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16/50)

8

“진심이세요?”

뒤로 살짝 물러난 이소가 자기 쪽으로 살며시 이불을 당겼다. 몇 없는 어릴 때 사진을 한참 보길래 무슨 감상에 젖어 있었나 했더니 별안간 스타킹을 입은 모습에 꽂혔나 보다. 해준은 고개를 기울이며 아이처럼 졸랐다.

“안 돼?”

“다, 당연히 안 되죠,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이소가 질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해준은 부러 고운 입술을 주욱 빼고 시무룩한 척을 했다.

“이소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준댔는데.”

“그거랑은… 다른….”

“나는 해수 장난감도 사 왔는데. 진짜 많이 사 왔는데.”

“그거는, 다른 문제예요…치사하게 해수 장난감으로 그러시면….”

애초에 뭔가를 요구하려고 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떼를 부리듯 부끄러운 짓을 하라 하니 이소는 난처해 미칠 지경이었다.

“입기만 하면 되는데도?”

“교수님…. 그런 취향이에요? 막, 변태같이… 어, 막…그런 거 입고, 야한 거 하는….”

문득 이소는 해준이 얼마 전 주방에서 입으로 해 주었을 때,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 말해준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때 뭐랬지, 분명 평범한 거라고 했었는데, 이 사람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진짜 그런 취향이에요?”

“흠.”

해준이 눈썹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여태 방구석을 함께 굴러다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자신의 남자 애인에게 스타킹을 신어 달라며 조르고 있었다.

“이소 씨가 허락만 해주면 사실 다른 것 해도 상관없는데.”

“뭐, 뭘요? 스타킹 신는 거 말고 또 다른 게 있어요?”

그럼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지. 해준은 아주 잠시 동안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온갖 플레이들을 빠르게 갈무리하고 눈을 접어 웃었다.

“글쎄. 나머진 천천히 생각하고 지금은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먼저 해 주면 안 될까?”

해준이 고개를 기울이며 한 번 더 졸랐다. 입으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면서도 꽃처럼 해사하게 웃는 해준을 보며 이소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러나 곧 정신이 들자 파드득 몸을 떨며 괜히 성을 냈다.

“아, 아니요! 안 할 거예요! 누, 누가 해 준다고 했어요? …기대도 하지 마세요!”

이소가 얼굴을 붉히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소가 집 안 곳곳을 청소하는 동안 해준은 머리를 괴고 모로 드러누운 채 이소가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바삐 쫓았다. 작은 집이었지만 싱크대를 닦고 바닥을 쓸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이소는 참 날랬다. 야무진 손으로 쓰레기 봉투도 묶어 현관 앞에 두고 창문도 꼭꼭 잠그고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에 빨래를 색색별로 분류해 넣었다. 그동안 말 한마디 없이 끈덕지게 따라붙는 해준의 시선에 이소는 뒤통수에 구멍이 날 지경이었다. 치사하다고 해서 제대로 심통이 났나 보다.

‘언제까지 말 한마디 안 하고 쳐다만 보실 거야, 진짜.’

혹시나 정말 화났나 싶어 뒤돌아 일부러 눈을 맞추면 미소만 지은 채 손만 흔들 뿐, 도통 말은 걸지 않는 해준을 보고 이소는 뾰로통해졌다. 스타킹을 입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직후부터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준은 그 종알대던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기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소중한 저녁 시간에 골을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이소는 몇 번 해준을 돌아보며 눈치를 보다가 쓰레기를 버리러 온다고 말하곤 조용히 현관문을 나섰다.

* * *

오밤중에 골목 끝 편의점에서 스타킹을 만지작대며 몇 번이나 카운터를 힐긋거렸다. 다른 사람을 사다 주는 거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제가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쉽게 집을 수가 없었다. 그냥 해준의 호기심을 채워 주는 게 맞을지, 아니면 오늘 저 고집을 꺾고 얌전히 잠을 잘지는 저에게 달려 있었다.

“스타킹 고르시게요?”

하도 스타킹 코너를 들여다보며 우물쭈물대자 알바생이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이 브랜드 팬티스타킹이 잘 안 찢어지고 좋아요. 레이스 무늬도 예쁘게 들어가 있어서 요새 잘 나가거든요. 그거 사다 드리면 센스 있다고 하실 거예요.”

여자친구에게 사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알바생은 웃으며 남은 물품을 정리했다. 이소는 잘 포장된 스타킹을 들고 고민하다가 기왕 온 것 한 번에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색깔별로 샀다. 이 중에 뭐 하나는 해준의 취향에 맞는 게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계산할 때 보니 다른 것들보다 개당 이천원은 더 비쌌다. 상냥한 알바생의 영업에 당해 버렸다.

스타킹 세 개를 검정 비닐봉투에 허겁지겁 집어넣은 후 골목을 걸으며 이게 진짜 맞는 건지 한참을 고민했다. 제가 줄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 해준이 원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 줄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이런 난감한 요구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저번에 조리실에서 바지를 내렸을 때도 집요하게 울리고야 마는 해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왠지 입는 것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했다.

‘그래도 설마, 옆방에 해수랑 사장님 계시는데… 입기만 하면 되겠지.’

어느새 빌라에 불이 켜진 것은 이소의 방뿐이었다. 이소는 스타킹을 담은 비닐봉지를 품에 넣고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올랐다. 문은 제가 다녀온 그대로 열려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늦었네요.”

돌아오니 해준은 불을 은은하게 켜 두고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검은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은 채 서랍에 기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항상 빳빳한 슈트 차림이거나 온몸에 바싹 달라붙는 폴라를 입고 있었던 해준이 자신의 집에서 풀어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소는 묘한 만족감이 어려 수줍게 미소를 띄웠다.

싱크대 위 작은 창으로 옆집을 내다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 이따금씩 번쩍이는 텔레비전 불빛만 새어 나오는 걸로 보아 어느새 해수는 잠들고 정숙만 밀린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아마 곧 잠들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좀 놓였다.

이소는 낡은 세탁기 버튼을 만지작대다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원래는 늦은 시간에 돌리지 않지만, 그냥 혹시라도 정말로 만약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소음이 요란한 세탁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이소는 세탁기에 몸을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품 안에 있는 검은 비닐봉투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냈다. 만약 해준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꿨다면 제 고민은 말끔하게 날아가 버릴 것이고,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눈 꼭 감고 한 번 입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럼 심통 난 것도 좀 풀릴 것이고 다시 잘 지내봐야지 생각하던 찰나였다.

“이소 씨.”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해준이 어깨에 팔을 두른 채 꼭 끌어안았다.

“말도 없이 나만 혼자 두고 어디 갔었어요.”

태도는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평소의 다정한 해준이었다.

“아… 쓰레기도 버리고, 그냥 바람도 좀 쐬고요.”

갑자기 바람을 쐬긴 뭘 쐰다는 건지. 너무 옹졸한 변명에 스스로도 민망해진다.

“그랬구나. 나는 이소 씨가 내가 자꾸 입어달라고 졸라서 화가 나 나간 줄 알았지.”

“아니에요….”

해준이 이소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부비적댔다. 해준의 기민한 후각은 이소의 체취에서 초여름 밤의 풀냄새를 구별했다. 골목을 걸었구나, 정말이네. 스타킹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호기심이었고 윤이소가 펄쩍 뛰며 거절하리라는 것을 알고 놀린 것이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애들 장난. 그러나 윤이소는 그럴 대담함도 없으면서 청소하는 내내 제 눈치를 보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러더니 삼십 분이나 나가서 또 머리를 감싸 쥐고 땅을 파고 돌아왔다. 문을 열었을 때 눈가에 운 흔적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이소가 제 가슴에 닿은 해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죄송해요. 변태라고 쏘아붙여서…. 해수 장난감 감사해요. 진짜로요.”

“뭘요.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건데.”

“그래도요. 맨날 저는 받기만 하잖아요. 주는 건 진짜 별것도 아닌 거 밖에 없구. 너무 해드리는 게 없어서 마음이 좀 그래요….”

