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세상에, 이거 진짜 어떡해요…?”
이소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섰다. 사건이 종결되고 호텔에서 일주일을 푹 쉰 이소는 해준을 따라 저택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저택은 폐허 그 자체였다.
화재가 났다고 듣기는 했지만 정말 온통 싹 타 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해준의 저택은 주차장에서부터 들어오기가 어려운 구조였고 뒤늦게 산불진화용 헬기가 달려들어 약 반나절 만에 겨우 진압이 되었다고 했다. 눈은 모두 녹았지만 하얗게 달라붙은 화학액이 새카맣게 타 버린 한옥 기둥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을린 돌담과 마른 나뭇가지가 땅을 밟을 때마다 버석거리며 부서졌다. 한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정원은 꼭 봄처럼 따뜻했다. 안채뿐만 아니라 별채와 행랑채까지 모조리 타 버린 저택을 보니 이소는 착잡하고 슬펐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미워할 수 있나. 주영을 생각했지만 이제 와 원망스럽다거나 분노가 일지는 않았다. 열을 낼 기력을 모두 소진해 버리기도 했거니와 집을 잃은 것치고는 해준이 퍽 담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 다시 짓는 동안은 본가에 내려가 있든가 해야지.”
해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긴 장대를 쥔 채 정원 울타리와 바닥을 휘휘 저었다. 꼭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해수는 그런 해준의 곁에 바짝 선 채 무얼 찾는지도 모르고 같이 땅바닥만 보고 있었다. 이소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둥그런 바위 옆에 쪼그려 앉았다. 어느새 올라온 준경이 운이 좋게 타지 않은 물건들을 모두 챙겨 차에 실었다고 말하고 곁에 섰다.
“너무 아깝다…. 교수님 이제 어떡해요. 다 지으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거고, 여기 터가 넓어서 돈도 진짜 많이 들 텐데….”
돈 이야기에 바닥을 쿡쿡 찌르던 해준이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얼마나 더 티를 내야 안심을 할까. 저를 생각해 주는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럼 이소 씨가 나 먹여 살려야겠다.”
“제가요?”
턱을 괴고 앉았던 이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소 씨 부자 됐다며. 나 진짜 집 말고는 가진 거 하나도 없는데, 집이 다 타 버려서 거지 됐어요. 학교도 잘렸고 경찰 자문 일도 끝났어요. 백수예요. 그쵸, 집사님.”
“네, 다 사실입니다.”
준경의 동조에 이소는 당황했다.
“아니, 본가 내려가신다고 하셨잖아요.”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이소 씨랑 있는 게 좋겠어. 다 큰 아들이 내려가 있으면 장가가라고 잔소리만 듣지. 우리 어머니 잔소리 무섭거든.”
그게 무슨 핑계가 되냐는 듯 이소가 입술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정작 저도 갈 곳이 없었다. 통장에 돈은 넉넉하다 못해 넘칠 만큼 있었지만 당장 해수를 데리고 호텔에라도 가 있다가 부동산을 일일이 둘러보며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저도 지금 당장은 집이 없단 말이에요….”
“저런, 우리 모두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네.”
해준은 놀리듯 말했다.
“아저씨, 그러지 말구 우리 다 같이 아저씨네 가면 안 돼요? 저 은찬이랑 세현이랑 보고 싶은데….”
해수가 끼어들었다.
“아, 그러네. 그럼 해수야. 우리 할머니랑 할아버지 만나러 갈까? 친구들 다 거기 있는데?”
“좋아요, 좋아요.”
“좋은 생각입니다. 빨리 이동하시죠.”
준경까지 두 사람을 거들었다. 이소를 제외한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자 이소가 황당한 얼굴로 채근했다.
“아니, 지금 저만 빼고 무슨 작당들을 하는 거예요. 해수 너는 거길 왜 가.”
이소가 구시렁거리든지 말든지 해준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수 무지 예뻐할 거 같은데.’ 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다 별안간 ‘찾았다.’ 하고 장대를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하얗고 고운 손으로 검은 흙더미를 슥슥 파헤쳤다. 풀과 나무가 모조리 타 버린 땅은 검고 하얀 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해준은 개의치 않다는 듯 손끝이 지저분하게 물들 때까지 땅을 헤집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눈 앞에 여린 녹색의 대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숲에서 제멋대로 해준이 옮겨다 심어 놓은 어린 대나무였다. 양 끝은 새카맣게 타 버렸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이소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나름 주술적 의미가 있달까.”
이소가 매직으로 슥슥 적은 [또 올게요]라는 메시지는 반이 지워져 있었지만 그래도 대충 알아볼 만은 했다. 이소가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자 해준이 코를 쓱 훔치며 민망한 듯 웃었다.
“아니 이게, 이걸 해 놓으니까 진짜 이소 씨가 돌아왔고…. 그래서 또 가져다 놓으면 다시 또….”
“다시 또 뭐요.”
머쓱하게 웃은 해준은 그 작은 대나무를 툭툭 털어 준경에게 건넸다. 정녕 저것을 가져갈 모양인가 보다.
“같이 살아 주나 하고.”
물론 이소 씨는 이소 씨 집에서 산다고 했지만…. 해준이 우물쭈물거리며 이소의 소원에 저도 숟가락 하나 얹을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 이소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정말 고작 그런 이유로 바닥에서 저걸 여태 찾았단 말인가. 가끔 정말 애 같을 때가 있다.
