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신랑 차해준 신랑 윤이소
“나 긴장돼서 죽을 것 같다….”
이소는 여러 번 뒤척였다. 하필 결혼식 전날 일이 있어 일본으로 날아가 버린 해준 때문에 침대에 홀로 누운 채 내일 있을 결혼식을 잘 치를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정말인가, 나 정말 결혼하는 건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세 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적인 결혼식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에 비해 전통 혼례는 해가 넘어가는 오후 네 시쯤 시작한다는 것이 지금 잠을 자지 못해도 충분히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면 좋으련만. 이소는 한참을 누워서 뒤척이다 결국은 핸드폰을 들었다. 도무지 이 상태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그래도 결혼식 당일에 바다 건너에 있는 제 애인에게 투정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물론 잠을 자고 있을 확률이 높았지만 지금 윤이소는 그런 것은 고려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받을 타이밍이 한참 지났지만 해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자나 봐. 실망감에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달칵 소리와 함께 잠기운은 묻어 있지 않은 해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 네.
“교수님.”
- 자기 왜. 잠이 안 와?
역시 차해준이다. 부르기만 했는데도 왜 전화했는지 단박에 알아차리며 저를 위로한다.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에 비서를 조곤조곤 조지면서도 자신이 빠질 수 없는 일정이라는 걸 파악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떠나 버린 이 남자는 여태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소는 꼭 저를 두고 갔어야만 했느냐고 투정을 부리려다가도 입술을 말아 물고 해준을 걱정했다.
“피곤하시죠.”
- 괜찮아요. 급한 일은 다 마무리했고 아침 먹고 나면 바로 공항에서 출발할 거예요. 늦지 않게 갈 테니까 먼저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부터 푹 자면 열두 시까진 자겠네. 내가 깨우지 말라고 말해 둘까?
“아니에요. 혼자 일어날게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 내일 되면 못 물러요.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으면 말하고.
“또 마음에 없는 소리로 저 떠보지 마세요. 저 도망가면 우실 거잖아요.”
- 무르라고 했지, 떠나라고는 안 했어. 자기 옆에 없을 때 그런 말 하면 나 진짜 심장이….
“농담이에요.”
해준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잠들 때까지 오늘 컨퍼런스 지루해서 읽었던 고대 설화 하나 해 줄게, 들어 봐. 옛날옛날에 뿔이 다섯 달린 도깨비가 하나 있었는데…. 아이를 재우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옛날이야기를 꺼낸 해준이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조금씩 긴장이 풀어지며 눈이 감겼다. ‘응, 응.’ 하고 몇 번 더 대답을 하던 이소는 그대로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잠에 빠졌다. 이소가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해준의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고대하던 혼례 행사가 시작되었다. 해준과의 통화를 마치고 바로 잠이 든 이소는 정말로 점심이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다행히도 그 시간까지 신랑이 해야 할 일은 딱히 없는 듯 이소의 방 앞으로 든든한 고깃국이 차려진 것 외에는 누구도 이소를 재촉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소는 해수와 정찬을 함께했다. 도리어 해수는 얼른 점심 식사를 한 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며 들떠 있었다.
“해수가 더 신난 것 같네.”
“아빠 결혼식이니까. 전통 혼례도 엄청 신기한데 나까지 한복 입는다니까 너무 좋아. 머리 장식도 할 거야, 나비 모양으로.”
“…해수는 아빠가 아저씨랑 결혼하는 거 정말 괜찮아?”
해수는 물끄러미 이소를 올려다보았다. 결혼식 전에 몇 번이고 물어보았지만 마지막까지도 끝까지 해수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아빠가 아저씨랑 결혼하면 너의 보호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는 거야. 다만 누군가 이 사실을 가지고 너를 공격하거나 비아냥댈 수 있어. 그런 문제들을 견디고 이겨 내면서 살아가야 할거야. 이소는 어린 해수를 앞에 두고 거듭 설명했었다. 아이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을 염려하는 이소의 눈을 지긋이 바라본 해수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럼 아저씨가 아니면 누구랑 하려고.”
“응?”
“나는 괜찮은데, 아빠 혹시 하기 싫어졌어?”
이소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해수의 말투가 묘하게 해준을 닮아 가고 있었다. 이소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해수는 한참 동안 말없이 이소를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팔을 벌리고 섰다.
“아빠, 안아 줄까?”
“응.”
해수의 작은 품에 이소가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파묻었다. 해수는 달걀같이 조막만 한 손으로 이소의 등을 도담스레 두드렸다.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해. 아저씨보다 더 사랑하는 거 알지.”
이소는 딸의 고백에 입꼬리를 길게 끌어 올렸다.
“알지. 아빠도 아저씨보다 해수 더 사랑해.”
이소의 등을 두드리던 손이 주춤하며 멎었다.
“이건 아저씨한테 비밀로 해야겠다.”
“아저씨도 알걸.”
“그래도. 서운해할 거야.”
언제부터 이리도 다 커버렸는지. 자신의 마음보다 해준을 먼저 생각한다. 이소는 제 품에 해수를 꼭 끌어안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품에 안으면 혹 어디 부러지는 곳이 있을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던 아기 때를 지나 이제는 어엿하게 자란 딸아이는 아빠의 불안한 마음을 의젓하게 위로한다.
“알았어, 비밀로 할게.”
이소는 해수를 품에 안은 채 한참을 그렇게 뺨을 부볐다. 내 사랑, 내 보물, 내 딸. 정말 네가 없었으면 나는 진작 죽었을 거야.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을 가슴으로 전하며 해수에게 받은 단단한 용기를 갑옷처럼 둘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유모가 해수를 데려갈 채비를 마쳤다 전했다. 해수는 천천히 품에서 빠져나와 이소의 뺨에 입을 맞췄다.
“조금 이따 만나, 아빠. 멋있게 하고 와. 아니다, 아빠는 항상 멋져.”
“고마워. 해수도 항상 예뻐.”
해수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해수를 보내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반대쪽에서 걸어온 관리인이 이소를 붙잡았다. 어느새 그녀도 단정한 한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도련님께서 막 도착하셨어요. 이제 식이 시작될 때까지 각자의 방에서 준비하고 계시면 됩니다.”
“아, 만날 수 없어요?”
이소의 물음에 관리인이 빙긋 미소 지었다.
“예복 입은 모습이 궁금하시겠지만 식이 시작되면 보세요. 고와서 무척 놀라실 거예요. 아, 저기 이소님 관복도 오네요. 슬슬 우리도 준비하죠.”
관복을 들였다는 관리인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고동색 나무 함을 들고 복도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히고 매무새를 정리해 줄 사람들이었다. 이제 정말 시작이었다. 이소는 관리인을 따라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은 분주했다. 불을 밝힌 청사초롱이 집 안 곳곳에 걸렸다. 붉은색, 청색의 사각 비단을 묶은 긴 장대가 세워지자 남자들은 모서리에 끈을 걸어 천을 좌우로 당겼다. 빨간 천이 오른편, 푸른 천이 왼편으로 길게 늘어져 커다란 그늘을 만들었다. 짚으로 엮어 만든 널따란 돗자리를 펼치고 그 위에 붉은 오동나무로 만든 단상이 올라갔다. 단상 위에 꽃과 촛대, 온갖 장식들이 정갈하게 꾸며졌다. 얼마나 관리를 잘했는지 나무로 만든 원앙 인형의 표면이 매끈매끈했다.
이소는 식솔들의 도움을 받아 얼굴을 매끈하게 다듬고 관복을 하나하나 갖춰 입었다. 흰 저고리 위로 비단으로 된 관복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몸에 걸쳐졌다. 화려한 빛깔의 비단 저고리 위에 푸른 단령을 입고 흑화를 신었다. 발뒤꿈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단령을 걸치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자 그제서야 슬슬 실감이 났다.
“아유, 진짜 예쁘다. 이게 어려서 그런지 피부도 뽀얗고 키도 커서 그런지 잘 어울리네. 이소 님 너무 좋겠다. 차씨 집안 결혼식에 남자가 다 들어오고, 내가 진짜 큰 구경 한다.”
