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7/72)

6.

몸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황제에게 시달리고 난 뒤 약한 몸살 기운이 돌았다. 하지만 신성력으로 치유할 수도 없었기에 감기에 좋은 차를 마신 것이 다였다. 오늘 저녁이면 다시 약효가 끝날 테니 약이 필요했다. 다시 피임약을 받기 위해 태의를 만나야 하는데 막막했다.

평소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태의를 만났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에 어째선지 태의는 더욱 흥분하여 키릴의 안을 파고들었다.

아침에 황제가 정액을 흘리지 말라며 막아 놓은 것을 뽑아낸 태의가 그 안에 제 씨물을 두 번이나 퍼붓고도 모자라 키릴을 붙잡았지만, 몸이 좋지 않았던 키릴이 사정하다시피 하여 두 번으로 끝낼 수 있었다.

“전에 알려드린 주의사항,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신성력으로 몸을 치유하면 안 되는 이유를 떠올린 키릴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의가 아쉬운 얼굴로 키릴을 놓아주었다.

오는 길에 일리야와 마주쳤지만, 키릴은 알아채지 못하고 바삐 움직였다.

속이 좋지 않았다. 이마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키릴은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사실은 뛰고 싶었지만 안쪽에 마개가 박혀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속도 좋지 않은데 아래까지 신경 쓰여 정신이 없었던 키릴은 뒤에서 따라붙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운과 코트를 벗고 욕실로 뛰쳐들어갔다. 세면대에 구역질하며 위액을 쏟았다. 체한 것치곤 나오는 것이 없었다. 배가 아프고 속이 쓰렸다. 복용하는 약 때문인 것 같은데 평소보다 고통이 심했다.

키릴이 비틀거리며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어질한 머리로 태의가 한 말을 떠올렸다. 효과가 상반된 약을 먹고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자궁을 잔뜩 자극해 놓고 억지로 못하게 하면 임신 성공률이 높을수록 그만큼 몸에 반동이 올 것이라고. 그때는 절대 신성력으로 치료해선 안 된다고 했다. 피임약의 효과가 사라지고 임신할지도 모른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이 고통은 약을 먹지 않았다면 그대로 임신했을 거란 경고나 마찬가지였다.

문득 조금 전 유난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던 태의가 생각났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에 그 이유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은 이토록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은 일인데. 그에겐 남자를, 신관을 임신시킨다는 일이 그토록 흥미로운 일인가. 키릴은 부들거리는 팔로 제 몸을 감싸 안았다.

만약 임신했다면 누구의 아이일까. 선황, 태의?

구역질이 올라왔다. 키릴은 고통에 옷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아픈데, 너무 아프고 힘든데 당장이라도 씻고 싶었다. 키릴은 튜닉과 바지를 벗고 셔츠 단추를 풀다 바닥에 꼬꾸라졌다.

뒤이어 열린 문틈으로 뒤따라오던 누군가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하얀 기사복을 입은 장신의 청년은 일리야였다. 조금 전 길에서 마주친 키릴의 안색이 너무 창백해서 걱정된 일리야가 그를 따라온 것이었다.

“키릴 님!”

욕실 안의 상황을 보고 놀란 일리야가 키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셔츠만 걸친 키릴의 벗을 몸을 보고 놀라 그대로 굳었다.

키릴의 상태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하얀 몸이 잇자국과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유두는 퉁퉁 부어 보기에도 아파 보였다. 하체 역시 엉망이었다. 엉덩이 사이에 작은 고리 같은 것이 삐죽 나와 있었고 그 부근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건 누가 봐도 정사의 흔적이었다.

충격받은 일리야가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다 곧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누가 감히 이런…….”

일리야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했던지 반쯤 정신을 잃었던 키릴이 눈을 떴다.

그리고 일리야와 눈이 마주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채 꺼내어지지 못한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일리야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키릴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보지 마.”

들켰다는 충격에 키릴은 얼굴을 숨겼다.

“보지 마, 제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망연하게 묻는 말에 키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그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계시에 대한 건 말할 수 없었다. 자칫 와전되면 모든 책임을 신에게 떠넘길 수도 있었다.

계시는 이미 이루었고, 더는 타인과 관계를 나눌 이유는 없었다.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한 것은 키릴 자신이었고 그 지경까지 몰고 간 건 선황이었다.

