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윤주영 (44/50)

윤주영

그날, 주영은 어두운 방 안에 서 있었다. 불이 꺼진 방 안으로 들어오던 이명희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아들의 방문에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놀랐잖아.”

“오셨어요.”

이명희는 일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도 없이 오다니, 너도 어지간히 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나 보지. 그러나 주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은 채 검버섯이 내려앉은 윤치승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도 했고, 손 끝으로 메마른 손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이명희는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좋으련만, 주치의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더라.”

“…….”

“이대로 가다간 한 달도 제대로 못 살고 보내게 될 거야.”

한 달. 한 달이나 더 살 수 있는 건가. 이런 생명유지장치따위에 매달려서 사는 것은 사는 것인가. 주영은 고개를 기울였다. 기계가 없으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약이 없으면 스스로 장기 하나 제대로 움직이도 못하는데 이것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주영은 윤치승이 하고 있는 인공호흡기를 톡톡 두드렸다.

“답답하시겠어요.”

이명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감았다. 편두통이 또 지끈거린다.

“답답하지, 그렇게 괄괄하던 사람인데 누워만 있게 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 우리도 우리지만 정작 본인도 얼마나 힘이 들지….”

“어머니는 어디 아프신 덴 없구요.”

“나는 뭐 항상 비슷해. 이 사람 간호하느라 온몸이 다 쑤시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아무리 부부라지만 정말 못 해 먹을 짓인 것 같다. 그런데 웬일로 네가 엄마 걱정을 다 하니.”

철이 다 들었어. 이명희가 푹 패인 눈을 문지르며 웃었다. 주영도 따라 웃었다.

“저도 나이가 들었는데 언제까지 마냥 애처럼 굴겠어요. 그냥, 요새 너무 가족끼리 대화도 없고… 제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한 것 같아서요. 마음이 쓰였어요.”

이명희가 감동한 얼굴로 다가와 주영을 쓰다듬었다.

“네가 뭘 신경을 안 써. 충분히 잘하고 있지. 네 마음은 다 안다.”

주영은 웃으며 부드럽게 이명희의 손을 겹쳐 잡았다. 이명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아이 문제도…. 지금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네 집사람이 인공수정 이야기까지 꺼내긴 했지만 뭐 그렇게까지 하겠니. 공공연하게 기자들한테 말 새어 나가는 것도 영 보기 안 좋고.”

“그러게요. 이미 있는 딸애한테나 잘하라며 기사가 쏟아지겠죠.”

이명희가 멈칫했다.

“뭐?”

주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 이미 토끼 같은 딸 있잖아요.”

일곱 살 정도 됐나. 이명희가 황급하게 손을 뗐다.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요. 저도 얼마 전에 알아서 조금 당황스럽긴 한데 얼굴 생김새나 가진 습관이나 웃는 모습까지 다 저랑 판박이던데요. 근데 왜 저한테 그렇게 예쁜 딸이 있다고 말을 한 번 안 해 주셨어요.”

손주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할머니만 몰래 보고 오는 게 어딨어요. 친아빠인 나도 제대로 말을 못 거는데. 주영의 말에 이명희의 시선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아아, 키우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알면 안 되는 사람이라?”

이명희가 입을 막았다. 주영은 천천히 미소 지었다. 가로등 빛에 반사된 얼굴이 말갛고 희게 빛났다. 잘 키운 내 아들, 영특하고 근사한 범양의 핏줄. 그런 아들이 어미와 아비를 앞에 두고 눈을 접어 웃으며 검은 장갑을 낀다.

“7년 만이에요.”

주영이 웃었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찾았어요, 내 이소.”

이내 성큼성큼 제 아들이 저를 향해 걸어왔다. 죽음을 예감한 이명희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 * *

이명희는 마지막까지 발악을 했다. 7년 전 가짜 장례식에 대해 어디 변명이라도 해 보라며 채근했지만 지옥에나 가라는 둥 미친 새끼라는 둥 욕만 잔뜩 했다. 장갑을 끼고 걸어오는 주영을 보며 무슨 짐작을 했는지 이명희는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며 뒷걸음질을 쳤다. 주영은 귀를 긁어내렸다.

“부부다 보니 많이 닮는 거 같아요. 어머니 그래도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욕 많이 안 하셨는데.”

