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키릴의 안색은 신전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키릴은 일리야가 그런 자신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임신한 것을 안 순간부터 일리야와 마주 보는 것이 괴로웠다.
‘일리야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일리야는 장례의 여파라 여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때때로 걱정과 불안을 담은 눈으로 저를 보는 것을 알고 있다.
키릴은 망설였다. 임신까지 한 자신이 그와 이러고 있어도 되나 걱정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리야를 생각한다면 그와 멀어지는 것이 옳았다. 밤마다 짐승처럼 뒤엉켰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키릴은 늦었지만 일리야는 금세 훌훌 털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원래의 자리가 문제였다. 키릴의 기사가 되겠다고 신전에 들어온 아이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뜻이 변치 않았고, 영원히 키릴의 기사로 있고 싶다고 고백했다.
‘제발 절 위한다고 절 아프게 하지 말아 주세요.’
키릴이 눈을 꾹 감았다. 원망스럽게 애원하던 일리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임신한 키릴이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여 그에게 들러붙어도 곁에 있어 줄까. 키릴은 일리야가 자신을 경멸할까 무서웠다.
‘아니, 차라리 네가 나에게 질린다면 다행이겠지.’
그렇다면 키릴의 마음은 괴로워도 일리야는 추잡하게 어그러지진 비일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에게 실망해서 차라리 교단으로 돌아간다면. 그리하여 신전 기사로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옳은 길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 또한 내 욕심일지 모르지.’
일리야를 제 곁에 두는 것도. 그가 제 곁이 아닌 더 빛나는 곳에 있어야 함이 옳다는 생각도. 모두 키릴의 욕심이었다.
선택은 일리야의 몫이었다.
그리고 일리야를 선택지 앞까지 끌고 가기 위해선 키릴이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했다.
신전에 돌아온 후 사흘째 되던 날 밤. 씻고 나온 키릴이 가운 하나만 걸치고 침실로 들어갔다. 먼저 씻고 의자에 앉아 있던 일리야가 키릴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례를 다녀온 후 오늘 아침까지 몸을 꽁꽁 싸매던 키릴이 편히 목욕 가운만 걸치고 나오니 의아했다. 요 며칠 기분이 저조해 보였는데 이제 좀 괜찮아진 건가 싶은 기대감도 있었다.
키릴이 침대에 앉아 그를 부르자 일리야가 기다렸다는 듯 그 옆자리를 차지했다. 키릴이 팔을 뻗어 일리야의 목을 끌어안자 바로 키릴의 허리와 등을 감싸 안았다. 몸이 맞닿는 순간 키릴이 일리야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하아, 키릴 님……!”
삼 일 만의 접촉에 일리야는 정신없이 키릴의 입술과 입안을 탐했다. 서로의 혀를 얽고 진득하게 비비며 애타게 타액을 나눴다. 더 깊이 결합하고자 고개를 꺾어가며 질척한 키스를 길게 이었다. 키릴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타액을 길게 늘어뜨리며 두 입술이 떨어졌다.
“이젠 괜찮으신 겁니까?”
키릴은 대답 대신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가운을 벗어 일리야의 앞에 헐벗은 몸을 내보였다.
키릴의 몸을 핥듯이 훑어보던 일리야가 가슴에 닿았다. 유독 그곳만 물기가 남아 있어 눈에 띄었다. 통통하게 솟은 작은 유실이 자신의 시선에 더 꼿꼿하게 서는 것을 본 일리야가 목울대를 크게 움직였다.
일리야가 제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키릴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까보다 한층 짙어진 일리야의 눈빛에 뜬금없이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만져 볼래?”
일리야의 두 팔을 잡아 제 가슴 위로 이끌었다. 판판한 가슴이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손안에 녹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모아 올렸다. 많지 않은 가슴살을 쓸어 모으는 순간, 유두에서 물기가 튀었다.
“아…….”
키릴이 일리야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불쑥 말했다.
“임신했어.”
“네?”
놀라 굳어버린 일리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키릴이 눈을 내리깔았다.
“아마, 네 아이는 아닐 거야.”
키릴은 머뭇거리다 사실을 고백했다.