눈을 감고 얼굴에 약한 화장을 하고 있는 이소의 코에 돌연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돌았다.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낙원댁이 뜨끈한 찰떡을 잘게 썰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낙원댁은 작게 자른 떡을 이소의 입술에 톡톡 두드렸다.
“어여 먹어. 그래도 식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배고플 거야.”
“고맙습니다.”
이소는 준비를 하며 아기 새처럼 떡을 잘도 받아먹었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잘 해 주는 식솔들이었지만 결혼식 준비 중인 이소는 정말 말 그대로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손을 탔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도 쫓아올 기세기에 겨우 말려서 관복이 구겨지지 않게 다녀와야 했다.
결혼식이 한 시간 정도 남았을 때부터 차씨 집안 친지 몇몇이 들어와 인사를 했다. 다행히 모두 점잖은 인사들이었는지 이소를 보고 동물원 원숭이마냥 신기해한다거나 남자라고 고깝게 보는 이는 없었다. 차 회장은 백 여사와 함께 상아색의 한복을 맞춰 입고 나타나 하객들과 담소를 나눴다.
뭐가 그리 인사 드릴 사람이 많은지 이소는 차 회장을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엉거주춤 인사를 하고 얼굴을 외우려 노력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백 여사는 귓속말로 그렇게까지 열심히 들을 필요는 없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차 회장의 하객들에게 어느 정도 인사를 돌렸을 무렵 저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숙이었다.
“세상에, 아이구. 아이구야, 너무 곱다. 내가 진짜 무슨 복이야, 이소 씨가 이렇게 곱게 차려입은 걸 보고.”
“저 괜찮아요?”
“그럼 너무 예쁘지. 내가 지금까지 본 신랑 중에 제일이야. 있어 봐, 사진 좀 찍자.”
정숙은 입에 약과를 우물거리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정숙의 목소리가 들리자 저 멀리서 해수 역시 달려왔다. 할머니! 아이고 우리 해수! 두 사람은 끌어안고 한참을 방방 뛰었다. 곱게 머리를 땋고 파스텔톤의 색동저고리를 입은 해수는 꼭 아기천사 같았다. 해수가 이소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빠, 거짓말 아니고 진짜 엄청 멋져. 대박 멋져.”
이소는 버릇처럼 해수의 말을 고쳐 줄까 하다 그냥 씩 웃고 말았다. 해수의 등 뒤로 선 진혁이 입을 가린 채 감격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소가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뭐하고 서 있냐. 묻자 진혁이 얼른 달려와 와락 끌어안았다.
“새끼 너 인생 폈다.”
“조용히 좀 해라.”
등을 두드리며 짓궂은 목소리로 장난을 거는 현수의 등을 툭 치며 이소가 눈을 흘겼다. 그러나 이내 곧 눈을 마주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말을 해도 다 용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날이었다.
하객들이 자리에 앉고 이소 역시 식솔들의 안내로 병풍 뒤에 섰다. 방금 전까지도 얼굴을 마주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웃고 떠들던 분위기와 달리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착석하자 이소는 그제서야 마른침을 삼키며 손을 모아쥐었다. 결국 정말로 식이 제대로 시작하기 전까지 해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해준 역시 반대쪽에서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었을까. 저와 같은 관복을 입고 등장할 해준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보통은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가 그다음에 입장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두 사람 모두 남자이기에 동시에 입장하기로 했다. 전통 혼례에서 사회자 역할인 집례를 이 집에서 가장 오래 일했던 집사 노준경이 맡았다. 나이로나 경험으로나 적합한 사람이었다.
“신랑 입장.”
이소는 홀기를 들고 얼굴을 가린 채 혼례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긴장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숙인 채 안내받은 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하객들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선명히 들릴 정도의 적막이었다. 이소가 자리에 섰을 때 아주 약간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집사 준경이 큼큼 헛기침을 하고 이소를 향해 눈짓했다. 다시 한번 부르겠다는 말이었다. 해준이 아직 안 나왔나, 이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랑 입장.”
혼례석의 반대편에서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끼익, 문이 열리고 저벅저벅 아주 느리게 흙을 지르밟는 소리가 났다. 교육, 예술재단 전부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해온재단 외동아들 혼례식이었다. 언론의 관심은 모두 물리더라도 문화예술계 인사들 중에서는 그 젊고 아름다운 인사가 얼마나 근사한 모습으로 등장할지 주목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감탄인지 경악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그리 멋진가? 이소는 고개를 들고 해준을 구경하고 싶어 입술을 쥐어뜯으며 기다렸다. 사박사박 옷감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식장을 메웠다. 해준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의 감탄과 말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니 왜, 말이라도 타고 등장하는 거야? 이소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천천히 홀기를 내리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해준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너무 놀라 하마터면 결혼식도 잊은 채 그대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푸른 단령의 신랑은 저 혼자였다. 연둣빛 저고리에 붉은 다홍치마인 녹의홍상, 청색 스란치마와 홍색 스란치마를 겹쳐 입고 삼회장 노랑 저고리, 그 위에 마지막으로 화려한 모란이 수놓인 활옷을 겹쳐 입은 해준이 머리에 족두리를 쓴 채 미소 짓고 있었다. 매끈한 뺨과 부채같이 둥그런 이마에 소담하게 올라온 연지곤지는 동백꽃처럼 붉은색이었다.
“교, 교수님! 이게 무슨…!”
“신랑은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집사니임…!”
준경은 무감한 목소리로 이소를 진정시켰지만 입매가 시원하게 휘어져 있었다. 이소가 홀기를 내리고 두리번거리자 백 여사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고 차 회장 역시 웃음을 참는 듯 큭큭대고 있었다. 저와 하객들만 몰랐던 일인 듯 장내는 놀라움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밥을 짓던 찬모들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뛰어나와 남자 신부를 구경했고, 바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도 제 부모에게 저것 좀 보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해준을 보고 놀란 제 모습을 촬영기사는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준경은 굳이 이 소란을 진정시킬 생각이 없는 듯 잠시간 그대로 두었다. 이소가 준경에게 눈짓을 하고 얼른 해준에게 다가갔다.
“교수님, 장난 그만 쳐요.”
“장난 아닌데요. 어서 자리로 돌아가요, 서방님.”
해준이 손으로 들고 있던 흰 천을 슬쩍 내려놓고 미소 지었다. 해준과 이소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의 동성지합 수복지원(同姓之合 壽福志源)이라는 글자와 십장생 문양은 해준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하늘하늘 움직였다. 원래 이성지합 수복지원 아니던가. 맙소사, 정말 저건 누가 고친거야.
“왜, 왜 관복 안 입으셨어요? 왜 신부 복장을 하고 있어요? 정말로 이러고 결혼하실 거예요?”
“뭐 어때. 누가 무엇을 입든 결혼식만 잘 치르면 되지. 안 그래요, 아버지?”
활복을 입은 가을의 신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식장에 퍼졌다. 하객들은 정말로 신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 집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파안대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차 회장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정말로 이렇게 진행해도 되는 건가. 이런 것은 다 짓궂은 장난에 불과하고 다시 해준이 옷을 갈아입고 식을 진행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해준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뿐인 딸 앞에서 활옷 입는 것보단 내가 입는 게 나을걸?”
“교수님도 하나뿐인 아들이시잖아요.”
“우리 아버지와 친지들이 기어코 한 명은 입어야 한다길래 내가 입는다고 했지. 노인네들 놀라는 표정이 볼만하네.”
이소는 입술을 벌린 채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도 교수님이 입으시면 어떡해요! 다들 우습게 생각할 거예요.”
“이소 씨, 누가 감히 그러겠어.”
해준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정말로 괜찮다고 여러 번 말하며 해준은 제가 입은 활옷을 한 번 훑어보고 속삭였다.
“그리고 난 아주 마음에 들어요. 신랑 옷보다 훨씬 화려해서 좋은걸. 자기도 사실 부럽죠?”
“아니요. 전혀요. 정말로 아니에요.”
“그럼 됐지.”
