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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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테일 기사단장실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방의 주인인 커틀러 클로비스. 다른 하나는 황제의 시종이자 오랫동안 콘테 공작 가문을 보좌했던 한스였다.

한스는 검은 광물로 만든 지지대를 착용한 커틀러의 팔을 풀어 살펴보는 중이었다. 전문 의사는 아니지만, 황제와 공작 가문을 보좌하기 위해 기본적인 의료 지식을 익혀 간단한 진료 정도는 문제없었다.

“…우성 알파의 회복 능력은 경이로울 따름이군요.”

워낙에 숫자가 드물다 보니, 우성 알파에 관한 정보는 적었다. 이 정도로 회복 능력이 뛰어날 줄이야. 한스는 커틀러의 팔을 살펴볼 때마다 놀라움에 휩싸였다.

동시대에 살아가던 우성 알파는 셋뿐이었다. 그중 대번포드 백작이 죽었으니 이제 남은 자는 둘. 그중 한 명은 왕국의 아쥴린 여왕이라 한스로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조사는커녕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다.

오랜 세월 모셔 온 커틀러 또한, 이렇게 크게 다친 일이 처음이라 회복 속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신경과 근육이 끊어지지 않아 천천히 회복되는 모양입니다. 이대로라면 곧 예전처럼 검을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천천히 적응 훈련은 하셔야 하지만요.”

커틀러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영원한 믿음을 대가로 팔 따윈 사용하지 못해도 됐으니까.

“신경이 죽지 않은 것이 문젠가 보군.”

“문제라뇨. 다행인 거죠.”

“신경을 잘라 버리면 영영 회복되지 않겠지.”

주인의 말뜻을 알아차린 한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숨이 넘어가는 소릴 내던 한스가 다소 큰 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 멀쩡해진 팔을 못쓰게 만든다는 말이십니까! 생각을 다시 해 주십시오.”

한스의 말을 무시한 커틀러는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가는 오른팔을 움직여 봤다. 확실히 전보다 상태가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몇 달 전만 해도 손끝을 움직이는 것이 한계였는데, 이제 주먹을 쥘 정도가 되었으니까. 천천히 주먹을 쥐던 커틀러가 피식 웃었다.

“인제 와서 팔이 나았다는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처음부터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아닙니다. 사실을 고하셔도 램파드 폐하는 믿으실 겁니다. 솔직히… 처음부터 숨겼다 하기에도 모호한 일이지 않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이용할 생각이었다.”

“주인님… 그렇다고 팔을 영영 못쓰게 만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커틀러는 결심을 끝냈고, 번복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조만간 한 달 정도 남부 지방으로 떠나야 하니, 그때 계획을 실행하면 될 터.

그가 결의를 끝냈다는 것을 알지만 한스는 한 번 더 간곡히 요청할 뿐이었다.

“부디 한 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램파드 폐하라면 되레 회복했다는 말에 기뻐하실 게 분명합니다.”

벗어 놓은 지지대를 다시 착용하던 커틀러가 낮게 읊조렸다.

“혹여 램파드에게 일러바칠 생각은 하지 마라.”

조곤조곤 이야기하지마는 한기가 느껴져 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혹시라도 한스가 램파드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을 염려해 사전에 차단하는 거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텐데. 한스는 커틀러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결국 고개를 숙이고 그의 명을 받아 들었다.

커틀러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최근 램파드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이트 테일 건물에 뻔질나게 드나든다는 것. 제국은 황제의 것이기 때문에 램파드는 자신의 행적을 보고하지 않고, 시간이 나는 대로 커틀러에게로 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발길이 이끌리는 대로 커틀러를 찾아왔건만, 한스의 외침에 문 앞에서 우뚝 서 버리고 말았다.