“난 이소 씨만 있으면 되니까 괜찮아. 장난친 거예요.”

아, 다행이다.

역시 그냥 장난치신 거였구나.

등 뒤에서 나직하게 속삭이는 밀어에 마음이 놓이고 가슴이 뛰었다. 바보 같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제가 속 좁게 굴어 당황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해준이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딱히 키스를 하라고 고개를 기울인 것은 아니었지만 간지러움에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어깨를 끌어안았던 해준의 손이 어느새 허리춤을 더듬었다.

“이소 씨….”

“아, 근데 교수님…. 저, 저희 집에서는 좀….”

이소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머뭇거렸다. 해준이 묵직한 숨을 내뱉으며 왜, 하고 묻자 이소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집 안을 둘러보았다. 익숙하고 친근한 풍경, 해수가 그린 그림들,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들, 아이를 키우는 집의 살림살이들.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좀 눈을 돌리면 보이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라 묘하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조리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은 제가 먹고 자고 사는 곳이었기에.

“자꾸 해수 물건이 보여서요….”

“응, 일단 알겠어….”

이소의 말에 해준이 흐흥, 코웃음을 쳤다. 해준이 혀를 내어 살살 목덜미를 쪼옵 빨아들이자 흰 살갗에 꽃잎이 내려앉듯 붉은 자국이 번졌다. 이소는 꼭 끌어안긴 채 해준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숨을 삼키고 몸을 떨었다. 평소보다 느리고 여유로운 애무에 순순히 눈을 감았지만 옷깃을 들어 쓰다듬는 손길은 여전히 예상할 수 없었다.

“간지러워요…. 안 한…다구, 그랬잖아요.”

“알겠다고만 했지.”

“씨이….”

귀여워라. 이 어린 것, 어쩜 이렇게 귀엽지. 해준이 다시 이를 세우며 고개를 내렸다.

“끝까진 안 할게요…. 자기 곤란하니까….”

이로 잘근잘근 여린 살을 물며 이동하던 해준이 돌연 고개를 푹 숙여 이소의 쇄골을 깨물었을 때였다.

“아!”

예민한 자극에 놀라 몸이 튀어 오르자 품속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가 힘없이 빠져나갔다. 후두둑 툭, 검은 비닐봉지에서 난잡하게 빠져나온 살구색, 커피색, 검정색 레이스 스타킹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 허리를 더듬던 해준의 손이 우뚝 멎었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제 등 뒤에서 같은 곳으로 시선을 내린 해준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할 말을 찾던 이소가 어렵게 입술을 열었다.

“어… 어, 그러니까, 이거는 그게….”

들어오자마자 내려놓는다는 게 품에 넣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눈을 굴리고 있을 때 별안간 해준의 커다란 손바닥이 이소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마치 그대로 잡고 반으로 접어 버릴 듯한 힘이었다. 아읏…! 가는 허리에 통증이 일었다. 으스러질 듯이 저를 껴안은 해준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얌전한 척은 다 해 놓고.”

해준의 목소리에 흥분이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소 씨 오늘 나한테 해 줄 거 많겠네.”

* * *

제가 생각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냥 욕실에 들어가서 얼른 갈아입은 다음에 다리를 잠시 보여 준 후 ‘됐죠, 이제 끝!’ 하고 그냥 소박한 이벤트 정도로 생각한 게 다였다. 불을 모조리 꺼 어두워진 방 안에서 책상 위 노란 스탠드 등만 어슴푸레하게 켠 채, 해준은 굳이 이소를 아이처럼 뒤에서 끌어안고 발끝부터 허리까지 모조리 제 손으로 갈아입혔다.

해준은 욕실에 들어가서 갈아입겠다고 말한 이소를 끌어안고 직접 바지를 끌어 내렸다. 발목에 걸린 바지가 떨어지기도 전에 해준이 이소의 속옷 밴딩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당황한 이소가 고개를 돌렸다.

“소, 속옷은 왜….”

“벗고 입어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소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무리 바보여도 스타킹 안에 속옷을 입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학교에서 스타킹을 신었을 때도 당연히 속옷 위에 스타킹을 신었다. 이소가 해준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후드티 아래로는 맨 다리였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과 작은 천 쪼가리 하나를 걸친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안 해 주게?”

“스타킹만… ‘신으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응. ‘스타킹만’ 신으라고 했죠.”

아니,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닐 텐데. 해준의 손목을 쥔 이소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해준의 긴 손가락이 이소의 골반을 살살 쓸어내렸다. 살갗을 쓸어내리는 손에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이소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귓가에서 해준의 얕은 웃음이 터졌다.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던 속옷이 무릎을 지나 종아리에서 툭 떨어졌다. 다른 손으로 이소의 허리를 단단히 안고 있었던 해준이 쥐고 있던 살구색 스타킹을 툭 털자 깃털 같은 천이 부드럽게 미끄러져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제가, 제가 할게요.”

“내가 해요. 다리 들어요.”

해준의 등에 기댄 채 다리를 들자 자연스럽게 떨어진 해준의 손이 스타킹을 신기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매끄럽게 감싸며 올라오는 나일론 천이 발목과 종아리를 지나 무릎, 그리고 허벅지에 닿았다. 알바생의 말마따나 퍽 잘 늘어나는 스타킹이 조금의 틈도 없이 몸의 굴곡에 맞게 찹 달라붙었다. 이윽고 얇은 천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샅에 조이듯 닿았을 때 이소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 바싹 힘을 주었다. 잘록한 허리 중간에 톡 떨어진 밴딩이 살에 가 붙는 소리가 찰졌다.

정말로, 맨 샅에 스타킹을 신었다.

“기분이 어때요?”

기분이 어떻냐니. 이상했다. 맞붙은 허벅지가 내 것이 아닌 듯 부드럽게 미끄러졌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무릎이 비벼질 때마다 분명 무언가 입었는데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어 기묘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입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런 것 치고는 세 장이나 사 오셨어요.”

“고, 고르시라고 그런 거죠!”

“아, 내 취향까지 고려해 줄 정도로 여유가 있으셨구나.”

“씨….”

입었으니 이제 보여 주기만 하면 될 텐데 해준은 여전히 뒤에서 저를 끌어안은 채였다. 스타킹만 입은 매끈한 다리 사이로 한기가 드는 듯했다.

“교수님….”

“네에. 이소 씨.”

해준이 기분 좋게 말꼬리를 늘였다. 해준의 손이 후드 안으로 기어 들어와 스타킹에 덮인 이소의 판판한 배를 더듬었다. 원래도 마르고 단단한 허리는 탄력 있는 고무줄로 잡아 주자 계속해서 만지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 이소의 양손이 갈 곳을 잃은 채 손톱을 뜯었다.

“저, 이제 다 보여 드렸으니까… 벗어도 되죠?”

그 물음에 해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돌연 후드 안에서 허리를 더듬던 손이 불쑥 위로 올라왔다.

“아니, 오늘 입은 채로 할 거예요.”

아, 결국 이럴 줄 알았다. 이소는 입술을 깨물고 숨을 집어삼켰다.

“흡……!”

뱀처럼 가슴을 간질이던 손가락이 더듬어 올라와 유두 끝을 매만졌다.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줄 알았던 손가락은 날을 세워 살짝 튀어나온 끝을 툭 더듬고 문질렀다. 등 뒤에서 옭아매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해준이 엄지와 검지를 세워 작은 젖꼭지를 집어 올렸을 때 이소는 너무 놀라 몸을 크게 움츠렸다. 살짝 잡아 문지르고는 다시 부드럽게 굴리며 간질이자 일전에는 몰랐던 생경한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작은 부위를 애무하는데도 가슴 전체가 저릿저릿했다.

“으응, 아…. 아프….”

해준의 손톱이 유두의 갈라진 틈 사이를 후빌 때마다 어깨가 곱았다.

“이소 씨, 여기 만지면 허리 튕기는 거 알아요?”

