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부 (4/5)

다정도 병인가 하여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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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유협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천화는 눈에 띄게 할 일을 줄였다.

원래는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유협과 이야기하는 게 다였다. 그 후에 천화는 일해야 한다며 작별을 고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는 아침마다 유협을 찾아와 밥상을 같이 받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점심에는 함께 이것저것 놀이를 하러 다녔다. 간혹 서로의 손길이 짙어지면 외출을 삼가고 서로의 것을 만져 주기도 했다. 하도 천화가 목에 입 맞추고 귀를 깨물어 늘상 자국이 있었다.

그 외에는 같이 낮잠을 자거나 아직도 문자에 약한 유협을 위해 글을 읽어 주었다.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천화가 밤이 되면 칼같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유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천강은 밤이 되면 부인 중 누구든 방에 들러 동침을 했다. 물론 천화와 유협이 혼인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천화와 더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같이 자고 싶어.”

오늘도 황망하게 빈 자신의 침대를 보며 유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천화는 매 두 마리를 사 와서 유협을 놀라게 하더니,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미련 없이 매를 조련사에게 맡기고 유협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오늘 푹 잘 자.’

당신 없으면 푹 못 잔다고 하고 싶었지만, 천화의 방긋 웃는 얼굴을 보니 말이 안 나왔다. 결국 유협은 고개만 끄덕이고 천화에게 잘 자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처소로 돌아오니 모든 게 허망했다.

유협은 침의로 갈아입고 텅 빈 침대에 앉았다.

‘내가 너무 개방적인가?’

묘족은 연인끼리 숨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서로 마음에 들면 다음 순서가 게르에 초대하는 거였다. 남자든 여자든 누가 먼저 오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상대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둘만 따로 한방에서 잠을 잤다.

성관계를 하건 안 하건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그게 끝이었다. 이런 시선으로 보니 천화의 관계는 너무 좋지만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진 않았다.

‘그때 내가 별로였나?’

유협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정말 생 처음이었으니 천화의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너무 참을성이 없나?’

그런데 이미 두 사람은 서로의 맨 몸도 봤고, 거의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뭘 더 하라는 건가. 심지어 천화는 전에 유협이 잠을 자고 있을 때 방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정말 어렵다.’

유협은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천화의 마음이 너무 알쏭달쏭 궁금했다. 사소한 농담이나 사랑 표현은 무리 없이 했지만, 어째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조금씩 말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격차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성관계가 없다고 해서 천화를 의심하거나 미워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냥 반쯤은 동거하는 상태에서 왜 침상으로는 찾아오지 않는지 그게 궁금했다.

‘안 돼, 자야 한다.’

잠을 안 자면 유난히 귀신처럼 변하는 얼굴 때문에 유협은 간신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퍼뜩 좋은 생각이 나서 눈을 떴다.

남의 풍속 책을 읽어 보는 거다!

천강의 집에 갇혀 있을 때 천화는 유협이 읽을 만한 책들을 가져다줬었다. 개중에는 남의 풍속도도 있었다.

유협은 벌떡 일어나 요즘 공부하는 책들 사이를 뒤졌다. 곧 푸른색 바탕에 농사일하는 사람이 그려진 책이 나왔다. 겉표지만 봐도 무척 고급스러운 책이었다. 그 말인즉슨 사용된 어휘 역시 고급스러울 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유협은 호롱을 뒤져서 켜고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 주인의 기침을 도우러 갔던 사라는 또다시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유협이 퀭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제는 퀭하다 못해 기력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어딘가 아픈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사라가 급히 손에 들고 있던 걸 내려 두고 다가왔다.

“주인님…… 어디 편찮으세요?”

“사라…… 어제 한잠도 못 잤어요.”

유협이 스스로를 미련스럽다 느끼며 말했다.

“네?!”

사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녀가 황급히 유협의 침의를 살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유협이 고개를 저었다.

“책을 좀 읽다 보니까 날이 새는 줄도 몰랐어요.”

“세상에 그 밤에 책을 읽으셨어요? 호롱불로요?”

사라가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누군가 쥐어박는 느낌이었다. 유협은 머리를 짚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책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글자까지 찾아서 읽다 보니 날이 샜어요.”

“무슨 책인가요?”

감히 우리 소중한 주인님을 이 꼴로 만든 책 좀 보자고 사라가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나 정작 남의 풍속도 앞에서는 그녀도 무너졌다.

“너무 어려운 글이네요.”

시종 출신이라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라였다. 글 읽기 수준이 유협보다 좀 낮은 수준이니 술술 읽힐 리가 없었다. 사라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었다.

“혹시 남의 풍속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나요? 그럼 제가 알려 드릴게요.”

“……말할 수가 없어요.”

문어처럼 흐물거리며 대충 말하자 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갑자기 퍼뜩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녀가 고민을 하다 물었다.

“주인님 혹시 그림이 더 많은 책이 필요하시면, 제가 구해 볼 수 있는데.”

“그림이 더 많은 책이요?”

유협이 고개를 갸웃하자 사라가 답답함을 감추고 가까이 왔다.

“춘화도요, 주인님.”

“……아.”

순간 유협이 조금 솔깃한 것 같았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에요.”

“뭐가 필요한지 대충 설명이라도 해 줄 수 있으세요?”

해파리 같은 유협을 붙잡고 사라가 애썼다.

