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 심문 (11/25)

11 심문

일주일 전.

영지로부터 긴급한 연락을 받은 대번포드 백작이 황급히 저택으로 돌아왔다. 황제의 개가 백작의 영지에 들어와 창관과 수도원을 탐색한다는 소식에 급하게 달려온 것이었다.

건달에게 보고를 듣는 대번포드 백작은 안달복달하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심란할 정도로 엉망인 저택과 영지보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믿음직한 수족은 램파드의 손에 모조리 잘렸고, 백작에게 남은 건 좁은 영지와 창관뿐이었다. 백작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영지 내 창관을 관리하는 건달과 손을 잡았다. 그들은 백작에게 권력이나 돈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백작이라는 귀족 작위만을 원했기에 이름을 빌려주고 건달을 사용했다. 건달은 백작의 이름을 사용해 영지민을 괴롭혔고, 그가 다스리는 땅은 범죄가 들끓었다.

하지만 영지민을 돌봐야 한다는 귀족의 의무를 저버린 백작의 관심사는 오로지 복수뿐이었다.

“제길, 아직 준비를 끝마치지 못했는데. 황제의 개가 영지 안에 들어오다니!”

“죄송합니다, 백작님. 어지간하면 죽이려고 했는데 황제의 직인을 들고 있더군요. 잘못 건드렸다가 로열 가드들이 들이닥칠까 봐 협조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까지 알게 된 것 같냐.”

“……수도원 원장의 말로는 라이의 기록까지 가져갔다고 합니다.”

황실의 직인을 찍어 보낼 정도라면 어느 정도 진실에 도달했다는 뜻이었다. 자금은 어느 정도 모였지만 아직 라이의 뒷배를 찾지 못했다. 수도에 지내면서 램파드의 행보에 불만을 품는 귀족을 만나는 중이었는데, 그들을 설득시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며칠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궁리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고, 대번포드 백작은 저택 안을 서성거렸다. 라이의 기록을 가져갔다고 하나 낳은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 터. 백작 또한, 애쉬가 라이를 데리고 올 때까지 창관의 오메가가 누구였는지 몰랐으니까. 애쉬가 입만 다물었다면 그저 백작가의 하나 남은 후계자라 생각할지도 몰랐다.

애쉬는 황제에게 복수를 원했다. 어지간하면 라이에 대해 밝히지 않았겠지만, 함께 지냈다면 또 모르지.

“몸도 불편하시면서 그만 서 계세요.”

불안에 휩쓸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대번포드 백작과 달리 어린 알파는 태연했다.

어른의 불안을 느끼고 덩달아 떨 수 있을 테지만, 배짱을 가진 라이는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력을 가졌어도 어린아이였다. 램파드에게 대항하기엔 아직 경험과 능력이 부족했다.

백작과 손을 잡은 조직은 매우 깊고 어두워 태양 같은 황제라도 쉽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아이 하나쯤 쉽게 숨길 수 있다. 무사히 성인이 된다면 황권을 위협할 존재가 될 터.

“백작가의 맥을 여기서 끊을 수 없다. 넌 호위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한시라도 빨리 떠나라.”

“저 혼자서 말인가요?”

개인의 복수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기적적으로 남은 자식을 잃기 또한 싫었다. 각오를 다진 백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아버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는 황제와 끝장을 볼 것이다.”

조만간 황제가 찾아오든가 백작이 수도로 소환될 거였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마지막은 곱게 가지 않을 거다. 오랜 세월 갈았던 증오를 담은 회심의 일격이라도 날려 봐야지. 곱상하게만 생긴 얼굴에 기다란 상처 하나쯤 자리 잡는다면 몇 년간 쌓였던 증오가 조금은 사그라질지도 몰랐다.

소파에 앉아 있던 라이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아버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헤어지게 되는군요.”

“그래.”

불안을 애써 떨어뜨린 라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의 실력으로는 제국의 검이라는 칭호를 가진 숙부님에게 긁힌 상처도 못 낼걸요.”

“하찮은 오메가 따위는 힘으로 어찌 될 거다.”

“숙부님이 오메가란 이야기는 아버님의 가설일 뿐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이대로 당하는 것보단 작은 가능성이라도 믿어 보는 것이 낫다.”

“이왕 하실 거라면 확실하게 하세요. 만들다 만 약이 하나 정돈 남아 있지 않나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아버님이 부리는 아랫것한테 들었어요. 저택 3층에서 남은 약을 폐기하던 중이더군요.”

“하여간 쓸모없는 것들.”

백작은 돈벌이로 인신매매와 함께 발정제를 불법 유통했다. 황제가 직접 발정제 유통을 막아 대부분 처분했지만 한 병 정도 남긴 했다.

“오메가는 발정제 냄새만 맡아도 페로몬이 강제로 개방된다면서요. 주변 사람이 다 알 정도라던데, 황궁에는 알파가 많지요? 숙부님에게 발정제를 사용하는 건 어떠신가요.”

“좋은 생각이다만 그걸 들고 황궁에 입궁할 수 없다. 황제를 알현하기 전, 몸수색에서 걸릴 거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라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한때 백작 부인이 사용한 방에는 화장대가 놓여 있었고, 화장품이 수북했다. 발돋움한 라이는 자그마한 병을 들었다. 복숭아 모양의 예쁘장한 병은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자그마했다.

“이건 너무 오메가답나요?”

“…아니, 이거면 충분하다.”

백작의 눈이 반짝였다. 휴대용 향수병이라면 하나 정도 소지해도 이상하지 않다. 발정제를 섞어 뿌려도 검문소 기사에겐 향수일 뿐이니까. 하지만 오메가가 맡으면 단번에 히트 사이클에 돌입해 애액을 질질 흘리며 떨 테지.

황제의 손에 가족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자식을 보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영토 대부분을 빼앗겼으며, 알파의 자존심까지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가 베타라고 해도 배가 뒤틀리는데, 오메가라니.

알파의 권위에 도전한 오메가의 비밀을 만천하에 까발릴 생각을 하자 굳어 있던 백작의 입매가 휘어졌다.

“좋은 방법을 알려 드렸으니까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대번포드 백작은 향수병을 품속에 갈무리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결정을 내렸다. 애초에 검토조차 하지 않을 부탁이었다.

“안 된다.”

라이는 양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어 불만을 표했지만, 아버지란 백작은 매몰차게 사라졌다. 팔짱을 낀 라이는 발끝으로 땅바닥을 지속해서 톡톡 쳤다. 데리고 가 주지 않는다면, 가까운 수도 정도야 몰래 따라가면 됐다. 뒤늦게 함께 왔다는 걸 알아채면 돌려보내긴 힘들 테니까.

***

아직 황후가 되지 못했으며, 작위조차 없는 애쉬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램파드와 밀러 단둘뿐인 듯했다. 그중 한 명, 화이트 궁에서 애쉬를 교육했던 밀러가 걱정스레 물었다.

“애쉬 님을 어디로 보내시는 겁니까?”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 보낼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암살 위협에 노출되었으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데려갈 거다. 이미 함께 따라갈 시종은 정해 두었다.”

램파드는 마차 근처에 서 있는 시종으로 위장한 콘테 가문의 사람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대체 황궁에 몇 명이나 심어 둔 것인지. 황궁에서 오래 일한 자들이 모조리 콘테 가문의 시종이었을 줄이야. 램파드는 커틀러의 명령에 정체를 밝힌 그들을 보며 경악했다.

떨떠름해도 큰 신세를 졌으니 신분을 감췄던 심복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커틀러는 애쉬까지 함께 떠나는 것을 허락할 정도로 큰 양보를 했으니까. 지금 당장의 불만은 참기로 했다.

