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시선의 끝
“흐윽… 흣……. 흣, 죄… 죄송… 합니다.”
“무엇을?”
“감히… 황제 폐하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린 일을 사죄드립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 시오.”
황궁 내에 있는 감옥. 한때 황의였던 남자가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자는 오늘 처형하기로 예정되었다. 목을 날려 버리기 전 확인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심문을 하기 위해 찾았다. 직접 고문할 필요는 없을 터인데, 어제 서임식에서 있었던 일로 짜증이 극에 치달은 램파드는 직접 진행했다.
“시작해라.”
“예, 폐하.”
팔짱을 끼고 있는 램파드 곁에 있는 기사가 황제의 턱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의의 복부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으아아아악!”
칼에 찔린 황의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를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이 절그럭거리며 요란스레 움직였다.
“빼내라.”
지혈 역할을 하던 단도가 뽑혀 나가자 황의의 아랫배에서 폭포수처럼 피가 쏟아졌다.
“의술을 공부하던 자니까 잘 알겠군. 배에 칼을 찔러 넣어도 단번에 죽지 않는다. 몸속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갈 때까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갈 테지.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저는 흐으윽, 아무런 지시를 받지 않았… 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램파드는 기사가 쥔 피 묻은 단도를 뺏어 황의의 상처에 또다시 쑤셔 넣었다. 자신이 만든 열상도 아닌데, 상처 난 부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단번에 찔러 넣는 솜씨에 기사는 감탄했다. 그와 반대로 황의에게는 끔찍한 행동이었다. 단도 덕분에 흘러내리던 피가 틀어막혀졌지만, 날붙이가 선사하는 고통에 몸을 파드득 떨며 괴로워했다.
램파드는 쥐고 있는 단도를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틀었다. 감옥 가득히 고통에 절은 신음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악!”
“다시 한번 묻겠다.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사실대로 고해라.”
“정… 정말 아무한테도… 지시를 받은 게… 아니옵니다. …폐하가 오메가라는… 낭설을 말하는 시종과… 술을 마시다 저도 모르게… 내뱉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딱 반나절. 램파드의 방 앞을 낯선 시종 하나가 지켰다. 그 시종이 먼저 황제의 뒷담화를 꺼내기에 엉겁결에 억제제 의뢰 사실을 내뱉게 되었다고 한다.
입을 싸게 놀린 다른 시종의 답 또한 같았다. 어느 한 시종이 먼저 말을 꺼냈기에 저들 멋대로 추측을 내뱉은 게 전부였다.
문제는 사건의 중심이 된 그 시종은 황의를 잡아들이기 전, 살던 집에 불이 나 덩달아 타 죽었단 것이다. 증거가 깔끔하게 인멸된 듯한 느낌이 석연치 않았다.
“입을 놀린 다른 시종을 모조리 잡아 와라.”
황제의 명에 소문을 퍼뜨린 시종이 몇 명 잡혀 들어왔다. 바른말을 내뱉도록 차례차례 고문해 봐도, 램파드가 오메가였다는 소문은 그저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는 것뿐이었다.
가장 처음 소문을 퍼뜨린 죽어 버린 시종이 무슨 생각으로 입을 열었는지, 결국 알 수 없게 되었다.
다음 날. 입을 놀린 몇 명의 시종은 본보기로 혀가 뽑혔고, 황의는 목과 몸이 분리됐다. 램파드가 소문에 대해 날을 세우며 반응하자 귀족 또한 입을 다물었다. 굳이 귀족의 입을 단속하지 않아도, 이제는 램파드보다 커틀러에게 관심이 조명됐다.
알파의 숫자가 워낙에 귀하다 보니 베타가 황제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알파를 성 노리개로 삼았다. 램파드가 그러한 행동을 했다면 선례가 있으니까 변태 취향으로 넘어갔을 터. 커틀러는 우성 알파라는 놈이 황제의 노리개가 되고 싶다며 스스로 밝힌 꼴이었다.
과거 아카데미에서 좆을 아무 데나 쑤시고 다닌다고 소문났던 것과 똑같다. 많은 숫자의 귀족 앞에서 거북하다는 황제에게 자신을 오메가 취급해도 좋다고 말해, 커틀러만 이상한 놈이 되어 버렸으니까. 심지어 저런 미친놈과 오랜 세월 친구였다는 황제가 불쌍하다는 의견조차 들렸다. 결과적으로 램파드가 오메가라는 소문이 쏙 들어갔으니 커틀러에게 도움받은 셈이었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침실로 돌아온 램파드는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커틀러가 건네준 억제제도 이제 한 알밖에 남지 않았다.
커틀러가 자신을 돕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인가. 서임식 당일은 커틀러가 자신을 시험했다고 생각해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커틀러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소문을 없애기 위해, 커틀러는 자기 자신을 희생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
커틀러는 여러 번 몸을 탐한 오메가에게 각인하지 않았다. 램파드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도움을 줬다면 아마도 아카데미 때와 같이 우정을 기반으로 벗을 도운 거겠지.
한쪽은 배신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미련 넘치는 머저리고, 다른 한쪽은 각인하지도 않은 오메가의 몸만 탐한다. 친구라 하기에는 과하고, 연인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괴이한 관계였다.
이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 옳은 걸까. 제대로 내칠 기회가 온 지금, 끊는 것이 맞는 걸까.
한 알밖에 남지 않은 억제제가 빨리 답을 내라며 재촉하는 듯했다.
***
황궁에는 본궁과 떨어진 외곽에 지하 감옥이 존재했다. 지하 감옥은 페로몬을 내뿜을 수 있는 알파와 오메가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 창문이 존재하지 않고 아주 작은 숨구멍 같은 틈만 여러 개 뚫려 있는 감옥은 페로몬의 영향을 받지 못하게 꾸며졌다. 일반 감옥과 비교하면 벽이 두껍고, 죄수들은 모두 홀로 지낸다.
오메가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끌려오기 전에 즉결 처분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알파는 어지간한 죄는 봐주다 보니 감옥 안은 텅 비었다.
지금 이곳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는 한 명뿐이었다.
램파드는 제일 안쪽에 있는 감방의 자물쇠를 열쇠로 풀었다. 그는 두꺼운 문을 열자마자 종이 뭉치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촤르륵, 여러 장의 종이가 바닥에 흩뿌려졌고 의자에 앉아 있던 죄수의 눈길이 바닥을 향했다.
“이게 뭡니까.”
“모두 네놈 공으로 해 뒀다. 거기서 다 읽고 나와.”
커틀러는 램파드가 흩뿌린 서류를 집어 들었지만 실내가 어두워 글씨를 읽기 힘들었다. 램파드가 손에 든 램프를 천장에 매달자 방이 훤해졌다. 도입부를 읽기 시작한 커틀러가 입을 열었다.
“남부 지방에 발정제가 불법으로 유통되었습니까? 금시초문인걸요.”
애쉬가 발정제를 구한 걸 두 눈으로 직접 본 램파드는 황궁에 돌아오자마자 그 일부터 해결했다. 직속 기사들 몇 명만을 부려 조용히 해결한 일이기 때문에 커틀러가 모르는 건 당연했다.
“몰랐어도 상관없다. 이제부터 네가 해결한 일이니까 제대로 알 수 있게 전부 다 외워라.”
“이건 또 뭡니까. 홍수로 파괴된 북부 지방의 하천 수리를 지시하러 직접 가셨던 겁니까? 제가 그 지방 사람의 절반을 몰살시켰으니 찾아갔다면 돌만 맞았을 텐데 말입니다.”
“…….”
“거기 있던 북부 지방민들은 제가 아닌 황제 폐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테지요.”
“수리를 통솔한 자는 화이트 테일의 기사단장이다. 그리 바꿔 두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눈에 띄는 게 싫어 평복을 입고 조용히 지시했으니 날 본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억제제가 얼마 없어 오래 머물지 못했고, 신분 또한 밝히지 않았으니까 나인 것을 모를 테지.”
서류를 읽어 내리던 커틀러가 입을 가리고 등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마지막 장은 증언서였다. 착실하게 황제의 친필과 황실의 문장이 찍혀 있는 공식 서류였다.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램파드가 종이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서임식 전, 술에 취했다는 진술서다.”
“저는 술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위치는 황궁에서 북쪽으로 2마일 정도 떨어진 술집이다. 30명에게 증언을 받았으니, 네놈은 그날 심하게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램파드 폐하,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말 한마디만 해 주시면 저의 모든 걸 드릴 수 있습니다.”
“다 읽었으면 이만 나와라.”
램파드가 커틀러의 말을 무시하고 끊으며, 그가 든 서류 중 증언서를 제외하고 모두 뺏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온 램프 안에 든 초를 사용해 하나씩 재로 만들었다. 커틀러의 시선은 램파드가 열고 들어온 출입구에 고정됐다.
“혼자 오신 겁니까.”
“그래.”
“제가 나갈 것이 아니라 폐하께서 계속 계셔야 할 거 같지 않습니까? 제가 드린 약, 오늘부로 떨어졌지 않습니까.”
“상관없어. 알파인 네놈이랑 했으니까 약 같은 건 먹지 않아도 두 달 정도 히트 사이클을 겪지 않을 테지.”
“그렇지만 폐하께서는 페로몬을 제대로 갈무리할 줄 몰라 무의식중에 흘러나오잖습니까. 약이 없으면 불안해서 멀리 나가지도 못하시면서. 어떻습니까, 이 기회에 약이 아닌 저에게 의존하시는 건.”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얼른 나와. 다시 가둬 놓기 전에.”
커틀러는 남아 있는 증언서를 보란 듯이 팔랑팔랑 흔들었다. 가볍게 흔드는 동작이 위협적이게 느껴졌다.
“저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램파드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저걸 직접 건네주는 게 아니었는데. 협박거리를 손에 쥐여 준 꼴이었다.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올지 말지 결정하십시오. 제가 폐하를 해치기라도 하겠습니까?”
“아니지.”
“제 행동으로 돌던 소문이 싹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래. 네 말대로.”
“저의 도움을 받으셨군요.”
“…….”
“다음번엔 마음껏 하게 해 준다고 하셨죠. 누추하지만 들어오십시오. 걸친 옷은 전부 입구 근처에 벗어 놓으시고요.”
커틀러는 뱀 같은 혀를 놀리며 말했고, 램파드는 그의 말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왔다. 물론 옷을 벗으라는 뒷말은 무시했다.
램파드는 의자에 앉아 있는 커틀러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이 며칠 전 후려쳐 놓은 볼은 아직도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일부러 의료 지식이 있는 간수를 붙여 약을 쓰게 만들었는데도, 생채기가 남았다. 알파는 회복력이 좋아 상처가 빨리 아물 텐데 그만큼 깊은 모양이다.
“너 볼이 아직도…….”
커틀러는 가까이 다가온 램파드의 손을 낚아챘다.
“저 같은 거보단, 폐하께서는 자신의 몸이나 신경 쓰십시오. 다친 손이 아직 낫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는 램파드의 손등에 이마를 문지르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시늉을 보였다. 커틀러의 어금니가 빠질 정도로 강하게 쳤으니 램파드의 손등은 찢겨 상처가 생겼다. 그렇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램파드는 이미 처치를 끝낸 작은 상처보다 부어오른 커틀러의 볼을 보자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얼굴이 신경 쓰이십니까.”
“조금.”
“신경 써 주시니 좀 더 크게 다쳐야 할 거 같네요. 온종일 저만 보실 수 있게.”
“일부러 다쳐 오지는 마.”
“글쎄요. 생각해 보고요.”
손을 잡은 그가 램파드의 몸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인가, 램파드는 커틀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순순히 응해 줬다.
램파드는 그의 어깨에 양손을 딛고, 커틀러의 쪽으로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입술이 진하게 부딪히자 입 안쪽이 아픈 커틀러가 먼저 입술을 떼어 냈다.
“아픈가?”
램파드가 걱정스레 물어보았지만, 커틀러는 답 없이 다시 한번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 위에 램파드가 걸쳐 앉게 하여 입술을 포개 조심스레 혀를 섞었다. 서로의 향을 조금씩 느끼며 천천히 혀를 섞었지만, 커틀러가 흠칫거리기에 이번에는 램파드가 입을 떼어 냈다.
“…다 나으면 해.”
“괜찮습니다.”
괜찮긴 무슨, 부드러운 혀로 입 안을 조금 건드렸는데 반응을 하면서. 램파드는 커틀러의 무릎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그는 되레 단단하게 속박했다.
“미안하면 빨리 끝낼 수 있게 협조해 주시죠.”
커틀러의 손이 램파드의 머리 위로 올라왔고, 힘을 줘 내렸다. 눌리는 힘에 반항하지 않고, 무릎을 꿇자 커틀러의 다리 사이에 머리가 있게 되었다.