“으흐…, 모, 몰라요.”

젖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해준은 참 진득하게 문질렀다. 당기기도 하고 짓뭉개기도 하면서 여린 살갗을 꾹꾹 누를 때마다 발목에 힘이 풀리고 허벅지가 절로 모였다. 싫기도 하면서 좋기도 한 익숙한 쾌락이 코 앞이었다. 해준은 손으로는 꾸준히 이소의 가슴을 희롱하면서 하얀 목덜미를 짓씹었다. 오늘따라 단정하게 다듬은 머리카락과 그 아래 대비되는 흰 살갗이 먹음직스러웠다.

“아, 가슴은…. 그만, 정말… 그만….”

단단한 손목에 매달린 이소의 가는 팔이 애처롭게 희롱을 저지하다 미끄러졌다. 허리가 자꾸 뒤로 빠지자 스타킹 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엉덩이가 해준의 샅에 가닿아 비벼졌다. 가슴을 당기면 엉덩이가 뒤로 빠지고, 엉덩이를 당기면 가슴을 내밀게 되어 버리는 채로 이소는 해준의 품 안에서 몇 번이나 몸부림을 쳤다.

사실 해준은 버둥거리는 이소가 퍽 취향이었다. 울면서 소리 지르고 때릴 때마다 더 좋았다. 저를 더 밀어내고 도리질 쳐 줬으면 좋겠다. 순순히 안겨 오는 것도 좋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죽어라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뒤틀면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지배욕이 일었다.

“그만 만져요, 진짜 옆방에…. 소리 들리면, 나 진짜….”

“응, 응. 그러니까 이소 씨가 얌전히 잘 있어야지. 내 자지에 아래 비비지 말고.”

“제…제가 언제 비볐, 흐으…응. 그만 놓으라니까아….”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이소는 참는 게 고역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울먹거렸다. 해준은 이소의 몸을 돌려서 끌어안고 바닥에 천천히 눕혔다. 얼굴을 바라보는 게 부끄러운지 이소는 해준의 어깨에 이마를 맞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하, 이소 씨 이거 너무 자극적이에요.”

“흐으…. 진짜 취향 이상해….”

응응, 나 좀 이상한 거 맞아요. 그래도 이소 씨가 나 해 주고 싶다니까 내가 기꺼이 받는 거잖아요. 그쵸. 해준이 바닥에 드러누운 이소의 팔을 들어 매끈한 겨드랑이에 제 코를 파묻고 길게 핥아올렸다. 간지러우면서도 자극이 강해 이소가 마구 버둥거렸다. 꽤나 거세게 반항하는데도 해준은 썩 기꺼운 눈치였다.

“아, 귀여워. 다음에 할 땐 검정색 입어 줘요. 응?”

해준의 말에 눈을 감고 할딱거리던 이소가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걸 또 해… 달라고요?”

해준이 이소의 뺨에 제 뺨을 비비며 기분 좋은 듯 낮게 웃었다.

“응. 나머지 두 장은 나중에 또 입어 주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냥 막 산 건데….”

횟수와 상관없이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이었는데 해준은 제가 사 온 스타킹 개수만큼 입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나 보다. 이소가 난처한 듯 작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적막이 찾아왔다. 해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소를 내려다보다 곧 상황 파악이 된 듯 느리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아,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이소가 천천히 시선을 맞춰 올렸다. 해준이 눈을 맞춘 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소가 이런 귀여운 이벤트를 세 번이나 해 주는구나… 하고 기대했지.”

이 짓을 또 할 것이라 기대한다니. 지금 입고 있는 상황도 3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은데. 문득 해준이 이소의 손을 끌어다 제 허벅지에 가볍게 얹었다. 언뜻 스쳐도 한 손으로 잡기 힘든 두께의 기둥이 흉흉하게 발기해 있었다. 한 손으로 슬쩍 잡기만 했는데 도리어 제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사실 지금 하고 싶기는 하다. 자꾸만 음험하고 불손한 생각이 든다. 스물일곱이나 먹어서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자신이 해준을 탓할 자격도 없이 쾌락에 무척 약한 편이라는 것이다.

해준이 고개를 기울이며 애교를 부리듯 뺨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곤란한 부탁이었을 텐데, 기꺼이 들어줘서 고마워요.”

나머지는 그냥 버리든지 하자. 그렇게 말한 해준은 곧장 뺨에 입을 맞췄다.

“…….”

이소는 해준의 이 얼굴에 약했다. 언제나 제 앞에서 여유롭고 어른스러웠지만 아주 가끔씩 아이 같은 눈으로 무언가를 조를 때면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중에 그냥 또 해 줄까? 부끄럽긴 했지만 기분도 나쁘지 않았고…. 그러나 이소는 발가락을 맞대고 꾸무럭대다 살갗을 사부작거리며 스치는 촉감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살구색 스타킹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완전히 헐벗은 채 안겨 있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또 하는 건 안 돼. 이소는 입술을 감쳐물며 해준을 바라봤다.

“세 번까진… 못 해 드려요.”

의미가 모호한 이소의 선언에 해준이 눈을 마주쳐 왔다.

“사실 지금도 너무 창피하고… 아래 닿는 느낌도… 이상해요. 차라리 오늘 저거 다 쓰고 앞으로는 다신 안 할 거예요.”

스타킹이 세 개니까 섹스 세 번이면 되지. 이소의 단순한 계산은 이미 끝났다. 해준의 눈에 웃음기가 잔뜩 어렸다. 이 작은 머리통은 가끔씩 자신도 예상할 수 없는 경로로 튄다.

“오늘 저거 다 써도 돼요? 내 마음대로?”

“응.”

귀여워라, 아예 이 짓거리를 때려치운다는 선택지는 만들지도 않았나 보군. 해준은 웃음이 자꾸 새어 나오려는 것은 이를 꽉 다문 채 참았다. 자신에게 얼마나 마음의 빚이 큰 건지, 표정만 보면 곧 전쟁에 나가려는 사람 같다. 평소 같으면 농이었다며 한발 물러서 줘야 하는 타이밍이건만 해준은 오늘따라 눈치 없는 척, 모르는 척 굴었다. 올이 가는 스타킹을 신은 살구색 허벅지를 보고 있으려니 음험한 욕구들이 구렁이마냥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준은 웃는 낯을 하고 제 연인에게 바짝 다가붙었다. 이소는 해준의 팔을 덥석 잡았다.

“…대신 오늘만이에요.”

이소의 확고한 태도에 해준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오늘은 무엇이든 다 해도 되나봐.

“이소 씨 정말 나 좋아하는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준은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펼쳐 놓은 커피색 스타킹을 집어 올렸다. 그리고 제 팔을 끌어 내리는 이소의 손목을 허리 뒤로 끌어와 겹쳐 잡았다.

“…교수님?”

스타킹은 제법 잘 늘어나는 소재인 만큼 단단하게 묶으면 성인 남성도 풀기가 어려웠다. 입으로는 목덜미를 짓씹으며 이소의 가는 손목을 겹친 채 스타킹으로 매듭짓듯 꼼꼼히 묶었다. 그 와중에도 이소가 몇 번이나 이것을 놓으라며 몸을 뒤틀었으나 애초에 해준이 제대로 힘을 쓰면 윤이소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거, 이거 뭐예요? 왜 묶어요, 네?”

“입는 용도로만 쓰는 건 아쉽잖아요.”

“뭐, 뭐가요! 하나도 안 아쉬워요!”

손을 다 묶은 해준이 빙긋 웃으며 떨어져나왔다. 마주한 해준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반은 가슴까지 올라간 후드에 아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스타킹을 신은 채였고 손은 뒤로 묶인 상태로 해준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해준의 손에는 검은색 스타킹이 들려 있었다. 이소가 고개를 내저으며 몇 걸음 되지 않는 벽을 향해 엉덩이를 밀며 뒷걸음질 쳤다. 이 변태 교수가 저걸로 또 무얼 하려고.