하지만 ‘도대체 애인이 나와 한 침대를 쓰지 않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고 말하기 싫었다. 설령 남에 무슨 풍속이 있더라고 해도 싫었다. 죽어도 혼자서 찾아내고 싶었다.

유협이 힘없이 고개를 젓자, 안타까워진 사라가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설명을 듣기 위해 애썼다. 유협이 의자에 퀭한 꼴로 널브러져 있고, 사라가 쪼그려 앉아 달래는 모습이었다. 그 독특한 광경을 구경하는 남자가 있었다.

“둘이 뭐 해?”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온 천화의 목소리에 사라가 퍼뜩 놀라서 뒤를 돌았다. 하지만 유협은 앓는 소리만 더 내며 머리를 짚을 뿐이었다. 오늘은 자색에 검은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천화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사라는 알아서 자리를 냉큼 비켰다. 덕분에 유협과 눈을 마주한 천화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대 왜 이래?”

“또 잠을 못 잤습니다.”

“왜? 어젯밤에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었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사실을 털어놓기보다 유협은 힘없이 풍속도를 가리켰다.

“풍속도?”

“저걸 읽다가 한잠도 못 잤어요.”

“어제 날이 다 샐 동안 뜬금없이 책 한 권을 보다가 못 잤다고?”

정확한 상황 파악에 유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화는 도무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다.

“왜 그랬어?”

“그냥 뭔가 궁금했어요.”

유협이 두 팔을 벌리자 자연스럽게 천화가 그를 안아 줬다. 등까지 토닥거리는 큰 손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예 따뜻한 목덜미에 파고들자 천화가 멈칫 하더니 아예 그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번엔 유협이 기겁할 차례였다.

“천화 님!”

“날을 샜으면 침대에 누워 있어야지. 의자에 앉아 있지 말고.”

그리고 천화는 자신의 말대로 유협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푹신한 감각을 뿌리칠 수 없었던 유협이 그대로 모로 누웠다. 천화가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은 화살 맞추기 내기를 하자고 하려 했는데.”

“아쉽네요. 제가 천화 님보다는 더 잘 쏠 자신이 있는데.”

유협이 크게 하품하자 천화가 코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니까 대체 어제 뭘 한 거야. 뭐가 궁금했어.”

“천화 님.”

천화의 취조하는 듯한 말투에 갑자기 머리가 반짝 깨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천화를 은근히 떠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남의 풍속이니 남인인 천화가 아니면 누가 알겠냔 말이다.

유협이 천화에게 가까이 와 달라고 손짓했다. 천화가 가까이 오자 잠에 취한 유협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천화 님은 왜 저랑 안 자세요?”

“뭐?”

정말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천화의 양 뺨이 붉어졌다. 갈색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물론 천화는 거의 매일 밤 유협을 찾고는 있었다. 그러나 침실에 드는 건 다른 의미였다.

유협은 그 모습이 웃겨서 짧게 웃었다. 그러나 진심이었다. 정말로 궁금했다. 천화가 매일 밤 들리지 않는 이유를 꼭 알고 싶었다. 물론 살짝 떠볼 생각이긴 했는데 하여튼…….

“천화 님이 제 방에 안 오는 이유가 궁금해요.”

천화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작게 욕을 했다. 그러나 곧 다시 유협에게 돌아왔다. 귀가 붉어진 채였다.

“졸리면 이불이나 제대로 덮어.”

천화가 유협의 몸에 꾸물꾸물 이불을 올렸다.

유협은 문득 밤마다 잠들며 외로웠던 게 생각났다. 유협이 몸을 옆으로 비켜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천화를 올려다보았다.

천화가 잠시 한숨을 쉬더니 신발을 벗고, 장신구들도 의자에 걸어 버리고 그 사이로 들어왔다. 만족한 유협이 천화를 껴안고 큰 한숨을 쉬었다.

“천화 님 사랑해요.”

“응, 나도.”

“매일 이렇게 안고 자고 싶어요.”

“……나도 그랬어.”

“그럼 오늘부터 와 주시는 거예요?”

“좀 있다 잠 깨고 얘기하자.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이런 식으로는 물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좋아요. 제가 일어났을 때도 여기 계셔야 해요.”

“그래.”

천화는 유협이 품에 파고들었을 때 가만히 있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도 제법 팔에 힘이 있어서 꽉 안긴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아까 방금 기상했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금세 잠든 유협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천화가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는 유협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렀다.

“가서 궁장을 다 치우라고 해.”

“네.”

도무지 무슨 일이냐고 사라를 흔들어서라도 알고 싶었지만, 정작 유협이 아니면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천화는 혼자 속으로 묻고 질문하며 유협이 깨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두 시진이 지나도록 유협은 푹 잠에 빠져 있었다. 천화는 혼곤하게 잠든 그 얼굴을 빤히 구경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천화는 마루로 나가, 식사를 마루에 차리라고 시켰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자신의 눈과 귀를 믿지 못하면서도 사라는 전혀 놀란 티를 내지 않았다. 나가며 힐끗 보니 유협의 얼굴을 쓸고 있는 천화가 보였다. 사라는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작은 소반에 음식을 솜씨 있게 배치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빠졌나 본데?’

원래 폭군이 미인에게 빠지면 인생을 말아먹는 것이다. 천화는 그린 것 같은 폭군이고, 유협은 그린 것 같은 미인이었다. 얼굴만 보면 그랬다.