커틀러는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게 무엇인지 램파드는 확실히 알았다. 알고 있지마는 손과 입이 움직여지지 않아 머뭇머뭇했다. 무릎을 꿇은 램파드와 달리 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커틀러가 발기하지 않은 성기를 꺼내 쥐었다.
“설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가 알려 드려야 하는 겁니까?”
“……알고 있어.”
그는 움직이지 않는 램파드의 볼을 페니스로 툭툭 쳤다. 발기하기 전인데도 탄력 있는 커틀러의 성기가 탁, 탁 볼에 닿았다. 원체 큰 살덩어리다 보니 무시하긴 힘들었다. 여러 번 얼굴에 좆이 닿은 램파드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몇 번 하셨던 거잖습니까.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한다면 이번이 두 번째다.”
“의외네요.”
처음은 전쟁 중에 쓰러지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당했고, 그 뒤로는 램파드 입에 제 좆을 집어넣으려던 사내들은 모두 주먹질에 쓰러졌다. 뒤는 내줘도 입은 싫다. 성기가 아닌 입맞춤도 불쾌해 거부한 마당에 남근을 빨았을 리 없다.
“대체 내가 뭘 하고 다녔다고 생각하는 거냐.”
“창부랑 똑같은 짓을 한다 생각했죠.”
“뭐……?”
램파드의 눈가가 씰룩거렸지만, 커틀러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각인한 오메가가 짝을 놔두고 다른 이를 찾아다녔으니까요. 혹시 해서 묻는데 그 첫 상대가 이번에도 애쉬입니까?”
커틀러가 페니스로 램파드의 볼을 꾹꾹 눌렀다. 뭐에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힘을 줘 누르는 통에 볼살이 이빨에 눌릴 지경이었다.
“그자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거냐.”
“폐하, 답해 주십시오. 근본도 없는 서민 놈이 당신의 입까지 사용했는지.”
애쉬의 이름을 내뱉은 커틀러는 거북해하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볼을 꾹 누르고 있는 페니스에 고개가 돌아갈 지경이었다. 이대로 볼살을 뚫고 입 안에 밀어 넣을 기세로 강하게 찌르는 통해 램파드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슬쩍 빼냈다.
“아니, 그자가 아니다.”
커틀러가 손을 움직였다. 그는 주저없이 고개를 숙여 머뭇거리는 램파드의 턱을 감쌌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페니스를 잡고 램파드의 입술 위에 가볍게 올린다. 긴장한 램파드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 위에 매끈한 성기가 올라갔고 숨을 쉴 때마다 살 냄새와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다행이네요, 제가 첫 번째라서. 베타랑 한 건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누구 마음…….”
램파드가 입을 열자 입술 위를 지그시 누른 성기가 밀려들어 왔다. 커틀러가 한 손으로 좆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램파드의 뒷목을 감싸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다물린 입술이 부드럽게 열리며 입 안으로 성기가 들어왔다. 천천히, 커틀러의 다리 사이로 머리가 끌려가는 통에 자연스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후읏… 으…….”
“생각보다 입이 작으시네요. 좀 더 벌려 보십시오.”
“우… 읏.”
이미 크게 아 벌렸지만, 여전히 목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꾸역꾸역. 뒤로 넣기에도 버거웠던 성기가 입 안 가득히 메워졌다. 턱뼈가 빠질 듯한 통증이 올 때까지 벌려져서야 들어오는 것을 멈췄다. 램파드는 입 안에 들어찬 살덩어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 코로 숨만 내쉬었다. 커틀러는 잠깐은 기다렸지만 긴 인내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하지 못하겠다면 제가 움직이죠. 그냥 입만 벌리고 계십시오.”
알파의 페니스는 발기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한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컸다. 말랑한 살덩어리가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막아 버린 듯했다. 커틀러는 램파드의 턱을 붙잡고 뒷구멍에 박는 것처럼 엉덩이를 움직였다. 혀 위에 올라간 남근은 뜨거웠고, 짐승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훈련받는 기사들이 그러더군요. 오메가는 뒷구멍 말고도 입 또한 조인다고. 입도 좋긴 한데, 폐하는 뒷구멍이 더 조이십니다.”
“읍……!”
불쾌함에 눈을 치켜떠 입 속을 유린하는 커틀러를 바라봤다. 아래로 깔아 보고 있는 커틀러와 시선이 마주치자, 자신이 굉장히 낮은 위치에 있단 걸 알게 되었다.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헤매던 램파드의 손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바닥을 딛는 양손에 힘을 주고, 단단한 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후각과 달리 미각으로 느끼는 짐승의 냄새는 역겹게 느껴졌다.
한계까지 벌린 입은 호흡하기 힘들었다. 코로 숨을 쉴 때마다 우성 알파의 짙은 페로몬 향이 몸 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웁, 읏!”
성기 끝이 목젖을 건들자 토기가 급속도로 올라와 배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뱉어내고 싶지만 입 안이 콱 틀어막혀 남근을 계속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성교처럼 허리를 움직이던 커틀러가 페니스를 좀 더 깊숙이 밀어 넣었고, 빈틈없이 구강을 압박한 남근이 점차 단단해졌다. 그냥 넣기도 버거운 페니스가 발기하면 할수록, 램파드는 괴로웠다. 무리할 정도로 벌린 턱이 덜덜 떨렸다. 다물지 못하는 입 밖으로 침이 흘러내렸고, 입 안도 흥건했다.
“후… 폐하, 설마 깨물 생각은 아니죠? 그럴 생각 없으면 입 좀 더 벌려 보십시오.”
여기서 어떻게 입을 더 벌리라는지. 턱뼈를 분리해 사냥감을 통째로 삼켜 먹는 뱀이 아닌 이상 무리였다. 커틀러도 이제야 알아챘는지 더는 요구하지 않고 램파드의 머리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우, …으윽!”
커틀러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짠맛이 섞인 분비물과 침이 섞여 질척질척 찰기 가득한 소리를 냈다.
“후으… 으…….”
미안한 마음이 있어 순순히 따라 줬지만, 램파드의 턱뼈는 한계였다. 더는 입에 물고 있기 힘들어 이빨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머리를 빼냈다. 뒷목을 붙잡고 있는 커틀러가 힘을 풀지 않아 도망은 실패로 끝났지만.
“입 안에서도 노팅이 될까요? 한번 해 볼까요.”
목 안을 짓누르며 슥슥 움직이던 페니스가 뻣뻣해졌다. 정말 이대로 크기를 키워 입을 틀어막을 듯해 화들짝 놀란 램파드가 급하게 몸을 빼냈다. 목젖을 찌르던 성기는 흰 액을 뿜어내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목 안, 혀 위, 급하게 빼내는 통에 입술과 턱 아래까지 정액이 묻어 질질 흘러내렸다.
“하아……. 하… 으…….”
램파드는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입 밖으로 주르륵 흐르는 정액을 닦아 냈다. 커틀러의 페로몬이 섞여 있지만, 타인의 정액이라. 입으로 받아 내긴 역한 맛이었다.
커틀러의 페니스 끝. 갈라진 부분에는 되직한 액이 잔뜩 묻었다. 그는 침 범벅이 된 미끈한 페니스로 램파드의 볼을 또다시 툭툭 쳤다. 미처 나오지 못한 정액이 튀어나와 볼과 옷에 튀어 올랐다. 목깃을 고정한 크라바트와 진주 핀에 정액이 묻어 흘러내렸다.
“옷에 잔뜩 튀었네요. 그러니까 옷은 벗으라고 했잖습니까. 칠칠찮게 옷에 정액이나 묻히시는 걸 보아하니 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실 건가 보군요. 기껏 묻힌 소문을 다실 꺼낼 생각이신지?”
“이 자식……!”
무릎을 꿇은 채 입가를 닦던 램파드가 고개를 들어 올려 쏘아보았다. 커틀러의 손이 다시 램파드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또다시 끌어당겨 좆으로 입을 틀어막을 생각인가. 램파드는 다시 한번 다리 사이로 끌려갈까 봐 긴장했다. 끌어당기는 힘 대신 고압적인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옷 벗으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제가 손수 벗겨 주길 원하는 겁니까.”
보자 보자 하니까. 아파 보여서 한 수 접어줬더니, 어디까지 기어오를 셈인지. 램파드의 주먹이 떨렸고, 커틀러가 아래를 흘끗 바라봤다.
“또 주먹을 휘두를 생각입니까.”
그가 자신의 부어오른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쪽을 한 대 더 맞으면 회복하기 힘드니까, 이왕이면 반대쪽을 때려 주십시오. 하실 수 있다면 말이지요.”
램파드와 시선을 마주친 커틀러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쭉 올라갔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다른 이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맨손으로 덤벼들어 봤자 제압당한다. 그보다 램파드가 아픈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할 거란 걸 알고서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그가 예상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램파드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목 둘레를 두른 크라바트를 고정한 진주 핀을 뽑고, 조끼를 벗어 던졌다. 셔츠는 가장 위에 자리 잡은 단추 두 개만을 푸르고 커틀러의 무릎 위에 걸터앉아 오만하게 상대를 바라봤다.
“나머진 네놈이 벗겨라. 싫다면 이대로 문을 잠그고 나갈 거다.”
“역시 제가 벗겨 드리는 쪽이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순순히 안겨 주는 건데 이런 잡일은 네가 도맡아야지. 안 그래?”
“네, 네. 알겠습니다.”
커틀러는 설렁설렁 답하며 램파드의 옷을 벗겼다. 잠겨 있는 단추를 푸르고, 램파드가 입고 있는 하얀 셔츠를 벌렸다. 지하에 있는 감옥 안은 공기가 서늘해 옷이 벗겨질수록 한기가 느껴졌다. 커틀러의 무릎 위에 어중간하게 앉아 있는 램파드는 추위를 피해 그의 목을 감싸 끌어안았다.
차갑게 식고 있는 피부에 따뜻한 입술이 닿았고 목가에서 쪽, 쪽, 짧은 입맞춤 소리가 지속해서 들렸다. 반대로 옷을 벗기던 손은 매우 느려졌다.
“뭐해, 손이 멈춰 있잖아. 얼른 움직여.”
목에 꿀이라도 발라 뒀는지, 커틀러는 입술을 부딪치고 오물거린다고 바빴다. 그 덕분에 목가와 품 안에서 쪽쪽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감옥에 며칠 있었더니 머리가 돌았나. 아기 새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짓거린지.
“커틀러.”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재촉하지 마십시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작정… 읏!”
부드럽고 말캉한 혀가 목가를 쓱 쓸어내렸고, 램파드는 갑작스러운 감각에 깜짝 놀랐다. 램파드의 목가에 집중하던 커틀러에게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역시 저한테 오메가는 폐하밖에 없습니다. 제 방 앞을 지키고 있던 간수, 직접 뽑으신 자죠? 뭔가 필요한 게 없냐며 꾸준히 물어보더니 어젯밤 오메가 창부를 밀어 넣더군요.”
“뭐?”
목에 달라붙은 커틀러를 한 손으로 밀어 버렸다. 아픈 놈한테 약을 쓰라고 했지 창부를 집어넣으라는 명령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감옥에 가둬 놨다고 하나 황제가 신경 쓰는 모습을 보니, 커틀러에게 잘 보이면 상이 떨어질 줄 안 간수가 제멋대로 군 모양이다.
“반응을 보니 폐하께서 주문한 오메가가 아니었군요.”
“그래서, 한 거냐?”
램파드의 목을 더 핥고 싶은지 그의 시선은 눈이 아닌 목에 고정됐다. 딴청 피우는 커틀러의 양 볼을 부드럽게 감싸 시선을 마주하게 하였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창부를 안았느냐고. 답해.”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하룻밤 상대를 찾은 거라면 상관없다. 각인은 램파드 혼자만 했으며, 그와는 연인 관계도 아니니까 사생활에 간섭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창부를 안은 것은 다른 문제다. 오메가를 물건처럼 샀다는 뜻이니까.
램파드가 그를 믿는 이유 중 하나는 편견에 똘똘 뭉친 다른 이들처럼 오메가를 물건 취급하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램파드가 오메가를 착취하는 창관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커틀러는 잘 안다.
눈꼬리가 삐죽 올라간 램파드를 보며,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폐하께서 절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보냈나 싶었습니다.”
“말 돌리지 마라.”
“옥살이하는 귀족이 성욕을 푸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까. 굳이 물어보실 이유는 없는데 혹시, 질투하시는 겁니까.”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달려들었단 걸 알게 되었다. 램파드가 화를 내는 건 질투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지마는. 아주 약간, 선택한 알파가 다른 오메가와 만났다는 사실이 떨떠름했다.
램파드가 뻐끔거리던 입을 꾹 다물자 커틀러가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낮게 웃었다. 비꼬는 건지, 정말 즐거워서 저러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고운 얼굴에 주름 같은 걸 만드실 필요 없습니다. 말했잖습니까. 당신 말고는 안 선다고.”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양이 줄어들었는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되지요. 한동안 묵혀 두었으니 양이 많을 겁니다.”
