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사업 잘되고 있다고 안 했어? 아니…. 천? 엄마가 그렇게 큰돈이 어딨어…. 저번에도 보내 줬잖아. 아니, 너는 두 달 만에 연락해서는, 됐고 애들 좀 바꿔 봐라. 할머니가 목소리 좀 듣게. …아유, 이게 누구야. 우리 강아지! 그래, 할머니도 보고 싶어요….”
불과 두어 달 전이었다. 연락은 뜸했지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들의 사업이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부도 위기였고 결국은 집까지 경매에 내놓았다는 전화를 받은 정숙은 허탈감에 주저앉았다. 미국까지 건너가서 잘 살고 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고 때문에 나이 든 어미에게 근황을 들려주지 못할 정도로 바쁜가 보다 했다.
백, 이백, 오백. 급전이 필요하다는 말에, 얼마나 힘이 들면 한국에 있는 자신에게까지 전화를 하겠나 싶어 송금을 했다. ‘엄마 덕분에 살았어.’ 그 말에 정숙은 마음을 놓았다. 또한 아들의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소속감도 들었다. 여전히 너는 내 아이구나, 나를 잊지 않았구나. 반쪽짜리 가족이었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통화에서 아들의 빚이 2억가량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보탠 몇백만 원은 달걀로 바위 치기에 불과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미안한데….’ 안녕하냐는 인사 대신 꺼낸 사과는 결국 다시 한번 정숙을 그 골목길에 매어 두었다.
골목길에서 돌아 나왔을 때 말없이 담배를 제 자개 담뱃갑에 비벼 끄던 해준과 마주쳤다. 몇 번의 나들이를 함께하면서 정숙은 해준이 퍽 친근하게 느껴졌다. 완전무결하게 아름다운 얼굴은 차치하고서도 예의 바르고 기품있는 모습은 지난 육십여 년을 살며 여태 본 적이 없었던 인간상이었다. 제 곁에 대단히 근사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그랬다.
“기척도 없이 그렇게 서 있으면 노인네 놀래.”
“죄송해요.”
해준은 옅게 웃으며 주머니에 담뱃갑을 넣었다. 시판 연초는 아닌 듯 독한 연기 대신 은은한 목련향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아드님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해준은 예의 상냥한 눈을 하고 정숙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정숙은 코끝을 한 번 훔치며 시선을 골목길 어귀 어디론가 던졌다. 버려진 아이 신발 따위를 보며 문득 제 아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참 늦게 걷던 아이였는데.
“보고는 싶지.”
이제는 훌쩍 커 버린 마흔여섯의 정숙의 아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걸으며 살아간다. 그때 걸음마가 늦어서 그런지 너는 아직도 종종 미끄러지곤 하는구나. 옆에서 손을 잡아 줄 어미도 없는데.
“애가 사업이, 잘 안 됐나 봐. 미국에서 그, 석유 뽑는 거를 뭐라고 하더라. 그래, 시추. 나이 들어서는 자꾸만 이렇게 기억력이 깜빡깜빡하고…. 아무튼 바빠서 연락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일이 안 풀려서 못 하는 거였더라고. 아유, 근데 왜 이렇게 다 돈이 문제니.”
“돈이요?”
“잘되면 나 모셔 간다 했는데 쫄딱 망해서. 지도 얼마나 급하면 한국에 혼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다 했겠어. 그런데 내가 마음이 좀 그러네. 연락이 한 통도 없을 때는 그렇게 밉다가도 이렇게 도와 달라고 하면 냉큼 또 내가 줄 돈이 없는 게 너무 미안한 거야. 이 코딱지만 한 가게 하면서 뭐 얼마나 벌었겠냐고.”
“서운하시겠네요.”
“뭐 그래도 자식은 참…. 퍼 줘도 퍼 줘도 부족하고 모자란 마음이 들어. 얼굴도 어른어른하고.”
정숙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남자의 얼굴을 보며 픽 웃었다. 삼십 대 중반이라 할지라도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총각이라 제가 하는 말이 낯설고 답답할 것이다.
“차 교수도 나중에 부모 되면 알 거야. 이제 결혼할 때도 됐잖아, 그치?”
“그러게요.”
정숙은 속에 있는 말을 마구 쏟아 낸 후 입술을 말아 물었다. 제 일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더 편하게 푸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차 교수가 편해지긴 편해졌나 보다. 별소리를 다 해.”
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혼자 머쓱해진 정숙은 바로 집으로 올라가기보다는 슈퍼에 들른다며 얼른 골목길 뒤로 빠져나갔다. 밝은 달빛 아래 해준만 남겨 둔 채 낡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모습을 감춘 정숙은 상념을 떨쳐내느라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 이소가 배달을 간 사이 해준이 잠시 정숙을 찾아왔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흰 봉투를 내밀었고 내용물을 확인한 정숙은 까무러치듯 놀랐다. 일천만 원이었다. 이게 다 무어냐며 해준에게 손사래를 쳤지만 봉투만은 꼭 쥐고 있었다.
“급하신 것 같길래요.”
해준은 생색 한 번 내지 않고 정숙에게 거금을 빌려줬다. 아니 그냥 줬다. 큰돈이니 해준의 차를 타고 은행으로 가는 내내 몇 번이고 안 받는 게 좋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정숙은 제 안에 간사한 마음이 이렇게나 클 줄은 몰랐다. 이 돈이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해준이 도로 달라 할까 봐 손이 벌벌 떨렸다. 그러나 해준은 은은한 미소만 띤 채 고개를 저었다. 다녀오세요, 아드님께 전화도 하고 오시고요. 통화 끝나면 집에 모셔다 드릴게요. 부드럽고도 정확하게 할 일을 지정해 주자 정숙은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일어나 은행으로 달음박질쳤다.
아들에게 돈을 송금한 뒤 미국 시간은 확인도 않고 전화를 걸었다. 자다 깬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지만 천만 원을 막 송금했다는 말에 금세 풀어진 아들은 어디서 이런 큰돈이 났냐며 의아해했다. 정숙은 차에서 막 내리기 전 해준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귀한 돈이라고 하세요.
‘귀한 돈….’
정숙은 귓가에 대고 있던 전화를 고쳐 잡았다.
‘그 돈, 엄마가 진짜 죽어라 모은 거야. 정말, 먹을 거 못 먹고 하나도 안 입고 피똥 싸면서 모은 거야. 그러니까… 넌 좀 고마운 줄 알어. …엄마한테 연락도 더 자주 하고.’
입에 붙지도 않는 말을 몇 번이나 연습하며 겨우 입을 뗐다. 매번 아들을 안심시키려 걱정 말라고, 엄마 돈 있으니까 네 걱정만 하라던 말 대신 생색이 섞인 질책을 했다. 아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정숙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금방이라도 아들이 제게 성을 내며 그깟 돈 안 받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릴 것 같았다. 근근이 푼돈으로 이어 온 가족이라는 이름의 연대가 뚝 끊어질 것만 같았다. 적막은 꽤 길었다. 전화가 끊어졌나 귀에서 떼고 화면을 들여다보려던 찰나 아들의 젖은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미안해요, 엄마. 내가, …정말 몰랐어. 너무, 미안해.’
