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키릴은 집무실에 와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막상 일리야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그 앞에서 멀쩡히 서 있을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이 예배당을 벗어났다. 그때 본 일리야의 마지막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키릴이 시선을 피하고 다시 보았을 때 눈동자에 어려있던 빛이 한순간에 사라지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혹시 내가 피한 이유를 오해해서 자책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피해선 안 되었다는 후회를 반복하던 키릴은 마음을 굳히고 집무실을 나섰다. 동행하려는 수행 사제를 교리실로 보내고 혼자 기사단의 거처로 향했다.
기사단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일리야가 있을 야외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지만, 일단 가서 기다릴 생각으로 훈련장을 찾아갔다.
훈련장이 가까워지자 벌써 사람들의 말소리와 훈련 소음으로 떠들썩했다. 분위기를 봐선 자유 훈련 시간인듯했다. 다행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직 날이 따뜻해서인지 안에는 웃통을 벗은 이들이 한가득했다. 일리야는 그 사이에서 홀로 훈련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터라 유독 눈에 띄었다.
키릴을 발견한 일리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키릴이 자리에 멈춰 서자 일리야가 교관에게 무어라 말한 뒤 밖으로 나왔다.
“시간 많이 뺏지 않을게. 잠깐만, 괜찮을까?”
“물론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어요?”
“어제 일 때문에 내가…….”
거기까지 들은 일리야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키릴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화단이 있는 길을 쭉 따라 걷자 인적이 드물어졌다. 일리야는 훈련소 건물과 외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키릴을 이끌었다. 건물 쪽에 홈이 파인 부분에 들어서자 사방이 벽이었다.
“여기라면 밖에 들리지 않을 겁니다. 다들 귀가 좋아서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키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야를 찾아오긴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입술만 움찔거렸다.
일리야의 시선이 달싹거리는 키릴의 입술에 닿았다. 피부색에 비해 색이 진한 입술이 하얀 이에 짓뭉개지다 튕겨 나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더없이 탐스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일리야가 불쑥 물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일리야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흠칫한 키릴이 한발 물러섰다. 멈칫한 일리야가 입술을 꾹 다물고 키릴을 쳐다보았다. 시무룩한 표정 탓인지 키 차이로 인해 그가 내려다보는데도 이상하게 올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처받은 일리야의 표정에 당황한 키릴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청년의 커다란 손을 잡고 토닥였다.
“괜찮냐니. 그건 내가 네게 물어야 하는 말인데. 나 때문에 네가…….”
키릴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억지로 웃으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날, 나 때문에 많이 놀랐지? 미안하구나. 사과하고 싶어서 왔어.”
“왜 키릴 님이 사과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일이 미안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사과드려야 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제가 자제하지 못했어요.”
되레 사과받을 줄 몰랐던 키릴이 당황하여 고개를 저었다.
“왜 네가 그런 말을 해. 아니야, 내가, 너를 졸라서…….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긴 건데.”
“약 기운 때문이었습니다. 알면서도 그랬어요. 그 당시엔 그 외엔 마땅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시작은 분명 그랬는데 나중엔 아니었습니다. 기억나세요?”
키릴이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입을 다물었다. 기절할 때까지 몰아붙이던 일리야의 모습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제가 너무 서툴러서……. 죄송합니다. 제 욕심을 못 이겨서 키릴 님을 거칠게 대했습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일리야가 사과했다. 어제 일을 상기시키는 그 말에 키릴은 동요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리야는 붉어지는 키릴의 얼굴을 관찰하듯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보다 내가, 어떻게든 참아야 했는데…….”
키릴을 표정을 살피던 일리야가 손가락을 쥔 키릴의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이 맞닿고 손가락이 얽혔다.
“키릴 님이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또 혼자 자책하셨겠죠. 나 때문이라고.”
키릴 님. 일리야가 굳은 목소리로 키릴의 이름을 불렀다. 당황한 키릴은 잡힌 손을 빼낼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일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제겐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사실 그때 그 자리에 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건 싫어요. 싫습니다.”
“…….”