“이제 다시 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이소 님과 도련님은 자리로 돌아가 주시고, 하객 여러분께서도 카메라는 잠시 내려놓으시고 바르게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집례자인 준경이 다시 한번 장내를 정리했다. 이제 정말로 결혼식의 시작이었다. 준경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홀기를 읽어 내려갔다.
“교배지례.”
해준과 이소의 둘 사이에 정갈한 교배상이 올라왔다. 촛대, 소나무, 대나무, 꽃, 닭, 쌀, 밤, 대추 그리고 술잔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식솔들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맞절을 했다. 족두리를 한 해준이 고개를 숙이자 하객들은 언제 웃었냐는 듯 진지하게 혼례식을 관람했다.
“합근지례.”
한 통이었던 표주박을 두 쪽으로 쪼개어 만든 술잔 손잡이에는 붉고 푸른 명주실이 칭칭 감겨 있었다. 서로 각기 다른 색의 명주실은 끈끈한 풀로 정교하게 이어 붙여져 있어서 멀리서 보면 꼭 하나로 이어진 타래처럼 보였다. 수모들이 표주박으로 만든 잔에 맑은 술을 따라냈다. 반절 정도 채워질 줄 알았던 잔은 곧 넘칠 것처럼 가득 찼다. 이소의 눈동자도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거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돼!”
하객들 사이에서 어떤 이가 굵은 목소리로 첨언했다. 이소는 혼례날 술을 흘리면 흘린 이의 마음이 새어 버리고, 술잔 손잡이에 감긴 실들이 엉켜 버리면 부부의 앞날에 고초가 심해진다는 미신을 떠올렸다. 하객의 조언에 화답하듯 해준이 긴 손가락으로 술잔을 들어 올린 후 씩 웃었다. 곧 술을 가득 채운 잔 입구에 해준의 꽃잎 같은 입술이 닿았다. 지켜보는 이들의 두 눈은 흥미로 물들었다. 그래도 한 방울은 흘리겠지 싶었는데 해준은 그 기대를 저버리듯 아주 우아한 자태로 잔에 든 술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사람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신부가 술꾼이야!”
해준이 미소 지으며 고름으로 입술을 꼼꼼하게 닦아 냈다. 곧이어 술잔을 받아 든 이소가 얼른 한입을 털어 넣고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 차려입었어도 해준은 마치 이 세계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답고 고고했다. 저 사람이 저와 평생을 함께할 사이라니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술까지 모조리 마시고 각 집안끼리의 맞절이 있었다. 이소 쪽은 생략하고 이소와 해준은 해준의 부모님께 함께 큰절을 올렸다. 백 여사가 밤과 대추를 잔뜩 집어다가 던져 주었다. 어차피 해준과 저 사이에 아이는 해수 하나일 텐데도 백 여사는 밤과 대추를 어떻게든 해준의 치마에 잘 던져 넣으려고 제법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해준은 답지 않게 팔을 들어 올려 백 여사가 던진 밤과 대추를 한 알도 빠짐없이 모조리 받아 냈다. 해준이 제가 받은 밤과 대추의 개수를 세더니 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야, 우리 열 명 낳자.”
그 말에 이소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공식적인 혼례식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기념 촬영까지 하고 나자 어느덧 해가 완전히 기울었다. 작은 청사초롱뿐만 아니라 집 안 전체에 커다란 조명이 켜졌다. 커다란 정원은 꼭 대낮처럼 밝았다. 야외에 펼쳐진 평상 위에 온종일 준비한 정갈한 한식 요리가 끝도 없이 차려졌다. 정원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연주하는 악단이 자리를 잡았다. 말 그대로 잔치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공식적인 예식을 마친 해준과 이소를 두고 식솔들이 다가왔다. 잘 차려입은 동희 씨가 아이들의 입에 간식을 잔뜩 물려 주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이소 씨, 진짜 멋지다. 관복이 잘 어울릴 줄은 몰랐네.”
“누가 입어도 멋진 옷인 것 같아요. 아, 정말 교수님 저렇게 입을 줄 아셨어요?”
“몰랐죠. 저 사람 속을 누가 알아요. 저기요, 신부님. 사진 남겨도 돼요? 언제 보겠어, 이런 모습.”
동희 씨가 카메라를 들고 해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활복을 입고 아이들을 업은 해준의 머리 위로 족두리가 톡 떨어져 이마에 걸렸다. 백 여사가 다가와 족두리를 풀어 주었다. 해준이 백 여사를 보며 코를 찡긋거렸다.
“엄마, 어쩐지 저보다 더 즐기고 계신 것 같아요.”
“네 아빠 놀리는 건 언제나 재밌지. 그리고 남자 며느리보다 이게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네. 아주 신선해.”
“고마워요. 축하해 줘서.”
“우린 네 편이 아닌 적 없으니까.”
백 여사가 해준의 볼을 살짝 꼬집자 해준이 제 어머니의 손에 뺨을 부볐다. 아들의 우스운 모습조차도 단 한 번의 타박 없이 어여쁘게만 봐 주는 백 여사를 보며 이소는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
어느덧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었다. 이소와 해준은 정말 술을 많이 마셨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무렵 해준은 치마 따위는 아랑곳 않고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이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다. 하객들은 하나둘 저택을 떠났고 두 사람은 저택 중앙 계단에 앉은 채 은은하게 들어온 조명을 바라보며 휴식을 즐겼다. 머리를 기댄 해준은 허밍으로 흥얼거리기도 하고 입맛을 다시기도 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혼례식의 긴장이 풀어진 지는 오래였다. 술에 익은 해준의 뜨끈뜨근한 뺨이 어깨에 닿았다. 꽃냄새가 섞인 술 내음이 훅 끼쳤다.
“이소 씨.”
“네에.”
“이소 씨이.”
“네에, 교수니임…. 저 여기 있어요.”
해준이 눈을 접어 웃었다. 흐응,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목 아래에서 울렸다. 해준은 이소가 대답만 해 주었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이소는 천천히 손을 내려 해준의 긴 손가락을 슬쩍 쥐었다. 이제 막 연인에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의 손가락이 가만가만 얽혔다. 그렇게 십여 분을 말없이 서로의 체온만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의 고요를 이소가 먼저 부드럽게 흐트러뜨렸다.
“우리 이만…. 들어갈까요?”
해준은 대답하지 않은 채 긴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말없이 이소의 손가락을 꼭 얽어 왔다. 예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종종 드물게 수줍어하는 해준을 마주할 때마다 이소는 제 연인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고 느껴지곤 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다가 계단 아래에서 신랑 신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곤 이소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서 보냈다. 이제 어른들의 시간이 익을 차례였다.
***
신방은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려졌다. 무슨 연유로 여기에 차려졌는지 눈에 훤해 두 사람은 신방까지 가는 길을 걸으며 한참을 키득거렸다. 서로에게 기대 비틀비틀 걸으면서 두어 번 넘어지고 주저앉은 걸 손을 잡아 끌어 올려 주었다. 옷이 풀에 쓸려 엉망이 되었다. 멀어도 정말 너무 멀었다.
방 안에는 잘 차려진 술상과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 그리고 갈아입을 옷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섬세한 준비에 이소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래된 원목으로 만든 침대에 해준이 앉자 유격이 맞지 않는 듯 끼익 높은 소리가 났다. 해준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소리가 너무 자극적인데.’ 하고 농담을 했다.
문이 닫히고 나서 뒤늦게 어색함이 감돌았다. 바로 그저께까지 한 침대에서 살을 섞고 잠이 들었음에 불구하고 부부로 마주하게 되자 괜히 낯선 이를 앞에 둔 것 같은 두근거림에 시선을 자꾸만 피하게 됐다. 먼저 방으로 들어가자고 호기롭게 말했던 모습과 달리 이소는 입술을 일자로 다물곤 멋쩍게 웃었다.
“음…. 같이 씻을까요?”
“씻기 전에 한 번 하고 싶은데에….”
