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50)

3

한참을 진이 빠지게 울었나 보다. 해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코를 훌쩍거리던 이소가 고개를 들었다. 제 머리 바로 위에 해준의 얼굴이 보였다. 이소는 해준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숨을 쉬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퍽 다정했다. 누워 있었다면 아마 이대로 잠들 수도 있을 것같이 편안했다.

가빴던 호흡이 점차 진정되고 숨을 고르게 내쉴 수 있을 때 즈음 해준은 품에 이소를 안고 천천히 흔들었다. 꼭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를 달래는 엄마마냥 리듬을 타며 움직였다. 그게 퍽 우스워 이소는 품 안에서 쿡쿡 웃었다. 이소의 웃음소리를 들은 해준 역시 잘게 몸을 떨며 큭큭댔다. 알고 있었다. 친구 사이에 하는 스킨십치고는 매우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딸 해수를 제외하고 누군가를 안아 본 일이, 안겨 본 일이 전무했다. 사람의 품이라는 것은 이렇게 따뜻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소는 모르는 척, 눈치 없는 척 그렇게 안겨 있었다. 사람이 고팠다.

“아빠, 뭐해?”

“헉!”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이소가 얼른 몸을 떨어뜨렸다. 언제 내려와 있었는지 해수가 당근을 우물거리며 계단 옆에 서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불판을 가지러 내려오기로 해 놓고 해준을 보자마자 정신없이 엉겨들었다. 눈물은 마른 지 오래라 티는 나지 않았지만 안겨 있는 꼴을 들킨 것이 무안해서 이소는 괜히 코를 훔쳤다.

해준이 차분히 코트 깃을 여미며 이소의 어깨를 잡고 자연스럽게 제 등 뒤로 보냈다. 이소를 제 등 뒤에 두고 몸을 돌린 해준이 해수에게 다정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이소는 해수가 볼까 봐 해준의 등 뒤에서 얼굴을 문지르며 눈물을 닦았다.

“안녕, 해수. 아저씨 기억나?”

“네. 아빠 친구요.”

“응. 오늘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해수는 뭐 좋아하니?”

“저희 옥상에서 고기 먹기로 했어요. 삼겹살에 쌈 싸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의 물꼬를 튼 해준이 해수에게 말을 거는 동안 이소는 다시 열쇠를 주워다 가게 문을 열었다. 해준이 가게로 들어서려는 이소를 돌아봤다.

“고기?”

아, 말을 안 했다. 이소는 식사 약속만 잡아놓고 메뉴 선정을 멋대로 한 것에 대해 눈치를 살폈다.

“아, 그게…. 오늘 주문도 덕분에 잘 끝냈고…. 뭐라도 해 드리고 싶어서 삼겹살을 좀 샀는데, 죄송해요. 제가 너무 멋대로 골랐죠.”

“아니에요. 저 삼겹살 좋아해요. 준비하셨을 줄 몰라서 그런 거예요.”

해준이 웃으며 양손을 펴고 흔들었다. 피아니스트처럼 긴 손가락이 꼭 이소의 얼굴만 했다. 이소가 또 넋을 놓고 쳐다보자 해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제 손과 이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해준의 표정을 보고 정신이 든 이소는 귀를 붉히며 다시 불판을 찾아 주방 안으로 얼른 들어가 버렸다. 조금 전 해준의 품에 안겨 있어서 그런 건지 자꾸만 해준의 얼굴과 손짓 하나하나에 얼빠지게 반응하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주방 찬장에서 불판을 꺼내어 내려오는데 해준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그럼 다른 사람 보낼게요. 응, 잘 좀 부탁해요.”

이소가 불판을 든 채 해준을 올려다보았다. 해준이 전화를 끊고 곤란한 듯 웃었다.

“그게, 음. 사실 식당을 예약해 뒀었는데.”

“아!”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히 밥을 먹자고 해서 집에서 먹자는 줄 알고 준비한 것이었는데 해준이 식당을 예약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제멋대로 들떠 있었던 것 같아 이소는 난처하게 눈을 굴렸다.