“줄곧 키릴 님을 돕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저 자신이 욕심이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또 키릴 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요.”
이상했다.
키릴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릴 님은 어제 일을 없었던 일로 묻어버리고 싶은 거겠지요. 그래서 아까도 절 보기도 싫다는 듯 외면하신 것일 테고.”
“그건 내가 면목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널 싫어해서 그런 게…….”
“네, 다행이네요. 그런데 피하려 하셨던 건 맞지 않습니까?”
일리야가 말투가 딱딱해졌다.
키릴은 아무런 반론도 할 수 없었다. 일리야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키릴이 이곳에 온 건 사과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선을 그으며 앞으로 자신에게 관여하지 말란 말을 하려 했다.
키릴을 돕기 위해서였지만 그래도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일리야가 조금은 의기소침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또 하나가 되고 싶다고?’
키릴은 상상도 못 한 말을 들은 탓에 머리가 하얘졌다.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절 피하겠다니. 그건 제게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아니면, 혹시…….”
일리야가 조금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거리를 단번에 좁혔다.
“제가 너무 못해서 싫으셨던 건 아니고요?”
귓가에 속삭인 말에 키릴이 당황해서 외쳤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래요? 그럼 나쁘진 않았던 걸까요?”
나쁘진 않았냐니. 좋았다. 너무 좋아서 오늘 아침에도 혼자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키릴은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키릴의 붉어진 볼과 귀 끝을 주시하던 일리야가 더 가까이 몸을 붙여 왔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한데 섞여들었다. 키릴은 그제야 제가 약하게 헐떡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상하게 숨이 찼다.
온몸이 꽉 붙잡히듯 꼼짝도 할 수 없어 가만히 서 있는 키릴을 향해 일리야가 허리를 숙였다. 일리야의 입술이 발긋해진 귀 끝에 닿았다. 키릴이 그제야 주박에서 벗어난 듯 펄쩍 뛰며 일리야를 밀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애원의 말이 쏟아졌다.
“절 피하지 말아 주세요. 그날 우리가 한 일을 죄라고도 생각하지 마세요.”
“……일리야.”
“제발요, 키릴 님. 모르시겠어요? 전 당신을 원해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
“제발. 절 위한다고 절 아프게 하지 말아 주세요.”
키릴은 이 순간 예감했다. 일리야의 저 말 한마디로 이제 키릴은 절대 자신이 먼저 일리야를 밀쳐낼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완벽한 실패였다.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긴커녕 오히려 그 전에 내렸던 결론마저 뜯어고쳐야 했다.
이상하게 허탈하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따스하고 환히 빛나기만 했던 소년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니 슬프기까지 했다. 이제 둘 사이는 그때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키릴은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던 인연의 실이 자신 탓에 질척하게 꼬여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키릴은 선황 대신 일리야의 것을 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일리야의 손에 선황이 목이 날아간 그때부터 이리될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무섭지 않니?”
가슴이 이상할 정도로 쿵쿵거리고 심란했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이가 말했다.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는 건지 알려 주세요.”
선황 때처럼 절벽 끝에 선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키릴은 자신이 지금 절벽 끝에 매달린 것도 모르고 일리야의 발목을 붙잡고 기어오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와 함께 수렁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나한테 휩쓸려서 너까지 벼랑에 밀려 떨어질지도 몰라.”
벼랑이란 말에 일리야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환히 웃었다.
“같이 떨어지는 거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
“어디든.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괜찮아요.”
일리야가 상냥한 목소리로 키릴을 다독였다.
“그래도 키릴 님이 힘든 건 싫으니 떨어지지 않게 노력해야겠군요. ……당신이 추락할 일은 아마 없을 테지만.”
뒷말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린 일리야가 키릴에게 단언했다.
“저에겐 키릴 님이 절 버리는 게 진정한 나락이에요.”
“버리다니…….”
일리야가 원망 어린 눈으로 키릴을 보았다.
“도망치셔도 소용없습니다. 전 어디든 당신을 따라갈 테니까. ……지금까지 그랬듯.”