볼이 발갛게 익은 해준이 이소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해준은 이소를 침대 위에 앉혀 놓은 채 신발부터 정성스럽게 벗겼다. 잘 묶은 버선이 벗겨지고 바지 끈이 풀어질 동안 이소는 가만히 해준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준이 이소의 관복을 천천히 벗겨 냈다. 제대로 갖춰 입은 덕에 어깨 위에 있는 단추를 끌러 내고 팔에 걸친 관복이 흘러내리자 흰 저고리가 드러났다. 저고리의 고름을 풀어내는 동안에 이소는 제 앞에 앉은 해준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붉은 활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했음에 불구하고 날렵하게 빠진 턱과 곧게 뻗은 목선은 숨길 수가 없는 사내의 그것이다. 푸른 그늘을 만들어 내는 풍성한 속눈썹과 그 아래 자리한 흑갈색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짙은 정염을 담고 있었지만 묘하게 순종적인 여인의 시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여장을 한 해준의 모습을 보며 발칙한 상상만 들었다. 이럴 때 보면 저도 마냥 안기기만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하하…….”
이소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름을 벗겨 내고 하얀 가슴에 입술을 묻던 해준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왜요?”
“그냥요…. 교수님 예뻐서….”
이소는 고개를 기울이곤 제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해준의 귓바퀴를 쓸어내렸다. 볼에 찍은 연지를 손가락으로 슥 문질러 닦자 절반 정도 지워지다 만 것이 꼭 얼굴을 붉힌 것 같은 꼴이 되었다.그것 역시 퍽 볼만했다. 아, 이런 생각은 보통 해준이 하지 않았던가. 술이 들어가니 자꾸만 나른해지고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 생각을…, 했어요.”
“어떤 거. 신부 이벤트?”
“그것도 그렇고…. 자꾸… 그런 눈으로 보잖아요.”
그런 눈이라니. 해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두어 번 깜박이며 제 연인을 올려다보자 이소가 또 한 번 배시시 웃었다. 매번 초롱꽃이 터지는 듯한 웃음소리였지만 백주를 잔뜩 마신 이소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살짝 잠겨 듣기 좋게 울렸다.
“이거요. 이 눈.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을 하잖아요. 이러면 꼭… 잡아먹고 싶어진다구….”
해준은 저를 잡아먹고 싶다고 말하는 이소를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정작 아무것도 벗지 않은 해준과 달리 이소는 해준에 의해 앞섶을 다 풀어 헤치고 앉았으면서 해준의 턱을 쓸어올리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면서 술을 참 많이도 마셨다. 이소가 술을 마시면 애교가 많아지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날이 날인지라 오늘은 가만히 두었던 것인데, 이소는 그런 해준의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 꼭대기까지 마신 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웃어 주고 다녔다. 눈을 접어 웃는 제 신랑을 내려다보던 해준은 슬쩍 장난기가 돌았다.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해준이 넌지시 묻자 이소가 어깨를 기울이며 고운 눈썹과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살갗에 닿은 손바닥이 따끈했다.
“나도 우리 교수님… 안아 주고 싶지. 막… 정신 못 차리게… 해 주고 싶어.”
“키스도 해 주고 아래도 간질여 주고, 내가 우는 것도 보고 싶고?”
해준의 말을 들은 이소가 눈을 끔뻑거리며 시선을 마주했다. 아래도 간질여 주고, 우는 것도 보고 싶고. 몇 번씩 해준의 말을 곱씹던 이소는 이내 코로 바람을 내쉬며 흐흥 하고 웃어 버렸다.
“난 우리 해준이 우는 건 싫은데…….”
우리 해준이, 라고 말한 이소는 손가락을 들어 해준의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곱게 한 화장이 흐릿하게 번지자 제가 좋아하는 깊은 눈매가 유달리 더 도드라져보여 만족스러웠다. 이소가 눈을 접어 웃었다.
“그래도 내 신부 무척 예뻐해 주고… 싶지.”
아, 씨발. 너무 귀여운데. 해준의 입꼬리가 움찔거리며 올라갔다. 이러는 건 계획에 없었음에 불구하고 난데없는 기대감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술에 취한 제 연인을 내려다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뻐해 주고 싶어?”
“으응…? 응….”
해준은 몸을 일으키며 이소의 손에 제 옷의 고름을 넘겨주었다.
“그럼 당겨 봐요.”
귀에 속삭이며 이소의 어깨를 뒤로 살짝 밀자 이소가 몸을 물리며 해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희고 고운 손가락이 고름을 당김과 동시에 날 선 콧날로 옷깃을 헤치고 들어온다. 해준은 뒤로 손을 보내 허리에 고정된 스란치마를 끌어 내렸다. 이내 저고리만 입은 채 아래는 속곳만 입은 해준이 가슴을 바짝 내밀며 이소가 제 품으로 잔뜩 파고들 수 있도록 도왔다. 이소가 이를 세워 품속의 가는 끈을 살짝 물고 주욱 당겨 풀어냈다.
“허, ……하하, …아하하.”
가르쳐 주지도 않은 도발을 잘도 익혀 써먹는 이소를 보며 해준의 입매가 크게 휘어졌다. 앞섶이 풀어지자 드러난 판판한 가슴에 이소가 얼굴을 묻었다. 평소 같으면 제가 가슴을 물고 핥을 때마다 몸을 뒤틀며 울었을 사람이 무슨 생각인지 제 만족을 위해 해준의 살갗을 핥아 내려간다. 해준의 낮은 한숨이 만족스럽게 터졌다. 집요하고 지독하게 파고드는 해준의 애무와 달리 이소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몸을 쓸어내렸다. 모가 고운 붓으로 간질이듯 유두를 빨았다가 놓아주며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천천히 매만졌다. 언제 이렇게 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소 씨, 아주 잘하는데.”
이소가 해준의 가슴에 뺨을 비비며 눈을 감았다 떴다.
“저 좀… 지금 이상한 것 같아요…. 자꾸…, 온몸을 깨물고…, 입에 넣고 싶어요.”
“원래…, 흐음, 그런 거예요….”
말을 하면서도 참 잘도 깨문다. 해준은 지난 연인들과 잠자리를 가질 때 연인이 제 몸을 만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소가 더듬고 매만지는 것은 유난히 살갑게 느껴졌다. 문득 이소가 해준의 허리를 더듬으며 한숨을 토했다.
“교수님도…, 저 볼 때마다, 이랬…어요…?”
너를 볼 때마다 그랬냐고? 곁에 없을 때조차도 너를 생각하기만 하면 매 순간 발정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이소는 해준이 대답을 않자 치마를 완전히 벗겨 내곤 허리에 얼굴을 묻었다. 촘촘한 근육으로 짜여진 허리를 살짝 깨물었다가 해준이 조금 움찔거리자 곧 이를 세워 크게 베어물었다. 조금 견디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일자 해준이 눈썹을 움찔거리며 이소의 뺨을 쓸어올렸다.
“이소 씨, 그건 조금 아픈걸.”
“……그냥, 참으세요.”
이소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 조금 더 제 만족을 채우기로 했나 보다. 해준은 눈을 감고 이소가 마음껏 제 욕심을 채우도록 가만 놔두었다. 한참동안 가슴과 복부를 정신없이 핥아 내려가던 이소가 다시금 얼굴을 떼고 기어올라와 해준의 입술을 찾았다. 처음에는 제법 능숙한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 두고 보다 보니 약간 강아지가 핥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해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소 씨, 얼마나 더 할 거야….”
“몰라요. 저도 하고 싶은 만큼 할 거예요.”
“흐음, 하고 싶은 만큼… 한다고….”
이소는 어느새 해준의 바지를 끌어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제멋대로 입에까지 넣을 기세였다. 그리고 왠지 이를 세워 끊어먹을 것 같다. 해준이 고개를 내려 이소의 붉은 뺨을 붙잡았다. 이 어리고 급한 서방님을 조금은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는걸.
“서방님.”
해준이 나른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이소의 턱을 간질였다. 무릎을 꿇고 곧 해준의 것을 잡으려 했던 이소는 순순히 큰 눈을 들어 올렸다.
“기왕이면 더 좋은 거 하게 해 줄게.”
“……좋은 거요?”
“응. 할래?”