“…그건 뭐 하시게요.”

“해수 물건 보여서 신경 쓰인다면서요.”

해준이 스타킹을 양손으로 잡은 채 길게 당기자 유연하게 늘어난 얇은 실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등이 막다른 벽에 다다르자 이소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냥 평소처럼 해도 충분히 좋은데 왜 자꾸 이상하게 몸을 묶고 가리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벌써부터 입꼬리가 처지고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차해준의 성욕을 자극하는 짓인지도 모르고 윤이소는 스타킹을 신은 맨다리를 내놓고 쪼그려 앉아 도리질을 쳤다.

“싫어, 안 해…. 왜 이상한 짓 해요.”

“이상한 짓 아닌데, 이소 씨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하는 거지.”

“그래도…, 저 그냥 눈 감아도 되는데…!”

이소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해준은 벽 앞에 쪼그려 앉은 이소를 가뿐하게 안아 들었다. 팔이 뒤로 묶이자 반항을 해도 큰 힘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이소를 사뿐히 방 한가운데 이불 위로 옮겨 놓은 해준이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눈 가릴게요.”

이소는 고개를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에는 묶는 순간에는 얌전히 있었다. 이소는 최종에는 해준에게 약했다. 유감스럽게도 차해준도 그걸 잘 알았다. 항상 이소의 말을 전적으로 들어주는 해준이었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웬만해서는 져 주지 않았다. 스스로도 못된 버릇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은 스타킹으로 눈을 가린 후 한 걸음 물러난 해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

이거 생각보다 꽤…. 해준은 몸을 일으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이소 씨, 잠시만 여기 있어요.”

“…교수님? 어, 어디 가시게요.”

“풀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요. 너무 힘들면 말해요.”

“왜요? 뭐 하시게요?”

홀로 이불에 덩그러니 앉은 이소가 해준을 불렀다.

해준은 멀찍이 떨어져 그걸 한참 말없이 바라보았다. 일부러 놀리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냥 구경이 좀 하고 싶었다. 아래는 헐벗고 손과 눈이 묶인 채 저를 기다리는 미인이 꽤 볼만해서. 째깍째깍 시계가 돌아가는 동안 이소는 한동안 얌전히 앉아 있었다. 간간이 입술을 물기도 하고 오므린 다리를 비비기도 하면서 금세 해준이 돌아와 안아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손만 닦고 돌아오거나 잠시 옷을 벗고 돌아올 줄 알았던 해준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슬슬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무려 십 분이 흘렀다. 이불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철푸덕 앉은 채 손이 묶이고 눈을 가린 이소가 불안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교수님…. 장난하지 말구요…. 뭐 하시는 중이에요? 저 이거 잘 안 보여요…. 지금 방 안에 있죠?”

얇게 비치는 천 사이로 형체는 뭉뚱그려지게 보였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이 사물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방 안, 아까 자신이 작동시킨 세탁기만 탈탈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집인데도 무서운 이 느낌은 뭔지. 감각이 제멋대로 혼란하게 섞인다. 손이 묶여 움직이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아무렇게나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이소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해준의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다. 이런 장난은 낯설었고 그만두고 싶었다. 평범하게 야한 손장난이나 치고 으레 입을 맞추다 잠드는 밤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제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은 채 자리를 떠나 버릴 줄은 몰랐다.

“저 이거 풀…… 하….”

이소는 입술을 물었다. 해준이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기에 섣불리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묘한 느낌이다.

“교수님, 이거 빨리 풀어 줘요…. 나 이런 장난 진짜 싫어요…. 정숙 사장님 들어오면 어떡해요, 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때문에 문이 덜컹거렸고 훤히 드러내 놓은 아래가 시렸다. 해준이 저를 두고 나가 버린 걸까? 저를 불안하게 할 사람이 아닌데도 때때로 해준의 장난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뒤로 묶인 손목이 저렸다. 어디선가 벌레가 기어 와 제 팔을 타고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긁어내리고 싶은데 긁을 수가 없었다. 이소는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어두운 창고에 갇혀 무력하게 공포에 떨던 어린 저를 보았다. 숨이 가빠 왔다.

“교수…님…. 저 진짜 이런 건 면역 없어요….”

울먹였지만 사위는 여전히 고요했다. 옷깃이 비벼지는 소리도,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이불 위를 스치는 소리도, 헐떡이는 숨소리도 모두 제 것뿐이었다. 현관문을 나가거나 구두를 신는 소리도 들린 적이 없었고 이 방에 해준이 있는 게 분명했는데 어둠과 고요는 이성을 너무 쉽게 무너뜨린다.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그 시선이 해준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둠이라는 괴물이 저를 잡아먹으려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결국 이소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떨었다. 왜 안 오지, 왜 대답 없지. 너무 서러워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불렀다. 교수님, 교수니임…. 저… 아 진짜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지. 입술이 자꾸만 비죽비죽 내려간다.

“교수님……교수, 하……해준, 진짜, ……차해준, 빨리 이리 와아…. 진짜 그만, 장난 이제 그만 쳐….”

윤이소가 단 한 번도 불러 준 적 없었던 제 이름이 주인을 찾아 흩어졌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해준의 이성이 끊어진 것도 동시였다.

* * *

“…윽, 아흣!”

제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갑자기 달려든 해준이 입술을 씹어 먹을듯이 베어 물었다. 뱀처럼 감아 든 혀가 입천장을 긁어 올리고 여유를 잃은 손이 옷을 밀어 올리고 가슴을 더듬는다. 손이 묶인 이소가 너무 큰 자극에 몸을 뒤틀었다. 해준은 이소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려 제 무릎에 앉힌 후 가슴에 허겁지겁 입술을 묻었다. 질척하고 따뜻한 혀가 유두를 빨아올릴 때마다 동시에 배가 당겼다.

“갑… 자기…!”

“아까처럼 이름 불러 봐요.”

판판한 가슴에 살짝 나온 젖꼭지가 붉은색으로 부어오를 때까지 몇 번이나 집요하게 빨고 이로 물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자극에 이소는 다리를 들썩이며 허리를 띄웠고, 다시 내려앉을 때마다 해준과 맞붙은 샅이 보기 좋게 부풀어 올랐다. 불투명한 살구색 천 안에 발기한 성기 끝이 조금씩 젖어 오고 있었다. 소리를 크게 낼 수 없어 고개를 숙인 채 헐떡이며 빌었다.

“…아흑! 그, 그만…!”

“듣기 좋던데, 이소가 이름 불러주니까.”

“흐읏, 응…, 싫… 흐읏!”

“고집은.”

그만하라고 했으면서 윤이소는 몇 번이고 스스로 좆을 비비고 방아를 찧었다. 가슴이 민감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정말 너무 못 견뎌 하면서 울었다. 해준은 다른 쪽 가슴을 베어 물면서 엄지로 진득하게 이미 부어오른 유두를 문질렀다. 제가 묻혀 놓은 질척한 타액이 마치 젖처럼 주륵 흘러내렸다. 해준은 천천히 이소를 이불에 눕혔다. 윤이소가 자꾸 제 샅을 찧어대는 통에 저도 아래가 터질 것 같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해준은 잔뜩 밭은 숨을 내뱉는 이소를 내려다보며 상의를 벗어 던졌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몇 발은 뺄 수 있을 정도로 음탕한 모습이었다. 이미 눈가에 묶인 검은색 스타킹이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이소 씨, 해수 잠들었을까?”

갑자기 들려온 해수의 이름에 이소가 내뱉던 숨을 집어삼켰다. 해준이 엉망으로 벌어진 이소의 다리를 제 쪽으로 잡아당겨 끌어왔다.

“…왜, 왜요…? 무, 문… 두드렸…어요? 저 못 들었는데….”