깍지 낀 손을 들어 키릴의 손등에 입술을 묻었다. 따듯하고 말캉한 입술의 감촉에 키릴은 그대로 굳었다.
“제가 당신을 원합니다. 당신을 은애하다 못해 이젠 당신에게 욕정하기까지 해요.”
일리야가 손등에 다시 입을 맞췄다. 정중하게 입술을 묻던 바로 전과 달리 얇은 살을 핥고 깨물어 빨아들이는 질척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아…….”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손등을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빨고 입술을 비비는 모습에 키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간밤에 일리야가 그의 성기를 빨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몸을 움츠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자 일리야가 입술을 떼고 키릴을 마주 보았다. 소년티가 묻어나는 미형의 얼굴이 진지하게 키릴을 응시했다.
키릴은 까닭 없이 초조해져서 입술을 짓씹었다. 일리야가 그런 키릴의 입술을 집요하게 주시하다 입술 사이에 엄지를 밀어 넣었다.
“피가 비칩니다. 차라리 제 손을 무세요. 괜찮습니다. 키릴 님께 오기 전에 정화하고 왔어요.”
고개를 뒤로 물려 입안에 든 손을 빼고 싶었지만, 일리야가 나머지 손으로 키릴의 턱을 잡고 있어 그러기 어려웠다. 키릴은 엄지에 혀가 닿지 않게 조심하며 입술을 더 벌렸다. 빼 달라는 의미였지만 오히려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든 손이 키릴의 혀를 문질렀다.
“으…….”
은근하게 혓바닥을 문지르며 나머지 손가락이 키릴의 목과 턱을 간지럽히자 아랫배에 묵직한 열기가 들어찼다. 안이 욱신거리고 기분 탓인지 배가 조금 아픈 듯도 했다.
몸은 아직 어제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쉽게 흥분했다. 발정기에 들어선 짐승도 아니고 걸핏하면 이러는 것이 속상했다. 아래를 만진 것도 몸을 애무 당한 것도 아닌데 안에서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키릴은 아래에 열이 더 몰리지 않게 지금의 묘한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제 몸의 반응에 집중하느라 저를 보는 일리야 역시 흥분한 상태라는 것을 몰랐다.
일리야는 제 손을 물고 움찔거리는 키릴의 입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혀를 눌러 입을 좀 더 벌리게 해 안을 집요하게 훑었다.
여린 점막과 축축하고 말캉한 혀, 새빨갛게 피가 몰린 부드러운 입술, 기어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타액, 그리고 그 안을 파고든 제 손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집중하는 일리야의 눈가가 붉었다. 일리야가 충동적으로 턱을 타고 흐르는 침을 핥아 올렸다.
“흣, 으읍, 으응……!”
놀란 키릴이 입을 다물며 침을 삼켰다. 그 바람에 일리야의 손가락을 꽉 깨물며 빠는 꼴이 되었다.
“하아…….”
“웅, 읍?”
키릴은 그제야 일리야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키릴을 보는 일리야의 시선이 짙었다. 키릴의 얼굴에 뿌려지는 숨결마저 덥고 습해서 숨소리가 야하게 느껴졌다. 키릴은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질끈 눈을 감았다. 마치 일리야의 손가락이 아닌 성기를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키릴 님, 섰어요.”
가까이 붙어 있던 탓에 서로가 발기한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것을 고백한 건지, 키릴의 것을 지적한 건지 모를 말에 키릴이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일리야가 키릴의 다리 사이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흣!”
묵직한 압박감에 키릴이 앓는 소리를 내며 휘청이자 일리야가 남은 손으로 키릴의 허리를 받쳤다.
“정화 구슬 있으니 참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일리야는 설마 이 상태로 나갈 생각이라면 그건 안 된다며 강하게 나왔다. 그는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열에 들뜬 키릴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다.
“여기서 해결하고 가셔야 해요.”
허벅지로 키릴의 성기를 비비자 키릴이 괴롭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정감이 차올랐지만 사정할 수 없었다.
“뒤를 만져야 사정한다고 하셨죠?”