“괜찮아요. 큰 문제 아니에요.”

“그래도… 그쪽도 준비 다 하셨을 텐데.”

“다른 사람이 가서 먹기로 했어요. 걱정 말아요.”

해준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이소에게서 불판을 받아 들었다. 기름때가 군데군데 묻어 있어 지저분한지라 제가 들고 올라가려 했는데 해준이 덥석 집어 들자 괜히 무안했다. 이거 원래 이렇게 더럽지 않은데, 하며 변명하자 해준이 기름때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며 웃고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이소는 해수의 손을 잡고 함께 올라갔다. 제집인데도 해준이 앞장서자 꼭 낯선 집에 초대받는 묘한 기분이었다.

* * *

“아이고, 진짜 훤칠하네. 천장에 머리 닿겠다.”

정숙이 해준을 보자마자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주택보다 천장이 두 뼘은 낮은 낡은 빌라인지라, 과장을 조금 보태 해준이 발꿈치를 들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도 같았다. 이소가 가게로 내려간 사이에 준비를 얼추 다 해 놓았는지 깨끗하게 씻은 쌈 채소와 굴을 섞은 김치, 직접 만든 쌈장과 파채, 푹 익은 고추장아찌와 산처럼 쌓인 달걀 프라이가 정갈하게 올라와 있었다. 가스레인지에 올라온 찜기에는 해수가 좋아하는 만두가 폭폭 익어 가고 있었다. 정숙이 된장 뚝배기에 넣을 두부와 양파를 썰며 넉살 좋게 웃었다.

“이소 씨가 친구를 데려온 건 또 처음 보네. 반가워요. 우린 저번에 한 번 봤죠?”

“네. 저번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차해준이라고 합니다.”

“얼굴만큼 이름도 멋있네. 옷은 저기에 벗어 두면 되고, 삼겹살 좋아해요? 수육 할까 하다가 간만에 위에 기름칠할까 하고 그냥 불판에 구우려고 하는데, 괜찮아?”

“네. 좋아합니다. 주세요, 제가 구울게요.”

해준은 마치 몇 번이나 정숙을 본 것처럼 곰살맞게 굴며 고기와 집게를 받아 들었다. 이소는 밥상을 옥상 한가운데 있는 평상으로 옮기며 익숙하지 않은 그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작 한 사람이 더 들어온 것뿐인데 집 안이 꽉 찬 느낌이었다. 티브이에서 종종 보던 명절 분위기도 났다.

해수는 정숙에게 수저 세트를 받아 들고 밥상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았고 그 사이로 소매를 걷어 올린 해준이 능숙하게 고기를 불판 위에 얹어 굽기 시작했다.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밥을 퍼담아 쟁반에 옮겨 담으면서도 눈길은 계속 해준에게 머물렀다. 어색해하고 서투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꽤나 신중한 표정으로 삼겹살을 굽는 모습은 꼭 중요한 실험을 앞둔 발명가 같아 보였다. 피식하고 코웃음을 치자 웃음소리를 들은 해준이 이소에게 손짓했다.

“사장님, 잠깐만요.”

해준의 부름에 밥그릇을 쟁반에 얼른 올리곤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해준은 낡은 슬리퍼에 흰 양말을 신은 이소의 작은 발에 잠시 시선을 두다 고개를 들었다. 해준은 파릇한 상추 위에 노릇하게 구운 고기와 쌈장을 얹어 큼지막한 손으로 소담하게 쌈을 쌌다.

“아.”

“내려놓고 제가 먹을게요.”

“안 돼요. 원래 이런 건 남이 싸 주는 게 맛있는 거예요. 빨리 아.”

이소는 머뭇대다 작게 입을 벌렸다. 입가의 찢어진 상처 때문에 크게 벌리는 게 어려워 눈썹을 찡그리며 해준이 준 쌈을 받아 먹었다. 이소가 오물거리는 입을 한참 보던 해준이 ‘맛있어요?’ 하고 묻자 이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이라 그런지 기름이 배어 나오는 게 고소하고 감칠맛이 났다. 아주 바삭하지도 그렇다고 딱딱하지도 않게 굽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는지 해준이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씰룩댔다.