방 안의 두 사람이 조용해지자 문에 기댄 채 이야기를 듣던 램파드는 조용히 기척을 숨겼다. 사실 은연중 느꼈다. 커틀러와는 맨몸을 부대끼며 살을 맞대니까. 그의 팔을 조심스레 만질 때마다 힘이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램파드는 의료 지식이 밝지 않은 편이라 확신을 두지 못했다. 팔을 사용할 수 있다면 커틀러가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외팔처럼 행동하는 그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그런 편치 않은 마음을 가지며 그를 대한 것이 모두 커틀러가 바라던 일이었다니. 또다시 그의 손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지만,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놀라워 일렁거릴 뿐 이상하리만큼 역정은 피어오르지 않았다.

고작 팔 한쪽 멀쩡해졌다고 그를 향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깨어지지 않을 터. 팔이 성해도 커틀러가 온몸을 바쳐 로열 가드로부터 램파드를 지키려고 한 일은 변함없다. 자신의 오메가를 지키기 위해 고된 고문을 받으며 입을 꾹 다문 사실도 여전하다.

그 어떤 흑심을 품었다고 한들 오랫동안 제 욕망을 억누르며 램파드를 보살펴 황제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좌한 사실도 그대로다.

나의 사랑은 불변할 것이며 한결같이 그를 믿을 거 건만.

아랫입술을 지그시 씹은 램파드는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텼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이용했단 것보다 사랑을 의심한 것이 더욱 서러웠다.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건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인데 어찌 의심하는 건지. 그 어떤 일을 행해도 믿어 줄 것이며, 검을 들어 내 심장에 꽂아도 그를 사랑할 것이다. 그의 손에라면 죽어도 좋으니까.

그만큼 사랑하건만 고작 그깟 비밀 때문에 자신을 버릴 거라 겁먹다니. 그제야 커틀러가 램파드의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램파드는 조용히 심호흡하였다. 한스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매끄럽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것이다. 계획은 여기까지만 세웠고,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쾅,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한스의 얼굴은 순간 백지장으로 변했고, 사기꾼인 커틀러는 태연했다.

“아… 저.”

놀란 한스는 괜한 말을 내뱉을까 봐 신음을 흘리곤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램파드가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잡아떼기 위해서 숨까지 멈추고 자리를 지켰다.

이 상황에서까지 주인을 지키려는 한스가 갸륵한 램파드는 시야를 차분히 내리깔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죽였다.

“방금 너희들이 나눈 말은 다 들었다.”

“저, 램파드 폐하… 그것이 아니옵니다…….”

“됐다. 넌 본궁으로 돌아가거라.”

“폐하…….”

“고작 이따위 일로 이혼한다고 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본궁으로 돌아가라.”

한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램파드의 명에 따랐다. 커틀러는 뻔뻔하게도 램파드를 조용히 주시했다. 고개를 나른하게 기울이던 램파드가 턱을 치켜들었다.

“나에게 할 변명이 없느냐.”

“없습니다. 폐하께서 들으신 내용 그대로니까요.”

램파드의 시선은 단장실 한 곳에 놓인 검에 닿았다. 천천히 그곳으로 가 커틀러의 검을 뽑아 들었다. 최근까지 실용도로 사용한 검은 잘 단련되어 날카로웠다.

“커틀러.”

“예, 폐하.”

“황실 기사 서임식장에서 네놈이 나한테 한 말 기억하느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봐라.”

램파드가 든 흉기를 무심히 바라보던 커틀러가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깔고 읊조렸다.

“집안, 검술, 몸, 저의 심장까지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검을 꽉 쥔 램파드가 커틀러에게 소리쳤다.

“꿇어!”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향한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어 허리를 굽혔다. 쥔 검을 그대로 커틀러의 어깨에 가볍게 올렸다.

“기껏해야 팔 한쪽 가지고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아뇨.”

“하, 그래 네놈이라면 내가 모르는 일을 더 저질렀겠지. 그래서 겁먹었던 거구나. 네놈의 만행이 전부 밝혀질까 봐 무서웠던 거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램파드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날이 없는 검 면으로 커틀러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나한테 너의 전부를 줬으면 믿고 맡겨. 네놈이 무슨 짓을 하든, 날 사랑해서 그랬다고 생각해 줄 테니까 겁먹지 말고!”

