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일화 2. 용이 나온 날
네스토르의 알을 낳고 반년이 지났다. 그사이 알은 무럭무럭 자라 키릴의 상체보다 더 커졌다.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나?’
키릴은 거대해진 알을 보고 당황했다. 너무 커서 두 팔로 안기도 벅찰 것 같았다. 군데군데 검은 얼룩도 생겨 정녕 제가 낳은 알이 맞는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당혹스러워하는 키릴의 모습을 본 네스토르가 당연하지 않냐며 말했다.
“용이지 않니.”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곧 나올 거다. 잠시 저기 앉아서 나와 같이 기다리자꾸나.”
네스토르가 키릴의 손을 잡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툭, 툭,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알껍데기에 실선 같은 금이 가더니 쩍 갈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키릴은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알을 쳐다보았다. 네스토르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거참, 성격 급한 아이로구나.”
부서져 내린 알껍데기 사이로 검은 비늘로 뒤덮인 동그란 무언가가 뾱 나왔다. 새끼손톱보다 작고 짧은 발톱이 달린 것을 보니 앞발 같았다.
새끼 용은 짧고 뭉툭한 앞발을 열심히 휘저어 껍데기를 부쉈다. 크게 뚫린 구멍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얼핏 보인 듯도 했다.
앞발만 움직이던 새끼 용이 몸을 크게 움직이자 알이 덜컹덜컹 흔들리며 완전히 쪼개졌다.
“끼잉…….”
전신이 까만 비늘에 덮인 작은 용이 부서진 알껍데기 속에 주저앉아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용…… 이군요.”
그렇다. 키릴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진짜 용이었다.
“네가 낳은 아이가 맞다.”
“……그건 압니다만, 조금 신기합니다.”
“네 몸 안에 자리 잡은 그것은 용을 낳기 위한 것이란 걸 기억하렴. 자연 수정이라면 몰라도 인공 자궁을 통해서라면 상대가 용일 경우 태어나는 건 오로지 용이다. 모체의 종족은 상관없지. 다만 두 번째 형태는 네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두 번째 형태라는 게 무엇입니까?”
“지금 네가 보는 내 모습을 말하지.”
“요정족 말입니까?”
네스토르가 낮게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기 모습을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있거든. 본질을 그대로 보여 주는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는 주위의 영향을 받아 정해지지. 무엇이 될지는 부모인 나도 알 수 없어. 그보다 먼저 아이에게 인사부터 할까?”
네스토르는 자신과 같은 검은 용을 쳐다보았다. 새끼 용은 동그란 앞발로 얼굴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축하한다. 내가 네 아비이고, 옆에 있는 인간은 너를 낳은 내 짝이란다.”
“끼이?”
작은 용이 키릴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키릴은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다. 새끼 용은 얌전히 머리를 내밀었다. 딱딱할 것 같은 비늘은 생각보다 보드랍고 말랑했다. 따뜻한 체온이 닿자 새삼 눈앞의 존재를 실감하여 가슴이 조금 울렁거렸다.
용이 입을 빠끔 벌리더니 긴 혀를 날름거렸다. 키릴의 손끝을 핥고 지나간 까칠한 혀가 금세 용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 듯한 표정이 어쩐지 우스웠다.
“알이 크다고만 생각했는데, 용치고는……. 아기 때는 이리 작은 모양이군요.”
“뀨우!”
“…….”
용이란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귀여운 울음소리였다.
파충류의 울음소리가 이럴 수 있는 걸까? 키릴은 멍한 얼굴로 아기 용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네스토르를 힐끗 보았다. 귀가 긴 것이 영락없는 요정족이었다. 저 모습으로 제 안에 씨를 뿌렸는데 태어난 건 전혀 다른 이종이었다. 그가 저와 완전히 별개의 생물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래, 그는 용이었지. 그런데 새끼라서 그런가. ……귀여워.’
짧지만 두꺼운 앞발로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모습이 파충류보다는 비늘 달린 새끼 곰 같기도 하고, 짧고 뚱뚱한 고양이 같기도 했다.
처음엔 인간과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랐지만 머리가 크고 몸도 둥글고 발도 통통한 것이 점점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어선 신전에서 키울 수 없었다. 황궁에서 키우는 것도 위험할 것 같았다.
“조금 걱정됩니다. 용의 모습을 들키지 않게 할 방법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말려무나. 둥지가 있는 도시에 용을 키우는 이들이 있단다.”
“용을 키우는 이들이요?”
주신전의 요람 같은 건가 하여 키릴은 귀를 기울였다.
