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Prologue (1/19)

Prologue

이틀째 뇌우雷雨로 하늘이 시커멨다.

벼락을 동반한 비는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를 식혀주다 다행히 아침 무렵 슬그머니 멈췄다. 밤이 된 지금, 먹구름은 아직 잔뜩 끼어 있었지만 벼락이 도시 전체에 사이키델릭 조명을 뿌려대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이건 뭐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신경원은 구시렁거리며 택시에서 내렸다. 일주일 내내 사건 하나 터지지 않고 조용했던데다가 주말인 오늘 하루 종일 하늘에서 먹구름이 가시지 않는 것을 보며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일이 터졌다. 그것도 공사 양면에서 더블로.

“다 좋은데 왜 때리느냔 말이야. 손도 더럽게 맵네.”

그는 발갛게 부어오른 뺨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한창 데이트를 하는 중에 급히 가야 한다고 하니 한 달하고 3주를 사귄 여자가 냅다 뺨을 날리며 그를 차버렸다.

호출 때문에 데이트 도중에 버리고 간 게 3번이나 되니 차인 것 자체는 그럴 만하다 싶었고 같은 경우를 몇 번 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별로 억울하지 않다. 하지만 정중하게 말했는데도 얻어맞았다는 게 좀 억울하다. 그러나 억울함을 곱씹으며 우울해할 시간도 없다는 게 더 억울했다. 타고 온 택시가 부웅~ 소리를 내며 떠나기 무섭게 그 자리에 시커멓고 커다란 차가 멈추어 섰기 때문이다. 

어째 감상에 잠기는 것도 사치인 모양이라며 신경원은 검은 차에 탑승했다. 예상했던 그대로,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차에 오르자마자 보조 요원이 이어피스와 성대 마이크를 신경원에게 내밀었다. 차는 곧장 출발했고 신경원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이어피스를 꼈다. 전원을 넣자마자 급박한 현장의 상황이 고스란히 귀에 틀어박혔다. 

“치프는?”

“이스트 빌리지에 큰 사건이 발생하여 대부분의 유닛과 함께 출동한 상태입니다.”

“역시―.”

평일에 아무 일도 없으면 꼭 이렇게 주말에 몰아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터지곤 하는데 이번 주말도 예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이쪽에 배정된 인원은 몇 명입니까?”

“우리 지부에서는 에이전트 신을 포함해 다섯입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타 지부 에이전트 한 명이 긴급 호출에 응해 이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누구누구?”

보조 요원은 익히 아는 동료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신경원의 파트너 이름도 있었다. 신경원은 베스트를 입고 보호 장비를 착용하며 물었다.

“현재 현장은 누가 담당하고 있죠? 로컬 경찰?”

“아닙니다. 긴급 출동한 FBI가 현장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쯧―. 책임자 이름은요?”

“오웬 그레이스입니다.”

못 듣던 이름이었다. ‘인사이동 시즌이었던가?’라고 중얼거리는데 흔들리던 차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서둘러 차량에서 내린 신경원의 눈에 도로에 검게 남겨진 스키드 마크가 여러 개 보였다. 어지간히도 상황이 급박한 모양이었다. 그는 통신기를 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들리나? 현장 지휘와 선봉은 내가 맡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오! 퍼스트! 역시 이쪽에 있었군!』

『환영이야.』

『맥스와 대니얼이 알파 팀. 존과….』

『뉴저지 지부의 알레한드로 로드리게스입니다. 준비 마쳤습니다.』

이어피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신경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몇 년차죠, 에이전트 로드리게스?』

『곧 3년차가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과 로드리게스가 베타 팀. 나와 마틴이 델타다. 마틴은 즉시 포인트 2로 이동 바란다.』

『30초만 주십시오.』

신경원은 모니터에 떠오른 주변 지도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알파 팀과 베타 팀의 투입 위치를 지정해 알려주고는 통신 채널을 바꿨다. 그는 현장 지휘관에게 그들의 도착을 알리고 지휘권을 이양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현장 지휘관은 불만 어린 목소리긴 했으나 신경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신경원은 두부 전체를 가리는 특수 마스크를 쓰고 헬멧을 썼다. 투명한 실드를 내리는 것으로 준비를 마친 그는 마지막으로 무기를 점검했다. 

