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황제의 부재가 길어졌다.
아직 임신하지 못한 키릴은 황제가 신전으로 오길 기다렸다. 황제가 돌아와 빨리 끝내 줬으면 하면서도 영원히 그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황제 역시 마음이 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루빨리 계시를 이루고 원하던 실험을 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결국 참지 못한 황제가 키릴을 황성으로 불렀다. 심기 불편한 황제의 비위를 맞추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던 황성 사람들 역시 키릴이 오길 재촉했다.
한껏 심사가 뒤틀린 상태였던 황제는 키릴과 재회한 후 변덕을 줄였다. 성내는 일시적인 평화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부디 키릴이 오래 머물다 가길 바랐다.
키릴의 거처는 황제가 기거하는 태양궁, 그것도 황제의 침실 바로 아래층 방이었다. 키릴을 위해 그 옆방은 임시 기도실을 마련해 두었다.
욕실과 응접실까지 딸린 넓은 방에 그래도 잠은 편히 잘 수 있겠다고 키릴이 안도한 순간.
황제가 귓가에 속삭였다.
“밤에 보자꾸나.”
“…폐하, 여긴 태양궁입니다.”
이곳은 둘만 있는 기도실이 아니었다. 많은 눈이 따라붙는 황제 궁인데 무슨 소문이 날 줄 알고 밤에 찾아오겠다는 말인가. 불안해하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황제가 키릴을 침실로 이끌었다.
침실 한쪽에 숨겨진 문이 있었다. 문을 열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서로의 침실을 오갈 수 있는 비밀 통로였다.
“이런 걸 제게 보이셔도 되는 겁니까?”
“이건 오직 나와 내가 허락한 자만 열 수 있는 거라 문제없다.”
황제는 키릴에게 임시 사용자 권한을 주어 언제든 계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가 그리워지면 올라와 문을 두 번 두드리거라.”
은밀한 속삭임에 키릴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키릴을 보며 웃던 황제가 의미심장한 눈길로 사제의 전신을 훑었다. 황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황성에 온 첫날 밤부터 두 사람은 키릴의 침대에서 뒤엉켰다. 황제는 그간 못했던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수시로 키릴을 찾았다. 밤엔 약을 먹고 침실에서. 낮에는 임신이 잘 되게 몸을 길들인답시고 황제가 준비한 임시 기도실에서 뒤를 꿰뚫렸다. 신전에 있을 땐 하루 중 일부 기도실에서만 벌어지던 일이 궁에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 번이고 낯 뜨거운 행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둘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난봉꾼인 황제가 유독 키릴을 총애하는 데다 키릴이 젊고 미형의 사제라 그런 의심을 하는 자도 몇 있었으나 의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황제의 취향은 작고 요염한 미인이었다. 길쭉하고 금욕적인 인상인 키릴과는 달랐다. 그 취향도 황제의 기분에 따라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실제로 키릴은 예외에 해당했다- 신분은 아니었다.
키릴은 장래 대신관은 물론 머지않은 미래에 추기경 자리가 예정된 자였다. 아무리 황제라도 차마 그를 건드리지 않으리란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계시를 이유로 저를 탐하는 황제를 키릴이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탐나던 것이 내 손안으로 기어들어 오고 있거든.”