“…당신을 속였는데 용서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그가 자신을 속인 것 따윈 하찮다. 램파드가 화가 난 이유는 지난번과 같았다.

“내가 화난 건 네놈이 거짓말을 해서다.”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닥쳐……. 너의 모든 것을 준다 해 놓고, 인제 와서 마음대로 생채기를 내려 하다니. 말이 다르지 않냐……!”

이 멍청한 새끼를 어떻게 해야 정신 차리게 만들 수 있을까.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하는 방법 따윈 알지 못한다. 램파드가 아는 방법이라곤 뚜드려 패서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수밖에 없는데 커틀러를 치고 싶진 않았다.

“혹여 팔을 어찌할 생각은 하지 말고, 네 몸을 소중히 여겨. 진정 날 사랑한다면 네놈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멀쩡해진 팔로 날 안으란 말이다!”

“…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네놈 어미 집에 기어 들어가 숨을 죽이고 반성해라.”

커틀러를 내려다보던 램파드가 검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렇게 말했으니 이제 정신을 좀 차렸을 것이다. 콘테 저택에서 근신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면 제가 뭘 잘못했는지, 램파드가 왜 화를 냈는지 스스로 깨닫겠지.

한 달 정도면 되려나. 아니, 그렇게 오래 시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임무 때문에 먼 곳으로 보내야 하건만, 고작 이딴 일로 그의 얼굴을 보지 않는 건 램파드가 손해였다.

단장실 밖으로 나가려던 램파드의 발길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자리를 지키던 커틀러의 멱살을 쥐어 잡고 입을 맞췄다. 뜬금없는 입맞춤이지만 커틀러는 쉽게 램파드를 받아들였다.

램파드와의 키스는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입맞춤은 드디어 온전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램파드의 숨결만을 느끼며 음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행동은 이전과 변함없지만, 앞으로 커틀러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는 드디어 타는 듯한 갈증과 헤어질 수 있었다.

***

4년 후.

“잔트가 임신을 했다고?”

“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램파드의 손을 멈추게 할 정도로 놀라운 소식이었다. 콘테 공작 부부가 몇 살이었더라. 적어도 커틀러보다 스무 살 이상 많으니까 생각하기 무서워졌다.

“축하보단 선물을 보내는 게 좋겠군. 서부 지방에 있는 별장을 콘테 가문에게 넘길 테니 그곳에서 요양해라 전해라. 잔트를 보살필 시종과 비용은 모두 황실에서 지원하겠다.”

서부 별장은 각양각색의 화려한 꽃들이 피고, 사시사철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는 곳으로 아이를 낳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 딱 좋았다. 커틀러는 램파드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이왕 축하하실 거 직접 방문하여 말씀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오늘 오후에 다과회를 열 생각이라더군요. 따로 손님을 부르지 않고 콘테 가문 사람들만이 참석할 예정이랍니다.”

“다과회라…….”

“폐하께선 관심이 가지 않으신가 보군요. 그렇다면 저 혼자 다녀오지요. 어머니께서 준비하셨다는 차가 특히 기대되니까요.”

“네가 차를 좋아했나?”

“예. 다과도 좋아하지요.”

차는 몰라도 커틀러는 단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램파드가 장난스레 웃었다.

“그거 핑계지?”

“폐하께서도 필요한 핑계 아닌지요.”

둘 다 잔트의 축하보다는 그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아들을 만나고 싶었다. 서로 바라는 것이 같으니 마다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한스.”

“예.”

“오늘 오후 일정을 전부 취소하거라.”

램파드야 일을 취소하고 콘테 공작가에 가서 노닥거리면 되지마는 황제가 정무를 하루 쉬었다간 황궁의 시종과 대신이 배로 일해야 했다. 불만이 가득할 상황이지마는 모시는 부부가 저리 기뻐하는 일이니, 한스는 달가워하며 명을 받들었다.