해수가 문득 해준을 바라보다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코에 검댕 묻었어요. 해준이 아래를 내려보다 코를 슥슥 닦아 내자 오히려 더 번졌다. 해준만 눈을 깜빡이며 ‘왜애, 어디에 묻었는데.’ 하며 쪼그리자 해수가 제 소매를 길게 당겨 얼굴을 슥슥 닦았다. 해준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미소 지었다. 이소 눈에는 그 둘의 모습이 썩 예뻐 보였다.
“도련님, 이제 내려가셔야죠.”
준경이 시계를 보며 해준을 재촉했다. 곧 말끔해진 낯으로 돌아온 해준이 사박사박 마른 가지를 밟고 이소의 앞에 섰다. 진회색 모직 코트를 입은 해준은 해수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해준과 해수가 동시에 고개를 기울였다. 꼭 부녀같다.
“이소 씨, 같이 가자.”
“아빠, 같이 가자.”
주머니에 꽂혀 있던 다른 손이 이소의 코앞까지 부드럽게 다가왔다. 이소가 눈을 깜빡이자 해준이 조르듯 눈을 접어 웃었다.
“빨리 손잡아 주세요, 자기야. 응?”
저렇게 웃으면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 이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겨울의 소란이 지나간 정원을 그대로 두고 이소는 해준을 따라나섰다. 언젠가 다시 돌아왔을 때 부디 이 정원에 새 봄이 잘 안착하기를 바라며.
* * *
그리고 겨울의 끝, 윤주영은 교도소로 이관되었다. 수많은 사기와 횡령, 마약과 더불어 열 명 남짓 살해한 강력범. 뿐만 아니라 꽤 높은 등급의 사이코패스로 분류가 되어 정신병 진단까지 받은지라 보안이 철저한 1급 교도소에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었다. 윤주영의 형이 떨어지는 날에 인터넷 게시판은 윤주영의 얼굴과 평소 행적으로 도배가 되었다. 젊은 기업인의 이중적인 모습, 사이코패스, 공항 추격전 등 온갖 기사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이소는 주영의 기사를 보면서 생각보다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기사보다 더 꼼꼼히 읽었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진실을 완전히 마주한 후 남은 것은 막대한 유산과 자신을 향한 주영의 욕망,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기도 전에 떠나 버린 주영의 빈자리였다. 자신이 주영에게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돈이 없어도, 백부 백모가 구박을 조금 한대도 같이 함께 영화나 보며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형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원하는 것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면회는 10분입니다.”
해준은 철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주황색 수의를 입은 주영은 살이 조금 더 내렸다. 잘 빗어 넘겼던 머리는 샴푸만 했는지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채 내려와 이마를 덮었다. 이리 보니 밖에서 볼 때보다 퍽 앳돼 보였다. 주영이 눈동자를 들어 해준을 마주했다. 이소와 함께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주영이 피식 웃어넘겼다.
“차 교수. 아, 이제는 학교 잘려서 그냥 차해준.”
“뭐든.”
완전히 잘린 건 아니었지만 구태여 정정하고 싶지않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 와서 존대를 할 필요도 없어 해준은 그냥 되는대로 뇌까렸다.
“이소가 네가 꿈에 나왔다고 궁금해하길래 내가 대신 왔지. 근데 잘 살아 있네.”
“무슨 꿈.”
“기대하지 마, 창문에 목을 매달았다나. 자살했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주영은 실소를 터뜨렸다.
“하. 동정하고 있군.”
“나였다면 그런 동정마저도 황송할텐데.”
해준은 다리를 꼬고 손을 가볍게 얹어 놓은 채 싱긋 웃었다. 주영의 손톱과 손바닥, 손등에 온통 상처가 한 가득이었다. 어지간히 쥐어뜯어 놓는가 보군. 해준은 제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은 질색이었다. 아직도 온몸의 흉터가 그 지옥같은 날의 훈장처럼 남았지만.
주영이 차가운 눈으로 일갈했다.
“이소를 가졌다고 착각하지 마.”
“…….”
해준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려 악에 받친 눈동자를 응시했다.
“원래 그래, 사람이라는 게. 가진 것이 없으면 밥 한 숟갈, 물 한 모금이 절실해지고 조금만 잘 해 주면 맹목적으로 따르기 마련이거든. 멍청하고 착한 애니까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바보처럼 감사하다, 고맙다 소리나 하는 게 뻔히 눈에 보여.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넌 그저 그 애를 네 입맛에 맞게 길들인 것뿐인데.”
해준은 이소를 제 입맛에 맞게 길들였다기보다는 반대로 이소에게 해준이 길들여져 버렸다는 것을 굳이 설명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이소도 언젠가는 깨달을 거야. 너나 나나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걘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알아.”
해준이 말을 잘랐다. 천천히 들어 올린 시선은 무감했다.
“다 안다고. 이소도.”
주영의 시선이 흔들렸다.
“넌 네 동생을 되게 유약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해준은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잠시 이소를 떠올렸다. 대체로 웃고 있었지만 혼자 생각에 잠길 때면 무섭도록 냉한 표정의 미인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게 사람들과 섞이기 전의 가장 편안한 상태의 이소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이소는 너 같은 찌질이보다는 훨씬 단단하고 이성적인 애야. 다만 우리처럼 속이 검고 음침하지 않을 뿐이지. 선천적으로 맑은 애라 선의를 의심하지 않고 감사히 받는 것이고 악인이라도 동정할 수 있는 것이고 잊지 않을지언정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는 거야.”
