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2년 전 봄.
밝은 금발에 예쁘게 생긴 소년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두 손에 얼굴을 얹고 멀리 보이는 예배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승격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수련생에서 후보생이 된 지 2년 만에 정식 기사가 된다는 말이었다.
검술만으론 이미 정식 기사가 되고도 남았고 이번 생일에 주신의 간택을 받는 데 성공하여 그토록 원하던 성기사가 될 자격을 손에 넣었다.
“조금만 더. 상급 기사가 되면 그땐…….”
소년의 진짜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무릎 위로 두 손을 모았다. 부디, 오늘도 평안하시길. 달 같이 빛나는 그의 사제가 있을 곳을 향해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소년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잡았다, 이 녀석! 훈련은 하지 않고 여기서 뺀질거리고 있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기도 중이었습니다.”
기사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도 소년은 맞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핑계 대지 마라. 기도는 훈련장에서도 할 수 있는 거고. 이렇게 노닥거리는 걸 보니 다시 허드렛일을 하고 싶은가 보구나?”
말을 그렇게 해도 기사는 이 조그만 녀석이 다시 잡부가 될 일은 영영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청소, 빨래, 설거지, 뒷정리까지. 일리야는 다 잘했다. 기사단에서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꼬마였는데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손이 야무지고 하는 게 똘똘해 보여 재미 삼아 목검을 쥐여 줬는데 그걸 썩 잘 다뤘다. 한눈에 범상치 않은 재능을 알아챈 단장이 냉큼 꼬마를 훈련생으로 집어넣었다.
소년은 손재주가 좋았다. 집중력도 좋은 데다 몸 쓰는 일에 재능이 있었다. 그런 녀석이 악바리처럼 노력까지 하니 실력이 하루게 다르게 늘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렇게 죽기 살기로 제 몸을 단련하더니 결국 기사 후보생이 되어 곧 정식 기사 자리를 코앞에 두었다. 눈앞에서 그 성장을 지켜봐서 그런지 그는 꼬마가 퍽 기특했다. 그래서 훈련장에 녀석이 보이지 않자 이렇게 몸소 찾으러 나온 것이다.
“교관님.”
“왜?”
소년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가자 신전 안쪽으로 들어가는 화려한 무리가 시야에 걸렸다. 지금껏 많은 귀족을 보았지만, 저토록 화려한 무리는 손에 꼽았다.
“어느 분의 행차십니까?”
“남궁으로 내려가셨던 선황제께서 수도로 돌아오셨다. 요양을 위해 당분간 신전에 머무르신다는구나.”
“또 키릴 님을 찾으실까요?”
“그렇지 않을까? 선황제의 신임이 대단하니 그분께서 담당하시겠지.”
“그렇군요. 또 한동안은 뵙기 어렵겠네요.”
선황이 오면 키릴은 예배당이 아닌 선황의 개인 기도실에 주로 머물렀다.
소년은 아쉬움을 삼키며 훈련장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