“즐겁게 다녀오십시오.”

램파드는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아까운지, 그 차림 그대로 커틀러를 이끌고 마차로 향했다.

“형!”

콘테 공작가의 저택 문을 열자마자 은빛 머리를 가진 어린 소년이 활짝 웃으며 달려들었다가 램파드를 발견하곤 멈칫했다. 그러고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더니, 커틀러의 바짓단을 잡고 노려봤다.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램파드를 싫어했던 루안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저 정도로 경계하진 않았건만. 램파드는 자신의 아리따운 외모를 이용하여 천사처럼 웃어 줬지만 루안에게는 소용없었다. 오히려 더욱 경계하며 램파드를 노려봤다.

“루안, 폐하께 인사하렴.”

“…안녕하세요.”

인사가 끝나자마자 볼에 공기를 빵빵하게 넣으며 불만을 표하던 루안은 그대로 저택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 버렸다. 정원으로 달려 나가는 어린아이의 뒤로 시종 두 명이 황급히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커틀러가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 오냐오냐 받아 주시니까 루안의 행동이 도를 넘지 않습니까.”

“…내가 잘못한 건가.”

“저러다 버릇 나빠지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얼굴이 예쁘면 성격이 조금 모나도 괜찮아…….”

커틀러가 램파드의 얼굴을 빤히 주시하더니 이내 풋, 낮게 웃었다.

“하긴, 폐하를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장난스레 웃던 커틀러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고, 그는 램파드를 감싸 제 품에 넣었다. 철퍽, 불유쾌한 소리와 함께 커틀러의 옷자락이 진흙 범벅이 되었고 루안을 지켜보던 시종들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루안!”

커틀러의 음색에 진흙 덩어리를 들던 어린아이가 찔끔, 겁을 먹고 손을 재빠르게 내렸다. 램파드를 풀어 준 커틀러가 화가 난 듯 아이를 바라봤다. 곁에 있던 시종들은 황급히 허리를 굽혔고, 커틀러의 눈치를 보던 루안은 울 기세였다.

“됐어. 장난이잖아.”

“혹여 돌 같은 걸 던졌다면 폐하께서 다치셨습니다.”

“네가 지켜 줬잖아. 그리고, 저 아이도 잘못한 걸 아는걸. 그렇지?”

울먹거리던 아이가 자신을 향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는 램파드의 답에 응하듯 고개를 끄덕 끄덕였다. 하지만 곁에 있는 커틀러의 시선은 여전히 사나웠고, 결국 울먹거렸다.

“흐… 읏, 죄… 죄송해요……. 그치만…….”

“루안! 감히 폐하께……!”

“됐어. 씻으러 가자.”

램파드는 잔뜩 화가 나 주변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커틀러를 저택 안으로 끌어당겼고, 그를 데리고 욕조가 준비된 곳으로 향했다. 물이 채워진 욕조 앞에 섰는데 여전히 커틀러의 입매는 딱딱했다.

램파드는 시종을 모두 물리고, 자신이 직접 커틀러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겼다.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루안은 폐하를 해치려는 생각에 진흙을 던진 겁니다. 알고서 말린 겁니까.”

그렇게 숨김없이 적의를 내뿜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낯선 어른을 서먹해하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램파드를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며 사소한 장난을 쳤다.

기껏 자신을 만나러 온 램파드의 브로치를 빼앗아 도망간다든지 코트를 숨겨 놓는 둥 사소한 장난은 램파드를 곯리려는 의도가 충분했다.

“알아. 한 달 전부터 날 노골적으로 싫어하더군. 이유를 모르겠어.”

“알고 싶습니까?”

“응. 우리 아들의 일이잖아.”

“루안이 저러는 건 폐하께서 원인입니다.”

“나?”

램파드의 손길을 벗어난 커틀러가 자신의 옷을 벗어 근처에 대충 던져 걸었다. 팔은 나았지만 그의 등은 여전히 난도질된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운 상처가 채찍 자국 위로 곳곳에 남겨졌다.