사라가 걱정되는 점은 유협의 성격이었다. 지금은 천화가 마음에 들어 순순히 굴고 있지만, 천강과 같이 있을 때는 온갖 끔찍한 소문이 다 돌았다. 애초에 때려도 말을 듣지 않고, 굶겨도 말을 듣지 않고, 차라리 죽이라는 마음을 품고 있던 게 유협이다. 경멸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의 인정도 주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천화는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기보다는 인지조차 잘하지 못했다. 자신의 부장이 죽어 돌아와도 투구 무늬를 가지고 사람을 구별하던 인사였다. 유협은 이런 인물을 싫어할 게 뻔했다.

‘뭐지 이 끔찍한 사랑은.’

두 사람 다 열렬히 빠져 있긴 한데 영 모양새가 좋게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천화에게 내숭을 그만 부리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는 정말로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었다. 인간 자체가 망가져 버린 걸 어쩌나. 유협은 반면에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성정이었다.

‘주인님한테 찍히면 저하 인생은 끝이다.’

아니면 거꾸로 주인님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다.

복잡한 마음에 얼굴이 영 펴지지 않았지만, 곧 연인 때문에 마루에 앉아 밥을 먹겠다는 천화를 보고 마음이 풀어진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난리 없이 무사히 성사될지도 몰라.’

그렇게 희망하며 사라는 소반을 바쳤다.

✾✾✾

눈을 떴을 때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머리도 너무 띵하고 아팠고 눈이 반절밖에 뜨이지 않았다.

‘다시는 날 새지 말아야지.’

인간은 햇빛 아래 행동하게끔 만들어졌다. 잠을 자도 두 배로 피곤한 기분에 한숨을 쉬던 유협은 기지개를 켜고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하루 종일 침의만 입고 있었으니 옷을 갈아입고, 천화와 마저 하지 못하던 대화를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고개를 돌렸더니 천화가 노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깜짝이야! 천화 님 여기서 뭐하세요?”

“응? 그대 얼굴에 노을이 비치면 얼마나 예쁜지 반 식경쯤 구경했어.”

“……제발 제 방에서만 있었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건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천화가 일어나 잠에서 막 깨어난 유협을 포옹했다. 꽉 안아 오는 손길에 유협이 끙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천화가 유협의 앞머리를 쓸었다.

“가서 옷 갈아입고 식사해.”

“천화 님은 식사하셨어요?”

“응. 빨리할 필요 없으니까 예쁜 옷으로 부탁할게.”

천화가 쪽 이마에 뽀뽀하자 유협이 픽 웃었다. 천화의 뺨에 입을 맞춘 후에야 유협은 정리를 하러 떠났다.

유협이 잠든 사이에 남의 풍속도를 꼼꼼히 읽어 본 천화는 인내심이 무척 깊어진 상태였다.

‘글자를 좀 가르쳐야겠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글을 못 써서 허투루가 되면 어지간히 속상할 터였다. 어떻게 시간을 빼서 선생 노릇을 할까. 아니 제대로 가르칠 수는 있을까? 고민되었다.

유협이 앉아 있으면 저절로 손이 가고, 그러다 보면 옷을 들출 수 있었다. 벌써부터 하얀 속살이 생각나 천화는 괜히 허리 장식을 당겼다.

그런데 마침 유협이 안방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그는 하얀색과 푸른색으로 꾸민 옷에 발목까지 끌리는 겉옷을 입고 있었다. 장식 하나 없는 옷이 천화 눈에는 어찌나 우아한지 마치 곧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천화의 깊어졌던 인내심이 단박에 끊어질 것 같았다.

유협이 팔락거리며 천화의 앞에 나타났다.

“마음에는 좀 드시는지요?”

천화가 마른 한숨과 함께 눈을 문질렀다.

“밥은 먹고 시련을 주란 말이야.”

“농담이에요.”

“그런 건 농담이 아니지.”

천화가 불퉁거리자 유협이 쪽 소리 나게 입술에 입을 맞춰 줬다.

아까까지만 해도 별다른 자극이 없었던 것 같은데, 유협이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분위기가 불건전해졌다. 요물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심각한 헛생각에 빠진 천화는 유협이 허리를 껴안는 것을 내버려 뒀다.

“많이 지루하셨죠.”

“아니. 할 생각도 많았고, 시시각각 그대 얼굴에 빛이 드는 걸 구경하는 게 재밌었어.”

“아니 왜 사람을 자꾸 구경하세요.”

“그대도 나중에 실컷 봐.”

“언제요.”

“나랑 혼약하고.”

순간 유협의 눈이 둥그렇게 변했다. 그가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천화가 충분히 생각한 대답을 듣고 순식간에 경악한 모양이었다. 잠시 불안한 표정으로 천화의 품에서 스르륵 빠져나간 유협이 물었다.

“혼약이요?”

“천천히 말할 생각이었는데.”

“저는 혼약은…….”

“조금만 들어줘, 응?”

이제 혼인이라고 하면 지긋지긋하기만 한 유협이 망설이자, 천화가 손목을 잡아 부드럽게 유협을 끌어 당겼다.

“우선 이유부터 설명할게. 나도 죽을 만큼 그대와 함께 방을 쓰고 싶었어. 이건 이해하지?”

