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9/72)

에필로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성기사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며 웃는 얼굴이 싱그럽다.

“옛날 생각을 조금 했어.”

“그럼 제 생각도 하셨겠네요.”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를 짓는 성기사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대신관이 고개를 꺾어 입을 맞췄다. 두 입술이 맞물리기 무섭게 혀가 질척하게 뒤엉켰다. 순백의 기사복과 법복이 무색하게 얽히는 혀는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목을 끌어안자, 탄탄한 팔이 쏠리는 몸을 온전히 기댈 수 있게 지탱하며 허리를 끌어안고 연신 각도를 바꿔 입술을 겹쳤다.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으나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탐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성감이 끝 간 데 없이 치솟았다. 단단하게 솟은 성기를 비비며 더욱 밀착했다. 무엇하나 그사이에 끼이지 못하게 한 몸처럼 서로를 끌어안았다. 두 입 역시 틈 없이 맞물린 채였다.

잡아먹을 듯이 입술을 삼키고 입안 더 깊은 곳을 탐하기 위해 안달했다. 벌써 20년을 반복해 온 행위인데 할 때마다 애가 탔다.

일리야의 손이 다급히 움직였다. 한 손으론 등을 다른 손은 옷 위를 더듬었다. 출산을 마친 후 납작해진 배가 만져졌다. 배를 쓰다듬던 손이 은근하게 위를 더듬어 올라갔다. 맞물린 입술 틈으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손끝에 보석이 박힌 유두가 닿자 목덜미를 빨던 일리야가 탄식했다.

“정말 계속 나오네요. 아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수인족은 임신 후 모유가 계속 나온다더니 그 말대로 되는 것 같아 오싹했다.

키릴은 미간을 찡그렸다. 난 수인족도 아닌데. 짐승의 아이를 낳은 탓인가. 설마 인공 자궁의 부작용보다 수인족의 특성이 강할 줄이야.

일리야가 손끝으로 구겨진 미간을 부드럽게 펴 주며 물었다.

“불편하시면 방도를 알아볼까요?”

키릴이 그렇게 묻는 일리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보는 이가 없으면 툭하면 가슴을 물고 젖을 빨아 대면서 그리 말하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말겠지. 난 인간인데 설마 계속 나오려고.”

“전 좋지만…….”

그래, 좋아하는 거 같긴 하더라. 키릴은 뒷말을 삼키며 쓰게 웃었다.

가슴은 원래도 예민한 부위였는데 모유가 나올 때는 유독 심했다. 임신 때는 옷에 쓸리기만 해도 성기가 완전히 설 만큼 느껴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가슴이 근지러워 매우 신경 쓰였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키릴의 귀를 물고 빨던 일리야가 속삭였다.

“수인족과 인간이 맺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

“그러니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전 당신이 결정하신 일이라면 뭐든 좋아요.”

“응.”

“솔직히, 불편하죠?”

“…불편하긴 해.”

일리야가 커다란 손으로 키릴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러실 줄 알았다고 속삭였다.

“사실, 이미 알아보고 있었어요.”

놀란 키릴이 일리야를 빤히 쳐다보다 활짝 웃더니 그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키릴의 숨소리를 귀 기울여 듣던 일리야가 웃으며 키릴의 신관복을 마저 벗겼다.

“용이 오기 전에 제가 먼저 빨아드릴게요.”

“그건 안 되지.”

언제 들어온 건지 네스토르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키릴의 헐벗은 몸을 훑어내리는 눈이 집요했다. 일리야는 상관치 않고 키릴의 몸에 남은 천 하나를 벗겨 내렸다.

축축한 혀가 목덜미와 쇄골을 질척하게 핥아 내리다 뾰족하게 선 붉은 젖꼭지를 혀끝으로 희롱했다. 수인족과 지냈던 단 몇 개월 사이에 눈에 띄게 커진 유두가 성기사의 천박한 혀 놀림에 한층 부풀었다. 통통한 살덩이의 말캉한 감촉과 진한 단내에 흥분한 일리야가 더는 참지 못하고 한입에 삼켜 물었다.

“아으……. 흐아… 읍!!”