임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몸이라 계시의 후유증이나 다름없었지만, 나약한 인간이라 결국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리 헐떡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를 이렇게 만든 선황이 아닌, 신에게 책임을 묻는 건 키릴에겐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기만 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자신만 망가지고 끝날 문제였다.

하지만 이렇게 들킬 거라는 걸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 어쩌면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도 정신 나간 짓을 반복했다.

키릴은 몸을 가리기 위해 셔츠를 여미고 있던 손을 내렸다. 벌어진 틈으로 난잡한 흔적이 가득한 하얀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흔들리는 일리야의 눈을 응시하며 키릴이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키릴 님?”

“내가 원해서 한 거야. 정말이야.”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일리야를 마주 보며 두 손을 뻗었다. 일리야의 양 뺨이 손에 닿았다. 부드러운 감촉에 설핏 젖은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오히려 좋아해. 사제로서 정숙하지 못해서 부끄럽지만 아무 때나 발정하는 몸이라…….”

부여잡은 얼굴을 끌어당겨 그 입술에 입을 맞대었다. 일리야가 뻣뻣하게 굳었다.

“난 이런 거, 누구와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

일리야를 끌어안고 부어오른 유두를 단단한 몸에 비볐다. 아, 아……. 키릴의 입에서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나오자 일리야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그 모습을 새기듯이 지켜보았다.

그 시선에 키릴은 발기한 제 성기를 보였다.

“이거 봐. 젖꼭지 좀 비볐다고 이렇게 되잖아.”

그 모습이 지독히도 야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실 하지 않으면 잠도 잘 못 자.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날 교단에 고발할 게 아니라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말하지 않아요. 아무에게도.”

“그래?”

키릴이 흐릿하게 웃었다.

“고마워. 그리고 이런 사람이라 미안해.”

무언가에 붙잡힌 듯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일리야는 그 미소를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팔을 뻗어 키릴의 어깨를 붙들었다. 당장 그가 제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키릴 님…….”

붉게 달아올라 색기마저 느껴지는 눈가를 조심스레 쓸었다.

“울지 마세요.”

“미안해.”

“저한테 사과하지도 마시고요. 그러지 마세요.”

“미안해.”

왜 사과하는 줄도 모른 채, 그렇게 몇 번이고 속삭였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헤매듯 텅 빈 눈을 보며 일리야는 분노와 자책으로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 같았다.

힘없이 늘어지는 몸을 받아 품 안에 들였다.

‘왜,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모를 수 있어…….’

눈 밑이 뜨겁고 목이 메었다. 하지만 그가 울면 키릴이 더 울 것 같아서 참았다.

“제발 울지 말아요.”

일리야는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키릴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

그날 밤.

일리야는 기척을 죽이고 키릴의 침실로 향했다.

키릴이 괜찮다며 모른 척해 달라고 밀어내는 통에 그대로 헤어졌지만, 그는 오늘 있었던 일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키릴은 미안하다는 말 외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몸을 그렇게 만든 이가 누구인지, 왜 아픈 몸을 치유하지 않았던 건지.

신전에서 자란 키릴이 어쩌다 색사를 알게 된 것일까. 자신처럼 신전에 들기 전 환락가를 들락거린 것도 아닐 텐데.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일리야는 키릴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어딘가 부서진 사람의 눈이었다. 상대가 키릴을 사랑하건 말건 그건 일리야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키릴의 상태와 그의 마음이었다.

신전을 오가며 간혹 키릴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유독 피곤한 듯 보이거나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때가 간혹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왜 몇 달 만에 밖으로 나온 키릴이 그토록 초췌한 모습이었는지도.

일리야는 안일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일단은 키릴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다수와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오늘 일이 없었다면 일리야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지 의심스러운 자는 있었다. 일단 사제는 아니었다. 교황이라면 모를까. 추기경조차 압도적인 신성을 가진 키릴을 그런 식으로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성기사는 일단 보류해 두었지만, 일리야가 주의해서 보고 있기에 아닐 가능성이 컸다.

외부 손님 중 키릴이 자주 만나는 이는 단 한 명.

일리야는 키릴의 방과 그 옆 방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

‘예상이 맞는다면 이 중 한 곳에 있겠지.’