감옥 안은 나무로 만든 튼튼한 테이블과 침대가 있다. 커틀러는 굳이 좁은 테이블을 선택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램파드를 앉혔다.
“표정 푸십시오. 폐하가 아닌 오메가를 안을 생각 없습니다.”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램파드는 못마땅해 얼굴을 찌푸린 채였다. 그는 자신의 볼을 램파드에 손등에 대며 올려다봤다. 서임식장에서 보았던 다정한 표정이었다.
“램파드 폐하…….”
“알았어. 알았으니까 멈춘 손이나 마저 움직여라.”
“분부대로.”
커틀러는 미소를 지으며 램파드의 옷가지를 벗기며 테이블 위에 눕게 하였다. 이제 램파드의 몸을 가리고 있는 건 바지와 속옷밖에 없었다.
“침대가 있는데 뭐하러 테이블을 선택한 거냐. 읏, 차가워…….”
“저 침대는 오래돼서 잘못 움직였다간 무너질 거 같더군요. 그에 반해 테이블은 튼튼하니까요.”
“테이블은 좁아.”
죄수들이 식사나 책을 읽도록 놓아 둔 테이블은 매우 좁아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바닥으로 추락하기 십상이었다.
“기쁨에 겨운 폐하께서 스스로 움직이지만 않으면 떨어질 리 없으십니다. 허리를 흔들고 싶어도 얌전히 계십시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읏!”
커틀러는 한숨을 쉬더니 램파드의 한쪽 팔을 잡아 몸을 돌려 테이블 엎드리게 하였다. 갑자기 자세가 바뀐 램파드가 몸을 뒤척거렸고, 부드러운 등 사이. 깊게 팬 곳을 커틀러가 손으로 쓸어내리자 램파드의 등가죽이 흠칫 튀어 올랐다.
“이 자세로 하면 굴러떨어질 리 없겠지요?”
커틀러는 한 손으로 램파드의 바지와 속옷을 벗겨 냈다. 서늘한 바람이 엉덩이를 때리자 입구 주변 주름이 꽉 조였다.
“뒤로는… 아……!”
램파드의 허리를 꾹 누른 커틀러가 예고 없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커틀러가 입술로 쪼아 댔을 때부터 애액이 흘러나왔기에 삽입은 무리 없이 이뤄졌다.
“그러고 보니 이 자세는 처음이군요.”
“하……! 당장… 비켜.”
“할 때마다 이 자세를 피하셨단 걸 잠깐 잊고 말았습니다. 폐하께서 테이블 위에서 추락하실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이런 자세를 취해 버렸으니 용서해 주시죠.”
“너, 일부러!”
“일부러라뇨.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 것이죠.”
시치미 뚝 떼고 있지만 분명 알고 저러는 거였다. 등 뒤에서 누르는 통에 자세를 바꾸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커틀러와의 관계는 늘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정자세에서 이뤄졌다. 욕구 해소만을 위한 상대와는 몰라도, 늘 얼굴을 마주할 사람 앞에서 개처럼 네 발을 짚다니. 감정 교류가 아닌 그저 교미를 위한 자세에 테이블 모서리를 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이미 넣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군요. 이대로 하겠습니다.”
커틀러는 자신의 가슴으로 램파드를 짓누르며 남은 페니스를 박았다. 절반쯤은 부드럽게 찔러 들어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막혀 버렸다.
“폐하, 힘 푸십시오. 아직 남았습니다.”
“네놈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이제 아셨다지만 뭘 어찌하시려고요. 옥살이까지 하는 마당에 뭐가 두렵겠습니까.”
램파드의 엉덩이를 벌린 커틀러가 힘을 줘 강제로 내부로 들어왔다. 오기가 생겨 반항하고 싶은 램파드의 마음과 달리, 내벽은 알파의 좆을 반겼다. 아슬아슬하게 찌르던 전과 비교해 평소보다 깊게 찔러 들어와 내부가 쩌릿했다.
“하으… 으… 으, 읏!”
“이 자세가 좀 더 깊이 들어가는군요. 기분 좋지 않습니까. 전 좋은걸요.”
뒤쪽에서 허리를 퍽, 퍽 치고 올 때마다 테이블이 덜컹덜컹거렸다. 양손을 뻗어 요란스레 움직이는 테이블의 모서리를 잡고, 다리에 힘을 줬다. 쯔걱 쯔걱, 뒤에 있는 커틀러는 마음껏 허리를 쳐올렸고, 강렬한 허리 짓에 램파드의 몸이 앞으로 조금씩 밀려갔다. 커틀러는 빠져나온 걸 용납하지 않는 듯, 허리를 콱 잡더니 자신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아, 아……!”
조금 빠진 만큼 다시 끌려가 푹 꽂혔다. 아까부터 짜릿한 감각이 도는 부분이 급하게 찔려 램파드의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움직임에 맞춰 발기한 성기가 덜렁거렸다.
“평소보다 빠르게 발기하셨네요. 그만 고집 피우고 다리 좀 벌리십시오. 아직 이만큼이나 남아 있습니다.”
양팔을 벌린 커틀러가 램파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내장 아랫부분을 지그시 누르는 성기 덕분에 램파드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듯했다. 두근두근, 테이블에 압박된 가슴에서 들리는 심장 소리가 점차 커져만 갔다. 기분 좋은 게 분명한 심장 소리는 커틀러의 귀에도 고스란히 들렸다.
“좋으면서 끝까지 고집부리시긴.”
말해 봤자 질긴 고집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커틀러는 램파드의 다리를 팔에 걸쳐 한쪽을 들어 올렸다. 남근을 머금은 구멍이 벌려졌고 그 틈으로 페니스가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좀 더 깊은 안쪽이 닿고, 입구부터 시작해 페니스가 들어찬 내부까지 꽉 조여든다.
깊은 곳을 자극당한 램파드는 아랫배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쾌감을 느꼈다. 수치심 같은 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으… 읏, 으응!”
“하아……. 안쪽 끝까지 전부 조이는군요.”
그는 깊게 삽입하고는 멈췄다. 가슴에서 시작된 심장 소리가 내벽을 타고 이어진 부분까지 울리는 느낌이었다. 램파드는 밀려닥칠 자극을 대비해 남근을 물고 있는 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몸속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페니스를 따라 바깥까지 방울져 흘러내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만히 내벽의 조임을 느끼던 커틀러가 다시금 허리를 움직였다.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흐응, 으… 아앗!”
천천히 빠져나갈 땐 꽉 벌려진 내벽이 수축하며 좆의 모양을 모조리 알려 주고, 치고 올 땐 꾹 눌리는 부분부터 쾌감이 터져 나온다. 같은 동작이 반복되며 자극받은 내벽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했다. 커틀러의 작은 움직임에도 경련하듯 내장이 꿈틀 움직였다.
“가끔 이상한 고집 피우시는 거 아시죠?”
커틀러가 말하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안다. 그에게만 오기를 부리는 것 또한 아주 잘 안다. 제 욕을 하고 있는데 함께 손뼉을 쳐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뒤에서 올라오는 자극에만 집중했다. 배 속이 가득 채워질 때마다 뭉근한 자극이 천천히 느껴졌다. 램파드는 커틀러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랫배에 몰두했다. 배 속에 채워진 따뜻한 열기에 집중하자 주변의 소리가 차단되는 듯했다.
“램파드.”
등 뒤의 자극이 점점 잦아들었다. 들썩이던 테이블 다리도 얌전히 땅바닥에 달라붙고, 램파드의 몸에서 나는 질척임도 사라졌다. 이제 들리는 거라곤, 테이블 위에 엎드린 램파드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몰아치는 감각이 줄어들자 몸속을 돌던 열기가 확 피어올라 덥게 느껴졌다. 차갑게 느껴지던 테이블이 이제는 시원했다. 뜨겁게 달뜬 피부를 식혀 주는 감각이 기분 좋아 램파드는 테이블에 달라붙었다.
“램파드, 나한테 집중해.”
서늘한 냉기를 즐기던 램파드가 화들짝 튀어 올랐다.
“하으, 읏… 으……?”
방금, 평소와 다른 음색으로 늘 두르고 있던 얇은 벽을 치워 버린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램파드는 귓불까지 새빨갛게 물들였다. 커틀러의 부드러운 손끝이 뼈가 도드라진 목 뒤를 꾹 눌렀다.
“목 뒤까지 빨개졌네요.”
“방금…….”
“무얼 말입니까? 이 짓 말입니까?”
램파드의 골반에 양손을 올린 커틀러가 허리를 움직였다. 배와 엉덩이가 달라붙자 잦아든 퍽, 퍽 살 치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내벽이 찔릴 때마다 램파드의 신음과 함께 테이블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함께 섞였다.
“으… 앗, 방금……. 하으, 뭐… 뭐라고……!”
“고집 좀 그만 부리라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아집을 버리시면 아랫사람들도 좀 편할 텐데 말이지요.”
“뭐, 흐… 윽, 너나… 잘해!”
“전 제 할 일을 잘하고 있는 걸요. 제대로 잘 박고 있으니까 폐하께서 애액을 질질 흘리시잖습니까.”
찌걱, 찌걱, 쩍, 이어진 부분이 액끼리 뒤섞이며 끈적였다. 투명하고 맑은 액은 반복된 마찰로 점점 걸쭉해졌고, 흰색으로 변해 갔다. 힘줄이 도드라진 커틀러의 검붉은 성기에도 흰 액이 엉켜들었다.
“애액이 굉장히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등 뒤쪽이 안 보이시죠? 안에서 흐른 액이 성기에 끈끈하게 얽혀 들었군요. 굉장히 야해요.”
이 자식, 아무래도 섹스하면서 입을 놀리는 데 재미 붙인 듯하다. 양손으로 테이블을 붙잡던 램파드가 한 손을 풀어 보이지도 않는 커틀러의 배를 밀쳤다. 작은 반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틀러의 배와 램파드의 엉덩이가 퍽, 퍽 달라붙었다.
“아… 아, 하읏……. 응!”
램파드의 귀에도 풀처럼 끈적이며 달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살끼리 닿는 찰진 소리와는 좀 더 다른. 찐득하게 늘어졌다 툭 끊어지는 점도 높은 액이었다. 손의 힘이 점점 풀렸고, 다시 양손이 테이블 끝으로 되돌아갔다.
열기로 가득 찬 이어진 부분에 차가운 바람이 닿았다. 뒤에서 박고 있는 커틀러가 양손으로 다물린 엉덩이를 활짝 벌려 입구를 드러나게 만든 것이다.
뜨거운 성기를 머금은 주름이 활짝 다 펼쳐졌고, 그 곳은 붉게 부어올랐다. 커틀러가 팽팽한 항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름이 전부 활짝 펼쳐졌네요.”
“넣었으니 펴지는 게 당연… 하지……. 그대로면 네가 작은 거…….”
커틀러는 끝까지 지지 않고 쏘아대는 램파드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렇게 팽팽한 걸 보면 제 좆이 큰 겁니까?”
“아, 하으…….”
“폐하, 답해 보십시오. 저는 큰 편인가요?”
“닥… 쳐! 좀, 닥치고 해…….”
“그리고, 아까부터 여기가.”
커틀러의 좆이 특정 부분을 찔렀고, 램파드의 몸 전체가 움찔거렸다. 그는 확인이라도 하는 듯 몇 번 더 램파드의 내부를 쿡 찔렀다. 램파드의 몸이 파르르 경련하듯 떨렸다.
“아… 여기가 오메가의 두 번째 구멍이군요.”
“으, 으……. …힉?”
“드디어 찾았네요.”
커틀러의 좆이 포궁 입구를 꾹 누르자 램파드의 몸에서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아직 히트 사이클이 시작되기까지 한참 남았다. 그렇지만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우성 알파의 페로몬이라면 강제로 열 수 있을 거다.
커틀러는 램파드의 등 뒤에서 아랫배를 감싸 끌어안고, 연결된 채로 근처에 있는 침대로 이동했다. 죄수가 쓰는 매트리스 위에 램파드의 얼굴이 처박혔다. 얼굴과 반대로 엉덩이를 치켜들게 한 커틀러가 닫힌 구멍을 열겠다는 듯, 성기로 몸 안쪽을 짓이겼다.
“하으……. 아… 아… 히잇, 그만… 그만해!”
침대 매트리스에 얼굴이 눌리는 바람에 발음이 어눌했다. 그렇지만 확실히 의사는 전했고,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애쉬는 이 안에 들어갔습니까?”
차분하지만 감옥의 공기만큼이나 서늘한 목소리였다. 램파드는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애쉬에게 각인당해 돌아왔으니, 포궁이 열린 히트 사이클 상태에서 관계를 맺었단 뜻이었다.
“피임제, 드시고 오셨죠?”