이소는 눈을 끔벅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혼 첫날밤인데 뭐 못 할 것이 있겠는가. 다 허락해 주어야지.
“그럼요. 오늘은 신혼 첫날밤이잖아요오….”
완전히 술에 익은 이소가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런 이소를 바라보며 해준 역시 선악과를 권하는 뱀마냥 미소를 끌어 올렸다. 맞아, 우린 오늘 결혼했지.
* * *
“이소 씨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었잖아.”
침대에 누운 이소가 해준과 눈을 마주쳤다. 그랬다. 해준의 집에서 처음 몸을 섞었던 날, 해준은 이소에게 섹스가 처음이냐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남자와 자는 게 처음이라는 줄로만 이해했던 해준이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제 몸을 열고 들어왔었다. 물론 실상은 여자고 남자고 아예 몸을 섞은 사람은 해준이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해준과 하는 모든 것은 이소에게 처음이었다. 이소는 해준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것도 처음인 거지.”
해준이 이소의 성기를 슬쩍 쓸어올렸다.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든 분홍빛 기둥이 해준의 손이 닿자 바르르 떨었다. 이소는 해준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었다. 제 것을 쥐고 흔드는 다른 이는 없었다. 오직 해준뿐이었다. 해준의 손에서 느꼈고 파정했고 통제당했다. 흥분으로 얼룩져 있던 이소의 눈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소가 대답을 않자 해준이 웃으면서 이소의 무릎 위로 올라탔다. 붉은 입술로 말려 들어가는 긴 손가락이 질척한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며 진득하게 젖었다.
“…아니야?”
“처음…이라는 게 어떤…?”
“이 예쁜 걸 다른 사람 구멍에 넣어 본 적 있냐는 의미지.”
해준의 말에 이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해준이 입술에서 손가락을 떨어뜨렸다. 미끈하게 젖은 타액이 긴 실을 만들어 손가락 끝에서 휘어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 밤도 저 고운 흉기로 제 아래를 헤집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해준과 보내는 수많은 밤을 그렇게 지새웠고 그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러나 해준은 완전히 누운 이소의 배 위에 올라탄 채 다리를 모로 벌리고 제 손을 뒤로 보냈다.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교, 교수님. 저 이런 것은 안 해도 괜찮….”
“예뻐해 준다면서.”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시선은 여전히 해준의 다리 사이에 있었다. 음탕하기 그지 없는 신부의 모습에 새 신랑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지만.”
시선을 피하자 해준의 손이 이소의 턱 아래 여린 살을 간질였다. 무언의 명령에 천천히 이소는 거스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혼이 달아날 정도로 아름다운 낯을 한 미인이 제 배 위에서 다리를 벌린 채 홀로 허리짓을 하고 있었다.
“잘… 봐 둬요. 마음에 들면, …난 기꺼이…다 줄 테니까….”
백옥같은 손가락 사이사이에 투명하게 흐르는 타액을 윤활제 삼아 손가락이 쑤욱 들어갔다. 이소의 시선이 해준의 다리 사이로 떨어졌다. 이미 빳빳하게 고개를 든 성기 아래로 흰 손가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여러 번. 거침이 없으면서도 동시에 부드럽게 내벽을 휘젓는 손길은 능숙했다. 이소의 시선이 아래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자 해준이 입매를 끌어 올렸다.
“안 보는 척하면서도, 다… 보고 있네.”
“……교수님이 너무…, 야하신 거예요.”
이소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해준이 피식 웃었다.
“신혼 첫날 밤인데, 그럼… 소꿉놀이나 할 줄…, 흣, 알았어?”
빳빳하게 고개를 든 해준의 성기 끝에서 몽글몽글 탁액이 맺혔다.
‘교수님, 방금 뒤로 흥분했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입을 가린 채 침만 삼키고 있었다. 곧 해준이 손가락을 빼내고 이소의 것을 제 아래에 맞췄다. 이소는 처음 해준과 밤을 보냈던 그 날처럼 손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해준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웃었다.
“나한테 다 줘요. 이소 씨 전부 다 내가 가지고 싶어…. 응?”
이소는 해준이 곧 내려앉을 기세로 다리를 벌리자 놀라며 해준의 허리를 덥석 붙잡았다. 얼마나 풀었다고 벌써 들어오려는거야, 안 돼요. 찢어진다고요. 다급함에 입술이 말랐다.
“으읏…. 안 돼요. 교, 교수님 그냥 하시면…! 아프실 거예요, 아프실…지금…으음!”
당황한 이소의 입을 막아버리듯 해준이 입을 맞추며 천천히 허리를 내려앉았다.
“흐음…….”
일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해준의 낮고 무거운 숨소리가 내려앉았다. 빠듯하게 벌어지는 입구를 단단한 기둥이 가르고 더운 내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성기 끝을 무섭게 조여오는 압박감에 이소가 얽었던 혀를 빼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느낌 뭐지, 이거 뭐야.
“자, 잠시만…, 교수님…. 저, 이거 너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해준이 입으로 해줬을 때보다 훨씬 더 좁고 뜨거웠다. 이소가 울먹거리며 해준을 올려다봤다.
“이, 이상해요. 교수님, 빼…빼야 할 거 같아요.”
“엄살 부리지 마요. 아직, 반도…, 안 들어갔어요.”
아닌데, 엄살 아닌데. 아직 반도 안 들어갔다고? 이소가 어떻게든 해준을 잡아 들어 올리려는 듯 가슴을 더듬었다. 분명 몸을 가르고 들어가는 것은 해준이고 저는 그 좁은 구멍을 파고들기만 하면 되는 것뿐인데 정작 도리질을 치며 애원하는 것은 이소 자신이었다.
“아읏…, 너무…. 너무 조여요. 기분이… 이상해요.”
“아니지. 이건 좋은 거지. 내가…, 좆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잖아….”
눈물이 차올랐다. 누가 지금 깨문 것 같다고요, 이게 원래 이렇게 아프면서 좋은…건가. 끊어질 것 같아요, 끊어질 것 같다고요. 이소가 손을 파닥거리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런 건… 굳이 가르쳐 주지 않으셔도, 흣…. 아, 너무 좁아….”
“하하…. 이소 씨, 느껴져요? 난 다 느껴지는데. 빠듯해서, 좋은…데. 응?”
이소가 해준의 어깨를 잡은 채 느리게 호흡했다. 성기를 통해 전해지는 해준의 내벽이 너무 따뜻했다. 해준 역시 꽤 오랜만에 아래를 채우는 느낌이 만족스러워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숨을 내뱉었다. 움찔대며 아래를 조였다 풀어낼 때마다 이소가 손을 떨며 해준의 허리를 잡았다 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조금씩 흔드는 것은 모르고 있는지 해준이 얕게 신음할 때마다 놀라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며 해준의 낯을 살폈다. 이것 참 착하고 순하기 그지 없는 서방이다. 그럴 때마다 해준은 이소의 이마를 닦아 주며 귀여운 것을 달래듯 쪽쪽 입을 맞췄다.
어느 정도 서로의 몸이 연결된 것에 익숙해졌음에 불구하고 이소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한 채 해준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해준이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 움직이지 않고. 할 줄 알잖아.”
어서 박아보라니까. 그러나 이소는 귓불을 새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얕게 흔들었다.
“…아프실까 봐요.”
“…….”
제 자지를 품은 미인의 엉덩이가 쪼개질까봐 걱정된다는 듯 해준의 손을 쓰다듬었다. 술은 어느새 다 깼는지 젖은 눈을 하고 달래듯 해준을 올려다보았다.
“……교수님이 아프면, 안 되잖아요. 저 이제…, 괜찮아요. 충분히…, 느꼈으니까, 이제 내려오셔도 괜찮아요.”
해준은 가만히 이소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제 안에서 발기한 채 움찔대고 있으면서 움직이질 않겠다고. 내 충분히 사내로서 즐거워할 기회를 주겠다는데 이것마저 질겁을 해서야. 해준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웃음 지었다.
“…아아, 그래. 충분히 느꼈다고.”