물론 그런 마음으로 이 사고를 친 것이니, 유협도 그건 당연히 이해가 갔다.

“네.”

“남에서는 재혼이 금지되어 있어. 그러나 황제 폐하께 특별히 요청하면 그대 같은 경우는 가능할 거야.”

“저는 평생 남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그렇다면 그렇도록 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전에 숨이 턱턱 막혔다. 천화가 희망을 제시하는 건지 또 다른 속박을 시작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에서는 음…… 미안하지만, 특히 부인의 정숙을 중요하게 따지지. 특히나 재혼한 사이면. ”

“남의 남첩이었던 제가 전화와 한정없이 어울릴 수 없다는 뜻이죠.”

유협의 목소리가 다소 차가워졌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고 싶지 않아요.”

유협이 기운이 다 빠진 채로 말하자, 천화가 그를 끌어안아 등을 쓸어줬다.

“그대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게 해 줄 거야. 그냥 평범한 사내들처럼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 그리고 나와 혼인하면 내 보증으로 묘족에게 가끔 방문할 수 있을 거야.”

갑자기 들려온 고향 이야기에 유협이 천화의 어깨를 밀고 바라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천화가 픽 웃었다. 눈에 조금은 씁쓸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반면 유협은 그의 팔뚝을 잡아 왔다.

“정…말이세요?”

“원래라면 천강도 폐하께 말을 올려 보내 줄 수 있었을 거야. 다만 천강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을 뿐이고. 나는 있지.”

“정말로, 정말로 보내 주실 거예요?”

“응. 그대가 원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생각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지 유협이 입을 가렸다. 천화는 침착하게 등을 도닥거렸다.

“우리가 안전하게 보낼 방법을 생각하며 떠올렸어. 그러나 사실은 내가 그대와 혼례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

“저는, 저는…….”

“지금 대답할 필요는 없어.”

천화가 유협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순간 유협이 천화를 덮치듯 끌어안아 침대에 눕혔다. 유협이 천화의 품을 꼭 껴안았다.

“감사해요.”

“당연한 거야.”

“감사해요…….”

잦아드는 목소리에 천화는 유협을 꼭 마주 안아 주었다. 혼약 때문에 기뻐하는 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협이 자신의 옆에 머물러 주기로 결심한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

유협은 처음에는 감사하다고, 기쁘다고 했지만 진정이 될수록 갈수록 현실로 돌아왔다. 유협은 혼인을 또 해야 한다. 첫 번째 혼인 때는 남편 인생을 반드시 조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남편과는 그럴 일이 없다.

‘왜냐면 좋아하니까.’

유협은 정자에 올라가 멍하니 연못을 구경하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너무 무심한 사람이었다. 천화는 용기를 내서 한 말일 텐데, 유협은 오로지 변방에 갈 수 있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천화를 사랑하는지도 표현하지 못했다.

천화가 들은 대답도 ‘저도 사랑합니다’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변방에 가기 위해서 혼약을 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했다. 또 남에서 오래 머물러야 한다면 천화와 지내는 게 위치를 공고이 하고 좋았다.

즉, 이 혼인은 유협에게 매우 이득이었다. 반대로 천화가 얻는 것은 정말로 유협뿐이었다.

“미치겠다.”

유협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아이가 청혼을 했는데 자신이 한 표현은 고작 감사였다니. 천화가 사실은 얼마나 실망하고 상처받았을까.

유협은 턱을 괴고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 들었다. 주로 어떻게 무마하면 좋을까 하는 간절한 생각들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충분히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보여 주지?’

좋은 말을 선물해 줄 수도 없고 충분한 음식을 대접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남족의 귀한 자제들은 혼약할 때 보석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유협은 보석도 없었고 신랑 신부가 결혼하기 전까지 얼굴도 보지 못하는 남의 풍습이 별로였다.

‘혼례복까지 천화가 전부 다 준비할 텐데, 내가 낄 거리가 있나.’

천화는 유협이 저번처럼 여자 옷을 입지 않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시무룩해 한숨을 길게 쉬던 유협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혼례복! 그거였다. 궁리하느라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정자에 있던 유협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계단 하나하나를 밟아 내려가며 자신을 칭찬했다.

‘밤에 자고 가는 게 흠이 된다면 아침에 자지 뭐.’

이미 천화는 자신의 알몸을 마르고 닳게 보았다. 유협도 천화의 몸을 보았고, 겉으로 보면 늘씬해 보이지만 벗기면 단단한 어깨에 허리까지 이제는 익숙하다. 근육이 잡힌 몸이 묵직하게 눌러 오는 느낌……. 이미 다 봤는데 뭐가 문제가 될 것인가?

유협은 딴 생각에 빠져 간신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유협이 너무 멀리 간 건 아닌지 걱정하던 사라가 쪼르르 다가왔다.

“주인님 일은 잘 보고 오셨어요?”

“아, 그냥 저쪽 빈 정자에서 물고기를 구경했어요.”

“그럼 차가운 물이라도 한 잔 올릴까요?”

“부탁해요. 그리고 어…….”

민망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말하려니 부끄러운 유협이 진땀을 뺐다. 하지만 애초에 사라의 도움이 없다면 성사되지 못할 일이었다. 유협이 어색하게 쭈뼛쭈뼛 말하자, 사라가 웃음기도 없이 진지하게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화가 눈을 뜨고 깜빡였다.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지만 방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천화가 일어나 끈을 당기기 전까지는 두꺼운 천개로 침상을 가려 놨기 때문이다. 손을 뻗어 비단 끈을 당기자 그제야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하늘이 보였다.