귓가가 간질간질했다. 전파와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두 개의 소리가 서로 겹쳐 귓바퀴를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약 15분 전 현장에 투입된 FBI의 SWAT 팀이 ‘목표물’을 제압하며 발생하는 소리였다.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는지 총기 소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사이사이 섞여 있는 끔찍한 단말마는 듣는 이의 고막과 심장을 가차 없이 긁어댄다. 

기괴한 소음들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들만을 골라 듣고 상황을 체크하던 신경원의 시야에 장비를 갖춘 파트너 마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마틴에게 손짓을 해 가까이 오게 한 뒤 SWAT 팀에 발포 중지 명령을 내리고 동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현 시각 00:42. 정확하게 47초 후, 작전을 개시한다.』 

『준비 완료.』

『대기 중입니다.』

알파와 베타 팀의 보고가 이어피스를 울렸다.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귓가를 꾹꾹 눌렀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흠뻑 솟은 땀 때문에 이어피스가 찌걱찌걱하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단말마를 잠시 지워주었다. 

신경원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카운트다운을 했다. 

『3. 2. 1. GO―!』

복창은 없었으나 알파와 베타 팀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망설임 없이 현장으로 뛰어들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 모두 비번 상태에서 긴급 호출에 응한 상태고 베타 팀에 배정한 에이전트 하나는 타 지역 소속인데다가 브리핑을 받느라 몸을 풀 시간도 제대로 할애받지 못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실수 없이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들은 베테랑이니까.

눈앞에 1진으로 투입된 FBI SWAT 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지정된 포인트에 멈추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SWAT 팀은 신경원이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잠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완의 은빛 독수리 패치를 보더니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신경원은 SWAT 팀이 구축한 최종 방어 라인을 넘어갔다. 그의 오른손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글록이, 왼손에는 무광 처리된 30cm 단검이 들려 있었다. 

몸을 낮추며 차량 통제가 된 길을 조심스럽게 통과하는 그의 발밑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신경원을 바라보던 SAWT 팀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의 시야에 그들의 눈빛이 보일 리는 없었다. 

길 하나를 건너자 처참한 현장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열이 넘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SWAT 팀이 출동한 결과다. 

『마틴, 왼쪽.』

『Roger.』

파트너를 옆 골목으로 보낸 그는 재빨리 위태위태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사람들을 살폈다. 슬쩍 본 거지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최소 다섯은 ‘일반인’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쯧―.

입에서 저도 모르게 소리가 흘러나왔다. 

신경원은 황급히 길을 건너 조심스럽게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의 사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괴하게 꺾여 있었고 제일 앞에 있었던 탓인지 상체 전반이 벌집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도 희미하게나마 ‘숨’과 비슷한 것을 내쉬며 신경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가슴에 신경원은 망설임 없이 왼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내리찍었다. 순간 키아아아아―!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장 뒤편에서 철컥거리며 소총을 조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원은 글록을 들고 있던 손을 재빨리 들어 올려 발포를 막고는 왼손을 비틀었다. 기괴하게 꺾여 있던 여성의 사지가 발버둥을 쳤다. 그는 그녀의 가슴에 내리 찍었던 단검을 뽑았다가 다시 한 번 내리찍었다. 이번엔 목이었다. 

목을 찔리자 그녀, 목표물의 요동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비명이 튀어나오던 입에서 일반적인 피보다 훨씬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가슴과 방금 찌른 목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목표물 1. B3로 확정. 사살 완료.』

무감각한 목소리로 기록용의 보고를 마친 신경원은 목표물의 목에 찔러 넣었던 단검을 비틀어 뽑았다. 그러고는 바로 옆,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쓰러진 젊은 남자의 상체를 택티컬 부츠를 신은 발로 뒤집고는 방금 했던 행동을 되풀이했다. 그사이 10시 방향과 3시 방향에서 진입한 동료들이 보고를 해왔다. 