이소의 말에 해준이 조금씩 허리를 물렸다. 이소는 제 성기를 꽉 물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자 참았던 숨을 내쉬며 웅크렸던 몸을 펴기 시작했다. 돌연 거의 다 빠져나갔다고 생각했던 해준이 이소의 어깨를 밀어 완전히 눕히고 무릎을 꺾으며 강하게 주저앉았다.
“아읏……!”
좆이 구멍을 파고들자마자 이소가 손톱을 세워 해준의 팔뚝을 세게 움켜잡았다. 언젠가 해준이 제 것을 입에 물고 오랫동안 놔주지 않을 때처럼 집요하고 거친 느낌이었다. 이소는 혼자서 자위를 할 때조차도 로션을 이용해 부드럽게 푸는 타입이었다. 이렇게 강한 자극으로 볼기와 회음부를 부딪쳐 가며 섹스를 하는 것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교, 수니임……! 으응, 아, 아읏……!”
“처음을, 달라고 했잖아요.”
“으응, 응! 흐윽…! 놔요, 놓으세요……!”
이소가 울먹이며 해준의 허벅지를 마구 때렸다. 완전히 깔린 채 쿵쿵 내려박히니 다리를 접고 있어도 허리가 자꾸 침대 아래로 푹푹 꺼졌다. 해준은 좆질을 하면서 이소의 가슴에 제 손바닥을 대고 내리 눌렀다. 가슴이 답답해지자 호흡이 막히며 풀이 죽으려 했던 제 아래가 더 빳빳해졌다.
“으응……! 아…! 아윽……!”
“제 구멍이 서방님 좆 끊어 먹겠습니다. 허리 더 들어요.”
이소가 바르작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좆을 잡고 강하게 비트는 것만 같은 강렬한 쾌감에 발가락이 다 곱았다.
“아…! 아아……! 교, 수니임, 싫어……!”
해준이 팔을 뒤로 하고 이소의 오금 뒤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새빨개진 얼굴을 한 이소의 눈이 눈물로 푹 젖었다. 이래선 누가 누구를 박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좆 쓰는 일에 겁을 집어먹어서, 어떻게…, 신부를, 만족시키겠어요, 응?”
“아니야아, 아니…, 이 자세는, 그만하고 싶, 어요. 흐윽, 저 이러다 안에 할 것 같아요, 교수님, 네? 아, 제발, 빼 줘요, 빼 주세요…!”
“글쎄. 자기 것이, 꽉 조여서, 안 빠지는걸.”
해준은 다시 허리짓을 계속 했다. 이소는 해준이 찧어댈 때마다 코까지 먹어가며 힉힉 울었다.
“흐, 흐윽…, 킁, 흐윽, 싫어, 빼줘, 빼애……으응, 앗!”
철썩철썩 부딪히는 샅은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붉은 구멍 안으로 쑥 들어갔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제 성기에서 울컥울컥 흰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사정을 참으려는 이소의 신음 소리 사이로 해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이라도 낳아 줄까. 난 우리 이소가 배 아픈 거, 흐읏…, 싫은데…. 이소만…, 좋으면, 흣, 내가 다 해 줄게. 넌… 그저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돼. 응?”
가슴 떨리는 고백을 하고 있는데도 서방은 울먹이느라 들리지도 않나 보다. 해준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볼 안쪽 살을 지그시 깨물고 웃음 지었다.
“아, 아윽, 안… 돼요, …교수님, 진, 짜아…, 흐윽, 정말이야, 빼, 주세, 흑, 으응…!”
추삽질이 빨라졌다. 퍽퍽 찧어대는 몸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오히려 해준은 제 허리를 붙잡은 손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꽉 잡고 아래를 꾹꾹 짓누르며 이소의 사정을 유도했다. 이소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차라리 제가 박히는 게 나았다. 해준과 만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해준의 안에 넣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부드러운 내벽이 귀두 끝을 짓뭉갰다. 눈을 감은 이소가 크게 신음하며 허리를 들어 올렸다.
“하으으……!”
저도 모르게 해준의 복부를 긁어내듯 문지르며 깊이 찔러 넣자 강한 힘으로 뿌리가 조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이고 단단하고 둥근 둔부 사이로 제 것을 꽂아 넣으며 이소는 파드득 몸을 늘어뜨렸다.
“후……. 이소 씨…. 내 안에… 해 줬네.”
이소의 성기가 꽂힌 해준의 다리 사이에서 왈칵 흰 물이 새어 나왔다. 이소의 허벅지가 사정없이 떨렸다. 눈치도 없이 울컥울컥 해준의 안에 싸지르는 자신의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이소가 눈을 가리고 몸을 떨었다. 첫 섹스가 아닌데도 첫 섹스와 꼭 같았다.
쾌감과 미안함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와 더듬거리며 이소가 입술을 허우적댔다.
“하…, 아…. 하으…, 나…. 나는 정말…, 안에 안 하려고 했…, 는데…. 미, 미안해요…. 끄흑…… 미안해…. 어떡해…….”
이소가 손을 바르르 떨며 얼굴을 가렸다. 해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구멍에서 빠져나온 이소의 성기가 희게 얼룩진 채 배 위로 툭 떨어져 내렸다. 사타구니와 쇄골에 온통 땀이 배어 나왔다.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해준이 옷을 마저 벗은 후 이소의 뺨에 입을 맞췄다.
“좋았어?”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에 이소가 주먹을 들어 가볍게 해준을 밀어냈다. 그러나 아까와 같이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사실 좋았다. 왜 이제야 이런 걸 알게 해 주었느냐고 투정 부리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해준과 다시 한번 바꿔서 하라고 하면 도무지 정신을 붙잡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해준은 위가 되었건 아래가 되었건 너무 능숙했고 자신은 서툴렀으며 그를 리드하면서 여유를 부릴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좋았지만… 힘들…었어요.”
“또 해 볼래요?”
해준이 다시 한번 제안하자 이소는 눈을 가렸던 손을 떼고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제가 볼썽사납게 신음을 내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니에요. …안 할래요.”
“왜요, 충분히 잘하던걸. 서방님.”
해준은 이소의 볼을 토닥이며 제 볼의 연지를 마저 문질러 닦았다. 땀이 배어난 얼굴에서 연지는 쉽게 지워졌다. 연지와 화장이 완전히 지워지고 나자 평소의 매끈하고 근사한 낯이 드러났다. 이소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해준을 올려다보았다. 저와는 달리 선이 굵고 단단한 근육을 가진 해준의 품은 성인 남자인 제가 안겨 있어도 부족함이 없이 넓었다. 이소는 그 품에 안기는 순간을 사랑했다. 항상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그 팔 안에 가두어진 채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부인.”
이소는 천천히 숨을 내쉬고 팔을 들어 해준을 끌어안았다. 결국 저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학생이었다. 이소는 부끄럽지만 제 나름대로 애정을 담아 해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쩐지 해준이 자꾸 서방님, 서방님 부르니 맞춰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제 처음도, 마지막도 다 부인 거예요. 물론 전 아직… 능숙하지 않아서… 잠자리에선 좀 부족한 남편이겠지만….”
이소의 입에서 나온 부인 소리에 해준이 큭큭 웃었다. 이소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식대로… 부인에게 예쁨 받을게요…. 그러니까….”
이소가 천천히 다리를 들어 해준의 허리에 감았다. 어쩌면 윤이소는 자신의 어떤 부분에서 차해준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도 같다.
“……이젠 하던 대로 저한테 넣어 주시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준이 이소의 다리를 붙잡고 가슴 위로 끌어 올려 제 목에 감았다. 순식간에 여린 샅을 해준의 얼굴 가까이 붙인 이소가 거꾸로 뒤집힌 채 허리를 뒤틀었다.
“아……!”
“신혼 놀이는 그럼 이쯤 해 둘까.”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행각을 단순히 신혼 놀이라고 정의해 버리며 이소의 샅에 그대로 얼굴을 처박은 해준이 혀를 길게 빼어 구멍을 핥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혀로 구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으으윽……!”