눈에 띄게 떨리는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재밌다. 재미있으면 안 되는데. 해준은 이소가 잘 웃어서 좋았지만 잠자리에서 잘 울어서 더 좋았다. 내려다보자 스타킹 안에서 팽팽하게 선 성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해 빨갛게 부어 프리컴을 줄줄 흘려댔다. 예쁘게 위로 고정되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좆 모양은 꼭 여자의 민둥민둥한 아래와 비슷하게 보였다.

물어뜯고 싶다. 불현듯 그런 충동이 든다.

“아니. 소리 더 죽이라고.”

그렇게 말한 해준은 촘촘하게 엮인 살구색 나일론으로 팽팽하게 고정된 이소의 성기를 이를 세워 한입에 물었다.

“으, 아읏…! 아… 흡!”

발기가 되었어도 차마 바깥으로 세우지는 못한 채 스타킹 안에서 움찔대는 작은 좆은 입에 물기 편했다. 목구멍을 찌르지도 않았고 촉감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부드럽게 감기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쓸어내리며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쉬, 착하지. 벽이 얇을 텐데, 이런 모습 들키고 싶지 않잖아.”

샅에는 코를 박은 채 부드러운 천이 덮인 볼기를 집요하게 쥔 해준이 뭉개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터럭 하나 없는 매끈한 살갗에서 나는 체향을 듬뿍 마시며 갈급하게 물고 또 핥았다. 윤이소가 자꾸 강아지마냥 낑낑대는 소리를 내며 발부리를 세웠다. 그럴 때마다 제 코와 얼굴을 쿡쿡 찌르는 이소의 사타구니 냄새가 진하게 났다.

해준은 갈증이 났다. 베어 물고, 핥고, 다시 베어 물고 흔들고 이로 긁으며 그 민둥민둥한 좆을 마구 가지고 놀았다. 마치 개가 좋아하는 장난감에 코를 묻고 고갯짓을 하듯, 파고들고 더 얼굴을 문댔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적시고 힘껏 빨았다. 맛있었다. 정말 존나게 맛있었다.

“아, 아으윽, 흐흑…. 하지, 하지 마…. 그거, 하지… 마요…!”

더운 숨이 침으로 젖은 천 위에서 흩어지자 자꾸만 배가 간지러웠다. 허벅지와 무릎이 안쪽으로 조여들고 엉덩이가 저절로 벌벌 떨렸다. 해준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사타구니가 질펀하게 젖었다.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습기가 그 안에 고여 이소의 샅 구석구석만 젖어 갔다. 죽을 것 같았다. 생살에 닿지도 않았는데 정말 개처럼 물어뜯고 빨아대는 해준 때문에 입술이 다 터질 것같이 힘들었다. 머리에 피가 몰려 어지러웠다.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놔, 놔요…. 으흑, 아흣… 이런 거 싫다고, 끅… 그만해, 그만….”

이소가 몸부림을 쳤다. 무엇보다 자꾸 절정에 가지 못하고 끝 지점에서 갈 듯 말 듯 깔딱깔딱 넘어가는 느낌이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후련하게 내보내고 싶었다.

“교, 교수님… 교수…님….”

몇 번이고 해준을 부르고 또 불렀다. 스타킹 안에서 가려진 두 동공이 자꾸 뒤로 넘어갔다. 해준이 혀를 빼어 길게 회음부를 핥아 내자 이소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또 다. 또 내보내기 직전에 멈췄다.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었다. 더한 쾌감이 필요했다. 저를 마구 치받으며 제 몸 내부에서 폭발적으로 터지는 자극이 필요했다. 해준 때문에 저도 변태가 다 됐다. 남자를 밝히고 야해 빠졌다고 놀려도 할 말이 없었다. 이소는 훌쩍이며 제 다리 사이를 향해 얼굴을 들고 애원했다.

“그냥…. 차라리 그냥 빨리 할래요, 네? 이거 말고….”

“이거 말고 어떤 거?”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걸. 부드럽게 타박하는 말투가 원망스럽다. 맨살을 빨고 핥는 펠라티오도 정신이 나갈 듯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건 해준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넣는 것도 할 때마다 무섭고, 무척 아팠지만 다 참을 수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으로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은 약간 벌을 받는 것 같았다.

“저… 저랑, 같이 섹스해요…. 네? 빨리요….”

울먹이며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단어를 내뱉고 나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해준은 웃으며 턱만 살살 간질였다.

“이소 씨. 저번에도 내가 가르쳐 줬잖아.”

“뭘, 뭘요! 아? 아, 그거는! 그건 못해요, 진짜 못해….”

주방에서 몸을 섞었을 때 저를 들어 올린 채 박아대던 해준이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이던 음탕한 밀어들. 그렇게 말하면 멈춰 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말하지 못해서 기절할 때까지 괴롭힘당했다. 이소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해준이 혀를 내어 귓바퀴를 핥았다.

“왜애, 자기야…. 그럼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응? 해 봐. 어렵지 않아.”

해준이 상냥한 목소리로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소는 대답하기 싫은지 힘겹게 어깨를 당겨 뻐끔대며 해준의 입술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해준이 몸을 숙여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갈 곳을 잃었던 혀가 주인을 찾아 허겁지겁 감겼다. 해준은 갈급하게 입술을 찾아 애정을 조르는 이소를 나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소만 몸을 뒤틀며 애원했다. 눈도 보이지 않으니 점점 대담해진다.

“교수님…. 빨리이….”

그러나 해준은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이소는 그 침묵이 무서웠다. 기시감이 드는 상황과 분위기에 직감한다.

“우으….”

그러나 차마 더 말하지 못하겠는지 눈을 가린 이소가 입술을 맞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수줍어하고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제법 사랑을 조르려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해준이 볼을 부볐다. 하나하나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다. 눈을 가린 이소를 더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대로 아무 말도 못 하더라도 풀어 줄 생각이었다. 아마 섹스가 끝나고 나면 엄청나게 두들겨 맞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니까.

눈과 손에 묶인 스타킹을 그대로 풀어 주려 다가갔을 때 이소가 입술을 물고 있던 이를 떨며 아주 작은 소리로, 들릴 듯 말듯 속삭였다.

“박아 주세요….”

“응?”

못 들은 척 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해서 못 들은 거였는데, 이소는 해준이 저를 놀리는 줄 알고 서러워졌는지 입술을 이로 깨문 채 눈에 보일 듯 떨었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배운 대로 음탕한 말을 지껄였다.

“교수…님 걸로 제, 제… 아래가 안 다물…어질 정도로 바… 박아 주세요.”

뒷덜미와 귀가 터질 듯이 새빨갰다. 아, 윤이소는 참. 배우는 게 빠른 학생이야. 해준의 입술이 긴 호선을 그리며 찢어졌다.

* * *

해준의 손이 눈을 가렸던 검정 스타킹을 풀어냈다. 컴컴했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자 이소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서 느슨하게 벗겨지는 천의 감촉이 선득했다. 천천히 눈을 뜨자 짓물러 있었던 눈두덩이가 쓰라렸다. 젖은 속눈썹 사이로 그렇게 기다리던 해준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제 입으로 내뱉었던 말이 얼마나 천박해 보였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이소는 눈 앞의 남자가 제가 요구한 것을 기꺼이 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소야, 많이 울었네.”

해준은 천천히 뺨을 어루만지다가 축축하게 젖은 볼에 입을 맞추었다. 쪽, 쪽, 쪽. 볼과 코를 지나 부어오른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춘 해준은 부드럽게 혀를 집어넣어 입 안을 구석구석 핥았다. 이소 역시 서툴지만 정말 열심히 혀를 빼어 핥았다. 갈증이 난 듯 해준의 혀끝에 고인 타액을 받아먹으며 입술을 빨았다. 신음을 참으며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아랫입술의 얇은 피막이 말라 있었다. 해준은 그것마저도 한 입에 베어물고 몇 번이고 숨을 들이켰다. 윤이소의 입술이 떨어져 나와 제 위장으로 들어갈 것도 아닌데, 꼭 씹어 삼킬 것처럼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이소 씨는 참 재미있어.”