첫 계시를 받은 날부터 또다시 임신한 지금까지. 키릴에게 질린 그가 달아나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모조리 그에게 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키릴의 이야기를 들은 일리야가 꺼낸 첫 말은 키릴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그럼 지금 제 아이를 임신하신 겁니까?”
“뭐?”
“몸은 어떠세요? 이렇게 걸어 다녀도 괜찮으신 겁니까?”
“아니, 괜찮긴 한데. 너 내 얘기 다 들은 거 맞지?”
“예,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새겨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럼 신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알에서 나오면 제가 밖에서 신전으로 데려온 것으로 하면 별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제가 따로 할 일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널 귀찮게 할지도 몰라. 그…… 약에 취했을 때보다 더할지도…….”
일리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전, 좋아요. 좋습니다.”
“…….”
“전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늘 키릴 님과 닿고 싶어요. 키릴 님은 힘드실 텐데, 좋아해서 죄송합니다.”
“음……. 아니, 그, 죄송할 것까지야…….”
일리야를 보니 진심으로 죄송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일리야는 키릴이 제 욕구를 채워 줄 이로 자신을 선택한 게 기분 좋은 듯했다. 키릴이 귀찮게 해 주길 고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임신해서 몸이 변하고 욕구를 자제하지 못해 늘 심적으로 긴장해야 하는 키릴의 사정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는데, 한편으론 그런 기쁨을 참을 수 없어 자책하는 것 같았다.
내심 긴장했던 키릴이 안심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순전히 자신을 위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앞으로 정결치 못한 날들을 보내야만 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내심 긴장했던 마음이 안심되는 것을 느끼며 키릴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일반적인 임산부와 달리 임신 기간이 길지 않아. 다섯 달 정도고 몸이 그렇게 무겁거나 아픈 것도 아니라서 그만큼 힘들진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출산 때조차 아프지 않았다. 그저 참기 힘든 성욕이 너무 버거워 그게 가장 괴로웠다. 온갖 배덕한 행위에도 기뻐하는 자신을 느낄 때면 그대로 다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일리야라면 전처럼 마음이 괴롭진 않을지도 모른다.
키릴은 자기 몸보다 일리야가 더 걱정이었다.
“다만 그땐 음…… 지금보다 더 몸이 민감해. 흥분도 잘하고. 그래도 네가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래도 어쩌면 눈앞에서 그런 키릴의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키릴은 임신했을 때의 자신을 심하게 천박하다고 생각했기에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거기다 두 번째 임신이다. 시간이 갈수록, 임신을 거듭할수록, 육신의 타락이 깊어졌다.
“임신 중에 민감해진다고 하셨는데 해도 되는 겁니까?”
“응. 인공 자궁이라 좀…… 이상해.”
키릴은 차마 튼튼한 알을 낳기 위해 자궁문을 때려 달라 말할 수 없어 얼버무렸다. 그러다 일리야가 안심했으면 하는 마음에 돌려 말했다.
“세게 해도 돼. 얼마든지. 아무 문제 없었어.”
이미 한 번 경험해 봤던 일이라 자신 있게 말하던 키릴이 조금 시무룩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막상 보면 네 생각과 좀 다를 수 있어. 불편하면 꼭 나한테 말을 해 줘야 해. 알겠니?”
키릴이 걱정하자 어린 청년이 눈가까지 붉히며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절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키릴 님과 하고 나서 체력 훈련을 늘렸습니다.”
“그…… 밤에 힘드니?”
“네. 몸에 힘을 좀 빼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린 밤에만 솔직해질 수 있는데, 키릴 님은 체력이 약해서……. 낮에 좀 풀어 줘야 제가 잘 참을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제 덜 참아도 된다고 하시니…….”
키릴은 제가 체력이 약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는 신력 때문에 보통 성인 남자보다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성기사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놓고 체력이 약하다니……. 선황도 태의도 키릴을 두고 안 그런 척하면서 성욕이 왕성하고 그걸 채울 만큼의 체력은 있어 다행이라며 조롱했는데.
그보다 대화의 흐름이 이상했다.
키릴은 당황스러운 듯 눈을 깜빡이며 일리야를 보다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가, 멍하니 천장을 보길 반복했다.