『목표물 2. B3로 확정. 사살 완료.』

『목표물 3. B3로 확정. 사살 완료.』

동료들이 먼저 보고된 번호를 따라 카운트를 더해갔다. 그들이 투입된 지 5분. 확인을 마친 목표물은 열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목표물 12. B3로 확정. 확인 사살 완료. 포인트 3. 최종 확인 완료. 포인트 2로 이동하겠습니다.』

신경원은 베타 팀 리더의 보고를 받으며 포인트 2에 위치한 여섯 번째 사체를 확인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빼도 박도 못하는 부수적 피해자로 구분지었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출동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구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이었다는 건 안다. 무엇보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 막 변이가 시작된 ‘괴물’과 평범한 ‘일반인’을 구분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안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경원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짧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곤 글록을 들고 있던 손을 뻗어 손등으로 피해자의 눈을 감겼다. 그때였다.

『퍼스트! 뒤!』

긴박한 목소리가 이어피스를 울리는 순간, 신경원은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며 단검을 든 팔을 휘둘렀다. 

파앗―!

나무토막 같은 물체가 허공으로 날아가며 시커먼 액체를 뿌렸다. 투두둑, 검은 액체가 헬멧의 실드 위로 떨어졌지만 닦아낼 여유는 없다. 곧장 쇄도해오는 ‘괴물’의 공격을 온 힘을 다해 막은 그는 바닥을 구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을 맞은 목표물이 크게 벌린 입을 더욱더 크게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두꺼운 천과 헬멧으로 감싸인 신경원의 귀에 괴물의 괴성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버리겠어―!”

신경원은 채찍처럼 그를 향해 뻗어오는 괴물의 또 다른 팔을 몸을 돌려 피하며 단검을 쥔 손에 꾹―힘을 주었다. 원심력을 받은 단검의 날이 옷자락과 함께 목표물의 살과 근육, 그리고 관절을 가르고 지나갔다. 

바닥에 착지한 신경원은 흩뿌려지는 검은 피를 맞으며 그대로 다리를 박찼다. 글록을 쥔 손을 왼손의 단검 손잡이 뒤에 대고, 화살처럼 목표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육탄공격을 받은 목표물이 뒤로 넘어갔다. 단검이 뼈를 부수며 목표물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뼈가 바스러지는 선뜩한 느낌이 그대로 손에 전해졌다. 

『나이스! 퍼스트!』

동료의 목소리와 함께 뒤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SWAT 팀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삐익 하고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신경원은 무심한 눈빛으로 손목을 비틀었다. 목표물의 가슴이 벌어지며 상처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단검이 박혀든 곳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목표물 14. B3로 확정. 확인 사살 완료. 포인트 1. 최종 확인 완료. 포인트 2로 이동하겠습니다.』

『목표물 15. B3로 확정. 확인 사살 완료.』

바로 곁에서 지원을 하러 왔다 신경원에게 위험을 알려준 동료가 남은 사체를 확인하고 보고했다. 같은 팀에 속해 있던 다른 동료는 또 다른 ‘부수적 피해자’의 사망을 확인하고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가톨릭 신자라는 티를 팍팍 내는 걸 보니 분명 맥스일 것이다.

신경원은 제가 온몸으로 내리누르고 있던 괴물을 확인했다. 가슴이 1인치 정도 움푹 가라앉아 있었다. 연기는 계속 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단검을 뽑았다. 

『목표물 16. B2로 확정. 확인 사살 완료.』

『나머지는 일반인이야, 퍼스트.』

『알았어. 마틴. 그쪽은?』

『퍼스…트…… 저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목소리가 좀 떨리고 있다. 신경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최근 들어 마틴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신경에 거슬렸다. 

『알파 리더. 포인트 2 최종 확인 부탁해.』

『OK.』

신경원은 글록의 안전장치를 다시 풀고 옆 골목으로 향했다. 

그의 파트너는 기관에 들어온 지 이제 5개월 차의 신참이었다. 경찰 특공대 출신에 나름 엘리트였고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 다만, 마음이 좀 여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스트레스에 약하다고 해야 할지 적응에 여러모로 애를 먹고 있었다. 

『마틴?』

골목은 어두웠다. 쓰러져 있는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신경원은 주위를 경계하며 몇 발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둡긴 해도 아예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태는 아닌지라 마틴이 벽에 기댄 채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뭔가 확실히 좀 이상했다. 마틴의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틴. 괜찮아?”

신경원은 통신을 끄곤 파트너에게 다가가 한쪽 다리를 굽히며 헬멧의 실드를 올렸다. 

