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8/72)

12.

한 달 뒤, 황제가 등 뒤에 일행을 달고 침실로 들어섰다.

“당신은…….”

황제의 동행자는 침실에 후궁과 같이 있던 남자였다.

“앞으로는 태의가 네 몸을 봐줄 것이다.”

‘남자 후궁이 아니라 의원이라고? 의원이 왜 황제의 침실에 후궁과…….’

키릴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다가 뒤늦게 황제가 이곳에 의원을 부른 이유를 깨닫고 창백하게 질렸다. 불안한 눈빛에 황제가 달래듯이 키릴의 등을 어루만졌다.

“놀라기는. 입이 무거우니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 거다. 임신 기간 동안 보살펴 줄 이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태의 자네도 마법사가 알려주었던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겠지?”

황제의 눈짓을 받은 태의가 빙긋 웃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읊었다.

“품고 계신 자궁은 보통의 자궁과 달라서 다섯 달을 품은 뒤 산란한다고 합니다.”

“산란…….”

그래, 그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연습이라는 핑계로 가짜 알을 집어넣고 스스로 뱉으라 시키지 않았던가. 하지만 남의 입에서 산란이란 말을 들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키릴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단 잘 드시고, 자궁을 계속 자극해 주셔야 합니다. 먹는 건 태아의 영양분이고, 자궁을 자극하는 건 태아를 감싼 보호막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호막을 강화한다니. 그게 무슨…….”

“물론 강화하지 않아도 웬만해선 보호막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지만 그래도 태아를 위해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출산 중에 보호막이 깨지면 무사히 태어나고도 아이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출산. 산란. 분명 빨리 낳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런데 왜 태어난 뒤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까. 키릴의 눈에 서린 의문을 읽었는지 태의가 마저 설명했다.

“인공 자궁이라 태아를 오래 품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호막은 출산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태아의 성장이 끝날 때까지 계속 유지됩니다. 그러니 미리 보호막을 강화하여 출산 중이나 출산 후에 보호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 주어야지요.”

“…….”

“음, 그 외에는 임신 중 체형 변화인데. 두 달째부터 배가 불러온다고 합니다. 옷으로도 충분히 숨길 수 있는 정도라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태의가 키릴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입덧은 없어도 대신 아래 사정이 조금 곤란하실 겁니다. 자궁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거기로 삽입 받는 거라. 모유가 나올 때부터 몸이 이상하지 않으셨는지요?”

“…….”

“너무 참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으니 제게 말씀해 주시면 폐하를 불러오도록 하지요.”

태의는 시종 진중한 표정이었지만, 키릴은 마지막에 그의 얼굴에 얼핏 스쳐 지나갔던 웃음기를 보았다.

어차피 임신 초반 때를 제외하면 황제는 밤마다 부지런히 키릴을 찾았다. 설령 바쁘다 하더라도 굳이 먼저 찾을 생각은 없었다. 고삐가 풀리는 건 밤으로 충분했다.

이후 태의는 매일 같이 키릴의 침실을 찾아 상태를 본답시고 키릴의 옷을 들치었다.

아무리 자신이 이런 일에 무지해도 임산부를 이렇게 진료하진 않는다고 거부하자, 인공 자궁이라 세심하게 봐야 한다며 키릴을 설득하려 들었다.

그래도 싫다고 거부했더니 그날 밤 황제가 태의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라며 충고했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 걸 정말 진료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겠지. 황제는 알면서 그리 말한 거였다.

황제의 침대에 누워 후궁을 끌어안고 자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둘은 침대도 공유하는 사이이니 태의를 향한 황제의 신임이 오죽 두터울까. 그렇기에 오히려 태의를 신용할 수 없었다. 키릴은 두 사람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황제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키릴은 이미 막다른 곳에 몰렸다.

키릴은 황제의 감시 속에 태의와 다시 마주했다. 가슴을 풀어 헤치고 벗은 다리를 벌렸다.

태의가 진료대에 다가와 살짝 선 유두와 그를 조이는 황제의 선물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음……. 가슴에 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체질에 따라 다른 것이니 그건 괜찮습니다. 다만, 유두를 계속 조이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가슴에 숨결이 닿아 간지러웠다.

“그리고 젖물도 적당히 빼 주셔야 합니다. 지금 해 보시겠습니까?”

태의가 그렇게 말하며 키릴의 표정을 살폈다. 키릴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중에 하겠다고 답했다. 태의는 생긋 웃으며 가슴에서 눈을 뗐다.

“아래는, 통증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키릴의 대답에 애매한 미소를 보이던 태의가 손가락에 동그란 구슬 두 개가 달린 반지를 꼈다.

“황손께서 무사히 자리를 잡은 건지 확인을 해야 하니……. 송구합니다. 조금 참으셔야 합니다.”

