며 입을 맞췄으니 같은 피가 흐르는 피부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좀 더 부드러워 보였기에 손으로 꾹 누르고 그대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매끄러운 입술에 닿았을 땐, 램파드는 그와 호흡을 맞추며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키스하고 싶어.
“일어나.”
생각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 조용히 불렀지만, 그는 잠잠했다. 이쯤 되면 자는 게 아니라 기절한 게 아닌가 싶다.
잠자는 공주님을 깨울 방법은 입맞춤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동화의 문구를 떠올리며 저 혼자 장난스레 웃은 램파드는 커틀러의 턱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짧은 입맞춤 후 그의 입술을 핥았지만, 짐승 같던 그의 입술은 얌전하기만 했다. 입을 떼어낸 램파드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윗입술을 핥았다.
괜히 맛봤나.
키스 한 번에 램파드의 성욕이 부쩍 크기를 키워 버렸다.
요즘 커틀러와의 접촉은 입맞춤이 전부였다. 그것도 서로 바빠서 느긋하게 즐기지 못했고, 이렇게 한 침대를 같이 사용해도 문자 그대로 잠만 잤다.
시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조금 여유가 있을 땐 대놓고 유혹했지만, 커틀러는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알몸으로 침대 위에서 기다렸다가 소박맞았을 땐, 솔직히 충격이었다.
‘이제 내가 질려?’
정말 큰 용기를 내서 물어본 거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숨을 푹 쉬던 그는 램파드를 침대에 눕혀 입을 맞췄다. 커틀러의 뜨거운 숨결이 입술에 닿았고, 램파드는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왔으면 했지만, 여기가 끝이었다.
입술을 떼어 낸 그는 거친 호흡으로 램파드의 맨몸을 어루만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유혹하지 마십시오.’
‘하고 싶다고 말해도 꼼짝도 하지 않으니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나.’
‘절 덮쳐도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할 겁니다.’
‘거봐, 내가 질린 게 맞는군.’
램파드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몸이 이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당한 횟수였으니 흥미가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램파드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자 커틀러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지난번에 쓰러질 뻔하지 않으셨습니까.’
‘뭐야, 그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는 거냐.’
‘그야 폐하께서 코피를 쏟으신 적은 처음이니까요.’
커틀러가 차지한 수석을 빼앗겠다면서 새벽 늦게까지 공부할 때도 코피는 쏟지 않았다. 오랜 전쟁으로 고생했을 때도 칼에 찔린 부분만 피가 났지 가만있다가 피를 뚝뚝 흘리진 않았다.
커틀러는 램파드가 피를 잔뜩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었다.
‘참는 저도 힘이 드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참지 마.’
램파드는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당장 그와 열락에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커틀러는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램파드의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성인(聖人)을 흉내 내며 억누르지만, 그도 힘들긴 할 것이다.
동갑이라 성욕이 비슷할 테니, 램파드가 참기 힘든 만큼 그 또한 큰 욕구를 지녔을 테지. 저렇게 참다가 괜히 터져 나와 한꺼번에 몰아치면 오히려 받아들이는 쪽이 더 힘들 것 같은데 그는 어떻게든 참아 내겠다며 램파드를 진정시키고 그냥 잤다.
얌전히.
그러니까 이건 기회일지도 몰랐다.
마음을 정한 램파드는 커틀러의 몸을 덮은 이불을 조심스레 걷어 냈다. 그리고 깨어나지 않도록 그의 바지를 천천히 벗겼다. 램파드가 기척을 숨기고 살금살금 옷을 벗겨서인가. 그게 아니면 피로가 누적된 그가 반쯤 정신을 잃고 자서인진 모르지만 드러난 성기를 살며시 붙잡고 위아래로 문지를 때까진 얌전히 잠을 자는 중이었다.
잠을 자도 세워지긴 하겠지.
램파드는 혹여 그가 깨어날까 봐 조심스레 손을 움직여 성기를 자극했다. 일단 넣고 나면, 깨어나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조심조심 만졌다.
“……후.”
커틀러가 뒤척이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쾌감이 섞인 신음은 아니고, 몸이 피로해 내는 사람의 앓는 소리였다.