“어, 어디 어미한테 이딴 대우를 해,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러는 엄마 아빠는 왜 자식한테 그딴 좆같은 장난질을 쳐요.”

간지러운 귀를 파내던 주영이 훅 하고 바람을 불었다. 씨발, 장갑 때문에 시원하게 긁어내지도 못해. 주영은 가만히 이명희를 내려다봤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이 여자가 크고 무서운 마녀처럼 보였는데 이제 보니 키가 160cm가 조금 넘는 마른 노인에 불과했다. 주름진 피부 위를 덮은 검은 아이라인이 불에 그을린 마른 장작 같아 보였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어요?”

“뭐, 뭘.”

“작은아버지 댁 가스 폭발 사건 배후가 누구인지요. 그때 작은아버지 댁 운전기사였던 정 씨 아저씨가 저 학교도 종종 데려다주시던 분이었잖아요.”

주영의 기억력은 탁월한 편이었다. 윤현승의 아들 윤이소가 빼어나게 예쁜 편이었다면 윤치승의 아들 윤주영은 영재 소리를 들을 만큼 똑똑했다. 다만 재정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없어 항상 헌책방 앞 남이 쓰다 버린 문제집을 읽는 것으로 활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는 비운의 수재였다. 윤치승과 이명희는 그 점이 항상 한(恨)이었다.

비슷한 전공으로 공부를 했지만 윤현승은 길을 잘 텄는지 운이 좋았는지 금세 자수성가했고 같은 유산을 물려받았는데도 크게 세를 불렸다. 그에 반해 윤치승은 금세 도박으로 날려먹고 개천 옆에서 작은 중고품 거래나 하며 살아갔다. 윤현승은 그런 형을 자주 제 집에 초대했으며 주말만 되면 어린 조카인 주영을 맡아 주기도 했다. 주영의 눈에는 낡고 오래된 제 집보다 깔끔하고 커다란 마당이 있는 작은아버지 댁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아빠, 우리도 저렇게 살고 싶어. 작은 아빠처럼 마당도 있고 비싼 쿠키도 먹고 일하는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어.’

꼭 그렇게 해 주마.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제 뺨을 훑어내리던 아버지의 말에 어린 주영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다주고 나면 항상 바로 돌아갔던 운전기사 정 씨 아저씨가 그날따라 저녁을 먹고 갔다. 작은 미닫이문 너머로 아버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리고 며칠 후 어린 주영은 검은 옷을 입고 난생처음 장례식장이라는 곳에 갔다. 작은아빠와 엄마의 사진이 검은 액자에 걸려 있었고 사람들은 그 사진 앞에 고개를 숙이고 오열을 했다. 잔디를 깎던 일당 잡부까지 왔지만 정 씨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이소라는 어린 사촌 동생을 보았다. 몸이 약해 내내 집에서만 생활했다던 그 어린애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단순하고도 정확했다.

예쁘다. 데려가고 싶다. 내 것 하고 싶다.

그 순간 주영의 머릿속에는 작은아버지 댁에서 보았던 그 커다란 마당과 개, 잘 차려진 밥상과 쿠키 같은 것은 모조리 지워지고 오로지 저 작은 아이에 대한 소유욕이 자리잡았다. 모두가 오열하는 와중에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벽만 바라보고 있던 그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너 우리 집에 가자. 아빠, 저 얘랑 같이 살고 싶어요.’

당혹스러움에 물들던 윤치승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려 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윤치승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겨우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이소를 끌어안았다. 이제 큰아빠랑 살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뜨리며 주변 지인들이 ‘다행이다, 다행이야.’를 외쳤다. 윤치승은 좆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주영은 조용히 웃었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부탁하면 제 아버지는 거절을 못 할 것을 알았다. 그렇게 15년 가까이 이소와 함께 자랐다. 행복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볼을 훑어내린 주영은 이명희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옛날 생각나서 정 씨 아저씨 연락드리려고 했더니 22년 전에 돌아가셨더라고요.”

22년 전 방화사건의 용의자로 몰리자 궁지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 전 영 꺼림칙해서요. 주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명희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자 주영은 지긋이 내려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됐어요. 쨌든 그 덕에 이소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원인이 어떻게 되었건 별로 신경 안 써요. 설마하니 어머니 아버지께서 사주를 했겠어요. 그저 우연히 떨어진 상속금이 많았을 뿐이고, 어린아이가 관리하기 어려우니 잠시 맡아 주시려다가 이래저래 시간이 흐른 것뿐이겠죠. 그쵸.”

