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 미쳤나 보다.”
다음 날, 눈을 뜬 키릴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어제의 기억에 키릴은 다시 기절하고만 싶었다. 뒤늦은 수치심이 해일같이 그를 집어삼켰다.
새벽쯤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깐 눈을 떴을 때 잠결에 들었던 목소리가 꿈이 아니었다. 낮부터 밤이 될 때까지 일리야와 뒤엉킨 것부터 아침 훈련이 있어 먼저 간다며 키릴의 이마에 입술을 묻던 기억까지 죄다 현실이었다.
키릴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벌건 대낮에 벌인 자신의 추태를 견딜 수 없었다.
당황하는 일리야를 도와 달라는 핑계로 몰아붙여서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다. 사제라는 자가 성기사를 꾀어 그의 몸을 탐하다니. 얼마나 추잡해 보였을까.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스러웠다.
선황과 태의에겐 별별 꼴을 보이면서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지금은 가슴이 갑갑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정결한 성기사를 더럽힌 것 같아 죄악감을 품으면서도 동시에 의아하기도 했다.
‘왜 그랬지?’
일리야는 대체 왜 그랬을까. 고작 약에 취해 발정 난 신관을 달랜다고 성기사가 정결을 버리다니. 성기사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신실하게 노력했던 아이였다. 그렇기에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다. 키릴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다 그 아이가 너무 순진하고 다정해서 키릴에게 휩쓸리고 만 결과였다. 키릴을 걱정해 찾아와 줄곧 곁에 있어 준 것이 되레 독이 되었다. 그 아이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아침에 먹은 약의 효력이 남아 봤자 얼마나 남았을까. 그런데도 달아오른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고작 성욕을 어쩌지 못해 일리야를 끌어들인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못나게만 느껴졌다.
이럴 바엔 선황과 태의와 난잡하게 뒹굴 때 진작 신성을 잃고 신전에서 사라졌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도 여전히 몸 안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신력에 키릴의 안색은 어두웠다.
자신 때문에 살인을 했고, 정결한 육신에 육욕이 새겨졌다.
키릴의 머릿속에서 해맑게 웃던 어린 소년의 얼굴이 점차 서늘한 낯빛의 청년으로 변해갔다.
선황에게 칼을 꽂아 넣던 일리야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싸늘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게 키릴이었다. 선황은 일리야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온전히 키릴 때문에 일리야가 그런 일까지 벌였다. 신께서 만약 일리야가 한 일을 죄라 한다면, 그건 키릴의 죄였다.
그것만은 제 몫이었다.
‘당연히 사과해야겠지.’
사죄한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제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키릴이 정말 일리야를 걱정한다면, 그가 잘못되길 원치 않는다면 그는 일리야와 거리를 둬야 했다. 다정한 아이라 키릴을 걱정하다 또 어제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몰랐다.
생각이 정리되어 당황스러웠던 감정이 진정되어서일까. 전날의 일을 떠올리던 키릴이 얼굴을 붉혔다. 그의 위에 올라타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던 자신과 홀린 듯이 저를 쳐다보던 눈빛. 몸을 들썩일 때마다 자궁이 찌부러지고 그대로 깊은 곳까지 꿰뚫려 안쪽이 엉망으로 변해버리던 감각.
“하아…….”
아직 몸 안에 그때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우악스럽게 제 안을 파고들던 살덩이와 목덜미에 쏟아지던 더운 숨을 떠올리자 아래가 뻐근해졌다. 고작 그것만으로 금세 키릴의 숨이 가빠졌다. 엉덩이 사이에 바싹 힘이 들어간 것을 느낀 키릴이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하아……. 정신 차려. 이게 무슨 추태야.”
키릴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어제의 기억을 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제 뒤를 정신없이 빨던 뜨거운 입술과 혀의 감촉이 떠오르자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뒤가 벌름거리다 저 혼자 꽉 조여들 때는 이유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다. 키릴이 아래를 더듬자 예상대로 성기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일리야가 여기에 제 뺨을 문질렀다. 키릴이 제법 단단해진 살덩이를 쓸어올리다 귀두에 손끝이 닿았다.
‘제가 꼭, 그자가 생각나지 않도록 해드릴게요.’
“아…….”
집요하게 요도 구멍을 괴롭힘당했던 기억을 떠올린 탓인지 만지지도 않은 요도 주변이 쓰라리고, 간질간질했다.
“으응…… 흣……!”
어느새 키릴은 어제 일리야가 했던 것을 흉내 내듯 손끝으로 요도 구멍을 비비고 긁어 댔다. 찌릿한 느낌에 몸 안쪽이 저릿저릿해서 키릴은 저도 모르게 저항하듯 발끝으로 시트를 밀어냈다.
키릴은 학학대며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덥고 습한 기를 가득 머금은 숨소리는 잔뜩 흐트러져 흐느낌에 가까웠다.
키릴이 유두를 만지작거리다 엉덩이 사이를 더듬었다.
일리야는 유두를 만질 땐 조심스럽게 핥고 깨물더니 아래를 쑤실 때는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껏 품었던 남성의 성기 중 가장 우람했고 움직임이 거칠었다. 힘도 넘쳐서 쉼 없이 거칠게 쑤셔박히는 바람에 안이 헐 것 같아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두려움보단 쾌감이 더 커서,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허리가 절로 떨렸다.
“학, 아…… 으응…… 응, 응! 아! 아!”
키릴은 검지와 중지로 안쪽 주름을 문지르다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일리야의 것은 이것보다 훨씬 컸다. 단단한 살기둥이 거칠게 안을 헤집고 쑤셔 대던 감각을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안을 쑤석거리자 어제처럼 다시 그 큰 것이 안을 드나드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응! 으응! 아, 아응! 응! 흣, 흐아……!”
몇 번 쑤시지도 않았는데 키릴의 성기에서 정액이 튀었다.
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축 늘어진 키릴이 제 몸에 튄 정액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구 없이 혼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안을 쑤시던 감각을 떠올리며 흥분한 적은 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키릴은 선황이나 태의가 자신을 어떻게 만졌는지 하나하나 떠올리며 흥분했던 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끓어올랐던 열기가 식고 나자 가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사과하고 거리를 둘 생각이었는데, 그를 상대로 흥분해서 혼자 가버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일리야가 어제처럼 또 그렇게 다가오면 과연 키릴이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선황에게도 못한 일을 일리야를 상대로 말이다. 일리야를 위해선 그와 멀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키릴은 자신할 수 없었다.
피하자.
단순히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그 아이가 자책하지 않게 제 잘못을 고하고 그 이후엔 아이 곁에 얼씬도 해선 안 되었다. 더 이상 자신과 엮이지 않게,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그래야 했다.
키릴은 애써 생각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전 예배 시간이 머지않았다. 어서 준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