축축한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 유두가 단단한 이에 잘근잘근 으깨지는 것을 느낀 키릴이 입을 크게 벌렸다. 폭력적일 만치 자극적인 감각에 참지 못해 교성을 내지르려는 순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네스토르가 키릴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응… 우훙, 흡, 으응……!”

일리야가 샅샅이 훑고 간 입안에 네스토르의 혀가 파고들어 와 온 입안을 제 것처럼 헤집었다. 키릴이 허겁지겁 네스토르의 혀를 빨았다. 호흡이 엉망으로 뭉개지고 체액이 난잡하게 뒤섞였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서로의 살덩이와 숨결을 탐했다. 삼키지 못한 서로의 타액이 입안에 가득 차다 못해 뚝뚝 흘러넘쳤다. 교접과도 같은 입맞춤이었다. 키릴의 머리를 움켜쥔 네스토르의 손등에 푸른 힘줄이 불거졌다.

손으로 유두를 꼬집고 입으로 젖을 짜내는 일리야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네스토르와 각도를 바꿔가며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두 남자의 손이 경쟁하듯 바지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키릴은 눈꺼풀을 내려 쾌락으로 혼탁하게 젖은 눈동자를 숨겼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요람에서 관리자에게 보살핌을 받던 아이가 오늘은 키릴의 품 안에 있었다.

“이래서 한번 낳으면 계속 나오는 거였구나.”

아이는 수인족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자란 뒤에도 모유를 탐했다. 아연한 낯으로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던 키릴이 슬쩍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직접 물리려 했는데 일리야와 네스토르가 반대하여 젖병에 모아 아이에게 주는 중이다. 두 사람에게 빨릴 때는 몰랐는데 병 안에 짜 넣고 있자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생각 이상으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더 부끄러운 건 따로 있었다. 키릴의 떨떠름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네스토르는 아예 종종 이렇게 먹고 싶다며 자기에게도 젖병을 달라며 조르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며 일리야에게 험한 소리를 들었지만, 용은 개의치 않았다.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잘 먹네.”

아이가 언제까지 모유를 먹을지는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젖을 짜서 네스토르와 요람에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키릴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태어난 아이는 수인족과 인간의 혼혈이라 그런지 겉보기엔 그냥 인간 같았다. 쫑긋 솟은 짐승 귀를 빼면 그랬다.

청금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이는 키릴도 수장도 닮지 않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두 사람이 보이는데 한데 섞이니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일리야의 눈엔 키릴과 닮은 점만 보이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수발을 들며 끊임없이 정을 쏟았기 때문인지, 교황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이라 여기고 있었다. 다른 사내와 정을 나눈 결과란 점은 완전히 무시하고 키릴의 혈연이란 사실만 기억해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올 때마다 제법 반겼다.

“애가 좋은가? 아이를 원하는 것 같진 않긴 한데…….”

야쿠치의 아이를 낳은 뒤 자궁은 이제 약을 먹지 않아도 멋대로 열리곤 했다. 그러나 일리야는 네스토르와 달리 키릴의 자궁 안에 사정하는 걸 피했다. 자궁 안까지 들어오더라도 사정할 땐 꼭 귀두를 뽑아내고 정을 쏟았다.

“그 애는 왜 또 데려왔습니까?”

얌전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키릴의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가 못마땅하다는 듯 물었다. 황제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신전에 들렸다. 처음엔 아이를 황실로 데려가려 했지만 요람이 열리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물음에도 개의치 않고 아이를 안고 있는 키릴을 보더니 사람을 물렸다. 둘만 남게 되자 체면도 벗어던지고 툴툴거렸다.

“나 때는 안 그랬잖아요? 모후께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게 당신께 더 좋은 일이었으니까요.”

황위를 이을 태자였으니 신전에서 키울 수 없었다. 그랬다간 자칫 신전의 세력을 염려한 이들이 훼방을 놓을 수도 있었다. 당시 섭정이 신실한 신자인 것만으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아이가 지닌 상서로운 힘을 가지고 주신의 축복을 증명했음에도 그랬다.