“앉아 봐요. 또 싸 줄게.”

“괜찮아요. 제가 먹을 수 있어요.”

정숙도 곧 올 테고 옆에 해수도 앉아서 달걀 프라이를 집어먹고 있었다. 또 받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간지럽게 말하는 해준에 괜스레 눈치가 보여 주위를 둘러보다 얼른 젓가락을 들었다. 깻잎 위에 삼겹살을 세 점과 밥 한 술을 올려 쌈장과 마늘을 넣고 파채까지 야무지게 올려 둘둘 말았다.

해준은 이소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이 주먹만큼 크게 싼 고기쌈을 들고 입에 욱여넣자 입술이 또 따끔했다. 욕심이 과했다. 볼이 터지도록 입에 넣고 우물대고 있자 해준이 참지 못하고 아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쌈 때문에 차마 웃는 해준에게 무어라 대꾸도 못하고 이소는 꾹꾹 씹어 가며 물을 들이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맛은 꽤 좋았다.

“사장님, 욕심이 많네. 입은 작으면서 그렇게 많이 넣으면 어떡해요.”

“아니에요. 다 삼켰어요.”

“안 되겠다, 요령이 없잖아. 내가 다시 싸 줄게요.”

해준은 상추를 집으려다 멈칫하곤 깻잎으로 손을 옮겼다. 커다란 고기 한 점에 밥 한 술, 마늘에 파채 조금, 쌈장까지 적당한 양을 맞춰 예쁜 모양으로 접어 올렸다. 이소가 싼 것은 꼭 봉지를 구긴 모양이었는데 해준이 싼 쌈은 꼭 명절에 빚어낸 송편 모양처럼 정갈했다.

“차 교수는 참 쌈도 잘 싸네. 옛날에 어른들 말씀에 쌈이랑 만두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 가진단 말이 있어요.”

정숙이 볼을 우물거리며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정말요? 저 그럼 예쁜 딸 생기겠네요. 그쵸, 사장님.”

“예? 예에….”

이소는 정숙의 말에 대꾸하는 것인데도 정작 눈은 저를 바라보며 말하는 해준이 퍽 이상했다. 해준은 은근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이소의 입술 근처로 쌈을 가져다주었다.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자 부드러운 손가락이 이소의 입 안으로 들어와 혀 위에 쌈을 살짝 눌러 놓고 빠져나갔다. 손가락 끝이 살짝 혀에 닿았던 것도 같았는데 더럽지도 않은지 해준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고기를 구웠다. 해준의 옆에 얌전히 앉아 고기를 받아먹고 있으니 손도 편하고 여유도 있었다. 저번에 학교에서 초밥을 먹일 때도 그렇고 해준은 먹는 데 있어서 순서와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아저씨는 왜 우리 아빠 밥 먹여 줘요?”

그 말에 이소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물을 들이켰다. 어느새 프라이를 다 먹어 치운 해수가 큰 눈을 깜빡이며 이소와 해준을 번갈아 보았다. 사실 이소가 생각하기에도 썩 멀쩡한 그림은 아니었다. 다 큰 남자가 제 아빠의 입에 고기쌈을 먹여 주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유를 물어볼 만했다. 그나마 그 질문을 한 게 정숙이 아닌 게 어디인가 싶었다.

“친구잖아.”

“어른이잖아요.”

“너희 아빠 여기 아프잖니.”

해준이 긴 손가락을 들어 이소의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해준은 끊임없는 해수의 질문에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간결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어른이어도 다친 친구에게 밥을 먹여 주는 것쯤은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듯 조곤조곤 설명을 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해준이 해수를 너무 냉한 눈으로 내려다보길래 언짢아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찌개를 다 끓인 정숙이 만두와 뚝배기를 들고 합석하기 시작하면서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포근한 봄바람이 옥상 위로 살랑였다. 정숙은 얼마 만에 마음 편히 쉬어 보는 휴일이냐며 냉장고 깊숙이 밀어 두었던 소주와 맥주를 꺼내 들었다. 해수에게는 캐릭터 음료를 주고 어른 셋은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술기운이 살살 오른 정숙이 해준을 처음 보았을 때 감상을 시작으로 자식 자랑과 혼자가 된 사연을 풀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하소연을 하며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해준은 간간이 그 이야기에 맞장구도 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정숙의 흥을 돋웠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작은 깻잎쌈을 싸서 이소의 입에 넣어 주며 표정을 살폈다.