커틀러와 했던 첫 관계 말고는 그와 만날 때마다 피임제를 따로 챙겨 먹었다. 눈앞에서는 못 먹게 하니까 알아서 챙겨 먹긴 했지마는. 램파드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두 종류 모두 드시고 오셨잖습니까.”
커틀러 밑에 깔려 있던 램파드의 눈이 크게 확장됐다. 전에 없을 정도로 강렬한 우성 알파의 기운이 뻗어 들어 몸속으로 들어왔다. 몇 번 커틀러의 날카로운 페로몬을 느꼈지만, 이번은 달랐다.
“피임제를 드셨으니까 열어도 되지요? 자제할 자신은 없지만 노팅은 안 해 볼 테니까…….”
“흐으… 으… 커틀러……! 하… 으… 하지… 마. 아, 아…….”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그의 이름을 불러 막았다.
“여긴 페로몬 사용자를 위한 특별한 감옥이었죠. 수감된 자도 저 한 명뿐이었으니 마침 적절하군요. 거칠 게 없으니 제 전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 아앗, 아! 아, 안… 돼……. 아, 아, 아 …앗.”
알파의 좆이 처박힌 내부로부터 무언가 꿈틀대며 흘러들어 오는 느낌이었다. 짙은 페로몬이 감옥 안을 빈틈없이 채워 넣었고,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고개를 꺾은 램파드의 입이 벌려졌고, 제대로 다물지 못해 침이 뚝 뚝 떨어졌다.
“닿고 있는 끝부분이 점점 갈라지는 게 느껴지네요. 이제 힘으로 누르면 될 듯한데…….”
성기를 머금은 아랫배에서 뜨거운 열기가 터져 나왔다. 피가 솟구칠 때마다 이성이 흩어져 갔다.
“흐끅……. 으… 히익, 아, 아… 악!”
커틀러의 아래 깔린 램파드가 쾌감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추삽질을 하지 않고, 넣고 있기만 해도 느껴졌다. 내부 깊숙한 부분, 그 입구를 건드리는 느낌이 소름 끼치게 좋았다. 치켜든 엉덩이 앞의 빳빳한 램파드의 성기에서 정액이 길게 뿜어 나왔다.
“흐끅… 끗… 으… 으.”
“그냥 넣기만 했는데 가는 겁니까. 좀 더 안으로 들어갈 건데요.”
우성 알파의 페로몬에 반응해 부드러워진 포궁 입구를 페니스가 가르며 들어왔다. 애쉬는 귀두 끝이 벌려진 포궁 입구를 살짝 건드리는 정도였다. 그 정도만으로도 정신 놓을 만큼 기분 좋았다. 하지만 커틀러의 성기는 처음으로 그 속을 파고들어 원초적인 쾌락을 이끌었다. 전에 없을 큰 자극을 느낀 램파드는 쾌감이 두려워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조금, 벌려졌습니다. 아, 이 안… 끝부분뿐이지만 강하게 조이네요. 일부러 쪽 빠는 느낌입니다. 제 좆에 입맞춤하는 거 같네요.”
사정으로 축 처진 램파드가 살고 싶어 다시 움직였다. 이대로 당했다간 쾌락에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성기 또한 뻣뻣하게 부풀어 올라 당장에라도 터질 듯한 모양이었고, 빠르게 두 번째 정액을 내뿜었다.
“후으… 으… 으……. 시, 싫… 싫… 어, 아… 아…아, 아, 앗!”
커틀러가 억지로 속살을 벌리며 지속해서 파고들자 눈앞이 번쩍 번쩍 튀어 올랐다. 백탁한 정액을 내뿜은 램파드의 성기가 꺼떡, 꺼떡 흔들렸다. 사정하며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강한 쾌감을 받았는데 아직 몸속을 지배한 쾌락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더 들어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여기가 한계인가 봅니다.”
“흐윽… 으… 으… 하으……. 아악!”
두툼한 귀두가 벌려진 틈을 범하기 시작했다. 램파드의 성기는 다시 빳빳하게 세워져 자신의 배에 붙었다. 커틀러가 속을 찌를 때마다 갈라진 귀두 끝에서 희멀건 액이 조금씩 삐져나와 아래로 떨어졌다. 건조한 매트리스에 동그랗게 적셔진 부분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그놈이랑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하으… 으… 윽, 힛, 안… 안이 좀… 더, 더……! 하읏!”
여러 번의 움직임으로 닫힌 살이 벌려지고 오메가의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램파드의 페로몬에 반응한 커틀러의 목에서 그르릉거리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등 뒤에 사람이 아닌 짐승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짐승과 교미를 하고 있으니 그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이성을 놓았다.
“아……. 흐끅… 끅… 윽… 좋… 아……. 아, 좋아. 좋아… 아!”
양손과 무릎으로 매트리스 위에 올라간 램파드의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쓰러지면 기분 좋은 게 빠져나갈 테니, 모든 힘을 짜내 버텼다.
“램파드 폐하…….”
부드러운 목소리에 꿈틀거리던 램파드의 성기에서 정액이 뿜어 나왔다. 빳빳하게 곧추선 성기에서 뿜어 나오는 바람에 여기저기 흰 정액이 튀었다.
짧은 새에 몇 번이나 사정했는지. 짜낼 대로 짜낸 성기가 얼얼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기분만은 좋아 커틀러의 성기를 품고 있는 뒤까지 꽉 조여 대며 하반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커틀러도 램파드의 몸속에 자신을 파묻고 그대로 긴 정액을 내뿜었다.
“하아… 응… 으읏, 으……. 하으, 응!”
알파의 페로몬으로 억지로 벌려져 유사 히트 사이클을 겪고 있는 포궁 안으로 정액이 꿀렁이며 들어왔다. 뒷구멍에 알파의 씨가 채워지자 사정만큼이나 강한 쾌락이 계속되었다. 정액이 흘러든 배 속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고, 사정으로 축 처진 램파드의 페니스가 부르르 떨린다. 매트리스 위에 맑은 액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잠시 후 많은 양의 맑은 액이 램파드의 갈라진 귀두 틈에서 뿜어져 나와 매트리스를 축축하게 더럽혔다. 램파드는 소량의 정액과 함께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을 내뿜으며 지속해서 절정을 맞이했다.
“아… 아. 아, 흑, 흐아, 아… 앗!”
양팔과 하반신을 부르르 떨던 램파드의 무릎이 풀렸다. 축축한 매트리스로 떨어지기 전 뒤에 있는 커틀러가 쓰러지지 않도록 허리를 감아올렸다. 벌벌 떨리는 램파드의 페니스에서 맑은 액이 재차 쪼르르 흘러내렸다.
“하아… 하……. 읏, 보… 보지 마. 허윽… 읏!”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몸속에서 맑은 액이 빠져나오며 극상의 쾌락을 맛보여 줬다. 커틀러의 품에 기댄 램파드는 쾌락에 벌벌 떨었다.
커틀러는 쓰러지는 램파드의 팔목을 잡고 마지막 한방울까지 쌀 수 있도록 몸을 지탱해 줬다.
“폐하, 이렇게 잔뜩 쌀 만큼 좋으셨습니까.”
그는 한 손을 움직여 맑은 액이 맺힌 램파드의 성기 끝을 만지작거렸다.
“후… 후읏…….”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렇게 질질 쌌는데도 달아오른 몸 안이 가라앉지 않고 벌렁거렸다.
성기를 넣고 있는 커틀러 또한 램파드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박아 넣은 페니스를 놓기 싫다는 양 내벽이 꽉 조이며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여긴 축축해져서 안 되겠네요. 이동하죠.”
여러 번의 절정으로 동공이 풀린 램파드가 커틀러를 바라봤다. 어떻게 된 놈이 땀방울 하나 없이 멀끔했다.
그는 따뜻하게 열이 오른 램파드의 볼에 입을 맞추며 골반을 부여잡고 자세를 바꿨다. 램파드는 삽입된 채로 천천히 몸이 돌려져, 커틀러와 마주 보게 되었다. 움직임에 맞춰 흐물흐물한 내벽 안, 커틀러의 성기가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잇?”
삽입된 채로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꺾여 있는 내벽과 말랑말랑해진 포궁 입구까지 충격이 가, 램파드의 고개가 꺾였다.
“폐하, 떨어지기 싫다면 저에게 매달리십시오.”
“흐읏… 아, 뭐… 뭐하는……!”
램파드의 몸이 미끄러지자 커틀러는 엉덩이를 꽉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램파드의 몸이 공중으로 조금 치솟고, 그대로 다시 푸욱 아래로 꽂혔다. 잔뜩 예민해진 안쪽이 크게 눌리자 램파드가 입을 벌리고 덜덜 떨었다.
“봐요. 발버둥 치시니까 이렇게 되시잖아요. 저기, 저 벽까지 이동할 테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커틀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부가 푹, 푹, 푸욱, 크게 찔렸다. 램파드는 몸을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 양팔로 커틀러의 목을 꽉 끌어안고 달라붙었다.
“못… 못 가겠어.”
“걷는 건 저입니다만.”
“흐윽, 흑… 커틀러……. 흣, 아… 안이 녹아서… 미칠 것 같아…….”
“아직도 제정신이셨습니까?”
공중으로 램파드를 들어 올린 커틀러가 엉덩이를 꽉 끌어안고 재차 박아 넣었다. 허공에 붕 뜬 램파드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커틀러를 꽉 붙들었고, 자신의 무게가 더해져 아래로 꺼지는 통에 그의 좆이 내장 안을 푹푹 찌르는 걸 느꼈다. 램파드는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찌이익. 포궁부터 시작해 질구와 입구까지 이어진 안을 모조리 정액으로 채워 넣고도 커틀러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미친 새끼. 개 같은 새끼. 가출했던 제정신이 돌아온 램파드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자 커틀러가 한 행동은 증언서를 찢어 버리는 거였다. 가로로 한 번 길게. 두 개가 된 증언서를 겹쳐 또다시 찌익.
테이블 위에 다리를 벌린 채 축 처져 있는 램파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어나서 뺏어야 하지만 입과 발가락 끝을 움직일 힘만 남았다.
“그렇게 놀란 눈 하지 마십시오. 신경 써서 준비해 주신 사면 사유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나 황제에게 불경한 짓을 한 건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죄목이었다. 램파드는 조용히 해결한 자신의 공을 커틀러에게 내어 주고, 공적을 세웠으니 결례는 없던 일로 친다며 커틀러를 사면할 계획이었다.
램파드가 얼이 빠져 있을 동안, 그는 빠른 속도로 증언서를 조각조각 내 버렸다.
“그렇지만 증언은 받지 않을 겁니다. 술에 취했다뇨, 멀쩡한 정신으로 진심을 담아 내뱉은 소리입니다.”
“다른 귀족들이 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돌고 있는 소문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냐.”
증언서는 커틀러가 귀족들 앞에서 내뱉은 말에 대한 변명이었다. 저런 서류로 모두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입은 봉해진다.
“소문 같은 건 상관없습니다.”
“창부라고 소문날지도 몰라……. 진짜 변태 놈들이 너한테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재밌는 소리에 무뚝뚝한 커틀러의 입매가 살짝 휘었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 아닌 이상 저에게 접근할 버러지는 없을 겁니다.”
커틀러는 잘게 잘게 찢은 종이를 대충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램파드의 곁에 다가와 아랫배와 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보다 램파드 폐하, 마르신 듯하군요.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신 겁니까?”
테이블 위에 축 처져 충전했더니 조금 회복한 듯했다. 램파드는 모든 기운을 한쪽 다리에 끌어모아 가까이 다가온 커틀러의 허벅지를 툭 찼다.
“네놈 때문이다.”
“폐하를 위해서 빨리 복귀해야겠군요.”
“알았으면 대충 챙겨 입고 네가 일하는 건물로 꺼져 버려.”
“네, 알겠습니다.”
그날 저녁, 커틀러는 화이트 테일의 기사단장직으로 복귀했다. 다들 커틀러의 사면을 예상했는지, 갑자기 석방되어도 딱히 의문을 품는 이는 없었다.
***
램파드의 명에 따라 애쉬를 추적하던 한스가 돌아왔다. 애쉬는 제국의 국경을 넘어 왕국에 정착해 있었다.