“다친 곳은 없는 거지?”

마틴은 헬멧을 벗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마스크도 이마까지 올리고 있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게 확연히 보였다. 그는 이를 닥닥 부딪치며 떨고 있었다. 

“퍼, 퍼스트. 저….”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마주 잡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가슴에 여러 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진 시체 하나가 보였다. 여자였다. 

“두, 두 손이 피에… 젖어 있었어요.”

“…….”

“갑자기 툭 튀어… 나왔…….”

여자는 마틴의 말대로 두 손이 피에 젖어 있었다. 두 손뿐 아니라 얼굴에도 핏방울이 튀어 있었고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었다. 신경원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가 목덜미에 손을 대보았다.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총상을 입은 그녀의 가슴은 꺼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였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신경원은 마음속으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잠시 후 그는 부들부들 떠는 마틴의 마스크를 다시 씌우곤 처리팀을 불렀다. 그리고 마틴을 일으켜 세웠다. 

“퍼스트… 어, 어떻게 하죠?”

“일단 복귀해.”

그는 나뒹굴고 있는 헬멧을 마틴에게 안겨주고 등을 밀었다. 발을 떼지 못하기에 다른 동료를 불러 마틴을 맡기고는 처리팀이 오길 기다렸다. 노란 FBI 마크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처리팀은 비교적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처리팀이 작업을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육탄 공격을 하는 바람에 지끈거리는 어깨를 툭툭 치며 SWAT 팀이 구축하고 있는 저지선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SWAT 팀은 신경원을 발견하자 작게 환호성을 울렸다. 그의 활약에 감탄했는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신경원이 가까이 다가가니 일제히 어깨를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한발씩 뒤로 물러섰다. 피를 뒤집어쓴 그의 입성이 다소 끔찍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그런데 HRT(FBI HRT: Hostage Rescue Team. FBI 인질 구조팀)가 왜 무기를 저거밖에 안 가지고 있어?’라는 의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윽,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대답해줄 의무도 없고 의무가 있다 해도 안 했을 것이다. 만사가 귀찮다.

조금 걷다보니 노란색의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넘어가는 것도 귀찮아 들고 있던 단검으로 가운데를 툭 자르고 그냥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멀리 서 있던 로컬 경찰이 눈살을 찌푸리며 달려오다가 피칠갑을 한 그를 보고는 그만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신경원은 경악 어린 표정을 한 경찰의 앞을 유유히 지나 대기하고 있던 처리팀 차량에 시커먼 피가 뚝뚝 흐르는 헬멧을 쓴 채로 탑승했다. 5분 후, 그는 트렁크 팬츠만을 입은 상태로 터덜터덜 차에서 내렸다. 맨발에 속옷만 입은 채로 대로변에 섰지만 익숙한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어이, 퍼스트.”

동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머리 위로 옷가지가 떨어졌다. 그들은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신경원처럼 ‘괴물’의 피를 뒤집어쓰진 않았던 모양이다. 

“매~액스.”

“왜~에. 친절하게 옷 배달도 해줬는데, 뭐가 문제?”

“던지지 말라고 했잖아.”

성질을 내는 신경원에게 맥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런, 또 못 잤어? 하지만 졸린다고 짜증 낼 때가 아니야. FBI 쪽 현장 지휘관이 얼굴 좀 보재.”

“씨발―.”

“귀여운 얼굴로 욕하지 마. 진짜 안 어울리니까. 졸리고 피곤한 건 알지만 어쩌겠어. 우리 중 시니어는 너뿐인데.”

“…….”

맥스의 말에 동료들이 일제히 어깨를 떨며 웃어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특별히’ 진급을 시켜준다고 할 때 거절할 것을 그랬다며 신경원은 지친 팔다리에 옷을 꿰어 입었다.

“다들 다친 데 없지?”

“없어.”

“마틴은?”

“일단 차에 먼저 태웠어.”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괜찮아질 거다.”

신경원은 글쎄―라고 중얼거리며 신발을 신었다. 옷을 입고 나니 팔다리가 더욱더 무겁게 느껴졌다. 몸 전체가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나 솜이 된 기분이다. 