정숙과 해수가 보는 자리여서 이소는 계속 손사래를 치며 해준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해준은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소의 입에 쌈을 넣기 바빴다. 정숙은 해준과 이소가 실랑이를 벌이며 제 말을 계속 끊어 내자 ‘그냥 받아먹어, 좀!’ 하며 도리어 해준을 부추겼다. 정숙까지 술에 취해 대거리를 하자 이소는 하는 수 없이 해준이 주는 쌈을 얌전히 받아먹었다.

이소가 얌전히 고기를 받아먹기 시작하자 정숙은 살아온 이야기를 자세히도 읊조렸다. 푸념을 들어 주는 해준의 태도가 퍽 정성스러워 이소는 술을 홀짝이면서 연신 감탄했다. 어쩜 저리 성격이 좋을까. 지겨울 만도 한데. 열등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여유로움에 이소는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그러나 정숙이 같은 이야기를 서너 번 반복할 때 즈음 해준은 이소에게 눈을 돌렸다. 휴, 하고 과장되게 한숨을 쉬는 모습에 이소는 눈을 깜빡이다 긴장을 풀고 웃었다. 어느덧 시간이 9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장님, 제가 여기 치울게요. 이제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니야! 우리 차 교수 한 잔만 더 받아 봐!”

이소가 정숙의 손에서 소주잔을 건네받았다. 정숙은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하고 들어가겠다며 맥주캔을 땄다. 정숙 혼자 마신 소주만 2병, 맥주는 2캔이 넘었다. 도대체 얼마나 기분이 좋은 건지, 이소는 지금까지 정숙과 지내면서 정숙이 이렇게까지 많이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주량은 나이 든 정숙이 젊은 남자인 이소보다 훨씬 세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해준은 정숙의 손에서 맥주캔을 부드럽게 빼앗았다.

“여사님, 일찍 주무셔야지 우리 내일 또 나들이도 가지요.”

“아, 그렇지. 우리 차 교수랑 같이 또, 여행 가야지. 아까 뭐랬지. 꽃구경. 꽃구경 가야지.”

“네네, 벚꽃 구경이요.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드시고 들어가셔서 푹 주무세요. 여긴 저희가 치울게요.”

아까 얼렁뚱땅 나온 이야기였는데 그 말을 믿었는지 정숙은 꽃구경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던 해수도 눈이 가물가물한 게 꼭 감기기 직전이었다. 이소는 해수를 들쳐 안았다.

“해수야, 치카 하고 자자. 아빠 여기 치우고 들어가야 하는데 방에서 먼저 자고 있어.”

“싫어…. 지금 같이 자면 안 돼?”

“아저씨 배웅도 해야 하고… 먹은 것도 치워야지. 그러면 해수 재워 놓고 치울까?”

“아니야, 가지 마. 그냥 내 옆에서 자. 무섭단 말이야.”

해수는 저를 혼자 방에 두고 이소가 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소가 곤란한 듯 머뭇대자 어느새 성큼 다가온 정숙이 해수의 등을 두드렸다.

“아가, 할미랑 자자. 아빠 오랜만에 친구랑 이야기하게. 오늘 할미랑 얌전히 자면 내일 너 좋아하는 뽑기 하러 가자. 자기 전에 텔레비전도 보자.”

“진짜? 보다 자도 돼?”

“오야. 할미 기분이다. 다 쏜다!”

“쏘는 게 뭐야? 총?”

“뽑기 많이 하게 해 준다는 뜻이지. 팡야 팡야!”

“어휴, 그게 뭐야. 아빠, 나 먼저 잘게. 아침에 만나.”