아쥴린 공주의 협조로 애쉬를 손쉽게 찾아냈고, 감시도 여러 명 붙여 두었다. 이제 애쉬는 램파드의 손바닥 위에 놓인 거와 마찬가지였다. 마음만은 당장 잡아 와 무릎을 꿇리고, 곱절로 되돌려 주고 싶다. 하지만 커틀러 때문에 일단은 그냥 두기로 했다. 커틀러의 눈을 피해 가둬 놓을 장소를 물색하면 그때 가서 끌고 올 생각이었다.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램파드는 한스와 시종을 불러 몸단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달, 일에 익숙지 않은 시종 덕분에 아침이 번잡했다. 오랜 세월 램파드의 곁을 지켜 준 한스가 다시 일을 잡자 여유 시간이 생길 정도였다. 램파드는 한스가 말하는 중요한 안건의 결과 보고를 받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잡일을 하는 시종이 다가와 벗은 몸 위에 부드러운 셔츠를 감싸고, 위부터 천천히 단추를 잠갔다. 벌려 있는 손목은 램파드가 직접 셔츠 커프스로 단추를 여몄다. 분명 단단하게 고정했는데 손목이 헐렁했다. 소매뿐만 아니라 허리도 천이 남는다. 지난주 기사 서임식 때는 오히려 옷이 꽉 조였는데, 그새 살이 빠졌을 리가.
“헐렁하군.”
램파드는 고정한 셔츠 커프스를 다시 풀었다. 시종이 새로 만든 옷을 담은 상자를 꺼내 왔다.
“2주 전 폐하의 신체 치수에 맞춰 제작한 셔츠입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제까지 일하던 시종은 어떻게 된 게 마음에 드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일정 관리 같은 중요한 일은 물론 방 청소 같은 사소한 일까지도 실수가 잦았다. 실책만 잔뜩 저질렀던 자가 정리해 둔 거라면 잘못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됐다. 지난달에 입었던 옷을 꺼내 와라.”
“알겠습니다.”
황제의 준비를 돕기 위한 시종과 몸종이 분주히 움직여 램파드가 말한 옷을 가지고 왔다. 램파드는 걸쳐 있는 셔츠를 벗어 새로 갈아입었지만, 여전히 소매가 남았다. 한 달 전 램파드의 체형에 딱 맞았던 옷이었는데, 한참이나 남다니. 옷의 치수가 잘못된 게 아니라 램파드의 몸이 여윈 거였다.
“이 옷도 그러는군요. 치수를 다시 재셔야 하겠습니다. 재단사를 부를까요?”
램파드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한 번 치수를 재면 동상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어야 했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또 해야 하다니 아침부터 진저리 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됐다. 밤에 불러라.”
“알겠습니다.”
램파드의 말이 끝나고, 멈춰 있는 시종의 손이 움직였다. 흰 셔츠에 은실이 들어간 조끼, 그 위에 자수가 놓인 푸른 코트를 입고 옷깃을 정돈한다. 조금 헐렁한 옷은 시종들이 달라붙어 어떻게든 수습했다. 마지막은 보석함을 든 한스가 다가왔고, 푸른색 사파이어로 장식한 핀을 골라 꺼내 목가를 고정했다.
램파드는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전에 비해 여위었다. 생활 방식이 바뀌든가 병에 걸려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 텐데, 커틀러 때문인가. 한번 흘레붙기 시작하면 몇 번이나 사정하니까 힘들긴 했다.
하지만 횟수로 친다면 예전 베타들과의 관계가 더 잦았으니까 사실상 무리는 없었을 터.
“커틀러 단장님께서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싶으시다며 요청하셨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건물이 가깝긴 하지만 왕복할 시간이 있을 정도로 기사단장은 한가한 자리가 아니었다. 농땡이를 피우는 거라면 한마디 해 주기 위해서라도 만나는 게 좋았다.
“식사는 여기서 하겠다. 오라고 전해라.”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채비를 도왔던 시종과 몸종이 모조리 밖으로 나갔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 커틀러가 아침 식사와 함께 도착했다.
버터를 잔뜩 넣어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빵. 곱게 간 통후추를 묻혀 겉면을 바짝 익힌 돼지고기 요리는 향긋한 유자로 만든 소스를 끼얹었다. 하나같이 램파드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지마는 이건 아침으로 과했다. 차려진 음식 중에서 그나마 아침밥다운 건 갓 짜낸 우유 하나뿐이었다.
음식을 나르던 시종이 모조리 나가고, 커틀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직접 지시해 준비한 메뉴입니다.”
“그런 잡일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니 행동 꼬락서니가 내조에 집중하는 오메가랑 같은 건 알고 있느냐? 네놈이 주방에 들어갔을 때 요리사가 어떤 표정을 했을지 눈에 선하군.”
황제의 첩을 자처하며 오메가가 되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퍼진 마당에 램파드의 식사 준비를 위해 기사단장이 주방까지 찾아가다니. 요리사가 기겁했을 것이다. 얼마나 비위를 맞추고 싶으면 이런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며 속으로 비웃었겠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커틀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히려 응원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램파드는 돼지고기 요리부터 손을 댔다. 나이프로 썰어 내자 육즙이 주르륵 흘러나와 소스와 어우러졌다. 육즙이 터져 나오는 고기 요리에 집중한 램파드가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눈치 없는 요리사는 잘라야겠군.”
“그러지 않아도 폐하께서 맛있게 드시지 않으면 목을 자를 생각입니다. 수척한 몸이 되게 만들다니, 대체 식단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당장 죽이려다 기회를 한 번 주기로 했습니다.”
“애먼 사람 잡지 마라. 요리사 때문이 아니라 네놈 때문이니까.”
한 치도 굽히지 않는 자색 눈동자가 또렷하게 반짝였다. 수긍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폐하를 안지 않고 있잖습니까.”
없던 양심이 생겨났는지 요새는 억제제만 주고 램파드를 안지 않았다. 관계 없이 약만 받고 페로몬을 안정시키는 것 또한 나쁘진 않지만 늘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느끼던 체온이 없어 무언가 모자랐다. 램파드는 입에 들어온 고기를 꼭꼭 씹어 삼키며 말했다.
“의외군. 발정이 난 수캐처럼 허리를 흔들더니, 어쩌다 이성을 되찾았냐.”
“되찾았다기보단 억누르고 있는 거죠. 식사를 끝마치시면 오랜만에 대련장에 나오십시오. 폐하께서 체력을 길러야지 제가 마음껏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순간 들고 있는 나이프를 커틀러의 이마로 날릴 뻔했다. 한 번 할 때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으면서, 거기서 더 한다고? 뻔뻔한 정도가 있어야지.
“이 얘긴 이만 됐어. 굳이 아침부터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나 말해 봐라. 할 말이 없다면 억제제나 주고 돌아가.”
“용건은 있습니다. 폐하께서 저에게 넘겨주신 공, 석연찮은 부분이 있어 알아보니, 발정제가 수도에서도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유통하는 업자를 잡아 보니 황실의 직인이 찍혀 있더군요. 감정까지 끝냈는데, 위조는 아닙니다. 혹시 직접 지시하신 일입니까?”
“아니. 최근 발정제를 사용한다는 귀족 또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번포드 백작가에서 황실 허락 없이 만들어 유통한 모양이군요.”
“무슨 근거로?”
“몇 년 새 대번포드 가문의 재산이 불어나 있어 개인적으로 조사하는 중입니다. 지방 영지가 몇 년째 풍년이라는 변명거리가 있어 지금 단계에서는 감입니다.”
램파드의 관심은 이제 아침 식사에 집중되었다. 대번포드 백작가는 황실에 적의를 보이는 가문 중 하나였고, 램파드가 직접 수족을 모조리 잘라 숨구멍만 트여 놨다. 커틀러는 그걸 보며 무르다며 불만을 토로했었지. 램파드는 두꺼운 고기를 칼로 슥 자르며 미소 지었다.
“없는 증거를 만들어 낼 생각은 아니고?”
“날조할 생각은 아닙니다. 오메가 창부를 관리하는 곳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저렴한 곳에서 사는 게 이득이니까요. 대번포드 백작가는 폐하께 원한을 가진 가문이니까 조심하는 거 또한 좋겠죠.”
“늙은 영감탱이가 인제 와서 복수한답시고 날뛰어 봤자지.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니까 할 수 있다면 재주껏 해 봐라.”
“하긴, 폐하께서는 제가 있으니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겠습니다. 만약 황실에 칼을 겨누는 시늉이라도 하면 제가 직접 가문을 멸할 거니까요.”
제대로 말해 두지 않으면 마음이 앞서 사람이 몇 남지 않은 백작가의 씨를 말릴 표정이었다.
“증거를 발견하면 해. 이번에는 안 막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용건은 끝인가? 이만 기사단 건물로 돌아가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있을 겁니다.”
램파드의 손은 이야기 도중 이미 멈췄다. 배가 불러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아침 식사는 끝이다. 돌아가면 되겠군.”
“절반도 드시지 않으셨잖습니까.”
“배불러.”
“그 정도로 성이 차십니까? 아카데미에서는 혼자 새끼 양 한 마리를 다 드실 정도로 잘 드셨잖습니까. 거기서 부족하다며 딸기로 만든 디저트를 몇 접시나 드셨던 폐하시면서.”
“대체 몇 년 전의 이야길 꺼내는 건가.”
“생각보다 몇 년 지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죠. 기사 수행 도중에 배가 고프다며 야영장에서 도망쳐 멧돼지 사냥을 나가 혼자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 드셨잖습니까.”
잊고 싶어서 빠르게 망각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버려, 램파드의 귓불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단기간 진행하는 기사 수행은 무작위 추첨으로 파트너를 정했는데, 램파드와 함께 수행을 나간 이는 커틀러가 아니었다. 어떻게 파트너조차 버리고 혼자 몰래 사냥 나간 일을 커틀러가 알고 있지.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로 검술에 매진했으니 배도 절로 고팠다. 한창 자라던 중이라 고기에 환장했던 시기였기도 하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제국 내 순방에 나설 때도 마차 안에서 말린 고기를…….”
이 이상은 지난 과거 이야기를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 램파드는 커틀러의 말을 빠르게 끊었다.
“불필요한 옛날 얘기는 그만해! 나이를 먹은 만큼 식욕도 줄어든 거지.”
“그래서 더 드시지 않겠다는 겁니까?”
“그래. 더는 먹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난 커틀러가 가까이 다가왔다. 훤칠한 키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건방지게 고개만 슬쩍 아래로 내려 바라본다.
“폐하께서 드시지 않는다면 요리장을 죽여 버릴 겁니다. 남이 먹지 못할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살아갈 가치가 없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협박해 봤자다. 먹고 싶지 않은 걸 어찌하란 거냐.”
커틀러의 눈가가 꿈틀거리며 사나워졌다. 안 먹는다는 억제제를 억지로 입에 쑤셔 넣은 것처럼, 강제로 먹일 생각인가. 커틀러가 움직이자 램파드는 무의식적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털썩, 커틀러의 양 무릎이 바닥에 닿고, 고개까지 아래로 푹 숙여졌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니라고 하시는데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제발 조금만이라도 더 드셔 주십시오.”
램파드는 가슴 위까지 들어 올린 손을 천천히 테이블 위로 올렸다. 살이 조금 빠졌다고 하나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었다. 황의를 통해 기본적인 검사도 받았으며, 별 탈 없다 들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만 숙이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아는 건가.”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드시겠습니까.”
은쟁반 위에 올라간 나이프를 손끝으로 툭툭 치던 램파드가 커틀러를 내려다봤다. 그는 공손한 자세로 허리까지 앞으로 굽힌 채 무릎을 꿇었다. 식욕이 당기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근래 커틀러에게 휘둘리기만 했으니 그 또한 원인 제공을 한 거였다.
평소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건방진 소리를 내뱉던 커틀러가 드물게 속마음까지 모조리 숙이고 있다니. 이 기회를 그냥 놓치긴 힘들었다.
“걸친 옷가지를 전부 벗어라.”
골려 먹을 의도였는데 커틀러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기사단 제복을 벗기 시작했다. 옷자락끼리 사락 부딪히며 두꺼운 천으로 만든 망토와 상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슴, 배 근육을 다 드러낸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커틀러는 바지 버클을 풀러 벗어 내렸다. 단단한 근육이 얽힌 허벅지와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식기에 집중하고 있던 램파드의 시선이 커틀러에게로 고정됐다. 쉽게 볼 수 없는 조각품 같은 몸매를 가졌으니까 시선이 절로 꽂힐 수밖에.
“속옷까지 전부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벗어.”
잠깐이라도 주저하는 틈을 보고 싶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오히려 당당하게 속옷까지 벗어 나신을 드러냈다.
램파드는 명령을 내린 것을 후회했다. 다리 사이, 가운데에서 덜렁이는 짙은 색상의 물건을 바라보자 아무래도 없던 식욕이 더 사라진 듯했다. 부끄러움을 느끼라고 시킨 일이건만 되레 램파드가 창피해져 시선을 피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마저 식사 하시지요.”
여기는 황제의 침실이며 오롯이 램파드만을 위한 개인 공간이었다. 자신의 방 안에 익숙하지 않은 나신이 놓여 있단 걸 깨닫자 낯익은 공간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귓가가 뜨거울 지경이었고, 그걸 커틀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귀를 숨겼다. 램파드는 사락, 머리카락끼리 부딪치는 소리에 커틀러의 낮은 웃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키는 건 모두 다 했는데, 손을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볼거리라도 제공해 드려야 식사를 하실 겁니까? 제가 여기서 수음이라도 해 볼까요.”