네가 아픈 손가락이라더라. 그런 사람을 감히 너 같은 게 어떻게 평가를 내리겠어.
해준이 웃으며 꼬았던 다리를 풀어냈다. 옷깃을 정리하는 흰 손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본 주영의 시선이 멎었다. 주영의 시선을 눈치챈 해준이 눈을 접어 웃었다. 아, 이거.
“늦은 생일선물. 이 싸구려 반지를 사서 내게 끼워 주겠다고 한달음에 달려오던 중이었는데. 네 놈이 만든 지옥 같은 밤 때문에…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받았네.”
이소는 해준에게 더 비싼 반지를 끼워 주고 싶어 했으나 해준은 곧 죽어도 그날 샀었던 그 반지를 받고 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이소는 해준의 손을 잡고 오래된 금은방에 가서 그때 골랐던 그 반지와 꼭 같은 것을 사서 끼워 주었다. 해준은 그 싸구려 반지가 퍽 마음에 들었다.
몸을 돌리던 해준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해준은 짧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다 잃은 윤주영이었다. 이제 와 이미 감방에 갇힌 인간의 콧대를 눌러 놓을 필요도, 오만한 태도를 무릎 꿇리는 것도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마음에 치기가 어렸다. 참을까, 말까. 그러나 이내 돌아섰다. 이소야, 미안. 어차피 나는 태초부터 이렇게 뒤끝이 길고 성정이 못돼 처먹은 인간이다.
“사실 너무 유치해서 그냥 돌아갈까 했는데, 틀린 사실은 고쳐 주고 싶어서.”
해준은 지갑을 꺼내 들었다. 주영이 눈을 부라렸다.
“내가 네가 주는 돈 같은 걸 받을 거 같아?”
“누가 영치금을 간수 앞에서 넣어주냐, 처음 온 티 내지 좀 마.”
해준은 지갑을 열어 유리 벽 앞에 갖다 붙였다. 이소의 어머니와 한 아이의 사진이었다. 주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얼굴을 굳혔다. 자신이 이소에게 넘겨준 사진인가, 그런 것치고는 두 장의 사진이 교묘하게 이어 붙여져 있는 것 같았다. 이딴 사진을 왜 보여 주는 거지. 주영이 눈을 들어 해준을 바라보았다.
두 시선이 맞부딪혔다.
“네 입으로 그랬지, 누구보다 먼저라고.”
주영의 시선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해준은 사진 속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배시시 웃는 얼굴이 고운 소년, 성은 없이 이름만 있던 어린 차해준에게 윤이소라는 아이는 작은 꽃씨와 같이 다가왔었다.
* * *
“안 꺼져, 진짜! 또 기어 나왔네, 이 거지 새끼가!”
몇 살인지 가늠도 안 가는 나이, 키만 부쩍 큰 어린 해준은 바닥을 기어 다니던 시절부터 시장 바닥을 전전하던 맨발의 아이였다. 해준은 시궁창 냄새가 나던 다리 밑 거지 소굴에서 자랐다. 말을 떼기도 전에 매를 맞고 동냥질을 하고 물건을 훔쳤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주워 먹었고 가끔 거하게 먹는 날이라고 하면 누룽지를 물에 불려 끓인 물이 다였다. 항상 배를 곯았다.
그러나 타고난 체력과 근육이 잘 붙는 단단한 몸 덕분에 해준은 그 동냥패들 사이에서도 치이지 않고 잘 자랐다.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남들보다 동냥을 해도 배는 더 받았고, 밥도 두 배는 더 얻어먹었다. 머리가 좋은 해준은 다리 구석 버려진 굴을 찾아 음식을 숨겼고 함께 배를 곯던 동생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이것밖에 못 벌었냐고 두들겨 맞는 날이 있더라도 미리 숨긴 동냥금을 몇 푼 떼어 땅에 묻곤 했다. 어린 해준의 소원은 소박했다. 솥밥 한 번 배 터지게 먹어 보는 것, 기왕이면 함께 있던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동냥패 대장 놈에게 정말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고 돈과 음식을 모두 빼앗긴 해준은 그대로 다리 밑에 버려졌다. 그대로 두면 죽기 딱 좋을 정도의 겨울날이었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은데.”
부드러운 남자의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바닥에 엎드린 채 눈을 깜빡이자 갈색 구두가 코앞에 있었다.
“저희 원에서 데려가겠습니다.”
나이 든 남자가 대답하고는 바닥에 쓰러진 해준을 들어 올렸다. 내 차로 가지, 젊은 남자의 말에 해준은 담요를 둘둘 만 상태로 푹신하고 따뜻한 차 뒷자리에 눕혀졌다. 뭉근한 진동 소리와 함께 차량이 출발했다. 해준은 그렇게 남자의 차를 타고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보육원에서 치료를 받고 깨어났을 때, 남자는 해준의 이마를 쓸어올리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특이한 말투와 어조를 가진 남자였다. 단호하면서 부드럽고 여유가 느껴졌다. 해준은 쭈뼛쭈뼛 대답했다.
“해준이요.”
“성은.”
“…그런 거 없어요.”