“……그런, 부디 끝까지 제가 모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걱정 말아라. 회복하는 대로 다시 화이트 궁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애쉬를 모시던 밀러는 수긍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그렇다 하니 조용히 물러갔다. 솔직히 램파드는 커틀러의 심복 대신 밀러를 붙여 두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 후면 램파드도 함께 찾아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곁에 있어야 했다. 황제의 숨겨진 사실을 아는 자는 적을수록 좋았기에 저렇게나 애쉬를 위하는 자를 데려갈 수 없었다.

애쉬를 싫어하는 게 분명한 커틀러의 입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 또한 찝찝했지만, 황성 내 심복을 여러 명 뒀으니 목숨을 취하려면 진즉에 했을 거다. 이때껏 애쉬를 살려 두었으니 일단은 커틀러를 믿기로 했다.

콘테 가문의 시종과 함께 마차에 탄 애쉬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램파드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처럼 따뜻한 손은 당장에라도 움직여 볼을 쓰다듬어 줄 것만 같다.

하지만 램파드의 바람과 달리 힘없이 축 늘어졌다. 입을 맞추면 깨어나려나. 발돋움해 애쉬의 입술에 가볍게 부딪혀 봤지만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램파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후 보자꾸나. 다시 만났을 땐, 네 눈이 떠 있으면 좋겠구나.”

저도 모르게 시선이 굳게 닫힌 그의 입술에 향했지만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곧 마차가 출발했고, 램파드는 애쉬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애쉬를 태운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램파드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백작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그의 아이가 조카인지 형제인지는 당사자 입으로 직접 들어야 했다. 귀족을 감옥에 가두려면 사소한 꼬투리라도 좋으니 명분이 필요했고, 그건 이미 준비됐다.

처음 램파드가 조사한 불법 발정제에 관한 보고서는 후에 커틀러가 추가해 양이 상당했다. 황실만이 유통할 수 있는 발정제를 만들고 판매했으니, 작위 박탈 구실로서 충분했다. 오늘이 증인으로 귀족 네 명을 불러들여 대번포드 백작을 심문하는 날이었다.

“램파드 폐하,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차려진 수레를 끌고 온 시종의 등 뒤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함께 보였다.

“왔군.”

“예, 옷을 갈아입기 전에 잠시 들렀습니다.”

애쉬와 램파드가 지낼 콘테 가문의 별장을 점검하고 돌아온 커틀러도 오늘 심문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직 여행 차림인 그는 시종이 나가자 램파드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여전히 식욕이 증발한 램파드는 나이프로 음식을 쿡쿡 찌르기만 했다. 죄 없는 고기는 램파드가 찌르는 대로 육즙을 뿜어 댔다. 음식 투정을 부려 봤자 타격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니까 램파드는 마음을 다잡고 잘게 조각내 끼적거렸다. 커틀러는 마지못해 음식을 먹는 램파드의 손짓이 불만이었다.

“제가 와서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오늘 있을 심문이 걱정되는 겁니까.”

“너 때문이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나가 드릴까요.”

“그래.”

커틀러는 램파드보고 고집을 버리라고 하지만, 가만 보면 그 또한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웬일로 꼬투리 하나 잡지 않고 순순히 문밖으로 나가 입구에서 대기했다. 커틀러가 사라졌지만 도망간 입맛은 여전했다. 램파드는 하나하나 천천히 씹어 삼키며 식사를 끝냈다. 음식을 다 먹고, 대충 옆으로 치운 램파드가 커틀러를 불렀다.

“들어오너라.”

커틀러는 여행자용 로브를 벗어 팔에 걸고, 램파드 앞에 섰다.

“며칠 자리를 비운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폐하께서는 황실 기사 서임식 이전부터 식탐이 없으셨죠. 단순히 더위를 탄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였군요.”

더위 탓을 하다니 기가 찼다. 뒤늦게 정사 맛을 본 커틀러가 램파드의 체력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달라붙었기에 골골댔던 것도 분명했다. 평소라면 따져 들었겠지만, 램파드는 따로 지적하지 않았다. 그에게 실망을 여러 번 해, 이제 일일이 화를 내지 않고 묻는 질문에만 짧게 답할 생각이었다.

“참 빨리도 깨닫는군.”

커틀러의 아이라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며칠 의심하더니. 드디어 스스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제 피를 이은 아이를 품고, 애쉬와 몸을 섞으신 거군요.”

“…….”

“왜 반론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부정해야 할 필요가 있나.”

로브로 손을 가린 그가 램파드에게 다가왔다. 이제 커틀러가 하는 행동은 모든 게 의심스러웠고, 램파드는 가려진 손을 뚫어지도록 바라봤다.

“겁먹지 마십시오. 제 손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의 말에 램파드는 시선을 맞췄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커틀러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새어 나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이 낳을 때까지 몸을 굴리지 말란 거냐. 너 또한 성욕을 처리한다고 임신한 날 덮쳤지 않나.”

“저는 괜찮아요. 아이의 아비니까.”

“하, 이제는 정부인 취급이냐. 착각하는 것 같아 미리 말해 두는데, 아이가 생겨도 너와 난 남남이다. 남의 아이를 그냥 맡아 주고 있는 거니까, 부부 같은 건 아니야. 꿈 깨.”

겨우 끝낸 식사가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친놈을 자극해 봤자 램파드만 손해란 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됐으니 배가 뒤틀려도, 속이 끓어도 그냥 참을 뿐이었다. 몇 번이나 분을 삭였지만 모든 말이 막히진 않았다. 그래도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밴 몸으로 그렇게 화내지 마십시오. 쓰러지십니다.”

“방금 한 말 못 들었냐. 남편 노릇 하지 말라고!”

“폐하께서 거부하니 남편 노릇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 노릇은 할 겁니다. 제 아이에게 영향이 갈지도 모르니까 화내지 말고 물이나 드십시오.”

“진짜, 이 미친… 새끼가.”

울화는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최대한 억제했지만, 분노가 비집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도 평소보단 수치가 낮았다.

“나쁜 말도 삼가시고요. 태교는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한테 가장 큰 해악은 너다.”

“폐하만큼은 아니지만, 저 또한 미색이 출중한 걸요. 흔하디흔한 꽃 따위보단 절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순간 말문이 막힌 램파드는 커틀러를 더욱 경계했다. 태연한 그는 맑은 물을 따르더니 램파드에게 대령했다. 몇 번의 학습으로 수상한 놈이 주는 건 냉큼 받아먹지 않기로 했다. 저 물은 시종이 가져왔으며, 눈앞에서 따랐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들고 있는 자가 미심쩍다.

“아무것도 안 탔습니다. 제 아이를 품은 오메가에게 수상쩍은 걸 먹이겠습니까. 물 마시고 진정하십시오.”

“내가 진정한 뒤 어떤 기절초풍할 발언을 할 생각이냐.”

“눈치가 빠르셔서 좋군요. 대번포드 백작의 영지 상태를 보셨습니까?”

“보고서로는 봤다.”

“직접 가서 살펴봤는데 상당히 엉망이더군요. 영지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엄하게 벌해질 걸 알 텐데,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빼돌렸겠지.”

“네. 자금의 규모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꽤 될 테니 마지막으로 폐하께 한 방 먹일 준비를 했겠죠.”

확실히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늙은 귀족치고는 영지민을 불쌍할 정도로 쥐어짰다. 그 땅은 몇 년째 풍년이 계속돼 수확량이 좋아 세금으로 충분히 먹고 살았을 텐데 말이었다. 대번포드 백작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건달을 풀어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착취했다. 행태가 수상스럽긴 했다.

“대번포드 백작의 영지는 회수하는 대로 근방의 다른 귀족에게 넘길 거다. 그 땅에 서식한 벌레도 청소를 겸해야지.”

“사후 처리는 그렇게 하고, 그 전에 어떤 꿍꿍이를 세웠는지 알 수 없어서 말입니다. 뭐, 심문 전에 몸수색을 다 하긴 할 거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오늘 심문은 참석하지 마시고, 저에게 의장을 넘기십시오.”