그러다 돌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키릴 님?”
만약 상대가 선황이었다면 수치스러워하는 키릴의 반응을 즐기며 심신을 희롱하려 들었을 텐데. 어린 성기사는 그저 키릴과 더 자주 닿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과 키릴, 오직 세상에서 단둘뿐인 듯했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일리야를 보니 만약 배 속의 아이가 선황이 아닌 일리야의 아이라 하더라도, 더는 배덕한 결과물이라 자책하지 않을 것 같았다.
키릴이 일리야의 어깨를 잡고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
“고마워. 넌 언제나 내가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일으켜 주는구나.”
다시 한번 그 이마에 입 맞추고 그대로 속삭였다.
“넌 나한텐 과분한 사람이야. 그래서 며칠간 고민한 거야.”
“아니요. 과분한 건 당신입니다. 절 받아 주신 것만으로 당신이 바라는 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요.”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정말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교황이라도 잡아서 당신 밑에 눕힐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제가 대신 눕고 싶지만요.”
“너……! 그런 불경한 말은 하면 안 되지!”
기겁한 키릴이 일리야의 등을 제법 매섭게 쳤다. 일리야는 맞으면서도 입술을 한껏 휘며 웃었다.
“그럼 제가 누워도 될까요?”
일리야가 옷을 벗으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긴 팔이 키릴의 허리를 당겨 안더니 제 위에 앉혔다. 키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앞으론 참지 마시고 저를 부르세요.”
‘그래도 참으려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지 않았다. 키릴 자신도 거기엔 회의적이었다.
참을 수 있었다면 진작 선황제를 떼어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처음엔 계시, 그리고 협박 때문이었지만 나중엔 정사가 목적이 되다시피 했다. 급기야 선황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태의와도 깊은 관계가 되었다.
피임약을 위해서였지만 키릴은 분명 그와의 관계를 즐겼다. 그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를 통해 제 욕구를 달랜 건 사실이었다. 오로지 약을 받기 위해서였다면 할 때마다 한 번으로 끝내지, 그렇게 매번 몇 번이고 태의의 정액을 쥐어짜진 않았을 것이다. 육신의 욕망에 굴복해 쾌락을 좇은 결과였다.
키릴은 멋대로 흥분하는 제 몸을 느낄 때마다 마치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미약이랍시고 키릴의 몸에 몇 번이고 흡수되었던 음액의 주인처럼. 불특정 대상을 유혹하고 인간의 욕정을 파먹는 그런 괴물 말이다.
지금도 일리야와 끌어안고 있을 뿐인데도 단단한 몸에 닿은 곳들이 간질거렸다. 어느새 허벅지가 축축했다. 가슴처럼 임신으로 물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아래에서 끈적한 액이 자꾸 샜다. 자신이 봐도 음탕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욕망을 거부할 수 없었다. 키릴은 일리야의 커다란 상체를 당겨 안았다. 마찬가지로 키릴의 몸을 꽉 조여 안은 일리야가 키릴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섭정을 뵐 때 키릴 님 눈빛이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응?”
“저한테 나쁜 말씀 하실 때요. 절 위해서 우리가 떨어져야 한다든가. 아까 가슴 만져 보라고 하실 때 보이던 눈빛 말입니다.”
“…….”
“저한테 미안해하실 때 보이던 눈으로 섭정을 보셔서 왜 그런가 했는데. 태자를 그분께 맡기셨던 게 마음이 걸려 그러셨던 거죠?”
“……응.”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귓가에 쏟아지는 숨소리가 간지러웠다.
“태자께서 그분 슬하에 들어간 후, 그분의 유일한 결점이 사라졌지요. 이제 그분의 정적들도 몸을 바싹 낮추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잖습니까.”
“…….”
“오래된 애인들과도 그간 아이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란 소문이 있었지만 이제 더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오히려 로맨틱하게 포장되어 가상의 궁정 소설까지 나오기 시작했으니 그분께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건 몰랐어.”
“죄책감 대신, 고마운 마음만 가지면 되지 않을까요?”
다정한 일리야. 키릴은 일리야의 볼에 제 볼을 비비며 안타깝고 애틋한 숨을 토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선황제의 아이일 수도 있어. 아마 그럴 거야.”