해준은 맞붙은 입술을 살짝 떨어뜨린 채 속삭였다.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이소의 샅을 부드럽게 훑었다. 천천히 이소를 밀어 눕히자 풀썩 하고 마른 몸이 이불에 떨어졌다.

“앞에서는 안 해 준다 못하겠다 해 놓고 꼭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고.”

편의점 알바생이 잘 찢어지지 않는다 자랑했던 브랜드의 스타킹은 해준이 손끝을 세워 가볍게 얽은 후 옆으로 당기자 투두둑 소리와 함께 주욱 끊어졌다. 허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벗겨 주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밀부 주위만이 갈기갈기 찢긴 채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를 압박하고 있었던 천이 사라짐과 동시에 찾아오는 후련함과 수치는 온전히 윤이소 몫이었다.

“하…… 하아…….”

“마음이 약한 건가, 아니면….”

해준이 이소의 다리 하나를 잡은 채 제 어깨에 턱 걸쳤다. 바싹 당겨 앉자 이소의 발등이 해준의 왼쪽 뺨에 맞닿았다. 고개를 틀어 발등을 살짝 물었다 놓자 허공에 뜬 허벅지가 경련하듯 튀었다.

“아, 아으!”

“사실은 이런 거 좋아하는 건가.”

야한 말도 가르쳐 준 것보다 제법 잘하고. 해준이 빨갛게 부어오른 성기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튕기자 내내 참고 있었던 흰 정액이 구멍 끝에 맺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해준이 귀두 끝을 쓸어올릴 때마다 이소의 동그란 어깨가 바싹 움츠러들었다.

“내가 변태가 아니라 이소 씨가 변태인가 봐, 그쵸.”

아니,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이소는 눈을 꼭 감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넌 아니야. 내가 발정 난 개새끼지.”

해준은 의미 없는 농담을 던져 놓고 자조했다. 고개를 내리자 이소의 연한 분홍빛 성기보다 조금 더 진한 색의 음낭은 제법 탐스러운 과실처럼 보인다. 매끈한 복숭아 같달까. 윤이소는 핏줄마저 푸른색이 아니라 새빨간 실타래처럼 붉었다. 해준이 이소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발갛게 달아오른 음낭을 들어 올리자 그 아래 입술색과 꼭 닮은 구멍이 오물오물 움찔댔다.

이소가 발가락을 오므리며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해준이 나른하게 타박했다.

“여기 왜 질질 흐르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해준의 타액과 이소의 쿠퍼액으로 허벅지 사이가 죄 젖자 꼭 구멍에서 물이 터진 것마냥 흥건했다. 이소는 어금니에 힘을 주어 물었다. 저는 해준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스치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달아 있었다. 뒤로 묶인 손으로 이불을 얼마나 세게 쥐어뜯고 있는지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해준은 이소의 허벅지를 끌어안은 채 바싹 당겨 앉았다.

“이소 씨, 잘 다물어야죠. 이게 뭐예요, 벌써 내 좆 먹고 싶어서 벌름대고.”

해준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구멍 주위를 매만지다 스륵 밀려 들어왔다. 입구만 젖어 있었을 뿐 안은 바싹 말라 있었던 구멍은 손가락 두 개가 말려 들어가기가 무섭게 콱 다물렸다.

“으응……!”

끊어 먹을 듯 바싹 문 입구의 압박감은 대단했다. 고작 손가락인데도 넣고 있으면 뼈마디가 저릿저릿했다. 그에 반해 구멍 깊숙한 쪽은 녹진녹진하고 말랑말랑했다. 내벽을 더듬자 깨끗하고 부드러운 표면이 만져졌다. 꾹꾹 누르자 이소가 신음을 억눌렀다.

“아읏…….”

“언제 혼자 풀었어요?”

“아니, 아니에요…! 안 풀었어요… 읏….”

이소가 몸을 뒤틀며 도리질을 쳤다.

“안 풀어놔도 매번 이렇게 말랑말랑하면 곤란한데.”

윤이소는 전반적으로 민감하다. 건드리면 파르르 잎을 움츠리는 미모사처럼 예민한 몸을 가졌으면서 세상 경계심이 없는 태도로 팔랑팔랑 잘도 돌아다닌다. 말 그대로 애를 키우는 미혼부라는 제한된 신분만 아니었으면 개나 소나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애정이 고파 누가 조금만 잘 해 줘도 이렇게 마음을 주었겠지.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니 몸도 쉽게 주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아래를 쑤시는 손이 매서워졌다.

“교, 교수님, 잠, 거기 너무, 앗, 으응…!”

“이러면 아무나 쑤셔 줘도 오물오물 다 받아먹겠어.”

심지어 깊이 넣지도 않았는데 느끼는 지점이 너무 앞쪽이라 자지러진다. 좆이 쥐젖만 한 늙은이가 윤이소를 물었어도 그 새끼 앞에서 이렇게 예쁘게 울었겠지. 이렇게 손가락만 넣어도 온몸을 떨어대니. 찔걱찔걱대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두 개가 사정없이 구멍을 파고들었다. 휘꺽휘꺽 돌아가는 발목과 들썩이는 허리가 울먹이는 신음대신 울었다.

“으흣, 흐윽, 아, 아니에, 아으윽…!”

“그럼, 아니지? 내 것만 넣을 거지?”

“응, 으응…! 네, 네에…!”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조를 수 있을까.

“착하네. 상 줘야겠어.”

해준이 손가락을 깊숙이 넣고 털 듯이 빠르게 흔들며 남은 손으로는 이소의 성기를 잡은 채 끝을 긁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타액에 푹 절은 좆은 별다른 윤활유가 없어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 잠깐…만, 아, 그렇…게… 흐…!”

이소는 발버둥을 쳤다. 다른 사람이 제 것을 잡고 흔드는 일은 처음이었다. 해준의 더운 손이 성기를 잡고 흔들자 걷잡을 수 없이 배 속이 당겨 왔다. 어떻게든 참아 보려 해도 아래를 쑤시며 좆을 잡고 흔드는 과격한 쾌감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교수님, 저, 흡, 가, 갈 것, 아읏…!”

이소가 이불에 얼굴을 마구 비비며 몸을 뒤틀었다. 이윽고 흡 집어삼킨 숨과 함께 우윳빛깔 같은 흰 사정액이 발갛게 익은 성기 끝에서 사방으로 터졌다. 낡은 이불을 지나 바닥에 마구잡이로 체액을 흩뿌린 채 힘없이 옆으로 떨어진 다리가 애처롭다. 해준에게 잡힌 좆이 파들파들 떨리며 정액을 툭툭 뱉었다. 아으, 아 하고 더듬더듬 떨어지는 단어들이 바닥을 굴렀다.

해준은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보며 바지를 내려 허벅지 사이에 걸쳤다. 다 벗을 여유도 없었다. 윤이소가 질질 싸는 사이 저라고 멀쩡할 리 없지 않은가. 축축하게 젖은 체액을 끌어모아 구멍에 펴 바른 후 남은 것들을 제 좆에 치덕치덕 문질렀다. 그래도 모자랐다.

‘조금 빠듯하군.’

해준은 고개를 돌렸다. 낮은 선반에 가지런하게 정리된 로션들이 보였다. 이소의 목덜미와 손등에서 나는 그 향. 해준은 한 손으로 가볍게 펌핑해 손바닥에 가득 로션을 짜 발랐다. 익숙한 냄새에 이소가 고개를 들었다.

“어, 그거는….”

“이소 씨, 이제 이 로션 냄새만 맡아도 나랑 섹스한 생각만 나겠어.”

“네, 네에?”

해준이 그새 구멍 주변과 자신의 좆에 치덕치덕 로션을 펴 발랐다. 미끌미끌한 로션은 질감뿐만 아니라 색깔까지도 꼭 생크림 같아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자극한다. 해준의 귀두가 꽉 다물린 구멍을 깊게 눌렀다. 겁을 먹고 움찔거리는 구멍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으응…….”