정숙이 손가락 두 개를 펴고 해수에게 쏘는 시늉을 하자 해수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해, 정말. 말은 그래 놓고 해수는 정숙의 손을 잡고 꽤나 의젓하게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소는 얼떨결에 해수를 맡아 준 정숙에게 손을 흔들고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정숙이 있어서 여러모로 감사한 일이었다. 옛날에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의 손을 빌렸다는데 그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아이가 훌쩍 자라서이기도 했지만 성인 몇 사람만 신경 써 주어도 훨씬 품이 덜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해준은 어느새 자잘한 쓰레기를 정리해 두곤 평상에 앉은 채 이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진혁과도 이렇게 마주 앉아 술을 마신 기억이 몇 없어 누군가와 단둘이 되자 어색함이 밀려왔다. 이소가 목을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와 평상 끝에 걸터앉았다. 잠깐 자리를 떴다 돌아왔을 뿐인데 누룻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 많이 드셨어요?”

“네. 잘 먹었어요.”

“죄송해요. 교수님이 손님인데 제가 너무 받아먹기만 하고…. 이건 제가 치울게요. 좀 쉬세요.”

“아니에요. 저도 즐거웠는데요. 여사님 이야기도 재미있고, 해수도 귀엽고. 사장님도 예쁘게 잘 먹고.”

‘예쁘게.’라고 말하면서 해준은 퍽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소는 입술을 몇 번 늘였다 줄이면서 머쓱하게 웃었다. 술은 더 마셔야 하나, 정숙이 워낙 많이 마셔 티가 안 나 그렇지 해준도 대작하며 꽤나 많이 마셨다. 그러나 정작 맥주만 조금 비운 이소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뿐 해준은 멀쩡해 보였다.

“술 잘하시나 봐요.”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장님은 원래 술 잘 못 해요?”

“뭐, 항상 비슷해요. 해수 어릴 땐 취하면 안 되니까 안 마셨고…. 요새는 그래도 정숙 사장님 계시니까 종종 기분 좋으면 두세 캔…. 근데 원래 잘 안 받는 것 같긴 해요.”

이소는 눈썹을 긁적이며 맥주캔 남은 것을 찾아 흔들었다. 아까 마시다 만 맥주캔이 찰랑찰랑 소리를 내자 반가운 마음에 입술을 갖다 댔다. 김이 빠져 있었지만 그냥 기분을 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둘만 남은 평상에는 적당히 습한 밤공기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함께였다. 정숙의 말마따나 얼마만에 만끽하는 여유인지 모를 일이었다. 미지근해진 맥주와 드문드문 보이는 도시의 야경에 긴장이 풀렸다. 해준과 둘만 남으니 뒤늦게 알딸딸하게 술이 올랐다. 팔을 뒤로 기댄 채 남은 맥주를 홀짝이는 이소를 해준은 느릿한 시선으로 훑었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볼만큼이나 빨갛게 달아오른 입술, 하얀 목선 뒤로 가지런히 난 머리카락, 헐렁한 티셔츠 소매 사이로 말끔하게 빠진 팔뚝과 동그랗게 자리한 분홍 팔꿈치가 참 귀여웠다. 봄바람을 맞아 살랑살랑 흔들리는 앞머리가 속눈썹을 간질일 때마다 이소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 제 품에 안겨 서글프게 울었던 남자는 짧은 순간 다 잊은 것처럼 배시시 웃기도 하고 얌전하게 밥을 받아 먹기도 하면서 퍽 순종적으로 굴었다. 지금까지 하는 양을 보면 꼭 저와 같은 성향 같은데 어쩐 일로 저렇게 다 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딸에게 꽤나 큰 애정을 쏟고 있는 것도 같았다. 여러모로 이소는 해준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사람이었다.

“사장님.”

“네에.”

이소는 꽤 기분이 좋은 듯 말꼬리를 늘였다.

“이제 기분은 괜찮아요? 입술이랑 볼은 아프진 않고요?”