일리야는 엄지 대신 검지와 중지를 키릴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키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리야를 쳐다보았다. 어린 청년이 양 볼을 수줍게 붉히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핥아 주시면 안 될까요?”
일리야가 열에 들뜬 눈으로 키릴을 보며 속삭였다.
키릴이 얌전히 입안에 들어온 손가락을 빨자 일리야의 숨소리가 느려졌다. 손가락이 충분히 젖자 일리야는 아쉽다는 듯 손가락을 빼더니 키릴의 뒤를 더듬거렸다. 그리고 바지 속으로 속을 집어넣더니 바로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뒤가 젖어 있는데. 바로 넣어도 될 것 같아요.”
“아! 자, 잠깐! 앗!”
키릴이 말리기도 전에 손가락이 안을 푹 쑤시고 들어왔다. 손끝으로 속살을 짓누르며 밀고 들어오는 통에 키릴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일리야의 어깨만 움켜쥐었다.
“흐…… 흣, 으, 읏……. 아…….”
안이 흠뻑 젖어 있었다. 꾹 다물려 있던 내벽이 너무도 쉽게 열렸고 순식간에 손가락을 삼켰다. 여린 점막이 끈적하게 손가락에 달라붙어 오물거리자 일리야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안을 조심스럽게 더듬던 그는 키릴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자 바로 힘을 줘 속살을 짓뭉개며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으응! 응, 흐으, 윽…… 흣!”
키릴은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이물감에 성기를 잔뜩 세우고 허리를 떨었다. 손가락이 안을 쑤석거릴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귀에 달라붙었다. 다리 사이를 파고든 일리야의 허벅지가 키릴의 발기한 성기를 짓누르고 비벼 주자 앞뒤에서 가해지는 자극에 바로 가버릴 것 같았다. 키릴은 다급히 일리야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대로 사정했다.
“…으윽, 흐으……. 하아, 하아…….”
사정감에 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머릿속 이성마저 흐물흐물하게 풀린 건지 키릴은 사정 뒤에 딸려오는 만족감에 취한 상태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몸에 밴 경험 탓일 것이다. 선황이나 태의는 키릴의 뒤에 뭐든 넣고 나면 한 번으로 끝낸 적이 없었다.
키릴이 일리야를 멍하니 올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안을 다시 조였다. 습관적인 행동이었지만, 그 때문에 빠져나가려던 손이 다시 안을 짓쳐들어왔다. 키릴은 숨기듯이 일리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달뜬 숨을 뱉었다.
구부러진 손가락이 안을 긁어 댈 때마다 눈앞이 아찔했다. 치솟은 흥분에 천박하게 허리를 흔들며 일리야에게 달라붙어 몸을 비벼 대고 싶었다. 안이 간지러웠다. 손가락이 아닌 더 큰 것으로 깊은 곳까지 마구 긁어주었으면 했다.
“응, 으응…… 흣! 아, 안 돼……!”
머릿속에서 추잡한 상상을 하며 또다시 앞섶을 적셨다.
키릴은 사정하며 다급히 일리야의 손을 잡아당겼다. 더 자극하면 정말 일을 낼 것 같았기에 손길이 급박하기 그지없었다. 일리야는 순순히 키릴이 이끄는 대로 손을 빼냈다.
키릴이 일리야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뒤늦게 툭 튀어나온 일리야의 아래를 발견했다. 키릴의 사정을 도우며 정작 본인은 그대로였다.
“그…… 내가 도와줄까?”
키릴이 망설이다 물었다. 일리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보고 참지 말라며. 그럼 너도 참지 마.”
“키릴 님은 참지 않아도 되지만 저는 참아야 합니다. 더 했다간 여기가 밖이란 걸 잊고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키릴 역시 그래서 일리야의 손을 급하게 당기지 않았던가.
키릴이 시무룩한 기색을 보이자 일리야가 그런 키릴을 핥듯이 쳐다보다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대신 키스해 주세요.”
그거면 될까 싶어 키릴이 머뭇거리다 입술 갖다 대었다. 그리고 뻗어 나온 두 팔에 붙잡혀 순식간에 일리야의 품에 갇힌 채 쏟아지는 격렬한 입맞춤을 받아내야 했다.