몰랐다고 했다. 한참을 이어진 아들의 오열에 정숙은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끊어 버렸다.
정숙은 해준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한마디 말도 않았다. 여태 자식을 잘못 키웠나, 아니면 내가 잘못 살았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달리는 차 안에 쏟아지는 노을은 정숙의 주름 사이사이에 시시각각 빛의 언덕과 그늘을 만들었다.
빌라 앞에 도착한 정숙에게 해준은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 교재를 내밀었다. 책을 받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정숙에게 해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드님 보고 싶으시다면서요.”
미국에 갈 준비를 미리미리 해 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정숙은 자신이 없었다. 아들이 건너간 지가 어느덧 십 년이 다 되었다. 건너오라는 소리 한 번이 없었고, 그 흔한 명절에도 얼굴을 비친 적이 없었다. 목소리와 사진으로만 본 손자들은 데면데면했지만 그래도 제 핏줄이라고 정이 갔다. 해준의 앞에서 영어 교재를 살짝 펼쳐 차르르 훑었다. 천만 원이나 줬는데, 그래도 죽기 전에는 미국 땅 밟고 얼굴 한 번 보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가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정숙은 그저 그 말에 쓰게 웃어 버리곤 받은 교재를 품에 꼭 안아 들곤 돌아왔다. 혼자 가게를 지키던 이소가 정숙에게 영어책이 무어냐 물었을 때는 조금 더듬거리긴 했지만 잘 얼버무려 넘어갔다. 어째서인지 이소에게 해준이 준 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 * *
천만 원을 보내 준 이후에 정숙의 아들은 더 자주 전화를 했다. 때로는 손자들도 안부를 묻기도 했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살갑게 구는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제게 돈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도, 형편이 조금 더 넉넉했더라도 꼬리를 살랑거리며 감언만 했을 가족들이 눈에 훤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이 칠십이 다 되어서는 제게 쓴 약보다는 단 꿀이 더 당기는 법이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건물이 빠졌다. 부동산 이 씨에게 도대체 이렇게 예고도 없이 건물을 때려 부순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항의했지만 그 땅을 산 사람이 시가의 두 배나 주고 사 버렸다는데 있는 놈이 더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동네 작은 고시원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이제는 혼자 사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곁에 이소와 해수가 있는 삶이 익숙했고 때로는 해준이 들락날락하며 식사하는 저녁 시간도 좋았다. 정숙은 가게는 둘째치고 최대한 방이 두어 개 더 붙어 있는 곳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스물일곱 살의 사지 튼튼한 이소도 있었고, 저도 해수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파출부 일이라도 하면서 일을 하면 그래도 셋이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형편이 좀 더 넉넉해지거나 이소가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이라도 할 때 즈음이 되면 저는 모은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서 제 가족과 합치면 된다. 여생의 삼사 년은 진짜 가족과 보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해준의 집에 갔었던 날, 정숙은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듯했다. 여기였다.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는 정숙은 해준의 집안 식구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에 홀딱 반했다. 대궐같이 커다란 집에 제집보다 훨씬 넓은 주방, 바글바글한 사람들, 깨끗하고 넓은 마당, 어릴 적 정숙의 할아버지를 따라 몇 번 드나들던 지주 댁처럼 크고 화려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이 참 밝았다.
곱게 맞춰 입은 앞치마를 펄럭이면서 빨래 바구니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가는 여자들을 한 번 둘러보고, 개집을 만든다고 나무판자를 들고 옮기는 남자들 사이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또 한 번 보며 정숙은 저 살던 갯골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냥 다들 이렇게 모여 살았는데.
잔치가 끝나고 손님방에 누워 맨질맨질한 요에 머리를 누이면서도 정숙은 계속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게 천장만 보았다. 해준이 보통 잘사는 게 아니구나, 이소 씨 친구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굴러오는 해수를 토닥이며 정숙은 내일은 해준에게 넌지시 물어봐야겠노라 다짐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숙취와 갈증으로 겨우 일어난 정숙은 제 옆에 놓인 사과즙을 들이켜고 이부자리를 정돈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남자들이 마당을 쓸었고 여자들은 밤새 널어놓았던 이불을 걷었다. 문지방에 팔을 걸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숙에게 찬방 담당 여자가 닭죽을 끓였는데 먹을 거냐 물었다. 아침부터 배 속이 헛헛했는데 옳다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곱게 찢은 살들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닭죽은 처음 먹어 봤다. 어젯밤부터 제 입으로 들어온 모든 요리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좋은 것들이었다. 그릇의 절반을 긁어 먹고 있을 때 즈음 여자들이 커다란 대나무 쟁반에 찬을 담아 옮기는 것을 보았다. 그건 어디 가는 거냐 했더니 안채로 옮기는 음식이라 했다.
힐끗 보아도 제가 먹은 음식보다 가짓수가 많았다. 정숙은 문득 고개를 빼어 이소와 해준이 있는 안채를 올려다보았다. 하긴 남자 둘이니 제가 먹는 것보다 배는 더 먹을 것이다. 그리고 집주인이니 손님으로 온 저와 음식이 다를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정숙은 마저 제 입에 닭죽을 털어 넣고 물을 들이켰다. 조금 이따 차를 마실 때 즈음이면 해준에게 올라가서 넌지시 한번 물어나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오가 한참 지나도록 해준과 이소는 안채에서 나올 생각을 않았다. 해수는 동희 씨가 제 아들들과 함께 고구마밭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봉고를 타고 나간 지 오래였고 정숙은 저만 혼자 남아 바닥을 긁고 있는 게 영 탐탁잖았다. 간밤의 잔치는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인 양 저택은 절간마냥 조용했다. 사람들은 오며 가며 저에게 가벼이 인사는 했지만 금세 제 할 일을 하느라 바삐 걸음을 옮기곤 했다.
“무슨 방에 텔레비전 하나가 없어.”
공용 서재가 있기는 했지만 정숙은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슬렁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정숙은 안채로 향하는 석조계단 앞에 섰다. 모양이 다 다른 넓적한 디딤돌들은 차곡차곡 쌓여 저 높은 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초를 태워 길을 밝히는 석등이 양옆으로 자리했고 사방이 들꽃 지천이었다. 언덕의 끝자락 낮은 담장 중앙에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소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았다. 정오가 넘은 지가 언제인데 내려올 생각을 안 해. 정숙이 막 발을 떼고 안채 쪽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어딜 가십니까.”
“엄마나, 깜짝이야.”
정중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백발의 중년 신사가 서 있었다. 어제 저와 해수를 데리러 왔었던 이 집안의 집사였다. 남자는 궂은일은 하지 않는 대신 온 집안 사람들의 할 일을 일러주고 지시하느라 바빴다. 어제 잔치에서도 술 한 잔도 받지 않고 먼저 자러 들어가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정숙은 손가락으로 언덕 위를 가리켰다.
“어제 위에는 못 봐가지고.”