“왜, 이제 와서 그 애가 상속금 이야기를 하디?”

이명희가 날을 세우자 주영의 눈동자가 희번득 돌아갔다.

“걘 지 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도 못해요.”

주영이 바짝 다가와 이명희의 목을 덥썩 잡았다. 이명희의 눈동자가 굳었다.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팔자를 어떻게 타고났길래 다섯 살에 부모님은 동시에 급사하고, 제 부모 죽인 친척들은 상속금을 털어 가고 입을 싹 닫아, 지 핏줄 아닌 애를 죽자고 키우는데 정작 그 친부는 자신한테 매일 밤 욕정하고 강간하는 꿈을 꿔대.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아둥바둥 열심히 살려는 게 존나게 불쌍하지 않냐고요.”

이명희가 입을 벌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려 했지만 주영의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가자 침을 삼키는 것조차 어려워져 그저 벌벌 떨었다.

“왜 그래요, 알고 계셨잖아요.”

이명희가 눈을 홉떴다.

“이소랑 붙여 놔야 제가 사이코 짓 안 하는 거 알고서 계속 곁에 두신 거였잖아요.”

이명희는 아직도 기억했다. 주영에게는 어릴 때부터 독특한 벽(癖)이 있었다. 작은 벌레를 손가락으로 짓뭉개기 시작할 때 남편 치승은 ‘그건 그냥 남자애들 흔히 하는 장난이야. 내버려 둬.’라고 했었다. 정말 그런가? 그냥 두었더니 주영은 그날 개미집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들 수백 마리를 모두 손과 발로 뭉개 죽였다. 물을 뜨러 가는 길에 개미 터진 진액이 진창이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조금 지나자 산과 들을 다니며 잡아 온 사슴벌레를 부러 두 동강 냈다. 잠자리의 날개를 떼서 기어가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고 나비를 아예 꽃에 붙여 그 자리에서 말라 죽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윤치승은 사라질 습관이라며 가벼이 여겼다.

동네 엄마가 주영의 귀를 잡아끌어 데려왔을 때 젊은 이명희는 말을 잃었다. 친구가 아끼는 개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했다. 이명희는 그날 주영을 몹시 잡았다. 그러나 주영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제 아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아챘다.

개, 고양이, 작게는 쥐,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학교 아이들을 넘어뜨리거나 샤프로 찌르는 사고도 종종 있었다. 이제는 이명희뿐만 아니라 윤치승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을 때 즈음 이소를 집에 들였다. 솔직히 이명희는 집에서 작은 송장 하나를 치르고 나가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주영의 나쁜 습관이 멎었다.

제 아들은 그 작은 녀석의 마음에 들려고 꽃을 꺾어 오기도 했고 친구를 초대해 주기도 했다. 섬뜩한 말을 하는 횟수도 줄고 제법 예의 바르게 대화도 가능해졌다. 남편 치승은 작은 녀석이 재수가 없다며 영 고까워했지만 이명희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작은 놈이 주영의 곁에서 비서까지 해 주면 큰 문제없이 회사를 물려받은 주영을 통해 범양은 존속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물론 주영이 영국에 간 사이 이소가 아이를 주워 와 들이대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작은 놈을 내쫓은 후 그 똘똘한 아들이 몇 년을 미친놈처럼 작은 놈만 찾아대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 그때는 네가 워낙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나중에는 네가, 네가….너무 그 애한테 병적으로 집착하니까….”

“아, 나를 위해서 그랬다.”

아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 주영이 정말로 우스운 듯이 한참을 청량한 목소리로 웃었고 종래에는 길게 빠진 눈꼬리에 눈물까지 맺혔다. 아, 너무 재밌어. 엄마 너무 재밌다. 낭랑한 목소리는 꼭 스무 살 소년 같은 말투로 엄마를 불러댔다.

“하긴, 그래 맞아. 밤마다 윤이소 입과 밑구멍에 내 좆을 처박고 흔드는 상상을 했어. 이소를 생각하면서 아래가 터지도록 자위해 대고, 그 판판한 배에 내 아이를 임신시키는 생각을 했다고. 병적으로 집착했다기보단…. 그냥, 당연한 거였는데?”

“…….”