섭정이자 황후이며 황실 직계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공작가의 장녀인 모후가 뒤에 단단히 버티고 있었기에, 지금의 황제가 잡음 없이 옥좌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를 지금 수인족 영지에 보내면…….”

“죽겠지요.”

키릴이 황제의 냉랭한 낯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황제가 그린 듯한 미소를 머금고 제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얘기한 건 잊지 않았겠지요? 잘 기억해 두세요.”

배를 쓰다듬는 손길에 제 씨를 품어 달라는 말을 떠올리곤 냉정히 손을 떼어 냈다.

“그 이야기는 그만두시죠.”

더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하자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애인을 두고 남의 씨를 잘도 품으면서 왜 법규를 그리 따집니까? 애초에 신관이 임신한다는 것부터가 도리를 벗어난 것인데.”

“…….”

애초에 계시가 시작이었으나,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리곤 입을 닫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모를 것으로 생각했으나 키릴은 황제가 어쩌면 다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안 됩니다. 폐하께서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반려자를 맞이하세요.”

“키릴.”

“저에게 부모 자격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폐하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래선 안 되고요.”

단순히 법규나 도리, 사회적인 규범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신이 좋은 황제이길 바라는 만큼, 행복하길 바랍니다.”

“…….”

긴 침묵 속에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곧 문이 열리고 일리야가 방으로 들어섰다. 교황이 부른다는 말에 둘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황제는 일리야를 힐끗 보곤 그대로 돌아갔다.

키릴의 말에 생각을 바꿔 먹었을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자기 때는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말하던 황제가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키릴은 황제의 이상한 집착을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태후에게 넘치게 사랑받았는데도 당연히 받아야 했을 정을 못 받은 것이 아쉬워, 그 마음이 이상하게 변질된 것 같았다. 차라리 낳아 준 이를 모르는 편이 황제에겐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면 점차 잊어버리겠지.’

키릴은 아이를 아기침대에 눕힌 후 일리야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성하께서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야?”

“안 가셔도 됩니다. 제가 끼어들기 위한 핑계였을 뿐입니다.”

키릴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설마 교단의 수장인 교황을 한낱 핑곗거리로 사용할 줄이야.

한숨을 쉰 일리야가 키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젠 기르지 않으실 겁니까?”

언젠가부터 키릴은 짧은 머리를 고수했다. 16살이 된 교황과 마주한 이후 쭉 그랬다.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그 위에 관을 쓴 교황은 키릴과 놀라울 정도로 많이 닮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의 축복을 받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키릴의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가끔 교황을 알현할 때마다 그가 묘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은 알고 있었다. 키릴 역시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을 닮은 부분 외의 다른 구석을 눈여겨보며 누군가의 흔적을 더듬었다.

교황은 선황을 전혀 닮지 않았다.

오히려…….

키릴은 말없이 일리야의 얼굴을 눈으로 더듬었다. 오뚝한 코와 깊고 아름다운 눈매. 끝이 올라간 입꼬리.

“일리야.”

“네.”

“어디서 나쁜 짓 하진 않았지?”

“그럴 리가요?”

일리야는 태연히 대답하며 키릴의 손등에 입술을 묻고 진득하게 문질렀다. 혀를 내밀어 핥고 이로 물어 흡입하는 행동엔 정욕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당신을 뺏어가지만 않으면 저는 얼마든지 관용을 보일 수 있습니다.”

키릴은 이제 저 관용이란 말이 다른 사람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란 걸 알았다.

“네스토르는 용이라지만. 우린 그분의 종인데 주신께서 싫어하실 일은 하면 안 돼.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일리야가 눈부신 듯 키릴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주신을 모시는 당신을 모시는 것이니까요. 그분께서도 어여삐 봐주실 겁니다.”

“‘어여삐’라…….”

키릴이 쓰게 웃자 일리야가 두 손으로 키릴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 어여쁨의 증거가 지금 교단 가장 높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

“당신의 종에게 키스해 주세요.”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이야말로 어여뻤다.

정말 괜찮은 건가 고민하던 키릴은 못내 못 이긴 척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창문을 뚫고 쏟아진 한낮의 태양 빛이 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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