우물대며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던 구멍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벌어졌다. 동시에 동공이 풀린 채 떨고 있던 이소의 두 눈이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집어삼킨 숨과 함께 저절로 벌어진 입에서 정제되지 않은 신음이 툭툭 터진다.

“아, 아으…… 아…. 아파……. 아파, 너무 아파….”

“착하지, 힘 풀어요. 로션 때문에 쑥 들어갈 텐데.”

입구에서 한 번 걸리기만 하면 그다음은 쉽게 들어간다. 언제나 그렇듯 좁은 입구의 진입이 어려웠다. 뒤로 묶여 있는 손 때문인지 이소의 몸이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쯧, 해준이 혀를 찼다. 오늘따라 자꾸만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봐주지 않고 퍽, 한 번에 찍어 올리자 이소가 비명을 질렀다.

“아……!”

“쉬이. 소리 죽여요. 일단 한 번 빼고 시작할거니까.”

푹푹 깊이 찍어 치며 몸을 붙이자 못 삼킬 것 같던 구멍이 허겁지겁 입을 열어 굵은 기둥을 잡아먹는다. 커다란 구렁이가 따뜻하고 축축한 진흙 속을 헤집고 들어가듯 가는 몸을 붙잡고 몇 번이나 세게 박아넣었다. 동시에 윤이소의 입에서도 아, 악, 학 비명이 터졌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훨씬 더 빠듯한 고통은 쾌감의 문턱에서 저를 몇 번이고 끌어내렸다 다시 밀어올린다.

“끄, 끄흑…! 흐으……!”

해준이 움직일 때마다 이소의 입술 사이로 제멋대로 타액이 흘러내렸다. 해준의 좆이 비좁은 구멍 안에서 울컥울컥 씨물을 싸질렀다. 아까부터 엎어 놓고 그대로 쑤셔 박고 싶은 것을 참고 풀어 주며 기다리다 결국은 비로소 제 소유의 동굴에 진입하자마자 마음 놓고 주변을 적셨다. 첫 번째 사정이었다.

“하아…….”

해준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토했다. 동시에 이소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제 내부에 들어온 해준의 좆이 정액을 푹푹 토해 내는 느낌이 선연했다.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어도 내장 안에 그득 찬 무언가는 기묘한 감각을 만들어 냈다. 이 몸으로 정액을 받는다고 해서 임신을 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젖은 눈을 하고 고개를 들자 골목길 가로등 불이 드리운 해준의 눈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힘 빼요.”

“처음엔, 부드럽게……해주시는 게, 아니었어…요?”

이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아래를 움찔대자 해준이 맞아, 그랬지. 하고 볼을 부볐다. 안에서 싸지른 정액이 구멍 틈으로 스르륵 밀려나온다. 기분이 이상했다. 해준이 이소의 다리를 제 허벅지 위에 얹고 속삭였다.

“이소 씨, 둘째 갖고 싶지 않아?”

“무슨 이상한 농담을 하시는…, 흐으….”

사정을 했지만 도통 작아지지 않는 해준의 좆이 즈윽 뒤로 빠져나갔다. 동시에 구멍에서 딸려 나온 흰 사정액이 범벅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해준은 이소의 몸을 잡아 돌렸다. 몸에 비해 살집이 많은 엉덩이를 잡고 무릎을 세워 엎어트리자 뒤로 묶인 손목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바닥에 눌려 여기저기 눌린 자국이 벌겠다. 벌벌 떨며 무릎을 세운 이소는 얼른 고개를 부벼 이불을 입에 물었다. 해준은 그 모습을 퍽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아주, 예쁜 짓을 하네요.”

소리를 죽이려 알아서 입을 막을 줄이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이 얇은 벽을 앞에 두고 저를 숨기려 애를 쓴다. 빠져나갔던 기둥이 다시금 쑥 밀고 들어오자 이불 안에서 먹먹하게 비명이 묻혔다.

“으읍!”

“쉿, 정말로 다 들을라.”

퍽, 퍽 치받을 때마다 마른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제법 신음을 잘 참는 것 같으면서도 이따금씩 숨이 모자라면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숨을 삼킨다. 그때를 기다렸다가 찍어 내리면 참지 못하고 터지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흑, 학, 으흑…! 으응…! 흐윽….”

“아, 역시 듣기 좋다…. 이소 목소리 너무 예뻐.”

우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이지 밤새도록 박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가야금 산조보다 듣기 좋고 무엇보다 질리지 않는다. 아, 아, 끊어지는 신음이 좁고 눅눅한 방 안을 왕왕 울렸다. 볼기를 꽉 그러쥐었던 손이 어느새 더듬더듬 내려가 이소의 손목을 잡았다. 하얗게 질린 손이 창백하고 차가웠다. 바닥에 쿵쿵 찧는 머리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우리 이소 머리 아프겠어.”

해준은 양손으로는 능숙하게 이소의 손목에 감긴 스타킹을 풀어냈다. 스르르 떨어지는 팔은 이불에 파묻혔다가 이내 움찔거리며 제 자리를 찾아 기어갔다. 해준은 손목에서 풀어낸 스타킹을 이소의 허리 아래로 집어넣은 후 위로 당겨 올렸다. 축 늘어졌던 몸이 뒤로 끌려와 바싹 위로 들렸다.

“아, 으응…. 으…. 이거는, 이건! 흐아아!”

자유로운 눈과 팔, 푹신한 이불. 이제는 봐줄 것도 없다는 듯이 해준이 이소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허리 아래를 감아올린 스타킹 때문에 이소는 앞으로 도망가지도 못한 채 개처럼 박혔다. 크게 뜨인 눈, 눈물이 범벅이 되어 젖은 뺨을 하고 허우적거렸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구겨진 이불이 다였다.

“흐읏, 흐….! 으응, 아, 아윽! 교, 교수, 니임….!”

“응, 이소 씨.”

이소는 눈을 감은 채 계속 해준을 불렀다.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섹스하면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흐느끼면서 계속 불렀다. 해준은 제멋대로 사장님에서 이소 씨, 자기야, 여보 등 낯간지러운 말을 마구 해댔지만 이소는 저를 부를 때 오로지 교수님이 다였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아까만큼만, 조금만 더 간절하게 불러주면 좋겠다.

해준은 몇 번을 더 치받다가 스타킹을 내던지고 파들거리는 등을 덮치듯 끌어안았다. 제 사타구니에 닿는 이소의 스타킹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직함 말고 이름 불러줘. 아까처럼.”

“으흑, 흐으흑…….”

“그럼 두 번째는 빨리 끝내줄게. 응?”

엎드려 흘레붙은 채 해준의 무게로 쿵쿵 눌러대자 숨이 막혔다. 키와 근육 때문에 못해도 90kg은 넘는 해준이 온몸에 힘을 빼고 찍어 누르면 도망가려야 도망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입에 붙은 호칭을 갑자기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뭉근한 쾌감이 아래를 저릿하게 덮쳤다.

“차…. 해…, 흑….”

“잘 안 들려.”

해준은 기회를 준다고 해 놓고 제대로 말도 못 하게 계속 아래를 찧어댔다. 말이 나오다가 끊겨도 무효였고 발음이 뭉개져도 무효였다. 끝이 휘어진 귀두가 특정 지점을 쿡쿡 찌를 때마다 저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에 머리를 흔들었다.

“해, 해주…… 교, 교수님, 거기는, 아흐윽…! 거기 누르지, 마세요!”

“교수님 말고.”

다정하게 속삭인 해준이 어느새 바짝 선 이소의 성기를 쓸어올리며 허리 짓을 이었다. 구멍을 빠르게 쑤시며 예쁜 좆을 잡아 흔들자 이소가 자지러지듯 몸을 떨었다. 고개를 뒤로 넘긴 채 엉엉 우는 얼굴이 예뻤다. 끅, 끅 끊어지는 신음 안에서 ‘ㅎ’과 ‘ㅐ’ 발음만 몇 번 더 맴돌다 떨어졌다.