이름도 모를 부모 따위 궁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음, 나쁘지 않지.’ 하며 남자는 웃었다. 성이 없다 하면 보통 부모가 없다고 놀리거나 안타까워했는데 남자의 반응은 이상했다.
“그럼 앞으로 네가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면 되겠구나.”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고. 언제나 선택권 없이 끌려다니고 휩쓸려 다니기만 했던 시간들을 알고 있는 건지, 남자는 참 쉽게도 말했다. 막 눈을 뜬 해준의 뺨을 톡톡 두드린 채 ‘또 오마, 해준아.’ 하고 자리를 떴다.
그 후 남자는 해준을 치료하게끔 돈도 보내 주고 정기적으로 후원을 맡겠다고 했다. 꽤나 많은 금액을 보내 주고 있었는지 해준은 정말 매일매일 배가 터지도록 고봉밥을 먹었고,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한글도 금세 떼었고 책도 술술 읽었다.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젊은 아내와 함께 보육원을 찾았고 앞치마를 매고 봉사활동을 했다. 아이들과 제법 잘 놀아 주었고 가끔씩 늦게까지 잠을 재워 주다가 가기도 했다. 해준은 그런 부부가 퍽 좋았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입양 신청이 들어오면 아이들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자신들이 후원자의 집에 입양을 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부부만은 입양 신청을 내지 않았다. 해준은 혹여 다른 이가 자신을 선택할까 봐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원을 찾으면 멀찍이 숲으로 도망가 꽃을 구경하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안 오시나, 나는 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들과 가고 싶은데.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이래저래 일 년이 넘게 흘렀다. 입양 생각은 전혀 없는지 부부는 그저 정기적으로 봉사를 올 뿐이었고 정규 봉사 시간이 끝나고 나면 꼭 해준과 시간을 보냈다. 저를 특별히 여기는 것 같아 해준은 만족스러웠다. 해준은 남자의 한복 고름을 말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장난을 쳤다.
“왜 항상 이 긴 치마 같은 걸 입고 다니세요.”
“도포 말이니.”
“도…. 네.”
포도도 아니고 도포. 이름이 이상하지만 남자는 보육원에서의 일이 끝나면 정갈하게 도포를 걸쳐 입고 그 위에 코트와 목도리를 걸쳤다. 어린아이의 눈에 그 옷차림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남자는 모를 것이다.
“우리 조부께서 입던 것인데 몸가짐을 바르게 할 때 도움이 되거든. 사람은 입성이 고와야 해. 언제나 바른 자세를 하고 사뿐사뿐 걷게 되지. 재밌지, 고작 옷차림 하나만으로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그 마음가짐은 태도로 드러난단다.”
남자는 그리 말하며 해준의 옷깃을 털고 옷 아래를 끌어 내렸다. 곱게 옷 소매도 접어 주고 입가에 묻은 과자 가루를 털어 주었다.
“나중에 오면 너도 한복 한 벌을 맞춰 주마. 이제 곧 설이니, 왠지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네.”
그리 말한 남자는 해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렜다.
남자의 부인 역시 언제나 기품이 넘쳤다. 해준을 보면 항상 부서지는 햇살처럼 웃던 여자는 해준을 보면 밥을 가득 담아 주고는 옆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자신을 ‘해준아, 준아.’ 하고 부르는 게 좋아 가끔은 못 들은 척 두 번 듣기도 했다. 그럼 남자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이 놈, 또 못 듣는 척을 한다’ 며 코를 꼬집었다. 그 시간도 좋았다.
해준은 남자에게 붓글씨도 배웠다. 붓을 든 손을 벌벌 떨자 해준의 작은 손을 큰 손바닥으로 포개고 한 자 한 자 정갈하게 쓰는 법을 알려 주었다. 해준이 글씨와 그림을 다 그리자 남자는 턱을 매만지며 놀리듯 웃었다.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구나. 이게 나비인지 똥을 그린 건지 알 수가 없어.”
“아이씨, 연습하면 더 잘 할 수 있어요.”
“아이씨는 나쁜 말.”
남자는 해준의 머리를 콩 때렸다. 그 뒤 해준은 매일 붓을 들었다. 어느 날엔가 이름 두 자를 떨지 않고 깨끗하게 써 내려갔을 때는 남자가 해준의 머리를 썩썩 쓰다듬고 여자가 꼭 끌어안아 주었다. 잘했다, 아주 소질 있어. 그 말이 너무 좋아 해준은 제가 정말 글과 그림을 그리는 데 재주가 있는 줄 알았다. 행복했다.
몇 주가 더 흐르고 해준은 원장과 면담을 했다.
“저 그분들한테 가고 싶어요.”
“누구. 아, 윤현승 회장님 말씀이로구나. 네가 항상 붙어 있는.”
이름을 몰라 해준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원장은 고개를 기울였다.
“워낙 좋은 집안이라 네가 욕심나는 것도 이해하지만 기대 마라. 그분들은 아마 입양 생각이 없을걸. 너에게는 조금 더 괜찮은 인연이 있을 거야.”
단호하게 말을 끊는 원장에게 마음이 상해 해준은 토라진 채 바깥으로 나왔다.
‘인연.’