남자가 제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자 정숙은 괜한 해명을 덧붙였다. 그냥 구경이나 하려는 거예요. 할 일은 없고 다들 바쁘신 거 같은데…. 집 구경하고 있었어요. 차 교수도 편히 있어도 된다고 했고. 정숙은 마지막에 해준을 언급하며 변명에 금칠을 했다. 남자는 언덕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젊었을 적에는 꽤나 근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 같은 남자는 예민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위에는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왜요?”
“도련님 공간이니까요.”
“누가 차 교수 방에 들어간대요, 건물 구경하러 가는 거지. 보니까 화원도 있다더만.”
“화원은 손님께서 묵고 계시는 방 뒤에도 있습니다. 꽃구경은 그리로 가서 하시면 됩니다.”
그래, 그 코딱지만 한 화원. 어제 해수와 함께 슥 훑어보곤 얼른 들어왔다. 정숙은 너무 단칼에 출입을 통제하는 남자의 말에 눈을 흘기며 몸을 돌렸다. 뭐, 화원은 핑계고 해준이 내려오면 붙잡고 물어보면 되니 급할 건 없었다.
해준과 이소는 그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래로 내려왔다. 이소는 간밤에도 잠을 잘 못 잤는지 걸음이 유독 느리고 행동이 굼떴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허리를 두드리며 몇 번을 쉬었다가 내려오는지 정숙은 제가 아무 데서나 잘 자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는 야외가 아닌 행랑채 안의 손님방에서 다 같이 했다. 어김없이 좋은 음식이 나왔고 얼추 식사를 마친 이소와 해수가 주방에서 당과를 만드는 것을 구경하고 있을 때 정숙은 은근슬쩍 빠져나와 해준을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해준이 앉아 있었다. 해준은 평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 큰 아이들의 글씨를 봐주고 있었다. 꾹꾹 눌러 쓰는 글씨들은 대부분 괴발개발이었지만 해준은 획순과 크기 등을 세세하게 지적하며 꽤나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었다.
“저, 차 교수 바빠?”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공책을 보고 있던 해준이 나른하게 몸을 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순식간에 깊고 검은 눈동자가 정숙을 홀리듯 휘감았다. 정숙은 잠시 저쪽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엄지로 사람들이 드문 곳을 가리켰다. 해준은 지체 없이 일어났다. 열 번씩 더 쓴 후 집사님께 전해 주렴, 약속한 대로 그림을 그려 주마. 해준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들이 이를 드러내고 배시시 웃었다. 정숙과 해준은 커다란 느티나무 뒤 담장 옆에 섰다.
“다른 건 아니고, 너무 갑작스럽긴 하지만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되나 하고….”
“어떤 건데요?”
정숙은 고개를 빼고 사람이 오나 안 오나를 살폈다. 어떤 경로로 여기에서 일하게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집주인에게 다이렉트로 말하면 속 시원하게 답변이 나올 테니 정숙은 그편을 택했다.
“그, 혹시 여기에 남는 방 하나 있어?”
해준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방이요? 정숙은 말을 조금 더 보탰다.
“응. 있으면 여기서 일을 좀 할 수 있을까 하고.”
“누가요, 여사님께서요?”
“응.”
해준은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했는지 눈을 가늘게 뜬 채 정숙을 바라봤다. 놀랐을 테다, 얼마 전에 큰돈을 받아 갔음에 불구하고 또 부탁이라니. 그러나 정숙은 나름 대로의 대안이라든지 계획이 있었다. 꽁으로 지내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얼마 전에 가게 건물도 빠지고, 영 갈 곳이 마땅찮아서…. 가게 일도 요샌 너무 머리 아프고, 이소 씨한테 맡긴 지가 벌써 일 년이 넘어서 이젠 나보다 이소 씨가 더 잘 알아. 그리고 사실 당장 내가 이래저래 좀 정신이 빠져서 이젠 그냥 마음이 편했으면 싶어.”
정숙의 말에 해준은 눈만 깜빡였다. 좀처럼 본론이 나오지 않자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내가 그래도 김치도 꽤 잘 담그고…, 여기 보니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더라고. 그러니까 저기 저 사람들처럼 나도 여기서 잡일도 하면서 같이 지내게….”
“곤란한데요.”
해준이 정숙의 말을 잘랐다. 좀처럼 무례하게 군 적이 없는 해준이었기에 정숙은 주절주절 제 생각을 늘어놓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해준은 정숙이 못 들었을까 봐 다시 한번 ‘그건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방이 없어?”
“방은 많죠.”
“그럼 나이 많아서 시킬 일이 없어?”
“아니요.”
정숙은 혹 제가 지인이라 그런가 싶어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부담은 내려놓고 편하게 대하라며 해준을 설득했다.
“내가 불편해서 그래? 괜찮아.”
“아닙니다. 도리어 제가 불편하게 해드릴까 봐 노심초사하죠.”
“아냐, 나는 차 교수 편하고 좋아. 근데 왜 안 되는지 말해 줄 수 있어? 나 정말 일 잘해. 파출부 일만 20년 넘게 했어. 자질구레한 일은 다 시키면 되잖아. 돈 때문이면 거의 안 받아도 돼.”
해준이 말없이 눈썹 끝을 매만지고는 대답을 하려던 찰나였다. 저 멀리서 이소가 해준과 정숙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과를 다 만들었는데 혹시 드실 거냐고 묻는 말에 해준이 고개를 돌리고 끄덕이자 이소가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작은 그릇에 든 당과를 들고 나왔다. 저와 해준에게 손짓하는 이소의 표정이 티 없이 밝았다.
이소에게 시선을 둔 채 제 질문에는 대답 않는 해준의 팔목을 덥썩 잡으며 정숙이 재차 물었다. 차 교수, 나 여기서 지내게 해 줘, 응? 부탁이다. 왜 고민하는데. 정숙의 말에 해준은 느리게 눈을 떴다 감으며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사님은 돌아갈 곳이 있으시잖아요.”
정중하게 제 손을 놓은 채 이소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해준을 정숙은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 * *
해준에게 거절 아닌 거절을 듣고 그 자리에 벙찐 채 선 정숙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에 가는 것이 확정이 난 것도 아니고 그저 먼 미래의 계획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몇 달을 잡일 할 자리도 안 주나 싶어 서운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래. 어휴,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정숙이 너도 진짜 정신을 차려야 돼.”
정숙은 제 뺨을 짝짝 때리곤 고개를 저었다. 해준은 고마운 사람이다. 저에게 거금도 대 주었고 이렇게 좋은 집에도 초대해 주었는데 그런 뻔뻔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흥적으로든 생각이었으니 얼른 잊어버리고 원래대로 이소와 함께 집이나 알아보러 다녀야겠다. 정숙은 구석진 나무 근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은 정말 고민 같은 것은 싹 잊은 채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밤새워 놀았다. 칠십이 다 되도록 그렇게 크게 웃었던 적은 없었던 밤이었다.