“아까 말했었지? 용에게 두 번째 형태가 있다고. 매일 보던 이들이 그들이라 내 두 번째 형태는 그들의 영향을 받아 이리되었지. 저 아이 역시 그들과 같은 요정족이 될 수도 있고, 너를 본떠 인간형이 될 수도 있어.”
용의 둥지가 모여 있는 도시에 사는 이들이 요정족이고 그들이 용을 키운다는 말이었다.
“부모가 아니라 그분들이 용을 키우는 겁니까?”
“우린 너희만치 양육자와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서 말이다. 필요한 건 안전한 장소 제공과 지식 전이가 전부지. 식사도 그다지 필요치 않고. 다른 종족처럼 애착 관계를 맺지도 않아. 날 때부터 독립적인 구석이 있어서 부모라도 제 영역에 함부로 드나드는 걸 싫어해.”
“……저렇게 작은 아기 용도 그렇다고요?”
“응. 나도 그랬단다. 다만 자잘한 수발을 들어 줄 이는 필요하지. 그건 도시에 전용 일꾼이 있다.”
일꾼이란 말에 키릴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키릴의 멍한 눈빛을 보지 못한 네스토르는 새끼 용을 내려다보며 오만한 미소를 보였다.
“도시에 사는 이들 중 선택된 자들만이 우리를 모실 수 있지. 내 새끼의 수발을 드는 건 나를 모셨던 이들의 후예가 할 거다.”
“그, 그렇군요.”
“백 살, 그러니까 성체가 될 때까지 부모의 둥지에서 자라긴 하는데 둥지의 일부 영역을 빌려주는 식이야. 둥지 자체가 요새 같은 역할을 하는 데다 내가 있는 도시는 흑룡의 둥지가 모인 곳이라 둥지에 틀어박힌 늙은 용들이 많아서 말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스토르는 새끼의 젖은 비늘에서 물기를 제거한 뒤 말끔해진 몸을 품에 안았다. 새끼는 힐끗 네스토르를 올려다보곤 그대로 몸을 편히 늘어뜨렸다. 뾱 하고 팔 밖으로 삐져나온 꼬리가 살랑거리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물론 필수적인 지식의 전달은 부모에게만 전이 받을 수 있으니 종종 보러 갈 테지만, 그 외에는 보고를 통해 필요할 때만 찾아가면 돼.”
그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네스토르는 자신도 그렇게 자랐다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
“오히려 너무 간섭하면 싫어해. 거기다 용을 모신다고 둥지에 드나드는 이들이 워낙 극성이라 나 역시 종족 어른이고 아비고 뭐고, 귀찮기만 했다. 정 걱정되면 앞으로 둥지에 갈 때 나와 같이 가자꾸나.”
키릴은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키우지도 못하면서 네스토르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지만 작게 울며 자신을 힐끗거리는 새끼를 보자 조금 뻔뻔해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슬슬 가보자꾸나.”
양팔에 키릴과 아이를 안은 네스토르가 둥지로 가는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
“오셨습니까.”
둥지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긴 귀를 가진 금발의 요정족이 네스토르에게 허리를 숙였다.
“내 새끼다. 방을 준비하라 일렀으니 그리로 데려가거라. ……아니, 잠깐.”
네스토르가 키릴을 보며 아이를 내밀었다.
“한번 안아 보겠니?”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고말고. 네가 낳았는데 안 될 게 뭐가 있겠니.”
키릴은 네스토르가 건네는 아기 용을 품에 안았다. 용치고는 작았지만 확실히 인간 아기보다는 훨씬 컸다. 묵직한 무게감에 키릴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기 용은 보통 이 정도 크기입니까?”
“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새끼를 별로 본 적이 없는 데다 자세히 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구나.”
“건강한 건 맞지요?”
키릴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리자 네스토르가 키릴의 어깨를 끌어안고 머리에 거듭 입술을 묻었다.
“네스토르 님?”
용이 목을 울리며 웃다 키릴의 볼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이리 태연히 있었겠어?”
충분히 태연히 있었을 것 같았다. 용의 방임주의를 듣고 난 뒤라 더욱 그랬다. 키릴은 내심을 숨기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새끼 용이 앞발을 들어 키릴의 판판한 가슴팍과 팔을 이리저리 꾹꾹 눌렀다. 커다랗게 뜬 눈이 유독 반짝반짝 빛났다.
“네가 신기한가 보구나. 아마…….”
“아마?”
네스토르는 요정족이 듣지 못하게 마법을 사용한 후 키릴의 귀에 속삭였다.
“네 신성력을 느낀 거겠지.”
“아…….”
“자, 그럼 준비해 둔 방으로 안내하거라.”
“분부 받잡습니다.”
키릴은 요정족을 따라 걸으며 둥지를 둘러보았다. 둥지라고 해서 깊은 산속이나 동굴 같은 곳을 상상했는데,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거대한 성이었다.