“흐윽……!”

결국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한 이소는 해준의 손에 먼저 사정해버렸다. 한결 묽어진 정액은 이제 더는 나올 것도 없어 보였다. 축 늘어진 몸을 한 이소의 눈이 깜빡깜빡 감겼다. 그러나 해준이 좆은 아직 이소의 안에 있었다.

“이소야, 자?”

그 말에 흠칫 놀란 이소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해준은 쩍 달라붙는 내벽을 한 번 깊게 휘저은 후 시계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리시키면 안 되는데 자꾸만 갈증이 난다. 품 안에 어린 것이 힘에 부쳐 파드득대는 게 느껴지면서도 여린 목덜미만 보면 또 깨물고 괴롭히고 싶다. 한 번만. 정말 한 번만 더.

해준은 한참 찧던 성기를 쭉 빼냈다. 파들거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진 이소가 밭은 숨을 쉬었다. 해준이 옆에 놓아둔 보리차를 꺼내어 이소에게 한 잔 따라 주었다.

“이소, 물 마시자.”

“으흐…. 무울….”

“응. 더 마셔. 목이 다 쉬었어.”

“…그만 마실래요.”

“한 잔만 더.”

물을 다 마시고 기진맥진해진 이소가 다시 이불로 꼬물꼬물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어느새 다가온 해준이 땀에 푹 전 몸을 뒤집은 후 이소의 다리를 제 앞으로 당겨 안았다. 이소가 당황해 손을 뻗었다.

“교, 교수님. 뭐 하세요.”

“자기야. 한 번만 더 하자.”

무어라 저지할 새도 없었다.

“아읏!”

얼굴을 마주하고 끌어안은 채 다시 꾸욱 밀어 넣자 하얀 이가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눈동자가 넘어가는 것도 보였다. 그런 원초적인 모습마저도 귀엽고 예뻐 보이는 걸 보니 중증이었다.

“아……흐, 흐윽…. 으아, 싫어…. 저 못해요…. 오늘 진짜 힘들…, 어요.”

해준은 파들파들 떠는 이소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소 씨, 한 번만 더.”

“으, 으응, 교, 교수니임…! 아윽…! 더 들어오지, 마아…!”

이소가 손톱을 세워 해준의 손등을 긁어내렸다. 이미 한참을 쑤셨던 구멍은 부드럽게 풀어져 들락거리기에 수월했다. 이소는 두 번이 넘게 갔을지 몰라도 해준은 아직 한참 체력이 남았다. 해준은 이소의 허리를 움켜잡고 빠르게 쳐올렸다. 좆이 구멍을 파고들때마다 맞닿은 샅에서 찌걱찌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 아으…흐읍! 아! 흐윽!”

“이소야, 진짜 너 닮은 애라도 만들까.”

해준의 좆이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이소의 마른 배에 불룩불룩 미묘한 윤곽이 솟았다 꺼졌다. 먹인 것은 물밖에 없는데 배가 부른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윤이소가 배가 부른 모습은 어떨까. 허리에 손을 올리고 뒤뚱거리며 제 정원을 돌아다니다 손짓하면 와서 육전을 받아먹거나, 흔들그네에 몸을 누이고 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아래가 몹시 당겼다.

“흐, 으윽! 저, 저는 임신 못, 해…, 요!”

“글쎄, 이리 박아대면, 할 수도, 있지.”

해준은 이소가 작은 아이를 안은 채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쩐지 행복할 것도 같은데.

돌연 제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것을 깨달은 이소가 눈을 크게 뜨고 해준을 올려다봤다.

“교, 교수님.”

해준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더 깊고 뭉근하게 파고드는 기둥은 미묘하게 더 굵어진 느낌이었다. 조금의 틈도 없이 아귀를 꼭 맞춘 채 저를 내려다보던 해준이 허리를 뒤로 물렸다. 날 안 보고 있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 기다리세요…!”

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해준의 손목을 잡았지만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과격하게 치받는 힘에 몸 전체가 붕 떴다 풀썩 떨어졌다. 순식간에 숨통이 턱 죄었다.

“하악……!”

몸을 찢어발길 기세로 들이받는 해준 때문에 이소는 허우적거리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저절로 벌어진 턱 사이로 침이 줄줄 샜다. 말도 안 되는 쾌감에 뇌가 절여지고 있었다. 거대한 해머가 고깃덩이를 푹푹 찍어 박듯이 장을 다 뭉개는 듯한 묵직한 타격감이 몇 번이고 계속됐다. 억, 윽, 헉 겨우 떨어진 숨을 집어먹으며 참고 또 참았다. 어서 해준이 사정해 주기를 바랐지만 수십 번을 기다려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흐윽……. 흑, 흐윽, 으, 으읍…!”

생리적인 눈물이 줄줄 샜다. 온몸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다 체액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눈치 없이 제 좆이 또 고개를 들었다. 괴롭다. 너무 좋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짐승처럼 나를 잃어버린 채 교성을 지르고 싶진 않았다. 그만하고 싶었다. 적당히, 제발 적당히.

“교수…. 아니, 해준 씨, 차해준! 그만…. 그, 윽, 그만해…!”

코앞에서 이름을 부르는데도 들리지 않는 듯 저를 무시한 채 박아대는 무식하게 큰 몸뚱어리가 미웠다. 그만해, 그만하라구…! 이름 불렀잖아…! 스타킹도 신어 줬잖아…! 계속 따지고 싶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아 애처롭게 빌고 또 빌었다.

“……!”

불현듯 해준이 이소의 배를 꾹 누르며 같은 곳을 집요하게 짓눌렀다. 사정할 때와 미묘하게 다른 저릿한 쾌감이 기어 올라왔다. 나 방금 갔는데, 막 사정했는데. 이건 다르다. 매우 익숙하며 빈번했고,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물을 마시는 게 아니었어. 이소는 허리를 세워 해준의 두꺼운 팔뚝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교, 교수님.”

“왜.”

“나, 나아, 화장실… 화장실 가야 돼요.”

바짝 일어나 앉은 덕에 해준의 휘어진 좆이 제 배를 푹푹 쑤셨다. 이소가 해준의 가슴을 마구 밀어냈다.

“나, 화장실…! 잠깐, 흑, 으읏, 하지 마요, 잠깐만…. 멈추라고요…!”

“여기서 싸요.”

해준이 낮게 뇌까리며 계속 퍽퍽 박아댔다. 이소의 팔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배출욕이 코앞까지 차오르자 덜걱 팔꿈치가 뒤로 빠지며 엉덩이가 조여 왔다. 참아야 돼, 이건 진짜 참아야 돼. 머리끝까지 피가 몰렸다. 어쩐지 미간이 아파 왔다.

“제발요, 진짜 쌀 것 같아요, 저,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 보내… 주세요, 교수님, 제발….”

“너 싸는 거 봐야겠어.”

“이, 이 미친 새…!”

노골적인 그 말에 이소가 욕을 하려다 다시 몸부림을 쳤다. 신음을 참으니 목소리 대신 눈물이 터졌다. 마구 몸을 비틀며 바닥을 벅벅 긁었다.

“놔, 놔아……! 놔줘, 그만해, 싫……!”

참으려고 했는데, 정말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빠르게 치받아 올라오는 쾌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침과 눈물로 온 얼굴이 젖고 종아리가 팽팽하게 당겨 왔다.

“아……!”

이윽고 거대한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쾌감이 온몸을 덮쳤다.

탈탈탈탈.

탈탈탈탈.

탈탈탈탈.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오래된 세탁기가 탈수에 진입했는지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온다. 혀가 굳은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젖었던 시야는 하얗게 점멸했다. 먹먹한 이명 이후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제 허리 아래에서 줄줄 쏟아지는 물소리와 해준의 만족에 찬 나른한 음성이었다.

“우리 이소…. 너무너무 잘했어.”

변태… 새끼…. 눈이 감기기 전 코에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는 더 기억이 나지 않았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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