나이 생각을 하지 않고 무리를 했던 탓인지 정숙은 약한 고뿔에 걸렸다. 밤이 늦도록 춤을 추고 놀다가 겨우 새벽이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 초여름에도 손님방에 군불을 얼마나 때는지 등이 다 익을 정도였지만 땀을 쭉 뺐더니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그때 걸린 감기가 생각보다 몸을 곤하게 만들어 정숙은 식사가 끝나면 들어가 누워 잠을 잤고 퍽 맥을 못 췄다.
해준의 배려로 고뿔에 좋은 탕약을 몇 첩 들이켰고 완전히 나을 때까지 쉬다 가시라는 말에 그 집에서 며칠 더 묵기로 했다. 어차피 집에 가면 지금처럼 돌봐 줄 사람도 없으니 잘된 일이었다. 혼자 가게 정리하느라 고생할 이소에게 손을 흔들고 다시 들어와 누웠다.
해준네 탕약은 신기했다. 가게 일 하면서 흔한 약국 약 수십 가지를 먹어 봤지만 해준네 탕약 몇 번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다지 쓰지도 않으면서 목 넘김이 부드러웠고 무엇보다 한 그릇을 마시고 푹 잠이 들면 고뿔뿐만 아니라 쿡쿡 쑤셨던 허리와 무릎까지도 시원해졌다. 따라서 고뿔이야 일찌감치 나았지만, 괜히 며칠 더 묵고 싶어 정숙은 밥을 먹고 나면 또 뭉개고 눕기를 반복했다.
백토를 잘 빗어 만든 천장과 단단한 대들보를 바라보던 정숙은 점심 식사 준비가 한창일 즈음에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모두 저를 손님이라고 부르며 잘 해 준다. 지나가며 얼굴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작 아는 청년의 집에 묵었다 가는 것뿐인데 대접은 초청받아 온 신분 높은 객이 된 듯했다. 해준이 이 맛에 사람을 부리나 싶었다.
정숙은 한참을 또 구경하다 결국은 제게 가장 익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커다란 주방에서 한창 기름 냄새가 지글지글 익었다. 오늘은 해준도 외출을 했고 이소도 낡은 빌라로 돌아가 버려서 식솔들만 식사를 해야 했다. 음식은 주방 여자들이 전담했고 남자들의 절반은 외부에서 일하고 돌아왔다. 남은 남자들은 집 안에서 살림을 도왔다. 정숙이 다가가자 그새 낯을 익힌 찬방 여자가 바싹 튀긴 가지튀김을 내밀며 자리를 내주었다.
“아니, 언니. 안채에서 밤새 곡소리가 진짜 났다니까.”
“귀신 소리가 나도 못 들은 척해. 눈치 챙기고 귀 닫어. 형님은 밤새 잘 잤고요?”
목이 막힐까 미지근한 숭늉을 담아 건네며 정숙보다 두 살 어린 낙원댁이 웃었다. 잔칫날 만나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정숙은 말을 놓기로 했다.
“잘 잤지. 근데 손님 방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영 심심하네.”
“이 집엔 컴퓨터는 있어도 그런 건 없어요. 그래도 서재 가면 만화책도 있고 잡지도 있어.”
“책은 영 손에 안 잡혀서. 아니 근데 다들 바쁜가 봐, 집에 은근히 할 일이 많아 봬.”
“원래 주택이 은근 손이 많이 필요해요. 사람도 많고, 일이 매일매일 있어.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딴생각 안 나고 좋지 뭐.”
그들은 연신 튀김과 부침을 하며 두런두런 말을 이었다.
“맞다, 별채도 청소해 놔야 하잖우.”
“그치, 얼마 안 남은 거 같더라고. 침구도 다 들여왔고…. 얼마 전에는 주 씨가 여자애 물건도 보러 다니는 것 같더만.”
“별채는 왜요? 여자애는 무슨 말이래?”
정숙은 막 튀겨 낸 고구마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밑간을 한 고구마는 한입 베어 물자 보슬보슬하게 쪼개지는 것이 역시 맛이 좋았다. 정숙의 말에 여자들은 합창하듯 동시에 돌아보며 대답했다.
“새 손님 방이잖아요.”
“맞아, 새 손님 방.”
새 손님? 정숙이 저를 가리키자 여자들은 손을 내저으며 깔깔 웃었다. 형님, 농담도 참 잘 치시우. 정숙은 잠시 눈을 굴리다 이소를 떠올리며 설마 그 새 손님이 우리 이소 씨냐고 묻자 여자들은 그제야 정숙이 던진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당한 표정을 했다. 정숙은 괜히 민망해 어깨를 으쓱했다. 말 안 해 줬나 봐, 여자들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아무튼, 꼭 생긴 거 맨키로 검소한 걸 좋아하나 봐. 단정하고.”
“에이, 그래도 거기 들어가는 도자기가 몇천만 원이고 이불 요만 해도 백만 원이 훨씬 넘는다.”
“새 손님은 그런 건 모를걸.”
“모르지. 알면 덮간.”
“하기야…. 저번에 보니까 신선로도 처음 봤다고 하더만.”
“어머, 형님도 여기에 와서 처음 봤음서.”
정숙은 머리가 안 돌아갔다. 지금 주방 여자들이 저를 앞에 두고 말하는 이야기가 정녕 사실이라면 지금 저 언덕 위 안채 건너에 있는 큼지막한 별채가 바로 이소의 방이라는 것인데. 정숙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친하길래 이렇게 큰 집을 턱턱 내주는 것인가.
이 마당 아래에 있는 행랑채의 각 방도 꽤 크고 깨끗했다. 사람들 말로는 해준이 혼자 쓰는 저 위의 건물 두 채가 서른 명이 넘게 쓰는 행랑채보다 더 넓다고 했다. 그런데 저곳을 이소와 해수를 위해서 비워 준다니 숨이 턱 막혔다.
또한 언덕 위 안채는 이 집에서 해준과 집사 준경만 드나들고, 하루에 한 번 청소 담당만 왔다 갔다 할 뿐 밤에는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저녁에 야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할지라도 행랑채 식솔들은 자신들만 알아서 해 먹을 뿐 해준에게 갖다주지 않길래 ‘왜 해준에게 먹으러 내려오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도련님은 원하시면 따로 말씀하시고 그 외에는 저희끼리 알아서 해 먹고 치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정성이 가득 들어간 육전과 채소튀김들도 모두 식솔들 밥상에 올라가는 것들이었다.
좋은 식재료에 비싼 그릇에 근사한 풍광까지 곁들인 한 끼 식사를 매일매일 누릴 수 있다니. 겨우 주방 일을 하고 밭일을 하는 사람들인데도 자영업자인 자신과 이소보다 더 잘 차려 먹었다.
‘아니, 나는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하더니….’
어째 이소는 저에게는 그동안 언질 한 번이 없었나 의문이 들었고 동시에 소외감과 시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소도 여기에 오면 이렇게 일자리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친한 친구니까 방만 내주고 밖에서 가게 여는 것을 도와주려나. 여자들 말이 맞는다면 해준은 이소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 호의 속에 제가 없다는 게 서운하기는 했다. 미국에 언제 갈지도 모르는데 돌아갈 곳 운운하면서 선을 긋는 것도 평소 심심하게 잘 해 주던 해준의 태도와 모순이 있는 것 같았다.