“이만 됐어, 그만 옷 입어라.”
“약속대로 드시기 시작하시면요.”
그냥 안 먹는다고 박박 우기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을 텐데, 괜한 말을 꺼내 형세가 역전이 되어 버렸다. 입맛은 더더욱 뚝 떨어져 버렸고, 기분마저 좋지 않아졌다.
저대로 남의 방 안에서 가운데 살을 덜렁거리며 돌아다니게 놔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램파드는 커틀러의 머리 한 톨이라도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리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새 따뜻했던 요리가 식었다. 뛰어난 솜씨로 조리했기에 온기를 잃는 거로 맛을 해치진 않았다. 램파드는 두툼하게 구워진 고기를 썰어 내 곁들인 소스를 찍어 입에 머금었다. 맛은 부족하지 않고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씹기가 힘들었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이빨로 꼭꼭 씹는 게 고역이라 느껴졌다. 삼키는 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먹는 일을 반복하자 음식이 점점 싫어진다. 램파드가 천천히 고기를 씹어 삼키자 여러 발 물러난 커틀러가 옷가지를 주워 입기 시작했다.
“후식도 준비했습니다. 제철이 아니라 구하기 힘들어 말린 딸기로 만들었습니다. 딸기는 오랜만이시죠?”
“디저트는 됐어.”
단어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좋아하는 딸기지만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어 사양했다. 커틀러는 더는 권하지 않으며 램파드의 식사 테이블이 있는 곳과 떨어진 창문가에 기대 조용히 기다렸다. 램파드가 한 접시를 거의 다 비웠을 때쯤, 커틀러가 시종을 불렀고 자신의 건물로 돌아갔다.
식사를 끝마친 램파드는 정무 회의에 참석했다. 매주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한 대신들은 지난주와 비교하여 확연하게 달라진 황제의 모습에 한마디씩 거들었다. 괜히 저러다 후계자가 없는 황제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황위 문제로 골치를 앓아야 할 터.
“차라리 아쥴린 공주를 받아들이시는 게 어떻사옵니까.”
그녀는 알파라 관계를 맺어도 아이를 만들 수 없다는 걸 대신은 잘 안다. 그런데도 램파드에게 권하는 이유는 여인과 잠자리를 가지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램파드는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우성 알파와 침대에서 뒹굴면 오메가인 게 탄로 날 것이며, 대신들이 원하는 후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램파드의 후계 문제 때문에, 이마 주름이 세 줄씩 더 생긴 대신들의 얼굴이 피게 되겠지.
“중요한 첫 번째 황후의 자리에 첩을 데려다 놓으라고 하다니, 어지간히도 급한가 보군.”
램파드는 몇 년째 후계자 문제를 다른 말로 돌렸다. 여러 번 당한 대신은 이 말을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게 의견을 밝혔다.
“제국은 정통성을 중시하는 나라라 황제의 혈육이 자리를 이어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선대 황제의 형제도 모조리 돌아가셨으니 남은 건 램파드 폐하 단 한 명뿐이옵니다.”
“후작은 남의 가족사에 관심이 많군. 짐보다도 황실의 족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니.”
램파드가 도발했지만, 대신은 꿈쩍하지 않았다.
“새로운 후계자를 만들 생각이 없으신 걸 보아하니 제가 추측한 게 맞나 보군요.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바깥에서 만든 아이가 하나쯤 있으신 게 아닙니까.”
요새는 황궁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지만, 램파드는 한때 베타와 관계를 맺기 위해 종종 황좌를 비웠다. 대신들은 램파드가 자리를 비운 그사이 아이를 만들어 몰래 살림이라도 만든 게 아닐까 추측 중이었다. 역대 황제의 행실을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 나름 합당한 의심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건 없구나.”
“천한 신분의 베타라도 폐하께서 선택하셨다면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부디, 폐하의 생각을 밝혀 주십시오.”
“차기 황제로 힘없는 사생아를 원한다니. 짐의 다음 세대에서 황실을 교체할 속셈인가.”
반란을 도모하는 자는 생각만으로도 처형이다. 오늘은 작정하고 램파드에게 고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어떤 말에도 대신의 눈썹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저희는 왕국의 위협에서 제국을 구해 낸 영웅인 램파드 폐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황실의 피를 이었다면 그 어떤 피가 섞여도 받아들이겠사옵니다. 그러니 그러한 위협은 아무쪼록 거둬 주십시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끈질겼다. 황의는 괜찮다고 하지만 남이 보기에 갑자기 살이 빠진 건 어딘가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니까. 매주 이렇게 애 낳으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멀쩡한 사람도 살이 쭉 빠질 것이다. 알고 보면 원인이 잔소리일지도. 황좌에 비스듬히 앉은 램파드는 인상을 쓰며 귀찮은 티를 팍팍 냈다.
“왕국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황제 폐하의 업적이 눈부셔 원하는 만큼 쉬시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후사 문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제국의 중요 안건 중 하나입니다.”
“아직 혼인을 치를 생각이 없다.”
“폐하, 부디 제국을 생각해 주시옵소서.”
대신의 말에 램파드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황제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제국을 함께 다스릴 총명하고 강인한 황후를 들이는 것. 다음 대를 이어 갈 튼튼한 자식을 낳는 것이다. 황후와 후계자의 자리를 언제까지고 비워 둘 순 없단 것은 램파드 본인이 잘 안다.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하긴 했다. 오메가란 걸 밝히고 차기 황제의 자리에 오를 자식을 낳고 물러날 건지를.
램파드가 황위를 내려놓고 자식을 낳는다면 지킬 힘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다. 후계자는 대신들이 입맛대로 요리하는 꼭두각시로 자랄 테지. 램파드 또한 과시를 위한 권력가의 첩으로 들어갈 것이고. 솔직히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식의 운명보다 자신에게 닥칠 앞날을 생각하면 절로 진저리가 난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혼인을 치르시지 않는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다.”
그러고 보니, 후계자 생각만 했지 황후의 자리에 오를 이는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다. 램파드는 오메가니까 자신이 받아들일 이는 막연하게 알파라고만 생각했다. 하룻밤을 보낼 베타를 구하며 몇 번 여자를 안긴 했어도, 평생 곁에 둘 정도로 기억에 남는 여인은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대신 중 하나가 자신 없는 듯, 램파드의 눈치를 살폈다.
“폐하, 혹시 커틀러 경을 마음에 두고 계신 건 아닙니까. 석방하신 점도 그렇고, 그렇게 무례한 자를 계속 곁에 두는 점이 의아해서 여쭙는 겁니다.”
램파드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날카로운 시선마저 자신에게 향하자 대신은 움찔 몸을 떨고는 황급히 머리를 숙이며 고했다. 괜한 말을 꺼낸 걸 알아챘는지 대신의 얼굴이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성급한 소리를 내뱉었군요. 사죄드립니다!”
“커틀러 단장은 잘 드는 검으로서 곁에 둘 뿐이다.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자네 목은 땅바닥을 구를 거다.”
“죄, 죄송합니다.”
후계자가 확실히 정해지면 제국이 튼튼해진다는 의미니까 저들도 큰 악의는 아니었다. 램파드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들의 깊어진 주름살을 보아 한번 고려해 보겠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다른 때와 달리 생각이라도 한다는 말에 대신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석 줄이던 주름살이 두 줄이 되었으니, 혼인, 후사 소식을 나란히 들으면 다 펴지겠지. 대신과 달리 램파드의 눈 사이의 주름은 짙어졌다. 황좌에서 일어난 램파드는 입을 꾹 다문 채 뚜벅뚜벅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걸어 침실로 돌아왔다.
“혼자 있고 싶다. 전부 밖으로 나가거라!”
“죄, 죄송합니다.”
입구에서부터 따라 들어오는 여러 명의 시종은 램파드의 신경질적인 손짓에 모두 흩어져 밖으로 나갔다.
후우, 푹신한 침대 위에 대충 몸을 던지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대신의 눈에도 그리 보이는 것인가. 커틀러를 믿으면 안 되기에 그를 힘껏 밀어내고 있건만.
매정하게 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비정하게 선을 긋고 싶어도 아주 오래전 그를 원했던 마음이 무의식에 흘러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건만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다.
언제까지. 과연 언제까지 베타라 속이며 황위에 앉아 있을 수 있을지. 저들 말대로 아랫도리를 주체 못해 사생아가 여럿 있으면 차라리 속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램파드가 오메가인 이상 여인을 안아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차라리 알파의 씨를 받아 직접 아이를 낳을까. 제국 순방을 핑계로 1년 정도는 어떻게든 몸을 숨길 수 있다. 램파드를 임신시킬 자, 떠오른 상대는 커틀러뿐인데 낳은 아이가 그를 닮는다면 새로운 문젯거리가 될 거였다. 은발과 자색 눈동자는 둘 다 제국에서 가진 이가 드무니까. 아이를 보고 누구의 피를 이었는지 예상할 수 있을 터.
제국 대신이 본격적으로 후사 문제를 논하기 시작한 이상 더는 일을 미룰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리모를 구하자니 위험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여인을 임신시킬 상대 남자도 찾아야 하며, 결과적으로 황족의 피를 잇지 않은 아이니까 큰 문젯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럴 바엔 램파드 스스로가 임신하는 편이 손쉬운 해결책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을 각인시킨 또 다른 상대, 애쉬 테일러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했다. 그자의 갈색 머리는 램파드의 회색 눈동자만큼이나 흔한 형질이니까.
이번 기회에 커틀러도 확실히 쳐 내기로 마음먹었다.
***
화이트 테일 기사단 본부는 황실의 주요 건물 중 하나지만 외진 숲 근처에 있다. 사방이 높다란 나무에 둘러싸여 기사들의 시끄러운 훈련 소리가 파묻혔다.
정오를 넘긴 시각. 훈련장 입구가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훈련장 중앙에 서서 기사를 가르치던 커틀러가 방문자를 확인했다. 가벼운 훈련용 셔츠 차림의 램파드가 다가왔으며 상대를 확인한 커틀러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램파드 폐하, 오셨군요.”
“경의 말대로 몸을 움직이지 않은 지가 꽤 오래되어서 말이지.”
“제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방문하신 김에 기사들의 지도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로 몸을 단련할 수 있겠나? 거절하지.”
“그러면.”
램파드는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수습 기사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검을 뺏어 들어 커틀러를 겨냥했다. 커틀러는 자신의 턱 끝에 날카로운 검 끝이 닿았는데도 속눈썹 한 올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반격하면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반응조차 안 하는군.”
“석방하여 바깥 공기를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옥살이하는 건 싫습니다.”
커틀러는 여전히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랑 검을 섞은 지도 오래되었군. 검을 들어라, 커틀러 경.”
“대련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래.”
커틀러의 턱을 향해 있던 검이 램파드의 옆구리로 내려왔다. 곁에 있는 기사에게 손을 내밀자 그는 재빠르게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뽑아 램파드에게 건넸다. 검집에 검을 꽂은 램파드는 준비 자세를 취했다. 커틀러는 가벼운 대련이라 생각하는지, 제국식 검술 대기 자세를 취했다.
“경의 준비 자세는 그게 아니잖느냐. 제대로 상대해라.”
“…폐하께서는 실전에 나가지 않은 지 몇 년 되셨잖습니까.”
“단련은 계속했으니 괜찮다.”
“하오나.”
“경이 이기면 와인 메이커의 거처를 알려 주지. 찾아가서 목을 자르든 끌고 오든 마음대로 해라. 간섭하지 않겠다.”
큰 비밀을 알려 주었는데, 그는 덤덤하게 응시했다.
“그자를 찾으셨습니까.”
“찾은 지는 이미 며칠이 지났지.”
“그런데도 저에게 비밀로 하셨군요.”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커틀러의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다. 램파드는 자신의 말만을 내뱉었다.
“경이 패배한다면 네놈은 앞으로 두 달간, 서부 지역의 복귀 작업에 합류해야 한다.”
지난달 폭우로 서부 지역의 논밭이 엉망이 되었고, 물이 빠진 일주일 전부터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무너진 건물을 짓고, 논밭을 정돈하기까지 두 달 정도 걸릴 예정이다.
애쉬의 거처를 파악했는데, 비밀에 부친 이유를 커틀러는 파악했겠지. 램파드가 이기면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두 달 동안 애쉬를 데리고 와 숨겨 놓을 속셈이란 거. 최종적으로 자신에게서 독립할 거란 것을.
커틀러에게 이 시합은 의미 없었다. 램파드에게 패배했다가 곁에 없을 바에는 계속 감시하는 편이 더 좋기 때문이다. 승패 조건이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커틀러는 움직이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가볍게 운동을 하시는 거로 내기라니 과하지 않습니까.”