높은 소리로 비음을 낸 이소가 이불을 그러쥔 채 몸을 뒤틀었다. 팔만 겨우 끼운 채 앞섶이 활짝 열린 저고리가 마구잡이로 흐트러졌다. 붉은 혀는 마치 뱀의 대가리처럼 구멍 입구를 들락날락하며 내벽을 헤집고 쑤셨다. 주름 사이사이에 타액을 질척질척하게 묻힌 채 혀를 세우고 길게 푹 꽂아 넣은 후 끝을 구부려 살짝 핥아 올리자 이소의 발가락이 둥그렇게 곱았다.
“하으……!”
해준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볼기를 양옆으로 강하게 벌렸다. 혀로 구멍을 한 번 쑤시고 빠져나오면서 이를 세워 구멍 주변을 짓씹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미끄러운 감각과 아프고 짜릿한 감각이 번갈아 신경을 자극했다.
이소가 몸을 세게 뒤틀 때마다 볼기를 쥔 해준의 손아귀 힘도 더 세졌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르며 해준의 뺨을 누르는 이소의 허벅지도 더 조여 왔다. 해준은 그것마저 매우 기껍다는 듯 더 깊게 얼굴을 묻고 이소의 통통한 회음부에 코를 박고 진득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잔뜩 묻혀놓았던 타액이 바싹 말라 살갗이 차게 식은 곳에 해준의 숨이 가 닿자 이소가 못 견디겠다는 듯 볼기를 오므리며 조였다.
“으응, 으흐윽, 교수, 니임…, 그만, 해요….”
“하루 종일 여기에 얼굴을 처박은 채 있고 싶어요. 이 부드러운 고깃덩이를 입에 넣고 씹고 빨고 싶다고.”
해준은 정말로 그랬다. 이소의 좆과 허벅지 사이의 여린 살에서 뱃심을 간지럽히는 약한 비누 향이 나면 그곳을 정말 세게 씹어 발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윤이소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든 말든 물어뜯어서 너덜너덜하게 만든 뒤 뼈가 드러날 때까지 씹고 찢고 또다시 씹고 싶었다.
그러나 이소는 약한 잇자국을 내기만 해도 아프다고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씹어 버린다면 제 손해 아닌가. 이 말랑말랑하고 여린 살은 물어뜯어 버리면 회복될 때까지 다시 입에 물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참아 가며 약하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오래오래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 해준은 자신이 어릴 적 애착이 부족해 씹는 욕구가 다 해소되지 않은 채 자라 버린 게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하기도 했다.
“흐, 흐읏…, 거기 왜 자꾸 물, 어요…. 거기, 흐으응, 물, 지이, 마아….”
이소의 성기가 또다시 섰다. 뽀얀 방울이 다시 한번 선단 끝에 맺혔다. 해준은 손가락을 들어 귀두 끝을 막았다. 아직 새어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 모조리 제가 삼키고 먹을 것이다. 입으로 무는 것뿐만 아니라 손으로 성기가 잡히기까지 해 버리자 이소가 베개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해준이 제 목을 감은 다리를 천천히 내린 후 허벅지 위에 올렸다. 여전히 해준에게 틀어막힌 요도구를 다 내맡긴 상태였지만 그래도 수직으로 들렸던 허리가 조금 내려오자 이소는 몸을 움찔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해준이 다른 손으로 말랑말랑한 구멍을 헤집자 다시 한번 긴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으흑, 흐으윽…. 자꾸우, 괴롭…히고, 하읏…… 아….”
“잘 풀어야지. 오늘 밤새 할 건데.”
구멍을 파고든 손가락을 가위질하듯 벌린 해준이 넓게 벌어진 붉은 동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희고 부드러운 살갗과 대비되는 어둡고 축축한 내벽은 이소가 숨을 쉬는 리듬에 맞추어 움찔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 아래를 활짝 벌린 채 바라보고 있는 해준을 보며 이소가 발끝을 세웠다.
“그, 그만 보세요. 부끄러워요.”
“들어가고 싶어.”
“네……, 네에? 네!?”
“손가락부터 손등, 팔까지 전부 넣고 싶어. 그리고 어깨랑 머리까지 모조리 집어넣고 네 안을 헤집고 싶어.”
해준은 가감 없이 욕망을 드러냈다.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하나둘 늘어가며 이윽고 네 개나 들어와 한계까지 벌리고 긁어내리자 이소의 작은 머리통은 점점 베개 안으로 푹푹 꺼졌다. 해준이 한 손으로 귀두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아래를 강하게 쑤시며 내벽 안쪽의 둥근 지점을 여러 번 눌렀다. 내벽 안쪽이 둥그렇게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지자 이소의 비명도 점점 커졌다. 이소가 해준의 손목을 마구 쥐어뜯으며 긁어내렸다.
“하, 하윽! 아…! 읏, …기다려, 기다려요! 교수님, 천, 천천히…! 흐으윽…!”
찌르면 찌르는 대로 성기에서 저항 없이 푹푹 흰 물이 쏟아져 나온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이소는 제 성기에서 나오는 소변인지 사정액인지 알 수 없는 뿌연 것들을 내려다보며 코를 훔쳤다. 해준이 고개를 내려 이소의 가슴팍에 묻은 정액을 핥았다. 비위도 좋다. 제 몸 위에 튄 정액을 모조리 핥은 해준이 시선을 들어 이소를 바라보았다.
이내 두 쌍의 눈동자가 마주치고 이소가 입술을 물고 몸을 떨었다. 해준이 손을 빼고 곧바로 제 성기를 찔러넣었다. 손가락을 네 개나 넣어 녹진하게 풀어낸 내벽이 부드럽게 해준의 것을 빨아들였다. 크게 신음하며 몸을 떠는 이소가 해준의 손목을 더듬어 올라가 움켜쥐었다. 마치 그것이 두 사람의 신호라도 된 양 서로의 샅을 붙이고 무섭게 엉겨 붙기 시작했다.
이소는 해준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채 완전히 매달렸다. 어깨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줄줄 새는 눈물을 새도록 두었다.
“읏, 으윽, 응, 아흐윽……!”
찌르면 찌르는 대로 높게 신음하며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용적이 부풀어 오른 해준의 성기가 매끈한 살갗에 마찰을 일으키며 부딪혔다. 두 사람 사이에 튄 땀과 정액들이 다시 한번 배와 허벅지 사이에 뚝뚝 흐르며 젖은 소리를 만들어 냈다.
해준의 입술이 이소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벌어진 입술 틈새로 파고든 혀는 어린 영양을 낚아채는 매처럼 이소의 혀를 감아올린다. 이소는 입을 벌려 혀만 겨우 내밀고 숨을 헐떡였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고취되어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만취될 정도로 마신 술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호흡이 부족해 고개를 돌리고 공기를 들이마시자 곧바로 커다란 손아귀가 뺨을 붙잡아 돌린다. 정말로 저를 잡아먹으려는 것 같다. 치아까지 모두 훑어낸 후 떨어진 입술은 이제는 가슴과 유두를 짓씹듯 물어뜯었다.
“하… 으윽…, 아……아프, 아파요…, 흐윽, 흑….”
아프면서도 혼이 날아갈 정도로 좋았다. 해준의 허리 짓이 점점 강해졌다. 내장이 짓뭉개지는 것 같다. 도대체 이런 쾌락과 고통의 경계에서 어떻게 해준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설마 제 것은 만족이 안 되는 크기인 것일까.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소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삼켰다. 해준이 한쪽 허벅지를 팔로 끌어안은 채 깊게 찔렀다.
“아으윽……!”
“아까부터 딴생각이나 하고 말이에요. 내 눈은 보지도 않고.”
“아, 아으…, 아니…! 아흑! 악! 보, 볼게요, 본다구요…!”
몸을 치받는 힘이 너무 세 아래가 부딪힐 때마다 저절로 시야에서 흰 불꽃이 튀었다. 이소의 눈은 축축하게 젖었고 뺨과 귓불이 새빨갰다. 제가 짓씹은 온몸이 정말로 꽃이 핀 듯 빨갰다. 꿈 속 어디선가 이소의 이런 모습을 희미하게 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이소가 고개를 흔들며 큰 소리로 흐느꼈다. 해준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방님, 지금 아주 예쁘십니다.”