“자기들은 여기서 지내는 거 어때? 좋아?”
“그럼요. 더할 나위 없죠.”
“전에 살던 거에 비하면 천국이지 뭐.”
여자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숙은 입술을 비죽였다. 나 같아도 지금처럼 사느니 여기서 편히 살면 좋겠다. 정숙은 엉덩이를 끌어당겨 앉으며 은근히 속삭이듯 물었다.
“근데 낙원댁,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예, 형님. 물어보셔요.”
“여기서 일하면 얼마나 받어?”
정숙의 물음에 여자들은 소쿠리에 전을 담다 말고 얼굴을 빤히 돌아봤다. 저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표정이 너무 굳어 있어 정숙은 제가 너무 민감한 질문을 무례하게 한 듯싶어 식은땀이 났다.
“어…, 아유, 내가 입을 또…. 미안해. …아니, 나는 그냥 여기서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 표정도 밝고 좋아 보여서…. 자리 하나 있음 나도 일할 수 있나 싶어서 물어봤지.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복작복작하게 사는 게 좋더라고. 당장 집 문제도 그렇구.”
“그런 건 도련님한테 여쭤봐야 할 텐데.”
젊은 여자가 대답하자 낙원댁이 괜히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말 못 하지, 일 있는 거 아니면. 사근사근 웃던 얼굴로 선을 그은 낙원댁이 등을 돌리고 음식을 마저 담았다. 젊은 여자는 여전히 정숙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정숙은 입술을 죽 당기다가 제 속을 또 털어놓았다.
“일은 있어. 어떤 썩을 놈이 우리 건물을 통째로 홀랑 빼가지구 하루아침에 길바닥 신세 되것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방도 빼 주고 가게도 빼 줘야 한대. 이제 막 장사가 좀 되려나 싶었는데 이게 뭔 날벼락인지…. 쥐꼬리만 한 권리금만 가지고 이제 집도 구하고 일도 다시 구해야 하는데…. 아휴, 시간이 문제다. 그나마 이소 씨가 있으니까 내가 숨 좀 돌리고 있긴 한데, 막막해서 그러지.”
정숙의 말을 다 들은 낙원댁은 말없이 소쿠리를 들고 주방 바깥으로 나갔다. 젊은 여자만 마저 그릇을 정리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새 손님은 가게 일 계속하시는 거예요?’ 물었다.
“그럼, 옮기긴 하겠지만 그래도 규모는 줄여서 계속해야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 그렇구나.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아, 그럼 저도 이만 가 볼게요. 쉬세요.”
젊은 여자는 알게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대다가 그릇과 면 보자기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던 주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정숙은 제가 괜히 좋은 분위기에 초를 쳤나 싶어 머쓱해졌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정숙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제가 고민해 봤자 어쨌든 점포가 나야 이동을 할 것이고 부동산 이 씨도 연락을 준다 했으니 당장은 손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정숙은 아랫목에 기어 들어가 낮잠을 잤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은 산나물비빔밥과 미역 냉채를 먹은 후 잠시 산책을 갔다. 집이 워낙 넓어 두어 바퀴를 도는 동안 몸도 풀렸다. 땀이 조금 나 따뜻한 물로 목욕도 하고 나오니 평상에 낙원댁과 여자들이 앉아 찹쌀떡을 개고 있었다. 다과상 옆에는 하루의 피로를 녹여 줄 맥주도 있었다. 정숙은 곁에 앉아 떡을 몇 개 집어 먹고 조금 일손을 도우며 맥주도 두어 캔 마셨다.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았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해준이 귀가했고, 주방에서는 안채로 올라갈 주안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밥과 국이 없는 상에는 단출하게 차린 다과와 술이 놓였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숙은 상을 차리던 낙원댁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힐끗 본 뒤 상을 들고 안채로 걸음을 옮겼다. 술김에 무모함을 뒤집어쓰고 저벅저벅 계단을 밟았다. 뒤늦게 저 멀리서 주방 사람들이 상이 어디 갔냐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지만 이미 언덕 중반을 향해 걷던 정숙은 한 번 돌아볼 뿐 멈추지 않고 안채를 향해 걸었다.
굳게 닫혀 있던 붉은 대문은 비스듬하게 열려 있었다. 어깨로 대문을 밀어내고 높은 문지방을 넘어 몸을 돌리자 진한 꽃향기가 훅 끼쳤다. 행랑채 근처에서는 주로 음식 냄새와 불에 탄 목재 냄새,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의 향이 났다면 고작 언덕 하나를 올라 대문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공기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크고 아름다운 전각 사이사이로 보이는 조명은 꼭 달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꽃과 나무들이 편히 잠을 잘 수 있도록 은은하게 켜 둔 전등을 따라 걸으면 작은 연못 위 다리를 건너 안채로 갈 수 있었다. 정숙은 옆구리에 소반을 끼고 천천히 걸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빠르게 정원을 훑어내고 인기척을 찾아 헤맸다. 방 안에 있으려나,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나. 분명 아는 얼굴이고 말도 섞었던 친근한 사람인데도 정원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아마 얼마 전 제게 돈을 건네고 난 이후였을 것이다. 정숙은 해준이 조금 어려워졌다. 또한 이 집에 며칠 기거하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들었다. 미소 띤 얼굴이나 저를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전과 다르지 않은데도 어쩐지 편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정숙이 정원을 대충 둘러보고 안채 툇마루로 자리를 옮기려던 참이었다.
“여사님께 술상을 봐 오라 한 적이 없는데….”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디에도 해준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정숙은 주름진 눈가를 비비곤 다시 찬찬히 정원을 둘러보았다. 가까이서 들렸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의 주인은 생각보다 멀찍한 곳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다리를 건너올 때 지나쳤던 정자 마루에 고단한 몸을 기댄 해준이 앉아 있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말을 마친 해준의 입가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람이 비껴 지나가자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은 길게 내리뻗어 정자 주변을 밝혔다. 해준의 손가락 사이에 비스듬히 걸린 연죽에서 고약하게 풀을 태우는 향이 났다. 취향 독특하다 생각했지만, 담배마저 저리 태울 줄이야. 정숙은 몸을 돌려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오전에 찬방 여자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왕왕 울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집요하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해준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덜 태운 연죽을 담배통에 걸어 두고 몸을 일으켰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자리에 앉아 술상을 기다렸던 듯 여전히 나갔다 온 차림이었다. 해준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정숙의 앞에 섰다. 주안상의 음식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고 술병에서 아까운 술이 흘러넘쳤다. 이것저것을 구경하며 올라오다가 다 쏟은 모양이었다. 달밤이 아쉽지만 조용히 술을 즐기기에는 글렀다.
“오늘은 술은 됐고 차나 한잔하죠.”
해준은 설핏 웃으며 정숙을 지나쳐 안채로 향했다. 해준의 구두에 밟혀 구르는 자갈 소리만큼이나 정숙의 마음도 불안하게 갈라졌다.