“그렇군. 굳이 내기할 필요까지 없지. 오늘 밤 당장 화이트 테일을 이끌고 서부 지역으로 떠나라. 명령이다.”
지난 대관식 때 램파드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며 그 난리를 쳤다. 기사라면 주군의 명령에 응당 따라야 한다. 커틀러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정말로 봐 드리지 않을 겁니다. 다치실 것 같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십시오.”
주먹다짐은 어림도 없지만, 검술은 자신 있다. 혹여 오메가로 보일까 봐 검술 하나만큼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손톱이 빠져도 이를 악물며 훈련했고, 전장을 누비며 몸으로 익힌 감각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램파드의 미모에 견줄 수 있는 건 검술 실력뿐일 정도였으니까. 상대가 우성 알파라고 하나 검 한 자루만 들면 패하지 않을 만큼 승리를 확신했다. 램파드의 미소는 등등했다.
“제국의 검이라는 칭호는 아직 짐에게 있다만?”
“매년 개최하는 검술 시합에 참석하지 않으시니 자연스레 칭호도 유지하고 계시는 거잖습니까.”
“짐을 이긴다면 칭호도 함께 내리겠다. 여기 훈련장에 있는 화이트 테일의 기사가 시합의 증인이 되어 줄 테니까. 어떤가.”
화이트 테일의 기사들은 흥은 돋우려는 듯, 램파드의 말에 곧바로 반응하며 환호성 쳤다. 전쟁에서 활약한 램파드의 이야기는 다들 익히 들었으니까 굉장한 볼거리라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커틀러가 거부할 이유를 들먹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합을 기피하려던 커틀러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검집과 허리띠를 연결하는 갈고리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검집의 위치를 바꿨다. 검을 뽑기 전 거추장스러운 망토는 벗어 던졌다.
커틀러의 망토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 근처에 있는 기사가 잽싸게 낚아챘다. 커틀러는 한 손으로 검을 빠르게 뽑아 들어 자세를 취했다.
“좋습니다. 오랜만에 한 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기사가 시합 시작을 알렸고, 카앙. 두 개의 쇠붙이가 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다.
달인끼리의 시합은 길게 가지 않는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었다.
손에서 검을 놓은 것은 커틀러고, 승자는 램파드였다. 램파드는 들고 있는 검을 땅바닥에 대충 던져 놓고 기사가 가져온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약속대로 내일 당장 기사단을 이끌고 서부 지역으로 떠나라.”
주변에서 신난 듯 구경하던 기사들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 술렁댔다. 정해진 대결 내용이긴 했으나 화이트 테일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대로라면 커틀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원망받을지도 몰랐다.
램파드의 시선이 소란스러운 기사들에게 향했고, 황제와 눈이 마주친 자들은 차례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변이 조용해졌고, 램파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부 지역은 폭우로 논밭은 물론 도심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하루라도 빨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니, 서둘러라.”
황제가 직접 명령한 일이라 기사단원 중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화이트 테일 단원 중 유일하게 허리를 편 커틀러가 램파드를 조용히 주시했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램파드가 그를 향해 단단히 못 박았다.
“수습이 끝나도 짐의 허락 없이 귀환하지 말고 서부 지역에서 대기하여라.”
“그자를 찾으러 직접 가실 겁니까.”
“짐이 자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커틀러는 들고 있는 검을 허리춤에 꽂으며, 아무런 동요 없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그자를 만나러 가실 필요 없으십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걸 필요한 만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주변에 있는 기사들 때문에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콕 찍어 지칭하지 않아도 억제제란 걸 알았다. 일부러 자신을 만나게 하도록 딱 3일치만 준비하는 옹졸한 짓을 하다가 자비를 베푸는 이유가 뭔지. 이미 램파드는 마음을 결정했기에 미끼를 물지 않았다.
“필요 없어.”
커틀러는 램파드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불쾌한 모양이다.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굳은 것이 아닌 불쾌함이 가미된 딱딱한 입매였다.
“그렇게나 그자가 보고 싶습니까?”
램파드는 무언으로 답했다. 마음을 정한 마당에 대답할 가치가 없었으니까.
커틀러는 굳건한 표정을 유지하며 램파드를 주시했다. 왜 자신을 멀리 보내냐며, 차라리 화를 냈다면 조금 동요할지도 몰랐지만 그는 램파드를 향해 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할 정도로 평소와 비슷한 그의 모습에 되레 램파드의 가슴 안쪽이 욱신거렸다.
“명령을 번복하지 않겠다. 서부 지역의 정리를 맡도록 해라.”
“진심이시군요.”
“그래.”
“…램파드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커틀러는 야속할 정도로 황제의 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램파드는 허리를 숙인 그의 앞에 담담히 섰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커틀러를 내치고, 발정제 대용으로 애쉬를 사용하면 됐다. 친인척도 없고, 뒤늦게 알파로 발현한 덕분에 제국의 중책이 되지 못한 애쉬는 억제제 대용으로 쓰기 딱 적합한 상대니까.
램파드는 가슴이 욱신거려 옷깃을 감싸 쥐었다. 강하게 움켜잡아도 마음 안쪽이 계속 쓰라렸다. 커틀러의 반응이 섭섭할 정도로 박했기 때문이었다.
램파드는 훨씬도 오래전부터 그가 자신에게 각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은연중 느꼈다. 그래도 요즘은 연인처럼 몸을 섞으며 입을 맞춰 혹시나 싶었지만 여전히 램파드의 각인은 일방통행이었다.
램파드는 양 입꼬리를 끌어모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긴, 진작에 각인하여 평생의 반려로 느꼈으면 소중히 다뤄 줬을 것이다. 지켜 주기는커녕 전쟁 중에 다른 남자의 손에 떠넘기기나 했지. 또한, 수많은 남자를 유혹해 침대로 이끄는 램파드의 모습을 태연하게 보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는 잔소리라고는 사복을 스스로 고르지 말란 쓸데없는 소리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커틀러가 괘씸해졌다. 뻔히 저에게 각인한 오메가의 마음을 알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몸만 탐했다?
고백은커녕, 사귄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으니 몸을 어떻게 굴리는지는 램파드 마음대로였다. 내 몸이니까, 그에게 허락받을 필요 따위는 없다.
램파드는 더는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마음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이 드디어 움직였고, 램파드는 시종을 대동하고 몸을 씻기 위해 이동했다.
찬물로 몸을 헹구고 가운을 입은 램파드는 푹신한 침대에 파묻혔다. 일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부드러운 시트에 볼을 비비며 늘어졌다.
알 수 없이 깜깜하기만 한 커틀러의 생각을 조금 읽은 기분이 들었고 결과는 비참했다. 못 이기는 척 그에게 안긴 건 램파드가 그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몸을 내어 주면 언젠간 그의 마음을 보답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커틀러는 램파드의 몸을 탐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조각조차 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떠나려는 오메가를 붙잡는 소리가 약이나 잔뜩 주겠다는 거지. 그는 램파드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텐데 말이었다.
사랑을 갈구하면서, 보답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몸만 내주고 있다니. 램파드의 행동은 창부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돈을 받고 몸을 내주는 창부 쪽이 낫다. 램파드가 몸을 내주고 받은 건 혹시나 하는 희망이었는데, 하나같이 실망으로 변해 마음속에 채워져 답답하게만 하였다.
몸이 즐거웠다고 자기 합리화하기엔 마음속 실망이 지속해서 정신을 괴롭히며 비참해졌다.
이런 취급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그를 향한 각인은 유지됐다. 두 번째 각인 상대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각인이 풀리지 않은 건, 여전히 커틀러에게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제대로 끊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확실한 답을 듣지 못해서겠지.
늘어질 대로 늘어져 미련인지 집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관계는 조그마한 자극에 끊어질 정도로 가늘었다. 증오와 호감이 뒤섞여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 하는 중이지만 커틀러를 원하는 쪽에 좀 더 기울여져 있다. 이 줄을 끊을지, 다시 고쳐 나가며 엮어 갈지는 그의 진실 어린 한마디면 충분했다.
다음 날, 화이트 테일은 해가 지는 대로 서부 지역으로 떠날 준비를 끝마쳤다. 출발하기 전, 말을 살피는 기사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수해 지역의 복구는 하루라도 빨리 착수해야 하므로 서두르라는 램파드의 명령에 따랐지만 먼 서부 지역으로 떠나라니. 황제와 단장의 대결을 막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아무리 피해가 심각하다고 하나 하루 만에 준비를 끝마치라니 황제 폐하께서도 너무하시는군.”
“단장님께서 패배하셨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말단인 우리는 결정에 따를 수밖에.”
“경은 어제 시합 인정하는 건가? …아무래도 단장님께서 봐주신 듯하단 말이야.”
“그 점은 나도 동의하지. 반한 상대를 상처 입히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정당한 시합이 아니었던 거로군.”
“말리지 않은 우리 잘못도 있지 않나.”
말안장에 짐을 싣는 중견 기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커틀러 단장님도 참. 귀족들 앞에서 망신당했으면 이만 마음을 접으실 때가 되지 않았나. 베타에게 구애해 봤자 보답받지 못하실 텐데.”
“그러니까 괜히 단장님을 응원하게 되더군. 덕분에 어제 차마 두 분의 시합을 말리지 못한 것이고.”
“하아,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받는군.”
“이봐, 거기 너희들!”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던 기사 두 명이 움찔 떨었다.
“부기사단장님!”
“소란 떨 시간에 손이나 빨리 움직여라. 아직도 짐을 모두 싣지 않았다니 단장님께 혼이 나고 싶은 거냐.”
“죄, 죄송합니다.”
부기사단장의 등장에 손을 멈춘 기사 두 명이 허겁지겁 짐을 싣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준비 시간이 촉박해 바쁜 와중에도 기사들의 사담이 끊이질 않았다.
황실 기사 서임식 장에서 커틀러가 램파드에게 공개 고백을 한 뒤로부터 이렇다. 솔직히 황실 기사 서임식 때 커틀러가 벌인 짓은 도가 지나쳤다. 화가 난 황제가 자신을 모욕한 커틀러의 목을 쳐도 변명하지 못할 것을. 되레 램파드는 커틀러의 무례를 용서했다.
그 모습에 말단 기사조차 커틀러에게 희망이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화이트 테일 소속 기사로서는 단장인 커틀러를 응원할 수밖에.
“쯧.”
부기사단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비운 커틀러 대신 기사단을 살피러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사건의 당사자인 커틀러 단장은 어디로 갔는지 원. 설마 또 폐하께 간 것은 아니겠지. 사실 말이 좋아 서부 지역 복구 작업에 투입되는 거지, 솔직히 말해 좌천이나 다름없었다. 황성과 멀리 떨어져 언제 다시 수도로 불러들일지도 모른다니. 부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커틀러가 사고 치러 간 것이 아니길 바랐다.
커틀러는 황성을 떠나기 전 램파드의 침실에 찾아왔다. 램파드는 어제와 같은 가운을 입은 채였고 커틀러의 방문이라는 말에 검을 꺼내 준비했다. 그럴 리 없지만, 마지막이라고 오해하는 그가 난장판을 피울지도 몰라 미리 준비한 검이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십시오. 명령하신 대로 서부 지역으로 떠나겠습니다. 순순히 떠날 테니 그 전에 키스 한 번만 해 주십시오.”
“뭐?”
맥이 빠진 램파드는 들고 있는 검을 내려놓았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떠나는 길이라고 강간이라도 할 줄 알았습니까?”
“맞아. 평소, 네 행동을 보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지.”
“입맞춤 한 번이면 다녀오겠습니다.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십시오.”
기껏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멀리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는데. 램파드는 여지를 주는 행동에 커틀러를 미심쩍게 바라봤다. 어제는 얌전하더니 왜 갑자기 하루 만에 서운하다는 투로 태도가 바뀌었지. 진짜 키스만 할 생각인가?
하반신부터 만지는 그의 평소 행동을 보건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램파드가 답하지 않아도 그는 점점 다가왔고,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손끝에 단단한 검집이 닿았지만, 램파드는 검을 뽑아 들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와 허리에 커틀러의 손이 닿았는데도 램파드는 여전히 미동 없었다. 몸은 긴장을 풀었지만, 마음은 그를 경계했다. 마음을 온전히 주면 끝이니까.
커틀러는 경계를 거두지 않은 램파드의 눈을 한 손으로 덮으며 입을 맞췄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온기를 전하며 고개를 움직였고, 램파드는 입술로 전달되는 자극을 받았다. 말캉한 입술이 맞닿자 목 안쪽으로 간지러움이 밀려왔고 램파드는 그의 손바닥 아래서 눈을 감았다.
점점 몸이 밀착했으며 커틀러의 심장 소리가 귓가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어젯밤 버렸다고 생각한 미련이 꿈틀댔다.
입술을 떼어 낸 커틀러가 속삭였다.
“폐하께서 목을 자르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대로 제가 할 겁니다.”