“걔가 좆이 달렸건 아니건 걘 처음부터 내 거였어요. 내 짝이고, 내 신(神)이고, 내 전부였다고. 그런데 그런 귀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제가 더 돌아 버릴 거라고…, 설마 예상을 못 하셨어요?”

주영의 손아귀가 더욱 조여들었다. 설마하니 제 어미를 죽이기야 하겠냐고 생각했던 이명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왜 이렇게 멍청해요. 아들이 그런 병이 있는 줄 알았으면 걔 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곁에 뒀어야죠.”

죽음을 가장할 게 아니라.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짓씹듯 후회를 뱉은 주영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컥, 크억, 꺽. 덜컹덜컹 이명희의 발이 바닥을 긁어내렸다. 주영을 마주한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려 했다.

“살고 싶어요?”

이명희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의 손에서 힘이 빠지자 이명희가 밭은 숨을 토해 내며 바닥을 기었다. 죽 빼어진 혀를 따라 흐른 타액이 손바닥과 옷을 적셨다.

“전화 줘 봐요.”

허겁지겁 주머니를 열어 전화를 꺼내어 들었다. 주영이 꾹꾹 번호를 눌렀다.

“자, 지금부터 울면서 사과하는 거야. 개처럼 빌어 보는 거야? 우리 이소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이소는 할 일을 마치지 못하면 지하실에 갇혀 개처럼 빌었다. 부친에게 뺨을 맞으면서 이소는 잘못했다 잘도 빌었다. 제가 3대 맞을 때 이소는 10대를 맞았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그건 불합리하고 가학적이었다. 한참 동안 신호음이 갔다. 착하지, 이소야. 전화 받아야지.

- 여보세요?

이소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움찔, 이명희가 몸을 떨었다. 주영의 눈썹이 슬그마니 올라갔다.

- 여보세요. 전화 받았어요.

이명희는 손을 팩 들어 주영의 손에서 핸드폰을 내던졌다. 고개를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싫어.’ 하고 소리쳤다. 주영은 숨을 크게 쉬며 다시 핸드폰을 주워 들고 작게 속삭였다.

“어려운 거 아니잖아. 지금 아버지는 말을 못하니까 엄마가 해 보라는 거야. 내가 퉁 쳐 줄게. 나 기도하면서 너그러워졌거든.”

“너, 너 이… 이런 짓을… 천벌 받을….”

이명희가 이를 북북 갈았다. 잘 정돈된 머리가 마구잡이로 헝클어졌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하하, 하 하며 웃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혼잣말을 했다. 주영은 입술을 달싹이며 허공을 바라봤다. 또 시작이군. 핸드폰의 마이크를 끄고 이명희가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이거 다, 그 맹랑한 녀석이 시킨 거야. 그치, 그렇지. 네가 자기한테 꼼짝 못 하는 걸 알고, 여태 키운 애를 인질로 삼고 이렇게 하라 시킨거지? 상속금이니 뭐니 죄다 자기 앞으로 가져오라고, 내내 쥐 죽은 듯 숨어 있다가 이제는 자기 편 들어줄 사람이 생기니까 의기양양해진 거야. 이런 것도 다 어디 녹음해서 협박용으로 가지고 있으려는 거고, 그 녀석 생각보다 아주 간악한 면이 있어. …그래, 그 어디야, 끼리끼리라고…. 전에 왔었던 그년이랑 하는 짓도 똑같고-”

퍽, 주영이 손을 들어 이명희의 머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따박따박 입을 놀리던 이명희는 별안간 제 머리통을 갈긴 아들이 믿기지 않아 후닥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년? 어떤 년?”

“…….”

“강은형이?”

주영의 안광이 번득였다. 이명희가 눈을 홉떴다. 주영은 정말 아주 오랜만에 예상치도 못하게 놀랐다. 은형은 아이를 낳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게 아니었나. 만났었다고?

“은형이를 만났었어?”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다는 듯 이명희가 비릿하게 웃었다.

“……만나 준다니까 제 발로 신이 나서 찾아왔지. 맹랑한 게.”

“…….”

“제 딴에는 머리를 쓴답시고 친자 검사지까지 들고 왔었지 아마. 처음 보는데도 어머님, 어머님 하는 꼴이 얼마나 같잖던지. 너한테 받은 3억도 고스란히 들고 왔더구나. 이제 범양 사람이 되면 이런 건 필요없다고.”