마음먹은 것보다 아연실색할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분노가 들끓을 말이었다. 대번포드 백작은 애쉬에게 암살자를 보낸 장본인이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거절하지. 그놈은 내 손으로 지위를 뺏고, 고문해서 죽일 거다.”

“…고문까지 직접 하실 생각입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말리고 싶군요.”

“네가 나에게 명령할 권한 같은 건 없어. 심문에 참석하든지 말든지는 나 스스로 정한다.”

“그렇다면 참석하지 못하게 만들어야죠.”

가까이 다가온 커틀러가 의자 손잡이를 꽉 붙잡고 몸을 숙였다. 그는 코앞까지 닥친 눈동자와 입술에 신경 쓰는 램파드의 허벅지를 문질렀다. 살결의 감각을 깨우듯 천천히 쓸어내리던 손은 이내 강하게 꽉 움켜쥐며 힘을 줬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은 덕분에 얇은 살 아래로 뼈가 만져졌다. 천천히 내려간 손은 무릎에서 멈췄다.

조금만 힘을 주면 무릎뼈 따위 손쉽게 부러질 거다. 이대로 양 무릎을 분지르면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처럼 주저앉아 예쁜 입술만 움직일 텐데.

“커틀러… 정신 차려!”

램파드는 자신의 다리를 무섭게 바라보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선을 들어 올린 커틀러가 램파드의 사나운 눈동자를 바라봤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장했지만, 그 안쪽은 겁에 질렸다. 입꼬리를 한쪽만 끌어 올린 커틀러가 비웃었다.

“저는 계속 제정신입니다.”

“알았으니까 일단 손 떼.”

“왜 그래야 합니까.”

그는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대로 무릎뼈가 으스러뜨려질 듯해 램파드는 인상을 썼다.

“놔! 놓고… 말해.”

“그 전에 답해 주십시오. 의장 자리를 넘기시겠습니까?”

“내 일을 빼앗을 생각 하지 마.”

“폐하의 일을 빼앗는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키기 위해 몸을 부서뜨린다니.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굽힐 생각 하지 않는 커틀러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램파드는 짧은 비음을 흘리며 그를 노려봤다.

“지켜? 웃기는군. 각인도 하지 않은 알파가 씨 좀 뿌렸다고 집착하다니. 나를 대신할 오메가도 찾았잖아! 그자나 지켜라.”

커틀러가 손을 뗐고, 비웃던 입매가 일자로 굳어졌다. 이내 고운 눈썹 사이를 찌푸리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필요 없는 쓰레기를 흘려보내는 것처럼 말했다.

“릴 말입니까. 그는 이른 시일에 죽일 겁니다.”

경계하던 램파드의 눈이 점차 커졌다. 함께 춤을 추고 하룻밤을 보내기까지 한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니.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감정이 빠진 것 같았다.

“릴은 널 보호하기 위해 두둔했다.”

“저도 압니다.”

“그 후로도 계속 함께 지내지 않았느냐.”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버릇없는 자작가의 자식이 일방적으로 쫓아다닌 겁니다. 이제 필요 없어졌고 귀찮아질 게 뻔하니 제거하는 거죠. 손에 들어왔으니 어떻게 하든지는 제 마음입니다.”

제국에서 셋밖에 없는 귀하고 값진 우성 알파. 그에겐 모든 것이 하찮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램파드는 가까이 다가온 커틀러가 떨어질 수 있도록 그의 가슴을 꾹 밀었다.

“너의 그런 사고방식이 싫었어. 뭐든 하찮아하며, 제멋대로 휘두를 생각뿐이지. 나는 네 소유물이 아니야. 마음대로 할 생각하지 말라고.”

“이래 봬도 폐하께는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때껏 한 짓이 있는데, 그 말을 믿으란 거냐!”

노력해서 가다듬은 램파드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여윈 몸은 조금만 흥분해도 금방 호흡이 거칠어졌다. 숨결을 색색 내뱉을 걸 뻔히 알면서 화를 내다니. 커틀러는 전력으로 달린 것처럼 거친 숨을 내뱉는 램파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제 속마음을 알고 싶어 하셨죠. 원하는 대로 말해 드리지요. 마음 같아서는 당신이 처음으로 발정했을 때 밤새 강간해서 임신시키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또 임신시켜 평생 제 곁을 떠날 수 없게 하고 말이죠.”

고백하듯이 속마음을 내뱉는 커틀러의 말은 생각 이상으로 매슥매슥했다. 램파드는 그의 몸에서 멀어지고 싶어 고개를 뒤로 뺐다. 의자에 앉아 도망칠 곳이 없는데도 발버둥 치는 모습에 커틀러가 숙였던 고개를 세워 허리를 펴며 꼿꼿이 섰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황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은 걸 몇 번이나 참았는지 아십니까. 알현실에 앉아 있는 당신의 두 다리를 부러뜨려 저택으로 끌고 가고 싶었어요.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앉은뱅이로 만들어 보살피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아침에 눈뜰 때마다 참아 냈죠.”

“당연… 하지. 순순히 끌려갈 거라 생각한 거냐!”

커틀러의 눈썹이 경련하듯 꿈틀댔다. 이때껏 램파드가 목소리를 올려도 무덤덤했던 건, 화를 내면 온전히 한 감정에만 휩쓸리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신을 도발한 상대만을 생각하니까 내버려 뒀던 것이다. 지금은 조금만 화를 내도 숨이 고르지 않은 모습이 영 성가셨다.

“화내시면 또 때려서 진정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뭐?”

“그러니까 진정하고 조용히 들으십시오.”

기가 찬 램파드는 입을 꾹 다물고, 울화를 삼켰다. 램파드가 진정하자 커틀러가 입을 열었다.

“오해가 생기는 건 싫으니 미리 말해 드리죠. 릴과 밤을 보냈긴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뭘 했는지 관심 없어.”

“제가 하던 말은요.”

“미친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그는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더니, 램파드를 오만하게 내려다봤다.

“이제 폐하 말은 듣지 않을 겁니다. 이때껏 참아 왔으면 됐죠. 뭘 더 하지 말란 겁니까.”

듣고 싶지 않다고 악을 써 봤자 통하지 않는다. 반항하면 힘으로 짓눌릴 뿐이니 램파드는 평화로운 방법을 택했다.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커틀러를 외면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램파드의 손목을 움켜쥐고, 제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금도 당신을 광장으로 끌고 가 입 속에 감별지를 처넣고 싶은 걸 참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으니까 말 좀 들으십시오.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제가 당신의 날개를 꺾지 않고 참을 때 말입니다.”

“고작 심문일 뿐이다. 왜 막아서려고 하는 거냐.”

“자살과 마찬가지인 짓을 하려니까 막는 거잖습니까.”

“네놈이 신경 써 줄 필요 없어!”

“사실 저는 당신이 오메가라 밝혀져도 상관없습니다. 제 지위를 이용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폐위된 당신 하나 정도 평생 보살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정신이 망가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아요. 백작이 어떤 패를 가졌는지 뻔히 알면서 강한 척 그만하십시오.”

커틀러는 쥐고 있던 램파드의 손을 놓았다. 이제 귀를 틀어막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니까. 예상대로 램파드의 양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주먹으로 변했다. 아니, 주먹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제대로 손을 움켜쥐지 못하며 벌벌 떨었다.

커틀러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아하니, 대번포드 백작의 자식은 조카였다. 사랑하는 형이 낳은 자식이란 거였다. 라이를 낳은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하는 애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자신이 직접 죽인 전장의 오메가였다.

해일처럼 빠르게 잠식한 참담함에 램파드는 가슴 안쪽이 무거워졌다. 이미 각오했던 일 중 하나였으면서. 기워 놓았던 마음이 빠르게 찢기는 기분이 들었다. 목 안으로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쏟아 내지 않기 위해 참았다.

“답을 하지 못하시겠으면 고개만 움직이십시오. 오늘 의장은 접니다. 폐하께서는 여기 계십시오.”