“으응. 지금은 괜찮아요. 조금 따끔거리긴 하는데 자고 일어나면 딱지 질 것 같아요.”

이소는 어깨를 움츠리고 푸흐, 웃었다. 해준의 긴 손가락 끝이 제 손 끝에 닿았지만 이소는 모른 척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술기운을 빌려 나온 작은 용기는 고작 닿은 손끝을 떼지 않는 것에 그쳤다. 사람의 체온은 신기하다. 저를 차갑게 식게도 만들고 펄펄 끓어오르게도 만든다. 철물점 주인이 멱살을 잡았을 때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는데 해준의 손끝이 닿을 때는 닿은 부위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렸다. 작게 맞닿은 부분을 통해 주책맞게 뛰는 제 심장 소리가 전해질 것 같았다.

“잠시만요.”

돌연 해준의 손이 이소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이소는 움찔 놀라 눈을 깜빡이다 이내 발그스름한 볼을 하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해준이 멈칫하고 이소의 얼굴을 바라보다 쓰게 웃었다. 빨갛게 부은 볼과 입술, 그 옆에 붙은 작은 밴드가 곧 떨어질 모양인지 너덜너덜했다. 해준은 밴드 끝을 잡고 몇 번이나 다시 붙여 주려고 했다. 이소는 제 입술 옆 밴드를 매만지는 해준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또 나왔다, 집중한 얼굴. 이소가 피식 웃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픽픽 웃어대는 이소를 내려다보던 해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자꾸 웃어요.”

“제가 언제요.”

이소가 눈을 끔벅거리자 해준이 검지로 이소의 콧잔등을 툭툭 치며 웃었다.

“밴드만 떼 주려고 하는 건데 자꾸 그런 얼굴로 쳐다보면 어떡해. 사람 마음 간질거리게.”

툭툭. 그 두드림 한 번에 이소의 마음이 몹시 간질거리며 벅차올랐다. 마치 오랫동안 꺼져있던 스위치가 작동한 것처럼 사고회로가 뒤죽박죽이 된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넘실넘실 날아들어 제 코를 간질였다. 친구 사이인데, 똑같은 남자인데. 동경인지 연정인지 모를 순박한 순정이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에게 예쁨 받고 싶다. 그런 생각이 불쑥 솟자 이소 자신도 모르게 툭 말이 튀어 나간다.

“교수님.”

“네.”

이소는 얼굴을 붉히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모르겠다. 이 사람 앞에서는 자꾸만 어리광을 부리고만 싶어지는 걸 어쩌나. 찢어진 입가가 따끔거렸다.

“저…. 아까처럼 안아 주실 수 있어요?”

삼월의 봄밤, 충동적인 고백. 찰나의 침묵 뒤, 해준은 천천히 다가와 곁에 앉았다. 이제 안아 주려나 기대하고 올려다보자 해준은 불쑥 몸을 숙여 이소의 오금과 허리에 손을 넣고 아이를 안 듯 훅 들어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방금까지 평상에 앉아 있던 몸이 불과 잠깐 사이에 해준의 다리 위에 안긴 꼴이 되자 이소는 당황해 술기운이 다 달아났다.

“아니, 이거는…! 이렇게까지는…!”

“밤새 안아 줄 수도 있어요.”

해준을 밀어내려던 손이 우뚝 멈췄다. 곧 해준의 커다란 손바닥이 천천히 이소의 뒷머리를 감싸 제 어깨에 살짝 기대어 내려놓았다.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 근처에 해준의 입술이 가까이 있었다.

“이제 다들 자러 갔으니까, 안심해요.”

다정하게 등을 다독이는 손, 포근한 품에 몸을 맡기고 이소는 문득 생각했다. 하루의 끝이 오늘만 같으면, 몇 번이고 더 맞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썩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고. 상냥한 위로에 이소는 그렇게 해준의 품에 고된 몸을 기댔다. 천천히 팔을 들어 허리를 꼭 끌어 안자 해준이 옅게 웃는 소리가 났다. 따뜻했다. 정말로 밤새 안고 있고 싶을 정도였다.