“……그래서.”

“가난한 애들이라고 뭐 다 선하고 착하고 순한 줄로만 알았니? 결국 너한테 접근해서 우리 집에 발이라도 붙이려고 하는 그런 애들을 내가 한두 번 본 줄 알아? 그런데 너는 그런 애한테 여지를 줘서 애까지 만들기나 하고, 우리 몰래 돈이나 쑤셔 주고! 우리가 언제까지 네 놈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살아야 해!”

“…그래서 죽였어? 돈도 빼앗고?”

이명희가 이를 악물었다. 누워서도 다 듣고 있는 것인지 윤치승의 맥박이 빠르게 뛰는 신호음이 방 안을 채웠다. 주영은 치아를 혀로 느리게 핥았다. 이명희가 미약하게 고개를 흔들며 바닥을 기어갔다. 침대 밑에 있는 비상 부저를 누를 생각이었는지 네일 케어로 잘 다듬은 손톱이 뱀처럼 기어갔다.

“엄마.”

고요한 방 안, 주영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눈을 치떴다.

“나보고 정신병자라더니….”

“…….”

“도대체가……. 당신들은 구제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었잖아.”

이명희가 입술을 떨었다. 부전자전, 모전자전. 실소가 나왔다. 저를 그리 지하실에 가둬 놓고 야구 배트로 팰 때는 이 인간들이 정상이라 나 같은 정신병자가 부끄럽고 무서워서 그러겠거니 했건만. 보통의 부모는 아이가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야구배트로 패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주영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윤주영, 윤이소, 강은형. 그리고 그들의 딸 강해수까지. 모두 존나게 불쌍한 인생들이네.

“정말 우리 넷 다 존나게 불쌍해.”

그 틈을 타 이명희가 긴급 부저를 향해 팔을 뻗었다. 노인치고는 빠른 몸놀림이었다. 그러나 이미 예상하고 있던 주영의 발길질이 조금 더 빨랐다. 벨에 닿기 직전인 이명희의 손이 바닥에 지근지근 밟혔다.

“아악!”

“적어도 난 사람은 안 죽였었어.”

주영이 전화기를 갖다 대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차례의 통화음이 울렸다. 이명희는 흥분한 채 윤주영과 화면을 번갈아 노려보다 별안간 달려들었다.

“이, 이 씹쌔끼…! 감히 엄마한테 어디…! 여기 누구 없어? 밖에 누구 없냐고!”

“난 그래도, 내 사람으로 인정을 못 하더라도, 숨통은 트이게 해 줄 생각이었다고.”

“악! 악, 이 씹할, 이 개, 호로 새끼가…!”

“그런데 어미와 아비라는 것들이, 이렇게 내 앞길을 죄다 파헤치고 막아서야.”

팔뚝을 물어뜯고 나갈 생각이었는지 단단한 팔뚝에 이를 세워 물고 손톱으로 보이는 대로 긁어내렸다. 그러나 주영이 이명희의 얼굴을 잡고 바닥으로 내던지자 무력하게 나동그라졌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 여보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저기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주영이 이명희의 목덜미를 잡아채 들어 올린 후 누워 있는 치승에게 질질 끌고 갔다. 옷깃 뒷덜미가 들어 올려지며 목 아래를 압박하자 숨통이 조여들었다. 이명희가 무력하게 발길질을 했다. 주영은 핸드폰의 마이크를 켰다. 자, 이소야. 잘 들어, 내가 너 대신 심판하는 거야. 너 대신 복수하는 거야.

“어디 대단한 아버지에게 한 번 도와 달라고 해 보든지.”

주영은 윤치승의 몸 위에 바싹 붙은 이명희의 뒷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명희가 손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밭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전화에서 이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주소, 주소 알려 주세요. 제가 지금 신고해 드릴게요. 여보세요!