커틀러는 고개를 푹 숙인 램파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영영 비밀로 감춰 봤자 램파드는 어떻게든 알아내려 용을 썼을 거다. 명치를 가격해 기절시켜 봤자, 정신을 차리는 대로 백작의 입에서 진실을 듣겠다며 감옥으로 따라왔을 테지. 무엇을 해도 손해라는 생각에 커틀러의 미간 또한 램파드와 마찬가지로 구겨졌다.

그는 답 없는 램파드를 향해 한 번 더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일 생각도 없다면 그냥 이대로 계십시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거절하지.”

“폐하.”

밖으로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더니 고스란히 마음으로 스며들어 죄어 왔다. 온몸이 눈물에 침수된 듯, 호흡이 힘들고 질식할 것만 같았다.

램파드는 토해 내듯 숨을 쉬며 이를 악물었다. 형을 죽였다는 사실이 괴롭지만,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을 수 없었다. 창부가 된 형을 구매해 임신시킨 백작을 처단하는 건 램파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황제의 자리였으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직접……. 끝낼 거다.”

커틀러는 램파드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손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급소를 가격해 기절시킨 뒤, 시종을 시켜 쇠사슬로 꽁꽁 동여매고 모든 일이 끝나면 풀어 주면 되겠지.

램파드는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슬픔을 억누른 램파드의 눈가가 붉어졌고, 괴로움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만 자극해도 눈물을 쏟아 낼 거면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참아 낸다. 커틀러는 숙일 생각 없는 램파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얌전히… 있어도 때릴… 거잖나.”

“제가 심문실에 가면 움직일 게 뻔하니까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그는 램파드의 명치를 정확히 조준할 수 있도록, 어깨를 강하게 쥐고 주먹을 들어 공격 태세를 취했다. 약해진 몸은 강한 힘을 줄 필요 없이 급소만 가격해도 쉽게 기절한다. 괴로움을 참는 데 모든 힘을 쓴 램파드는 저항할 힘마저 없다. 기절시키기 손쉬운 상대지만, 커틀러의 주먹이 멈췄다.

“곧 심문에 참석하셔야 하니 눈물은 참으십시오. 끝나면 제 품을 빌려 드릴 테니까요.”

“……안 울어.”

“거짓말할 시간에 마음이나 다스리시지요. 그 표정으로 심문에 참석했다간 백작은 물론 다른 귀족들에게도 놀림감이 될 겁니다. 그럼 전, 준비해야 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인사를 올린 커틀러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기사단 건물로 이동했다. 그는 내지르지 못한 주먹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며 문질렀다. 잘못된 선택이 확실했다. 동정심 따위에 엉망이 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다니.

램파드가 우는 모습을 못 봤더라면 주저 없이 기절시켰을 텐데. 애쉬를 잃었다는 생각에 참았던 몇 년간의 설움을 토해 내던 램파드의 모습이 떠올라 주먹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램파드가 홀로 집무실에서 웅크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심문이고 뭐고, 당장 집어치우고 그에게로 달려가고 싶단 생각만 할 것 같으니까.

***

다른 죄인과 달리 귀족이 죄를 지으면 명예를 지켜 준다는 명분으로 귀족만이 심문에 참석한다. 대번포드 백작이 저지른 불법 발정제 제작, 유통 사건 심문에 참석한 귀족은 커틀러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었다. 커틀러는 사건을 수사한 기사단장 신분으로 참석했고, 나머지 네 명은 심문의 내용을 기억할 증인이었다.

증인이 될 귀족은 로열 가드가 진행하는 몸수색을 받았다. 아직 죄가 공표되지 않은 대번포드 백작도 나란히 입장해 몸수색을 받았다.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백작의 몸을 수색하던 로열 가드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무언가 썩는 냄새가 났기에 숨을 참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차에서 내리다 말똥을 밟아 버렸다.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대충 털어 내고 왔는데 문제 있는가.”

털어 냈는데도 남아 있는 냄새가 상당했다. 예민하게 반응할 귀족이 있을 게 분명했다.

“죄송하지만 입장하기 전 냄새를 제거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향수 같은 걸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없다면 다른 귀족분 것을 빌려야겠군요.”

“아, 그거라면…….”

대번포드 백작은 뒤늦게 무언가 생각이 난 듯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복숭아 모양의 연분홍색 빛을 띠는 자그마한 병은 늙은 백작이 들고 다니기에 터무니없이 앙증맞았다.

“사용하시기 전 확인을 하겠습니다. 아무리 백작님이라 하셔도 절차는 받으셔야 하니까요.”

“나 또한 괜한 의심을 사는 짓은 하고 싶지 않군.”

대번포드 백작은 당연한 듯 향수병을 로열 가드에게 건네줬다. 그는 간단한 독극물 검사를 끝내고, 공중에 흩뿌렸다. 잘 여문 여름의 복숭아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었다. 만족한 로열 가드가 백작에게 향수를 돌려줬고, 그는 자신의 하반신 위주로 듬뿍 뿌렸다.

“향수도 맡겨야 하는가?”

“무기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들고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알겠다.”

작은 향수병을 품에 넣은 백작은 몇 년간 묵혔던 복수의 대상자가 있는 심문실로 입장했다. 원래 향수는 심문실이 아닌 사람이 좀 더 많은 곳에서 사용할 생각이었다. 심문이 끝나고 나서 이동할 황궁의 공터나 로열 가드 건물에서 사용했으면 좀 더 많은 사람이 황제의 비밀을 알게 될 건데.

아쉽게도 램파드 황제의 몰락을 보고 싶다며 제멋대로 따라온 라이를 발견해 버려 이 장소에서 끝내기로 했다.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라이가 마차에 얌전히 있길 바랐다.

커틀러가 준비를 위해 떠나고, 집무실에 혼자 남은 램파드는 엉망진창인 생각을 정리하느라 힘썼다. 울컥 배어 나오는 감정을 몇 번이나 죽이고, 다른 생각에 몰두했다. 자신의 손으로 끝낸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지금은 눈물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됐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되니까. 금방 끝날 테니, 형을 기리며 우는 것은 나중의 일로 미뤘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램파드는 심문실로 향했다. 안에는 이미 몸수색 절차를 끝낸 커틀러가 대기 중이었다. 준비된 좌석에 앉은 램파드는 심문실 안의 로열 가드와 시종의 얼굴을 바라보며 찌푸렸다.

“여기에는 또 몇 명을 숨겨 놓은 것이냐. 셋… 아니 넷이군.”

“네 명이 맞습니다.”

“더 있는 거 아니냐. 알고 보면 여기 있는 시종 전원이 콘테 가문 사람이라든지?”

대기 중인 시종 중 하나는 황제의 집무실에 붙박이처럼 늘 붙어 있는 한스였다. 설마 저자까지는 아니겠지만 한번 떠봤다. 순순히 답해 주지 않을 테지만.

“아무리 저라도 그 정도 숫자의 사람을 황궁에 몰래 배치하지는 못합니다.”

신뢰가 전혀 안 가는 답이었지만 입을 다물고 커틀러의 심복을 살펴봤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얌전히 집무실에 있으란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온 것이니까. 이 정도는 커틀러 마음대로 하라며 내버려 뒀다.

“그러지 않아도 네가 불안해할까 봐 로열 가드를 여덟이나 불러들였다.”

“여덟 명 정도로는 안심되지 않는군요. 할 수 있다면 로열 가드가 아닌 화이트 테일 기사 전부를 집합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좁은 심문실에? 경망 떨지 말아라.”

“폐하께서는 우성 알파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시나 보군요. 그렇게 준비해도 모자랄 겁니다.”

“그건, 네 경험으로 하는 말이냐.”

“네.”

“그거 참 두렵군.”

잠시 후, 로열 가드의 감시를 받으며 대번포드 백작이 입장했다. 조심하라는 커틀러의 말과 달리, 늙은 백작은 허약해진 램파드가 맨손으로 이길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대번포드 백작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소인의 땅에서 벌어진 사사로운 일에 폐하께서 친히 움직이시다니, 죄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군요. 영지 안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을 다잡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이렇게 폐하의 부름에 응했습니다.”