잠시 그 광경을 구경하던 천화는 바닥에 발을 댔다. 사위가 죽음처럼 고요했다. 천화는 자신의 방에 누군가 들어오는 걸 꺼려했다. 잠이 깨기 전에 들어오는 것은 더 싫어했다. 때문에 시종들은 천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 방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의 예민한 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맨발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였다. 지금 이 방에 천화 말고도 사람이 있었다.

천화는 침대에 걸쳐 놓았던 겉옷을 차려 입었다. 붉은색 겉옷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발걸음 소리가 딱 멈췄다.

‘귀신인가?’

천화가 인상을 썼다. 천화가 유일하게 꺼려 한다고 말할 만한 게 귀신이었다.

그러나 방 안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해가 떠오르느라 구름을 달콤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 방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천화가 앞섬을 정리하며 발소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소리를 충분히 들었을 텐데도 상대는 움직이지 않았고, 인사도 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나중에라도 귀찮은 일을 만들 수 있는 시종이었다. 끌어다가 매를 치고 쫓아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침입자를 반 죽일 생각은 누군지 확인하자마자 뚝 끊겼다.

상대는 천화의 창문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빛을 따라 길고 윤기 나는 머리가 어찌나 잘 빗었는지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거기다 머리 장식으로는 검은 나비가 붙어 있었다. 겉옷도 마찬가지로 검은색이었다.

다만 밑으로 가면서 비단옷이 은밀히 비쳐 나비 무늬가 드러났다. 긴 소매가 바닥을 살짝 쓸며 남자가 돌아섰다.

“천화 님.”

유협이 조용히 웃었다.

천화는 마치 주술에라도 빠진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협의 눈이 오늘따라 요요했다. 섬세한 손이 동그란 부채를 들고 있을 뿐인데도 말로 못 할 분위기가 흘렀다.

앞으로 돌아서서 보니 유협은 성장한 채였다. 검은 겉옷 속에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하얀 옷이 있었다. 더구나 돌아서자 검은 머리가 찰랑거려 한순간 천화는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천화 님.”

유협이 장난처럼 부채로 천화의 어깨를 툭툭 쳤다. 천화가 퍼뜩 주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유협에게 다가갔다.

“이게, 무슨?”

“마음에 드십니까?”

장난스럽게 웃은 유협이 천화의 넋 나간 얼굴을 보고 흐뭇해했다. 유협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사르륵 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유협이 톡톡 천화의 턱을 두드렸다. 천화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자 이상한 재미가 피어올랐다.

유협은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전할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렇군. 당장 말해 줘.”

천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절대 방에서 내보내지 않을 거라는 더러운 속셈뿐이었다. 그럼 바로 전할게요, 하고 유협이 순순하게 대꾸하더니 노래 부르듯 말했다.

“저는 천화 님과 혼약하게 되어 진실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유협이 장난처럼, 그러나 진심을 담아 말했다.

순간 천화가 멍한 얼굴이 되었다. 곧 짧은 찰나에 귀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천화가 손목을 잡아 유협을 당겨서 끌어안았다. 그가 유협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유협이 그 등을 토닥거리며 물었다.

“천화 님, 우세요?”

“아니.”

“속상하셨죠?”

“아니야.”

흐음 소리를 내던 유협이 전략을 바꿔 물었다.

“저 천인 같지 않나요?”

본인의 입으로 뱉기에는 상당히 뻔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건 사라의 전략이었다. 유협은 처음에 여성 혼례복을 입어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사라는 우선 혼례복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천화는 유협이 여인의 차림을 하는 걸 반대했다. 유협이 싫어하니까.

이 부분에서 유협은 심장이 설렜지만 참아야 했다. 주인의 속내를 알고도 모른 척하며 사라는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니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게 꾸미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원래 천인들은 성별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흉내 내 보겠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았다면 천화는 사라에게 금덩이라도 받쳤으리라.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은 유협의 목에 아이처럼 매달려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아름다워.”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차려입고 와서 얌전을 떨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유협은 천화의 귀에 속삭였다.

“입는 데도 무척 힘들었는데, 벗을 때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천화는 그 명령에 저항할 수 없었다. 유협을 번쩍 안아들자 부드러운 옷깃이 손등을 휘감았다. 빛이 밝아지는 침대 위에 유협을 앉혔다. 유협은 천화가 벗겨 주지 않으면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겠다는 듯 부채로 톡톡 자신의 앞자리를 두드렸다.

천화는 기꺼이 그의 약혼자가 원하는 대로 따랐다. 유협과 마주 보고 앉자 섬세한 얼굴이 더 자세히 보였다. 짙은 속눈썹에, 하얗고 깨끗한 눈, 옅은 산호색을 띤 입술. 분명 남자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한 욕구가 들게 만들었다.

유협을 무력하게 만들고 싶은 기분에 속이 일렁거렸다. 지금 유협을 보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분명 죽여 버리고도 남았다. 그 정도의 사랑이었다.

“뭐 하세요, 천화 님.”

유협이 천화의 뜨거운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힐끗 본 성기는 이미 아침의 기운과 섞여 발기해 있었다. 하의를 뚫을 듯 솟아오른 모습을 보니, 천화가 어지간히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벗겨 주—.”