피곤하고 졸리고, 덥다. 아직 여름 초입인데 머리에서 열이 날 지경이다. 게다가 이틀 내내 비가 내린 탓인지 습도가 높았다. 공기를 마시는 게 아니라 물컹한 젤리를 씹어 억지로 삼키는 것 같았다. 

“신분증 안 가져왔어.”

“안 가져오긴 뭘. 거짓말을 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해.”

맥스가 다시 휙 하고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던졌다. 이번에도 그것은 신경원의 머리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번개처럼 목표물의 공격을 막아내던 사람 같지 않았다.

“던지지 말라고 했잖아. 아파.”

맥스는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신경원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맞고 바닥에 떨어진 낡은 가죽 지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줍긴 주워야 하는데… 허리 굽히기가 참~ 귀찮고 싫다. 

거의 1분여를 그러고 있으니 보다 못한 다른 동료가 바닥에서 지갑을 주워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자. 내가 같이 가줄게. 빨리 끝내야 빨리 쉬러 가잖아. 그치?”

키는 비슷하지만 덩치가 1.5배쯤 큰 동료는 신경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툭툭 힘을 내라는 듯 두들겼다. 그리곤 억지로 등을 밀어 FBI 현장 지휘관이 있는 장소로 데려갔다. 

“시니어 스페셜 에이전트 오웬 그레이스입니다. 스페셜 에이전트 신.”

검은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FBI 에이전트가 인사를 건네오며 손을 내밀었다. 신경원은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신에게 내밀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등을 밀어 데려왔던 동료가 멋쩍은 표정을 하며 일단 오웬 그레이스의 손을 마주 잡고 대충 흔들었다. 그리곤 신경원의 손에서 신분증을 빼앗아 펼쳐 보였다. 

“이쪽이 우리 지휘관 퍼스트―아니지, 시니어 스페셜 에이전트, 신입니다. 저는 스페셜 에이전트 존 브라이튼입니다.”

오웬 그레이스는 그, 신이라는 에이전트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미소를 유지하고 있지만 꽤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금 한 말이 사실이냐는 눈빛으로 존 브라이튼과 신경원의 얼굴, 그리고 신경원의 신분증을 번갈아 보았다. 

짧은 침묵이 세 사람 사이를 스윽, 스치고 지나갔다. 그 사이 오웬 그레이스는 ‘동양인’ 에이전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동양인들은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편이거나 좀처럼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동료는 아니지만 사무실의 데스크 요원들 중 동양인이 몇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둘 정도는 나이를 알고 있었고 그들 전부 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상대가 평범한 FBI 에이전트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 ‘특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저런 얼굴에 시니어라니 좀 너무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오웬 그레이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흠흠.”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든,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게다가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는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과 협조를 받아야 할 일, 그리고 그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주욱, 거의 숨도 안 쉬고 주욱―늘어놓았다. 신경원은 그것을 다 듣고 나서야 느릿하게 대답했다. 

“이쪽에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되셨죠?”

“그게 이쪽의 요청사항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에이전트 신.”

“있는데, 모르겠다고 하시니 적당히 하죠. 알아서 처리하시고 보고서는 그쪽 상관에게 제출하십시오. 그럼 이쪽에 자동으로 전달될 테니까.”

“예…. 네?”

“퍼스트.”

존 브라이튼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제대로 하라는 의미로 팔꿈치로 신경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지만 신경원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불만사항이 있으면 서면으로 접수하시고요.”

그 말을 마치고 신경원은 곧장 몸을 돌렸다. 

“에이전트 신! 기다리십시오. 지금―,”

오웬 그레이스는 황급히 팔을 뻗어 신경원을 잡으려 했다. 신경원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어깨를 옆으로 빼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을 열려는 순간 존 브라이튼이 서둘러 신경원의 입을 막았다. 

“에이전트 그레이스. 지금쯤이면 우리 쪽 처리팀이 대충 현장을 정리했을 테니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궁금하신 게 많은 건 알지만 저희 쪽도 오늘 긴급 출동한 거라 어서 돌아가서 보고를 해야 하거든요. 희생자 처리만 잘하면 그쪽 상관분도 별말 없을 겁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전부 서면으로 우리 쪽에 보내주십시오. 아주 성~실하고 꼼꼼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존 브라이튼은 난처한 웃음을 줄줄 흘리며 버둥거리기는커녕 시체처럼 축 늘어진 신경원을 끌고 재빨리 줄행랑을 쳤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신경원을 놓아주었다. 그리곤 다짜고짜 구박을 했다.