“이미 자네에 대한 처분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이번 심문은 죄를 알리고, 추가 여죄가 있는지 추궁하기 위한 자리다. 죄인 신분으로 대할 테니 자리에 앉지 말아라.”

램파드의 손짓에 대번포드 백작의 자리가 사라졌다. 아직 죄를 공표하지도 않았는데 귀족 대접을 해 주지 않는다니. 이미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은 다른 귀족은 그의 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심문이 시작되기 전, 따뜻한 차를 가지고 온 시종이 하얀 천으로 덮인 음식용 수레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녀는 앉지 못하는 백작의 앞까지 마실 차를 정돈하고, 수레를 끌어 구석으로 이동해 대기했다.

다른 자리보다 한 발짝 더, 높은 좌석에 앉은 램파드가 테이블 중심의 뻥 뚫린 자리에 선 백작을 오만하게 내려다봤다.

“그대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가 궁금할 테지. 대번포드 백작은 황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발정제를 제작,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백작은 작위를 박탈당할 것이며 그대들 중 한 명에게 빈 영지를 넘기도록 하겠다.”

영지를 하사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공을 세워야 했다. 심문에 참석한 귀족은 평소 영지를 잘 다스리며, 제국민에게 호평인 자들이었다. 그중에서 램파드가 직접 선발까지 했으니, 이 중 누가 맡아도 엉망이 된 영지를 충분히 회복시킬 터.

“자세한 보고는 이 사건을 맡은 제가 직접 설명하겠습니다.”

황제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커틀러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보를 쥔 백작이 무슨 말을 내뱉을지 모르니까. 진행을 도맡을 테니 얌전히 입 다물고 있다가 마지막 판결만 내리란 뜻이었다. 사전 협의한 내용은 아니지만, 램파드는 불만을 표하지 않고 커틀러가 진행하도록 내버려 뒀다.

조금 심려되는 점은 기사단장인 그는 황제의 개인 집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기만 했을 뿐, 제대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단 것.

“대번포드 백작이 소유한 영지는 몇 년째 풍작이 계속되는데, 반대로 영지민의 생활은 빈곤하기 짝이 없군요. 제국의 귀족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았으니 영지를 몰수할 예정입니다. 반론해 보시죠.”

램파드의 걱정과 달리 커틀러는 쥐도 새도 모르게 대번포드 백작을 죽이고 싶은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사무적으로 포장했다. 중앙에 선 대번포드 백작의 반론 아닌 변명이 시작됐다.

“남은 것이 있어야 영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겠습니까. 주변의 원조도 없고, 전쟁으로 망가진 곳을 보수하는 데 세금을 다 쏟아붓느라 벅찬 상황입니다.”

“축적한 재산이 많아 제대로 숨기지도 못할 정도지 않습니까. 발정제 제작 판매는 물론이고, 수도 인근의 오메가를 스무 명이나 잡아 팔아넘기기까지 했으니까요.”

새로운 사실에 참석한 귀족은 물론 램파드까지 동요했다.

조사를 더해 밝힌 사실을 혼자만 알았다니. 램파드는 덜 익은 복숭아를 먹은 것처럼 입 속이 떫어지고 못마땅해졌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진행을 잘하고 있어 얌전히 듣기만 했다.

무의미한 심문이 계속 진행됐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백작은 반론할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먹거리며 버텼다. 아직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질질 끄는 모양새에 커틀러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보였다. 그의 입가가 한층 더 굳어졌다. 저러다 대기 중인 로열 가드의 칼을 빌려 백작의 목을 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볼을 괴고 커틀러의 미묘한 입 끝 변화를 살피던 램파드가 자세를 고쳐 앉아 손끝을 문질렀다. 지문을 중심으로 저릿한 기운이 감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램파드의 모습을 답답하게 바라보던 황의가 손끝, 발끝이 저리면 당장 불러 달라 했다. 며칠 후면 먼 길을 나서야 하는데 아파 쓰러지면 곤란하다.

이 정도면 참석한 귀족도 이해했겠지. 대충 끝내기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램파드는 되레 숨을 멈췄다. 떫게 느껴졌던 복숭아 향은 착각이 아니었고, 실제로 옅게 풍기는 냄새였다. 눈가를 찌푸린 램파드는 점점 짙어지는 달달한 향을 쫓아 대번포드 백작에게 시선을 향했다. 향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손쉬웠다. 몸 안쪽이 흥분에 들떠 저릿해졌으니까.

손등으로 코를 막은 램파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벗어나기 위해 일어났다.

“하,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황제가 오메가란 사실은 확률만 높을 뿐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높은 확률을 믿었다. 도망쳐서 라이의 뒷배가 되어 주는 방법 대신, 램파드의 부름에 응한다는 도박을 받아들였고, 승리했다.

무성의하게 반론을 이어 가던 대번포드 백작이 큰 웃음을 토해 내며 품속에 넣어 둔 향수병을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쨍강, 불길함을 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심문실 전체에 울렸다. 아까부터 풍기던 복숭아 향이 한층 더 짙어졌고, 램파드는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히트 사이클은 몇 번 겪었지만, 상태가 이상했다. 온몸이 쾌락에 들뜬 게 아니라 고통을 호소했으니까.

“읏, …앗!”

램파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느껴지는 배를 감싸며, 헐떡였다.

“램파드 폐하! 어디 편찮으신 겁니까!”

램파드는 자신을 부르는 귀족을 바라볼 수 없었다. 배를 감싸고 주저앉은 램파드를 향해 대번포드 백작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파서 저러는 게 아니지요. 발정제에 흥분한 것뿐입니다.”

“대번포드 백작!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거요!”

“알다마다요. 다들 저걸 보십시오. 램파드 황제는 베타인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메가였습니다. 새끼를 치는 가축일 뿐인 오메가가 제국 모두를 속이고 황제 노릇을 하고 있던 겁니다!”

자리를 지키던 귀족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 그런, 폐하……. 아니지요?”

부정해야 하지만 칼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에 이를 악무는 게 고작이었다. 발정제 향에 반응한 몸은 억지로 벌려지며, 램파드가 품은 농익은 향을 연하게 흘려보냈다. 커틀러는 램파드의 페로몬 향을 맡으며, 반응한 자를 빠르게 확인했다. 당황한 로열 가드와 시종이 끌고 온 천으로 감싸진 음식 수레 안쪽까지.

램파드를 대신해 대번포드 백작이 신난 듯 떠들었다.

“아니긴요. 발정제에 반응하여 페로몬을 질질 흘리는 건 오메가뿐인 걸요. 후작도 잘 아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램파드 폐하께서는 정무에 직접… 참여하시는 걸요. 그 오랜 전쟁도… 어떻게 오메가가.”

승리를 확신한 대번포드 백작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가소롭지 않습니까. 오메가가 자신에게 위협되는 알파 세력을 꺾기 위해 정책을 펼친 것이! 당장 제국과 황실을 더럽힌 오메가를 포박하시오!”

당황한 귀족들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들고 있던 서류를 대충 던져 놓은 커틀러는 승리에 도취해 떠드는 대번포드 백작을 무시하고 주저앉아 떠는 램파드를 살폈다. 고통에 겨워 배를 감싼 모습을 보아하니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됐을지도 몰랐다.

“램파드, 내 말 알아듣겠어?”

날카로운 통증 속에서도 커틀러의 음색이 똑똑히 들렸다. 배를 감싼 램파드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커틀러의 손짓에 늘 램파드 곁을 지키던 한스가 다가왔다.

“네 명… 밖에 없다더니…….”

“그런 말은 나중에 해.”

다가온 한스는 램파드의 상태를 빠르게 살펴봤다.