“무슨…… 흣!”

벌린 다리 사이로 태의의 손이 파고들었다. 조심스레 입구의 주름을 더듬더니 슬쩍 안으로 손가락 두 개를 찔러 넣었다.

벌려 보라고 하더니 진짜 넣을 줄은 몰랐던 키릴은 너무 당황하여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태의와 황제를 번갈아 보며 이 상황에 의문을 표했다.

겨우 입을 열고 그만두라 말하려던 순간, 안쪽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윽!”

손가락에 낀 차가운 금속이 묵직하게 안쪽 살을 비비며 파고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이상해서 키릴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불안한 눈으로 아래를 보았다. 낯선 남자의 손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태아의 맥을 검사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 거북하셔도 참으셔야 합니다.”

남자는 태아가 너무 작고 일반적일 때와 달라서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키릴을 달랬다.

“언제까지… 읏, 해야 합니까.”

“…….”

키릴은 남자의 손가락이 상당히 길다는 것을 알기 싫어도 알게 되었다. 손가락과 구슬이 안을 가르며 깊은 곳까지 닿았다. 내벽을 문지르고 짓이기는 손길에 몸이 오싹오싹했다.

키릴은 애써 신음을 참았다. 태의의 손가락에 느낀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태의, 대, 대답해 주세요.”

“곧 끝납니다.”

안이 축축이 젖는 느낌이 들더니 곧 아래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가 벌름거리며 태의의 손을 꾹꾹 물었다. 속살이 끈적한 액을 질질 흘리며 손가락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빨아 댔다. 키릴이 앉은 자리에 물이 흥건했다. 키릴은 당장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려가 숨고 싶었다.

“당연한 생리 현상이니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사제님.”

태의의 손짓이 점점 빨라졌다. 태아의 맥을 잰다면서 왜 손을 그리 놀리는지 묻는 대신 키릴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래가 움찔움찔했다. 키릴은 허벅지를 벌벌 떨며 태의를 쳐다보았다.

불신과 의문, 그리고 희미하게 깃든 혐오와 성적인 열기.

순진하리만치 솔직한 눈빛에 남자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안을 쑤셔 대던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털듯이 빠르게 흔들었다. 손가락이 안에서 진동하듯 날뛰었다. 애액이 사방으로 픽픽 튀었다. 강렬한 자극에 키릴의 고개가 절로 뒤로 넘어갔다.

“응, 흐, 흣……!”

이건 진료라 할 수 없었다.

“응! 흣! 그만, 그만 하세요!”

키릴이 태의의 어깨를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맥만 확인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손가락만으론 자궁이 닿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안을 먼저 자극한 뒤에 자궁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지요. 폐하께는 이미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폐하?”

키릴이 휙 고개를 돌렸다. 황제는 키릴의 아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집요한 시선에 키릴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황제의 눈에 기이한 빛이 감돌았다. 불길함을 느낀 키릴이 다급히 태의의 손목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곧 끝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 해야 합니까?”

이를 악물고 묻자 태와 황제의 시선이 마주쳤다. 키릴이 무표정한 얼굴로 둘을 지켜보았다. 태의가 먼저 물러났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습니다.”

키릴의 눈치를 살핀 황제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래, 그만하면 된 것 같구나.”

“예, 알겠습니다.

태의는 그제야 손가락을 빼냈다. 안에서 나온 손가락이 끈적하게 젖은 것을 본 키릴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옆얼굴을 쳐다보며 슬며시 웃던 태의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태의가 자리를 떠나자 황제가 커다란 손으로 키릴의 배를 쓰다듬었다.

“남자가 임신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 거기다 황손이니 태의도 신경이 쓰이겠지. 곧 배도 부를 터인데.”

마지막 말을 내뱉고 낮게 웃던 황제가 키릴의 귓가에 속삭였다.

“배가 부른 사제라니. 어서 보고 싶구나.”

“…….”

“아직 시간이 있으니 임시 기도실로 가자꾸나. 응? 손가락보다 더 좋은 걸 주마.”

황제가 키릴의 손을 쥐고 자신의 중심부로 가져다 댔다. 잔뜩 성이나 단단해진 황제의 것을 느낀 키릴의 마음은 착잡했다.

‘자기 아이를 가진 자를 희롱하는 걸 보고 이리 흥분할 줄은. 황제답다고 해야 하나.’

신전에 있었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 성에 온 뒤로 종일, 날마다 황제에게 휘둘리고 있다. 그리고 점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갔다. 키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도 이러겠지. 더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부끄러워서 이젠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도 무서워.’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아니, 사실은 이미 다 놓아버린 뒤인데 혼자 그걸 모르고 제 자존심만 움켜쥐고 있는 건 아닐까. 키릴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