몸에 신성을 두르고 부여받은 권능을 일으키자 일리야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먼저 키릴의 방문 앞에서 안쪽의 기척을 읽었다.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리야가 서늘한 얼굴로 선황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잠긴 문을 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 떨어진 희뿌연 점액질이 침실까지 이어졌다.

침실 주인은 문이 열리는 것도 모를 정도로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늘은 네가 먼저, 약을 청하다니, 헉, 헉, 드디어 너도, 둘째를, 가지고 싶어진 거냐?”

“으응, 응, 학, 아, 더, 더 해 주, 흣, 해 주세요. 아, 흐윽!”

“계시가 없다고 싫다더니, 그래, 더 줄 테니, 헉, 이번엔, 제대로 임신하거라.”

예상했었다지만 실제 키릴의 정사 장면을 보자 생각 이상으로 충격이 컸다.

침대 위에 앉은 선황의 허벅지 위에서 키릴이 허리를 흔들며 흐느끼고 있었다. 신성을 사용했기에 진즉 일리야의 존재를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는 듯했다. 육체적 행위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키릴의 전신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땀에 푹 젖어 있었다.

“응, 흐으, 읏, 하으…… 읏, 응, 아, 아아!”

팔을 뒤로 뻗어 선황의 무릎을 짚고 말 타듯 허리를 들썩거리다 스스로 내벽을 비비듯 엉덩이를 돌리고 음란하게 흔들었다.

솟구치는 흥분에 못 이겨 하얀 목덜미를 뒤로 젖히고 쉴 새 없이 신음을 흘리는 모습이 무서울 정도로 남자의 음심을 자극했다.

상상도 못 했던 모습이었다. 일리야는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선황이 한 말을 한발 늦게 인식했다.

‘계시, 둘째……. 임신?’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웃으며 쉼 없이 아랫도리를 들썩거리던 선황이 음탕한 사제에게 벌을 준답시고 키릴의 엉덩이를 짝짝 내려쳤다.

“이번에도 짐의, 씨를 품는 거다. 헉, 그리고 짐을 위해, 이 음란한, 헉, 몸뚱이로, 신의 은총을 내리는 거다.”

키릴의 둔부가 금세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맞을 때마다 움찔거리던 키릴이 끈적한 신음을 흘리며 정액을 싸질렀다. 동그란 엉덩이에 선황제의 손자국을 달고 키릴이 발정 난 짐승처럼 정신없이 아래를 팡팡 찍어 댔다.

제 위에서 날뛰는 키릴의 안에 제 성기를 찔러 올리며 선황제가 또다시 손을 휘둘렀다. 키릴의 몸에 시뻘건 손자국이 점점 늘어갔다.

선황을 보는 일리야의 시선에 한기가 어렸다. 하얗게 뼈마디가 불거져 나올 정도로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선황이 키릴을 침대에 밀어 넘어뜨리고 그 위를 덮쳤다.

“네 구멍이, 내 것을, 잡아먹을 듯이 조이는구나. 헉, 헉, 좋으냐, 키릴?”

“흐윽, 읏, 으흐, 아, 아, 아! …폐하! 폐하, 폐하가 절 이리…… 학, 흐읏!”

“그래, 자위도 못 하던 너를, 귀한 약을 써가며, 헉, 쾌락의 기쁨을 알게 한 이가 나다.”

검을 가지고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일리야는 폭력적인 충동을 억누르고 흥분한 선황이 내뱉는 말들을 유심히 주워들었다.

계시, 임신. 둘째, 그리고 약. 은총은 단순한 비유에 불과한 것일까.

“널 이렇게 만든 건 나다. 헉, 헉, 짐이란 말이다!”

“넌, 내 것이다. 헉, 헉, 너도 날 원하지 않았느냐.”

“짐에게 안기고 싶어 아래를 적시고 울면서 찾아오지 않았느냐, 응?”

단편적인 조각만으로는 둘 사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오래 이어져 온 관계인 것만은 확실했다.

정보가 모자랐다. 자신이 움직여도 키릴이 슬퍼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필요했다.

선황의 목과 허리를 감은 하얀 팔과 다리가 일리야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는 남자의 커다란 성기에 꿰뚫린 채 쾌락에 젖어 우는 하얀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리야는 자신의 아래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바지를 뚫고 나올 듯 툭 튀어나온 제 신체의 일부를 노려보다 다시 키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리야는 그 뒤로도 한동안 기척을 죽이고 둘의 정사를 몰래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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