* * *
손님을 모시는 용도로 만든 것 같은 깨끗한 다실(茶室)에 등이 켜졌다. 해준은 정숙이 엉망으로 가져온 술상을 대충 옆으로 밀어 두고 오동나무 서랍에서 얼마 전 덖어 온 차를 꺼냈다. 다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영어 공부는 잘 돼 가세요?”
해준은 백색 다완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토란 어미 뿌리 같은 물항아리 앞에 내려놓고 차통을 꺼내 명주 수건으로 닦았다. 뜨거운 물을 다완에 붓고 찻솔을 살짝 담그는 모든 행동이 물 흐르듯 막힘없이 자연스러웠다. 정숙이 조금 어렵다고 대답하자 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딱히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해준은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찻잎을 개어내 잔에 담았다. 소리 없이 정숙의 앞에 내려놓자 정숙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적토를 풀어낸 듯한 붉은 차를 입에 머금자 술기운에 후끈 달아올랐던 몸이 노곤하게 풀어졌다.
“몸은요. 열은 내리신 것 같은데.”
“좋아졌어. 여기 의사 선생님이 솜씨가 좋네.”
“민 선생님이 예전에 소록도에 계셨었거든요. 일을 잘하세요.”
해준은 차분히 차를 들어 입 안에 넣고 굴렸다. 학교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재단 일까지 겹쳐 꼬박 18시간을 커피와 차만 마시며 굶었다. 이소에게 가려고 했으나 해수의 공작 숙제를 도와주고 있다는 말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식사까지 엎어졌다. 해준은 제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딱히 예민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두세 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면 알아서 정리해 줄 생각이었건만 정숙은 요 며칠 제 눈치를 보며 안달을 냈다.
그래도 이소의 사람이었다. 해준은 제 되먹지 못한 성격대로 판을 엎어 버리고 싶은 것을 고운 이소의 얼굴을 생각하며 참았다. 또한 차분하고 현명한 집사 준경의 말을 상기하며 또 참았다. 평소 게으르고 느긋한 성정을 보통 사람들에게도 좀 베푸시라는. 해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목을 축였다. 다 때려치우고 자고 싶군.
“내가 그 천만 원은 꼭 지금 가게 정리하는 대로 일부 갚을게. 차 교수 덕분에 도움도 많이 받았고 급한 불도 껐고…. 새 점포 자리 구하면 차액이 생길 테니 조금 천천히 갚더라도 이해해 줘.”
“안 갚으셔도 돼요.”
해준은 정말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깟 천만 원이야 당장 정숙이 아니더라도 서른 명 남짓한 식솔들에게 대강 나눠 주고 잊어버려도 그만인 돈이었다.
“그럼 못 써. 아무리 잘 벌어도 그렇게 귀한 돈을 막 퍼 주면 안 되는 거야. 꼭 갚을게.”
정숙은 제 성의를 가벼이 여기는 해준을 질책하듯 말했다. 해준은 시선을 돌리며 차를 넘겼다. 입 안이 텁텁했다. 노인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바르게 경청하며 감히 존중하여야 한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왔던 말이지만 해준은 이런 유의 잔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죽어서 재물을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중하다고 손에 꼭 쥐고 있으려고나 할까.
“이 밤에 여기까지 올라오신 이유는요?”
결국 해준은 말을 돌렸다. 정숙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입맛을 다셨다. 물론 염치 불고하다는 것도 알지만 궁금은 했다. 그래도 이 정도 일은 저와 어느 정도 상의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름 이소와 지낸 기간이 오래였기에 해준의 계획이 사실이라면 저는 보름 안에 짐을 정리하고 혼자 살아갈 궁리를 해야 했다.
“차 교수가 나한테 돌아갈 곳이 있다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 혈혈단신인 이소 씨랑 달리 나는 멀리 있긴 하지만 자식도 있고, 분명히 입장은 다르지. 하지만 솔직한 말로 당장 미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태 같이 살 부비고 살았는데 갑자기 혼자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막막하고 외로워서 그래. 염치 불고하고 말하자면 이 커다란 집에 나 하나 있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잖아.”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뭐하면 내가 월급 같은 거 안 받을게. 내가 그냥 월세 내면서 지낼게. 작은 단칸방이라도 좋아, 여기 일자리 없으면 그냥 밖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잠만 잘게.”
“여긴 회사가 아닙니다. 때문에 여사님이 기대하시는 월급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아. 그럼 내가 애들이라도 봐주면서….”
“아이들을 돌볼 사람들은 차고 넘쳐요.”
정숙은 사실 무서웠다. 이소와 지내는 사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사람 냄새에 잠시 착각했었다. 저와 이소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었고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는 사이였다는 것을 잊었었다. 안일했다. 이소가 바릿바릿하게 일을 할 동안 정숙은 몸과 마음이 편했다. 호구를 잡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홀로 사는 남자의 아이를 돌보니까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다. 제 민낯이 드러나자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졸라서 될 것이 아니었다.
“차 교수는 정말 나를 받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거구나. 난 그래도 차 교수 호감이 있었는데.”
호감을 운운하는 정숙의 말에 해준은 고개를 기울였다. 눈치는 없지만 성정은 조급한 정숙 때문에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빨리 제안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해준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으며 정숙에게 몸을 기울였다.
“여사님, 객으로 계시는 거라면 얼마든지 계셔도 좋아요.”
“응?”
“전 여사님을 고용할 생각이 없는 거지, 여사님을 싫어해서 밀어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손님으로 오래 있을 수 있겠어. 나는 이 집에서 허드렛일하면서 사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렇지.”
“글쎄요. 우리 식구들이 과연 마음이 편할까.”
해준은 제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수족처럼 부린다는 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주방에서 가지 따위를 튀기며 평화롭게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마음속 한편에서는 언제나 제 쓰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말로 해준이 가서 엄한 사람을 호수에 밀어 버리고 오래도 묵묵히 그럴 사람들이었다.
정숙이 본 평화의 단면 뒤에는 은혜를 담보로 한 징역수들의 그늘진 얼굴이 있었다. 살아가는 데 무리 없이 해준이 모든 것을 제공하고 능력에 따라 그들의 독립까지 지원하지만 결국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노비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었다. 정숙이 이기적인 성격이기는 했지만 굳이 그런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전 다만 여사님께 선택하실 기회를 드리고 싶을 뿐이에요.”
해준은 제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들었다. 화면을 바라보며 손을 놀리는 해준을 바라보는 정숙은 지쳐 보였다. 괄괄하고 뻔뻔한 여인의 얼굴에는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가여운 노인의 시름만 남았다. 힐긋 눈을 든 해준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저희 집에 객으로 머물다 미국에 계신 아드님께 금의환향하시거나, 이대로 이 저택을 나가신 후 아드님께 근근이 돈을 부치며 홀로 여생을 보내시는 것. 어떤 것을 고르시든 이후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온전히 여사님의 책임인 거죠.”