“발정제 향에 포궁이 강제로 개방되었군요. 아이를 살릴 수 있긴 하겠지만, 산모에게 부담이…….”

“아이는 됐고, 램파드에게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커틀러는 괴로움에 찌든 램파드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에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비밀 통로 하나쯤은 있겠지. 위치를 알려 줘.”

“난로 아래…….”

램파드의 답에 한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구를 확보하러 떠났고, 한숨을 길게 쉰 커틀러가 램파드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뺏어 들었다. 그의 행동에 램파드의 손이 뻗어 나와 커틀러의 옷을 붙잡았다.

“너… 아, 안 돼……!”

“뭐가 안 된다고. 이 방법밖에 없는걸.”

“하지… 마!”

“네가 자리를 지킬 방법은 하나뿐이야.”

커틀러는 자신의 옷가지를 붙잡은 램파드의 손을 뿌리치며 검을 뽑았다. 주먹을 내지르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까, 한 몸 바쳐 수습해야 했다.

한평생 스스로 수습하지 못할 일은 염두조차 두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능력 밖의 일을 벌이게 되는데 정말 아무런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대책을 세우기에는 터무니없이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부터 해치워야 한다.

“콘테 공! 역시 자네도 영악한 황제와 한통속이었군. 그 검을 들고 어떻게 한단 말인가.”

램파드의 검을 한 손으로 꽉 붙잡은 커틀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입막음해야지.”

“멍청하긴!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기 전, 경비가 들이닥치는 게 먼저일 거다!”

그 정도쯤은 커틀러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대번포드 백작과 다른 귀족들쯤이야 손쉽게 해결하지만, 문제는 로열 가드였다. 단시간에 로열 가드를 전부 몰살시키지 못하면 소란스러운 소리에 경비가 들이닥치는 게 먼저일 테니까.

“얼마 없는 우성 알파 동지니까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검을 내려놓는다면 자네 또한 음란한 오메가에게 속아 넘어간 거라 말해 주겠다. 어떤가.”

커틀러는 대번포드 백작의 제안을 검토해 보기 위함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사람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뜸을 들였다. 증인으로 참석한 귀족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고 로열 가드를 먼저 쳐야 했다. 두셋쯤이면 문제없는데 여덟 명이라니. 냉정하게 판단하면 가망 없다. 램파드가 일어나 도와준다면 또 모를까. 혼자서는 턱도 없는 숫자지만 일이 엎어진 마당이니 도전해야 했다.

“설령 여기 모두를 죽인다 해도 귀족을 살해했다는 죄를 벗어나기 힘들 거다.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공작 작위 같은 건 미련 없다.”

적의 위치를 모두 파악한 커틀러가 비웃었다. 백작 쪽의 숫자가 월등히 많으니까 이야기를 할 시간에 덤벼들면 될 터. 협상을 시도하는 걸 보아하니 커틀러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전투에서 겁을 먹으면 이길 것도 패배한다.

“저 오메가에게 반한 것이냐. 어차피 후계자는 가져야 한다. 원한다면 자네가 임신시킬 수 있게 해 주마.”

“그 제안은 좀 끌리는군. 하지만 램파드를 어찌할지는 내가 선택한다. 백작 따위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나에게 제안하는 거지.”

“모든 걸 잃어도 좋다는 거냐. 서로 피를 안 보면 좋지 않은가!”

“네 목숨이 아까운 거겠지.”

“하,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콘테 공작가도 이제 끝이로군. 자네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까지 모두 반란죄로…….”

대번포드 백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짧은 궤적을 그린 커틀러의 검이 시끄러운 입을 놀리는 백작의 머리를 잘라 버렸으니까. 붉은 피가 튀어 올랐고, 다른 귀족들은 몸이 굳어 옴짝달싹 못 했다.

커틀러가 공격을 시작하자 로열 가드가 태세를 정비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커틀러는 심어 둔 심복에게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조용히 이동해 입구 문을 잠가 혹시라도 남은 귀족이 도망갈 퇴로를 차단했다.

“너는 틈이 생기는 대로 램파드를 데리고 도망쳐라.”

“알겠습니다.”

커틀러는 한스가 끌어안은 램파드를 살폈다. 얼굴을 잔뜩 붉히며 거친 숨결을 몰아쉬는 램파드는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다가오는 로열 가드의 위치를 확인하느라 램파드를 오래 살피지 못하고, 적들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커틀러…….”

“전에 말한 유서 같은 건 만들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딴 건 상관없어. 여기서 관둬……. 죽을 셈이냐!”

“드디어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네.”

램파드는 통증에 배를 감싸며 커틀러를 바라봤다. 램파드 못지않은 고집은 한번 발동되면 꺾기 쉽지 않다.

“약속했지만 품은 못 빌려줘. 내키진 않지만 첫 번째에게 부탁해.”

오메가는 보호자를 정한 다음 성숙해지면 반려를 찾는다. 램파드는 처음 히트 사이클을 겪을 때 곁을 지켜 준 그를 보호자로 삼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아래에 들어가 비호를 받고 싶은 것보다 동등한 관계를 원했다.

커틀러가 두 번째니까 각인이 풀리지 않은 거였다. 언젠간 풀린다면 애쉬 쪽이겠지.

램파드를 흘끗 바라본 커틀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믿지 않을 것 같았는데.”

“……왜 말하지 않은 거냐.”

“남부 전선에서 알게 되었으니까.”

남부 전선, 정확히는 쿠와트 숲에서 화이트 테일 기사들에게 윤간당한 이후 커틀러를 믿지 않게 되었다. 사실을 밝혀 봤자 강하게 부정하며 커틀러에 대한 증오를 한층 더 키울 게 분명했겠지.

이미 오래전 커틀러를 선택했으면서 확신이 서지 않아 자신의 마음을 힘껏 부정해 온 것이다.

“여기서 내가 모두를 죽이지 못한다면 그 뒤는 네가 선택해. 정무 따위 내팽개쳐 버리고 평생 숨는 것도 가능할 거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관둬.”

“나 또한 계획 없이 행동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해볼 때까진 해봐야지.”

태세를 갖춘 로열 가드가 커틀러에게 외쳤다.

“커틀러 콘테 공작 각하,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아 주십시오.”

“누구에게 명령하는 것이냐.”

싸늘한 눈매에 로열 가드가 찔끔했다.

“부탁드립니다. 더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커틀러는 자신을 둘러싼 기사를 바라봤다. 발정제의 영향으로 히트 사이클과 유사한 상태가 된 램파드의 몸에서 흘러나온 페로몬이 알파에게 영향을 끼치는 중이었다. 로열 가드 중 둘,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숨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알파가 하나 더.

커틀러는 검 끝으로 근처 음식 수레를 덮은 천을 들어 올렸고, 웅크려 숨어 있는 어린 알파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만 봐도 황족의 혈통이란 걸 알 수 있어 기가 찼다. 이놈의 혈통은 무모한 짓을 하도록 뼛속부터 설계되었나.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로열 가드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요청드립니다. 무장을 푸십시오.”

“거절하지.”

상대가 알파라면 페로몬으로 짓누르면 된다. 살기를 머금은 우성 알파의 페로몬에 로열 가드 중 두 명이 괴로워하며 뒷걸음질 쳤다. 대열이 무너진 틈 커틀러가 빠르게 접근해 갑옷으로 무장한 로열 가드의 목을 뚫었다.

투구와 가슴 갑옷의 이음새 사이, 빈틈을 파고든 얇은 검날을 따라 붉은 피가 흘렀다. 비명횡사한 로열 가드의 몸뚱이가 둔탁한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단시간에 세 명이나 제압당했는데, 황성의 엘리트들은 물러서지 않고 기합과 동시에 달려들었다.

“램파드 폐하, 저희는 이동하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지만, 그랬다간 커틀러의 행동이 무의미해진다. 다른 시종이 가세해 램파드를 부축하고, 비밀 통로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도망가는 램파드를 발견한 로열 가드 중 한 명이 커틀러와의 전투에서 벗어나 막아섰다.