흰 피부 위에 도장을 찍어 놓듯 붉고 푸른 자국들이 잔뜩 남아 있었는데 이는 모두 램파드가 만든 자국이었다.

어느 날 커틀러의 남근을 받아들이는 와중 그의 피부가 맛있어 보이기에 무심코 쇄골을 깨물었다. 하얀 피부에 남겨진 이빨 자국은 눈에 띌 정도로 붉게 도드라졌다.

붉은 흔적이 꽤 오래 남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든 뒤로, 램파드는 관계 도중은 물론 잠든 커틀러의 목 뒤를 깨물어 자신의 자취를 분주히 남겼다. 마치 커틀러의 몸을 소유한 느낌이 들어 상처가 사라질 때마다 덧대듯 남겼다.

그런 흔적을 마주하자 성욕이 빠르게 들끓었다. 램파드의 상태를 파악한 커틀러가 그의 옷을 벗기고 욕조로 끌어당겼다.

“혹시 이럴까 싶어 아침에 약을 먹어 뒀습니다.”

“…나도다.”

이제 임신은 곤란하니까 요즘은 꼬박꼬박 피임제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 맞추듯 동시에 먹고 온 일은 드물지마는. 욕조에 함께 들어온 램파드는 그의 단단한 품에 기대며 손길을 즐겼다.

“그나저나 루안이 저러는 게 왜 나 때문이지?”

램파드의 몸을 천천히 어루만지던 커틀러가 잠깐 행동을 멈췄다.

“루안이 제 몸의 상처를 봐 버렸거든요.”

“응?”

“옷을 갈아입는데 제멋대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들켜 버렸습니다.”

커틀러의 몸이 울긋불긋해진 건 램파드가 원인이었다. 그것도 진득한 정사를 나누며 커틀러의 몸을 탐닉한 흔적이었다.

여기저기 멍과 이빨 자국을 잔뜩 남겼으니, 그의 몸에 푹 빠져 정신없이 쪽쪽 빨고 물었단 뜻이다. 아이가 저 모습을 봐 버렸다니. 부부 침실을 들켜 버린 기분이 든다. 괜한 짓을 벌였단 생각에 램파드의 몸이 살짝 붉어졌다.

“…그래서?”

“곁에 있던 한스가 쓸데없는 소릴 내뱉었죠. 폐하께서 저를 때렸다고 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고 싶어 잔뜩 남긴 상처라고 설명하기엔 루안은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다. 잔뜩 당황한 한스는 아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변명을 한 거였고, 문제는 그 후. 사랑하는 형의 복수를 한답시고 램파드를 괴롭힌 거였다.

“…오해를 풀려면 이만 관둬야겠군.”

“제 몸에 흔적을 남기는 거 말입니까?”

“응……. 이제 하지 않을게……. 아…!”

램파드의 아랫배를 꽉 끌어안은 커틀러가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램파드는 몸을 잘게 떨며 커틀러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계속해 주십시오. 폐하께서 제 몸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기 좋거든요.”

“루안이 계속 오해할 거잖아…….”

“신경 쓰인다면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은밀한 곳을 물어 주시면 되겠네요.”

램파드의 은밀한 구멍에 커틀러의 손가락이 침입했다. 아랫배에 힘을 준 램파드는 그의 침입을 반기며, 움찔댔다.

“…읏, 어디에?”

“제 좆에 말입니다. 폐하만의 것이니까요.”

아, 그건 좀 아플 것 같은데. 램파드는 눈알을 굴리다가 이미 뻣뻣하게 선 그의 물건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이렇게 크고 단단하니까 살짝 깨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커틀러의 제안을 심사숙고했지만, 그냥 남들 다 보라는 듯 목가를 크게 물었다.

이왕 보일 거라면 남들 다 볼 수 있게. 내가 이 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노라고, 밝히고 싶으니까.

커틀러 클로비스, 램파드 클로비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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