정숙은 말을 잃은 채 해준을 바라보았다. 해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해준이 정숙의 앞에 제 핸드폰을 내밀었다. 익숙한 은행 송금 화면이었다. 보내는 이에는 해준의 이름 석 자, 받는 사람에 제 이름 석 자가 쓰여 있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천만, 억. 일억이었다.
[송금하시겠습니까?] 화면 상단의 접속 시간 5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당황한 정숙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잘못 입력했나 싶어 다시 물었지만 해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억, 선급금입니다. 제가 지정한 날짜에 아드님께 돈을 입금하시고 미국으로 가시겠다고 하세요.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복권을 맞았건 사업이 대박이 났건 알아서 둘러대시고 그 돈은 모두 빚 갚는 데 쓰라고 하세요.”
4분 21초. 침이 말랐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그리고 미국에 도착하시는 대로 다시 이억을 보내드릴 겁니다. 그 이억으로 남은 금액을 한꺼번에 탕감하셔도 좋고, 버릇없는 아드님의 목줄을 쥐고 그동안 헌신했던 어머니의 위엄을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차 교수,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야. 똑바로 말해, 이거 지금 진짜야? 왜 이래?”
3분 15초. 정숙은 줄어드는 시계를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 제 눈앞에 있는 큰돈이 시한폭탄을 메고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돈을 받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릴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시간은 가는데 해준은 느릿느릿 차분히 설명했다.
“아드님께서 상환해야 할 2억, 제가 전에 드린 돈으론 탕감하기엔 턱도 없어요. 아마 겨우 구멍만 때운 채 또 돈을 빌릴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있겠죠. 얼마 전에 보내드렸으니 상환할 날짜가 다시 한 달이 채 안 남았을 테고요. 모두 갚을 때까진 무섭게 불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막으려 또 뛰고…. 계속 반복이겠죠. 숨겨 둔 돈이나 장기를 팔지 않는 이상.”
“…….”
“퍼 줘도 퍼 줘도 아깝지 않은 게 자식이라면서요. 기왕 주는 거 대접받으셔야죠. 귀한 돈인데.”
2분, 정숙은 기로에 섰다. 일억, 제가 살면서 이렇게 큰돈을 만져 볼 수나 있을까. 방과 가게를 빼고 권리금을 모두 챙긴다고 해도 총 사천이 안 된다. 그것마저도 다시 방을 구하고 일을 다니면서 평생 쥐고 살아야 하는 제 노후 연금 같고 피 같은 돈이었다. 그런데 해준은 지금 제 눈앞에 선급금 일억과 미국에 도착한 후 이억까지 해서 총 삼억을 제안하고 있었다. 다 늙은 제 장기나 안구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까지 하는가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화면 안의 시간은 줄어 가고 눈에 핏발이 섰다.
“…왜 나한테 이 돈을 주는 건데?”
해준은 말없이 화면 속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1분 30초, 1분 20초, 1분. 이윽고 60부터 줄어가는 숫자와 해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정숙이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해준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동안 우리 이소 씨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성의 표시 겸….”
해준은 아주 느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순간 해준의 모습이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보인 것은 제 착각일까.
“이소 씨 곁을 떠나는 대가로 받는 작별 선물 같은 거죠.”
작별 선물, 해준의 입에서 떨어진 말과 함께 화면 속의 숫자는 30을 지나갔다.
“마음에 드실까요?”
기어코 이 간사한 방울뱀은 정숙의 발밑을 헤집어 놓았다. 정숙은 저도 모르게 제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버튼만 누르면 제 계좌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온다. 또한 말을 아끼고 떠나면 2억이 더 들어온다.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글펐다. 이소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제가 할 결정이 너무 속물적이라 눈물이 다 났다.
이소라면 이 돈을 포기하고 저를 선택했을까? 만약 이소가 그랬다고 한다면 저는 이소를 나무랐을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계속 이렇게 살 거냐고, 당연히 돈을 받고 떵떵거리고 살아야지 하며 질책했을 것이다. 저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소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소와 보낸 시간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말간 얼굴로 정숙의 앞에 섰던 스물네 살의 이소를 떠올렸다.
‘사장님, 저랑 해수랑 같이 살아요. 제가 아들 할게요. 약속하신 거예요?’
정숙은 코를 훔쳤다. 10초, 9초, 8초…. 줄어드는 시간을 바라보던 정숙은 손가락을 들었다.
선택에 이변은 없었다.
* * *
정숙은 말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송금이 완료되었다고 뜬 메시지와 함께 제 낡은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돈이 들어왔다는 알림일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고작 오 분 사이에 제 주머니에 일억이 들어왔다. 정숙은 아직도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을 겨우 맞잡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일자리 청탁이나 하려고 올라왔다가 대뜸 통장에 꽂힌 거액을 보고 담담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해준은 차분히 다완을 정리해 내려놓고 미리 작성해 둔 서류철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숙이 생각보다 많이 떠는 것 같아 신경이 좀 쓰였지만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더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종이 몇 장을 꺼내어 낮은 테이블에 내려 두자 정숙의 시선이 저절로 따라갔다. 거창할 것은 없지만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약속(約束) 어음 공증에 관한 계약서입니다. 선급금 1억에 대한 지급 내역과 미국에 도착하는 대로 남은 2억을 즉시 입금하겠다고 적혀 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제가 돈을 지급하지 못할 시 여사님께서는 제 ‘채권자’가 되십니다. 소송으로 남은 금액을 정당하게 받아 낼 수 있는 지위가 생기는 겁니다.”
정숙은 계약서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놀라는 정숙을 보며 해준은 안심시키듯 미소 지었다.
“물론 소송까지 가실 일은 없으실 거예요. 저와의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 짐을 챙겨서 나가시기 전까지는 저희 집에 기거하세요. 그 후 미국으로 가시는 모든 비용은 제가 댈 겁니다. 돈 아끼신다고 또 저가 항공 타고 고생하면서 가시지 마시고요, 기왕이면 오랜 시간 비행하니 푹 주무시면서 떠나실 수 있도록 일등석으로 편히 가세요.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남은 2억도 즉시 입금될 것이고, 아드님과 잘 상의하신 후에 편안하고 단란한 여생을 보내시면 되시는 거죠.”
“차 교수…, 나는 이해가 잘 안 돼.”
정숙은 목이 메는지 제 앞에 있는 물을 들이켰다. 마셔도 마셔도 목이 깔깔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이렇게나 인간관계를 종잇조각처럼 여기는 인간이었나 혐오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런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어쩌면 미리 차곡차곡 준비해 온 것 같은 해준을 마주하니 다소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이소 씨한테 짐이 돼?”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이소와 해수와 쌓아 왔던 시간은 분명 정숙뿐만 아니라 부녀에게도 대체할 수 없는 끈끈한 애정과 신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둘 다 없는 살림에 제 공간을 반을 떼어 이소네에게 나눠 주고 팔자에도 없는 육아를 함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속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지만 이소를 이용해 출세하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그저 몸이 조금 피곤할 때 늦잠을 자거나 허리가 쑤시다며 일찍 퇴근하는 정도의 태만을 부린 것이 제 죄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소가 의지되어 그런 것이지 하인처럼 부리려던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오해이자 오명이다.