문과 벽, 복도는 물론이고 문틈으로 본 방까지 죄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높았다. 거인의 성에 온 듯했는데 그 속에서 키릴과 비슷한 체격의 요정족이 일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뀨우?”
키릴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던 새끼 용이 요정족과 키릴을 번갈아 보았다. 시선이 귀 쪽에 유독 오래 머무르는 것이 키릴만 귀가 작은 것이 이상했던 듯했다.
“내가 인간이라서 그래, 아가야.”
“끼이, 끼! 뀨…….”
“……뭐라는 걸까요?”
네스토르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또 웃었다. 키릴은 아까부터 어른 용이 자꾸 웃기만 한다고 시무룩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네스토르는 뒤늦게 자신도 잘 모른다며, 의사 전달은 지식을 전달받고 나서야 가능하다고 알려 주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며 걷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일하던 요정족이 일제히 손을 멈추고 키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조금 오싹해서 새끼 용을 안은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아, 미안.”
“끼잉!”
새끼 용은 오히려 좋다는 듯 눈을 반달처럼 접으며 키릴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키릴은 안심하며 새끼 용을 고쳐 안았다. 제법 무거워서 더 크면 안고 다니지는 못할 것 같았다.
네스토르는 제 짝과 새끼를 가만히 지켜보다 냉엄한 눈으로 종들을 훑었다.
부러움과 아쉬움,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미처 감추지 못하고 보란 듯이 흘리고 있다.
이곳에 있는 요정족은 용에게 선택되어 둥지에 갇히는 것마저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이 중에서 약을 먹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저들은 진정한 선택받은 자가 되기 위해 성인이 되면 5년에 한 번씩 용의 인공 자궁을 만드는 약을 먹었다. 하지만 성공하는 이들을 극소수. 부족 안에서 특별히 선택되어 용의 영역에 발을 들였지만, 반려로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약을 먹은 자도, 아직 먹지 않고 때를 기다렸던 자도 아직 기대를 놓지 못한 것 같지만, 네스토르는 이미 짝을 정했다.
네스토르의 싸늘한 눈길에 종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다시 일을 시작했다.
분위기가 이상하여 키릴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네스토르가 이 도시에 사는 요정족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부러워하는 이들이야 약을 먹고 실패한 자들일 테고, 질투하는 것들은 시도해 보기 전이라 성공한다면 내 짝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을지 모르지.”
“성공했다면 되지 않았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아가야.”
부드러운 어조와 달리 표정은 험악했다. 키릴은 네스토르가 이토록 싫은 티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뭔가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 같았다.
“내 취향이 아닌데 되긴 뭐가 된다는 거야.”
‘취향?’
발견만 하면 다 잡아가는 게 아니었던가. 키릴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 네스토르가 못마땅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똑같이 약을 먹고 성공했더라도 개체마다 풍기는 향이 다 다르다. 용은 그 향에 끌려 제 짝을 정하는 거지, 용을 낳을 수 있다고 무조건 다 좋은 게 아니야. 그건 그저 필수 조건일 뿐이다.”
“그럼 다른 용이 제게 접근하지 않았을 수도…….”
“그건 아니다. 까탈스러운 나마저 홀렸으니, 웬만한 용은 널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황궁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렴. 그 빨강 머리 놈 말이다. 아무리 겉에만 슬쩍 체취를 묻힌 것뿐이라도 다른 용이 점찍었다는 걸 알면서도 괘씸하게 간을 보고 있었지.”
한숨을 내쉰 네스토르가 키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옛일을 꺼냈다.
“원래 선황이 누군가에게 약을 사용할 거란 걸 알았을 땐 크게 흥미가 없었다.”
“설마…….”
“그래, 당시 선황이 약을 구할 때 그에게 약을 준 것이 나였다.”
“…….”
“주의 사항을 들려 주었지만, 죄다 듣지 않았고 굳이 그 약을 네게 먹였지.”
네스토르는 키릴의 반응을 살피며 네겐 미안한 일이라며 사과했다. 어차피 네스토르가 아니라도 선황은 어떻게든 그 약을 구했을 것이기에 키릴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처음엔 관심 없었던 네스토르가 왜 자신을 찾아다녔는지가 더 궁금했다.
“호기심에 황실에 손님으로 들렸다가 선황에게 묻은 네 향을 맡았지.”
그리고 바로 준비하여 황실 마법사로 들어와 단번에 수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때부터 찾기 시작했다. 설마 신전에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하고 후궁들만 살피고 다녔지. 그래도 결국 찾아서 이렇게 널 내 둥지로 데려오게 되어 기쁘구나.”