“너 이 새끼, 또 욕 할라고 그랬지?”

“쥐뿔도 모르는 게 어깨에 힘주고 짜증 나게 굴잖아. 내가 뭐 잘못했어?”

신경원은 벌린 입에 틀어박혔던 존 브라이튼의 손가락을 노려보며 퉤―하고 침을 뱉었다. 입안이 짰다. 누군가 그에게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어휴. 누가 널 말리겠냐.”

그 누가 바로 존 브라이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말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생수로 입을 행군 다음 퉤퉤 하고 내뱉는 신경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신경원은 물을 몇 모금 마신 다음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러고는 반쯤 비운 생수병을 존 브라이튼에게 건네곤 바로 등을 돌렸다. 그는 곧장 검은색의 밴으로 가서 뒷좌석에 올라탔다. 

“마틴.”

“…네.”

“카운슬러에게 연락해둘게. 월요일엔 안 나와도 좋아.”

“…….”

“상태가 영 안 좋다 싶으면 말해. 임시휴가를 받을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작전 중에 민간인 사상자가 생기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특히 오늘의 경우, 그들이 출동하기 전 FBI SWAT 팀이 먼저 출동하는 바람에 희생이 상당히 컸다. 그러니 오늘 마틴이 저지른 ‘실수’는 아마도, 외부적으로는 잡음 없이 처리될 것이다. 

하지만―.

“모호한 상황에서는 연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규칙. 기억하고 있어?”

“…네.”

괴물에게 유효한 대미지를 입히는 특수 탄환은 기본적으로 구경이 작고 화약의 양도 일반 탄환보다 적다. 총 자체도 특수하게 커스텀된 것이라 관통력도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때문에 보통 사람의 경우 ‘한 발’만 맞으면, 맞은 곳이 급소가 아닌 이상 대부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반대로 괴물들은 신체 어느 부위든 한 발만 맞아도 치명상을 입고 ‘비명’을 크게 지른다. 그런 이유로 에이전트들에게는 육안으로 일반인과 괴물을 구분하기 힘들 때는 팔이나 다리 등을 쏴 ‘반응’을 보고 괴물인지 아닌지 확인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져 있다. 즉 마틴은 일단 다리나 팔 등을 조준했어야 했다.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마틴의 상태를 보니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듣지 못할 것 같았다. 예감이지만 이 상태로는 오래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갈래. 본부로 갈래?”

“집… 에 가도 되는 겁니까?”

“핸드폰은 켜놔. 호출하면 바로 받고.”

“네….”

그다지 믿음직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더 할 말이 없어 그냥 차에서 내렸다. 어느새 동료들이 몰려와 있었다.

“나 간다. 마틴은 집으로 일단 갈 거야.”

“마틴은 그렇다 쳐도 너는 본부로 돌아가서 보고서 써야지.”

“졸려.”

신경원은 쩍―하고 하품을 했다. 일부러 하는 게 아니다. 어디든 베개만 있다면 쓰러져서 잠을 청하고 싶은 상태였다. 

“너 설마 데이트 하다 왔냐?”

“주말인데 당연하겠지. 얼른 가봐. 또 차이지 말고.”

대답을 안 했더니 동료들은 제멋대로 해석을 해댔다. 차였다고 말하면 그대로 끌고 가 서류를 작성하게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신경원은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데이트 잘해라.”

“하지만 보고서는 네가 써야 해. 월요일날 보자!”

동료들은 순순히 신경원을 놓아주고는 차에 올랐다. 

사방이 시끄러웠다. FBI 쪽 차량과 로컬 경찰들의 차량에 그와 동료들이 타고 온 차량은 물론이요 현장처리팀의 차량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신경원은 귓가를 벅벅 긁으며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덜덜 떨고 있던 파트너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냥 차로 돌아가 괜찮을 거라고 위로를 해줘야 하는데 만사가 다 귀찮았다. 아니, 귀찮다기보다는 결말이 빤히 보여서 괜한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경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운 바람이 땀에 전 목덜미며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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