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네스토르(1)
임신 중에 장시간 외부 활동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때도 있었다.
‘어제는 황제가 찾아오더니 오늘은 기도회인가…….’
오늘 있을 기도회를 위해 교단 본부에서 추기경이 직접 이곳까지 왔다. 장장 네 시간 동안 이어지는 큰 행사였다.
몸 상태만 이렇지 않았다면 키릴 또한 누구보다 기대했을 텐데. 이런 날 하필 일리야는 단장과 함께 행사 준비를 하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늦을 것 같았다.
“지금은 참을 만한데……. 네 시간이나 되니.”
벌써 네 번째 임신이었다. 지금껏 임신과 출산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관련된 이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배가 살짝 나온 것을 들키더라도 그것이 임신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대신관의 배 안에 수인족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키릴이 그곳에서 흥분하여 신음을 흘려도 신관이 발정 나서 몸을 주체하지 못하리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엄숙하고 희망찬 기도회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이 분명했다.
키릴은 배를 쓰다듬으며 초조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밖에서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신관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구?”
“황실에서 오셨습니다.”
“황실?”
설마 황제인가 싶어 키릴이 허락하자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흑발의 미남자가 그린 듯 미소를 지으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키릴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얼핏 반가운 기색도 보였다.
“어떻게…….”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남자를 이곳까지 안내한 사제가 조용히 물러나자 남자의 안색이 변했다. 정중한 미소가 사라지고 짓궂은 표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폐하도 사실은 내가 부탁해서 보낸 거지만.”
키릴이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부단장이 부르더군.”
“일리야가요?”
남자가 제집에 온 것처럼 겉옷을 벗어 놓고 키릴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래, 자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나보고 가서 살펴달라더군. 자넨 임산부가 아닌가.”
“……다른 산모분들과는 다르죠. 저는 건강보다, 그, 다른 게 문제잖습니까.”
“발정 말이지.”
낮게 웃던 남자가 키릴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몸이 순식간에 끌려갔지만 키릴은 거부하지 않았다.
“내 기운을 주지. 한 시간 정도는 버틸 거다. 가장 좋은 건 내 정인데, 시간이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중간에 부단장 보고 도와 달라고 해. 네 시간 동안 기도만 하고 있을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그 어린 것은 네가 힘들어하는 꼴을 못 보니 알아서 챙기겠지.”
뒤에서 키릴을 끌어안은 남자가 살짝 나온 배를 쓰다듬었다. 그것만으로 키릴의 안색이 조금 편안해졌다.
안도하는 키릴의 얼굴을 본 남자가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우면 보답을 받고 싶은데.”
남자가 입술을 핥는 것을 본 키릴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입술은 안 됩니다.”
“아쉽구나. ……정말 안 돼?”
“안 됩니다. 못 참아요. 그렇다고 지금 할 순 없잖습니까.”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기색으로 키릴의 배를 다시 쓰다듬었다. 배 안으로 남자의 기운이 밀려 들어오자 욱신거리던 안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장시간의 야외 행사를 버틸 수 있을까. 중간에 일리야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지만 잠시 휴식 시간이 있을 뿐 계속 자리를 지켜야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거기까지 생각하던 키릴이 눈을 꾹 감았다. 불안해하는 키릴의 귀에 남자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래, 내 둘째 아이를 품어야 할 자리를 먼저 차지한 게 수인족 수장의 유복자란 말이지?”
“읏…….”
남자가 키릴의 귀를 깨물고 귓구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젖은 살덩이가 안을 질척하게 적시며 물소리로 가득 채웠다. 키릴이 움찔하자 목 뒤를 약하게 잘근잘근 깨물며 이어 물었다.
“그런데 죽은 수장이 암시 능력자였다고?”
“아, 흐읏, 네…….”
“별 우연이 다 있군.”
“그게 무슨…….”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는 키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남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마쳤다. 그는 더는 수장에 관해 묻지 않았다.
“하던 일에 집중하자.”
남자는 배 안에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다른 손으론 키릴의 가슴을 움켜쥐고 젖을 짜냈다. 마법사의 손안에 가슴이 짓뭉개질 때마다 하얀 옷이 회색으로 물들며 진하게 젖어 들었다.
“응, 흣……!”
“젖이 이렇게 가득 차게 두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예배하는 동안 젖물이 줄줄 흐를 뻔했어. 네 어린 기사가 없으면 너 스스로 빼야지. 아니면 나를 좀 더 빨리 부르든가.”
“응…… 흐으, 그렇게 주무르면, 모, 못 참습니, 흣, 시간, 없는데……. 아……!”
“그래,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 하자, 응?”
커다란 손이 옷을 헤집고 바지춤을 내렸다. 기다란 손가락이 축축하게 젖은 구멍을 찾아 단번에 쑤시고 들어갔다.
“으응! 아, 아……!”
“결국 이리될 거였는데 말이지.”
다리에 힘이 풀린 키릴이 제 품 안에 안겨들듯 떨어지자 마법사가 고개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어서 낳고 나와 둘째를 만들자꾸나.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니, 키릴?”
“흐으, 흣, 아…… 우읍!”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 마법사는 곧바로 키릴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강렬한 감각들로 머릿속이 혼몽한 중에 키릴은 어렴풋이 남자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그의 정체와 제 몸 안에 있는 자궁의 진실을 알게 된 그 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