해준은 도톰한 손가락을 폈다. 책에서 말하기를, 인연은 붉은 실을 따라 이어진다지. 내 손가락에 걸린 붉은 실이 그분들에게 이어져 있을까. 보인다면 좋을 텐데. 그럼 안심이라도 하련만. 손을 접었다 펴며 울적해하고 있을 때 누군가 해준의 눈을 가렸다. 차갑지만 부드럽고 작은 손, 해준은 금세 웃었다.
“우리 해준이가 왜 이리 또 심통이 났을까?”
여자는 제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해준은 말없이 고개를 젓고는 여자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당신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이리 잘 해 주는데, 이렇게나 마음을 주는데 왜 나를 선택하지 않지. 여자의 옆구리로 파고들듯 깊이 얼굴을 묻자 어느새 다가온 남자가 해준을 안아들었다.
“앗!”
“너무 꼭 안지 마라, 당신도 조심해.”
해준은 당황도 않고 무등을 탄 채 남자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움켜잡았다.
“왜요?”
해준이 묻자 여자가 입술을 비죽였다. 뭐 어때요, 좋아서 그러는 건데. 난 우리 해준이가 하는 건 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눈을 흘겼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 해준이 고개를 내리자 여자가 제 배를 톡톡 두드렸다.
“배 속에 아가가 있거든.”
배 속에 아기가 있어요? 해준이 놀란 눈으로 되묻자 여자와 남자는 동시에 빙긋 웃었다. 응, 그래 맞아. 이 안에 아가가 있어. 해준은 얼른 여자의 배에 귀를 갖다 댔다.
“심장 소리 안 들리잖아요.”
해준이 얼굴을 찌푸리자 여자가 환히 웃었다.
“아직은 작아. 조금만 더 지나면 쑥쑥 자라서 배가 이만큼 나올 거고, 나중엔 배 속에서 발로 차는 것도 느껴질 거야.”
“발로 차요? 그럼 아프잖아요.”
이렇게 여린 몸을 발로 차면 아플 텐데. 아직은 저보다도 세 뼘이나 큰 여자를 해준은 아플까 봐 걱정했다.
“괜찮아.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남자는 덧붙였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쳐 주어야 해. 해준이는 형아니까. 먹는 것, 입는 것, 걷는 것. 심지어는 자는 것까지 모두 토닥토닥 재워 줘야 하는 거야.
“아기는 해 줘야 할 거투성이네요.”
해준이 볼멘소리로 말하자 문득 여자가 해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따뜻한 시선이었다.
“해준이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잠시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게 서 있자 남자가 해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해준이가 도와주면 되겠다.”
그 말에 해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봤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라는 거지? 부부의 은유적인 말이 어린아이인 해준에게는 아직 깊게 와닿지 않았는지 말을 잃고 서 있자 부부는 서로를 쿡쿡 찌르며 웃었다. 너무 돌려 말했나 봐요. 그러게.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준아, 우리랑 같이 갈래? 이분이 해준이 엄마 하고, 내가 아빠 할게. 네가 좋다면 우리도 좋아. …어때?”
해준은 잠시 벙쪘다. 엄마와 아빠. 타인의 입으로 난생처음 들어 보는 말에 해준은 그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뇌가 고장나 버린 것처럼 멍하게 섰다. 부부는 그런 해준의 표정을 보며 불안해했다. 어떡해, 싫은가 봐…. 미안, 우리가 너무 선 넘었니. 허리춤에도 오지않는 아이의 감정을 살피며 미안해하던 남자는 이내 와락 안겨든 해준 때문에 뒤로 주춤 몸을 물렸다.
해준은 정말 환하게 웃었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제 엄마 아빠 해 주세요. 동생도 제가 다 돌볼 거예요. 제가 꼭 지켜줄게요.”
남자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작은 머리통을 석석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 너만 보았단다, 너 말고는 아무도 마음에 차지 않았단다. 그리 말하고 싶다가도 완전히 집에 데려가는 날을 위해 아껴 두기로 했다.
“그래, 해준이가 아가 형아 해 주는 거야. 꼭.”
해준은 부부를 끌어안고 볼을 부볐다. 따뜻했다. 제 생애 다시 없을 정말 따뜻한 기억이었다. 그게 벌써 27년 전, 아직 꽃씨와 같던 윤이소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난 이런 건 확실히 정해 두는 성격이거든.”
해준은 눈동자만 내린 채 주영의 핏발 선 눈을 마주쳤다.
“내가 훨씬 먼저야. 네가 아니라.”
부들부들 떠는 윤주영의 주먹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몸을 돌려 면회실을 나왔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와장창 의자를 던지는 파열음와 함께 간수가 주영에게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해준은 교도소 문 앞에 섰다. 내내 먼지를 먹어 큼큼했던 콧속과 뿌옜던 시야가 쾌청한 공기에 깨끗하게 해소되기 시작했다. 해준은 눈을 깜빡였다.
“차해준 진짜 또…. 적당히를 모르지.”
꼭 이렇게까지 애처럼 굴었어야 했나. 그러나 사실 윤주영이 공항에서 그렇게 악을 지를 때 제일 먼저 달려들어 턱을 부숴 놓은 후 이소는 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내내 참았었다. 어차피 윤주영은 구속되었고 향후 평생을 얌전히 감방 안에 있을 인간이었고, 이소와 저의 사이가 공고하니 굳이 도발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인데. 불쑥 난데없는 치기가 들어 열다섯 어린애처럼 굴어 버렸다.
해준은 지갑을 꺼내어 다시 사진을 내려다봤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와 어린 자신. 자신의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었던 사람.