* * *

어스름한 달밤, 해준은 잠든 이소 곁에 앉아 둥근 이마를 연신 쓰다듬었다. 안고 싶다더니 정말 말 그대로 포옹만 하곤 새근새근 잠이 들어 버린 남자를 보며 처음 만났을 때의 밤을 되새겼다.

‘이런 식이라면 정말 어디 가서 큰일 한번 치르겠는걸.’

30분 전, 해준은 평상 위 제 품에서 잠이 든 이소를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저번에 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방이 참 작았다. 살림살이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집기와 낡은 가구 가전들, 해준의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한 벽지와 누렇게 때가 낀 타일, 녹이 슬어 버린 세면대까지 거지 소굴이 따로 없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나 있나 의문스러웠다.

천장은 말 그대로 제가 팔만 들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았고 덮고 자는 이불이라고 있는 것들은 모두 숨이 죽은 지 오래였다. 그나마 세탁은 꼼꼼히 하는 편인지 큼큼한 곰팡이 냄새 대신 은은한 세제 냄새가 났다. 솜이 다 빠진 얕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잠이 든 남자는 정말이지 경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게 저에게만 그런 것이라면 기꺼운 일이겠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구는데 아이가 없었을 갓 스물 적에는 얼마나 더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벽에 걸린 액자에는 이소와 해수, 둘의 사진뿐이었다. 어린 딸이 그린 그림을 테이프로 붙여 벽과 냉장고, 서랍장 곳곳에 전시했다. 흰 종이에 단정하게 써 내려간 글씨에는 하루 스케줄이 빼곡하게 메모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의 그림에도 액자 어느 곳에도 엄마의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오롯한 둘만의 기록이었다.

‘혼자 키운 지 오래됐나 보군.’

고롱고롱 잠든 모습은 해수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일곱 살 같은데 능숙하게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 부정할 수 없이 아이 아빠다웠다.

해준은 가만히 이소의 자는 모습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취한 사람을 건드리는 짓은 웬만해서는 하지 않지만 자꾸만 미간을 찡그리고 신음하며 뒤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명치께가 울렁거렸다. 우는 얼굴이 안쓰러워 달래 주고 싶다가도 도리어 코를 찡그리고 울컥하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교수님은 진짜 친절하시네요.’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수줍게 웃는 얼굴에 마음이 동하면서도 동시에 제 앞에서 도리질을 치며 떠는 모습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이런 얼굴과 한 팔에 감기는 가냘픈 몸을 하고 누군가의 위에서 허리 짓을 해 기어코 아이를 배게 만들었을 상상을 하면 편하던 속이 뒤틀렸다. 해준은 살다 살다 애 아빠를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코웃음을 쳤다.

“사장님은 참, 사람을 힘들게 하네.”

이불에 코를 묻은 채 색색 잠이 든 이소의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으며 해준은 읊조렸다.

고작해야 열 번이나 봤을까. 해준은 이 선이 고운 남자의 버릇들을 하나씩 마음에 담았다. 이소는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아 항상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삼키곤 했다. 그러나 천성이 과묵한 편은 아닌지 해준을 올려다보는 커다란 눈에는 묻고 싶어 하는 것들, 하고 싶어 하는 말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질문을 던지면 고분고분 대답했고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듯 또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해준을 올려다보았다. 저에게 바락바락 화를 내던 모습을 보면 딱히 순둥이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해준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 꼭 손길이 고픈 작은 들개 같았다.

“기를까.”

해준의 손가락이 이소의 이마를 타고 내려와 콧잔등을 두드렸다. 피부가 깨끗하기도 하지. 코 한 번 골지 않고 곱게도 잠들었다. 세필 붓으로 콕 찍은 듯 얕게 패인 인중을 지나 붉은 입술을 두드리자 살그마이 열리며 더운 숨을 뱉었다. 차가운 피부에 비해 입술의 온기가 홧홧했다.

“말까.”

한 줌도 되지 않는 작은 턱을 얕게 쥐곤 목덜미를 간질이자 새끼 개가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해준의 손에 얼굴을 부볐다. 다른 손을 들어 귀를 매만지자 기분이 좋은 듯 입매가 슬며시 올라갔다.