천화의 뜨거운 손이 머리카락 사이에 들어갔다. 다른 손으로 허리를 끌어안은 그가 유협의 입을 거의 강제로 열었다.

유협은 옥죄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입 안을 헤집는 혀가 잠깐 사이에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어깨를 짚자 그 손이 그대로 잡혔다.

천화는 늘 상냥하고 부드러운 접문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개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그의 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사나운 입맞춤에 눈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몸이 꾹 눌려 침대에 그대로 쓰러지게 됐다.

“하…… 헉.”

천화가 입을 떼어 내자 간신히 숨을 쉬게 된 유협이 콜록거렸다.

숨을 고르는 사이 천화가 유협을 두 팔에 가두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이라도 보는 눈에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천화의 아래는 흉흉하게 배까지 서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쇄골을 깨물었다. 평소처럼 부드럽지 않아, 윽 소리가 저절로 났다.

천화는 드러난 살결을 음미하듯 목덜미를 깨물었다. 몇몇 군데는 따끔할 정도로 물어 유협은 저절로 천화의 등에 매달렸다. 마치 어린 짐승이 입질이라도 하듯이 목덜미를 물어 대서 결국 유협이 애타는 한숨과 함께 손톱을 세우게 됐다.

상의를 입지 않아 따끔할 터인데도 천화는 한참이나 유협의 살결에 지분거렸다. 달콤한 살결이 물어도, 물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정말 먹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다가도 천화는 콧대를 비비는 것으로 참아 냈다.

천화는 그대로 유협을 올라탔다. 침대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유협이 너무 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단 웅크리고 보는 습관으로 유협은 천화의 왼손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그게 너무 순하면서도 자극적이라 천화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새어 나가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참기 어려우면 말해.”

“네.”

크고 힘줄 돋은 손이 옷의 단추를 향했다. 반쯤 목까지 올라간 작은 하얀 단추를 잡아 풀자 딱 맞던 옷이 들떴다. 유협은 여전히 천화 쪽으로 몸을 돌린 상태였다. 때문에 하얀색 비단 너머로 내의도 없는 맨가슴이 그대로 보였다.

순간 정말 반쯤은 옷을 찢을 뻔했던 천화는 가까스로 이를 악물었다.

“옷 벗자.”

내용은 어린아이한테나 할 법한 말이었지만 어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협이 어어? 하는 사이에 한쪽 팔이 들리더니 옷이 어깨까지 내려왔다. 다른 한 쪽은 여전히 입혀진 상태였다.

“제가, 제가 벗을게요.”

어쩐지 위기감을 느낀 유협이 재빠르게 말했다.

천화는 초조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흐릿하게 웃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하려는 것 같은데 쉽지 않았다. 유협은 살짝 상의를 일으켜 하얀 비단옷을 잡아당겼다. 허리끈이 풀어지며 허물 벗겨지듯 옷이 헐렁해졌다.

“…….”

“왜 그러세요?”

“나머지는 내가 벗겨도 돼?”

물어보면서도 벌써 천화의 손은 옷으로 향해 있었다.

유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서로 벗은 모습은 수십 번 보았건만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달랐다. 괜히 부끄러워 간신히 고개만 끄덕일 수 있었다. 천화가 어깨를 감싸고 쪽 뽀뽀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주욱 옷을 당겨 내렸다.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으로 왔으니 애초에 내의는 생략한 상태였다.

‘입을 걸 그랬나.’

하얀 피부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낯이 붉어졌다. 유협이 괜한 민망함에 천화의 왼손에 머리를 기대자 그가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점점 윤곽을 보이는 몸에 천화는 완전히 시선을 뺏겨 버렸다. 투명하고 하얀 피부와 남자임에도 부드러운 허리선, 산호색 유두가 눈에 띄었다. 천화는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천천히 유협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히려 유협은 그 신호에 더욱 긴장하고 말았다. 천화가 유협을 부드럽게 얼렀다.

“평소랑 똑같다고 생각해.”

“그게 잘 안 되네요.”

끙 소리를 내며 말하자 천화가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 유협 역시 저절로 웃고 말았다.

천화가 고개를 숙어 부드럽게 콧등을 비벼 왔다. 그리고 거기서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검지 손가락이 툭 튀어나온 유두를 긁어 내렸다.

“아…… 아앗, 잠…잠깐만요.”

유협은 유독 가슴이 예민했다. 천화는 유협의 귀 옆에 살짝 입 맞추며 양쪽 유두를 손 안에서 굴렸다. 유협의 허리가 비틀리며 앓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천화는 옷을 좀 더 끌어 내리면서 이번에는 유두를 빨아 올렸다.

“읏.”

어떻게든 신음을 참으려 유협이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나 이미 다리는 속절없이 꼬이고 있었다. 간지러우면서도 짜릿한 감각이 머리를 울렸다. 쪽 소리 나게 유두를 빨아올리는 천화의 입 속이 기묘하게 따스해서 더욱 미칠 것 같았다. 천화의 머리를 밀어 내려 해도 소용없었다.

천화는 계속해서 유협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으며 옷을 벗겨 갔다. 마침내 상의에 아무것도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늘씬한 허리, 배꼽을 지나 하반신으로 내려갔다. 검은 바지 한 겹을 두고 유협의 발기한 성기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천화가 말이 없어졌다. 유협은 부끄러워 그저 팔을 올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허리선만 만지작거리던 천화가 말했다.