결국 그 집에는 입양되지 못했다. 해준의 입양을 원했지만 친자가 생겨 버린 부부는 입양 자격 조건이 맞지 않아 제외되었다. 후원을 얼마나 오래했건, 재산이 얼마나 많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그런 식으로 입양을 진행했다가 후일 친자가 생기면서 파양하거나, 입양아를 방치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입양 기간 내 임신이 확인될 시 자격을 박탈시켜 버렸다. 부부와 해준은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 두 명을 동시에 기르기에 넉넉할 정도의 재산이 있었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도 했었던지라 남자는 해준을 꼭 데려오고 싶어 했지만, 이내 후 순위로 이름을 올렸던 부부가 해준을 입양하기로 결정되었다.
‘너무 걱정 마라, 윤 회장님 댁보다 훨씬 잘 사시고 선하고 좋으신 분들이야. 비록 해외에 계속 계시긴 했지만 네가 원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쭉 모니터링 하셨고 데려가길 원한단다.’
원장은 아무래도 그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여겼는지 해준의 상처 받은 마음은 헤아릴 생각도 없이 제 주머니에 들어온 후원금을 보며 대충 대답했다.
제 이름 앞에 붙은 성이 ‘윤’이 아니라 ‘차’가 되어 버린 해준은 서글펐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를 수 있기는 무어가 있어.
결국 어른들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신은 마음을 준 부부에게 엄마 아빠 소리 한 번을 못 하고 헤어졌다. 해준이 양부모가 될 부부의 손을 잡고 훌쩍일 때 원장은 안타깝게 내려다보며 작게 속삭였다.
‘이후에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 주세요. 이미 입양된 아이가 자꾸 원에 오면 다른 아이들 분위기가 흐려집니다.’
그렇게 원을 떠났다. 매일매일 엄청나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탔지만 다 싫었다. 이러려고 얌전히 군 게 아닌데, 이러려고 의젓하게 군 게 아닌데. 그러나 제멋대로 굴고 싶을 때마다 제 머릿속에 불쑥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말과 마음가짐을 조심히 하고. 너의 선한 마음을 잊지 말고. 길바닥을 전전하던 어린 아이의 마음에 꽃을 틔워 놓고 헤어진 남자는 그렇게 오래오래 해준의 마음에 남았다.
‘동생을 꼭 지켜 줄 거예요.’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 줄도 모르고, 무턱대고 한 약속은 한동안 잊혔는데. 해준은 어느새 대문 옆 벽에 기대선 이소에게 다가섰다. 담벼락에 기댄 채 저를 기다리던 이소는 해준을 발견하자 미소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예쁘다. 제 엄마와 꼭 닮았다.
뭐, 아주 멀리 돌아 결국 비슷하게 왔긴 하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야. 예뻐서 봤지.”
해준이 지갑을 열고 사진을 보던 것을 알아차렸는지 이소가 말을 얹었다.
“또 저희 엄마 사진 보셨어요?”
“갑자기 보고 싶어서.”
“진짜 디게 좋아하셨나 보다. 저 닮았죠.”
“응. 아주 예뻐.”
“그래도 저를 더 좋아해 주셔야 해요.”
코를 찡그리며 웃던 이소는 해준의 옆에 섰다. 언젠가는 이소에게 자신의 오랜 비밀을 말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해준은 이소의 뺨을 훑어내리고 짧게 입 맞췄다.
“말이라고.”
이소는 해준에게 주영의 안부를 따로 묻지 않았다. 나쁜 일이 없었다는 것만 확인한 이소는 말없이 차에 올랐다. 애써 웃거나 울음을 참으려고 하지 않는 편안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이런 우울한 일로 섬을 찾은 적이 없다는 듯 여상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우린 이제 어디로 가요? 본가에서 꽤 오랜만에 나왔는데요.”
이소가 차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봄바람이 따뜻했다.
“글쎄, 어디 가고 싶은데. 데이트하고 싶다며. 시골에 박혀 있으려니까 심심하지 않았어?”
“목가적이고 좋던데요.”
본가는 해준의 저택보다 몇 배는 컸고 일하는 사람도 훨씬 많았다. 간만에 만난 식솔들과 지내는 하루하루도 좋았고 먹고 자는 것도 편안했다. 다만 가끔씩…아니 사실 꽤 많이 해준의 저택이 떠올랐다. 그 안에서 지내던 시끌벅적하고 와글와글한 나날들이 그리웠다.
해준이 웃으면서 시동을 걸었다.
“목가적인 거 좋아하시면 또 데려갈 데가 있지요.”
“어디요?”
“잘 아시는 곳이요.”
차가 조용히 출발했다. 차 안에서 이소는 내내 종알거렸다. 공항의 소란 이후 이소는 거의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다. 오랫동안 수면유도제와 신경안정제를 과용하며 생겼던 부작용은 약을 완전히 끊고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치료를 하기로 했다. 아직도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 때가 있지만 이소와 해준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새롭게 쌓아 갈 날들이 충분히 많았기에 굳이 지난 기억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소의 증상이 호전되면서 두 사람은 해수의 입양서류를 다시 준비했다. 조만간 합법적으로 호적 밑에 해수를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자 이소는 한숨 돌리며 마음을 놓았다. 아직은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이 너무 많지만 모두 이소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해준은 그저 옆에서 연인이 지치지 않도록 응원할 뿐이다.