“앗…! 아……! 아윽, 으응…! 죽을 것, 같…아, 나 죽을 것, 같아요. 멈춰요, 멈춰 주세요…!”
쿵쿵 찧어댈 때마다 이소가 비명을 내지르며 손목을 긁어내렸다.
“나를 과부 만들 생각이에요? 아, 아니지. 나 때문이구나. 내 좆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거구나. 그럼 그만할까? 정말로, 그만두길, 원해?”
“흐윽, 으응…, 교수…니임…! 교수님……!”
해준이 몇 번을 더 콱콱 찍어 올리다 돌연 움직임을 거두었다. 턱 끝까지 치받았던 절정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소가 헐떡이다 시선을 내리자 해준이 다리를 내려놓은 채 천천히 허리를 떨어뜨렸다. 아래는 여전히 깊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살을 붙이고 있던 부분이 떨어지자 금세 온기가 달아났다. 단단한 팔이 이소의 몸을 가두고 그늘을 만들었다.
“계속할까?”
이소의 시선이 해준의 눈동자에 닿았다. 장난기가 충만했던 눈빛은 간데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진심만이 남았다.
“못 견디겠으면 말해요. 나 또 자기 아프게 했어?”
이소는 입술을 깨물었다. 또 버릇처럼 싫다고만 말해 버렸나. 자신도 모르게 또 이 사람을 불안하게 했나 싶어 이소는 눈물을 매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좋아요…. 교수님이랑 하는 거 좋아요.”
“…….”
“…정말로, 좋아해요. 더…, 더 하고 싶어요. 싫다고 해서 미안, 미안해요. 저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제가 뱉어 놓고 부끄러워진 이소가 해준의 뒷목을 잡아당겨 입을 맞췄다. 어설프지만 처음보다는 꽤 능숙해진 입맞춤으로 해준의 입술을 물고 빨자 다시 한번 해준이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절정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척척척척 살이 빠르게 부딪히며 샅이 비벼지자 두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낮은 신음을 토하며 혀를 섞었다. 잘 빗어내렸던 머리는 엉망이 된 지 오래였고 입술 틈새로 타액이 흘러넘쳤지만 그런 것쯤은 아랑곳도 않고 닥치는 대로 몸을 비볐다.
한 번 좋다고 말이 터지기 시작하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솔직하게 좋다고, 너무 좋다고 울음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어째서인지 싫다고 말할 때보다 좋다고 말할 때 눈물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았다. 침대 끝으로 몸을 끌어 내린 해준이 이소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몸을 찍어 내렸다. 해준의 허리가 깊이 빠졌다가 제 몸으로 떨어질 때마다 내벽을 찌르는 자극은 점점 더 커졌다. 안 된다는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짧고 굵은 신음만 터졌다.
“이소야, 다 네 거야.”
해준은 내장을 찢어 버릴 기세로 거세게 추삽질하며 알 듯 말 듯 한 말을 중얼거렸다.
“온전히 다 네 거야. 내 머리카락 한 올부터, 손톱 조각, 하나까지,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못 줘. 모두 다 윤이소, 네 거라고. 응? 이해했어?”
“아……! 흐읏…! 이해했, 아, 근데 이제 그만……! 으응…!”
전신을 채찍으로 때리는 듯한 쾌감이 철썩철썩 일었다. 이소가 울음을 터뜨리며 짧게 사정했지만 내벽을 가로지르는 성기는 돌연 크기를 더 키우며 마찰을 높였다. 쉬지도 못하고 다시 한번 쑤셔대면 너무 큰 자극에 정말로 혼절할 것 같은 느낌에 이소가 해준의 가슴을 마구 할퀴었다. 해준이 침대의 헤드 부분을 움켜쥔 채 단단한 기둥을 묵직하고 빠르게 내리꽂았다.
“아…! 교수님…! 교, 스읏, 흐윽! 차, 차해준…! 멈춰, 멈추라니까…!”
“……아직, 남았어.”
이소의 손톱이 해준의 가슴에 깊게 박혀 핏방울을 낼 때까지 허리 짓은 계속됐다. 곧 쓰라릴 정도로 구멍을 짓이기며 허리를 흔들던 해준이 그동안 참아 왔던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며 깊이 찍어 내렸다. 구멍 안으로 머리가 크고 몸통이 긴 뱀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순식간에 파고드는 것같이 거세고 뜨뜻한 물줄기가 역류했다.
“흐으윽……!”
이소의 허리가 곡선을 그리며 길게 휘었다. 동시에 해준이 쥐고 있던 침대 헤드가 우지끈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해준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거둔 뒤 이소의 허리를 안아올린 채 아직 제 속에 남은 것들을 구멍 안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이소가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벙긋거렸다. 기분이…, 기분이 정말로 이상했다. 사정한 것이 분명한데 양은 훨씬 많았고 제 내벽을 가득 채우고 구멍 틈으로 흘러내리는 탁액의 점도가 낮았다.
“아……. 아으……잠시, 마…안, 하으윽!”
여전히 맥동하는 기둥이 천천히 구멍 밖으로 빠져나오자 붉은 굴 안에서 희고 묽은 정액이 엎지른 물기둥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탈력감에 온몸에서 힘을 뺀 이소가 해준의 몸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해준과 이소의 정액으로 푹 젖은 바닥에 흰 몸뚱이가 사지를 늘어뜨리고 입만 겨우 벌린 채 헐떡였다. 눈가가 발갛게 젖었다.
해준 역시 드물게 숨을 몰아쉬며 선 채 완연히 지쳐 버린 제 연인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몸뚱이를 갈기갈기 뜯어먹혀 쓰러진 영양을 내려다보는 맹수 같은 눈이었다. 호흡이 갈무리가 되고 눈동자의 이채를 찾은 해준은 말없이 뜨거운 물수건을 가져와 이소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 냈다. 이소는 손가락도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듯 해준이 온몸을 닦아 낼 때까지 눈을 감고 잠깐 졸기도 하고 끔뻑거리며 멍한 상태였다.
해준은 시트를 얼른 갈아내고 부서진 침대 헤드를 대충 옆으로 치운 후 이소를 이불로 둘둘 말아 안아 올렸다. 땀에 젖어 있을 때는 번들거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몸 곳곳에 붉은 흔적들이 가득이었다.
“이소 씨.”
이불을 턱까지 끌어 올린 이소가 천천히 눈을 떴다. 다시금 깜빡깜빡 눈이 감기려고 했지만 저를 열렬하게 바라보는 해준을 보니 도무지 바로 잠에 빠질 수 없었다. 눈과 머리카락이 푹 젖고 온몸은 발갛고 사지는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무거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해준이 주는 사랑의 형태를 이소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해준이 모로 누운 채 이소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넘겨주었다. 매 순간 매초, 차해준의 사랑은 드넓은 정원을 가득 채운 꽃처럼 끝없이 싹을 틔운다. 그 사랑을 꺾어 커다란 소쿠리에 담아 매일매일 이소의 마음에 쏟아붓는다. 바로 지금처럼 또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진심을 다해 고백했다.
“사랑해. 정말로 많이.”
말없이 눈을 깜빡이던 이소가 이내 입매를 끌어 올려 배시시 웃었다.
“저도요. 정말로 많이 사랑해요.”
이소가 자애로운 미소로 이불에 감싸인 제 몸을 천천히 열자 해준이 작은 새끼 강아지처럼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소가 해준의 뒷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는 보송보송해진 이소의 몸에서 어렴풋한 분내가 났다. 화장도 않는데 어찌 이런 분내가 날까. 해준은 문득 아주 오래전 보육원에서 저를 꼭 끌어안아 주었던 이소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와 아들은 향마저도 닮는 걸까. 해준이 입술을 내려 이소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행복했다.
가을 밤바람이 창가를 두드리며 불이 꺼진 신방을 기웃거렸지만 밤이 깊도록 끝없이 이어지는 연인의 속삭임에 눈을 흘기며 이내 몸을 돌렸다. 신방 안은 계절을 모르고 여전히 봄과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