주영이 손에 힘을 풀면 허겁지겁 숨을 집어삼켰다가도 다시 내리누르면 남편의 가슴과 아들의 손에 짓눌려 꺼억꺼억 호흡이 달렸다. 버둥거리던 이명희의 손이 윤치승의 코에 걸린 호스를 쳐 내리자 손가락에 엉망으로 호스 줄이 엉켰다. 인공호흡기가 덜컥 소리와 함께 빠지자 얌전했던 윤치승의 가슴이 미약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영이 고개를 묻으며 이명희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런, 엄마. 호흡기 떨어지면 아버지 돌아가세요. 아,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

부부 금슬 좋았지.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이명희는 너무 무섭고 서러워 짐승처럼 오열했다. 끄흑, 끄흐흑, 까흐흐흑, 꺽꺽꺽꺽꺽- 목소리가 아닌 성대에 바람이 들어간 쇳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동시에 치승의 손도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선생님, 주소를…. 아니, 지금 이 번호로 제가 경찰에, 경찰에 신고할게요.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급하게 들리는 이소의 목소리도 덤이었다. 주영은 묘하게 배 속이 들끓는 게 느껴졌다. 이소가 저런 식으로 큰 소리를 내기도 하는구나. 제 손으로 부모의 숨통을 끊어놓으면서 동시에 욕정하는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격렬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영의 앞섶이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아, 이소야. 이소야. 윤이소. 그때 호텔방에서 그냥 취한 너를 엎어 놓고 몸을 취할 것을 그랬지. 끙끙대는 네 볼기에 얼굴을 묻을 걸 그랬어.

결국 이명희의 손이 남편의 호흡기 줄을 쥔 채 축 늘어졌다. 주영이 손을 떼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주영은 고개를 돌렸다. 윤치승의 눈이 반쯤 열린 채 깜빡이고 있었다. 저산소증으로 인한 무의식적인 반응인지 정말로 기적적으로 눈을 떠 아들이 어미를 살해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영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윤치승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덮은 마른 눈꺼풀이 연신 깜빡였다. 주영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버지가 자초하신 거예요. 어머니가 방치하신 거고요.”

천천히 목덜미를 잡고 지그시 누르자 윤치승의 몸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기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단차가 심한 경고음이 빠르게 울려 퍼진다. 주영은 윤치승의 눈동자가 넘어가는 것을 무감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보세요, 그 애가 곁에 없으니까 괴물이 되어 버린 저를.”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길고 높은 경고음과 함께 윤치승의 숨이 끊어졌다. 주영은 그 후 몇 초를 더 눌렀다. 맥박이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한 후 주영은 몸을 돌렸다. 바닥에 떨어진 전화에서 여전히 이소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말 걸고 싶어.’

그러나 주영은 입술을 깨물고 전화를 끊었다. 이소에게 아양을 떨고 싶어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을 처리해야 했다.

문득 팔이 따끔했다. 이명희가 긁어내린 팔뚝에 피가 맺혀 있었다. 주영은 서랍을 뒤져 손톱깎이를 꺼내 들어 방 한가운데 쪼그려 앉았다.

“엄마, 손톱 깎자.”

주영은 축 늘어진 이명희의 손을 끌어다가 제 허벅지 위에 걸쳐 놓은 채 또각또각 단정하게 손톱을 깎았다. 예전에 이소의 손톱도 모두 제가 깎아 주곤 했는데, 언젠가는 잘못 잘라 피가 철철 났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마음을 졸이며 괜히 직접 자르지 않으면 안 놀아 줄 것이라 엄포를 놓았었다. 주영은 빨간 매니큐어가 발린 손톱을 자르며 흥얼거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어, 가며언- 흐으음, 으으음-”

그렇게 오래 못 만날 줄 알았으면 계속 연습해서 쭉 잘라 줄 것을 그랬다. 그럼 그 핑계로 손도 더 많이 잡았을 텐데. 주영은 엉망진창으로 잘린 이명희의 손톱을 들여다봤다. 대충 잘라서 영 못 쓰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잘린 손톱들을 모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축 늘어진 이명희를 질질 끌고 올라가 계단을 올랐다. 평생 관리를 해서 마른 몸을 유지하고 있던 이명희의 몸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담벼락이 높고 고요한 동네,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담장이 자신의 치부를 가려 줄 것이다.

가볍게 안은 이명희의 시체를 옥상 난간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당 안으로 떨어지기를 바랐으나 재수가 없게도 어딘가에 부딪혀 튕겨오른 시체가 담장 위 창살에 그대로 꿰여 버렸다.

“이런.”

주영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오늘따라 별이 많았다. 밤공기가 따뜻하다. 이소가 보고 싶었다.

“하하하…… 이소야, 나 아버지 어머니 따라 지옥 가겠지.”

주영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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