해준은 좁은 골목길을 통과해 익숙한 공터 앞에 차를 세웠다. 이소는 제법 반가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따뜻한 봄바람이 훅 끼쳤다. 제가 살던 빌라가 있던 곳이었다.
“와.”
일전에 이소를 제집으로 들이기 위해 말없이 건물을 매입하고 정숙을 미국에 보내기까지 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너무 큰 배신감을 느꼈었는데. 이후 해준과 주고받은 오해와 싸움, 용서의 시간이 모두 지나고 나자 모든 것들이 꼭 오랜 옛 일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주변이 모두 공사 중이었지만 어쩐지 이 땅만 여전히 공터였다. 셈에 밝은 해준이 이 땅을 그냥 둘 리가 없었는데 의아했다. 해준이 난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일이 조금 꼬였는데… 원래는 두 달 전부터 공사를 할까 했었거든.”
“응? 네?”
뜬금없는 공사 이야기에 이소는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되물었다. 해준이 멋쩍게 이마를 긁어내렸다.
“여기에 이소 씨 집을 지어 줄까 했었어. 그 작은 전원주택.”
이소가 말없이 눈을 깜빡였다. 해준은 당황한 이소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내저었다. 내 마음대로 말고, 물론 자기 데려와서 의견도 물어보고 공사과장이랑 미팅도 시켜 주고 하려고 했어. 상의하려고 했어. 진짜야. 변명하듯 덧붙였다. 이소는 굳이 추궁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해준이 격하게 손사래를 치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데요?”
해준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런데 음…. 하필 여기서 보물이 나와서 무한정 미뤄졌어. 캐도 캐도 계속 나와. 도자기니 금붙이니 서책이니.”
“에? 보물이요?”
“내 땅인데도 문화재 조사 비용부터 발굴비까지 다 대야 하고, 참 나.”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에 이소가 황당해하며 멀거니 서 있자 해준은 진지하게 투덜거렸다.
“진짜라고. 저기서 삼국시대 유물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것도 꽤 온전한 형태라서 지금 아주 밑까지 파내고 있어. 일 년은 더 걸릴 거야.”
그래서 이 동네가 이렇게 조용했구나. 이소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준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무튼 여긴 팽 했다 치고, 이소 씨가 원하는 곳에 그때 말한 그 작은 집을 짓자. 자기가 원하는 형태로.”
이소는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은 해준의 손을 토닥이며 그럴까요, 하고 미소 지었다. 항상 머릿속에 그려 왔던 그 형태 그대로 지어서 살 건데. 해준이 목덜미에 입술을 묻자 이소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당 있는 이층집.”
“응, 마당 있는 이층집.”
해준이 웅얼거렸다.
“개도 키우고?”
“응. 개도 키우고. 해수도 키우고, 해준이도 키워 줘.”
“해준이도?”
“응. 돈 많이 벌어오고 애 잘 돌보고 밤일도 몹시 잘하거든.”
제법 중요한 조건이라는 듯 덧붙인 해준의 마지막 말에 이소가 눈을 접어 웃었다.
“좋아요.”
* * *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사람이 없는 골목을 걸었다. 구석구석 버려진 빈집과 적막이 앉은 골목, 모두 두 사람이 걸으며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였던 곳.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낡은 담벼락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해준의 저택으로 가는 작은 쪽문이 나온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드나들었던 그 길을 이소는 꽤 오랜만에 해준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다.
삼월의 낙조가 초목을 부드럽게 덮으며 오묘한 자연의 색을 만드는 시간, 오후 다섯 시.
해준의 한옥은 철거 이후 다시 짓는 것을 그만뒀다. 해준도 한동안 대학에 복직 계획이 없었고, 이소도 해준의 본가로 내려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굳이 그 오래된 동네, 높은 언덕에 집을 지을 필요가 없어져서였다. 차라리 근처 평지에 새 부지를 찾아 새롭게 집을 짓는 게 어떻겠냐는 준경의 의견을 따라 해준과 이소는 주말마다 틈틈히 땅을 보러 다니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이 이제는 정리하기로 한 이 땅을 다시 찾은 데는 나름 이소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다.
얼었던 땅은 완연히 녹았고 거대한 벚나무 아래 이름 모를 풀꽃이 곳곳에 피어 있는 길은 밟기가 미안할 정도로 생명력이 꿈틀댔다. 해준은 건물 자리가 있었던 터에 다다랐을 무렵 이소를 불러세웠다. 담장 주변으로 벚나무가 많이도 피었다. 생각해 보니 봄에 태어난 이소의 생일이 곧이었다.
“이소 씨, 예전에 내 정원에 심은 이소 씨 꽃이 뭔지 궁금하다고 물어본 것 기억나?”
이소가 고개를 들었다. 정원이 모두 타 버려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해준의 말을 듣자 오래전 그 질문을 던지던 밤이 떠올랐다.
“봄이 되면 이 정원에 가득 피어 있을 거라고 했잖아.”
“네,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꽃이 다 타 버렸고…. 공사 중이기도 하고요.”
난감한 낯을 한 이소를 해준이 웃으며 끌어당겼다. 정원이 있던 자리로 걸어 들어오며 이소는 3월인데도 아직 눈이 녹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옮기자 제 두 눈에 들어온 정원의 모습을 보고 이소는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새하얀 융단을 펼친 듯 온 세상이 희었다.