“그…… 잠깐 방문한 겁니다.”
설마 아예 여기 눌러 앉힐 생각인가 싶어 키릴이 서둘러 말했다. 네스토르는 그런 키릴이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걱정하지 말라 일렀다.
“네 자유를 억압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니. 내 이름을 걸고 맹세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란다.”
“끼잉?”
“저 조그만 것이 태어나 너와 이곳에 온 것이 기쁘단 말이니, 오해하지 말고.”
“예, 저도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 같은 미남자의 입꼬리가 그린 듯이 올라갔다.
“앞으로 새끼를 보러 자주 오자꾸나. 아니, 너무 자주는 안 돼. 가끔 오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널 가두고 싶어질 테니. 용은 여유로운 미소를 가장하며 뒷말을 삼켰다.
네스토르는 키릴의 은발을 만지작거리며 은근하게 속삭였다.
“이십 년 뒤에도 노력해서 이곳에 둘째를 데리고 함께 오면 좋겠구나.”
그리고 언젠가 은퇴한 키릴을 데리고 이곳에 틀어박히고 싶었다. 그 어린 성기사도 동행한다면 어쩌면 키릴이 허락해 주지 않을까, 네스토르는 은밀한 기대를 품었다.
*
오 년 뒤, 네스토르는 웬 아이를 안고 황궁으로 출근했다. 네스토르와 같은 까만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아이는 누가 보아도 네스토르를 빼다 박아 그와 혈육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수장님. 설마 그 아이는…….”
동생인가, 아니면 조카인가. 먼 친척일 수도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궁금했는지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내 아들이야.”
“네?”
마법사가 멍하니 되물었다.
“내 아들이라고 했는데.”
누가 봐도 내 아들 아니냐며 아이와 볼을 맞대었다. 색색거리며 웃는 얼굴이 과히 찍어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장과 닮았다.
마법사는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네스토르를 올려다보더니, 망연하게 물었다.
“수장님, 혼인은 언제…… 아니, 그보다 기혼자셨습니까? 부인분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대체…….”
“내 반려는 바쁘다. 사교계에 흥미도 없고 불편해하니 앞으로도 너희가 볼일은 없을 거다. 그런데 내 반려를 왜 궁금해하는지 모르겠구나. 남의 부인을 말이다.”
네스토르가 호기심 많은 수하를 지그시 쳐다보자 마법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뒤꽁무니를 가늘게 뜬 눈으로 주시하던 네스토르가 고개를 숙였다.
까만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작은 아이가 보였다. 자신과 똑 닮았지만, 귀는 자신과 다르게 짧았다. 누가 보아도 인간의 아이였다. 용의 유전자를 물려준 네스토르를 닮는 거야 당연한 건데, 두 번째 형태는 매일 보는 요정족이 아닌, 가끔 보는 키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여실했다.
“십 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용케 해냈구나.”
보통은 십여 년이 걸려 제 몸의 형태를 바꾸는데 아이는 그 반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성공했다.
“빠…….”
“그래, 이제 아빠 보러 가자.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니. 그 인간은 이 아비 거다. 내 거라고.”
네스토르는 아이를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자신은 모체를 그렇게 따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이가 키릴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그는 지금까지 어미의 얼굴을 본 적이 한 손에 꼽았다. 아비는 같은 용이란 이유로 제 아이에게도 어미 얼굴을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네스토르는 주기적으로 키릴을 아이에게 데려갔다. 키릴이 둘째를 아쉽게 보내는 모습을 보고 덜 속상해하라고 챙기다 보니 그랬다.
“보여 줄 테지만, 욕심내면 안 된다. 키릴은 내 거야. 네 암컷이 아니다.”
자식이기 전에 같은 용이었다. 네스토르는 진심으로 경고했다.
새끼 용이 모른 척 해맑게 웃으며 네스토르의 옷을 쥐어뜯듯이 잡아당겼다.
“뭐, 크면 알 테지.”
아직 미성숙한 몸이라 그렇지, 성체가 되어 키릴의 몸에서 진동하는 네스토르의 냄새를 맡으면 그땐 알아서 따로 제 짝을 찾으려 할 터였다. 다른 종이면 몰라도 용이라면 짝이 정해진 상대를 탐하진 않았다.
“조만간 네 동생도 만들어 주마. 그 녀석이랑 놀려무나.”
황태자가 키릴의 일부를 닮고, 교황의 후계자인 둘째가 키릴을 완전히 빼다 박았듯, 다음에 태어날 제 아이도 키릴을 조금이라도 닮길 바랐다.
훗날, 자신의 둘째 대신 다른 짐승의 아이를 품고 온 키릴을 보고 어린애처럼 심술을 부리게 될 줄도 모르고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