“어딜 도망가시는 겁니까! …아악!”

방어를 포기한 커틀러가 램파드에게 달려간 로열 가드의 등을 꿰뚫었다. 빠른 동작으로 다른 적의 검을 막아섰지만, 상처를 입는 건 피하기 힘들었다. 어깨에 열상이 느껴졌지만 살펴볼 겨를은 없었다. 목격자를 모두 제거할 때까지 아픔을 외면해야 했다. 최소한 램파드가 벗어날 때까진 버텨야 하니까.

등 뒤에 위치해 보이지 않지만 황홀할 정도로 달콤한 페로몬 향이 계속 뿜어져 나와 램파드가 자리를 지킨다는 걸 알았다. 각인한 오메가의 향은 진실로 매혹적이다. 당장 그를 끌어안아 빠져들고 싶은 매력적인 사랑의 향. 당장에라도 품에 넣고 싶지만 보내야 했다.

커틀러가 심호흡하며 소리쳤다.

“가!”

한스가 램파드를 이끌었고, 심문실에서 벗어났다.

지켜야 할 사람이 없어진 커틀러는 한숨 놓고 검을 단단히 쥐었다. 그는 적들을 향해 숨김없이 살의를 내보였다.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로열 가드는 기세가 한층 꺾여 한 발씩 물러서며 주춤거렸다.

커틀러의 찌르기 위주의 검법은 다음 동작을 이어 가는 준비 시간이 길다. 공격적인 검술은 방어가 허술해 다수를 상대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실력과 힘을 갖추면 갑옷을 꿰뚫고 숨겨진 급소를 찔러 상대를 빠르게 제압할 수 있다.

로열 가드들은 다수로 덤벼드는 것이 해결책이었지만 가장 먼저 커틀러의 표적이 된 자는 필연 죽어야 한다. 각오를 다진 자가 없는지 서로 눈치를 볼 뿐,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전투에서 겁을 먹다니. 커틀러는 대열에서 조금 벗어난 로열 가드를 노렸다. 심장이 위치한 흉갑을 노렸지만 로열 가드의 방어로 가슴이 아닌 팔을 꿰뚫었다.

“으윽!”

큰 상처를 입은 로열 가드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반대 손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질을 피한 커틀러는 꽂힌 검을 빼내기 위해 힘을 줬지만 베기에 적합한 램파드의 검은 검신이 부드럽게 휘어 빠지지 않았다. 커틀러가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공격당한 로열 가드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콘테 각하, 아니 커틀러 경. 마지막 경고입니다. 저항은 그만두십시오.”

“기사가 패배를 선언하는 건 검을 쓸 수 없게 됐을 때다. 램파드에게 배우지 못한 거냐.”

“빠지지 않는 검을 가지고 어쩌자는 겁니까. 계속 쥐고 계신단 말입니까.”

당황할 법한 상황에서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커틀러가 손을 뗐다. 그리고 무릎을 꿇어 몸을 숙였다. 무기가 없으니 포기하고 항복을 하려나 싶었다. 하지만 허리를 굽힌 커틀러는 가장 처음 일격에 죽인 기사가 쥔 검을 잡고, 로열 가드의 턱 아래에 찔러 넣었다. 관통한 검을 빼내 들 때 로열 가드였던 시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모두 한꺼번에 공격해라!”

계속 겁먹고 자리를 지켜 줬으면 좋겠지만, 그들은 커틀러가 포기하지 않음을 깨닫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격전이 벌어지자 커틀러에게 유리한 형태가 손쉽게 뒤집혔다. 일격을 넣기 전, 다른 쪽 공격이 들어오니 로열 가드를 죽이기 쉽지 않아졌다.

죽이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하나씩 쓰러뜨리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커틀러의 계획을 알아차린 로열 가드는 여유가 생겼다. 일격에 당할 걱정이 없어져 갑옷을 입은 몸을 날려 커틀러와 강하게 부딪혔다. 천 옷을 입은 어깨가 단단한 쇠갑옷과 마찰했다. 보호받지 못한 어깨의 상처가 벌어졌고, 불에 덴 듯한 충격이 왔다.

로열 가드는 투구를 쓴 머리로 커틀러의 이마에 돌진했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큰 종이 울리는 듯 쇳소리가 지속해서 들리며 어지러워졌다.

“큿!”

단단한 쇠갑옷에 짓눌린 팔뼈가 부러졌는지 큰 통증이 일었고, 무덤덤한 커틀러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호위 기사 자격으로 심문에 참석했다면 로열 가드와 마찬가지로 무장했을 텐데. 보고할 요량으로 정복을 입은 게 화근이었다. 역시, 계획 없이 행동하는 건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두통에 한쪽 눈을 찌푸린 커틀러와 거리를 벌린 로열 가드가 말했다.

“램파드 폐하를 어디로 빼냈는지 알아야 한다. 산 채로 포위하도록.”

커틀러는 머릿속이 윙윙 울려 긴 한숨을 내쉬곤 반대 손으로 검을 고쳐 잡았다. 커틀러가 오른손만 쓰는 서왕국식 검술을 구사한다는 것은 제국의 기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왼손으로 고쳐 쥐어 봤자 위력을 완전히 끌어 내긴 어려울 터.

“주력기가 아닌 이상 저희를 이기기 힘듭니다. 여기서 더 다치기 싫으시다면 손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왜 한 손 검을 쓰는지 아느냐. 한쪽이 다치면 남은 한 손을 사용하기 위해 왕국 검술을 선택한 것이다.”

로열 가드는 커틀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전세가 불리해지면 도발이나 배짱을 부려 위기 상황을 모면하는 건 전투의 기본 자세였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제국의 귀족이라면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따라 주십시오. 명예마저 저버리실 겁니까.”

찢긴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커틀러의 시야를 가렸다. 그는 검을 쥔 손의 등을 사용해 눈가를 닦으며 비웃었다.

“명예라……. 검에 맹세한 대로 주군을 지키는 일이 명예롭지 않단 거냐.”

“램파드 폐하께서 오메가라면 주군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무의미한 행동입니다.”

커틀러를 설득시킨다며 시간을 끌어 준 덕분에 울리던 머리가 한층 진정됐다. 왼손에 든 검을 가볍게 휘둘러 본 커틀러가 근처에 있는 음식 수레를 발로 뻥 차 버렸다. 바퀴가 달린 음식 수레는 충격에 굴러갔고, 속에 있던 아이가 튀어나왔다.

“……어린아이?”

로열 가드는 피투성이 전장에 나타난 아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약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커틀러는 주저 없이 어린아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마음 약한 로열 가드 중 하나가 보호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자를 죽이는 건 손쉽다. 그는 등을 내보이는 로열 가드의 가슴을 뒤에서 꿰뚫어 생명을 앗았다. 어린아이를 이용한 비열한 모습에 남은 두 명은 기가 질렸다.

“으… 아아악!”

치지 않으면 죽는다. 공포에 질린 로열 가드가 기합과 함께 달려들었고, 이성을 잃은 자를 쓰러뜨리기도 손쉬웠다. 남은 한 명은 바닥에 검을 떨어뜨리며 항복 자세를 취했지만, 목격자를 살려 둘 수 없기에 천천히 다가가 이마를 꿰뚫었다. 페로몬에 굴복한 알파 둘도 잊지 않았다. 그는 웅크리고 덜덜 떠는 로열 가드까지 잊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콘… 콘테 공.”

피가 묻은 검을 대충 흔들어 털어 낸 커틀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귀족에게 다가갔다. 흰색으로 착각할 정도로 밝은 은발이 원래 색인 것처럼 붉었다. 피로 엉망인 얼굴은 하얀 피부를 가졌기에 붉은색이 더욱 돋보였다. 죽음을 뒤집어쓴 그의 표정은 담담하여 오히려 공포감을 조성했다.

“……힉!”