“허리 조금만 들어 봐.”

침을 삼키고 유협이 허리를 들어 좁은 틈을 만들었다. 천화가 천천히 바지를 잡아 내렸다. 투명한 속옷은 이미 찐득한 액체에 젖어 있었다.

“벗긴다?”

“제발 그런 건 물어보지 마세요.”

유협이 얼굴을 가린 채 대답하자 천화가 웃었다.

천화가 속옷과 바지를 동시에 벗겨 내렸다. 이제 유협은 완전히 알몸이었다. 그게 인식되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천화뿐이었다. 유협은 팔을 벌려 천화를 껴안았다.

유협이 매달려도 천화는 조금도 힘들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쪽쪽거리며 귓가에 뽀뽀를 퍼부었다. 무릎을 꿇은 천화는 유협의 다리를 조금 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손을 넣어 문질렀다.

“아!”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애무였다. 천화의 큰 손이 꾸욱 회음부를 누를 때마다, 유협은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 천화에게 더더욱 기대어 안겼다. 눈앞이 캄캄해 종래에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시야가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흐읏…… 읏”

착실하게 성감을 올리는 손길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성감대만 집중적으로 눌리자 어쩔 수 없이 반응이 왔다. 천화는 이제 다른 손으로 유협의 성기까지 만지며 사정을 종용하고 있었다. 천화가 딱딱해진 성기를 누르며 말했다.

“싸도 돼.”

아…… 하지만,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말을 하기도 전에 천화가 손짓에 박차를 가했다.

“하으읏.”

결국 유협은 천화의 손에 가고 말았다. 하얀 액체가 천화의 손에 뿌려졌다.

지쳐서 몸이 살짝 늘어지는 순간 천화가 옆에 있던 작은 서랍장을 열었다.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유협을 잡고 무언가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자 어째 불안했다.

“뭘 찾으세요?”

“그냥 넣으면 아프니까.”

유협이 침을 삼켰다. 제가 재주를 부린 이유 역시 이것이었다. 그런데도 떨렸다. 나름 공부했던 대로 유협이 제안했다.

“그냥 정액으로 하세요.”

“싫어. 그러다 그대가 다치면 어떡해.”

“괜찮다고 하던데.”

“누가?”

서랍을 뒤지던 천화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고개를 돌려오는 바람에 유협은 저도 모르게 알아서 찾아봤다는 사실을 토해 냈다. 그제야 천화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건 쓸 만한 물건이 없을 때 이야기고.”

천화가 향기가 나는 기름을 꺼내 들며 말했다.

유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아직도 다리와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천화의 손에 가는 일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이 생길 터였다.

“자세 아까 괜찮았어?”

“네.”

“그럼 이번에도 나를 마주 봐.”

순간 아차 싶었다. 아까까진 괜찮았지만 천화와 눈을 마주 보고, 그를 받아들일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그러나 이미 천화는 유협의 늘씬한 허리를 자신 쪽으로 고정한 후였다. 유협의 붉어진 귀와 엉망진창이 된 머리카락, 알몸을 보며 천화가 녹을 듯이 웃었다.

“혼례가 기대되는데?”

“그때는 천화 님께 맡길게요.”

유협이 멱살을 잡아끌어 내리자 천화가 순순히 입을 맞춰 왔다.

천화는 다른 손으로 기름병을 열고 손을 적셨다. 유협이 입맞춤에 집중하는 사이 손톱이 깨끗하게 정리된 손가락 하나가 꾸욱 닫혀 있던 구멍을 눌렀다. 이질감에 유협이 인상을 쓰자 천화가 손가락을 겉에서 살살 돌렸다.

“괜찮아?”

“으음. 네.”

“천천히 할게. 다리 좀 더 벌려 줘.”

귀가 선뜻 달아올랐지만 유협은 순순히 다리를 더 넓게 벌렸다. 천화가 귀엽다는 듯이 쪽쪽 입맞춤하며 구멍 주변을 살살 돌렸다.

유협은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원해서 누구에게 몸을 열기는 처음이었다. 받기도 처음이었고.

“넣어 주세요.”

결국 유협이 천화를 재촉했다. 아까와는 한결 다른 신음을 담아서. 그러자 천화가 조금 성급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참고 있던 모양이었다. 꾸욱 깊게 속살을 누른 손가락이 내부를 파고들어 왔다. 하아, 유협이 눈을 감고 말했다.

“더 넣어 주세요.”

천화는 대답도 없이 두 번째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순간 아래에서 약한 통증이 올라왔다. 유협이 입술을 살짝 깨무는 사이, 천화가 두 손가락을 밀어 적절하게 자리를 내기 시작했다. 흐물흐물하게 풀릴 때까지 손을 돌리는 동안 유협은 신음을 간신히 참아 냈다.

아랫배가 거북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 유협은 긴 신음을 뱉었다.

“잘했어. 잘 참았어.”

천화가 자잘하게 입 맞추며 말했다.

유협은 이제 됐으니 빨리 성기를 넣으라고 재촉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천화의 것을 받으려면 손가락 세 개는 우습게 삼켜야 할 성싶었다.

평소에 삽입하지 않을 때는 느긋하게 유협을 녹여 먹었던 천화가 오늘은 정말로 이성이라도 놓았는지, 손가락질이 퍽퍽 소리가 나게 빨랐다.