“사람 놀라게 해 놓고 웃기는.”

얼마나 좋은 꿈을 꾸길래 그러실까. 이런 낡은 집에 살면서, 쥐어 터진 얼굴을 하고 와선, 그렇게 눈가가 짓무르게 펑펑 울어 놓고선… 꿈을 꿀 때는 뭐가 그리 좋아서 헤실헤실 웃는 걸까. 해준은 이소의 동그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말해 줄 때까지 보채지 않고 기다리기로 해 놓고 사실은 점점 조급해지고 있었다.

해준은 이소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하얗고 작은 이소의 손에 제 손가락을 하나하나 얽었다.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이소는 제법 억센 힘으로 해준의 손을 끌어당겼다. 심지어는 행여 놓칠세라 다른 손을 꼬물꼬물 끌어다 해준의 손목까지 움켜잡았다. 잠이 깼나 싶어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호흡은 규칙적이었다. 음험한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렇게 떨며 파고들면 금세 마음이 약해졌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가.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안고만 있으라고?”

당신이 그러면 나쁜 나는 자꾸 더한 게 하고 싶어진단 말이에요. 해준은 나지막이 속삭이곤 모로 누워 이소를 끌어안았다. 기다렸다는 듯 더 깊게 안겨 오는 품에 해준은 동그랗고 작은 어깨에 코를 들이박고 양껏 숨을 들이켰다.

“으응….”

쇄골을 덮고 있는 여린 살갗에서 은은한 분내가 났다. 해준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시선만 들어올려 서랍장 위 몇 없는 가지런한 화장품들을 훑어보았다. 꽃 모양의 펌프가 달린 아이용 로션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아이 로션 냄새였군. 해준은 제 성향 때문에 평생 이런 향을 가까이서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이와 여자는 제 인생에 끼어들 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제 눈 앞에 있는 흰 목덜미에서 나는 향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해준은 별안간 배 속이 빠듯이 당겨 오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정말 씹어 먹고 싶게 만드네.’

한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한참 입술을 달싹대다 일을 치겠다 싶어 이소를 놓고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둘러맨 깍지 낀 손이 제 허리를 바짝 끌어안는다. 웅얼웅얼대며 무어라 말하는 것이 제법 분명한 발음이어서 이번엔 진짜 깬 건가, 하고 고개를 내렸지만 여전히 잠이 든 상태였다.

“한 번만 더 붙잡으면 진짜 내 집으로 잡아갈 거예요.”

볼을 쿡 찔렀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역시 잠꼬대였나, 힘이 좀 빠진 것 같아 팔을 풀어내려고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이소는 별안간 울음에 푹 잠긴 목소리로 미련을 뱉었다.

“가지 마요….”

아까까지는 잘도 웃더니만 어느새 나쁜 꿈으로 바뀌었는지 눈썹과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곤 해준의 옷깃을 꼭 쥐었다.

“가지 마…. 나 안아 줘요….”

해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다가 다시 누워 이소의 머리를 끌어안고 팔베개를 했다. 이소는 금세 코를 훌쩍거리며 얼른 해준의 가슴에 코를 묻었다.

술만 마시면 잠들어 버리기 일쑤에 기억도 못 하고 옆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집에 보내 주지도 않는다. 얌전한 얼굴을 하곤 주사가 영 형편없었다. 허리께까지 내려간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려 주곤 해준은 퍽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누웠다. 손이 많이 가는지라 섣불리 기르면 품이 많이 들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이 가는 건 왜인지. 정말로 무서운 꿈을 꾸는지 이소는 간헐적으로 히끅거리며 아이처럼 흐느꼈다. 해준의 눈썹이 저절로 내려갔다.

“이런, 꿈에서도 안아 줘야겠는데. 어디로 가면 되지? 응? 누가 울려, 울지 마. 뚝, 착하지.”

풍성한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손으로 훔쳐 주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달랬다. 해준은 그렇게 긴 밤을 홀로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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