“죽은 자가 아이의 아비가 될 수는 없죠.”
일리야가 태연히 답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접니다. 이건 키릴 님에게도 양보 못 해요.”
키릴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일리야가 키릴의 얼굴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키릴이 고개를 숙이자 순식간에 두 입술이 맞닿았다.
푹신한 입술을 고르게 쪽쪽 빤 일리야가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단번에 파고들었다. 커다란 두 손이 키릴의 머리와 목을 감싸고 아래로 당기자 두 입술이 더 깊이 맞물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타액을 나누며 서로의 입 안을 탐하다 길게 숨을 토하며 떨어졌다.
“전 키릴 님의 모든 게 좋아요. 절 걱정하시는 다정한 목소리도, 예쁜 눈도, 이 입술도.”
키릴의 입술을 핥은 일리야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 체향도. 너무 좋아서, 탐이 나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어쩔 줄 모르겠다는 것 치고 너 너무 여유로운 것 같은데.”
일리야가 낮게 목을 울리며 웃었다. 키릴이 그 얼굴을 잡아 올리고 입술을 찾아 다시 깊이 겹쳤다. 질척하게 혀를 얽고 서로의 타액을 진득하게 섞고 또 섞었다.
한참 달라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일리야는 제 위에 앉은 키릴의 몸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여유롭지 않아요. 지금도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일리야의 손이 키릴의 가슴을 더듬었다.
“젖었어요.”
“응.”
“예뻐요. 입에 넣고 싶은데. 여기도 다른 곳처럼 단지, 잔뜩 빨아서 맛보고 싶어요.”
“맛없을 텐데…….”
키릴이 망설이다 일리야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도 다 너 줄게. 둘만 있을 땐 너도 참지 말고.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그 말에 참을 수 없다는 듯 일리야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단번에 말캉한 살을 입안에 삼키고 쪽쪽 빨았다.
“츕, 음……. 달아……. 츄읍…….”
“으응……. 아……!”
넘칠 듯이 차오르는 성감에 키릴이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비틀었다. 다급하게 일리야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밑에서 꿈틀거리는 육중한 기둥에 다리 사이를 비비며 몸을 들썩거렸다. 단단한 거근에 짓눌린 고환이 살갗에 비벼질 때마다 저릿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성욕이 솟구쳤다. 지독한 고양감에 허리가 마구 요동쳤다.
“아, 흐, 응! 으응……!”
“흣, 츄읍…… 하아, 윽!”
가슴에 찬 유액을 죄다 들이마실 기세로 빨아 대던 일리야가 키릴의 엉덩잇살을 콱 움켜쥐었다. 그것이 마치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 것 같아 키릴은 허리를 들어 스스로 제 뒤를 벌렸다. 일리야가 능숙하게 벌어진 구멍 안에 제 것을 밀어 넣었다. 두꺼운 귀두가 들어오고 우둘투둘 핏줄 돋은 흉흉한 기둥이 파고들었다. 저릿한 압박감에 내벽이 성기를 조여 물자 커다란 살덩이가 한층 더 부피감을 키웠다.
“하으, 으으응……. 읏……!”
묵직한 성기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밑구멍을 틀어막는 순간, 쾌감이 등줄기를 훑고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악! 아! 아흐으윽……! ”
“하아, 다 찼는데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키릴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네 거, 하아, 커서……. 흐으, 안이 전부웃, 흣, 쓸려…”
“아프세요?”
“하아, 하으으, 아니, 아…… 조아……. 흐윽…….”
달뜬 키릴의 목소리에 다행이라며 나지막하게 웃던 일리야가 허리를 퍽 쳐올렸다. 키릴의 고개가 뒤로 넘어가자 그때부터 사납게 아래를 마구 쳐올렸다.
“아, 흑! 깊어, 읏, 흐으, 아, 아……!”
지독한 감각이 차올랐다. 강렬한 자극이 뇌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것 같았다.
“으응, 조, 흣, 아, 응! 아, 으으응! 좋아, 아, 아……! 아아!”