드넓은 정원 한 가득, 화려한 꽃도 나무도 없는 광활한 대지 위에 수백, 수천 송이는 될 흰 민들레 군락이 포근한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흰 민들레 사이사이로 아직은 익지 않은 노란 민들레가 군데군데 피어 있는 모습은 꼭 달걀 노른자 같기도 했다. 웃음이 나왔다. 문득 아주 예전에 둑방에서 해준과 한 송이씩 나눠 가지며 ‘친구 할까요?’라고 물었던 그 날이 떠올랐다. 담장 밖을 둘러싼 벚나무들도 화려하게 피어 꽃비를 내렸다.
“네 꽃이야, 이소야.”
어디에서나 불쑥 피어나는 꽃, 주린 이에게는 차가 되고 아픈 이에게는 약이 되는 꽃. 때문에 해준은 민들레를 보면 이소 생각이 났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쑥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과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노란 꽃을 틔워 내는 잔잔한 아름다움이 꼭 윤이소를 닮았다.
해준이 뒷짐을 지고 웃었다. 이렇게 네가 한가득이야. 마치 소년과 같이 미소 짓는 해준의 모습을 보고 이소는 크게 말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겨울 내내 꽁꽁 얼었던 흙 바로 아래에는 언젠가 해준이 가져다 뿌리고, 심었던 민들레 씨들이 잠들어 있었다. 술을 마셨을 때도 흰 민들레를 보면 티슈로 한 움큼을 뽑아다가 씨앗을 뿌렸고, 길을 걷다가도 조심스레 몇 가닥이라도 가져와 폭폭 흙 아래 묻어 주었다.
그렇게 해준은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 얼음이 녹고 계곡물이 흘러 땅을 적시고 풀이 익는 봄이 오면 정원 한가득 이소에게 이 꽃을 보여 주어야지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예기치 않은 방화로 해준의 저택이 화염에 휩싸였던 날, 울창한 대나무숲과 저택을 둘러싼 높은 담장이 열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 때문에 금방 꺼졌어야 할 불은 반나절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겨우 꺼졌다. 불이 꺼진 후에도 한동안 저택이 있었던 자리는 커다란 온실처럼 훈기가 오래 남았었다. 그렇게 바싹 데워진 땅은 다른 어떤 곳보다 봄이 빨리 왔다.
작은 땅 아래에 생동하던 작은 생명들은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인간의 발걸음이 끊어지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흙을 뚫고 나온다. 햇볕을 독차지하고, 빗물을 머금고, 온전히 바람을 맞으며 제 식대로 마음껏 자라났다. 그 집요한 생명력을 발견한 순간 해준은 공사를 그만두라 전했고 종종 시간이 나면 홀로 저택 자리에 들러 꽃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만 둘러보고 가곤 했다. 예전에는 오래된 정원의 주인으로, 지금은 잠시 머물다 가는 행인으로. 그렇게 제 연인의 꽃이 만발하기를 기다렸다.
“…너무 예뻐요, 정말로 너무 예뻐요.”
이소는 걸음 걸음을 떼며 해준에게 다가왔다. 안채가 있던 자리, 별채가 있었던 자리는 디딤돌만 남고 모두 치워져 있었으며 연못의 물도 말라 있었다. 잉어들은 모두 옮겨졌는지 볼거리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만 같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이소가 해준의 손을 끌어당겼다.
“교수님, 그런데 새 땅을 찾으면 이 정원은 이제 안 오시는 거예요?”
이제 이소에게 보여 주기까지 했으니 이곳은 가치를 다했다.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였다.
“왜요, 아까워서?”
“그렇다기보단.”
이소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냥요. 저 여기 있었던 교수님 정원 좋아했거든요.”
“이소가 원한다면 다시 만들 테지만 크게 마음 두지 마.”
해준이 이소를 마주 봤다. 어디선가 날아온 벚꽃잎이 나선을 그리며 이소의 콧등에 톡 떨어졌다. 해준은 이소의 뺨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꽃잎이 앉았어요.”
따뜻한 기시감에 웃음이 터진다.
“아하하.”
해준이 후, 불자 꽃잎은 사르르 떨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난 봄, 해준이 제 마음에 풍덩 들어왔을 때처럼 꼭 그렇게 꽃잎을 떼 주었다. 문득 해준의 입술이 이소의 코 끝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떨어졌다.
“어디든….”
눈동자를 들어 마주하자 포근하고 온화한 시선이 이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세상의 사랑을 모두 끌어담아 두 눈동자에 쏟아부어 주겠다는 듯 따뜻함이 흘러넘치는 눈길이었다. 뺨 위에 닿는 손에도 온기가 가득했다.
해준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이소가 있는 곳이 내 정원이야.”
이윽고 깃털같은 입술이 천천히 포개졌다. 이에 화답하듯 이소가 발부리를 들어 해준을 끌어안았다. 문득 장난기가 동한 해준이 짓궂게 이소의 허리를 간질이자 두 사람은 곧 꽈리 터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풀썩 쓰러지며 이내 흰 꽃 군락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봄을 맞고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건너, 겨울에 이르고 나면 또다시 돌아오는 계절. 입술 끝에 다정을 머금은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작은 정원으로 사뿐히 뛰어들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그 안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생동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흔적들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다정의 정원 본편 完 / 7권(외전)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