“으음! 웁, 쯉…… 우응…….”
뜨겁게 달아오른 숨소리. 젖은 살갗을 빠는 소리. 혀가 비벼지고 진득하게 엉키며 서로의 타액마저 뒤섞였다. 마치 입으로 하는 섹스 같았다.
겨우 두 입술이 떨어지자 서로의 혀끝에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하아, 하아, 하…….”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키릴의 눈이 탁하게 풀려 있었다.
“이것도 좀, 위험한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리야는 멈추지 않았다. 키릴의 이마와 볼, 코끝에 입을 맞추고 다시 입술을 삼켰다. 키릴을 품 안에 가두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키스하는 도중 키릴의 성기가 다시 발기한 것을 느낀 일리야가 하체를 붙이고 거칠게 비벼 댔다.
품 안에서 키릴이 흐느끼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안고 있던 손을 내려 키릴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날, 새벽이 오도록 탐했던 몸이 다시 그의 품 안에 있었다.
맞닿은 가슴에선 옷 너머로도 부푼 유두가 느껴졌다. 키릴이 움직일 때마다 유두가 짓눌리며 이리저리 쓸리는 것이 느껴졌다. 붉은 기가 도는 그 말캉한 살덩이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었다.
제 허벅지에 짓눌려 무방비하게 희롱당하는 성기 역시 그 모양과 색, 체취마저 일리야의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아. 아…… 일리야…….”
“하아, 좀 더 만지고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
“흣, 으, 응. 마, 만져 줘.”
키릴의 옷 속을 파고든 손이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품 안에서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튜닉을 제치고 셔츠 위에서 가슴을 빨았다. 젖은 천의 감촉과 강하게 빨리는 느낌에 키릴이 파들거리며 울먹였다.
흐릿하게 풀린 눈이 일리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흐느끼듯 습한 숨결을 뿌리며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모습에 일리야가 집어삼키듯 다시 입술을 겹쳤다.
“…우읍, 하아……! 으응…… 일리, 야, 나, 갈 것 같…… 으응, 가게 해…… 읍!”
몸 안에서 이는 열기를 참지 못한 키릴이 일리야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비비며 헐떡거렸다. 일리야는 몇 번이고 입술을 겹치며 사정감이 치밀자 그때야 키릴의 안을 다시 손을 찔러 넣고 같이 사정했다.
“하아, 키릴 님. 절 받아 주세요.”
“학, 하아…….”
“당신 거예요. 전부 드릴 테니 데려가 주세요.”
일리야가 키릴의 볼과 목덜미, 그리고 귓가를 질척하게 핥아 대며 전담 기사로 받아 달라고 졸랐다. 키릴은 품 안에서 정신없이 헐떡이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알고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일리야는 만족했다.
추기경은 키릴의 전담 기사로 일리야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오늘 예배당에서 키릴을 본 순간부터 그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기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키릴만 허락한다면 자신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다.
키릴이 조금 진정되는 듯 보이자 일리야는 그의 옷 정리를 도왔다. 차림새를 정돈한 뒤 키릴의 손등과 손바닥에 입술을 비비며 약속을 지켜 달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키릴이 다시 물리지 못하도록 완전히 못 박고 싶은 듯했다.
키릴이 한숨을 흘리면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리야를 짧게 안아 준 후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조금 긴장한 기색이 어려 있던 일리야의 얼굴이 그 한마디에 화사하게 빛났다.
“배웅해드릴게요.”
다시 추기경에게 가야겠다고 말하는 키릴의 얼굴은 여전히 발간 채였다. 일리야는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 키릴을 훈련장 밖까지 배웅하며 속으로 훈련장을 몇 바퀴 달려야 할지를 생각했다.
직후 추기경에게 다시 돌아간 키릴은 일리야를 전담 기사로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추기경은 노골적으로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고,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일리야는 기다렸다는 듯 그날 밤 바로 옆방으로 짐을 옮겼다. 선황이 쓰던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