허벅지를 벌벌 떨며 생리적인 눈물을 펑펑 쏟던 키릴이 일리야에게 매달려 허리를 난잡하게 흔들었다. 안으로 조이고, 물고, 안을 드나드는 성기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들썩이면서도 안달하며 제 속살을 비볐다. 죽을 것 같았다. 셀 수 없을 만큼 남의 양물을 품었지만 할 때마다 이 느낌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 흥분하여 눈가를 발긋하게 붉힌 일리야가 제 몸을 정신없이 탐할 때는 가슴이 술렁거리다 못해 애가 타서 더욱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이 뒤집힐 것 같은 쾌감에 음탕한 충동이 들끓었다. 키릴은 아래로 요분질을 해대며 제 가슴을 일리야의 몸에 비볐다.
“하아……! 그렇게 빨고, 무시면…… 참기 힘들어요.”
“일리야, 힉, 갈 것 같아, 으응! 싸게 해 줘, 싸 줘, 아, 흑, 으으응!”
“읏, 그렇게 조르시면…… 큿! 키릴 님, 아, 키릴 님!”
일리야가 충동을 참지 못하고 키릴의 목덜미를 물고 키릴의 안을 미친 듯이 찧어 올렸다.
고작 며칠 만인데 죽기 직전까지 굶주렸던 사람처럼 키릴의 몸을 먹어 치우듯 탐했다. 온몸을 더듬으며 난폭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그와 얽힌 채로 죽고 싶었다. 절절한 탐욕에 머리가 돌 것 같았다.
“힉! 흐아아……! 아! 아흣! 흑! 응, 아아……!”
짜릿한 전율이 가시지 않고 절절 끓어 올랐다. 키릴은 정신없이 흔들리다 자신도 모르게 사정했다. 둘 사이에 끼인 성기에서 뿜어져 나온 정액이 둘의 가슴과 배를 질척하게 적셨다. 절정에 달한 내벽이 사정과 함께 포악스럽게 수축하자 일리야가 참지 않고 정액을 분출했다.
“아…… 계속 나와요, 아, 더, 더…… 가득 채우고 싶어요, 채우게 해 주세요. 흣, 키릴 님!”
“아, 아……! 너무, 조, 학, 조아, 응, 응! 해 줘, 으응! 아! 아!”
일리야는 사정하면서도 계속 안을 찧어 댔다. 성기가 점막을 거세게 긁어 댈 때마다 안에 고인 씨물이 같이 뭉개지고 비벼져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졌다. 키릴은 그것이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 하지만 커다란 것이 안을 밀고 들어올 때마다 안에 가득 차 있던 정액이 밖으로 새서 몸 안에 있던 것을 잃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일리야가 긴 사정을 마쳤을 때 키릴은 뒤로만 또 절정을 맞이했다. 사정한 뒤에도 키릴의 안에서 오물거리는 내벽의 감촉을 만끽하던 일리야는 키릴의 몸을 지분거리고 그의 혀를 빨다 다시 발기했다. 부피를 키운 성기가 순식간에 깊은 곳까지 박혀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선뜩하여 키릴이 몸을 파들파들 떨자 일리야가 키릴을 눕혔다.
눈이 풀린 채 헐떡이던 키릴이 일리야를 끌어안자 순식간에 맞붙은 하체가 난잡하게 움직였다. 침대가 거칠게 출렁거리고 키릴의 울음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젖은 살끼리 부딪치며 내는 질퍽한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긴 정사가 끝나고 둘은 젖은 몸을 밀착한 채 숨을 몰아쉬었다.
키릴은 기분 좋은 나른함에 목을 울리며 일리야의 품에 파고들었다. 두꺼운 손이 키릴의 허리를 잡고 바싹 당겼다. 갑갑할 정도고 가까워진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키릴은 일리야의 단단한 허리를 마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정사 후 이렇게 젖은 몸을 끌어안는 것만으로 이런 충족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키릴의 어깨에 입술을 비비던 일리야가 손을 내려 납작한 배를 쓰다듬었다.
“다 괜찮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키릴 님을 아끼는 신께서 이곳에도 은총을 내릴 것이고…….”
“……응.”
“그리고 제가 지켜드릴 테니, 편히 쉬세요.”
일리야의 속삭임을 들으며 키릴은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