“아…… 아파. 너무 빨라요.”

“조금만, 응?”

손이 내부를 찌를 때마다 아픔과 함께 이상한 감각이 따라 올라왔다. 이미 액이 흘러 천화의 손등을 적시고 있었다.

“천화 님, 그냥 넣어 주세요. 네?”

“……미치겠네.”

천화가 겉옷도 벗지 않고 허리춤만 풀어 내렸다. 곧 아까부터 고통당하고 있던 성기가 퉁 튀어나왔다.

그 예쁜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성기였다. 다만 그 크기가 너무 괴로웠다. 천화가 손가락을 빼고 흐물어지는 구멍에 성기를 맞췄다. 분홍빛 도는 성기가 서서히 닫힌 안쪽을 열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아.”

유협이 입술을 물고 애써 신음을 참았다. 천화 역시 눈을 질끈 감고 삽입의 압박감을 견디고 있었다.

“그대는…… 도통, 풀리지가 않아.”

“천화 님이 좀 작았으…… 하읏.”

거대한 성기가 내벽을 찢듯이 열고 끝까지 들어왔다. 이물감에 괴로웠다. 유협은 잠시 눈물이 고이도록 내버려 뒀다. 힘이 쭉 빠져서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천화는 그런 유협의 허리를 안아 쪽쪽 입을 맞췄다.

“조그만, 쉬면 안 될까요?”

“미안해.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천화가 예쁘게 물든 붉은색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유협은 한숨을 쉬고 천화를 마주 본 자세로 어깨를 잡았다.

“하다 힘들면 말할 테니까, 눕혀 주세요.”

“응.”

천화가 서서히 유협을 눕혔다. 그리고 오금을 잡고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 하아, 읏 신음이 다양하게 터져 나왔다. 거의 아래로 내리꽂히는 성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협의 눈에 눈물이 다시 맺혔다.

천화는 핥아먹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성기로 좁은 내벽을 조금씩 휘저었다. 그리고 곧 금방 자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자 유협의 허리가 튀며 여태까지와 다른 신음이 나왔다. 자기가 소리를 내어 놓고 당황스러워서 유협은 입을 틀어막았다. 괜히 그 모습이 귀여워 천화는 성기를 살짝 뺐다가 지그시 밀어 넣었다.

“……아으흑.”

순간 유협이 발을 버둥거렸지만 천화는 쉽게 잡아냈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을 더 눌러 주자 유협의 성기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잠시, 잠시만요.”

“왜?”

천화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 와중에도 성기에 꿰뚫리고 있던 유협이 천화를 얄밉다는 듯이 노려봤다. 그러다 다시 한번 쿵 찧고 들어오는 가락에 어쩔 수 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예쁘다.”

유협은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지만 천화는 꿈에 젖어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오르려던 천인을 붙잡아 접붙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협이 꾸준히 흘리는 눈물이 그런 상상을 더욱 자극했다.

배까지 거대한 성기가 치받고 들어오자 유협은 숫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힘들어요, 천화 님.”

“아…… 응. 알았어.”

곧 손쉽게 몸이 뒤집혔다. 이제 유협이 천화 위에 올라탄 자세였다.

“흐아…… 너무, 너무 깊어요.”

느끼는 곳에 꾸욱 처박히는 성기 때문에 눈물이 펑펑 날 지경이었다.

허리를 꽉 잡아 구멍이 벌어지게 한 천화가 같은 지점을 쾅쾅 처박았다. 유협은 뿌리치려고 애쓰다가 결국 동시에 엉덩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천화를 가게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하…….”

천화가 나른하게 신음하며 유협의 허리를 잡았다. 얇은 허리와 땀에 젖은 머리카락만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아…… 윽. 집중, 집중하세요.”

“지금 나만큼, 집중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동시에 천화는 유협의 허리를 잡아 그대로 돌렸다. 순식간에 유협이 천화에게 다리를 감고 누운 자세가 되자 유협이 눈을 깜빡였다. 천화는 생긋 웃어 준 후 제대로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뜨겁고 단단한 물건이 아래를 헤집는 기분에 유협의 성기는 거의 꼿꼿하게 섰다. 천화는 쌀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그 성기를 잡았다.

“아!”

“쉬이, 이번엔 같이 가자.”

유협이 어깨를 비틀며 괴로워했다. 천화는 그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잔뜩 하며 핏줄 선 성기로 아래를 찧었다. 곧 유협의 몸이 참을 수 없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에 힘을 받아 천화는 안쪽을 빠르게 쑤시기 시작했다. 너무 느껴서 고통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 악”

“하아, 하아”

두 사람의 비명 소리가 교차했다. 곧 유협의 성기가 먼저 정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천화가 유협의 배 속에 진한 정액을 토해 냈다.

기진맥진한 유협이 반쯤 기절한 채로 천화의 팔에 이마를 기댔다. 쾌락에 젖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할 거예요.”

“남은 평생은 이 기억으로 살아야겠군.”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데 유협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천화는 자신의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 그제야 팔뚝에 휘감겨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흥분에 선 유두를 아쉽게 손가락으로 쓸었다.

다음번엔 택도 없다고 했지만 당연하게 다음을 꿈꾸며 천화는 유협을 안아들었다. 목욕 역시 자신의 손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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