역시, 기대하는 말은 없다. 저가 가지기는 싫고 남 주긴 아깝다는 심보에 램파드는 기가 차 비아냥거렸다.
“내 소유하에 있는 자를 건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잘린 목과 몸은 돌려 드리죠.”
커틀러는 작은 주머니를 램파드에게 건넸다. 안을 열어 보니 억제제가 든 유리병이 있었다.
“두 달 치입니다. 천한 놈이랑 몸을 섞지 말고 약을 드십시오.”
약을 보자 잠깐 일렁였던 램파드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램파드가 원하는 것은 이런 약이 아니었다. 차라리 커틀러 본인이 곁에 남아 애쉬 대신 억제제가 되겠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건만. 값비싼 우성 알파가 아닌 싸구려 약만을 쥐여 주는 태도에 기분 상했다.
“지아비를 기다리듯 조신하게 지내길 원하는 거냐. 아쉽게도 난 네 처첩이 아니라 구멍을 비워 둬야 할 필요가 없는걸?”
“돌아오는 대로 검사할 겁니다. 챙겨 드시지 않는다면 경고한 대로 아래로 먹여 드릴 겁니다.”
램파드는 커틀러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애쉬의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내가 왜 애쉬를 찾으러 간다고 생각하는 거냐. 약 같은 건 이제 필요 없어. 솔직히 이제 너도…….”
살기를 머금은 농후한 페로몬이 코를 가득히 메웠고, 램파드가 굳어 있는 틈. 가운이 거칠게 벗겨졌다. 얇은 끈으로 동여맨 허리끈이 커틀러의 손에 흘러내리고, 매끈한 몸이 드러났다.
놀란 램파드의 가슴은 숨을 들이쉬는 대로 헐떡였고, 노출된 피부에 사나운 페로몬이 닿았다. 살기를 머금은 페로몬에 램파드의 피부가 파르르 떨린다.
싸늘하게 내려다보던 커틀러가 손등으로 톡 튀어나온 유두를 쓸어내렸다.
“오늘은 억제제를 챙겨 드시지 않으셨군요. 약은 제대로 챙겨 드십시오.”
침을 삼킨 램파드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협박이 아니고?”
“협박으로 생각해 주셔도 좋으니까 억제제를 챙겨 드십시오.”
“…생각해 보고.”
“한 번은 믿어 드리죠. 찢어진 가운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커틀러는 바닥에 흘러내린 허리끈까지 챙겨 들고 사라졌다. 잠깐, 그의 살기에 파묻힌 램파드는 숨을 몇 번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커틀러가 떠나자 램파드는 하루 만에 약속을 어기고 애쉬를 찾으러 떠났다. 어차피 커틀러 혼자 일방적으로 약속한 것이지, 램파드는 수락도 안 했다.
원래라면 느긋하게 애쉬를 숨겨 놓을 장소를 물색하고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커틀러가 자리를 비웠으니 곧바로 움직였다. 사람 한 명 숨겨 놓는 건 어떻게든 될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반항하지 못하게 팔다리를 자르고, 생식 기능만 살려 놓는 것이다. 관리하는 이를 하나 붙여 놓고, 필요할 때만 찾아가면 도망칠 염려도 없겠지. 감히 황제에게 손을 댄 애쉬를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으로도 큰 자비니까.
애쉬가 사는 마을에 도착한 램파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한 번 좌우로 움직이면 마을의 전체 풍경이 들어올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만큼 아주 작은 마을. 제국과 떨어진 이곳에서 그는 홀로 지낸다고 한다.
쾅! 아침 일찍부터 나무로 만든 단단한 문이 기사의 발길질에 쉽게 무너졌다. 좁은 집 안은 제국 기사들로 빼곡히 채워졌고, 잠에서 깨어난 애쉬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이미 각오한 표정이었다.
우당탕 쿵쾅, 반항하는지, 그게 아니면 제압하는 중인지 집 안쪽이 소란스러웠다.
애쉬의 집 밖에 있는 램파드는 시끄러운 소리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램파드는 막상 애쉬를 만나러 오자 두려워졌다. 황제 램파드가 서민 애쉬를 만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각인한 오메가가 자신의 알파를 만나는 일은 겁이 났다.
황실 주최 무도회에서 최종 각인을 끝마친 알파와 오메가 부부를 보았다. 방관자일 뿐인 램파드가 봐도 끊을 수 없는 단단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머리가 아닌 페로몬이 정한 운명의 짝이라니. 고작 향 하나만으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이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될 거란 것에 회의적이었다.
머리와 달리 몸은 램파드가 오메가인 이상 절로 끌리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폐하, 애쉬 테일러의 제압이 끝났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짐이 직접 해결하겠다.”
램파드는 숨을 크게 쉬고, 쓴 사탕을 입에 머금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애쉬는 항복한다는 의미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등을 벽에 지고 서 있었다. 반항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알파의 페로몬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건강한 색상을 띠는 그을린 피부에 노란 눈동자, 짙은 갈색 머리를 가졌다. 단 하룻밤을 보낸 애쉬는 램파드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대로였다.
램파드가 우려한 것처럼 그의 페로몬에 뇌가 흐물흐물 녹아 버리며 아양을 떨진 않았다. 오히려 그를 바라보자 사랑은커녕, 분노부터 치밀었다. 흔해 빠진 이름을 가진 남자가 복수한답시고 자신을 강간하고 각인시키다니. 그 덕분에 전처럼 베타와의 관계를 통해 히트 사이클이 억제되기는커녕 페로몬이 꼬여 고생만 했다.
램파드는 이빨로 작은 사탕을 으드득 깨부수며 애쉬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말보다 몸이 먼저 튀어 나갔다. 그는 기사에게 둘러싸인 애쉬의 배를 무릎으로 강하게 가격했다.
“컥!”
애쉬는 자신의 배를 감싸며 그대로 앞으로 쿵, 쓰러졌다. 명치를 가격당한 충격이 큰지 일어서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엎어졌다.
“커억, 쿨럭, …쿨럭! 쿨럭!”
엎드려 괴로워하는 애쉬를 보자 연민은커녕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램파드는 애쉬의 머리를 흙이 묻은 발로 꾹 밟았다.
“이대로 도망쳤다고 생각했느냐. 설마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발과 팔 중 하나를 골라 봐라. 일단은 사지 하나로 자비를 베풀어 주지.”
램파드는 이번엔 애쉬의 볼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애쉬는 기침을 하며 이를 악물 뿐이었다. 통증이 채 가시지 않아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애쉬의 상태를 뻔히 알면서도 램파드는 못 본 체했다.
“말하지 않는다면 짐이 직접 골라 주도록 하지. 네 와인 맛은 꽤 괜찮았거든. 그러니까 손은 지켜 주겠다.”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든 램파드가 애쉬의 발목을 꿰뚫어 버렸다.
“아아아악!”
막혀 있는 애쉬의 목마저 뚫렸는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램파드와 함께 전장을 넘나든 기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고 싶지 않아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애쉬라는 청년이 램파드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황제는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자를 곱게 보내지 않는다.
긴 비명이 끝나고, 애쉬는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그 순간 그에게서 알파의 페로몬이 끼쳐 나오는데 뭔가 이상했다. 알파라고 하기엔 페로몬이 나약하고, 순했다. 베타와 오메가와 비교하면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알파가 칼에 한 번 찔렸다고 꼼짝 못 하며 벌벌 떠는 것 또한 이상했다. 바닥에 엎드린 그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모양새였다.
“이자는 알파인데, 왜 이렇게 연약한 건가. 한번 살펴보아라.”
“알겠습니다.”
램파드의 명에 황의가 애쉬에게 다가갔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데도 반항할 힘이 없어 가만있었다. 황의는 애쉬의 팔목과 목에 있는 동맥을 살펴 기본적인 진찰을 진행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램파드 폐하, 이자는 러트를 홀로 보냈군요. 이 정도까지 약해진 걸 보아하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을 홀로 보낸 듯합니다. 오메가 없이 알파 혼자 러트를 보내는 건 단 한 번도 힘든 일인데 여러 번 겪다 보니 이렇게 약해진 겁니다.”
약이 없으면 시도 때도 없이 히트 사이클이 찾아오는 오메가와 달리 알파의 러트는 각인 상대가 생겼을 때만 찾아오며 아무나 골라잡아 관계를 맺으면 가라앉는다. 알파가 안아 준다고 하면 엉덩이를 기쁘게 흔들 오메가가 널렸는데, 대체 저자는 누구에게 각인해 정조를 지킨 것인가. 램파드는 애쉬를 살펴보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네놈 각인 상대가 누군지 말해 보아라. 이 근방에 있는 거냐.”
묻는 말이 아닌 램파드가 오메가라는 소리 같은 걸 내뱉으면 그대로 혀를 잘라 버릴 생각에 검을 움켜쥐었다. 애쉬는 입을 열지 않고 눈동자를 힘들게 굴려 램파드를 바라봤다.
발정제 향을 맡으며 애쉬에게 강제로 안겼을 때, 날카로운 알파의 페로몬이 어느 순간 부드러워지며 달달한 향으로 바뀌었다. 램파드를 품 안에 넣은 애쉬의 표정 또한, 증오스러운 복수 상대가 아닌 어린 시절 끝없는 사랑을 주었던 잃어버린 형의 표정과 같아졌었다. 착각이 아니었다니. 램파드가 한 질문의 답은 시선 끝에 향했다.
무생물 보듯 애쉬를 내려다보던 램파드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애쉬는 자신에게 각인된 거였다. 각인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오히려 각인할 가망 없어 보이는 커틀러와 달리 오롯이 램파드를 위한 알파였다.
램파드는 지금 자신의 얼굴이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볼이 따가울 정도로 뜨겁다는 건 알았다. 애쉬가 벽을 등지고 쓰러진 덕분에 기사 무리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램파드는 평정을 되찾기 위해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램파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을 에워싼 기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겠다.”
“이자는 포박하겠습니다.”
“짐의 마차에 함께 태워라. 제국의 첫 황후를 포로 수용용 마차 같은 데다 집어넣을 수는 없지.”
곁에 있던 기사가 당황하다 못해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냅다 한 번 찔러 놓고서 황후라니. 알파를?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서민을?
과시를 위해 앉히는 자라면 어느 정도 갖춰야 할 게 있다. 외모가 빼어나든가 정치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든가. 청년은 어느 쪽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의문을 품어도 아랫사람인 이상 입 다물고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램파드는 애쉬를 두고 먼저 마차에 올랐다. 마음이 가라앉자 미친 짓거릴 했다는 게 와닿기 시작한다.
본디 램파드의 계획은 커틀러가 자리를 비운 틈에 애쉬를 데리고 와 숨겨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황후로 삼는다면 당당히 곁에 둘 수 있으며, 숨기는 것보다 안전할 듯했다. 또한, 황후를 들이라는 대신의 입을 다물리기에도 좋겠지.
팔짱을 끼고 편하게 몸을 기댄 램파드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다니. 계산한 게 아니라 단순히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었다.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 남자에게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램파드의 입에 머물던 미소가 사라졌을 때 치료를 끝낸 애쉬가 마차에 올랐다. 순간적으로 느낀 강렬한 두근거림은 더는 없었다.
달그락 달그락,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마차가 달리기 시작한다. 애쉬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은 창밖으로 향했다. 황제를 바라볼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 램파드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얌전히 쫓아올 땐 언제고 인제 와서 무언으로 반항하겠다는 속셈인지 그는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짐이 눈앞에 존재하는데 창문 밖에 시선이 가느냐.”
마차 안은 관심 없어 하던 그가 램파드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차분히 눈동자를 아래로 깔더니,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장소가 이렇다 보니 허리를 굽힐 수 없는 건 용서해 주십시오.”
“시건방진 말투는 그새 고쳤나 보구나.”
“지난 무례는 잊어 주십시오.”
“글쎄… 생각해 보고.”
램파드가 손을 뻗어 애쉬의 턱을 쥐었다. 그는 반항하지 않고 램파드의 손길대로 고개를 치켜들어 올렸지만,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했다. 애쉬의 얼굴에는 볼과 귀까지 길게 이어진 상처가 옅게 남아 있었다. 아문 지 오래된 상처였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기사에게 당했는지 귓가와 볼을 피로 물들이고, 약혼자라는 오메가를 끌어안은 채 램파드와 대치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람인 듯, 칼을 쥔 기사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꽉 끌어안은 채였다. 애쉬가 보호하려던 오메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할 가치가 없는 자였으니 잊어버렸다. 애쉬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또한 잊었을 테지.
“이런 평범한 외모를 가진 자에게 각인당하다니 허리 놀림 하나는 인정해 주겠다. 죽고 싶지 않다면 네 쓰임새를 잊지 않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애쉬는 눈을 감고 고개를 공손히 조아렸다.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려, 반나절 만에 황성에 도착했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