“이렇게 나를 이소 씨 옆에서 치워 버려야 할 정도로 내가 해가 되는 사람이야?”
“여사님은 좋은 분이죠. 이소 씨가 어려울 때 곁에 계셨고 지금도 정말 많이 의지하고 있고,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애틋한 관계를 왜 굳이 찢어 놓으려고 할까, 정숙은 이 정도 돈이라면 그냥 곁에 살면서 오래오래 두고 볼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해준은 내내 정숙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려 주름이 진 손을 훑었다. 잘못해서 내쫓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를.
“동시에 이소 씨가 가장 많이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라서요.”
해준의 말에 정숙은 적잖이 당황했다. 해준은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밤 열두 시, 자정이 넘은 새벽. 이소는 지금쯤 곤히 자고 있겠지. 해준은 이 지루한 설전을 끝내고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 이소가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여사님, 전 윤이소 씨가 저에게 온전히 의지하길 바라요. 책임이라든지 부양이라든지 그딴 건 모두 내려놓고 제 뜰 안에서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본인 앞에 놓인 위기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누군가를 돌볼 여유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서로 궁핍한 상태로 공생할 뿐입니다. 아마 이소 씨는 모르긴 몰라도 수중에 가진 푼돈을 이리저리 굴려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사님의 노후 자금까지 모으고 있겠죠.”
정숙은 무릎 위에 둔 주먹을 꼭 쥐었다. 해준의 말이 제 오래된 양심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길가에 작은 벌레가 엎어져 있어도 다시 뒤집어 주느라 종종 손을 놓치는 그 사람이, 제 곁에 2년이나 있었던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정을 주었을지 눈에 훤히 보여요. 그제도 여사님의 약한 고뿔에 발걸음을 못 떼고 한참을 조리방을 들락거리며 식사를 챙기다 내려갔어요. 아마 언젠가 여사님께서 크게 앓으면 제 잠도 쫓으며 밤새 걱정할 테죠. 밤낮으로 병원을 알아보러 다닐 테고 제가 사람을 붙여 줘도 여사님 곁을 지킬 겁니다.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정숙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마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듯 해준은 저와 이소의 시간을 짚어 내려갔다. 독감에 걸렸던 지난해 정숙의 토사물을 아무렇지 않게 치우고 밤새 온몸을 주무르던 이소의 따뜻한 손을 기억했다.
“이소 씨는 여사님이 자신과의 관계를 이어 가는 대신 아들에게 가는 것을 선택했다 한들 그걸 질책하거나 탓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 많이 축하해 줄 테고 응원해 줄 겁니다. 좋은 일로 떠난다 알고 있으니 이소 씨는 기뻐할 테죠. 그저 여사님은 모두 ‘이소 씨 덕’이라고 말하고, 보란 듯이 잘 사시면 돼요. 그 사람에게 걱정 끼치는 일 없게.”
해준은 정숙에게 미국에 가고 나서도 연락을 차단시킬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자유롭게 편지를 주고받거나 통화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얼굴을 보러 와도 좋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에 간 이후 이소에게는 오로지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는 모습’만 보일 것. 그뿐이었다.
보란 듯이 잘 살 것. 정숙은 해준의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제게 주어진 사명과 같은 행복은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다만 그 대가는 제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큰돈이 되었다. 정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만한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큰절이라도 올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할게.”
“잘 생각하셨어요.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
해준이 눈을 접어 웃었다. 곱게 다듬어진 입매가 화려한 유선을 그렸다. 정숙은 펜을 들어 계약서에 이정숙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눌러썼다.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해준을 올려다보았다. 깊고 검은 눈과 마주쳤을 때 정숙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세상천지 이런 비효율적이고 기묘한 제안은 오로지 이 사내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 * *
“차 교수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과격한 편이네.”
정숙은 한결 편해진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오며 정원의 들꽃을 훑었다. 언제나 느긋하고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던 해준은 제가 이소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예 통째로 치워 버렸다. 좋게 말하면 호탕했고 솔직히 말하면 무례했고 비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가 흔드는 말도 안 되는 미끼를 덥썩 잡은 것은 저였다.
“제가요?”
해준은 정말로 놀란 듯이 반문했다. 정숙은 새삼 당황한 해준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잖아, 엄청 극단적이지. 얼마나 급하면 이렇게 나를 후려 내쫓듯 미국에 보내려고 하겠어. 솔직히 말해서 반협박에 가까웠잖아. 나이 칠십 먹어서 그렇게 면전에다 대고 너는 어떻다, 저떻다 이야기를 하는데 부끄러워서 내 얼굴이 다 달아날 것 같더라고. 제안 자체는 고마웠지만 방법은 과격한 거 맞아. 결국 제 성격대로 속 시원히 내뱉은 정숙은 마침 근처에 서 있던 상근을 발견하곤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상근은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 꾸벅 허리를 숙이곤 내려갔다. 듣는 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해준은 난처한 듯 입술을 매만졌다. 어쩌나……. 불안한 듯 내뱉은 말의 어조는 마치 연극 무대 위 주인공이 승리의 독백을 하듯 여유롭고 나긋나긋했다.
“저 정말 그 사람 마음에 들려고 착하고 얌전하게 구는 건데.”
“…….”
이게 착하고 얌전한 거라고? 정숙이 황당하다는 듯 돌아봤다.
“이소 씨도 제 성정이 못돼 처먹은 거 알아챘을까요? 그럼 곤란하거든요.”
“…허….”
“…근데 알아도 뭐, 우리 이소라면 너그럽게 봐줄거예요. 착하잖아요.”
그때의 해준은 꼭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웃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이소의 곁에 친구로 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숙은 주름진 뺨을 붉힌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언덕을 겅중겅중 뛰어 내려왔다. 돌아가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배는 짧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 * *
잠든 이소를 해수의 곁에 누이고 현관 밖으로 나온 정숙은 해준과 통화를 마친 후 전화를 매만졌다.
‘그래도 다행이야. 오롯이 이소 씨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생겼잖아.’
나조차도 그러지 못했는데.
정숙은 어두운 계단 앞 창문가에 서서 시선을 떨궜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말쑥한 사내의 실루엣이 보인다. 손에는 무얼 또 저렇게 잔뜩 들었담. 정숙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제집 문을 열었다. 집 안 물건들의 절반을 정리했더니 사람 냄새 가득 나던 방 안은 이제 적막이 먼저 맞이하는 일이 많아졌다. 둘이서 함께 어설프게 선반을 달고, 못을 엉망으로 박던 작은 집. 해수가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밤새 뒹굴거리고, 명절날 셋이 모여 고스톱을 치던 즐거웠던 날들. 모두 이소가 만들어 준 고마운 추억이었다.
이어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방울뱀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잘 자, 이소 씨. 좋은 꿈 꾸어. 고마워.”
정숙은 조용히 문고리를 잡아 돌려 모습을 감췄다. 오늘 밤은 길고도 평화롭게 잠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