피를 뒤집어쓴 커틀러의 모습에 귀족 중 하나가 신음을 흘렸다.

그렇게나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리를 지킨다. 책상에 앉아 정무만 논하는 자들이라 도망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죽일 자들. 말을 섞는 건 무의미하기에 가장 가까이 있는 후작의 가슴을 찔렀다. 다른 사람이 죽는 모습을 두렵게 바라보던 귀족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폐하께서 설령 오메가라 해도 따르고 모실 생각입니다. 여기 앉은 자들도 모두 그리 생각할 테죠.”

쓰러지는 후작의 시신을 바닥에 던지듯 쓰러뜨린 커틀러가 미소 지었다.

“목숨이 아까워 그리 내뱉는 거겠지. 바깥에 나가는 대로 달라질 대답에 내 검이 멈출 것 같나.”

“냉정하게 생각해서 판단한 겁니다. 오메가란 이유 하나만으로 폄하하기엔 폐하께서 세운 업적이 너무나도 크니까요. 모두가 이해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받아들일 겁니다.”

“램파드가 들으면 기뻐하겠군. 의심 한 톨 없이 믿을 것이고.”

커틀러가 긍정에 가까운 반응을 하자 다른 귀족도 용기를 내 말했다. 엉망이 된 영지를 회복하기 위해 램파드가 고심해서 뽑은 귀족이었다. 두려움에 떨어도 잘잘못을 판단할 능력을 충분히 갖춘 자들은 바른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다.

“아까 들은 이야기로는 후사까지 가졌다고 말하셨죠. 폐하께서는 황제의 의무를 모두 수행하신 것과 마찬가지군요. 지금 당장 진실을 밝힐 순 없지만 때가 온다면 기꺼이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커틀러도 익히 아는 귀족들이었고, 목숨이 아까워 내뱉는 허황한 소리는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온전히 믿기에는 램파드가 짊어진 위험 부담이 컸다. 바른 소리를 내뱉는 귀족은 몸을 잘게 떨며 커틀러가 판결을 내리길 기다렸다.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램파드를 지킬 자는 나 한 사람이면 됐다. 커틀러는 반항하지 못하는 귀족의 목숨을 모두 빼앗고, 엉긴 피를 코트 자락에 닦았다. 피로 얼룩덜룩해진 옷에 기다란 붉은 선이 생겼다.

“그게 숨어 있는 거냐. 끌어내기 전에 나와라.”

“나와도… 죽일 거잖아요.”

커틀러는 쓸모없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다시 음식 수레 안으로 숨어들어 간 라이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마지막까지 살려 뒀으니 혹시 봐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엔 커틀러는 자비 없는 자였다. 어린아이를 살려 둔 것은 동정심이 생긴 게 아닌 가장 손쉬운 상대라 마지막에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로열 가드와 귀족을 쓰러뜨리고 나면 체력 소모가 심하다. 어린아이는 반항해도 얼마 없는 힘으로 쉽게 죽일 수 있으니까.

그 짧은 시간 커틀러를 파악한 라이는 살 궁리를 하며 자그마한 머리를 굴렸다. 설득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힘으로는 더더욱 어쩔 수 없다.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뿐.

라이는 하얀 천을 들어 올려 천천히 수레 밖으로 빠져나왔다. 램파드와 똑같은 허니 블론드를 가진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 커틀러를 향해 살포시 미소 지었다. 공포가 섞인 미소였지만 돋보이는 외모 덕분에 누구나 아름답다 칭할 웃음이었다.

막 아카데미를 입학한 램파드와 닮은꼴의 모습이지만 커틀러는 검을 단단한 쥐었고,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라이의 작은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아… 아프지 않게……. 살살해 주세요. 부탁… 이에요.”

아이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커틀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인간이 자비가 눈곱만큼이라도 없는지. 라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음식 수레 손잡이를 꽉 붙잡고 섰다.

“더러운 피가 섞여도 꼴에 황족이라고 배짱은 있구나.”

“황족이니까…… 살려 주시면 안 되나요?”

커틀러의 눈빛은 싸늘했고, 살기에 놀란 라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말을 해도 설득되지 않을 눈이었다. 시선이 바닥으로 향해 있는 라이는 가까이 다가오는 커틀러의 발을 바라봤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넓은 회장을 가로질러 빠르게 걸어오는 중이었다.

서두르는구나. 마지막 목격자를 제거한 뒤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야 할 테니까. 심호흡을 크게 한 라이는 쥐고 있는 수레에 등을 기대 창문 쪽으로 힘껏 밀어 버렸다. 두꺼운 벨벳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창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확률은 반반. 벨벳 커튼을 젖히고 유리와 부딪힌 음식 수레가 식기를 쏟아내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커틀러의 눈가가 꿈틀댔다.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났네요. 이제…… 다른 경비가 빠르게 찾아오겠죠?”

커틀러가 뒷수습하고 도망칠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단 뜻이었다. 맹랑한 짓을 하는 라이를 베어 버리기 위해 커틀러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라이는 주저 없이 자신이 밀어 버린 수레가 만든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아래층에 놓여 있던 음식 수레에 숨어들었기에 심문실이 몇 층인지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수레가 떨어지는 소리로 보아 2층 정도밖에 안 되는 높이인 것 같았다. 뛰어내려 볼 법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무섭고 두렵지만, 여깄다간 커틀러에게 확실히 죽을 테니까.

라이를 붙잡기 위해 커틀러가 빠르게 다가왔지만 라이는 이미 손을 떠나 수레 옆 풀숲으로 떨어졌다. 먼저 떨어진 음식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에 정원에서 일하던 시종들이 모여들었고, 풀숲에 쓰러진 어린아이를 살피기 위해 다가갔다.

“쯧.”

저런 잔망스러운 짓거릴 할 줄 아는 아이였다니. 어린아이라 마지막으로 두었건만, 꾀를 쓸 줄 아는 아이란 걸 알았더라면 진작에 베어 버렸을 거다. 커틀러는 자신의 실책에 성이 나 주먹으로 벽을 쳤다.

“램파드 폐하! 폐하, 무사하십니까!”

문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미리 지시해 시종이 문을 잠가 둔 덕분에 잠시 여유가 생겼지만, 로열 가드가 힘으로 문을 부수며 들이닥쳤다.

황제를 보호하던 로열 가드는 전원 죽어 있고, 피투성이가 된 심문실 안에 산 자는 검을 든 커틀러 한 명뿐이었다. 그들은 죽은 귀족들을 발견하고 신음을 흘리며 커틀러에게 다가갔다.

“커틀러 경… 이 무슨…….”

검을 쥐고 있는 게 부질없어진 커틀러는 바닥으로 무기를 내동댕이치고 다친 어깨를 감싸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낮은 높이에서 떨어졌지만, 충격받은 라이는 일어나지 못했다. 라이를 둘러싼 시종들이 시끄럽게 소리치는 걸 보아하니 목숨이 붙은 거다.

당장 창문을 뛰어넘어 어린아이의 목을 꺾고 싶건만. 다친 몸으로는 이 정도 높이를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

“폐하께서는 어디 계시는 겁니까.”

커틀러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를 뒤로한 기사들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살폈고, 하나같이 일격에 쓰러진 모양새로 보아 누구의 소행인지 쉽게 추측했다. 이 정도의 정밀한 찌르기 공격을 구사하는 자는 제국 내에 몇 되지 않기에.

“화이트 테일의 커틀러 콘테 경. 당신을 귀족 살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커틀러를 빙 둘러싼 여러 명의 로열 가드가 검을 뽑아 들어 목에 가져 댔다. 인간을 초월한 실력을 갖춘 램파드라면 모를까. 아무리 검을 배운 우성 알파라도 이 정도 숫자의 로열 가드를 상대하기엔 승산 없다. 그는 반항 없이, 조용히 포박을 받아 황성 지하 깊은 곳. 알파를 위해 만들어진 감옥에 갇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