자기 일을 돕다가 쓰러진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제정신이 퍼뜩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손을 멈추진 않았다. 솔직히 한 발 빼고 나면 기분 좋잖아. 그 또한 욕구가 상당히 쌓였을 거고, 제대로 풀어 주면 피로 또한 날아갈 테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손을 움직여 커틀러의 성기를 자극했다.
마찰열 덕분에 손안에 든 성기가 따뜻해졌지만 원하는 대로 딱딱하진 않고 여전히 말랑말랑했다. 좀 더 자극을 줘야 할 텐데. 램파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혀를 썼다. 평소라면 숨이 막혀서 싫다고 거부했겠지만, 지금 기회를 놓쳤다간 평생 독수공방할 것 같은 기분에 나쁜 짓을 서슴없이 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축 처진 커틀러의 성기를 머금었다.
“후우…….”
몇 번이나 품었지만 정말 큰 크기였다. 코로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진 램파드는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며 혀에 닿는 부분을 빨아올렸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발기되기는커녕 날이 밝아 시종이 들이닥칠지도 몰랐다.
빨리하지 않으면 이번 기회도 날아갈 것만 같아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은 머뭇거렸지만 한번 입을 쓰기 시작하니 그 뒤로는 막힘없었다. 목 깊숙이 넣어 빨아올린 후 매끈한 귀두에 입맞춤하듯 끝만 살짝 머금으며 쪽 소리를 냈다.
여러 번 자극하자 드디어 뻣뻣해지며 반응이 왔다. 램파드는 입 안에 든 남근을 뱉어내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갈라진 끝에서 맑은 액이 나와 램파드의 손에 엉겨들었다.
워낙에 크니까 넣기 전에 뒤를 풀어야 할 텐데. 커틀러의 성기를 빨며 혼자 흥분한 데다 시간이 촉박하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커틀러의 위에 올라탄 램파드는 그의 단단한 배를 살짝 누르며 내려다봤다. 푹신한 침대에 푹 파묻힌 커틀러는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채였다. 무방비한 모습의 그를 보며 입꼬리를 한쪽만 끌어 올렸다. 당했다는 걸 알면 내색은 하지 않겠지만 속으로 분해할지도. 승리했다는 기분을 만끽한 램파드는 그대로 자신의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살짝 벌려 구멍과 귀두를 맞췄다.
이제 힘을 줘 몸속으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됐다.
“뭐 하십니까.”
어두컴컴한 방 안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의 몸 위에 올라탄 램파드의 몸이 움찔 튀어 올랐다. 물건을 훔치다가 들킨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변명 같은 걸 할 시간에 1초라도 빨리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엉덩이를 움직이며 대충 대꾸했다.
“아, 일… 어났…….”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그에게 끌려가 입이 틀어막혔다. 몰래 도둑 입맞춤을 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 피어났다. 램파드는 그의 입맞춤에 응하고 좀 더 몸을 편히 기대며 진하게 혀를 얽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커틀러가 한 손으로 램파드의 몸을 뒤집었다. 자세가 역전되어 램파드가 아래, 커틀러가 위쪽에 자리 잡았다. 드러난 램파드의 하반신이 움찔 떨렸다. 그는 몸을 밀착하며 한 번 더 깊은 입맞춤을 했다. 혀가 입천장을 부드럽게 쓸자 아래에 깔린 램파드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가 입을 떼어 냈고, 램파드의 시야에 자신을 조용히 내려다보는 커틀러의 오뚝한 콧날과 입술, 그리고 아래쪽에 자신이 수작을 부려 발기한 채 끄덕이는 물건이 보였다.
커틀러와의 관계는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마치 이번에 처음으로 맺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램파드의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고 커틀러가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더 자.”
“뭐?”
그는 더 말하기 상당히 귀찮은지 램파드의 몸을 꽉 끌어안아 쓰러지더니 정말 잠들었다. 잔뜩 기대했다가 무언가 푹 꺼져 버린 램파드는 당장 그를 뚜드려 깨울까 싶었지만 귓가에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어와 분을 삭이고 눈을 억지로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